정유라, 왜 최순실에게 불리한 증언했나
여전히 빈 구멍으로 남아있는 국정농단에서 정윤회의 역할
“여러 만류가 있었고 나오기 싫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나오게 됐다.
검사가 제 증인출석을 요청했고, 판사가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러면 나오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 7월 12일, 삼성 이재용 부회장 재판정에 모습을 드러낸 정유라씨의 말이다.
당초 변호인 측은 “정유라씨가 건강이 나쁘고 현재 재판을 받고 있어 출석이 어렵다”는 내용의 불출석 사유서를 재판부 측에 제출했었다.
이날 정씨의 법정 출석 증언에 대해 정씨 및 최순실씨 변호인 측의 반응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멘붕’이었다.
정씨의 변호인을 맡고 있는 오태희 변호사는 “살모사 같은 행동으로 최순실씨 조카 장시호보다 더하다”며 “신뢰관계가 깨졌기 때문에 사임계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씨 변호를 맡고 있는 이경재 변호사는 보도자료를 내 “변호인 접근을 봉쇄하고 증언대에 내세운 행위는 위법”이라며 “특검의 출석 강요와 회유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그 근거로 이날 재판이 시작된 후인 오전 10시23분 변호인단에 도착한 문자메시지를 제시했다.
최씨 변호인단은 이날 새벽, 정씨가 서울 신사동 집에서 차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하는 CCTV 영상도 근거로 제시했다. 이 CCTV는 정씨 주거인 미승빌딩에 설치된 것이었다.
이날 정씨는 특검 측에 전화를 걸어 신변보호 요청을 했고, 당초 알려진 것처럼 봉고차가 아니라 특검 관계자의 검은
승용차를 타고 이동했다.
이동하는 와중에 정씨는 동승한 특검 관계자에게 “법정에 출석하려면 신분증이 필요하냐”고 문의했고, 신분증을 가지러 집에 돌아왔다가 다시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 법정 출두를 둘러싼 ‘설왕설래’
<주간경향>은 사건 초기인 지난해 9월, 정유라씨가 독일 등지에 체류하며 탔던 말의 실소유주가 누구인지 추적하는
기사를 썼다.
당시 흥미로웠던 것은 유럽 승마 관련 매체들이 논란이 불거지기 전 정씨를 ‘삼성팀의 일원’이라고 소개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말의 소유자도 삼성이라고 이야기했다.
당시 보도에 대해 삼성 측은 전면부인했다.
하지만 경향신문 보도를 통해 결이 다른 삼성 측 주장이 나왔었다.
경향신문은 당시 ‘삼성 관계자’의 말을 빌려 “승마협회 회장사로 선수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말을 구입했는데,
정 선수 측으로부터 말을 이용할 수 있느냐는 연락이 와서 말을 쓸 수 있게 한 것”이라며 “그러나 유지·관리비용이
많이 들어 8월에 다시 팔아 현재는 말을 리스하는 방식으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는 삼성 측의 해명을
보도했다. 삼성 측의 이런 입장은 통일적이지 않았다.
경향신문이 접촉한 ‘삼성 관계자’는 그렇게 해명하는 데 비해, 당시 삼성그룹의 홍보를 총괄하던 미래전략실 관계자들은 그런 삼성 측의 ‘해명’조차도 “금시초문인 이야기”라는 반응이었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 재판에서 삼성 측의 전략은 당초 경향신문에 삼성 측이 했던 해명과 비슷한 입장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말을 구입한 것은 최순실·박근혜 경제공동체에 대한 뇌물이 아니라 2020년 도쿄올림픽을 대비한 국가대표선수 지원 차원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삼성 측의 계획을 중간에서 속인 것이 최순실이었다는 것이 삼성 측의 논리였다. 그런데 그게 정씨 증언으로
뒤엎어진 것이다.
'비선실세'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가 1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뒤 법원보안관리대에
둘러싸여 법정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재판을 통해 밝혀진 정유라의 ‘행적’
최순실 국정농단 초기 국면, 보도되지 않았지만 정씨와 최씨의 독일 생활을 추적하던 정치권과 언론 사이에서는 정씨가 자신의 SNS에 올린 초음파 사진이 화제를 모았었다.
