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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사

영화 속 조연, 항쟁의 ‘주연’이었던 광주의 택시운전사들





1980년 5월 당시 광주에서 택시운전사로 일하며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왼쪽부터) 이행기, 장훈명씨. /우철훈 선임기자



1980년 5월 당시 광주에서 택시운전사로 일하며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왼쪽부터) 이행기, 장훈명씨.


 /우철훈 선임기자

 



영화 속 조연, 항쟁의 ‘주연’이었던 광주의 택시운전사들



“정말 그들은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참상을 카메라에 담아 전 세계에 알린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Jürgen Hinzpeter)는 훗날 광주시민의 모습을 이렇게 회상했다. 광주시내 곳곳에서 자행된 계엄군의 민간인 학살과 이에 맞서 무장을 시작한 시민들의 모습을 목격한 그는 “그때 사람들의 구호는 ‘싸우다 죽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8월 2일 개봉한 영화 <택시운전사>(감독 장훈)는 1980년 5월 ‘고립된 섬’이었던 광주로 잠입한 독일 기자 힌츠페터와 그를 태우고 광주로 향한 서울의 택시운전사 김사복씨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다. 광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영문조차 모른 채 택시비 10만원을 벌기 위해 독일 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를 태우고 무작정 광주로 향한 택시기사 김만섭(송강호)이 목격한 1박 2일간의 참상과 항쟁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 속 그들은 광주의 토박이 택시운전사 황태술(유해진)과 대학생 구재식(류준열)의 도움으로 취재를 마치고 무사히 광주를 빠져나오고, 그곳에서 자행된 일들을 세상에 알린다.


 힌츠페터는 생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김사복씨를 찾았지만, 그의 행방은 현재까지 묘연하다.

영화 속에서는 김씨가가명을 쓴 것으로 그려졌다. 결국 힌츠페터는 김사복씨와 재회하지 못한 채 지난해 1월 눈을

 감았다.


영화는 서울의 택시운전사와 독일 기자라는 ‘외부자’의 시선으로 광주의 참상을 다루지만, 광주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릴 수 있도록 조력했던 영화 속 ‘조연’들은 실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이끈 항쟁의 ‘주연’들이었다.


생계의 전부인 택시를 무기 삼아 “정말로 죽을 준비가 되어 있던” 사람들, 1980년 5월 광주의 택시운전사들이다.

영화 <택시운전사>가 개봉한 8월 2일,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광주의 택시운전사들을 만나 당시이야기를 들었다.

그건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다


“그건 폭력이 아니라 살인이었어요.

우리는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두 눈으로 목격한 겁니다.

 그날 광주 곳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이행기씨(66)는 그때 스물아홉의 택시운전사였다.

 오후부터 비가 내리던 1980년 5월 19일, 그는 광주 북구 무등경기장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계엄군이 광주시내로 밀려 들어오면서 시외버스들은 시내의 공용버스터미널로 진입하지 못한 채 무등경기장에 승객을 내려줬다.


손님을 태우기 위해 택시들이 모여들었고, 택시운전사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목격담’이 오갔다.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위축됐던 시위의 불씨를 살린, ‘5·20 차량시위’의 시작이었다.

“계엄령 확대 이후, 대학생들 시위가 산발적으로 계속 있었어요.

공수(공수부대원)들이 보고 있다가 앞줄에 있는 주동자들을 딱 찍으면, 끝까지 따라가 기어코 잡습니다.


곤봉으로 때리고, 대검으로 찌르고…. 택시들이 그럴 때 문 열어놓고 기다리다가 학생들을 많이 피신시켜 줬어요.

한번은 도망치는 학생을 태우고 출발하는데, 쫓아온 공수가 대검으로 찔러 칼이 택시 문 틈에 끼인 채 총을 달고 달린 적도 있습니다.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정말 많이 실어날랐죠. 그래서 택시가 (계엄군에) 미운털이 많이 박혔어요.

시내에서 운전하다 보면 계엄군이 택시, 버스할 것 없이 세운 다음 무조건 끌어내립니다.

대학생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이 타고 있으면 무조건 끌어내린 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때렸습니다.


우리가 항의하면 기사들도 때리고….

 우리는 하루종일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운전을 하잖아요.

 그래서 다 목격한 겁니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분노한 택시운전사들은 “이대로 죽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미 학생들의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헬기까지 동원됐고, M16 소총에 착검까지 한 공수들이 마치 ‘살인면허’라도 받은 듯 거리 곳곳에서 마구잡이로 시민들을 구타했다.

계엄군은 부상자를 싣고 병원으로 향하는 택시를 발견하면, 차를 세워 또다시 부상자와 운전사를 때리고 어디론가

끌고 갔다. 계엄군이 경찰을 구타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그날 오후 4시50분, 조대부고 3학년 학생이 계엄군의 총에 맞았다. 첫 발포였다.

 국군이 시민을 향해 총을 쏘는, 믿을 수도 없고 믿고 싶지도 않은 일이 벌어졌다.

광주의 이런 상황이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에는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어느새 학생시위는 광주시민들의 항쟁으로 번지고 있었다.

“그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선 거죠. 우리 기사들은 차가 있으니, 우리가 시민들의 방패가 되어주자고. 이대로라면 다 죽는다고.”

