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언론과 시사

김기춘, ‘서류 지각’으로 항소심 기각 위기?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 사진=뉴스1



역사에 남을 황당한 실수..김기춘의 운명은?


항소이유서 시한 넘겨 제출, 항소 기각될 수도.."재판부 판단 지켜봐야"



요즘 변호사들 사이에 화제인 재판이 하나 있습니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78)의 항소심 재판인데요. 박근혜 정부에서 문화계 지원배제명단(블랙리스트)을 작성, 적용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준 사건이었죠. 그런데 이 사건이 황당한 '실수' 하나로 예상치 못한 갈림길에 섰습니다.


문제는 '항소이유서'에서 비롯됐습니다. 항소이유서는 항소심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다투고 싶은지를 설명하는 문서를 뜻하는데요. 형사소송법 제361조의4에 따르면 항소이유서를 제때 내지 않을 경우 법원은 원칙적으로 항소

 기각 결정을 해야 합니다.


같은 법 제361조의2와 제361조의3에 따르면 항소이유서의 제출 시한은 '소송 기록을 넘겨받았다'는 항소심 재판부의

 통지가 피고인에게 도달한 날로부터 20일 이내입니다.

이번 최순실 특검법은 신속한 재판 진행을 위해 이 시한을 7일 이내로 줄였습니다.


김 전 실장에게 항소심 재판부의 통지가 도달된 건 지난달 21일입니다.

사선 변호인이 선임되기 전 잠시 사건을 맡았던 국선변호인에게는 지난달 22일 도달됐죠.

그런데 새로 선임된 사선 변호인이 항소이유서를 제출한 건 지난달 30일 새벽 3시 전후라고 합니다.

제출기한인 7일을 넘긴 것이죠.


원칙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항소심에선 김 전 실장의 항소이유를 다루지 않아야 합니다.

김 전 실장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항소이유만 살피게 되는 것이죠.

변호사 업계에선 김 전 실장 쪽에서 날짜를 착각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 변호사는 "(김 전 실장 쪽에서) 특검법에 있는 특별규정을 놓친 것 같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서류의 제출 시한 같은 것은 변호사라면 누구나 숙지하는 내용"이라면서도 "그런 업무는 보통 사무소 직원에게 의지하기 때문에 정신없이 바쁘다보면 착오가 일어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2011년 '스폰서 검사' 사건을 수사한 민경식 특별검사팀 때 같은 일이 있었는데요. 당시 특검팀은 1월28일에 소송기록 접수 통지를 받고 7일 기한을 넘겨 2월15일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했다가 항소기각 결정을 받았습니다.

일반 사건에서도 이런 경우가 드물게나마 있다고 하는데요.


 한 변호사는 "업무방해 혐의로 피고인이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는데, 이번 경우와 똑같은 이유로 아예 항소 기각

 결정을 받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본인 사건이면 어땠을 것 같느냐"는 물음에 변호사들은 "상상도 하기 싫다"고 손사래를 쳤습니다.


로스쿨 출신의 한 변호사는 "정말 항소 기각 결정이 나오더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까지 가능한 사안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다른 변호사는 "법조 역사에 길이 남을 '실수'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니냐.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며 혀를 찼습니다.


지금까지의 상황만으로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형사소송법 제361조4항에 따르면 항소이유서 제출 시한을 넘겼어도 재판부가 직권조사사유가 있다고 판단하면 예외로 인정됩니다.


 결국 재판부의 판단에 달렸다는 것인데요.

 한 판사는 "항소심 첫 공판을 봐야겠지만, 그 전에 결정이 내려질 수도있다"고 했습니다.

항소심 첫 공판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김종훈 기자 ninachum24@mt.co.kr











‘王실장’의 항소 지각 제출을 받아줘야 한다?



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최근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한 직권남용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 선고를 받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항소이유서를 법정기한에 제출하지 않았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형사재판은 항소이유서 제출 기한 지켜야

우리나라는 재판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3심제를 택하고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1심~2심~3심의 재판입니다.
물론 2심으로 끝나는 특수한 재판도 있습니다.

