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제 개발 허가 한 건도 없어
"합법적 틀 있어야 합리적 규제 가능
더 늦기 전에 불법 족쇄 풀어줘야"
3년 뒤 이번엔 미탈리포프 교수가 김 교수에게 역제안을 해 왔다.
원숭이 대신 인간배아를 교정하는 연구였다. 김 교수의 유전자가위 기술과 분석 능력이 반드시 필요한 연구였다.
한국에서는 현행법상 인간배아 연구를 할 수 없었던 김 교수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두 석학의 연구는 지난달 초 ‘세계 최초 돌연변이 인간배아 교정’이란 내용으로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실렸다.
하지만 세계 주요 외신들은 연구 성과를 미탈리포프 교수의 공으로 보도했다.
미탈리포프가 연구 아이디어를 처음 냈고, 실험도 미국에서 진행됐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우리 기술로 국내 환자들을 위한 연구를 할 필요가 절실한데 안타깝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서주환 박사는 “전 세계적으로 162개 기업에서 약 418개의 유전자 치료 제품이 개발 중일
정도로 봇물이 터지고 있지만 한국은 유전자 치료제 허가 사례가 전무한 빈약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규제다. 한국이 과거 줄기세포 논문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황우석 사태’ 이후 생명윤리법이 강화되면서 관련
연구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는 이후 답보 상태에 빠졌다. 이후 등장한 유전자가위 연구도 마찬가지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체내 유전자 치료를 법률로 금지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물론 선진국에서도 관련 규제는 있다. 미국은 식품의약국(FDA)에서 유전자치료자문위원회를 운영, 유전자 치료에 관한 임상시험과 신약 허가에 관한 심의를 다른 의약품보다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 대상 질환을 명시하지는 않는다.
일본도 2015년 ‘유전자치료 임상연구에 관한 지침’ 중 치료 대상 질환을 명시한 조항을 삭제했다.
또한 미국은 연방정부가 주 정부와 함께 다양한 분야의 줄기세포 연구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일본 아베 정부는 세계 최고 수준의 줄기세포 연구인 ‘유도만능줄기세포(iPSC)’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국내 생명연구법 개정에 반대하는 이들은 유전자가위 기술의 오·남용을 반대의 이유로 든다.
구인회 가톨릭대 생명대학원 교수는 “유전질환은 1만 가지가 넘는데 이를 완전히 정복하려면 엄청난 수의 인간 배아가 필요하다”며 “유전자 가위의 장기적 위험과 부작용도 함께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진수 교수는 “불법화해서는 오·남용을 규제할 수 없다”며 “합법화의 틀 속에서야 합리적 규제가 가능
하다”고 반박했다.
그는 “유전자 치료 분야는 세계적으로 시간을 다투며 경쟁하는 분야라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순식간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Shutterstock]
유전자 가위 모식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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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가위 기술, ‘어린아이가 든 권총’ 될까
지금 세계 과학계의 가장 뜨거운 열쇳말 가운데 하나는 ‘크리스퍼(CRISPER)’다.
이 단어를 접하지 못했다면 ‘유전자 가위’ 혹은 ‘유전자 편집’ 같은 말은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가위? 편집?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 유전자를 마음대로 자르고 붙인다는 얘기일까.
SF소설이나 영화에서 봤음직한 일이 실제로 세계 실험실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얼른 감이 안 올 테니 예를 하나 들어보자.
신생아 500명 가운데 1명꼴로 발생하는 ‘비후성(肥厚性) 심근증’이라는 병이 있다.
한자로 된 병명 그대로다.
선천적으로 심장 좌심실 벽이 지나치게 두꺼운 병이다.
심장 내부 공간이 좁아지면 몸에 피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한다.
아이는 호흡 곤란을 일으키고 통증을 호소하다 심하면 사망에 이른다.
비후성 심근증은 우리 몸속 23개 염색체 가운데 11번째 염색체에 존재하는 유전자(MYBPC3)의 돌연변이로 발병할
개연성이 높다.
엄마, 아빠 중 한 명이라도 돌연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으면 자식에게 50% 확률로 발병할 수 있다
(우성 유전). 만약 아이가 태어나기 전 이 돌연변이 유전자를 제거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크리스퍼, 유전자 자르고 붙이고!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유전자 교정 과정. ①난자(원 모양)를 고정시킨 뒤 ②미세관을 이용해 정자(빨간 원)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난자 속에 함께 주입한다.
