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언론과 시사

한중수교 25주년 특집] 가깝고도 먼 한중(상)-상전벽해의 양국 관계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7월 6일 오전(현지시간) 베를린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악수하며 미소 짓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중수교 25주년 특집] 가깝고도 먼 한중(상)-상전벽해의 양국 관계




아시아투데이 홍순도 베이징 특파원=한국과 중국은 프랑스나 독일처럼 일의대수(一衣帶水·가까운 이웃)의 관계에

있다고 단언해도 좋다.

비록 중간에 북한이 끼어 있으나 광의의 개념으로 보면 진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이러니 24일로 한중 수교 25주년을 맞는 상황에서 관계가 엄청나게 발전하지 않았다면 이상하다고 해야 한다.

공식적인 통계만 놓고 봐도 그렇다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다.

코트라 베이징 무역관이 20일 밝힌 바에 따르면 우선 교역 규모가 지난 25년 사이에 33배나 증가했다.

수교 첫해인 1992년에는 64억 달러에 불과한 양국 교역액이 지난해 2114억 달러에 이른 것. 이에 따라 중국은 한국의 가장 큰 교역 상대국으로 부상하게 됐다.

무역 수지는 압도적으로 한국이 우위에 있다.

지난해의 경우 375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이는 한국의 전체 무역 흑자 892억 달러의 42%로 앞으로도 상당 기간 변함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계속 한국의 최대 무역 흑자국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한 것이다. 당연히 대중 수출 의존도는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2000년 10.7%에서 지난해에는 무려 25.1%로 늘어났다.

이에 반해 중국의 대한 수출 의존도는 4.5%에 그쳤다.

중국의 무역 규모가 워낙 큰 탓에 점유율이 미미해 보이기는 하나 결코 적다고 할 수는 없다. 



인적 교류의 폭증 역시 놀랍기만 하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양국을 왕래한 국민의 수가 연 1100만 명을 헤아린다.

 한국에 입국한 중국인이 795만 명, 중국을 방문한 한국인이 365만 명이었다. 수

교 당시와 비교할 경우 무려 120배나 증가했다.

이 정도 되면 상전벽해라는 말조차 무색하다고 해야 한다.  


중국 곳곳에 코리아타운이 형성되는 것은 이로 보면 정상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베이징 차오양(朝陽)구 왕징(望京)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지난 세기 말에 시작된 대대적 개발과 함께 한국 교민들이 몰려들면서 자연스럽게 타운이 형성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 5만여 명 정도의 교민이 각종 분야에 종사하면서 삶을 이어가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외에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의 시타(西塔),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의 청양(城陽), 상하이(上海)의 구베이

(古北) 등 역시 중국 내 대표적인 한국인 커뮤니티로 손색이 없다.


이에 대해 베이징중소기업협의회 회장을 지낸 박용희 디에이건축사무소 베이징 지사장은 “지금은 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사드) 사태로 인해 교민 사회가 축소되고 있으나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80만 명의 한국인이 체류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제2의 신라방 시대가 열렸다는 성급한 얘기도 없지 않았다”면서 지난 25년 동안 급성정한 한국인 커뮤니티의 위용에 대해 설명했다. 

이렇다 보니 성공 신화 사례도 적지 않게 탄생했다.

대표적으로 이숙순 대일한일국제종묘유한공사 사장의 케이스를 꼽을 수 있다.

중국에서는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종묘 사업으로 대박을 터뜨렸다.


이외에 의료기 사업의 대박으로 한때 ‘포브스’ 중국판의 부호 명단에도 오른 정효권 전 재중한국인회 회장,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의 한식당 체인 파파스의 이기영 사장, 울시 중국본사의 배영윤 사장 등 역시 성공 신화를 쓴 한국인으로 손색이 없다.


특히 배영윤 사장은 한때 유럽의 여러 브랜드를 중국에 론칭, 의류 재벌이 무색할 정도의 큰 사업을 벌인 바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을 엘도라도로 생각한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것은

 다 이유가 있지 않았나 싶다.



mhhong1@asiatoday.co.kr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연합뉴스 자료이미지]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연합뉴스 자료이미지]


양국관계 현재와 미래…전문가들에게 듣는다



(베이징·상하이·서울=연합뉴스) 정주호 김진방 특파원, 백나리 기자 = 한중 양국 전문가들은 지난 25년간 양국관계가 경제를 필두로 여러 분야에서 눈부시게 발전했다고 평가하면서 주한미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불거진 갈등 해소를 당면과제로 꼽았다.


◇ "짧은 시간에 엄청난 성과…가장 큰 동력은 경제 교류"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 원장은 "1992년 당시 한중수교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웠는데 북방외교에 힘입어 전격 수교할 수 있었다"면서 "한국 외교사에 남을 중요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윤 전 원장은 "25년간 서로 '윈윈'이 되는 수교였다"면서 "한국이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본 것은 물론 중국도 톈안먼

사태 등으로 서방에 고립돼 있을 때 한국과의 관계가 국제사회로 나아가는 교량 역할을 했고 한국 경제가 중국에

중요한 모델이 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5년의 성과에 대해서는 중국 현지의 전문가도 같은 의견이었다.

