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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사

6월항쟁의 주역 文에게 특별한 영화 '1987'…"촛불로 완성"



영화 '1987' 포스터. [중앙포토]


영화 '1987' 포스터.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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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교정의 이한열 동산에는 이한열 열사를 숭고한 삶이 기록된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2018.01.08

 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교정의 이한열 동산에는 이한열 열사를

 숭고한 삶이 기록된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2018.01.08


        







文 대통령 “노력하면 역사 바뀐다… 6월 항쟁 완성한 게 촛불항쟁” 기사의 사진                                    

            


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7일 서울 용산구의 한 영화관에서 영화 ‘1987’을 관람한 뒤 깊은 생각에 잠겨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6월항쟁의 주역 文에게 특별한 영화 '1987'…"촛불로 완성"

[the300]자서전 통해 "6월항쟁, 가장 높이 평가받아야 할 운동"



"나는 6월항쟁이야말로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사에서 가장 높이 평가받아야 할 운동으로 생각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자서전인 '운명'의 한 구절이다.
그리고 문 대통령은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6월 민주항쟁을 다룬 영화 '1987'을 보고 결국 눈물을 보였다.
 본인의 말 대로라면 "영화 보는 내내 울면서 아주 뭉클한 마음"이었다. 특별히 "국민들께서 이 영화를 많이 봐주시기
바란다"며 "이 영화는 1000만 관객을 넘기겠다는 확실한 예감이 든다"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이 6월항쟁을 역사적으로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운명'에 더 자세하게 나와있다. 문 대통령은 "4·19나 광주
항쟁은 다분히 우발적이거나 자연발생적이었던 측면이 있다"며 "6월항쟁은 명확한 목표를 설정한 '국본'이란 연대투쟁기구가 결성돼, 그 지휘 하에 직선제 개헌의 목표를 쟁취할 때까지 시종일관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운동을
 전개했다"고 밝혔다.

개인적으로도 1987년 당시 문 대통령은 '국본'의 부산본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활동했다.
노 전 대통령이 상임집행위원장이었고, 문 대통령은 상임집행위원이었다. 문 대통령은 '운명'을 통해 "6월항쟁의 중심을 서울이 아닌 부산으로 평가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며 "부산에서 제일 먼저 국본을 결성했고 기간 내내 시위를 가장 치열하게 전개해 타 지역 시위를 촉발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6월항쟁은 역사적, 개인사적으로 모두 문 대통령에게 특별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새해 첫 문화행사 관람 대상으로 영화 '1987'을 택한 것도 이해가 간다. 특히 문 대통령은 '촛불혁명의 결과로 당선된 대통령'이라는 점을 각별하게 생각하고 있다. 6월항쟁에서 촛불혁명까지 이어져 오는 흐름에서 역사적 소명을 갖고 있다는 인식이다. 

이날 영화를 본 후 이같은 소회를 솔직하게 밝혔다. 문 대통령은 "영화 속 1987년 6월항쟁으로 우리가 '택시운전사'란 영화로 봤던 택시운전사의 세상(권위주의 시대), 그 세계를 6월항쟁으로 끝을 냈다"며 "그리고 6월항쟁 이후에 정권교체를 하지 못해서, 여한으로 남게 된 6월항쟁을 완성시켜준 게 촛불항쟁"이라고 말했다.





1987년 6월 27일 당시 노무현 변호사(가운데)와 문재인 변호사(왼쪽에서 세 번째)가 시위 도중 고가도로에서 떨어져 숨진 이태춘 열사의 노제를 이끌고 있다.  /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제공



1987627일 당시 노무현 변호사(가운데)와 문재인 변호사(왼쪽에서 세 번째)

시위 도중 고가도로에서 떨어져 숨진 이태춘 열사의 노제를 이끌고 있다.