[사진 제공·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
③교정을 마친 수정란은 세포 분열을 통해 착상 직전 배아인 배반포 단계까지 정상적으로 발달한다.
[사진 제공·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
유전자 가위가 있으면 이런 일이 가능하다.
최근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 등이 미국 과학자와 공동으로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비후성
심근증의 원인 유전자를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만든) 배아 단계에서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딱 거기서 멈췄지만 만약 그 배아를 엄마 혹은 다른 여성의 자궁에 착상시켜 출산했다면 유전자가 편집된 아이가
탄생했을 것이다.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의 유전 정보가 담긴 DNA는 아데닌(A), 구아닌(G), 티민(T), 시토신(C)이라는 네 가지 분자
(염기)로 구성된다.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 결과를 보면 사람은 아데닌-구아닌, 티민-시토신 등이 짝을 이룬 30억 개가량의 염기쌍으로
구성돼 있고, 그 안에 약 2만5000개의 유전자가 담겨 있다. 이 유전자의 집합이 바로 ‘유전체(Genome)’다.
그런데 유전자 약 2만5000개 가운데 단 하나에만 문제가 있어도 심각한 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애초 아데닌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티민이 들어간 것만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유전자 자체가 잘못돼 발생하는 질환을 ‘유전병’이라고 부른다. 혈우병, 낭포성 섬유증, 비후성 심근증 같은
병이 이에 해당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의 쓰임새가 등장한다. 크
리스퍼는 세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유전체 편집 기술이다. 일단 아데닌 대신 티민이 잘못 들어간 자리를 비교적(!)
정확하게 찾을 수 있다(검색기). 또 문제를 일으킨 티민을 자를 수 있다(가위). 그리고 (정확하지 않아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지만) 잘라낸 티민 자리에 아데닌을 다시 써넣을 수도 있다(연필).
크리스퍼 이전에도 유전자 일부를 자르고 붙이는 유전체 편집 기술은 존재했다. 하지만 편집 대상을 찾는 능력이
형편없었다.
크리스퍼는 이전과 비교했을 때 비용이 저렴하고 시간도 절약된다.
예전에 5000달러가량(약 600만 원) 들었던 일이 크리스퍼로는 30달러(약 3만6000원) 정도면 가능하다.
또 만드는 데 1년가량 걸린 유전자 변형 생쥐를 크리스퍼는 두 달 내 세상에 선보일 수 있다.
김진수 단장 같은 과학자는 크리스퍼가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유전병 치료에 돌파구를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상당수 과학자는 크리스퍼가 생명 현상의 신비를 밝히는 과정에서 유용한 실험 도구임은 인정하면서도,
이 기술의 응용 가능성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글머리에서 소개한 연구에서 확인할 수 있듯, 크리스퍼를 이용해 유전병을 치료하려면 최소한 배아 단계에서 유전자를 교정해야 한다.
아직 분화하지 않은 딱 하나의 세포로만 이뤄진 배아 단계에서 유전자를 교정해야 몸속에 서로 다른 유전자(교정된 것과 교정되지 않은 것)가 섞이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
유전자 조작의 위험성
상당수 과학자는 이 대목에서 고개를 갸우뚱한다.
배아 단계에서 유전병을 진단하는 데는 이미 ‘착상 전 유전 진단’(Preimplantation Genetic Diagnosis·PGD) 같은 유용한 검사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 가계에 유전병이 있는 경우라면 자연임신이 아니라 ‘시험관 아기 시술’ 같은 인공수정이 권장된다.
이 과정을 통해 얻은 배아가 분화를 시작할 때 세포 하나를 떼어내 유전자 검사를 미리 하면 유전병 유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검사에서 유전병이 없는 배아만 엄마 자궁에 착상시키면 이후 태어날 아이는 유전병 걱정으로부터 자유롭다.
물론 엄마, 아빠 양쪽 다 유전병 유전자를 가진 경우라면 이런 착상 전 유전 진단도 무용지물이다.
이 경우에는 배아 단계에서 크리스퍼를 이용해 유전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제거하는 것과 같은 교정만이 해법이다. 하지만 똑같은 유전병을 가진 엄마, 아빠가 만나 아이를 원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과학자들이 크리스퍼 사용을 주저하는 이유는 아직 정확히 어떤 구실을 하는지 모르는 유전자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인간 생명을 위협하는 암, 심근경색, 당뇨 등의 경우 어떤 유전자가 작용하는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또 신장, 외모, (좁은 의미의) 지능, 수명 등에 유전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만 알려졌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유전자가 중요한지는 미지수다.
