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 지난 7월 29일 새벽 5시 45분 동해안에서, 전날 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에 대한 대응으로 연합

탄도미사일 사격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합동참모본부>










"한국은 북한을  두려워하지 않는 유일한 나라"

                   


외국인이 바라보는 대한민국..차분한 대응 이면엔 '안보 불감증'

지난 8월 남태평양의 괌을 방문했던 말레이시아인 분상 링(Voonsang Ling)은 예정보다 일찍 짐을 꾸려야만 했다.

북한이 괌 주변을 겨냥해 미사일을 발사하겠다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초 연로한 할머니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처음으로 괌을 찾았다. 하지만 링의 가족은 북한의

위협을 가볍게 여길 수 없었다.

올해 초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발생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이복형인 김정남의 피살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괌 현지인들도 북한의 위협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결국 비싼 금액을 물고 귀국 항공권을 구해 말레이시아로 돌아가야만 했다.

링은 당시 이 같은 내용을 페이스북에 알렸다. 하지만 한국인 친구들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여행에서 알게 된 한국인 친구는 그의 글에 “괌은 매우 위험하다”며 “매우 평화로운 한국으로 오라”고 댓글을 남겼다. 링은 “괌이 공격을 받는다면 서울 또한 안전하지 못하다”고 반응했다.


그러자 한국인 친구는 “우리는 북한의 도발에 익숙하다”고 답했다.

링은 “모든 한국인들이 도발을 멈추기에 충분한 군사력을 갖고 있다고 알고 있는 것 같다”며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8월23일 을지훈련과 연계해 실시한 민방공대피훈련 당시 서울 광화문에서 시민들이 무관심하게 지나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8월23일 을지훈련과 연계해 실시한 민방공대피훈련 당시 서울 광화문에서 시민들이

 무관심하게 지나가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국민 58% “전쟁 가능성 없다”


실제로 8월 괌 포위사격 논란 당시 한국인들도 전쟁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 인식했다.

때문에 괌으로 휴가를 가려던 사람들이 취소를 문의하는 일이 많았지만, 실제로 여행을 취소한 사례는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 도발에 대한 한국인과 외국인의 시각 차이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다.


9월3일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인해 북·미 간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다가 다소 완화된 지 한 달도 채 넘기지 않은 시점이었다. 사실상 핵을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성숙한 국민의식이라는 진단과 함께 지나치게 안보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왔다.


미국 LA타임스는 8월9일 ‘놀라울 정도로 심드렁한(surprisingly blase) 한국인들’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로 긴장상태가 최고조에 다다랐지만, 한국인들은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북한에서 1~2시간 거리에 있는 신촌의 상황을 전하며 “이곳 주민들은 물론이고 이곳을 방문한 관광객들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평화롭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말레이시아인 분상 링이 괌에서 귀국하며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 facebook


말레이시아인 분상 링이 괌에서 귀국하며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 facebook          

 


“영토 공격받을 때에도 파티가 계속되는 나라”

한국인들의 인식 변화는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갤럽이 9월5일부터 7일까지 사흘간 전국 성인 10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북한이 실제로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58%가 ‘가능성이 없다’고 대답했다. ‘많이 있다’ 13%, ‘약간 있다’ 24% 등 전쟁 가능성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37%에 불과했다.


1992년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9%가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이후 1994년 김일성 사망,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 기조와 더불어 그 정도가 완화됐으며 2002년 33%까지

 줄었다. 2006년 1차 핵실험 1년 뒤인 2007년 51%로 다시 늘었다.


이후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거듭하고 있지만, 전쟁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여론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한국갤럽은 60년이 넘는 휴전 상태와 반복되는 북한 도발로 인해 무뎌진 결과로 분석했다.


이 같은 모습은 외국인들에게도 어색하게 비쳤다.

 2010년부터 4년간 외국계 기업 한국 법인에서 근무했던 제임스 우드(James Woods·남·49)는 한국에 머물렀을 당시의 특별한 경험을 잊을 수가 없다.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 발발하자, 회사에선 한국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고국에 있는 친구들로부터 안부를 묻는 전화도 이어졌다.


 하지만 그는 당시 한국인들의 반응이 더욱 놀라웠다고 말한다. 우드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북한이 한국 섬(연평도)에 미사일을 쏘고 섬사람들이 피난길에 올랐을 때 서울에서는 파티를 멈추지 않았고 계속 음악이 흘러나왔다”며 “한쪽에선 적국으로부터 미사일 포격을 당하고 있는데 다른 쪽에서는 파티를 열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고 기억했다.


물론 북한의 연평도 도발은 전면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우드도 한국을 떠나지 않았다.

그 사이 김정일이 사망했고 김정은이 집권했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뒤 북한의 도발은 더욱 잦아졌다.


장거리 로켓을 포함한 미사일 도발도 계속됐다.

우드가 한국을 떠나기 직전인 2013년 2월에는 북한의 3차 핵실험이 실시됐다.

그는 “나도 서울에 있으면서 북한과 연관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점점 익숙해져만 갔다”며 “한국인들이 처음에는 이상

하게 여겨졌지만 나조차 변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에서 21년간 기자 생활을 한 뒤 한국에 머물렀던 프랭크 아렌스는 한국을 “세계에서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핵무기 등에 대해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유일한 곳”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서울은 불과 휴전선으로부터 50km 정도 떨어져 있고, 장거리 미사일과 소형화된 핵탄두가 언제 서울을덮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지적한 후 “한국인들은 그런 전쟁의 위협 속에서도 잘 살아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바로 옆집의 흉악범과 함께 사는 데 익숙해진 형국”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