  /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제공



부산시위의 절정을 이룬 1987년 6월 18일 부산 서면에서 시민들이 경찰과 대치하며 ‘독재타도’를 외치고 있다. 이날 시위 참가자는 3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제공


부산시위의 절정을 이룬 1987618일 부산 서면에서 시민들이 경찰과 대치하며

 독재타도를 외치고 있다. 이날 시위 참가자는 3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제공




【서울=뉴시스】전진환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오전 영화 '1987' 관람을 위해 서울 용산구 CGV용산를 찾아
영화관람에 앞서 故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 씨로부터 책 '1987 이한열'을 선물 받고 있다.
故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왼쪽부터) 씨, 배우 강동원, 故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 씨.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부산에 광주의 참상을 알리는 데 앞장섰고, 6월항쟁의 주축으로 활동했으며, 촛불혁명으로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른 문 대통령이 영화 '1987'을 통해 강조하려 한 메시지는 '세상은 변한다'였다. 속도는 느릴지 몰라도 평범한 사람들이 주도하는 변화는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이다.

문 대통령은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마음에 울림이 컸던 대사가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였다"며 "실제로 6월항쟁,
또 그 앞에 민주화 투쟁의 시기에 민주화 운동하는 사람들을 가장 힘들게 했던 말이 부모님들이나 주변 친지들이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느냐'고 한 그런 말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겨울 촛불집회에 참석할 때도 부모님이나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느냐'는 말을 들으신 분이 많을 것"이라며 "지금도 '정권이 바뀌었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게 있냐',
그렇게들 이야기하시는 분도 있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오늘 이 영화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금방금방은 아니지만, 긴 세월을 두면서
뚜벅뚜벅 발전해오고 있다.
우리가 노력하면 세상이 바뀌는 것"이라며 "세상을 바꾸는 사람은 따로 있지 않다. 우리가 함께 힘을 모을 때,
 그 때 세상이 바뀐다라는 것을 영화가 보여주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생각이 '세상을 바꾸기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맞춰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일정이었다.
실제 문 대통령이 이날 시종 강조한 내용도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같은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문 대통령은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규명해서 책임 있는 사람들, 벌 받을 사람들이 확실히 책임
지고 벌 받게 해야 한다"며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청와대 제공)






文 "6월항쟁은 촛불항쟁으로 완성, 역사는 발전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7일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정권교체를 하지 못해 여한으로 남게 된 것을 완성시켜준 게 촛불항쟁"
이라며 "이렇게 역사는 긴 세월을 두면서 뚜벅뚜벅 발전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용산CGV에서 시민들과 함께 한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꿨던 격동의 한 해를 재현한 영화 '1987'을 관람한 뒤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정말 영화 보는 내내 울면서 아주 뭉클한 마음이었다"며 "가장 마음에 울림이 컸던 대사가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였다"고 소개했다.  
1987년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부산지역 집행위원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 명동성당 농성 해산 이후에도 고(故)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부산지역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다.

문 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은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비민주적 요소와 잘못된 관행 등 역사를
 바로잡는 '적폐청산'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다진 것으로 풀이된다.









이한열 어머니 만난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구의 CGV용산에서 영화 1987
  관람하기 전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왼쪽)로부터 책 1987 이한열을 선물로
받고 있다. 문 대통령 옆에는 고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 배우
강동원 씨가 앉아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사진=청와대 제공)





문 대통령은 관객들과의 만남에서 "실제로 6월 항쟁, 그리고 그 앞에 아주 엄혹했던 민주화 투쟁 시기에 민주화 운동
하는 사람들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부모님들이나 주변 친지들로부터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느냐'는 말이었다"고 회상했다.  

또 "지난겨울 촛불집회 참석할 때도 부모님이나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그런 말을 들으신 분들이 많을 것"이라며 "저는
 오늘 이 영화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가 노력하면 세상은 바뀌는 것"이라며 "세상을 바꾸는 사람은 따로 있지 않다.
우리가 함께 힘을 모을 때, 연희(영화 속 등장인물)도 참가할 때, 그럴 때 세상이 바뀐다라는 것을 영화가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영화 관람 전 고 박종철 열사의 형인 박종부 씨와 고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 여사, 87년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던 우상호 의원, 장준환 감독, 영화배우 김윤석·하정우·강동원 씨, 제작사 대표, 시나리오 작가 등과 함께 사전 환담을 하기도 했다.  

