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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22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박근혜·박근령·박지만씨
(오른쪽부터).
ⓒ연합뉴스

▲ 박근혜 5촌 살인사건의 시작은 막대한 재산을 놓고 벌인 박근령,박근혜,박지만
남매의 재산 다툼이었다.
살해당한 박근혜 5촌 죽어야 할 이유 있었나
현재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박근혜 5촌 살인 사건’을 재수사 중이다.
2011년 9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5촌 조카 박용수씨가 또 다른 5촌 박용철씨를 살해하고 자살했다고 강북경찰서가
결론 내린 사건이다.
하지만 2012년 <시사IN> 보도를 통해 알려진 사건의 경위는 경찰 발표에 의문을 제기했다(<시사IN> 제273호 ‘친척
간 살인 사건 새 의혹’ 기사 참조). 사용된 흉기에서 살인자로 지목된 박용수씨의 지문을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은
이들의 마지막 행적이 담긴 □□노래방 안팎에 CCTV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수사하지 않았다.
사건 발생 직후부터 신동욱 공화당 총재는 박용철씨의 죽음이 석연찮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박용철씨가 자신의 재판에서 유리한 증인으로 나올 수 있었는데, 그 직전에 죽음을 맞았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신동욱 총재는 박근혜·박지만 남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오른쪽 표 참조).
문제가 된 신씨의 주장은 크게 세 가지였다.
△2007년 육영재단 폭력 사태는 박지만이 사주하고 박근혜가 묵인했다
△2007년 칭다오 납치 사건의 배후는 박지만이다
△박근혜가 최태민의 친·인척과 여전히 관계를 유지하고 이들을 통해 육영재단을 차지하기 위해 사주했다.
이상은 허위 사실이기에 박근혜·박지만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었다.