유전병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특정 유전자를 없앴는데, 그 유전자가 몸속에서 다른 긍정적 구실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정 유전자를 삭제하고 바꿔치기 했다 자칫 예상치 못한 유전적 결함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대다수 과학자가 ‘맞춤 아기’의 탄생을 아직 할리우드 영화처럼 황당무계하게 여기는 것도 이런 사정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섣부르게 유전자를 자르고 붙이는 일은 매우 위험하지 않을까.
그렇게 편집된 유전 정보가 (그 아이가 부작용 없이 자라고 생식 기능을 갖고 있다면) 자손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텐데 말이다.
한창 이것저것 만져볼 어린아이가 장난감 권총 대신 실탄이 든 권총을 쥔 상황. 지금 크리스퍼를 손에 쥔 인류 모습이 딱 그런지도 모르겠다.
한국·미국 연구진, 인간배아 유전자 교정으로 질병 치료
한국과 미국 연구진이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인간 배아의 돌연변이 유전자를 교정하는데 성공했다.
김진수 유전체 교정 연구단 단장 연구팀이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대학, 솔크 연구소 연구진과 함께 실험을 수행했다.
연구진은 인간 배아에서 비후성심근증의 원인이 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CRISPR/Cas9)으로
교정했다. 이를 통해 비후성 심근증 변이 유전자가 자녀에게 유전되지 않을 확률을 72.4%로 높였다.
이번 연구에서 김 단장 연구팀은 유전자 가위의 제작과 효과를 확인하는 역할을 했고, 미국 연구진은 인간 배아에
유전자 가위를 적용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우리나라는 인간 배아 연구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지만, 미국은 연구 목적의 인간 배아 실험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실제 인간 배아에 대한 실험은 미국에서 진행됐다.
이번 연구는 3일 <네이처> 온라인판에 공개됐다.
이번 연구의 대상이 된 비후성 심근증은 선천적으로 좌심실 벽이 지나치게 두꺼워지는 병이다.
심장 내부의 공간이 좁아지면서 몸에 피를 충분하게 공급하지 못하면서 호흡 곤란, 통증을 일으키며 심하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신생아 500명 가운데 1명의 비율로 발생하는 비교적 흔한 질병이다.
비후성 심근증은 11번째 염색체에 존재하는 MYBPC3 유전자 변이로 인해 발병할 확률이 높다. 특히 멘델 유전 법칙에 따른 우성 유전으로 부모 가운데 한 명만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도 자식의 경우 50% 확률로 발병할 수 있다. 연구진은 유전자 가위로 MYBPC3 유전자 변이 부위를 절단해 해당 유전자를 교정했다.
이때 정자와 난자의 수정이 이미 미뤄진 단계에서 유전자 가위를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정자와 유전자 가위를 함께
난자에 주입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수정이 이뤄진 다음에 유전자 교정을 할 경우 특정 세포는 교정이 되는 반면, 다른 세포는 교정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배아에 변이가 교정된 정상 세포와 교정되지 않은 비정상 세포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수정 단계에서유전자를 교정할 경우 배아는 정상 세포로만 구성된다.
또 이번 연구에서는 유전자 가위가 정확한 위치만 절단하는 것을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 유전자 가위는 표적 위치 외에 의도하지 않은 위치를 절단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배아에서 새로운 돌연변이로 인한 비정상 세포가 나타날 위험이 있다.
하지만 이번 실험에서는 유전자 가위가 의도한 위치만 절단하는 정확도를 보였다.
김진수 단장은 이번 연구를 놓고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는 인간 배아에서 유전자 가위의 효과와 정확성을 입증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김 단장은 이번 연구와 관련해 국내에서도 인간 배아 연구를 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세계적으로 임상 적용은 제한을 하지만 연구는 허용하는 추세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연구와 관련해 인간 배아 유전자 교정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유전자 교정 기술의 효과나 윤리 등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문제제기다.
특히 유전자 교정을 통한 기대 효과가 위험을 감수할 만큼 충분한 것인지, 다른 방식으로 질병을 치료할 수는 없는
것인지 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도강호 기자 (gangdogi@kormedi.com)
여름철 서해안의 섬 여행은 즐겁다.
