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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에는 눈이 없다"..'그냥 검사' 윤석열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57·사법연수원 23기)이 최근 홍대입구에 나타났다.
대학 동기가 운영하는 식당에 들르기 위해서였다. 단골로 드나든지 20년째다.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의리'를 저버리진 않는다.
친구건 후배건 한번 '내 사람'으로 찍으면 영원히 '윤석열의 사람'이다.
"한번 맺은 인연은 끝까지 간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윤 지검장처럼 조직 안팎의 별명이 상반된 경우는 흔치 않다.
밖에선 '돌아온 칼잡이' '재계 저승사자' 등 살벌한 별칭으로 불리지만 검찰 안에서의 닉네임은 '큰형님' '대장님' 등
푸근한 쪽에 가깝다.
큰 체구 때문이기도 하지만 워낙 후배들과의 술자리를 좋아해서다.
취미는 '후배들 술 사주기', 주량은 '무한대'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 정도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팀장을 맡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뒤론 '국민검사'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게 됐다.
그와 함께 특검팀에서 활약했던 한 검사는 "윤 지검장이 특검 수사팀과 함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으면 모르는 사람이 대신 계산을 하고 나가는 일이 잦았다"고 회고했다.
특검 수사 당시 한 피의자는 조사를 받으러 와선 '윤석열 검사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해 수사팀을 당황케
한 적도 있다.
◇"구속 안 시키면 그만 두겠습니다"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검사 가운데 한명이 됐지만, 사실 그는 서른네살에야 겨우 검사로 임관한 '늦깎이
검사'였다.
서울대 법대에 79학번으로 입학했지만 사법고시엔 1991년(33회)에야 붙었다.
주변에선 윤 지검장을 두고 "후배들을 다 가르쳐 합격시키고, 정작 본인 앞가림은 못한 스타일"이라고 했다.
윤 지검장은 "항상 내가 시험을 안 볼 땐 귀신같이 예상문제를 알아맞히고, 내가 볼 땐 잘 못 맞혀서 그런 소리가
나오더라"며 허허 웃었다.
윤 지검장의 연수원 동기인 이정렬 전 동부지법 판사는 "윤 지검장은 연수원 시절에도 독일 법학용어는 물론 법률 이론에 매우 해박했다.
시험에 안 나오는 부분까지 깊이 알고 있었다"며 "연수원 교수와도 논쟁이 붙었는데 밀리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책에서 이해가지 않는 부분은 그냥 넘어가거나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파고들어 확인하는 스타일이었다"며
"사법시험 합격이 늦어진 것도 그런 스타일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고 말했다.
이 전 판사 외에도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송옥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이 그의 연수원 동기다.
호방한 성격과 달리 그의 수사 스타일은 '원칙주의'다. '강골 검사'란 말도 그래서 나왔다.
그의 강골 기질이 알려진 건 검사 6년차 때다.
1999년 서울지검 특수2부에서 김대중 정부 당시 경찰 내 '실세'였던박희원 경찰청 정보국장(치안감)을 뇌물수수 혐의로 소환하면서다.
당시 경찰의 수사권 독립 문제와 맞물린 상황에서 정보국장이 소환되자 경찰은 '표적 수사'라고 반발했다.
경찰청장은 "박 국장에 대한 사표 처리를 하지 않겠다. 후임 정보국장을 임명하지 않겠다"며 버텼다.
그러나 윤 지검장은 소환 하루 만에 박 국장의 자백을 받아냈다.
박 국장은 영장실질심사를 포기하고 구속을 받아들였다. 끝내 경찰청장은 대국민 사과를 했다.
2006년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을 맡았다.
정몽구 회장의 구속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검찰총장의 고심이 길어지면서 검찰이 불구속 수사를 택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현재 서울중앙지검 1차장인 윤대진 검사와 함께 검찰총장을 찾아간 윤 지검장은 "정몽구 회장을 구속해야 한다"며
사직서를 내밀었다.
결국 정 회장은 구속됐다.
◇좌파 검사? 그냥 검사!
2013년엔 국가정보원 댓글사건 특별수사팀장으로서 국정원을 상대로 고강도 수사를 펼쳐 박근혜정부의 미움을 샀다. 그는 국정원 직원들의 압수수색·체포 영장 청구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사팀에서 배제됐다.
그러자 윤 지검장은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이 부당한 수사 지휘권을 행사했다고 맞섰다.
여권은 이를 '항명'이라고 몰아세웠다. 국정원 댓글사건 국정감사에서 정갑윤 새누리당 의원이 "증인은 조직을 사랑
하느냐. 혹시 사람에게 충성하는 거 아니냐"고 묻자 그는 "네 (조직을) 대단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이후 그는 박근혜정부 내내 지방 고검을 전전했다.
윤 지검장은 보수진영, 진보진영 양쪽에서 동시에 공격을 받는 흔치 않은 경험을 했다.
국정원 댓글수사 당시 보수진영에선 '종북 좌파' 또는 '친노 검사'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반대로 대검 중수1과장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를 기소했을 땐 진보진영으로부터 '친노를 저격하는 검사'란 말을 들었다.
그를 지켜본 이들에 따르면 윤 지검장의 정치성향은 보수에 가까운 편이다. 그러나 이런 성향이 수사에 개입되지는
않는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그는 박근혜정부 시절 야권으로부터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았지만 끝까지 고사하고 검찰에 남았다.
한 연수원 동기 변호사는 그를 두고 "성격상 사표 낼 사람이 아니고, 변호사 할 스타일도 아니다"라며 "검사직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한 동료 검사는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그는 '검으면 검다,
희면 희다'고 말하는 검사였다"고 했다.