정씨는 사진과 함께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짓이라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으며, 말도 부모도 다 저버리고
아이를 살리고 싶다”는 요지의 글을 올렸다.
정씨는 글에서 임신 25주차라고 밝히고 있지만, 글을 올린 시점이 언제인지 정확히 특정되지는 않았다.
2014년 9월 20일, 정유라씨는 아시안게임 마장마술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리고 이번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정씨는 그해 12월 17일에 열린 승마인의 밤 행사에는 “당시 임신 중이었고 집에서 나와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당시 남편 신주평씨와 단칸방 생활을 했다거나, 신씨와 정씨를 갈라놓기 위해 어머니 최씨가 조직폭력배를 동원하거나 재산상속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은 일 등은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져 있다.
정씨가 독일로 출국한 것은 2015년 6월 30일이었고, 아들을 출산한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이었다.
정씨는 이번 재판에서 출국할 당시 어머니 최씨로부터 “2020 도쿄올림픽 대비 훈련을 위해 독일 전지훈련을 가는 것”
이라는 설명을 들은 적이 없고, “일단 독일에 가서 피해 있으라”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정씨의 독일행에는 남편 신씨·아들·아들의 보모뿐 아니라 신씨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딸 때 탔던 말(로얄 레드)도 같이 갔다.
최씨는 정씨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가 타던 다른 말들도 같이 보냈다.
독일행에는 승마계에서 오랫동안 최순실·정유라씨의 대리인 역할을 한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가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로 간 정씨 일행은 여러 곳을 전전한다.
공통점은 승마훈련장이 있는 곳이라는 것. 하지만 이 당시 독일생활에 관여했던 인사들은 “정씨가 승마훈련을 할 의사가 없었다”고 증언한다.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건 초기, SBS가 입수해 보도한 정씨의 승마훈련 영상의 맥락도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렇게 해석되며,말을 타는 정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동영상을 찍은 관계자는 감격한 목소리로 “회장님도 이 영상을
보셔야 할텐데”라고 말한다.
전후 맥락으로 여기서 회장님은 최순실씨를 말한다.
보도 당시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재는 알 수 있다.
노승일 K스포츠재단 부장이다. 노 부장의 이름은 결과적으로 조작된 것으로 판명된 정유라 선수의 독일 훈련 일지에도 독일 측 코치 및 승마장과 계약한 당사자로 거론돼 있다.
출산 후 어머니 최씨와의 갈등은 일단 독일행을 통해 봉합되었지만 갈등관계는 계속된다.
“정씨는 흥분하면 자신의 어머니에게도 ‘××년’과 같은 욕설을 쏟아냈다.”
<주간경향>이 입수해 보도했던 박재홍 단장의 녹취록에 나오는 증언이다. 박 단장은 앞의 K스포츠재단과 별도로
마사회가 독일에 파견했던 인사다(박 단장은 최근 <주간경향>과 통화에서 실제 자신이 독일에 정씨 등과 함께
머물렀던 시기에 노승일 부장을 만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국정농단 논란이 본격화되기 직전까지 정씨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결과적으로 삼성이 사준 말
‘비타나V’, 이번 재판에서 ‘살시도’에서 이름을 바꾼 것으로 드러난 ‘살바토르’ 등의 말 사진을 올리며 말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삭제 전까지 정씨는 적어도 인스타그램 상에 올린 글로는 승마훈련과 시합에 나가는 것에 나름의 열정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자는 지난해 12월, 정씨가 덴마크에서 체포될 당시 ‘정유라의 두 얼굴’이라는 제목의 기자메모를 쓴 적이 있다.
이른바 ‘정윤회 비선실세 의혹’을 취재하며 처음 정유라씨(당시 이름은 정유연)에 대해 주목하고 관련 취재를 시작한 것은 정씨가 중학교 3학년이었던 2011년 무렵이었다. 그 후 정치권을 통해 듣게 된 방황과 임신 소식은 충격이었다.