약속한 5월 20일 저녁 6시, 무등경기장에 택시들이 집결했다.


 소문을 듣고 모인 택시는 200대를 넘어섰다. 태극기를 앞에 걸고, 자신과 가족의 생계의 전부인 택시에 올라탔다.

당시 스물여덟의 택시운전사였던 장훈명씨(65)는 광주역에서부터 차량시위 행렬에 합류했다.

 “(계엄군이) 광주를 몰살시키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문만이 아니라, 우리가 본 것들이 그랬습니다. 보고만 있을 수 없었어요.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피가 거꾸로 솟았습니다. 두려움보다 분노가 컸습니다.”


택시들은 일제히 전조등을 켜고, 경적을 울리며 도청으로 향했다.

가장 앞줄에는 대형트럭과 버스가 서고 뒤에는 택시 수백대가 뒤따랐다.

시내 곳곳에 설치됐던 계엄군의 바리케이드가 무너졌다.


택시 숫자는 점점 늘어났고, 시민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계엄군의 철통 같은 저지선 앞, 교착 상태에 있던 시위가 새 국면을 맞는 순간이었다. 장씨는 “평생 그런 환호를

받아본 적이 없어요.

우리 일생에”라고 말했다.




1980년 5월 당시 광주에서 택시운전사로 일하며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왼쪽부터) 장훈명, 이행기씨를 8월 2일 광주 서구에 위치한 5·18 구속부상자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우철훈 선임기자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록한 역사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황석영 저)는 당시 택시운전사들의 차량시위를 “항쟁의 결정적 비약이 이뤄지는 두 번째 계기”라고 평가한다.


첫 번째 계기가 됐던 5월 19일 금남로 가톨릭센터 앞 시민들의 시위가 “즉흥적이고 비조직적”인 시위였다면, 이날 차량 행렬은 “즉흥적으로 이뤄진 시위였지만 운수노동자들의 강력하고 일체화된 행동에 강한 폭발력이 응축돼 있었던”

조직적 시위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계엄군의 진압은 잔혹했고, 차량시위의 대가 역시 평생 가혹했다.

시위 차량이 금남로의 계엄군 저지선에 이르자, 계엄군은 엄청난 양의 최루탄을 쏘아대며 이들을 진압했다.

방독면을 쓴 공수들이 뛰어들어 차량 유리를 부수고, 운전사를 끌어내려 집단 구타했다.


이행기씨는 그날 계엄군에 잡혀 도청으로 끌려갔다.

 계엄군이 21일 집단 발포 후 도청에서 퇴각하면서 가까스로 풀려나올 때까지, 무자비한 폭행이 이어졌다. 목

숨은 부지했지만, 계엄군의 군홧발에 찍혀 척추뼈가 깨지는 부상을 당했다. 나중에 정신을 차려보니 치료를 받은

곳은 산부인과였다.


“거의 3분 간격으로 사람들이 끌려 들어왔어요. 알고 보니 친구가 같은 방에 있었는데, 그때는 서로 알아보지도

못했어요.

 얼굴이고 몸이고 온통 피곤죽이 되어버려서,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고 얼굴이 피범벅이라 알아보기 힘든 겁니다.


그때 공수가 했던 말을 기억해요. ‘나는 너희들 따위 평생 불구로 만들거나 죽여버려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군홧발 뒤축으로 엎드린 사람들의 척추를 찍어 누르고, 야구방망이 크기의 곤봉으로 머리를 강타했어요.

가랑이 속으로 머리를 박고 앉아 있었는데, 공수가 들어오면 앞 사람의 몸이 좌우로 벌벌벌 떨리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하며 광주의 택시운전사들과 친분이 두터웠던 전영도씨(가명·65)는 그날 차량시위에 참여했다가 금남로에 닿기도 전 신안사거리에서 계엄군에 체포됐다.

전씨는 “나는 두들겨 맞고 전남대로 끌려간 이후, 기억이 별로 없다”면서도 공수들의 그 ‘눈빛’만은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건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어. 그때 군인들에게 술만 마시게 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그건 술이 아니라 약을 먹어

약에 취한 눈빛이었어.

 모두 흐리멍텅하고 정신이 반쯤 나가 있던 것이…. 사람이면 사람에게 그렇게 하지 못해요.”





1980520일 버스와 택시 운전사들이 금남로에서 차량시위를 벌이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날 이후 37년, 여전한 트라우마


광주의 ‘황태술’들은 영화 <택시운전사>를 어떻게 봤을까. 장훈명씨는 “영화 만들기 전에 장훈 감독을 만나 몇 시간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면서 “그간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가 많이 있었지만, 우리 택시기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더 반가웠다”고 말했다.


그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화 끝부분 검문소에서 서울 번호판이 적발됐는데 하사관 한 명이 눈 감아줘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도 실제 있었던 일”이라면서 “당시 운동의 불씨를 다시 살린 기사들의 차량시위가 영화에 나오지 않은

점은 조금 아쉬웠다”고 말했다.


영화 속 서울의 택시운전사 만섭은 기사들을 응원하며 주먹밥을 나눠주는 시민들과 만나고, “광주에서 택시는

다 공짜”라며 무료로 기름을 넣어주는 주유소에서 놀라기도 한다.

