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두달 앞둔 12일 강원 평창군 올림픽 개폐회식장의 모습
(사진=노컷뉴스)

<사진=블룸버그통신>
지난 2006년 남북한 선수단이 이탈리아 토리노의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열린 제20회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이동칠 기자 = 북한이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대회 흥행에 파란불이 켜질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1일 신년사를 통해 "대표팀 파견을 포함해 필요한 조처를 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남북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평창올림픽 참가 가능성을 내비쳤다.
북한의 최종 참가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김정은 위원장의 대표단 파견 가능성 시사는 '평화올림픽' 개최의
토대를 마련하고 국내외적으로 올림픽 붐업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하면 전 세계적인 관심을 집중시키는 데다 북핵 도발을 우려하는 참가국 선수들의 평창행에 대한 '불안 심리'를 상당 부분 불식시킬 수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열린 국제 종합 스포츠대회에 북한이 선수단을 파견한 건 세 차례 있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는 18개 종목에 선수 184명, 임원 132명 등 총 316명을 파견했고, 여기에 응원단 280명과
취재진 및 만경봉호 선원 등을 포함하면 총 703명이 부산을 찾았다.


대회 기간 부산을 방문한 북한의 '미녀 응원단'은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북한은 이듬해인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225명(선수 94명)의 선수단을 파견해 종합 9위에 오르는 수확을 올렸다.
이어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도 14개 종목에 걸쳐 부산 아시안게임보다 다소 적은 선수단 273명을 파견해 경색된
남북관계에서 긴장 완화에 한몫 했다.
북한이 이번 평창올림픽에 어느 정도 규모의 대표단을 파견할지 아직 미지수다.
북한은 유일하게 출전 자격을 얻은 피겨스케이팅 페어 종목(렴대옥-임주식)에서 출전권을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로썬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와일드카드'를 받아야 피겨와 쇼트트랙 등 일부 종목에서 참가할 수 있을 전망이다.
북한이 선수들까지 파견할 경우 외국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한편 개회식에서 남북 공동입장 추진을 포함한 숱한 이슈를 만들어낼 전망이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의 불참과 '도핑 스캔들'에 휩싸인 러시아가 출전금지 처분을 받아 선수 개인 자격으로 참가하게 되면서 흥행에 직격탄을 맞았던 평창올림픽은 북한이 참가하면 홍보에도 새로운 불씨를 지필 것으로 기대된다.
2016년 8월 5일(현지시간) 브라질 마라카낭 주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개막식에서 북한선수단이 입장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이 남북한 긴장 완화에 큰 역할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국전쟁 이후 남북한 사이의 회담은 1971년까지 단 두 차례에 불과했는데, 그 중 하나가 체육 관련 회담이었다. 첫 회담은 1954년 4월 한국전쟁 휴전협정과 관련한 제네바 정치회담이었고, 또 하나가 1964년 도쿄 하계올림픽 단일팀 구성과 참가를 위해 1963년 스위스 로잔과 홍콩에서 열린 체육인 접촉이었다.
60년대…올림픽 국호 표기 놓고 반발해 선수단 철수
1960년대 올림픽에서 북한의 참가를 둘러싼 중요한 이슈는 남북한 단일팀 구성 여부와 북한의 명칭 표기였다.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국가 1올림픽위원회(NOC)’ 원칙에 따라 분단국에는 선수단 통합을 요구했다.
이에 1950~60년대 동서독은 올림픽에 ‘독일연합(United Team of Germany)’이라는 단일팀으로 참가했다.
한국의 경우 1947년 대한올림픽위원회(KOC)를 발족해 IOC 총회의 승인을 얻었다.
북한은 1950년대 IOC 가입을 시도했으나 KOC 때문에 실패를 거듭하다 1957년에야 ‘북한 NOC의 활동범위를 북한
지역에 국한시키고 올림픽 참가는 한국 KOC의 일원으로 한다’는 조건으로 IOC의 승인을 받을 수 있었고, 1963년
IOC에 공식 가입하게 됐다.
1964년 도쿄 하계올림픽을 앞두고 남북한은 단일 선수단 결성을 위해 세 차례 회담을 가졌으나 어떤 합의도 얻지
못했다.
그러다 북한은 1964년 1월 열린 인스부르크 동계올림픽에 처음으로 참가했다.
선수단 규모는 스피드 스케이팅, 크로스컨트리 등 13명에 불과했지만 한필화 선수가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3,000m에서 은메달을 따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북한은 올림픽에서 공식 국호로 ‘North Korea’ 대신 ‘조선(Chosun)’ 명칭을 사용하겠다고 주장하기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어 10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에도 북한
은 144명의 개별 선수단을 파견했지만 경기에 참가한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한국의 국호는 ‘Korea’로 표기된 반면북한은 애초 요구했던 ‘DPRK(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대신 ‘North Korea’로 표기됐고, 이에 반발한 북한이 개막 직전 선수단을 철수시켰기 때문이다.