곳곳에 깨끗한 모래를 펼쳐 내는 크고 작은 해변은 시원하고, 무엇보다 사람이 들끓지 않아 좋다.
장비 없이 오를 높이의 산에 다채로운 풀과 나무가 우거졌고 방풍림이 연출하는 해안의 그늘은 산들바람을 선사한다.
물론 걱정이 없는 건 아니다.
심한 풍랑이나 안개를 만나면 여객선의 운항이 며칠 멈춘다.
서해5도를 여행하려면 며칠 더 묵을 각오가 필요하지만, 그보다 가까우면 안심해도 좋다.
여객선 성능이 예전과 달라 몇 시간 지체되는 일은 있어도 며칠 묶이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그런가? 방학을 맞아 간단한 복장의 남녀노소를 맞는 인천 연안부두는 가벼운 가방을 든 승객들로 아침부터
북적인다. 요즘 웬만한 섬엔 가격이 합리적이고 쾌적한 시설을 갖춘 숙박시설과 식당이 충분하다.
아침부터 안개가 자욱한 날이었다.
아침을 늦게 해결한 일행은 그 유명한 이작도의 풀등을 몽환적으로 체험한 후 방풍림에 기대 오후 배를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연안부두에서 배가 여태 출항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고 주문한 부침개를 나누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즈음, 일행 중의 한 분이 진한 원두커피를 직접 끓여 내 함께 마셨다.
가방에 일체의 재료와 장비를 챙겼기에 가능했는데, 감사 인사를 받은 그는 무거운 가방을 들어야 했다.
'유전적 하중'이라는 개념을 대학원 시절에 배웠다.
현 환경에 불리한 유전자를 지닌 개체가 있기에 그 개체를 끌어안은 집단은 급격한 환경 변화에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하는 유전적 하중을 영어로 'genetic burden'(유전적 부담)'이라 했다.
환경에 불리한 유전자를 가졌기에 개체의 삶은 고단하겠지만, 환경은 변한다.
현 환경에 불리한 유전자가 유리해질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다양한 유전자를 가진 집단일수록 순수혈통 집단에 비해 생존력이 높다.
공장축산에 적용된 양계장의 닭이나 축사의 돼지가 조류독감과 구제역에 속수무책인 이유의 설명이다.
말라리아가 자주 출몰하는 아프리카에 드물지 않은 '겸상적혈구 빈혈증'이란 유전병이 있다. 돌연변이로 헤모글로빈에 이상이 생겨 적혈구가
낫처럼 구부러지는 현상을 보이는 겸상적혈구 빈혈증은 치명적인데, 그 증상을 가진 사람은 특이하게 말라리아에 감염되지 않거나 감염되더라도 금방 치유된다고 한다.
만일 일찍이 아프리카에 겸상적혈구 빈혈증 돌연변이가 없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말라리아로 사망했을지 모른다.
현 환경에 최상으로 적응한 유전자가 바뀐 환경에서 어떻게 발현될지 과학은 미리 파악할 수 없다.
과학자들이 불량으로 규정한 유전자를 치료 또는 개선 차원으로 없앤다면, 환경이 변화된 이후 인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아무리 찬란한 과학 기술도 변화하는 환경을 통제할 수 없다.
지진대 위의 리아스식 해변을 제멋대로 매립하고 세운 후쿠시마 핵발전소는 과학자들이 안전을 장담하기에 설계 수명을 연장했을 것이다. 화석 연료 과다 사용으로 경신하는 한여름 무더위를 어떤 과학 기술이 통제할 수 있겠나. 심화되는
사막화, 초미세먼지, 방사성 물질, 그리고 음식 속의 조작된 유전자는 전에 없었다.
최근 세칭 '유전자 가위'라고 말하는 생명공학 기술로 비대성 심근경색증을 근원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계기를 우리
과학자가 만들었다고 언론은 일제히 반색했다.
한술 더 떠 그런 기술력을 보유해도 연구는 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개탄했다.
시대착오적 생명윤리 관련법 때문이라고 덧붙이면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시퍼렇게 살아 있어도
황우석 사태가 발생하고, 권력층에서 미용 목적으로 줄기세포를 주입하는 시대에 추구되는 유전자 가위 기술은 '유전체교정연구단'에서 주도한다.