 1980년 택시운전사로 항쟁에 참여했다가 부상당했던 김동희씨(77)는 “당시 광주시민은 모두 하나였다”고 회상했다.


“양동시장에서 시민들한테 음식 나눠주고, 버스고 택시고 할 것 없이 시민들 태우고 돌도 나르고…. 그때 광주는 외부로부터 완전히 고립돼 있었지만, 우리는 똘똘 뭉쳐서 모두가 한마음이었어요.”



당시 광주는 무법천지가 아니었다. 도시는 고립됐지만, 시장 상인들은 밥을 지어

시민군에 제공했고 시민들은 부족한 물자를 서로 나눴다. 항쟁기간 단 한 건의 절도

 사건조차 발생하지 않은, 질서 있고 평등한 공동체가 5월 광주였다.


/5·18 기념재단 제공


매년 5월 20일이 되면 ‘5·18 민주기사의 날’을 맞아 무등경기장부터 금남로까지 당시의 차량시위를 재현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으며,80년 당시 항쟁에 참여했던 버스·택시기사들이 주축이 된 ‘5·18 민주기사동지회’가 1986년부터 매년

 차량 행진을 주도했다.


그러나 과거에는 이런 ‘재현’조차 쉽지 않았다. 민주기사동지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행기씨는 “무등경기장에서 출발

하면 거기서부터 막혀서 금남로까지 가본 적이 없었다.

경찰이 매번 막아 문민정부 때가 되어서야 금남로까지 재현 행사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동지회 회원은 30여명 남짓이다. 이씨는 “과거 정권의 끊임없는 와해 시도와 ‘빨갱이’라는 낙인 때문에 초반에는 회원이 많았지만 점점 빠져나갔다”면서 “37년이란 세월이 흐르다 보니 돌아가신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37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그때의 기억은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생존자들에게 남은 것은 신체에 각인된 고통,

그리고 그보다 더 큰 트라우마다. 전영도씨는 “몇 년간 집 밖에 나가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때 나를 때리던 공수놈의 눈빛, 내 앞에서 죽어가던 사람들이 선명해. 교도소로 이송될 때 공수들은 밀폐된 이송트럭에 최루탄을 터트렸어요.

아비규환이었습니다.


 그때 트럭 안에서 여럿이 죽었어요.

5월 20일에 체포돼 교도소에서 16일인가 있다가 각서 쓰고 나왔는데, 아버지 우는 모습을 그때 처음 봤어요.


한국전쟁도 겪었지만 이렇게 잔인한 건 본 적이 없다고, 9남매가 아버지 눈물을 그 때 다들 처음 봤어요.

 어머니는 몇날 며칠을 내 속옷을 빨아도 피가 안 빠진다면서 우시고…. 트라우마센터에도 가봤지만, 이게 나을 병이

아니라고 하더라고. 그때 일은 떠올리고 싶지도 않아요.”







힌츠페터가 5·18 당시 촬영해 독일 잡지 에 보도한 ‘5·18 꼬마 상주’(왼쪽) 사진과

 가족을 찾지 못한 희생자들의 모습.


/ 5·18기념재단 제공

 

이행기씨는 계엄군의 폭력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건 폭력이 아니라 살인이었다”고 못 박으면서도 “트라우마

치료는 우리뿐만 아니라 계엄군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옛날 일이지만 항쟁 이후에 양심선언을 하겠다고 찾아오던 공수들이 있었어요. 그 어린 군인들도 누군가

시켜서 사람을 죽인 건데, 자꾸 떠오르고 살 수가 없으니까 광주에 다시 찾아온 겁니다.

부들부들 떨며 울면서 증언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누가 평범한 사람들을 이렇게 만든 건지 묻고 또 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망각보다 위험한 왜곡

영화 <택시운전사>는 철저히 ‘외부자’의 시선을 따라간다.

 “학생들이 공부는 안 하고 데모만 한다”며 투덜거리던, 서울의 평범한 택시기사의 눈으로 본 광주의 이야기다.

장훈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이 자신과 동일시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면서 “광주에 살지 않아 그 사실을 모르던 사람들을 만섭이 대변해야 한다고 봤다”고 말했다.


영화는 흥행을 이어가고 있지만, 80년 광주라는 비극적 소재를 저항보다 피해의 서사로만 다루는 이런 전형성 탓에

평단에선 “어리둥절한 외부인의 시선 이상의 것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황진미 평론가)라는 따가운 평도 나왔다.

그러나 이런 ‘외부인의 시선’은, 3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5월 광주를 왜곡하는 현실로 인해 여전히 유효한 장치로

기능한다.


 장훈 감독 역시 “여전히 광주민주화운동 자체를 왜곡해서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이 영화가 작은 변화를 일으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영화는 서울에서 온 택시기사의 시선으로 광주에서 벌어진 일들을 따라가지만,

영화 속 조연인 광주의 택시운전사 황태술(유해진)은 실제 5월 항쟁의 주역이었다.


/쇼박스 제공



80년 5월, 광주의 택시운전사들도 망각보다 위험한 ‘왜곡’에 대해 이야기했다.

장훈명씨는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의 5·18 기념사를 보면서 온 가족이 울음을 터트렸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말처럼 그만큼 진실은 오랫동안 은폐되고 왜곡됐으며, 그래서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역사가 5월 광주였다.