신동욱 총재는 박용철씨와 사건 발생 1년 전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신씨가 자신의 재판 증거로 제출한 2010년 8월12일 신동욱과 박용철 간 전화통화 녹취록에는 ‘죽는다’는 말이 여러 차례 나온다.
“이제 신변이 위험해졌다고 우리 조카님 같은 경우는 조카님 입만 막으면 영원히 묻을 수도 있고, 뭐 어떻게 될지 모
르겠는데 그런 상황이지 않습니까(신동욱).” “그야 뭐 판단은 제가, 뭐 그렇게, 그거야 그렇게 내가 쉽게 당하는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데 천불이 나서 제가 제 자신을 못 참겠는 거예요(박용철).”
신 총재는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한 걸까? 박용철씨는 육영재단을 둘러싼 박정희 가문 송사의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이다. 원래 박용철씨는 신 총재와 반대편에 서 있었다.
2007년 11월 육영재단 폭력 사태 당시 박근령씨를 비롯해 박근령 측 인물들의 출근을 힘으로 막았다.
이 일로 박용철씨는 2009년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또 신 총재가 주장하는 2007년 7월 중국 칭다오 납치 사건에도 개입했다. 박용철씨는 칭다오 현장으로 신 총재를 데리고 갔다가 먼저 한국에 돌아왔다.
그리고 검찰 쪽 증인으로 신동욱 재판에 나왔다. 2010년 5월, 박용철씨는 신 총재가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고 증언했다.
그랬던 박용철씨가 돌연 심경 변화를 토로한다.
2010년 7월28일 박용철씨는 이○○ 전 육영재단 법인실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장님(박지만)의 지시라는 테이프가 있다”라는 양심선언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전 부장이 당시 박용철씨와의 전화 통화에 대해 2010년 9월1일 법정에 나와 증언했다.
“박용철씨가 ‘신 교수를 죽이라고 박지만 회장이 이야기한 내용을 녹음한 것이 있고, 통장으로 비용을 부쳐준 증빙이
있다’라고 말했다.”
육영재단 폭력 사태에서 박근령씨와 박지만 회장은 대립하던 사이였다.
이○○ 전 부장은 박근령씨 측에 속했는데, 박지만 회장 측이던 박용철씨가 ‘적진’에 전화를 걸어 ‘테이프’를 언급한
셈이다.
이를 전해들은 신 총재가 2주 후인 2010년 8월12일 전화를 걸어 박용철씨에게 ‘진실’을 말해달라며, 안 그랬다가는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
박지만 회장 쪽에 불리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입을 연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취지였다.
이 통화에서 박용철씨는 박지만 회장 쪽에 강한 서운함을 토로했다.
“버림받았고, 거기다 소송하고 뭐 변호사비를 한 번 대줍니까?
거기서 뭐 저한테 뭐 벌금을 한번 내준 적 있습니까?
그냥 내버려놓고 사람을 나쁜 놈 만들어놓고.” 박용철씨는 2008년 5월부터 2009년 2월까지 육영재단 내 어린이회관
관장을 지내다 물러났다.
다만 테이프를 거론하며 말한 ‘양심선언’ 내용이 무엇인지는 말을 피했다.
2007년 육영재단 폭력 사태 당시, 정용희씨에게 돈 2000만원을 받았다는 사실만 인정했다.
‘박지만 회장님 뜻이다’라는 녹음 테이프
신동욱 총재로서는 자신의 재판에 중요한 진술이었기에, 통화 나흘 후인 2010년 8월16일에는 신동욱·박근령·박용철
세 사람의 만남을 주선했다.
박용철씨는 여전히 양심선언에 대해 함구하면서도 테이프의 존재는 인정했다.
상황의 변화가 생기자, 이번에는 신동욱 변호인 쪽이 증인으로 박용철씨를 다시 신동욱 재판에 부른다. 2
010년 9월이다. 법정에 나온 박용철씨는 “정용희 비서실장이 나에게 ‘박지만 회장님 뜻이다’라고 이야기한 것을 내가
녹음한 테이프가 있다. …
테이프라고 할 것도 없고 내가 핸드폰에 녹음해놓은 것인데 핸드폰을 바꾸면서 캐나다에 가져다놓았다”라고 증언했다. 또 육영재단 폭력 사태를 두고 1회 법정 진술(2010년 5월 검찰 측 증인)에서는 “정용희의 지시”라고 했지만, 2회
법정 진술(2010년 9월 변호인 측 증인)에는 “정용희가 박지만의 지시라고 이야기했다”라고 말을 번복했다.
신 총재 처지에서는 무죄로 한발 다가가는 듯했지만, 재판은 한동안 멈췄다.
신동욱 총재 쪽 변호인이 사임하고 각 증인이 나오지 않으면서 그해 12월까지 진행되던 재판은 2011년 7월이 되어서야 다시 시작됐다.
그리고 새로 선임된 조성래 변호사는 박용철씨를 증인으로 한 번 더 불러달라고 2011년 8월 재판부에 신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박용철씨는 나타나지 못했다.
그는 9월6일 숨진 채 발견되었다. 다음 재판 기일은 9월27일에 잡혀 있었다.
신 총재는 이후 1·2·3심에서 유죄가 인정돼 징역 1년6개월을 복역했다.
2012년 2월 1심 재판부는, 2007년 육영재단 폭력 사태를 박지만 회장이 사주했다는 신동욱 총재의 주장만 무죄라고
판단했다.
박 회장이 2007년 육영재단 폭력 사태 이후에도 폭력을 쓴 이들에게 3억원을 빌려주면서 차용증에 채권자도 쓰지 않은 점 등 모두 7가지 이유를 들어, 신 총재의 주장이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 밖의 ‘중국 칭다오 납치 사건’ 등에 대한 신 총재의 주장은 모두 허위라고 적시했다.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최태민의 친·인척과 여전히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주장도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2004년부터 최태민의 친·인척과 연락을 완전히 단절했다는 박근혜 측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 진술은 ‘문고리 4인방’ 이춘상 전 보좌관(2012년 12월 사망)과 박근혜 청와대 정무수석까지 지낸 핵심 친박계 김재원 전 의원 등이 했다. 1
심 판단은 3심까지 그대로 유지되었다.
박근혜 대선 가도의 장애물로 꼽혔던 신 총재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13년 2월21일 만기 출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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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14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이 유가족 인사를 하고 있다.
2017.11.14.
육영재단 폭력 사태 경과
2007.2 신동욱·박근령 약혼
2007.7 ‘중국 칭다오 납치 사건(신동욱 주장)’ 발생
2007.11 육영재단 1차 폭력 사태 발생
2008.10 신동욱·박근령 결혼
2009.1 육영재단 2차 폭력 사태 발생