한반도 전문가인 진징이(金景一) 중국 베이징대 교수는 "중국은 개혁 개방 이후 한국을 발전 모델로 삼았고 양국관계

발전의 가장 큰 동력은 경제 교류였다"며 "양국관계의 발전만 두고 본다면 짧은 시간에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고 이는 수교 이후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라고 했다.


◇ "정치군사안보 갈등, 경제·사회 압도 상황될 수도"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드 배치를 둘러싼 갈등이 지금은 물론 앞으로의 한중관계에 상당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경제·사회문화·인적 교류 분야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정치안보 분야의 벽을 넘지

못해 한중관계가 냉각된 상황이고 향후에도 정치·군사·안보적 갈등이 경제나 사회문화 분야를 압도해버리는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는 "사드 배치가 지금처럼 강행되면 상당 기간 한중이 진통을 겪을 것"이라면서 "중국 입장에서는 유일한 해결책은 사드 철회밖에는 없다고 보고 있고 한국이 '사드는 북한을 겨냥한 것'이라는 논리로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중국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면서 "사드로 인해 한중 간 신뢰가 깨졌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사드 문제는 계속해서 다른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미중 패권 갈등, 한국 움직일 공간 줄어들고 있어"

한국의 전문가들은 사드 문제가 단지 한중 간의 문제가 아니라 미중 간 패권경쟁의 산물인 만큼 우리 정부가 세밀한

 접근 전략을 강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사드배치처럼 미중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한국의 입지를 좁히는 사안이 추가로 생겨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김한권 교수는 "한국이 중국의 군사안보 관련 우려를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동시에 사드 배치의 필요성을 중국에 이해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한중 간 갈등 요인이 다자간 전략적 이해관계 속에서 표출되는 만큼 다자간, 특히

미중 경쟁구도에서 갈등 요인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사드 문제는 미국과 북한까지 엮인 문제라는 딜레마가 있는데 한미동맹을 유지하는

 동시에 중국과 지속적인 소통을 하며 격차를 줄여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의 역내 패권 갈등이 이어지면서 한국이 움직일 공간이 줄어들고 있다"면서 "앞으로 사드뿐만 아니라 (미중 갈등이 걸린) 이런 문제가 더 생길 것이고 미중 간 갈등 고조시 우리가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 "한중, 냉정하게 생각하며 교류 심화시켜야"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에 속도를 내면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중국의 협조가 더욱 중요해졌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윤덕민 전 원장은 "북핵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중국의 협력은 중요하고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며 "한국과 중국

모두 서로 냉정하게 생각하면서 교류를 심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중국 푸단(復旦)대 한국연구센터 주임을 지낸 스위안화(石源華) 석좌교수는 "한중간 밀접한 협력은 한국이 선진 강국

으로 거듭나는 데는 물론 남북 화해와 한반도 정세의 안정에도 일조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스위안화 석좌교수는 "한국은 특히 독립·자주의 외교정책으로 자국의 이익 관점에서 출발해 판단해야지 미국을 무조건 추종해서는 안된다"면서 "이것이 한중관계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 발사대[연합뉴스 자료사진]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 발사대[연합뉴스 자료사진]


◇ "25년은 상대방 이해에 부족…갈등·충돌, 조정·융합 과정 거칠것"

중국의 전문가들은 사드 갈등의 해법이 '중단'이나 '철회'밖에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한중이 2008년

 정상회담을 통해 합의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위안화 푸단대 석좌교수는 "중국의 대한, 한국의 대중 정책이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면서 "양국이 수교 이래 거둔

성과와 그간의 '밀월기'를 소중히 여기고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장기이익에 부합시켜 지속 발전시키는 데 공동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진심으로 한중관계가 곤경에서 벗어나길 기대한다"며 "한중협력이 양국 발전의 가속장치이자 지역 및 세계평화의 안정장치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도 "냉전을 거치며 장기간 단절된 한국과 중국에 25년은 상대방을 (충분히) 이해하는 데는 부족한 시간"이라면서 "갈등을 빚고 해결하는 과정은 양국관계에서 당연한 과정일 뿐이고 한중이 갈등과 충돌을 통해 서로

조정, 융합되는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jooho@yna.co.kr

chinakim@yna.co.kr





한중수교 공동성명 서명



한중수교 공동성명 서명1992년 8월 24일 이상옥 당시 외무장관과 첸치천
중국 외교부장이 한중수교 공동성명에 서명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중수교 25년] 상전벽해 관계 발전…'최대위기' 사드로 시험대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한국과 중국이 오는 24일로 수교 25주년을 맞는다.

수교 후 지난 사반세기 동안 양국 관계는 그야말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6·25전쟁 때 수많은 희생자를 내가며싸웠고,그 이후 40년 가까웠던 냉전의 세월을 뒤로 하고 전격적으로 단행된

1992년 8월 국교 수립은 한국 현대사에 획을 긋는 역사의 한 페이지였다.