영화 관람 후 문 대통령은 상영관 내 음식점으로 이동해 박근혜 정권에서 블랙리스트로 규정돼 피해를 입은 문화예술인들을 만나 위로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는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함께 소설가 서유미 씨, 시인 신동옥 씨, 연출가 윤시중 씨, 공연기획자
정율나 씨, 배우 김규리 씨(개명 전 김민선)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문 대통령은 "저는 블랙리스트 이야기를 듣거나 또는 피해를 입으신 분들을 만나면 늘 죄책감이 든다"며 "제가 가해자는 아니지만 저 때문에 그런 일들이 생겼다는 게 늘 가슴아프다"고 위로했다.
또 "실제로 블랙리스트 피해자분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지난 2012년 대선 때 저를 지지하는 활동을 하거나 지지 선언에 이름 올렸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오랫동안 고통을 겪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 이후 세월호 관련해서 또 많은 분들이 고초를 겪었는데 제가 2012년 대선 때 정권교체에 성공했더라면 그런
일들을 겪지 않았을 텐데라는 회한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전 정권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농단을 법에 따라 철저히 처벌하고 두 번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제가 피해자 분들의 아픔과 지난날의 고통에 대해 보상해 드릴 길이 별로 없지만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규명해 그에 대해 책임있는 사람들, 벌받을 사람들이 확실하게 책임지고 벌받게 하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문화 예술인들이 정치적인 성향이나 정치적 의사 표현 때문에 예술 지원에서
차별받거나 권리를 억압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문화예술인들이 제대로 창작활동 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인
 여러가지 지원을 확대해 나가겠다







 지난달 27일 개봉한 영화 ‘1987’ 이후 이한열 열사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교정의 이한열 동산에는 이한열 열사와 그를 부축하는 이종창 씨 모습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2018.01.08





 지난달 27일 개봉한 영화 ‘1987’ 이후 이한열 열사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교정의 이한열
동산에는 이한열 열사와 그를 부축하는 이종창 씨 모습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2018.01.08



87학번 아빠가 17학번 아들에게 전하는 1987년 이야기


'호헌철폐,독재타도에서 촛불혁명까지'



    

모두가 뜨거웠던 1987년 6월의 이야기를 전하는 영화 <1987>이 개봉했다.
 당시 대학생들이라면 모두가 경험했고 그 역사의 현장에 있었을 것이다.

 필자 또한 87학번으로 6월 항쟁에 참여했었다.
그로부터 30년 뒤 17학번인 아들과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를 보기 전,30년 전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영화를 관람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해 당시 필자의 학교생활과 함께
1987년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아래는 아들에게 전했던 필자의 1987년 이야기다.

풋풋한 대학 신입생으로 입학했던 1987년. 학교의 교정은 푸르고 무엇보다도 캠퍼스가 무척이나 넓었다.
 전형적인 농촌 소도시에서 초·중·고를 보냈던 아빠에게 다가온 대학은 모든 것이 신기했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맘껏 놀아야겠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던 대학 생활은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모든 게 신기했던 아빠는 학교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것이 낙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대자보'라는 것을 보게 됐다. '대자보'에는 내가 시골에서 볼 수도, 듣지도 못한 내용들이
가득했고. 특히, '대자보'에는 '호헌철폐, 독재타도','군사정권 물러가라' 등 무시무시한 말들로 가득 채워졌다.

실제, 아빠는 '운동권'이 무슨 말인지도 몰랐고, 이런 글을 써놓거나, 이 글을 읽으면 경찰이 잡아가지 않을까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도 했던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학교 내의 단과대학이나, 중앙도서관 앞, 그리고 바닥에 붙여진 '대자보'를 전부 읽고 돌아다니던 때 매일같이 학교에서는 집회가 있었다. 집회를 마친 학생들은 학교 정문으로 이동해 진압경찰과 투석전을 벌이고 화염병이 날아다녔다.