북한의 국호 표기를 둘러싼 IOC와의 줄다리기는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도 벌어졌다.
멕시코시티 올림픽 직전 IOC는 동독과 대만의 경우 희망 국호를 즉시 사용하도록 했으나 북한에 대해서는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는 ‘North Korea’를 쓰고, 이후 대회부터 ‘DPRK’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결정에 반발해 올림픽 참가를 위해 쿠바에 체류하던 북한 선수단은 또다시 철수했다.
북한은 1972년 뮌헨 하계올림픽에서부터 ‘DPRK’를 국호로 사용할 수 있었다.
2004년 8월 22일(현지시간) 그리스 아테네 갈라치 올림픽홀에서 열린 아테네 올림픽
탁구 여자단식 결승에서 남북한 선수들이 북한의 김향미 선수를 함께 응원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80년대…이념으로 갈린 반쪽 올림픽
1980년대 올림픽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국가간 이념 대결의 장이었다.
특히 규모가 큰 하계올림픽은 이러한 경향이 더 두드러졌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이유로 1980년 모스크바 하계올림픽에는 미국 등 서방 국가 상당수와 한국, 중국, 일본 등이 불참했다.
북한은 이 대회에서 은메달 3개와 동메달 2개를 땄다.
4년 뒤 미국에서 열린 로스앤젤레스 하계올림픽에는 반대 현상이 벌어졌다.
소련의 주도로 14개 사회주의 국가들이 보이콧을 선언한 것이다.
앞서 남북한은 1983년 아웅산 테러사건 이후 관계가 극도로 경색된 가운데에서도 LA 올림픽 단일팀 구성을 위해
1984년 4~5월 체육회담을 열었으나 성과 없이 끝났고, 결국 북한도 올림픽 보이콧을 선언했다.
1988년 9월 17일 서울에서 열린 하계올림픽 개막식.
한국일보 자료사진
88 서울올림픽 공동 개최 요구하다 결국 보이콧
북한은 1988년 서울올림픽에도 불참했다.
1981년 한국이 88년 올림픽을 서울에 유치했을 때 북한은 한반도가 아직 전시 상태라는 이유로 개최지 변경을
요구했다.
1984년 소련이 LA 하계올림픽을 거부하자, 북한은 서울 올림픽 개최에 반대하기도 했다.
개최지 변경 요구가 먹히지 않자 북한은 1985년부터 남북한 공동개최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남북한 사이의 민간 교류가 거의 불가능했던 당시 접촉의 계기로 삼자는 주장이 남한에서도 일부 지지를 얻기도 했다.
IOC는 공동개최는 불가, 일부 종목의 분산개최는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북한은 23개 종목 중 8개 종목 경기를 북한에서 , ‘서울ㆍ평양 올림픽’이라는 공동개최 명칭을 사용할 것을 주장했다.
1985년부터 1987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남북한 회담이 이뤄졌으나 분산 개최 여부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
결국 소련이 서울 올림픽 참가를 발표했음에도 궁지에 몰린 북한은 불참을 선언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북한, 역대 동계올림픽 성적은 어땠나
북한은 1964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개최된 제9회 동계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동계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이후에는 출전과 불참을 오락가락했다. 2
014년 소치 올림픽까지 총 14차례 올림픽 중 출전한 대회는 8차례였다.
평창올림픽에 나서면 9번째가 된다.
첫 출전인 인스브루크 동계올림픽에서 북한은 스피드 스케이팅과 크로스컨트리 스키 두 종목에 선수 13명을 파견했다. 북한은 첫 올림픽 무대에서 기대 이상 성과를 거뒀다.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3000m에 출전한 22세 한필화가 은메달을 따냈다.
이 메달은 북한이 역대 동계올림픽에서 거둔 최고 성적이다.
1968년 프랑스 그르노블 대회에 불참한 북한은 1972년 일본 삿포로 올림픽에 한필화 등 남녀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6명이 나섰으나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30대에 접어든 한필화는 9위에 머물렀다.
1976년 인스부르크 대회와 1980년 미국 레이크 플래시드 대회에 불참한 북한은 1984년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개최된 제14회 동계올림픽에 다시 나타났다.
다음 대회인 1988년 캐나다 캘거리 올림픽까지 연속 출전했으나 메달을 따지는 못했다.