1심 판결이 난 후, 1심의 결과에 불복해서 2심 재판을 청구하는 것을 ‘항소(抗訴)’라고 합니다.
 그래서 2심을 항소심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2심은 고등법원에서 재판하는 경우도 있고, 1심 법원의 항소부에서
 재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2심 재판을 청구하는 항소를 할 때 내는 서류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항소장입니다. 일반적으로 항소장을 낸 이후에
내가 왜 항소를 하게 되었는지, 1심 재판에 불복하는 부분은 무엇인지를 적은 항소이유서를 제출하게 됩니다.
이 과정은 민사재판이든 형사재판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민사소송의 경우에는 항소이유서를 제출해야 하는 기간이 법률에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물론 재판장은 날짜를 정해서 항소이유서를 제출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제출 기간보다 하루 이틀 늦었다고 해서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패소판결을 선고하지는 않습니다.

형사소송은 조금 다릅니다.
형사소송의 경우 항소법원이 1심 법원으로부터 기록을 받고 나서, 피고인과 변호인에게 그 사실을 통지합니다.

그리고 피고인과 변호인은 그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20일 이내에 항소이유서를 항소법원에 제출해야 합니다.
20일 이내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은 때는, 항소심 법원은 항소를 기각합니다.
즉 1심 판결대로 확정되는 것입니다. 

3시간 늦어서 항소 못 한 김기춘

그런데, 이번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사건은 좀 특이합니다.
왜냐하면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소위 최순실 특검법)은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하기 위해 이 항소이유서 제출 기간을 7일로 줄여 놓았습니다.

이 제출 기간을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변호인이 착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나중에 김 실장의 변호인은 이 사실을 깨닫고 급히 새벽 3시에 항소이유서를 접수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인 이른바

 ‘블랙리스트’ 작성·관리에 관여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7월 27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선고 공판을 마치고 호송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그러나 때는 늦은 것으로 보입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항소를 기각하고 제1심을 확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사고가 난 것입니다. 항소이유서를 3시간만 전에 냈어도 유효했는데 단지 이 3시간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런 사고는 피고인의 변호인 측뿐만 아니라 특검팀에서도 발생한 적이 있습니다.
2011년 ‘스폰서 검사’ 사건을 수사했던 특검팀은 1심에서 무죄를 받았던 정 모 검사에 대한 항소이유서를 소송기록
접수통지 후 18일 만에 접수했다가, 항소심 재판부로부터 항소기각 결정을 받았습니다. 

서류 미비로 항소 기각, 그게 정의일까?

그런데 7일의 항소이유서 제출기간이 좀 짧은 것은 사실입니다.
이 부분을 가지고 현재 논쟁이 있기는 합니다만, 항소기각이라는 결론이 뒤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두 가지 경우에 항소심 재판부는 김기춘 전 실장의 항소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직권조사 사유가 있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항소장에 단지 한두 줄이라도 항소이유의 기재가 있는 경우입니다(형사소송법 제361조의4).

그러나 실무에서 재판부가 직권조사 사유를 인정해서 항소를 받아들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김기춘 전 실장의 변호인이 항소장을 제출하면서, 항소장에 ‘양형부당’, ‘사실오인’ 등의 내용을 한 줄이라도
적었다면 이것이 항소이유를 기재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민사소송에는 항소이유서를 조금 늦게 제출해도 괜찮고, 형사소송에서는 1시간만 늦게 제출해도 재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는 형사소송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단 한 명의 억울한 사람도 없어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항소장을 제출했는데도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해서 즉각 항소를 기각하는 법률조항은 너무 가혹합니다.
당사자들끼리의 다툼에 불과한 민사소송에서는 항소이유서를 안 냈어도 항소기각을 하지 않는 것과 비교해서 균형이
 맞지 않습니다. 

실제로 많은 형사사건의 항소인들이 항소심 첫 기일에 항소이유서를 제때 안 냈다는 이유로, 항소기각을 선고받습니다. 물론 법원에서 항소이유서를 제출하라는 통지를 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본인 책임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처리하는 것이 정말 정의에 부합하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정리 = 윤지원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최순실·김기춘 거소투표, 박근혜 신청 안해 출처=SBS ‘그것이 알고싶다’ 홈페이지 화면 캡처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명단인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리를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