이행기씨는 “항쟁은 열흘이었지만, 고통은 37년이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몸의 상처는 문제가 아닙니다. 정신적인 상처는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우리를, 그때 목숨을 걸고 싸웠던 광주시민들을 빨갱이라고 말하는 이들, 북한군이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어요.

이제는 유공자라 어마어마한 보상을 받고 있다는 유언비어까지 나돕니다.


 이제 지나간 세월이 곧 40년이에요. 20대 택시기사가 이제 60대 노인이 됐습니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가 눈 감을 때는 명예로울 수 있게, 80년 광주를 폄훼하는 일만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19805월 광주민주항쟁당시 현장을 가장 먼저 찾아 취재한 독일 ARD 방송의

고 위르겐 힌츠페터(왼쪽) 기자는 지난 2일 개봉한 영화 '택시운전사' 속 기자

'피터'의 모티브가 됐다.


한국일보자료사진ㆍ쇼박스




(연합뉴스)



연합뉴스



980년 5월 18일 전라남도 광주에선 민주화를 부르짖던 평범한 시민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군부독재의 총칼에
 쓰러졌다.
 삼엄한 언론 통제 탓에 다른 지역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다.

만약 취재를 위해 광주로 향한 독일 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를 태우지 않았다면, 만섭(송강호) 역시 그랬을 것이다. 광주에서 그를 기다리는 건 상상도 못한 비극이다.
 
전 세계에 광주의 참상을 가장 먼저 보도한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회고를 토대로 한 ‘택시운전사’(8월 2일 개봉, 장훈 감독)는 서울의 택시운전사 만섭의 눈으로, 군부독재에 맞섰던 작은 영웅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다.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의 무게가 고스란히 마음의 빚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당시 상황에 어두운 10~30대,
외국인 관객들의 마음도 같을까.

magazine M이 지난 7월 11일 160인 규모 특별시사회를 열고 10대부터 70대까지 세대와 국적별 관객 반응을 살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화두, 언론 종사자들도 이번 행사에 함께 자리했다.


 
'택시운전사'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서울의 택시운전사와 독일 기자라는, 제3자의 시선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같은 소재를 다룬 기존 영화들과 차별화했다. 


'택시운전사'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서울의 택시운전사와 독일 기자라는, 제3자의 시선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같은 소재를 다룬 기존 영화들과 차별화했다

 

광주의 아픔 불러낸 ‘택시운전사’ 세대·국적별 반응은?

[

소시민의 눈에 비친 5·18 광주시민들의 이야기

“최근 민주주의와 관련한 일련의 경험으로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임상기·27·학생) 

“서민의 삶을 가장 몰입도 있게 표현하는 배우 송강호가 연기하는 5·18 당시 시민의 모습에 관심이 갔다.

”(김현주 ‘코스모폴리탄’ 편집장) 


“한국전쟁의 아픔과 이념 문제를 자연스럽게 휴머니즘으로 풀어낸 영화 ‘고지전’(2011)의 장훈 감독이 광주민주화운동에 어떻게 접근했을지 궁금했다.”(박성준 JTBC 앵커)

 
11일 특별시사회 참석자들은 왜 ‘택시운전사’를 보고 싶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믿고 보는 배우 송강호와 장훈 감독의 ‘의형제’(2010) 이후 7년 만의 재회를 기대한 관객이 과반수였다.
 20~30대로 연령대를 좁히면 이들이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소재를 어떻게 그려낼지 보고 싶었다는 답변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교과서에서 볼 수 없었던 광주시민들의 이야기를 알고 싶었다”는 20대 여성 관객의 말에선 기존 교육과정에서 느껴온 목마름이 묻어났다.
최규진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는 “현존하는 광주민주화운동 영상자료는 대부분 외신 기자들이 촬영한 것인데, 최초의
보도를 이끌어낸 힌츠페터가 바라본 광주가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했다”고 했다.
 
40~50대 언론인들은 “(6월 민주항쟁이 있었던) 1986년 대학에 다니며 ‘한국 민주화의 상징’으로서 광주민주화운동을 접했다”(박성준 앵커) “대학 1학년이었던 1980년, 광주는 금기어처럼 주고받았던 얘기였다. 5월 이후 몇 개월 동안
휴학이 이어졌다”(전영기 중앙일보 논설위원) 등 개인적인 기억을 반추하며 ‘택시운전사’가 그려낸 그날의 광주를
지켜봤다.



 
 


관객 울린 명대사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

어린 딸을 둔 가난한 가장 만섭의 궁상맞은 익살에 객석에선 이따금 웃음이 터져 나왔다. 10~30대 관객들은 광주
대학생 재식(류준열)에게 더 공감하기도 했다.

멋모르고 광주에 갔다가 겁먹은 만섭과 독일 기자 피터 사이를 싹싹하게 중재하며 그 시절 광주 청년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역할이 재식의 몫. 맨손의 시위대가 무력 진압되는 한낮의 유혈사태 대목부턴 곳곳에서 안타까운 흐느낌이
 들려왔다.
 
“막연히 안다고 생각했던 광주의 비극이 그토록 처참했다니, 큰 충격을 받았다.”
어느 40대 여성 관객의 고백. 감흥은 국경을 뛰어넘었다.
이날 시사회에 참석한 JTBC ‘비정상회담’ 전·현 독일 대표 다니엘 린데만(32)과 니클라스 클라분데(24)는 “광주에
온 독일 기자에 대해 자세히는 몰랐다”면서 “국적과 무관하게 감명 받았다”고 했다.
 