그러던 중 아빠는 처음 최루탄에 눈물, 콧물을 빼보기도 했으며, 금요일 집에 가기 위해 교문을 나서다 사과탄 파편에 맞아 안경이 깨지고 파편 일부가 눈에 박히면서 쓰러져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는 등의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는 이전보다 더욱더 격렬한 집회를 이어나갔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헌조치'를 발표함으로써 국민들의 반발을 가져왔다.

또한, 전국에서는 이를 비판하는 각계 인사들 시국 성명을 이어졌으며, '대자보'에는 이런 내용과 '호헌철폐,
독재타도'구호가 적혀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진=영화 '1987' 배경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사진=영화 '1987' 배경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또한, 당시 서울대생 박종철의 고문으로 사망한 일까지 폭로됨으로써 정국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요동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시작된 집회는 학교의 수업거부와 시험거부로 이어졌으며, 매일같이 학교 민주광장에 모여 집회와 함께 시내로 진출하여 격렬한 집회를 이어갔다.
 아침 학교에 가면 16개 단과대학별로 모여 약식집회를 가진 후 민주광장으로 향한다.

학교 민주광장에서 결의를 다진 학생들은 시내로 진출해 자정이 될 때까지 온몸에 최루탄을 맞아가며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쳤다.
이렇게 전국적인 시위가 벌어지면서 필자는 '별일 없느냐'는 고향에 있는 할아버지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

치열하게 전개되던 6월항쟁 속에서 연세대생 이한열 열사가 학교 앞 시위에서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는 등 시위는 더욱더 격렬해졌다. 치열하게 전개됐던 6월 항쟁은 한 달여가 지나고, 같은 달 29일 '직선제 개헌'을 포함해 야당과 재야 세력이 주장해온 민주화를 위한 요구를 수용하며 6·29 선언을 발표한다.

여기까지가 필자가 17학번인 아들에게 전한 1987년 이야기다.

필자의 인생에서 치열했던 지난 1987년을 다시 되돌아보는 영화 <1987>이 개봉했다는 소식에, 영화를 봐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많이 망설였다.
당시 6월 항쟁으로 인해 숱한 구속과 탄압을 받았던, 선·후배들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2017년 마지막 날인 지난해 12월 31일 자정 필자는 17학번의 아들의 함께 영화 <1987>를 관람했다.
 영화 중 경찰이 학번을 묻는 질문에 나도 모르게 학번을 이야기할 뻔했다. 당연히 그런 경험이 있기에 영화 내내
긴장감을 갖고 보게 됐다.

영화는 당시 박종철의 고문치사사건으로 시작된다.
고문치사를 은폐하고, 수사를 축소하는 등 진실을 왜곡했던 30년 전 그날을 그린 것이다.
억울한 대학생의 죽음이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되어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고, 민주주의의 이념과 제도가 뿌리내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1987년 현장에서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한 시위에 참여했던 대학생은, 30년이 지난 지금 17학번인 아들에게 당시 울컥했던 감정과 상황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1987년 6월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1987>이 개봉했다.

 지난 1987년 6월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1987>이 개봉했다.


ⓒ 신영근


 




또한, 1987년 6월항쟁은 지난해와 올 초까지 1600만의 촛불로 다시 돌아와 민주주의의 역사를 새로 썼으며, 그렇게
 6월항쟁과 광장의 촛불 혁명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박종철 고문치사로 시작된 영화는 최루탄을 맞은 이한열의 모습과 장례로 끝이 난다.

영화가 끝난 후 17학번의 아들은 "역사책에서만 공부했던 것들이, 사실이었다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면서 "어떻게
 당시에 저런 일이 있었는지 영화를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라고 흥분했다.
특히, 30년 전 아무것도 몰랐던 시골 촌놈은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1987년을, 앞으로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영화 <1987>를 소개하는 내용 중에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내서 무언가를 성취하고 쟁취한 때가 있었다.
1987년을 살았던 사람들을 통해, 팍팍하고 갑갑한 이 세상에서 용기와 희망을 얻어가길 바란다."