수교 첫해인 1992년 64억 달러였던 양국 교역 규모는 2016년 2천113억9천만 달러(수출 1천244억3천만 달러, 수입

869억6천만 달러)로 약 33배 늘어났다.

중국은 우리의 최대 수출·수입국이자 부동의 최대 교역 대상국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은 작년 중국의 수입 1위국이자 수출 3위국이 됐다.


한국관광공사 통계에 따르면 수교 이듬해인 1993년 양국민의 왕래가 총 15만2천명이던 것이 2015년 약 69배인

 1천42만8천 명(방중 444만4천명, 방한 598만4천명)으로 증가했다.


작년 4월 기준으로 한국내 중국 유학생과 중국내 한국 유학생은 각각 6만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계됐고, 항공편

(올해 7월 10일 기준)은 한국측 74개 노선, 중국측 81개 노선에서 주당 1천170여 차례가 운항되며 양국민을 실어

나르고 있다. 

 

이런 경제적 상호 의존과 인적 교류를 발판으로 양국 정부는 1998년 '협력동반자'에서 2003년 '전면적 협력동반자'를

거쳐 2008년 '전략적 협력동반자'로 양국 관계를 격상해 규정하기도 했다.


2000년 마늘 분쟁을 비롯한 무역 관련 갈등과 2000년대 초중반 동북공정을 포함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논란 등

일부 사건으로 한때 삐걱대기도 했지만 튼튼한 경제교류의 기반이 있었기에 양국 관계는 뿌리째 흔들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의 국가전략이 도광양회(韜光養晦·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운다)에서 대국굴기(大國堀起, 대국으로

우뚝 선다는 뜻)로 전환하고,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미국과 중국 간의 전략적 패권 경쟁이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는

과정에서 한중관계는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다.


수교 25주년을 맞이하는 한중관계가 기로에 서 있다는 평가도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를 둘러싼 최근 심각한 갈등 양상은 양국 관계가 표면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극복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음을 보여줬다.


그동안 잠복해있던 지정학적 갈등 요인들이 북핵 위기와 미중 간 전략경쟁 와중에 수면위로 올라오면서 한중관계는

 이제 '본질'과 대면하고 있는 셈인지도 모른다.

사드 갈등은 수교 25주년을 맞이하고도 양국 정부가 공동의 기념행사도 갖지 못할 처지를 만들고 있다.


한중관계를 잘 아는 외교 소식통은 "사드에 대해 한국은 안보 문제로 생각하는 반면, 중국은 미중 전략경쟁의 틀에서

바라보고 있어 기본적으로 접점 찾기가 어렵다"며 "한국도, 중국도 서로 상대에 대해 과도한 기대를 걸었다가 사드를

통해 '민낯'을 보게 된 것"이라고 현 상황을 분석했다.







8월 6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 모습. 중국인 관광객들이 줄어들면서
무척 한산한 모습이다.

 2017.8.6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중관계가 수교 이후 양적으로 급성장하는 동안 북중관계는 상대적으로 큰 진전은 없었다.

2012년 김정은 집권 이후 5년 넘게 지나도록 북중 정상회담이 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은 북중관계를 대변해 준다.

그러나 북한으로의 원유공급을 차단하려는 미국의 요구에 중국이 완강히 반대하는 상황은 북중관계의 이면 또한

보여주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정세가 급격히 불안해지는 것보다는 핵문제가 신경쓰이더라도 북한이라는 완충지대가 그대로 남아있어 주는 것이 이롭다고 볼 수 있으며, 미중간 전략경쟁이 심화할수록  인식은 더 굳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리수용(왼쪽)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6월 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대화하는 모습.

[신화=연합뉴스 자료사진]


현재의 사드 갈등을 극복하고 수교 25주년을 맞는 한중관계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것은 한국 외교의 당면한 최대

과제 중 하나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은 "공개적 언쟁보다는 비공개적 방식을 통해 소통을 강화하면서 서로 이익의 공통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며 "우리 나름의 외교·안보 기조를 세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미, 한중, 한러 간 관계가 배타적이지 않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현재의 사드 갈등은 마늘분쟁이나 동북공정과는 다른, 다자(多者)간의 문제이자 미중 전략경쟁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로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다"며 "전시작전 통제권 환수,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 참여 여부, 한미일 안보협력체제에 대한 동참 여부 등의 향배에 따라 사드 배치 후로도 한중이 출구를 찾을 수

있을지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중국이 주시하는 이들 현안에 대해 한국이 국익에 기반해 입장을 명확히 가져가야 한다"며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한다면 미중 모두로부터 받는 압박이 커질 것이고 북한은 그런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위안화 푸단대 석좌교수는 "중국의 대한, 한국의 대중 정책이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면서 "양국이 수교 이래 거둔

