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진실을 말한 이의 미소? 그리고…
지난 13일 새벽 검찰 조사를 마치고 서울중앙지검을 나서는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과 17일 오후 검찰 수사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나온 이명박 전 대통령.
연합뉴스
박근혜의 문고리, MB의 집사 .. 저격수로 돌아선 그들
업무수첩, 태블릿 PC 등 증거 나오자
윗선 보호하려다 불이익 당할 우려
박근혜의 참모들 "시켜서 했다" 실토
저축은행 수뢰 구속 김희중 전 실장
아내 장례식 조문 안 오자 등 돌려
MB 정부 국정원 특활비 상납 증언

사진 누시스
━ 오랜 충신의 배신에 발목 잡힌 전직 대통령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원 특활비 상납 의혹 사건도 ‘문고리 3인방’의 진술이 실체 규명에 큰 몫을 했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심복의 탄환에 스러진 트라우마가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는 반드시 심판
해야 한다”는 게 평소 지론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결정적 순간 돌아선 핵심 참모들의 검찰 진술에 꼼짝 없이 발목을 잡히고 만 모습이다.
살아있는 권력의 지근거리에 있던 ‘문고리’들이 권력 교체기에 ‘주군과의 결별’을 택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복심(腹心)’일수록 정치적 결별이 주군에게 미친 상처는 깊고 날카로웠다.
전직 대통령의 주변 최측근 인사들이 돌아서는 과정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그들이 주군에 등을 돌린 이유는 복잡하고 다면적이었다. 인간적인 실망감이 내면에 자리잡거나 검찰 수사의 압박에
무너져내린 경우가 있었다.
정치적 지향점 자체가 완전히 달라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경우도 있었다.
▲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서울신문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2016년 11월 초 검찰 수사에 대비하면서 측근을 통해 “재단 설립과 모금은 모두
(박근혜) 대통령 지시로 한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은 검찰에서 “최순실 태블릿 PC 속 문건을 최순실에게 전달한 게 맞다”고 진술한 사실이 지난해 1월 18일 재판에서 공개된 바 있다.
국정원 특활비의 청와대 상납 사건과 관련해서는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지난해 11월 2일 검찰 조사에서
“대통령 지시로 특활비를 받았다”고 시인했다.
안 전 수석과 문고리 3인방은 검찰이 빠져나갈 수 없는 증거를 제시하며 압박하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혐의를 시인한 케이스로 분류된다.
안 전 수석에게는 자신이 직접 쓴 업무수첩이, 정 전 비서관에게는 최순실 태블릿 PC가 ‘스모킹 건’이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윗선의 혐의를 불지 않으면 자신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는
대부분 어쩔 수 없이 검찰의 플리바게닝(수사 협조 대가로 검찰이 형량을 낮춰주는 일종의 거래)에 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국정농단 사건에서 ‘특검 도우미’로 불린 장시호씨와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도 플리바게닝에 응해 수사에 협조했다.
②인간적인 실망감에 결별 선택=이명박 정부 특활비 상납 의혹 수사에서는 김희중 전 실장의 협조가 결정적이었다.
김 전 실장은 검찰 조사에서 “이 전 대통령의 해외출장 때 국정원에서 받은 특활비를 달러로 바꿔 대통령과 영부인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김 전 실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배신감이나 복수 때문에 (검찰 진술에) 나선 것은 아니다”면서도 “섭섭함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의 ‘섭섭함’은 뭘까.
한때 친이(친이명박)계 핵심이었던 정두언 전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의원은 이 전 대통령과 김 전 실장의 관계가 틀어진 시점을 2012년 저축은행 사건 때로 꼽았다.
정 전 의원은 “김 전 실장이 저축은행 사건으로 구속돼 있는 기간에 그의 아내가 생활고로 목숨을 끊었지만
이 전 대통령이 장례식에 오지 않자 섭섭해 했다”고 말했다.
전여옥 전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을 보좌하다 실망해 ‘박근혜 저격수’로 변신한 케이스다.
전 전 의원은 2005년 박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일 때 대변인으로 활약했지만 2007년 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 편으로 돌아섰다.
전 전 의원은 2012년 1월 펴낸 자서전 『i전여옥』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실망했던 느낌을 “말 배우는 어린아이들이나 쓰는 화법”, “사람에 대해 따뜻하지 않고 업무 방식이 비민주적” 등으로 기술했다.
③가치관의 변화나 이해관계의 충돌=2015년 11월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의원의 부친 장례식장에서 김무성 당시 새
누리당 대표는 불쑥 이런 말을 했다. “(유)승민이하고 이혜훈이하고 진짜 열심히 했는데 다 멀어져가네.”
2인자를 두지 않으려 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에게 반기를 들며 세력을 키운 바른정당 유승민·이혜훈 의원은 정치적 지향점이 완전히 달라진 경우다.
물리적 이해관계의 충돌이 비수로 돌아온 경우도 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에 출마해 당선됐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그렇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의 선거 기획을 담당했던 6급 비서관 김모씨는 이명박 의원 당선 넉 달 뒤인 그 해 9월 야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 당사에서 “이(명박) 의원이 총선 때 법정선거비용 9500만원을 초과한 6억8000만원을 썼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으로 항소심 법원에서 당선무효 판결(벌금 400만원)이 나오자 이 전 대통령은 의원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수사 결과 김씨는 이 전 대통령에게 5급 비서관 승진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야당에 사건을 제보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권력의 형성과 소멸 국면에서 사적이든 정치적이든 자신의 이익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은 과거부터 반복된 정치 현상”이라며 “한국 정치에서 권위주의적 리더십보다 이해타산의 이합집산이 빈번해지는
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S BOX] 전두환의 장세동, DJ의 권노갑 … 끝까지 의리지킨 측근들