‘1987’의 특별한 기록들...‘6월 민주항쟁’ 대사 있는 배우만 무려 125명

/사진=CJ엔터테인먼트





1987의 특별한 기록들.... 6월 민주항재 대사 있는 배우만 무려 125명





  • 압도적인 몰입감, 배우들의 열연, 강한 울림까지.
     완벽한 3박자를 갖춘 영화로 호평을 받고 있는 <1987>의 특별한 기록들을 공개해 눈길을 끈다.  

    #125명: 대사 있는 배우만 무려 125명! 수많은 배우들의 진심 어린 선택!

    1987년 1월, 스물두 살 대학생이 경찰 조사 도중 사망하고 사건의 진상이 은폐되자, 진실을 밝히기 위해 용기냈던
    사람들의 가슴뛰는 이야기를 다룬 <1987>이 영화 속 특별한 기록들을 공개했다.  

    <1987>에는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 김태리, 박희순, 이희준을 비롯한 수많은 배우들이 각자의 역할을 해내며 매 순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낸다. 매 장면마다 명배우들이 릴레이로 등장하고, 영화 속에서 대사를 하는 배우만 무려
    총 125명에 달한다. 영화에 참여한 배우들은 기꺼이 뜻과 마음을 모아 열연을 펼치고,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연기로 그때 그 시절을 생생하게 살려내며, 관객들을 1987년의 시간 속으로 데려간다.  

    #번째: 명동성당&남영동 인권센터에서 촬영한 첫 번째 작품!

    두번째는 ‘첫 번째’라는 기록이다.

     <1987>은 실제 역사 속 일들이 벌어졌던 명동성당과 남영동 인권센터 촬영에 최초로 성공하며, 영화의 리얼리티를

     배가시켰다.


    명동성당은 당시 각종 집회와 민주화를 촉진하는 성명서가 발표되었던 곳으로, 실제 명동성당 내부에서의 촬영이 허가된 것은 <1987>이 처음이다. 남영동 인권센터 역시 처음으로 영화 촬영이 허가되었다.

    남영동 인권센터 입구와 복도, 테니스장, 소각장 등에서 촬영할 수 있었고, 덕분에 더욱 리얼한 장면을 스크린에 담아낼 수 있었다. 


    #6월: 1987년 가장 뜨거웠던 그해! 6월 민주항쟁을 스크린에 그려내다!

     
    <1987>은 1987년 1월부터 6월까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했던 ‘6월 민주항쟁’을 한국영화 최초로 스크린에 그려냈다.

    1987년 1월, 남영동에서 조사를 받던 한 대학생의 의문사를 시작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신념을 건 선택을 했던 사람들의 행동이 모여 광장의 거대한 함성으로 확산되기까지. 가슴뛰는 6개월의 시간은 스크린 속에서 생생하면서도 담담하게 펼쳐진다. 영화를 연출한 장준환 감독은 “6월 민주항쟁을 다루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이 역사가 우리에게 굉장히 자랑

    스러운 역사이기 때문이다.


     많은 나라들이 수 백년에 걸쳐 이뤄낸 민주주의 역사를 우린 불과 수 십년만에 이뤄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1987>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1987’의 특별한 기록들...‘6월 민주항쟁’ 대사 있는 배우만 무려 125명






    # 압도적인 ‘평단-언론-관객’ 이구동성 극찬…  



    대한민국 대표 감독들까지 호평 대열 가세  



    <1987>은 평단과 언론 그리고 실제 영화를 본 관객들이 이구동성으로 찬사를 보내며 흥행에 불을 지피는 데 큰 힘이

     됐다. 평단과 언론은 ‘2017년 최고의 영화’라며 아낌없는 찬사를 쏟아냈고 실제 영화를 본 관객들의 호평까지 이어지며 꼭 봐야할 영화라는 입소문이 번지며 흥행에 시동을 걸었다.


    관객들은 영화의 메시지를 진정성 있는 연기로 전달하며 강한 울림을 전달한 주, 조연 배우들에 대한 연기 칭찬을

    쏟아냈다. 또한 87년 당시 온몸으로 역사를 경험한 중장년층들과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역사를 대면한 젊은층들의

     마음을 두루 사로잡으며 세대간 소통의 키워드가 되고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감독들의 호평도 이어졌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를 연출한 김현석 감독은 “마지막 장면, 연희(김태리)가 불끈 쥔 주먹을 들어 올릴 때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갈 뻔 했다.