성과와 그간의 '밀월기'를 소중히 여기고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장기이익에 부합시켜 지속 발전시키는 데 공동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국 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양국민 간의 이해와 공감을 확대하는 실질적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화교 전문가인 인천대 중국학술원 이정희 교수는 "이웃인 한중 간에는 언제든 문제가 터질 수 있는데, 그 문제를 작게 보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민간 교류"라며 "한국 내 화교, 중국에 사는 한국인에 대해 서로 많은 이해와 배려를 해줄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jhcho@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베이징 한국인 밀집 거주지역 왕징의 '한국성'으로 불리는 건물에는 한국 식당과 태권도 학원, 휴대전화 가게 등이 모여 있어, 한국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간판을 정비하면서 큰 글씨는 모두 중국어로 대체됐다. 이 건물의 다른 이름인 '한식 미식성' 간판은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거셌던 지난 2월 '한식'이란 단어를 떼어내 '미식성'이라는 이름만 남았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oscar@hani.co.kr


베이징 한국인 밀집 거주지역 왕징의 '한국성'으로 불리는 건물에는 한국 식당과 태권도 학원,
휴대전화 가게 등이 모여 있어, 한국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간판을 정비하면서 큰 글씨는 모두 중국어로 대체됐다. 이 건물의 다른 이름인
 '한식 미식성' 간판은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거셌던 지난 2월 '한식'이란 단어를
떼어내 '미식성'이라는 이름만 남았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oscar@hani.co.kr          





한-중 수교 25돌] 베이징 '코리아타운'의 눈물



① 사드 직격탄 맞은 왕징
경쟁력 악화 속 불매운동 덮쳐
한식당 매출 30% 이상 줄고
여행·콘텐츠 업계도 '설상가상'



배우 ㅅ(49)씨는 올해 2월17일 유명 요리사와 함께 중국 베이징에 식당을 열었다.

주요리는 한식, 전채와 후식은 양식·일식을 곁들인 대형 고급 식당이었다. 그러나 석달을 채우지 못하고 지난 5월 문을 닫았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와 관련해 한국을 겨냥한 중국의 불매운동이 극성일 때였다.


베이징에서 가장 오래된 한국 식당으로 꼽히는 ㅅ식당도 큰 타격을 입었다.

당시 중국 손님들은 한국인 지배인을 불러다 사드 문제로 시비를 걸었다.

단체 손님이 예약을 하고 와서는 “왜 한식당이냐”고 자기들끼리 다투다 죄다 가버린 일도 있었다.


베이징의 한국 외식업계는 올해 들어 한국 식당 매출이 30%가량 줄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심한 곳은 70% 가까이 매출이 떨어진 식당도 있다고 한다.

 10여년 전만 해도 한국 식당 손님은 한국인 위주였는데 이후 중국인 비중이 70~80%에 이르게 돼 불매운동의 충격이 더욱 컸다.


왕징 한국인 사회의 한숨은 오는 24일 수교 25년을 맞는 한-중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베이징의 한국

식당들이 어려움을 겪는 사태가 처음은 아니다.

1995년부터 유학생 밀집 지역인 우다오커우에서 ‘곰집’을 운영해온 김용수(49)씨는 “초기에 베이징에 개업했던 한국

 식당이나 슈퍼마켓 가운데 97%는 실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개업 초기 동네 불량배들이 찾아와 ‘자릿세’를 요구했는데 다행히 충돌 없이 마무리지었던 아찔한 경험이 있다. 주변 식당들이 하루아침에 철거되는 와중에 힘겹게 자리를 지킨 기억도 있다.

성공의 약속은 없었지만, 성공을 좇는 역사는 이어졌다. 중국 외교부 산하 자문기구인 중국아시아경제발전협회

취안순지 회장은 “그 무렵 한인들은 누군가 실패하고 돌아가면, 다른 누군가가 다시 그 자리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김용수씨는 “초기에는 서비스 노하우, 인테리어 등에서 한국 식당의 수준이 중국 식당과 격차가 컸다”고 회상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형성된 것이 베이징의 다른 외국인 공동체에서 찾기 힘든 ‘한국인 밀집 주거지역’이었다.


 1997~1998년 외환위기 무렵 한국인 주재원들이 시내 집값을 감당할 수 없어 외곽으로 쫓겨나듯 몰려든 베이징 동북부의 ‘뉴타운’ 왕징, 그리고 베이징어언대를 비롯해 베이징대, 칭화대 등 주요 대학들이 몰려 있어 유학생들이 모여든

서북부의 ‘자취촌’ 우다오커우는, 한글 간판의 세례를 받으면서 명실공히 ‘코리아타운’화했다.


다만, 사드 후폭풍을 맞기 전에도 최근 몇년간 한인 사회의 고민은 깊어가고 있었다. 우선 베이징 부동산 가격이 무섭게 상승했다. 김용수씨는 “한국 식당 주인들 중에 건물주는 아무도 없다. 상가는 대부분 집체소유여서 좀처럼 매물이

없다”고 말했다.

인건비도 올랐다.


곰집 종업원 월급은 1995년과 지금을 비교하면 7.5배 차이가 난다. 한식의 독특함을 내세울 환경도 달라졌다.

김씨는 “중국 소비자 입장에선 한식이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음식이 됐다. 조선족 동포들과 경쟁하다 보니 한국

식당이 ‘오리지널’을 강조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사드 피해’는 중국 시장에서 이처럼 한국 기업들의 환경이 악화되는 와중에 일어난 ‘설상가상’의 타격이었다.