“독일에서 한국학을 공부할 때도 배우지 못한 힌츠페터의 존재를 이 영화로 알게 됐다.” 다니엘 린데만(독일)

“민주화를 일궈낸 한국 사람들의 희생에서 옳은 일은 어떻게든 해내야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오오기 히토시(일본)






'택시운전사'에서 주인공들이 광주 택시운전사 황태술의 집에서 노래하며 단란한 저녁을 보내는 장면에선 관객 반응이 다소 엇갈렸다. 




'택시운전사'에서 주인공들이 광주 택시운전사 황태술의 집에서 노래하며 단란한 저녁을 보내는 장면에선 관객 반응이 다소 엇갈렸다. 

만섭이 서울에 혼자 있는 딸에게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다”고 울먹이며 피터를 구하러 광주로 돌아가는 장면을
명장면으로 꼽은 관객이 많았다.

경기도 용인에서 온 정철현(27)씨는 “(광주시민이 아니라 제3자의 입장이라는 점에서) 나라면 어떤 결정을 할지 몰입
됐다”고 했다.
정여울 문학평론가는 광주 택시운전사들이 만섭에게 손님을 모셔야 하는 택시의 의무를 강조하는 장면을 들며
 “극한 상황에서도 직업적 사명감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무한한 선량함이 가슴을 울렸다”고 했다.

피터와 만섭의 탈출을 남몰래 눈감아주는 군인 박 중사(엄태구) 캐릭터에게서 “(아픈 역사를 다루며) 나쁜 군인과
착한 희생자의 구도로 선악을 단순화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엿보여”(이유정 중앙SUNDAY 기자) 인상 깊었다는 관객이 적지 않았다.

신기주 ‘에스콰이어’ 편집장은 피터를 돕는 재식 등 광주시민의 희생에 대해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는
광주민주화운동에 빚진 것”이라며 “‘택시운전사’가 그 본질을 짚어냈다”고 했다.
 
자연스러운 감동 vs 감정 과잉 아쉬워 

다만, 광주 택시운전사 황태술(유해진)의 집에서 주인공들이 노래하며 단란한 저녁을 보내는 장면, 광주 택시운전사들이 만섭과 피터를 위해 나선 극적인 카체이싱 등 후반부 몇몇 장면은 “억지로 눈물 짜게 하지 않아 더 감동적이었다”

(장한이·18·학생)는 호평과 “감정 과잉된 작위적인 설정”(40대 남성 관객)이라는 정반대 의견이 엇갈렸다.
박성준 앵커는 “여성 주연 배우가 없었던 점”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택시운전사'는 "'광장'을 경험하고 변화를 이뤄낸 현 시점이기에" 울림이 더 큰 영화라는 감상평이 주를 이뤘다. 


'택시운전사'는 "'광장'을 경험하고 변화를 이뤄낸 현 시점이기에" 울림이 더 큰 영화라는 감상평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영화적 완성도에 아쉬움을 드러낸 관객도 ‘택시운전사’가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영화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특히 광주 출신 관객들은 “타 지역 사람들이 여전히 5·18을 잘 모른다는 걸 알고 충격 받았다”(장원영·31·회사원)면서 이 영화에 기대를 걸었다.

 힌츠페터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일요스페셜-80년 5월, 푸른 눈의 목격자’(2003, KBS1)와 당시 광주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미국의 헌트리 목사, 광주민주화운동 영상을 삽입했던 록밴드 넥스트의 ‘더 파워(The Power)’ 뮤직비디오가 크고 작은 변화를 일으켜왔던 것처럼. 분명한 것은 “‘광장’을 경험하고 변화를 이뤄낸 현 시점이기에”(정철현) ‘택시운전사’가 선사하는 울림을 더 크게 느끼는 관객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오는 8월 2일 극장가에서 그날의 광주를 다시 만날 수 있다.


 


(사진=쇼박스 제공)


손에 땀을 쥐게했던 '택시운전사' 그 장면, 사실이었을까




5.18민주화운동을 외국인 기자 시각에서 촬영해 전 세계에 알린 실화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가장 긴장도를 불러일으키는 장면은 어느 부분일까?

공수부대원들의 조준 사격에 의해 숨졌거나 중상을 입은 동료(주로 학생)들을 데려오기 위해 몸을 던지는 장면일까?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과 택시운전사 김만섭, 통역 학생 구재식(유준열 분)이 보안대(?)
특공조장(최귀화 분)에 쫓길 때일까? 여러 장면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단연 광주를 탈출할
당시 광주 외곽 계엄군의 검문에 걸렸을 때 였을 것이다. 관객들도 붙잡히는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을 것이다.

보내줄듯 하다가 총구를 들이대며 택시에서 내리라고 한 뒤 택시 안을 뒤지고 트렁크를 열라고 했을 때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영화 '택시운전사' 속 한 장면.


(사진=예고편 캡처)



페터 기자와 김만섭 씨가 하 중사(엄태구 분)와 만나는 장면이다.
하 중사는 트렁크를 열며 손이 떨리는 김만섭 씨를 빤히 내려다 본다.
이때부터 낌새를 챈 하 중사는 김만섭 씨가 트렁크를 열자 "이게 뭐냐"고 묻는다.