    머리와 가슴을 무장해제 시키는 영화”라는 감동 섞인 평을 전했다.

    영화를 본 박찬욱 감독은 “<1987>은 일개 영화 이상의 어떤 것이다. 

     증언이고 절규고 함성이다. 한편으로 촛불세대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30년 전 광장에서 친구를 만나는 기적은

     영화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고 감상 소감을 전했다.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군도:민란의 시대> 윤종빈 감독과 <수상한 그녀><남한산성>을 선보인 황동

    혁 감독의 찬사도 이어졌다.

    윤 감독은 “재미와 의미가 심장을 붙든다. 모든 관객들이 영화가 끝나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1987>에 참여한 모든 배우들과 제작진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고 말했고, 황 감독은 “배우들의 멋진 앙상블이

    1987년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우리를 빨아들인다”는 호평을 전했다. 

    장준환 감독의 탄탄한 연출력과 김윤석-하정우-유해진-김태리-박희순-이희준 등 믿고 보는 연기파 배우들의 뜨거운

    열연으로 1987년 그해를 고스란히 담아낸 <1987>은 전국 극장에서 절찬 상영중이다.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SS포토]\'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다룬 영화 \'1987\' 제작보고회

    22일 오전 강남구 압구정CGV에서 진행된 영화 ‘1987’ 제작보고회에서
    출연 배우들이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희순,
    하정우, 김윤석, 장준환 감독, 김태리, 유해진, 이희준.

    영화 ‘1987’은 1987년 벌어진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과 관련해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배우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 김태리, 박희순, 이희준 등이 출연하며 장준환 감독이
    연출했다.

    2017. 11. 22.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영화 1987 관람 6월항쟁 세대 "국민이 주인공"

     


      "국민이 민주주의 만들고 지켜와…아픔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 중요"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호헌철폐, 독재타도'


    전남대학교 6월 민주항쟁 세대들이 6일 광주에서 영화 1987을 보며 그 날의 뜨거움을 되새겼다. 
    31년 전 진실을 가리려는 권력에 대한 분노와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광장에서 함께 표출했던 이들은 또 다시 아파했다. 
    영화 속 열사들의 희생과 잔인한 국가 폭력에 눈물을 훔치는 이들도 많았다. 

    특히 박종철 열사의 가족이 오열하며 유골을 뿌리는 장면,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에서 관객의
    슬픔은 극에 달한듯 보였다.  
     극장 곳곳에서 가슴을 치며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끓어오르는 슬픔을 억누르기도 했다. 

    광장에 모여 "군부독재 몰아내자, 4000만이 단결했다"고 외치던 국민의 의로움을 공감하기도 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묵직한 메시지를 곱씹으며 자리를 뜨지 못하는 관객들도 눈에 띄었다. 
    1987년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과 전대협 1기 부의장, 남대협 초대 의장을 맡았던 김승남 전 국회의원은 관람 직후
     '민주주의를 위한 실천'을 강조했다. 

    김 전 의원은 "87년 직선제 개헌을 성취하면서 민주주의라는 그릇이 절대 깨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난해 말
    부터 국정농단과 대통령 탄핵을 경험하면서 생각을 많이 고치게됐다"고 말했다. 

    이어 "시민들이 소홀하고 무관심하면, 민주주의가 변질되거나 퇴색될 수 있다"며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 각 분야 곳곳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실질적인 정착이 중요하다. 풀뿌리 민주주의, 지역정치, 생활 정치의 복원을 위해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87년 전남대 총여학생회장 당시 '광주의 아들 한열이를 살려내라'고 외치며 삭발식을 했었던 박춘애(53) 진남중 교사는 "사무치게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박 교사는 "치열했던 청춘과 당시 투쟁의 기억, 사소한 추억들까지 새록새록 생각이 났다.