그런데 막대한 국가 연구비를 사용하는 그 연구단체는 유전자를 교정한다고 주장한다.
교정이라니? 유전자가 무슨 큰 죄라도 지었나?
"기회가 있으면 생명윤리학자를 찾아가 밤을 새워서라도 토론하겠습니다."
지난 8월 3일 프레스센터, 유전자 가위 기술로 비대성 심근경색증 치료 가능성을 인간 배아 단계에서 입증한 연구를
학술지 <네이처>에 투고해 주목된 기초과학연구원 김진수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유전자 교정 기술 도입 및 활용을 위한 법제도 개선 방향'을 주제로 열린 과학기술한림원 원탁토론회에서 자신의 심정을 그렇게 알렸다.
유전자 가위 기술로 장차 수많은 사람의 유전자 결함으로 인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밝힌 그가 생명윤리학자와
소통하고 싶다고 대외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감동해야 할까? 세계적 연구자가 소수에 불과한 생명윤리학자에게 먼저 손을 내밀지 않았는가.
유전자를 교정하려는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가 미칠 사회적 파장을 사전에 고민하고, 생명윤리학자와 연구 목적과 방법을 미리 논의하지 않았다.
불량 유전자 제거로 치료할 분야가 많다고 주장하면서 우리 생명윤리법의 개정을 원하는 과학자가 원하는 소통은
무엇일까? 유전자 교정을 방해하는 법을 교정하려 하니, 방해하지 말라는 점잖은 요구일까?
당신들 때문에 치료할 수 있는 질병으로 고통받을 사람을 생각하라는 걸까? 황우석 전 교수의 언설(言說)이 떠오르는 순간이라면 지나친 걸까?
생명윤리학자 단 한 사람이 포함된 이 날 토론회는 우리나라에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도입하도록 애를 쓴 생명윤리 관련 시민단체의 참여를 일절 요구하지 않았다.
그 토론회를 생명윤리학자와 사전에 충분히 협의하며 기획하지 않은 건 물론이다.
유전자 가위 연구를 희망하는 과학자들이 운집한 토론회는 차라리 어떤 부흥회장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부흥회 비슷한 토론회에 참여한 생명윤리학자의 구속력은 당연히 미약했다. 과학자가 불신 받는 사회 분위기는 기술을 신봉할 뿐 부작용에 책임지거나 반성하지 않는 과학자가 자초했다고 지적했으나, 유전자 가위 기술이 미칠 윤리와
환경의 위험성을 제기하지 않았다.
과학자의 오만은 지적했지만, 과학의 비합리적 낙관주의를 비판하지 않았다.
나머지 참여자들은 과학자가 설계하는 가능성을 믿고 연구비를 넉넉히 투자해야 다른 나라에 밀리지 않는다는 식으로 일관했기에 황우석 전 교수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유방암 가능성을 높이는 유전자를 보유했다는 이유로, 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예방적 절제 수술을 받았다.
2013년 일인데, 그 여파는 2년 만에 예방적 유방 절제 수술을 5배, 난소 절제 수술은 4.7배 증가하게 했다고 국내
한 언론이 전했다.
한데 문제의 유전자는 평생 건강하게 사는 사람에게 더욱 높다는 사실은 생략했다.
유전자가 있다고 당연히 암으로 진행되는 게 아닌데, 배아 단계에서 유전자를 제거하는 유전자 가위 기술은 암을 발본색원할까?
이러다 노화나 치매 유전자를 찾아내겠다고 호언할까 겁난다.
세상에 못된 개는 없다고 한다.
덩치와 관계없이 훈련에 따라 송곳니 드러내며 사냥감을 위협하거나 순한 맹도견으로 길들일 텐데, 유전자는 교정하면 불량률이 개선되는 물질일 따름일까?
유전자는 환경과 긴밀히 관련돼 발현한다.
돌연변이는 대부분 발암과 비슷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데, 돌연변이가 빈발하는 환경을 개선할 생각 없이 유전자
가위를 번득이는 세상은 섬뜩하다.
사고가 빈발하는 낭떠러지를 놔두고 병원 시설을 개선하는 게 옳은가?
개선 운운하며 집단의 유전 다양성을 단순하게 처리하는 기술은 어떤 내일을 안내할까? 연구자와 병원은 큰돈을
벌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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