김만섭은 좀 당황하는 듯한 목소리로 "(감춰놓은 카메라와 비디오 테이프를) 초파일 연등 행사 때 사용하는 것"이라고 둘러댄다.
페터와 김만섭은 긴장하는 빛이 역력하다. 하 중사는 트렁크의 물품들을 이리저리 뒤지다 서울 택시 번호판을 발견하고 직감적으로 이들이 상부로부터 체포하라는 외국인 기자와 택시 기자임을 직감한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린 뒤 트렁크를 닫으며 "보내줘"라고 말한다. 부하 직원이 "위에서 그냥 보내지 말라고 했다"며
체포하자는 눈빛을 보내자 하 중사(엄태구 분)는 "서울 택시번호판도 없고 카메라도 없잖아"라며 "보내줘"라고 재차
 말한다.

 김만섭 씨가 시동을 걸자마자 군용 전화기(일명 딸딸이)가 울리며 외국인 기자와 택시 운전사는 무조건 붙잡으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이때부터 추격전이 펼쳐진다. 황태술(유해진 분) 등 광주 택시 운전사들의 목숨을 건 곡예운전과 체포 특공조와의
 사투가 펼쳐진다.

김만섭, 페터의 탈출에 대한 하 중사의 검문 장면은 영화 감독(장훈)이 극중 긴장도를 높이기 위한 '연출' 같은
느낌을 줬다.
그런데 '사실'이란다.

 5.18 당시 택시를 갖고 실제 시위에 참여해 죽도록 맞고 광주교도소에 수감됐던 장훈명 씨는 "영화 끝부분의 검문소
하사관이 서울 번호판을 적발했으면서도 눈 감아줘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은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광주의 택시 운전사들은 80년 5월 20일 조선대 학생이 공수부대원의 총격에 의해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21일 금남로에서 대규모 차량 시위를 벌였다.

5·18의 분기점이 된 차량 시위로 택시 운전사들의 역할이 컸다는 것은 80년 광주 시민들은(당시 광주 인구 60만 명쯤) 다 안다. 당시의 경향신문 사진을 보면 금남로를 가득 메운 택시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택시 운전사' 영화에서는 다뤄지지 않았다.






영화 '택시운전사' 속 한 장면.


(사진=예고편 캡처)




'택시 운전사' 영화가 좀 잔인해 아이들과 함께 보는 것은 "좀 그렇다"고 말하는 관객들도 있다.
우리 군이 시민을 향해 조준 사격을 하고 동료를 구출하는 시민들을 겨냥해 총을 쏘는 장면이 나오는가 하면, 적십자
병원과 전대 병원 등에는 선혈이 낭자한 희생자들이 널부러져 있는 모습이 생생히 나오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잔혹했던, 시위 학생들을 남녀 가리지 않고 대검으로 찌르고 길 가던 시민을 곤봉으로 무차별로
구타했으며 군홧발로 짓밟는 5.18 당시의 실제 장면은 영화에 없다.
페터 기자가 당시에 광주 시내 곳곳에서 자행된 계엄군의 민간인 학살을 촬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페터 기자는 "그때 광주 사람들의 구호는 싸우다 죽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계엄군들이 오죽 악랄한 짓을 했으면 그런 구호가 나왔을까?     







영화 '택시운전사' 속 한 장면.


(사진=예고편 캡처)



'화려한 휴가'와 '26년' 등 5·18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몇 편있으나 '택시운전사'만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진
 못한 것 같다.
일부 세력의 광주 폄훼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고, 30년이 넘는 세월의 무상함에 의도적인 영화 제작이라는 등의 갖은
 5·18 훼손이 작용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에 '택시운전사'는 외국(독일)인 기자의 시각과 직접 촬영한 영상을 바탕으로 스크린을 채운 것이니 객관성이
그 어떤 5·18영화보다 월등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거기에 1천만 관객 동원의 '믿보송(믿고 보는 송강호)' 송강호가 주연이고 유해진 등이 조연이다.
 '변호인'의 송강호도, '삼시세끼'의 유해진은 온 데 간 데 없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5·18을 백 번 설명한 것보다 '택시운전사' 영화를 한 번 보게 하는 게 나을 수 있다.
 '택시운전사'는 역사 교과서와 학교에서보다 더 생생하게 5·18민주화운동을 가르쳐 줄 것으로 보인다.
작금의 일부 영화들은 문화 차원을 넘어 역사 공부를 시키는 교재와 비슷하다.  

'택시운전사'는 5·18 당시 광주의 휘발유값이 공짜라고 말한다. 진짜 사실이었을까?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실상은 사실이다. "3천원 어치만 넣으려고 했는데 왜 4천원 어치가 넘었느냐"고 큰소릴 치는 택시 운전사(송강호 분)의 언성을 무색하게 만든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준전시 상황임에도 사재기가 전혀 없었다.
광주로 통하는 모든 도로가 계엄군에 의해 차단됐음에도 서로 나눔의 공동체였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광주 시민이
 똘똘 뭉친 것이다.

 양동시장과 대인시장(당시 가장 큰 재래시장)에서는 시민들한테 음식 나눠주고, 버스와 택시 할 것 없이 시민들을
태워줬다.  