2009년 1월4일 벌어진 육영재단 2차 폭력 사태로 파괴된 사무실 내부 모습.
ⓒ연합뉴스
2009.4 육영재단 1차 폭력 사태로 정용희·박용철 등 기소
2009.7 육영재단 1차 폭력 사태로 정용희·박용철 등 1심 유죄
2010.1 박근혜·박지만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신동욱 불구속 기소
2010.5 신동욱 재판의 박용철 1회 증언 “육영재단 폭력 사태 정용희 주도”
2010.7 박용철이 이○○에게 전화해 ‘양심선언’ 계획 언급했다는 주장이 나옴
2010.9 신동욱 재판의 박용철 2회 증언 “정용희가 ‘박지만 회장님 뜻이다’라고 말한 녹음 있다”
2011.8 신동욱 추가 구속 기소
2011.9 박용철 피살
2012.2 신동욱 1심 유죄(징역 1년6개월)
2012.8 신동욱 2심 유죄(징역 1년6개월)
2012.11 신동욱 3심 유죄(징역 1년6개월)
2013.2 신동욱 만기 출소

‘박근혜 5촌 살인 사건’ 핵심 증인 단독 인터뷰
마성태씨는 ‘박근혜 5촌 살인 사건’의 핵심 증인이다.
사건을 재수사 중인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의 조사를 받기 직전 <시사IN> 취재진과 만나 진실을 털어놓았다.
마성태씨(53·사진)는 2009년 박지만 EG 회장의 비서실장 정용희씨에게 “박용철을 혼내주라”는 청탁을 받은 적이 있다. 그는 이를 ‘살인 청부’로 받아들이고 거절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5촌 살인 사건의 전사를 겪은 셈이다.
현재 5촌 살인 사건을 재수사 중인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10월31일 마씨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그 직전 <시사IN> 취재진과 만났다.
경찰에 할 말을 언론에 전해, 수사가 제대로 될 수 있게 하겠다며 처음으로 이름과 얼굴을 걸고 공개 인터뷰했다.
그는 5촌 살인 사건의 뿌리로 지목되는 육영재단 폭력 사태와 관련된 내부자였다. 2009년 1월 육영재단 폭력 사태 당시 친박지만 인사로 채워진 재단 쪽 용역업체 책임자였다. 당시 마씨는 박근령 쪽 인사를 ‘정리’하는 일을 했다. 육영재단 교육부장을 맡았지만 3개월 만에 ‘털고’ 나왔다. 마씨는 박용철씨 피살에는 육영재단 분쟁이 자리 잡고 있다고 여겼다.
처음에 ‘정의 대 불의의 싸움’이라 여겼다.
육영재단은 2007년에도 폭력 사태가 있었다.
그때 정용희가 진두지휘했다. 한센인을 동원해 박근령을 끌어냈다.
무슨 부탁이었나?
2009년 봄 정도로 기억하는데, 강남의 한 사무실에서 미팅을 끝내고 육영재단으로 돌아가는 차 안이었다.
명시적으로 죽여달란 말을 한 건 아닌데.
당시 정용희와 육영재단 고문 이○○이 만나면 “박용철이 그 ××는 신동욱 그 ××를 못 죽여서 화근을 여기까지 데리고 왔냐”라고 말하곤 했다. 신동욱이 주장하는 2007년 칭다오 납치 사건 같은 일이 있었더라.
2년 후 ‘5촌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정용희가 나한테 한 말을 실현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4일 방송된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의 ‘블랙캐비닛’ 코너에서 김어준과 ‘그것이알고 싶다’ 출신 배정훈 PD는
박근혜 전 대통령 5촌 살인 사건은 지난 2011년 9월 6일 북한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5촌 조카 박용수 박용철이
배정훈 PD는 “박용철이 사망한 3KM 떨어진 곳에서 박용수가 목을 맨 채 죽어있었다”라며 “박용철은 박근혜의 경호를 맡은 인물이다.
이 사건은 초기부터 범행을 둘러싼 이상한 점들에 관한 보도가 줄지었다.
지난해 말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두바이에서 만난 증인의 제보를 공개한 바 있다.
이에 배정훈 PD는 “엄청난 제보를 들고 왔다. 사건을 완전히 뒤집을 수 있는 제보다”라며 새로운 제보자의 육성을
이 제보자는 “나는 거기를 5, 6번 갔다.
이어 “정확히 본 것은 조수석에서 한 명이 나왔고, 상석, 조수석 뒷자리에서 한 사람, 운전석 뒷자리에서 한 사람이
사진=SBS 캡처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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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6일 북한산국립산 사무소 근처에서 박용철씨가 살해된 채로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두 사람이 금전 문제로 다투다가 박용수가 박용철을 살해한 후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결론을
박근혜 5촌 살인사건의 시작은 육영재단
육영재단을 놓고 박근령과 박근혜씨가 대립하던 시기, 박용철은 박지만의 최측근으로 폭력을 동원해 당시 박근령
박용철은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박근혜씨의 총괄 경호를 맡기도 했습니다.
2010년 박근혜, 박지만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신동욱의 재판이 열리고 박용철이 증인으로 나옵니다.
9월 27일에 증언을 할 예정이었던 박용철은 9월 6일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됐고, 결국, 신동욱은 증거를 내놓지 못해
결국, 박용철이 죽음으로 박지만의 신동욱 살해 지시 의혹과 육영재단 폭력 사태의 진실은 알 수가 없게 됐습니다.
박용철을 살해했다는 박용수, 진짜 자살했는가?
경찰은 박용수가 박용철을 살해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박용수의 정확한 살해 동기는 모릅니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박용수가 박용철을 혼자 살해한 것도 아니고, 그의 죽음도 자살이 아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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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이라면 본인 두 손으로 나무 위로 줄을 묶고 목에 걸어 사망했을 것입니다.
박용수 자살 의혹을 풀어줄 단서로 보이는 '빨간 타올'은 공교롭게도 증거 감정 목록에서 사라졌습니다.