천연덕스런 얼굴로 “수중에 땡전 한푼 없어 국선변호인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한국 취재진에게 말하던 정유라씨와
나중에 망명신청을 위해 현지 1급 변호인 블링켄베르의 고용은 소식의 정유라 중 어떤 것이 진짜 얼굴인지 궁금했다.
재판기록을 보면 정씨는 2015년 9월부터 2016년 8월까지 코어스포츠로부터 월 5000유로, 한화로 약 650만원을 받아
생활비로 썼다.
게이트가 불거지는 시점부터 코어스포츠에서 지급되던 월급은 끊겼다.
정씨는 법정 증언을 통해 어머니 최씨로부터 “더 이상 돈을 줄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카드를 지급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후 12월까지 이어지는 도피생활, 검거 후 변호사 비용 등은 누가 댔을까.
이번 정씨의 ‘변심’을 통해 알려지게 된 사실의 일단은 아버지 정윤회씨의 역할이다.
이미 독일에 있을 때부터 멀어진 어머니가 한국으로 돌아간 뒤 구속되면서, 의지할 데가 없어진 정유라씨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은 것은 이혼한 아버지 정윤회씨라는 것이다.

7월 12일 새벽 2시쯤 집을 나와 특검이 제공한 차량에 탐승 중인 정유라씨.
/ 최순실씨 변호인단 제공
‘2006년부터 야인’, 정윤회 주장 사실일까
국회 입법보좌관 시절 흑백사진을 제외하고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없던 ‘비선실세’ 정윤회씨의 사진이 공개된 것은
지난 2013년 7월 한겨레신문의 보도를 통해서다.
당시 한겨레의 취재도 ‘비선실세 정윤회’에 맞춰졌다.
정씨는 사진과 함께 제시된 인터뷰에서 비선실세 의혹을 부인했다.
이날 정씨와 함께 사진에 찍힌 최순실씨는 선그라스에 붉은 폴로티, 흰바지 차림이었다.
태블릿을 들여다보는 <시사인>의 최씨 사진과 함께 이날 한겨레가 찍은 최씨의 사진 속 차림은 최씨의 국정농단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정씨는 이날 인터뷰에서 자신은 “2006년 이후 비서실장을 그만둔 뒤 야인생활을 해왔다”고 주장했고, 그 후 약간의
시기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요지의 주장을 반복해 왔다. 그런데 과연 그랬을까.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던 당일, 정윤회씨가 청와대 인근 평창동에서 역학자 이세민씨를 만나 ‘군자(君子)학’을 논했다는 주장은 일견 야인생활을 해왔다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집권 이후에도 가명으로 울릉도에서 CJ그룹의 고위임원을 만나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
(<신동아> 2015년 1월호)이나 박근혜 창조경제 1호인 ‘아이카이스트 사기사건’과 관련한 호텔방에서 박 대통령과
거의 같은 포즈로 패널을 조작하는 사진을 남기는 등 일정한 역할을 수행한 의혹이 나왔다.
방산비리 의혹으로 초기에 거론되던 이름은 최순실이 아니라 정윤회였다. 자신의 전처 아들 정우식씨의 드라마 출연과 관련, MBC의 안광한 전 사장을 만났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흥미로운 점은 이른바 ‘정윤회 비선실세설’을 최씨도 종종 이용했다는 것이다.
2013년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한 정유라씨가 2등에 그치자 경찰을 동원해 심판진을 수사한 이른바 ‘상주사건’
당시 최씨는 “우리 남편이 누군지 아느냐”와 같은 발언을 통해 자신을 ‘비선실세인 남편의 권력을 등에 업은’ 존재로
과시했다는 것이다.
정윤회씨는 현재 강원도 횡성의 한 아파트에 칩거하고 있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정씨는 그리 많지 않은 액수의 전세로 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거의 6개월에 걸친 정유라씨의 장기 해외체류와 변호사 비용을 정씨가 댔다고 하는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
그는 과거 청와대 문건유출 재판이나 언론 인터뷰에서 “거의 빈털터리 상태”라고 여러 차례 주장한 바 있다.