"사람을 표적으로 삼고 수사하면 안 된다.
검사는 사건만 보고 수사해야 한다." 윤 지검장이 사석에서 수시로 하는 말이다.
심재륜 전 부산고검장이 남긴 '수사십결'의 마지막 계명 "칼에는 눈이 없다"와 일맥상통한다.
색안경을 낀 이들은 그에게 '정치검사' '좌파검사' 등 온갖 수식어를 붙이지만, 그를 아는 이들에게 윤석열은 눈 없는 칼을 쥔 '그냥 검사'일 뿐이다.
▲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뉴시스
[프로필]
△1960년 서울 출생 △충암고, 서울대 법학과 졸업 △제33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23기 △대구지검 검사
△춘천지검 강릉지청 검사 △수원지검 성남지청 검사 △서울지검 검사 △부산지검 검사△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광주지검 검사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검사 △대검 중앙수사부 검찰연구관 △대전지검 논산지청장 △대구지검
특수부장 △대검 범죄정보2담당관 △대검 중수2과장 △대검 중수1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수원지검
여주지청장 △대구고검 검사 △대전고검 검사 △서울중앙지검장
백인성 (변호사) 기자 isbaek@mt.co.kr
인류는 오랜 기간 ‘인간다움’의 상징을 ‘정신’에서 찾았다.
육체는 경시했다.
19세기 초입이 돼서야 ‘몸’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몸의 가치를 발견한 선구자는 ‘전통의 파괴자’ 니체였다.
‘정신은 작은 이성이고, 육체는 큰 이성’이라는 게 니체의 자각이었다.
그는 육체와 정신이 별개가 아니며, 몸의 쇠락은 필연적으로 정신의 파괴로 이어진다고 봤다.
논란 자초하는 승부사 기질
20세기에 만개한 민주주의가 ‘신체의 자유’를 자유권의 핵심으로 상정한 데는 이런 인식의 전환이 깔려 있다. 함부로
인신을 구속당하지 않을 자유는 이제 사유재산권과 함께 민주사회의 핵심 원리가 됐다.
개인 신체권의 확립 과정은 곧 인권의 역사다.
그런 점에서 최근 중앙지검이 영장 기각에 반발해 담당 판사들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나선 것은 우려스러운 사태다. 반(反)인권적이자 역사의 퇴행이다. 인권과 진보를 표방하는 문재인 정부가 파격 발탁한 윤석열 지검장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충격파가 더 크다.
‘합법적 물리력의 독점체’인 국가 권력을 상대하는 나약한 개인에게 신체의 자유는 필수불가결한 최소한의 방어 수단이다. 인신 구속을 통한 강제 수사는 언제나 보충적 수단이어야 한다는 게 근대사법이 확립한 기본 원칙이다.
이번 비난 성명에 정유라 우병우 등의 영장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은 한마디도 없다.
‘법원 때문에 못 해 먹겠다’는 식의 날선 감정만 가득하다. 특정 판사들을 콕 집어 인신공격하는 태도 역시 나가도
너무 나갔다.
우리가 정의의 대변자이고, 도와주지 않는 법원은 ‘부정의’라는 오만에서는 음습한 기운마저 감지된다.
이번 사태는 늘 논쟁을 몰고 다니는 ‘윤석열 스타일’의 재확인이다.
그는 주변 시선에 개의치 않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진짜 ‘강골 검사’다.
돌이켜보면 파열음조차 상당 부분 의도되고 계산된 행보다.
그러다 보니 소영웅주의라는 시각과 함께 부작용도 나온다.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박상배 전 산업은행 부총재 등이 저돌적인 윤석열 스타일에 휘말려 고초를 겪었다. 대법원의 파기환송을 포함해 3년간 ‘5심’의 법정투쟁 끝에 두 사람은 2009년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래도 상처는
회복 불능이다.
좋게 말하면 선굵은, 나쁘게 말하면 듬성듬성한 법리구성도 윤석열 스타일이다.
지난달 경찰 호위 속에 법정 출석하는 박영수 특별검사를 50대 여성이 멀찍이서 작은 생수병을 던진 사건이 있었다.
해프닝성이었지만 그는 ‘사법질서에 도전하는 중대범죄’라는 프레임을 들이댔다.
이번 성명에 영장 기각 사유 ‘납득 불가’ 사례로도 적시했다.
계좌 추적, 배후 색출 운운하는 검찰의 과잉 대응이야말로 납득 불가라는 비판이 만만찮다.
"우리가 정의" …독선 논란
윤석열 스타일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대목은 여론에 기대는 모습이다. 판사들을 비난할 때도 ‘시중의 의구심이 있다’며 여론을 끌어들였다.
그렇잖아도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여론 법정’의 공간이 무한대로 확장되는 시대다.
여론의 세계는 ‘유죄추정의 원칙’에 지배된다. 자칫 까다로운 대중의 입맛과 실체적 진실 사이에서 길을 잃기 십상이다.
윤석열호(號)는 적폐 청산이 다른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유일한 정의라고 보는 듯하다. 사법질서 속에서 그 정당성을
검증받는 것조차 거부할 만큼 자신만만하다.
하지만 ‘우리는 정당하고 그렇기 때문에 정의다’라는 식의 동어반복적 주장은 거슬린다. 윤석열 스타일은 새 정부의
날개가 될까, 족쇄가 될까. 시선집중이다.
백광엽 지식사회부장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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