여행업계는 단체관광 중단으로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사드 이전’부터 중국 항공사들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미주·유럽·동남아 직항편을 늘리는 변화에 고전하고 있었다.

전자상거래 발전에 기반해 급성장한 온라인 기반 중국여행사들 때문에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도 큰 숙제였다.


한류 콘텐츠 업계가 이른바 ‘한한령’ 탓에 큰 피해를 입던 시점도, 외국 사상의 침투를 백안시하는 중국 당국이 언제

손을 쓸지 모른다는 관측이 나오던 때였다.

 ‘한류’가 결국엔 중국의 자국 콘텐츠 성장을 위한 디딤돌에 그칠 거란 우려도 있었다.


사드 이후 한국산 자동차의 난항은 전기차 등 새로운 요소와 더불어 급격히 재편되는 중국 자동차 시장의 변화, 중국

국내 업체들이 부쩍 급성장한 상황과 떼어놓을 수 없다.

한국이 오랫동안 강세를 보여온 스마트폰 업계도 사드 사태 한참 전부터 중국 업체들의 도전으로 고전하고 있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현재의 사드 국면이 어떤 식으로 해소가 된다 해도 예전처럼 희망을 갖기는 쉽지 않을 거란

비관이 베이징의 한인 사회 내에 팽배해 있다.

한인들의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코리아타운’은 도로 중국화하고 있다. 2011년 베이징시 당국이 채택한 ‘대왕징 과학기술상무신구’ 계획에 따라 왕징의 동북쪽엔 알리바바, 메이퇀(배달), 우버, 다중뎬핑(식당 등 평가공유 사이트),

 셰청(씨트립·여행예약), 치후360(보안) 등 중국의 대표적 정보기술(IT) 기업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왕징의 한 부동산업체 직원은 “6~9월이 한창 성수기인데, 집 구하려는 한국인 손님은 작년에 견줘 절반쯤 줄었다”며 “한국 손님들은 오히려 온 지 얼마 안 돼서 갑자기 귀국하게 됐다는 경우가 많은데, 그 자리를 중국인 손님이 메우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은 아직 주재원들을 줄였다는 이야기가 없으니,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먼저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한국인을 상대로 운영되던 슈퍼마켓, 학원 등도 사람이 줄고 있다.

많은 한국인들은 임대료가 좀 더 저렴한 순이, 옌자오 등 외곽으로 이주했다.


지난해 말 기준 중국 공안이 파악한 6개월 이상 베이징 거주 한국인 수가 약 2만명, 단기 방문자를 고려해도 전체

 6만명을 넘지 않는다.

한때 회자됐던 ‘베이징 10만 한인’ 시대는 옛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한국식(한식)이라는 글자가 사라지고 미식성이란 간판만 남은 왕징 한국성 건물.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한국식(한식)이라는 글자가 사라지고 미식성이란 간판만 남은 왕징 한국성 건물.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1994년 중국에 와 줄곧 베이징에 살고 있는 서만교(46) 포스코ICT 중국법인장은 한-중 관계를 남녀관계에 빗대며,

“연애하던 시절로 돌아가는 부부가 어디 있느냐”라고 말했다.

서 법인장은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첫 10년은 처음 만난 남녀처럼 서로 잘 모르면서도 우호적으로 대하며 알아가던 ‘탐색기’였다면, 이후 10년은 양국관계가 활활 타오르던 ‘밀월기’였다고 묘사했다.


그리고 지난 5년은 잠재됐던 문제들을 깨닫기 시작하는 ‘관계 재정립기’이고 앞으로도 당분간 이런 상태가 계속될

 전망인 만큼, 이전으로 돌아가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사드 배치라는 난제를 맞닥뜨린 가운데 힘겹게 이뤄지는 ‘관계 재정립’ 속에서 한국인 사회의 성찰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제안들도 나온다.


서만교 법인장은 “중국의 한인 사회는 25년 전 한국인이 하나도 없었던 상황에서 너무 빠른 시간 안에 지금 규모까지

성장했다”며 “앞으로는 그동안 미뤄왔던 중국 사회와의 융합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사회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현지화해 외부 영향을 최소화하자는 제안이다.


베이징한국중소기업협회 수석부회장(외식분과)을 맡고 있는 김용수씨는 “큰 도시에서 크게 시작하는 것만 볼 게

아니라, 작은 도시에서 작게 시작해서 예의 바르게 한다면 아직 중국엔 기회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oscar@hani.co.kr



유커







문재인 대통령이 6일 (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페이스북) 2017.7.6/뉴스1





중국과 한국

중국은 1949년 10월 정권을 수립한 이후 모든 친미국가를 적대국가로 간주하는 외교정책을 고수해왔다.

그러므로 한국과의 외교는 단절되었으며, 북한 위주로 한반도 정책을 결정했다.