'호남인들은 왜 선거 때만 되면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몰표를 주느냐'는 답을 여기서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권력의 핍박에 살아남아야 하기에 의사를 표출할 때 혹시 하나(집단)가 되는 것은 아닐까?
전두환 신군부의 총칼 앞에 맞섰던 그 생존을 위한 저항 의식이 내면 깊숙이 잠재해 있다가 선거 때만 되면 일종의
 트라우마처럼 되살아나는 것은 아닐는지.









<택시운전사>의 스틸컷. 황태술이 만섭과 피터를 집으로 초대해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있다.



<택시운전사>5·18광주민주화운동을 외부인의 시선으로 다룬다. 그 외부인의 성격은 매우 다르다.
만섭(송강호)은 광주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한국인 택시기사이다.
그는 사글세가 밀려 있고, 부인과 사별한 후 홀로 딸을 키우고 있으며, 때로 욕설도 하는 소시민이다.

통금 전까지 광주에 다녀오면 10만원을 준다는 말에 다른 기사의 예약을 가로채기도 한다.
위르겐 힌츠피터(토마스 크레취만)독일 공영방송의 도쿄 특파원이다. 피터는 광주에서 큰 사건이 터졌음을 직감하고 한국에 몰래 잠입한 후, 송강호가 운전하는 택시를 타고 광주로 향한다. <택시운전사>는 두 사람이 함께 겪는 광주의
5월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택시운전사>의 공간은 서울광주서울로 이어진다. 만섭과 피터의 행적이 그러하다.
, 방점은 광주에 찍혀 있다.
그런데 광주,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영화의 접근 방법이 색다르다.

<택시운전사>는 비극의 참상을 고발하거나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래서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나는 사건이나 관객의 감정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려고 애쓰는 장면이 없다.

<택시운전사>는 외부인인 만섭과 피터가 광주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때로는 사실적으로,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
 그들의 따뜻한 정서와 삶의 태도를 그려낸다.
만섭은 그 과정에서 커다란 영혼의 변화를 경험한다. 

<택시운전사>의 주인공이 외부인이라는 점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작품들과 비교하면 그 특성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이 사건은 그동안 문학, 영화, 연극, 웹툰, 미술문화예술의 각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다뤄졌다.

문학작품으로는 1988년에 나온 홍희담의 <깃발>과 최윤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를 비롯해 임철우의
<봄날>과 정찬의 <슬픔의 노래>, 한강의 <소년이 온다> 등이 있다. 영화로는 1989년 제작된 독립영화
 <! 꿈의 나라>부터 장선우의 <꽃잎>, 이창동의 <박하사탕>, 김지훈의 <화려한 휴가> 등을 꼽을 수 있다.

 강풀의 웹툰 <26>은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작품들은 대부분 광주 시민이나 진압군, 피해자의 자녀와 같이
 5·18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인물들을 다룬다.


<택시운전사>의 두 외부인은 5·18과 직접 관련이 없다.
서울에 사는 소시민과 외국인 기자라는 설정은 <택시운전사>가 뭔가 새로운 시각을 보여줄 것이라는 점을 예고한다. 이러한 예상과 기대는 운전기사 만섭에 의해 구현된다.

만섭은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이자 민중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19805월을 살아가면서 광주에 대해 무지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만섭은 현장을 직접 체험하고 나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택시운전사>의 특징이자 미덕 중 하나는 담담함이다. 깃발 들고 소리 높여 무언가를 주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에는 클로즈업이나 격앙된 음악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광주의 비극을 상징하는 금남로와 병원 장면들이 대표적이다.

최루탄과 총알이 날아다니고, 피를 흘리는 부상자와 사망자가 발생하는 현장의 참상과 긴박함을 전달하되, 자극적인
장면 연출이나 인물의 감정 과잉을 최대한 자제한다. <택시운전사>는 인물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함으로써 비극성을 강조하는 전략을 취한다.

태술(류해진)을 비롯한 광주의 택시운전사들과 대학가요제에 나가고 싶어서 대학에 갔다는 구재식(류준열)의 인간미를 유머와 함께 전달하는 식이다. ()을 악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선()을 보여줌으로써 악의 추악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택시운전사>의 이러한 특징은 주인공이 외부인이라는 점과 맞물려 있다.
 그가 광주 시민이었다면, 그래서 그의 가족 중 누군가가 다치고 죽었다면, 영화는 감정적이고 즉물적으로 현장의
비극을 처리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경쾌한 리듬의 가요인 <단발머리><3한강교>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광주의 택시운전사 황태술이 두 외부인을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잠시나마 흥겨운 시간을 갖는 여유도 일정 부분은 외부인 주인공이라는 설정으로 인해 가능하다.

주먹밥을 나눠주고 박수를 쳐주는 광주 시민들의 선량함을 강조하는 에피소드도, 구재식이 우리도 (진압군이)우리한테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장면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광주의 택시기사들이 보여준 행동은 상징적이다.
그들은 만섭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주요 인물들이다.
 그들은 만섭에게 택시기사로서의 직업의식, 나아가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에 대해 깨우쳐준다.

 그들은 피터와 말다툼하는 김만섭에게 돈을 받았으면 손님을 목적지까지 모셔다 드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택시기사의 당연한 임무이자 도리이다.