     당시 실제 상황들은 영화에서 그린 것보다 더 치열하고 살벌했다"면서 "우리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응축·축적돼서 촛불혁명까지 한 역사로 이어지는 느낌이다. 국민의 의로움과 헌신을 기리고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모(30)씨는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냐는 질문에 '나도 그러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네.

    마음이 너무 아파서'라는 이한열 열사의 답변이 가장 인상깊었다"며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시크뉴스 포토

    [시크뉴스 안예랑 기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은 시대가 겹치는 경우가 있다.
    이번에 개봉을 앞둔 '1987'과 지난 2013년 개봉한 '변호인'도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촛불혁명 세대도 87년의 6월을 배우고 공감했다. 
    국민대에 재학중인 김유설(23·여)씨는 "지난해 매주 참석했던 촛불집회가 떠올랐다.

    우리들의 이야기도 먼 미래에 어떻게 기록·기억될지 궁금하다"며 "80년대 청년들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 앞장섰던 것
    같다. 요즘 우리들은 취업을 위한 스펙쌓기에 여념하느라 사회에 대한 관심을 많이 놓고 산다. 이런 세태가 안타깝고
    반성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국민이 주인공'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강기정 전 국회의원은 "80년대에는 최루탄에 맞서 민주주의를 만들었고, 지난해에는 촛불로 지켜왔다. 국민 모두가
     주인공이다. 더 강한 민주주의, 제도로 확고히 정착된 민주주의를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민형배 광주 광산구청장은 "'그 시대 책무와 제 몫을 다했나'라는 생각에 아팠다.
    저 시대 저런 과정, 희생, 아픔, 피와 땀이 없었다면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왔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정치인의 책무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됐다"고 말했다.

     최영호 광주 남구청장은 "영화를 바탕으로 진실이 밝혀지고 앞으로 이런 일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가는게 우리의 몫"
    이라고 밝혔다. 
    한편 전남대 6월항쟁 동지회 준비위원회가 이날 오후 연 1987영화 단체 무료관람 행사에는 230여명이 참여했다. 
     준비위는 6월 항쟁 세대와 촛불혁명 세대가 영화를 통해 상호 공감하는 시간을 갖자는 취지로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






    민주화 열기가 한창 끓어오르던 1987년 6월 9일, 연세대에서도 시위가 열렸다. 연세대 학생들은
     스크럼을 짜고 교문으로 행진했다. 경찰과 학생들은 대치했다. 학생들 사이에는 경영학과
    2학년 학생 이한열 열사도 있었다. 경찰은 학생들을 향해 최루탄을 발사했고 이한열 열사는
    최루탄에 맞아 쓰러졌다. 이한열 열사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다 결국 같은 해 7월 5일 숨졌다. 


    '1987년 6월' 이한열 열사에 대한 9가지 사실





    2017년 1월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종철 열사 30주기 추모제 현장 / 뉴스1



    1) 이한열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매우 분노했다. 




    1987년 1월 14일 서울대 언어학과 학생이던 박종철 열사가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다가 고문을
     당해 사망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알려지면서 1987년 봄부터 대학가에는 시위가 이어졌다. 이한열 열사도 매우 분노했다.
    이한열 열사는 1987년 2월 직접 시를 써서 추모하기도 했다. 이한열 열사는 이 시에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박종철
    열사를 '우리 아이'라고 했다.

    다음은 이한열 열사가 쓴 '박종철'이라는 시의 일부다. 
    열불 나는 세상이 물속에 잠겼다/ 우리 아이가 익사했다/ 뜨거운 정열과 불타는 의지가 물속에 잠겼다/ 우리 아이는 대학 3학년/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려다 그만/ 짐승의 발톱에 물려 죽었다/ 우리는 분노한다/ 이 시대의 인간임을 포기
    하고 싶다





    네이션 벤 전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기자가 찍은 이한열 열사 피격 직전 사진

    / 이하 이한열 기념사업회

    2) 이한열은 만 20살이었다.

    이한열 열사는 1966년 8월 29일 태어났다.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을 당시 나이는 불과 20세였다.
    이한열 열사는 쓰러진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결국 숨졌다. 