1973년 한국은 대공산권 문호개방을 원칙으로 하는 6·23선언을 발표하여 중국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중국은 1974년 1월 한일대륙붕협정을 체결하는 등 한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78년 말 중국 제11기 3차 전국인민대표대회 이후 개혁실용주의 노선과 대외개방정책이 적극 추진되자 중국의

대외정책에는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어 1979년 1월 덩샤오핑은 한국과의 우호관계조성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한 그해 7월 구체적으로 한국과 체육 교류의 용의가 있음을 나타냈다.

1980년 4월 대한민국 올림픽 위원회(KOC)에 대해 언급했다.


 1982년 8월에는 베이징에서 개최된 세계식량위원회(WFP) 세미나에 한국이 참가했다. 한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최초의 접촉은 1983년 5월 중국의 민항기가 춘천 미군기지에 불시착하면서 이루어졌다.

중국은 중국 당국 관계자를 파견하여 사태수습을 위한 교섭을 벌였다.


이는 국제민항기구 또는 제3국을 통한 간접적인 해결방법을 무시한 것으로, 중국측은 이때 대한민국이라는 정식국호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이 일이 있은 후 중국과 한국의 교류는 비정치적인 영역에서 확대되기 시작했다.


1990년까지의 접촉은 주로 체육·관광·친척방문 등의 교류가 주류를 이루었다.

 1984년 2월 중국 데이비스컵 테니스 대회를 위해 한국 선수가 최초로 중국을 방문했다.

1984년 3월 자오쯔양 총리는 친척상호교류를 허용했다.


그후 두 나라 이산가족들의 초청방문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1984년 4월 중국 농구선수단이 한국을 방문했으며, 같은 해 10월 상하이에서 개최된 아시아 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

한국 선수단이 참가했다.


그후 두 나라는 체육교류를 통해 상호 접촉을 확대시켰다.

 중국은 1986년 9월 20일 서울 아시아 경기대회에 참가했으며, 1988년 9월 17일에는 서울 올림픽 대회에 참가했다.

한국은 1990년 9월 22일 베이징 아시아 경기대회에 참가했다. 경제교류도 활발히 전개되어 1985년 한국은행은 대중국 투자를 허가했으며, 1988년 10월 중국 광저우 교역회는 한국기업을 초청했다.


1989년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 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했으며, 그해 7월에는 베이징 국제박람회에 참가했다.

1988년 10월 한국은 중국 관광금지를 해제했으며, 1989년 6월 한중 해운 정기 직항로가 개통되었다. 같은 해 8월

중국은 한국의 상하이 취항을 허가했으며, 1990년 중국행 우편 직송이 개시되었다.


한국은 중국과의 외교관계 수립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1990년 중국은 한국 기업의 베이징 사무소 설치를 허가했고, 1990년 10월 20일 한중 무역대표부 상호설치합의서에 조인했다. 1991년에 들어서 두 나라의 관계는 한층 발전했다.

 그해 1월부터 중국은 한국 기자에게 비자를 발급해주었으며, 1월 30일 KOTRA는 베이징에 대표부를 개설했다.


그해 4월 2일 중국 류화추[劉華秋]외교부 부부장이 이상옥 외무장관과 회담을 가졌다.

같은해 10월 최초로 한중 외무장관회담을 가졌으며, 11월 제2차 외무장관회담이 있었다.

 1992년 2월 민간차원의 한중 무역협정이 발효되었으며, 4월 제3차 외무장관회담이 있었다.


그동안 간접교역과 여러 방면에 걸친 교류의 확대는 양국의 관계를 개선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공식적·정치적인 관계 수립에 있어서는 제약이 많았으며, 중국과 기존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북한이 한국과 중국간의 관계가 획기적으로 발전하는 데 주요방해요인으로 작용했다.


1992년 8월 24일 양국은 베이징에서 한중 수교 공동성명에 서명함으로써 두 나라 관계의 새 장을 열었다. 성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중 수교 공동성명

① 대한민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양국 국민의 이익과 염원에 부응하여 1992년 8월 24일자로 상호 승인하고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기로 결정한다.

② UN 헌장의 원칙들과 주권 및 영토보전의 상호 존중, 상호 불가침, 상호 내정불간섭, 평등·호혜·평화공존의 원칙에

입각하여 항구적인 선린우호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에 합의한다.


③ 대한민국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하며 오직 하나의 중국만이 있고 타이완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중국의 입장을 존중한다.

④ 양국간의 수교가 한반도 정세의 완화와 안정 그리고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확신한다.


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한반도가 조기에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이 한민족의 염원임을 존중하고 한반도가 한민족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지지한다.

⑥ 1961년의 외교관계에 관한 비협약에 따라 각자의 수도에 상대방의 대사관 개설과 공무수행이 필요한 모든 지원을

 제공하고 빠른 시일 내에 대사를 상호 교환하기로 합의한다.


한국과 중국 양국이 공동 서명해 발효시킨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간의 외교관계수립에 관한 대동성명'은 반세기에 걸친 양국간 반목의 역사를 끝맺는 역사적인 문서로 평가받았다.