이미 10만원을 받은 만섭의 임무는 피터를 서울까지 무사히 데려다주는 것이다.
만섭이 서울의 딸에게 전화를 걸어 손님을 두고 왔어.라고 말하며 울먹이는 장면은 그래서 인상적이다.
이 에피소드는 택시기사광주 시민대한민국 국민사람의 문제로 확장된다. 

<택시운전사>5·18광주민주화운동을 정치적·
역사적인 시각보다 윤리 혹은 도리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메시지는 만섭이라는 외부인이 광주를 체험한 후 새로운 인물로 탄생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이때의 광주5·18이라는 현대사의 비극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참혹한 사건을 겪는 그 도시 사람들의 윤리 의식과 생활 태도를 포함한다.
 아니, 후자에 더 초점을 맞춘다.
만섭은 광주에서 엄청난 비극을 겪는 와중에서도 인간의 도리와 직업윤리, 따스한 인간미와 유머를 잃지 않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만섭의 눈물은 그가 황태술이나 구재식과 정신적으로 교감했으며, 그들의 말과 행동과 삶의 태도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택시운전사>의 흥행도 이러한 맥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영화의 흥행 성공은 관객들이 <택시운전사>의 메시지에 동의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거꾸로 말하면, <택시운전사>의 광주 사람들이 보여준 미덕이 2017년의 한국사회에 결핍돼 있으며, <택시운전사>가 그 결핍을 채워주고 있는 것이다.

 , 만섭은 우리 시대의 대중들과 동일시할 수 있는 인물이다.
 관객들은 만섭에게 감정이입하면서 현대사회에서 실종된 윤리와 도리, 인간미를 간접 체험하고, 이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러한 현상은 <명량>의 흥행과 관련해서 이순신의 리더십이 사회적 이슈가 됐던 것과 비슷하다.
 <명량>은 대중들이 기다리던 군림하지 않는 리더, 솔선수범하고 희생하는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택시운전사>의 영화적 완성도나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인물들은 다소 전형적이고, 극적인 긴장감이 떨어지고, 에피소드들도 그다지 새롭지 않다.
영화의 또 다른 한 축인 독일 기자 피터를 생생한 인물로 형상화하지 못한 점도 아쉽다. 특히 후반부의 탈출 장면들은 앞부분의 톤과 너무 달라서 생뚱맞은 느낌마저 든다. 꼭 필요한 장면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그렇다고 해도 <택시운전사>는 전체적으로 소재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진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송강호는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인간이 가장 기본적 도리를 지키며 살아야한다는 마음이 모여 지금의
이런 세상도 온 게 아닌가.

우리 영화는 고발의 개념보다 현대사에서 지울 수 없는 아픔을 우리 국민들이 어떻게 극복해 왔는지에 초점을
맞췄다.라고 말했다.
 만섭은 광주에서 그것을 배웠다. 관객들은 <택시운전사>에서 그 미덕을 배우고 있는 중인 것 같다. 



임정식 / 영화평론가












택시운전사송강호 광주 시민께 자그마한 위로되길



 '택시운전사'가 광주 무대인사를 성료했다. 열띤 환호와 뜨거운 감동으로 가득했다.
영화 '택시운전사'(감독 장훈)729일 광주에서 진행된 무대인사를 끝으로 렛츠 고 투게더전국일주 시사회를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택시운전사'의 배경이자, 주요 촬영지인 광주 지역에서 진행된 이번 무대인사에는 실제 광주

 택시운전사부터 광주 학생들도 참석해 배우들은 물론, 관객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다.


장훈 감독은 영화 개봉 전 마지막 무대 인사인데다가, 광주 지역의 관객들 앞에 서니 더 떨리고 긴장되는 것 같다며 벅찬 소감을 밝혔다.

서울 택시운전사 김만섭역의 송강호는 광주 시민분들께 무대인사로 인사드리게 되어서 영광스럽다.

그 때의 아픔과 시련을 극복했던 마음을 어떻게 진심 어리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이 영화가 자그마한 위로가 되면 좋겠고, 마음 속 깊이 남는 영화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라고 진솔한 마음을

관객들에게 전했다.

이어 광주의 택시운전사 황태술역으로 당시 광주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실감나게 표현하며 극에 풍성함을 더한

 유해진은 무대에 오를 때 보니까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는 분들이 계시더라.

 영화를 잘 봐주신 것 같아서 보람을 느낀다라며 진심 어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광주 대학생 구재식역의 류준열은 뜨거운 마음으로 찍은 영화인데, 여러분들에게도 뜨거운 감동이 전해졌길

바란다며 영화에 대한 애정 어린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만섭피터를 쫓으며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은 사복 조장역을 맡은 최귀화는 첫 인사부터

죄송합니다라며 센스 넘치는 멘트로 현장을 더욱 뜨겁게 만들었고, 뜨거운 여름에 뜨거운 감정으로 촬영한

 영화다. 잘 부탁드린다는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한편 '택시운전사>'19805, 서울의 택시운전사 만섭이 통금시간 전까지 광주에 다녀오면 큰 돈을 준다는 말에, 독일기자 피터를 태우고 아무것도 모른 채 광주로 가게 된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2017

82일 개봉 예정이다.

(사진=쇼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