이번 국정농단 의혹에서 한 발짝 떨어져 조망해보면 제일 의아한 대목은 오랫동안 비선실세 당사자로 거론되었던
최순실씨 전 남편 정윤회와 국정농단의 핵심 인사인 3인방 중 정호성씨를 제외하고 이재만·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에 대한 수사나 언급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특검수사 역시 다르지 않았다. 특검수사 와중에도 언론매체를 활용해 정씨가 종종 자신의 입장을 내보내고 있었는데도 “정씨와는 연락두절 상태”라며 수사하지 않았다. 이재만·안봉근 전 비서관도 마찬가지다.
특검 관계자는 7월 19일 <주간경향>과 통화에서 “여러 방면의 수사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수사기간이나 인력도 부족한 등 한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당시 특검법에 의해 수사대상이 최순실로 한정되어 있었고, 잠적한 상태인 정씨를 강제수사하려면 영장이 나와야 하는데 제기된 의혹들은 영장을 받을 정도로 사건이 무르익은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아이카이스트 사건 등 박근혜 집권 후 정씨 연루의혹 사건에 대해 이 관계자는 “그 사건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

▲ 7월17일 재판에 출석하는 전직 대통령 박근혜. ⓒ연합뉴스
박근혜와 최순실이 설계한 그 어떤 프레임도 먹히지 않았다
7월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 심리로 열린 자신과 최순실의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혐의 36차 공판. 18대 대통령이었던 박근혜의 오늘은 초라했다.
박근혜는 무너졌다.
1년 전, 아무도 이런 오늘을 상상할 수 없었다.
2017년 현직 대통령을 탄핵시킨 한국사회 명예혁명은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지속됐던, 박근혜와 이재용으로 상징
되던 권위주의정권과 재벌, 그 구체제에 대한 심판이었다.
박근혜와 함께 수구 보수 세력도 함께 무너졌다. 검찰과 언론을 손에 쥐고 있던 살아있는 권력 박근혜는 어떻게
무너진 걸까.
집권초기부터 불통과 소송으로 언론을 상대했던 박근혜는 결국 조선일보마저 ‘부패기득권세력’으로 명명하며 스스로
고립을 자초했다.
“박근혜와 사사로운 관계로 형성된 비선이 청와대를 수시로 드나들며 국정을 농단했다”는 영화 같은 프레임은
너무나 강력했다.
이 프레임은 TV조선이 시작하고 한겨레가 숨을 불어넣고 JTBC가 완성했다.
박근혜와 최순실은 눈앞에 보이던 정해진 최후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이 프레임을 덮을 수도 없었다.

‘국정농단 프레임’ 덮고 싶었던 박근혜
이정현 단식→김제동→송민순 회고록→개헌
국정농단 프레임의 시작은 한겨레였다.
한겨레는 9월20일 1면 톱기사 ‘대기업돈 288억 걷은 K스포츠재단, 이사장은 최순실 단골 마사지 센터장’에서 민간인
최순실을 공공재단 설립과 운영의 숨은 실세로 지목했다.
박근혜는 언론에 등장한 최순실을 덮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KBS는 북핵 도발가능성 기사를 연일 주요하게 배치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단식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오직 최순실 보도만 안 나가면 그만이었다.
이정현 대표가 단식을 벌이는 사이 전경련은 미르·K스포츠재단을 해체하고 관련 자료를 파쇄 했다.
당시 국감 국면에서 새누리당은 전방위적으로 최순실과 연결될 수 있는 모든 국감 증인 채택을 거부했다.
최경희 이대 총장까지 증인에 세울 수 없었다.
10월1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백남기 농민 부검영장을 발부했다.
공권력에 의한 외인사였던 백씨의 사망진단서엔 ‘병사’라고 적혀있었다.
언론은 백남기 사인을 둘러싼 논란으로 시끄러워졌다.
비슷한 시기 김제동씨가 뜻밖의 논란으로 떠올랐다.
새누리당 의원이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김 씨 출석을 요구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군 장성 아내를 아주머니라 불렀다가 영창에 갔다”는 발언이 군의 신뢰를 실추시켰다는 것. 종편은 시간 날 때마다
김제동 영창 논란을 띄웠다.
10월4일부터 10일까지 7일간 미르·K스포츠재단의혹을 쟁점으로 다룬 보도는 35건. 이중 JTBC보도가 25건이었다.