실제적으로 한중 수교는 양국간 경제협력이 정상적인 방향으로 확대·발전되는 중대한 전환점으로 작용해 교역·투자·

산업협력 등 전 분야에 걸쳐 큰 발전이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중국은 짧은 시간 안에 한국의 주요 교역대상국으로

완전히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수교 3일 후인 8월 27일 주중 한국대사관과 주한 중국대사관이 각각 개설되었고, 그해 9월 27일 노태우 대통령이 중국을 공식방문해 양상쿤[楊尙昆]국가주석과 제1차 한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해 10월 30일 정부간 무역협정이 체결

되었으며, 12월 4일에 투자보장협정이 이루어졌다.


1993년 6월 26일 해상운송협정이 체결되었고 그해 11월 19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참석을 계기로

김영삼 대통령과 장쩌민 국가주석 간의 제2차 한중 정상회담이 시애틀에서 이루어졌다.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의

공식 방중으로 제3차 한중 정상회담과 한중 외무장관회담이 열렸으며, 그해 6월 6일에 한중 산업협력위원회 설치협정이 체결되었다.


11월 14일에는 APEC 정상회담에 참석한 양국 정상간의 회담이 자카르타에서 열려 북한 핵문제 등 현안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1995년 11월 13일 장쩌민 국가주석의 방한으로 한반도 내 긴장완화 및 경제협력 방안 등에 관한 양국 정상회담이

 열렸으며, 1996년 11월 16일 세계식량정상회의 참석차 로마를 방문한 이수성 총리와 리펑 총리 간 한중 총리회담이

 있었다.


그해 11월 24일과 이듬해 11월 24일에는 APEC 참석을 계기로 한 한중 정상회담이 싱가포르와 밴쿠버에서 각각

열렸다.


한중 산업협력위원회·무역실무위원회·경제공동위원회·환경공동위원회 등이 정기적으로 개최되어 왔으며, 1997년

12월말 기준 중국 내 한국 상사수는 총 1,349개이다.

1996년 기준 대한수입액은 113억 7,706만 8,000달러이고 대한 수출액은 85억 3,856만 8,000달러를 기록했다.


경제·기술 협력 차원에서 이루어진 한국의 대(對)중국 무상원조는 1994년과 1995년에 각각 220만 달러와 394만 달러를 기록했으며, 2015년 현재 대중국 투자 규모는 누계건수 24,789건, 누계금액 520억 8,000달러로 전체 해외투자액의

16.9%를 차지한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약 23,000여개에 이르며, 2015년 기준 대중수출액은 2,373억 달러,

 대중수입액은 902억 달러로 우리의 최대 수출·수입 교역대상국이다.


인적교류 또한 활발하여 2015년 현재 방한 중국인 598만 4천명, 방중 한국인 444만 4천명에 이른다. 2014년 12월 현재 교민 수는 258만 6천명이고 중국 내 한국인 체류자수는 약 80만 명에 달하고 중국유학생 수는 약 5만 4천여 명이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차 필리핀을 방문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6일 오후(현지시간) 마닐라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중국과 양자회담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차 필리핀을 방문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6일

오후(현지시간) 마닐라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중국과 양자회담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




중국과 한국간의 주요 이슈


한·중 FTA 발효 전후로 양국의 교역관계는 산업 간 교역에서 산업 내 교역으로 빠르게 변화되고 있다. 양국의 신산업

정책(韓 신성장동력산업, 中 7대 신흥전략산업)의 중복경향 등을 감안할 때 한국은 새로운 국제분업구조를 본격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기존 대중국 주력 수출품목에서 중국시장 내 경쟁력 약화 및 대중국 무역특화지수 하락세가 나타났고 최근 중국의

수입 수요가 부품보다는 소재 위주로 재편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고부가가치 소재를 개발해 수출에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과거 중국시장이 품목별 선택과 집중이 가능한 형태의 시장이었다면 현재는 중국이 필요로 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해 진출해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맞춤형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다.


 대중국 투자의 경우에는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신규 진출하거나 또는 기 진출한 제조업 및 서비스업과의 연계에 초점을 맞춰야하고 내륙지역 진출을 위해서는 F/S(해외플랜트 사업타당성 조사) 등 충분한 사전준비와 특화전략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미래 20년은 중국경제의 지속적인 성장 속에서 한·중 경제관계가 더욱 극적인 전환기를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중국은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한중 경제협력의 기회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양국 간 경제 및 산업 구조에 새로운 연결고리(New Linkage)를 서둘러

 구축해야 하고. 여기에 상호 이익을 보장하는 협상이 전제될 경우 한·중 FTA가 하나의 매개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중국의 거시정책 동향과 경제·산업 구조 변화를 면밀히 분석하기 위한 연구분석 기능을 국가 및 기업 차원에서

확충 할 필요도 있다.


주요 협력 동향

2013 한·중 정상회담

2013년 6월 27일 베이징에서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함께 정상회담을 진행하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양

국은 이 회담에서 북한 핵 문제에 관해 '한반도 비핵화'를 약속했으며 한-중 경제현황의 가장 중요 화두인 FTA에 대해서도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양국이 FTA 협정을 체결하고 서로의 경제 협력에 유익한 동반자가 될 것을 합의했다.