    네이션 벤 전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기자가 찍은 이한열 열사 사진


    3) 쓰러진 이한열과 그를 부축한 이종창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한 남성이 달려와 이한열 열사를 부축했다.
     이 남성은 도서관학과 2학년 학생 이종창 씨다. 두 사람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이종창 씨는 최루탄 연기 속에서 쓰러진 학생을 발견했다. 쓰러진 학생이 누군지도 몰랐지만 '본능적으로' 달려가
    부축했다. 

    이종창 씨는 경찰을 피해 학교 안으로 가느라 쓰러진 학생이 그렇게 많이 다친 줄도 몰랐다고 회상했다.
    이종창 씨는 시위가 끝나고 나서야 쓰러진 학생이 경영학과 86학번 이한열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종창 씨가 이한열 열사를 부축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은 역사를 바꿨다





    정태원 전 로이터통신 사진기자가 찍은 이한열 열사 사진. 이종창 씨가
     이한열 열사를 뒤에서 안고있다

    4) '역사를 바꾼 사진'을 찍은 사람은 정태원 전 로이터통신 사진기자다.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이한열 열사와 그를 뒤에서 안은 이종창 씨. 로이터통신 특파원이었던 정태원 사진기자는
    이 모습을 포착했다. 

    이창성 전 중앙일보 기자는 로이터통신에 사진 협조를 의뢰했다가 이한열 열사, 이종창 씨 모습이 담긴 사진을 봤다.
     이창성 전 기자는 사진을 신문에 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중앙일보 지면에 사진이 실리면서 전 국민적 분노가 일었다.
    사진은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아힌열 열사가 신고 있었던 운동화 

     연합뉴스

    5) 이한열은 "뒷머리가 아프다. 온몸이 마비되는 느낌이다"라고 호소했다.

    최루탄을 맞은 이한열 열사는 응급실로 옮겨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의식이 있었다. "뒷머리가 몹시 아프다.
     온몸이 마비되는 느낌이다"라고 호소했다. 오후 530분쯤 이한열 열사는 의식을 잃었다.
    혼수상태에 빠진 이한열 열사는 27일 만인 75일 오전 25분 끝내 세상을 떠났다





    영화 '1987'에서 이한열 열사 역을 맡은 배우 강동원 씨


    뉴스1


    6) 이한열은 마지막 순간까지 시위에 나갈 생각을 했다.




    이한열 열사는 정신을 잃기 전에 "내일 시청(6·10 대회)에 나가야 하는데..."라고 말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민주화 항쟁을 걱정한 것이다.










    영화 '1987'  스틸컷





    7) 경찰은 이한열 시신을 탈취하려고 했다



    이한열 열사가 사망하자 경찰은 '압수할 물건: 이한열의 사체 1'라고 적힌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세브란스 병원에
    들이닥쳤다.
     당시 학생들은 장례식장을 지키며 시신을 가져가지 못하게 했다.
    결국 경찰은 시신을 탈취하지 못했다.



    이한열 열사 장례식장 현장


    연햡뉴스



    8) 이한열 장례식에는 100만 인파가 모였다.


    198779, 이한열 열사 장례식이 열렸다.

    민주국민장으로 거행된 장례식에는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전국적으로는 약 160만 명이 참여해 추모를 했다. 추모 인파는 서울시청 광장에 집결했다.

     경찰은 이날도 최루탄을 발사하고 곤봉을 휘둘렀다.

    이한열 열사 장례식은 민주 항쟁 기폭제가 됐다




    이한열 열사 기념비 어루만지는 베은심 여사


    뉴스1



    9) 이한열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는 아들 삶을 이어가고 있다.

    배은심 여사는 아들인 이 열사가 사망하자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
    배은심 여사는 "너무 억울하고 너무 분해서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2005년에는 국민 모금으로 '이한열 기념관'을 열었다.
    이한열 열사 아버지는 아들이 사망하고 화병을 앓다가 5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용산 CGV에서 열린 6월 민주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

     1987을 관람한 뒤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