다른 방송사는 사실상 입을 닫고 있었다.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다.
2014년 ‘정윤회 문건 파동’처럼 덮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정부여당은 “최순실이 누군데 왜 그리 목을 매느냐”(김도읍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며 오히려 기자들에게 따져
묻기도 했다.
그러나 안이한 인식이었다.
당장 조선일보가 청와대와 날을 세웠다.
조선일보는 “최순실 단골 마사지센터 운영자가 K스포츠재단 이사장이 됐고 재단 사무실과 마사지센터, 최씨 집,
박근혜 대통령 사저는 다 한곳에 모여 있다”며 정부여당이 관련 증인채택을 막는 것을 두고 “국민 무시”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로선 이미 프레임을 돌릴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10월15일, 정부여당은 그 흔한 종북 프레임을 꺼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책 ‘빙하는 움직인다’에서 2007년 유엔 북한인권 결의안 표결 때 정부가 기권 결정 전
북한 의견을 물었고, 이 때 문재인 대통령이 관여했다는 내용이회고록에 등장했다.
친박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은 “북한 종속 국가도 아닌데 북한에 알아봐서 결정하자?
국기를 흔들 문제”라며 날을 세웠다. ‘문재인 종북’ 프레임이었다.
새누리당은 “내통”이라는 극단적 표현까지 쓰며 여론몰이에 나섰다.
방송은 이 논란에 집중했다.
MBC는 2012년 NLL대화록 파문을 언급하며 야당의 안보관은 틀렸다는 새누리당 논리를 적극 선전했다.
KBS도 다르지 않았다. TV조선은 문재인 때리기에 집중했다.
이 프레임은 사실 한겨레-조선일보-중앙일보-경향신문-동아일보가 최순실을 매개로 느슨히 걸려있던 ‘논조의 연대’란 고리를 잘라내기 위함이기도 했다.
그러나 통하지 않았다.
당시 동아일보는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으로 수세에 몰린 여권이 국면 전환 카드라도 잡은 듯 문 전 대표와 민주당을 몰아붙이고 있는데 박수 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라고 쏘아붙였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었다. 이대 학사비리의 경우가 그랬다.
김순덕 동아일보 논설실장은 10월17일자 칼럼에서 “130년 전통의 사학이 5년 임기 대통령 측근, 심지어 공식 직함도
없는 학부모에게 휘둘려 학칙까지 바꾼 것보다 비선 실세의 위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길은 없다”고 지적했다.
이대 영문과 출신인 김 실장의 이 칼럼은 큰 화제를 모았다.

▲ 2016년 10월25일 박근혜 대통령의 개헌 발언을 다루고 있는 KBS 보도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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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밤, JTBC ‘뉴스룸’의 특종이 등장한다. 손석희 앵커가 말했다.
“JTBC 취재팀은 최순실씨의 컴퓨터 파일을 입수해 분석했습니다.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받아봤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 씨가 연설문 44개를 파일 형태로 받은 시점은 모두 대통령이 연설을 하기 이전이었습니다.
” 영화보다 영화 같았던 ‘아젠다 키핑’의 한 장면이었다. 이 보도로 JTBC는 ‘최순실 국정농단’이란 프레임을 개헌
프레임으로부터 지켜냈다.
집회→형사고발→인신공격→농성→가짜뉴스
JTBC는 민간인 최순실이 드레스덴 선언을 비롯한 각종 대통령 연설문을 미리 전달받았으며, 최씨의 지시에 따라
연설문이 고쳐졌다고 단독 보도했다.
그러자 TV조선은 마치 JTBC보도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10월25일 민간인 최순실이 강남 모처에서 대통령 박근혜의 옷을 ‘손수’ 고르는 영상을 단독 보도했다.
그리고 25일 오전 한겨레는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과의 충격적 인터뷰를 내보냈다.
“최순실이 거의 매일 청와대로부터 30cm 두께의 대통령 보고 자료를 건네받아 검토했다.”
10월26일, 여야가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에 합의하며 박근혜는 무너졌다.