한·중 FTA는 지난 해 양국 정상회담을 계기로 급속도의 진전과 함께 2013년 9월 1차 협상을 타결했다. 현재 시장 개방을 하지 않은 초민감 품목 1,200개의 선정 등을 놓고 2단계 협상을 진행 중이다.


또 외교장관 상호방문의 정례화 및 핫라인의 구축, 외교차관 전략대화의 연간 2회 개최, 외교안보대화, 정당 간

정책대화, 양국 국책연구소 간 합동 전략대화를 합의하는 등 정치안보관계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해 동아시아 정치발전에도 함께 일조할 것을 약속했다.


2013 APEC 한·중 양자회담

2013년 10월 7일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담에 참석하고 양국이 양자회담을 개최했다.

이 날 박근혜 대통령은 시 주석과 북한 핵개발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중국은 한반도 정세 완화, 남북관계 개선에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

중국 방공식별구역 재설정

중국은 2013년 11월 25일 동중국해 상공에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했다. 동중국해는 일본과 영유권 분쟁 중인 센카쿠

 열도와 우리나라 이어도가 포함돼 있다.

중국은 서해와 남중국해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한 움직임을  내비치며 주변국들과의 갈등을 점점 키워가는 상황이다.


한국은 이에 대해 2013년 12월 8일 새로운 한국방공식별구역인 KADIZ(Korea 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를

선포하고 12월 15일부터 정식 발효시키기로 했다.

새 방공식별구역은 논란이 됐던 이어도 상공은 물론 그동안 제외됐던 마라도와 홍도 남방까지 포함한다.

2014 한·중 정상회담

2014년 7월 3일 서울에서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함께 정상회담을 진행하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양국은 이 회담에서 중 양국의 정치, 경제, 문화 교류를 강화하고 공동 발전 및 동북아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성숙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기로 약속했다.


또 '한·중 FTA 협상의 실질적 진전과 연내 타결 노력을 강화할 것'을 발표하고 2015년 한·중 무역 총액 3,000억 달러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신 에너지, 전자통신, 첨단과학기술 등 전략적 신흥산업에서의 협력을 강화할 것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양국은 공동성명에서 원-위안화 직거래 시장을 개설하고 중국 교통은행 서울지점을 위안화 청산 결제은행으로 지정하며 한국에 총 800억 위안을 중국에 투자할 수 있는 위안화 적격 해외 기관투자자 자격을 부여키로 했다.


2014 베이징 APEC

2014년 11월 10~11일 중국 베이징에서 APEC 제22차 정상회담이 개최됐다. 중국은 지역경제통합 진전, 포괄적 연계성

 및 인프라 개발 강화, 경제개혁 및 성장촉진 등의 3대 의제를 제시했고 아-태지역의 새로운 협력관계 건설, 개방적이고 새로운 아-태 경제협력관계 건설과 공동으로 APEC의 향후 발전방향 제시를 목표로 제기했다.


 중국 주최의 APEC은 또 다른 이유로 주목을 받았는데 이는 스모그 없는 APEC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위해 스모그 예방조치를 실시했다. 이는 'APEC 블루'라 불리며 정상회담이 끝난 후에도

화제가 되고 있다.


중국은 스모그 예방을 위해 오염물질 배출량 감소, 차량 2부제 실시, 교통통제, 공공기관 및 교육 기관 임시 휴일 조치 등을 시행했다.

2015 한·중·일 정상회담 및 리커창 총리 방한

2015년 10월 31일~11월 2일, 중국 국무원 리커창(李克強) 총리가 3년 6개월 만에 개최된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이번 방한은 리커창 총리의 취임 이후 첫 번째 방한이다.


리 총리 방한을 계기로 양국은 교역, 인문, 과학기술, 환경보호, 품질검사 등 분야까지 17개 협력 문건에 서명했는데

양국의 창업혁신 협력, '중국제조 2025'와 한국의 '제조업 혁신 3.0'의 연계, 제3국 시장 공동진출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양국은 쌀 수입 검역에 관한 MOU를 체결했고 살아있는 수산물 수출입 검역에 관한 협의도 맺었다.

 이 밖에도 팬더 연구 보호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하고 팬더 보호 협력에 관한 MOU를 체결했다.

 2015년 11월 1일, 3년 6개월 만에 개최된 제6차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3국은 〈동북아 평화와 협력에 관한 공동선언

(關於東北亞和平與合作的聯合宣言)〉을 발표하고 한중일 자유무역협정 협상 가속화에 합의했다.







중국에서 온 안중근 동상



중국에서 온 안중근 동상(의정부=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8일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역 광장 근린공원에서 시 관계자들이 중국 측이 기증한
 안중근 동상을 설치하고 있다. 







중국에서 온 안중근 동상



중국에서 온 안중근 동상 (의정부=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8일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역 광장 근린공원에서 시 관계자들이 중국 측이 기증한
안중근 동상 설치를 위해 포장을 벗기고 있다.









 

 

Edvard Grieg - Piano Concer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