북한은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 대회에서 역대 두 번째 메달을 따냈다. 황옥실이 여자 쇼트트랙 500m에서 3위를
차지한 것이다.
북한은 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대회에 불참했고 1998년 일본 나가노 대회에서 다시 참가했다.
2002년 캐나다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후 다시 동계올림픽 무대에 나선 것은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 올림픽이다.
당시 북한과 한국은 한반도기를 들고 동계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역사적인 남북한 공동 입장을 이뤄냈다.
북한 남자 피겨스케이팅 한정인과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이보라가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했고 선수단은 모두 흰색 단복을 입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이 금메달 6개,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 등 역대 최고 성적을 냈다.
반면 남자 2명, 여자 4명을 두개 종목에 파견한 북한은 리향미가 쇼트트랙 여자 1000m에서 15위에 랭크된 게 최고
성적일 뿐 메달은 하나도 따지 못했다.
북한은 2010년 캐나다 밴쿠버 대회에서도 노메달에 머물렀고 2014년 러시아 소치 대회에는 출전권을 따낸 선수가 없어 출전하지 못했다.
이처럼 북한이 역대 동계올림픽에서 따낸 메달은 2개에 머물고 있다.
반면 총 10차례 출전한 하계올림픽에서는 총 54개 메달(금 16·은 16·동 22)을 따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는 2018년의 새해 첫날 새벽 강릉 경포해변에 설치된 오륜마크 조형물 위로 태양이 솟아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주기인 17일에 김일성·김
정일 시신이 안치된 평양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8일 보도했다. 참배하는 김정은의 모습과 김일성·김정일 입상에 김정은 명의의
꽃바구니가 놓인 모습.
연합뉴스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가 미칠 ‘시너지 효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1일 발표한 신년사로 북한의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는 사실성사된 것이나 다름없다. “대표단 파견을 포함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말은 북측 관계자들에게 내리는 지침이며, 남측에는 구체적인 회담을 제안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통한 한반도 평화 증진을 줄곧 강조해 왔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토마스 바흐 위원장도 평양 방문 의사를 밝히며 북한의 참가에 적극적이었다.
정부는 김 위원장의 신년사를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 선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노태강 문체부 제2차관은 이날 경향신문과 통화에서 “북한이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북한 참가를 통해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트고, 한반도 평화를 구현하는 평화 올림픽의 시나리오 중 하나가 확정된 것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노차관은 “문체부와 통일부를 비롯한 관계부처와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는 북한이 참가할 경우와 불참할 경우에 대비해 올림픽을 준비해 왔다”고 말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이희범 위원장도 “북한 대회 참가 논의를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향후 북한 참가에 대한 논의는 문체부와 통일부 등 외교안보부처간 협의를 통해 진행된다.
남북실무접촉에 이어 당국자 회담, 고위급 회담 등 과거 남북 체육회담 전례와 비슷한 절차를 거칠 것으로 보인다.
노차관은 “구체적인 제안이 오면 IOC와 협의를 통해 하나씩 풀어가겠다”고 말했다.
남북 체육회담 주체가 될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이기흥 위원장도 “북한의 참가의사를 대환영한다”면서 “향후 정기적인 남북체육교류로 이어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는 대회 붐업에 크게 도움이 될 전망이다.
평창올림픽의 5대 목표 중 하나인 ‘평화 올림픽’이 실현되면 각국 대표선수단과 ‘올림픽 여행’을 주저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불안 심리도 깨끗이 해소되리라 기대된다.
올림픽에 대한 해외 미디어의 관심이 몇 배 이상 증폭되는 효과도 예상된다.
북한이 어느 정도 규모로 선수단을 파견할지는 미지수다.
올림픽 출전 신청기간이 모두 끝나 IOC와 각 국제경기연맹(IF)간 협의를 통한 ‘와일드 카드’ 혜택을 얻어야 하기 출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쇼트트랙, 피겨, 스피드스케이팅과 스키 등 몇개 종목에서 출전권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IOC가 북한의 출전에 큰 관심을 쏟으며 와일드카드 부여가능성을 남겨왔고 이에 반대하는 IF도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했다.
부산, 대구에는 ‘미녀 응원단’을 파견해 세계적으로도 큰 관심을 끌었다.

마크 애덤스 IOC 대변인 /사진=AFP연합
김정은 위원장은 1일 2018년 신년사 육성 연설에서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표단 파견을 포함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이는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와 관련한 북한의 첫 공식 언급이다.
이에 마크 애덤스 IOC 대변인은 2일(한국시간) 인사이드더게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한국 정부, 북한 국가올림픽위원회(NOC)와 긴밀히 공조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에 관한 북한 지도부의 발언을 열린 방식으로 고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희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도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평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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