▲ 시반: 사람이 죽은 후에 피부에 생기는 반점. 혈관 속의 혈액이 사체의 아래쪽으로 내려가서 생기는 현상으로, 이를 통해 사망 시간을 추정할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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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병도 | |
경찰의 수사결과로는, 박용수가 박용철을 새벽 1시 이후에 살해하고 2시간 정도 산행 뒤 자살했다면 새벽 3-4시
그러나 경찰 수사와 상반된 시반만 놓고 본다면 박용수가 자살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박용수의 단독 범행을 믿기 어려운 이유
경찰은 박용수가 박용철을 살해했다고 발표했습니다.

▲ 박용철을 박용수가 혼자서 죽였다고 보기는 어려울 정도로 범행 흉기가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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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철을 살해한 범행도구로 보이는 망치와 칼에서는 박용철의 혈흔은 나왔지만, 박용수의 지문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문도 없이 박용수가 범행 도구를 이용해 박용철을 살해했다고 단정한 경찰이 이상해 보일 정도입니다.
경찰은 박용수의 단독 범행이라고 밝혔지만, 법의학자의 의견은 달랐습니다.
법의학자는 "졸피뎀과 디아제팜에 알코올까지, 거의 기절상태인 대상을 죽이고자 했다면 범행 무기는 단순해도 되고, 한 명이 무기 여러 개를 활용해 사망케 한 사례가 많지 않다"라는 의견을 냈습니다.
박용수가 박용철을 혼자서 살해하려고 했다면 망치로 내려치거나 칼로 찌르거나 한 가지 방법을 택했을 것입니다.
특히 박용철의 머리를 5-6곳 타격한 망치와 찔린 상처 7곳은 3센티 과도, 대형V자 찔린 상처는 6센티와 7센티로 더 큰 칼이 범행 도구로 쓰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경찰의 엉터리 수사, 누굴 위해서인가?

▲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각종 증거는 물론이고 CCTV조차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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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철 살해 현장에 있었던 신원미상의 인물이 폈던 담배꽁초(박용수는 담배를 피우지 않음)는 물론이고, 박용수가
특히 박용수가 썼다는 '유서'는 자필로 확인되지 않았으며, 유서와 유서 종이를 뜯었던 노트, 수첩 지문감식도 하지
진선미 의원은 "대통령 선거를 1년 정도 앞둔 시점 유력 대선후보 주자였던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5촌 형제 두 명이나 사망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초기부터 단정하고 수사가 진행됐다. 뭔지 모르겠지만 급했다.
청부 살해 지시를 받았다는 목격자의 증언이나 타살 배후자로 지목된 사람도 나오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3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실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박근혜 5촌 살인사건’과 관련해 당시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박용수씨의 현장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진 의원은 당시 현장 사진에 있었던 수건이 증거 목록에서는 사라졌다면서 타살 가능성을 제기했다.
ⓒ정의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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