하지만 박근혜와 최순실은 순순히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10월26일 이후 100일 동안 국가(청와대와 국정원)-자본(전경련과 대기업)-극우집단(극우시민단체와 새누리당)은
조직적으로 JTBC 흔들기에 집중했다.
집회→형사고발→인신공격→농성으로 이어진 일련의 흐름은 비판언론을 탄압하는 박근혜의 마지막 악수(惡手)였다.
이는 메시지를 공격할 수 없을 경우 메신저를 공격하는, 고전적인 수법이기도 했다.

▲ 손석희 JTBC보도담당 사장.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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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이 만든 프레임은 새누리당 의원을 통해 언론에 전파되며, 어버이연합·박사모·엄마부대 등 박근혜 지지단체에 ‘임무’를 부여했다.
이들 친박·극우성향 단체는 당장 10월 31일부터 11월 9일까지 상암동 JTBC 사옥 앞에 집회를 신고하고 태블릿PC
보도가 조작됐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11월4일, 검찰이 태블릿PC가 최 씨의 것이라고 파악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소용 없었다.
이들 단체는 JTBC를 자극하기 위해 손석희 JTBC보도담당 사장과 JTBC 기자가 죄수복을 입은 합성이미지를 제작해
유포하는가 하면, JTBC 기자가 ‘올해의 여기자상’을 수상한 프레스센터 행사장까지 쫓아가 압력을 행사했다.
11월10일에는 어버이연합 등이 JTBC의 태블릿PC 입수 경위를 수사해달라며 손석희를 서울중앙지검에 형사고발했다.
12월9일 국회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친박·극우성향 단체는 “JTBC 태블릿PC 조작이 없었다면 탄핵은 불가능했다”는 프레임을 들고 나왔고 새누리당은 당내 태블릿PC진상규명위원회를 꾸린다고 호들갑을 떨며 동조했다.
2017년 1월10일 박사모·엄마부대·자유총연맹·어버이연합 등 친박·극우성향 단체들은 ‘태블릿PC조작 진상규명위원회’라는 결사체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그해 1월17일부터 방송통신심의위가 위치한 방송회관 1층 로비를 점거하고 JTBC 심의제재를 주장하며 농성을 시작했다. ‘JTBC 태블릿PC 조작’프레임을 매게로 한 가짜뉴스는 ‘여당과 시민단체의 의혹 제기’로 그럴듯하게 포장돼 일부 극우성향 인터넷매체와 MBC 같은 소수 주류매체의 호응 속에 확대 재생산됐다.
태블릿PC조작 진상규명위는 “제대로 취재하는 곳은 MBC밖에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물론 최순실의 태블릿PC는 시빗거리가 될 수 없었다.
검찰은 JTBC가 제출한 태블릿PC의 인터넷망을 추적해 태블릿PC 이동경로와 최 씨의 동선이 겹친다는 사실을 밝혀
내며 태블릿PC가 최순실의 것이라고 결론 냈다.
무엇보다 태블릿PC에 대한 증거능력 의혹 제기가 무의미해질 정도로 국정농단 증거는 차고 넘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각종 음모론과 조작설들은 전염병처럼 번졌다.
헌법재판소 결정을 지연시키고 어떻게든 현 국면을 반전시키고 싶은 의도의 결과물이었다.
이 무렵 변희재는 “손석희·홍정도를 국가내란죄로 고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순실 측 변호인단은 변희재를 ‘태블릿PC 전문가’로 재판에 증인 신청하면서 변희재는 JTBC 공격의 중심인물이 됐다. TV조선 등 종합편성채널에서도 섭외할 의향이 없는 변희재를 박근혜·최순실이 ‘키맨’으로 선택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그들이 벼랑 끝에 몰려 있다는 반증이었다.
2017년 2월12일 변희재 등 200여 명은 평창동 손석희 집 앞에 몰려가 기자회견을 열고 “손석희를 죽이러 왔다”는
등의 막말을 쏟아냈다.

국정농단 세력 최후의 프레임
“이번 사태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전 언론사의 보복”
“지금은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전쟁입니다.
광화문 촛불의 목표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아닙니다.
국가전복입니다!”
서울 시청 앞 광장 태극기집회에서 등장한 구호의 공통점은 언론에 대한 불신이었다.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국면에서 조중동을 포함한 대다수 보수언론이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자 친박·극우세력의
‘설계자’들은 대응논리가 필요했다.
이들은 언론을 사태의 원인으로 규정했다.
대통령 박근혜가 단독인터뷰 대상으로 제도언론이 아닌 ‘정규재TV’를 선택한 것도 이러한 대응논리에 힘을 실어줬다.

▲ 탄핵반대를 요구하던 서울역 보수단체 집회모습.
ⓒ연합뉴스
조갑제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약점은 최순실이라는 비선과의 부적절한 관계였는데 언론보도만큼 심각한 사안이 아니며 탄핵 사안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인식은 태극기집회에 참여하는 대중의 인식과 유사했다.
태극기집회 참여자들은 현장에서 ‘언론개혁’을 주장했다.
이노근 전 새누리당 의원은 JTBC 등 언론사들을 가리켜 “쓰레기 언론을 소각로로 보내자”고 주장했다.
김세은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 같은 ‘언론조작·왜곡보도’ 프레임이 친박·극우세력의 중심 이데올로기가 된 것을 가리켜 “한국 언론은 긴 불신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허위·왜곡보도의 주체로 언론을 설정했을 때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하고 지지층을 끌어모을 수 있는 문화적 상징으로 태극기를 선택했다.
태극기집회의 관념은 ‘조작·왜곡보도→탄핵→좌파의 국가전복→대한민국 위기’로 이어지는, 확장성을 잃어버린 낡은
구호의 반복이자 구체제의 집단 기억이 쏟아내는 ‘최후의 발악’을 의미했다.
가짜뉴스는 태극기의 세를 늘려나가는 일종의 바람잡이 역할을 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17년 3월 내놓은 ‘가짜뉴스 인식’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50대의 경우 카카오톡을 통해 가짜뉴스를 접한 비율이 45.6%로 나타났다.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의 페이스북 뉴스피드를 분석한 중앙일보-구글 뉴스랩 팀에 따르면 이들의 타임라인에선 ‘손석희
거짓말’, ‘변희재의 의혹 제기’, ‘태극기집회 수백만 명 참가’와 같은 뉴스들이 빈번하게 등장했다.
3월10일, 박근혜가 파면됐을 때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던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나라가 망했다고
절규했다.
시간은 흘러 4월 21일 방송학회 정기학술대회. 키노트 스피치 연사로 참여한 손석희 사장은 국정농단 국면을 이렇게
회상했다. “광장의 프레임은 ‘이게 나라냐’였다.
국가에 대한 실망이었다. 이것이 헌법 수호로 넘어갔다. 동시에 ‘세월호 7시간’ 프레임이 강력하게 등장했다.
이것은 이번 사건의 주체가 되는 집단들을 연결시켰다. 블랙리스트 역시 헌법의 문제였다.
중요도에 비해 대중적 인식은 ‘그게 뭐 이번 정부만 그랬을까’ 같은 게 있었지만 우리는 이 사안을 중시했다.”
그는 국정농단 국면에서 등장했던 ‘태블릿PC조작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국정농단 사건에서 음모에 의한 정권전복 사건으로 프레임을 바꾸는 방법이 태블릿PC 조작이었다.
집중적 공격을 받았다.
내가 시내에 많이 다녔다.
포승줄에 묶인 모습으로.(웃음) 연구해볼만 한 사건이다.
한참을 참다 법적 대응을 했지만, 결론이 나는 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다.
일일이 대응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조작프레임은) 굉장한 집요한 노력과 인프라 제공이 있었다.
저널리즘 자체가 중대한 이슈에서 많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걸 배웠다.”
박근혜가 무너진 자리에 들어선 새 정부는 ‘적폐 청산’을 주요 아젠다로 들고 나왔다.
겨울 내내 광장을 비췄던 촛불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아젠다였다. 세상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정의로운 언론과 시민이 만들어낸 명예혁명은 현실 속 끝없는 프레임 전쟁 속에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정철운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21일 오전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
도착하며 교도관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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