전 전 대통령은 국회 청문회와 재판을 통해 역사의 단죄를 받았지만 ‘영원한 충복’ 장 전 부장은 끝까지 주군을 배신하지 않았다.
장 전 부장은 1988년 제5공화국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사나이는 자신을 알아준 사람을 위해 죽는 법이다”며
“내가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는 한이 있어도 각하가 구속되는 것은 막겠다”고 말했다.
권 상임고문은 1961년 김 전 대통령이 강원도 인제에서 보궐선거로 정계에 입문할 때 비서로 모시기 시작해 2009년
8월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할 때까지 50년 가까이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정치적 운명을 함께한 분신이다.
권 상임고문은 자신의 묘비에 ‘김대중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 14자만 새기면 족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권 상임고문은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 보안사에 체포돼 고문 등 고초를 겪었고 한보 사건, 진승현 게이트,
현대 비자금 사건 등에 연루돼 감옥을 3번 다녀왔다. 」
송승환 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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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전 대통령 ‘문고리 3인방’과 닮은 듯 하지만 달라”
이명박 전 대통령(MB)이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한 최근의 검찰 수사를 ‘정치 보복’, ‘표적 수사’ 등으로 규정하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이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선 이유가 김희중 전 대통령 제1부속실장의 불리한 진술
박근혜 전 대통령도 최측근 ‘문고리 3인방’이 국정원 특수활동비 수수를 인정하는 진술을 검찰에서 함으로써 궁지에
김 전 실장은 이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을 하던 시절인 1996년부터 이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고, 청와대에서는 대통령 부부의 일정 등 생활을 관리한 인물이다.
김 전 실장은 앞서 검찰 조사 과정에서 국정원에서 받은 특수활동비 중 수천만원을 2011년 10월 이 전 대통령 미국
김희중 전 실장./조선DB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은 18일 라디오에 나와 김 전 실장에 대해 “저도 대북송금과 관련해 고초를 겪어봤지만, MB 정부 때처럼 함께 같이 있던 사람이 부는 건 처음 봤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과 한때 가까웠던 정두언 전 의원도 전날 라디오에서 “MB가 자신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김희중
정 전 의원은 “(김 전 실장이) 이번에 검찰 수사를 받았는데 구속이 안 됐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측 관계자는 “당시 이 전 대통령이 김 전 실장 상가에 조화를 보냈으며 청와대 다수 인사가 조문을 갔다”며 “조문을 가지 않아 배신감을 느꼈다는 얘기는 소설”이라고 반박했다.
◇朴 문고리 3인방도 “朴이 시켜서 했다” 결정적 진술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연합뉴스]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문고리 3인방’이라 불려온 이재만·안봉근·정호성 전 비서관은 1998년 박 전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할 때부터 박 전 대통령을 보좌하며 정치적 운명을 함께 했다.
이들은 박 전 대통령의 국정원 특활비 유용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에 결정적인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비서관은 “박 전 대통령 지시가 있으면 상납받은 특활비를 꺼내 사용했다”, “쇼핑백에 돈을 넣은 뒤 테이프로
구(舊) 여권 관계자는 “문고리 3인방도 자기 살겠다고 주군의 등에 칼을 꽂은 것이나 다름 없다”고 했다.

뉴시스
MB 성골집사’에서 MB 벼랑 끝 모는 ‘키맨’ 15년간 MB 지근거리에서 보좌…일거수일투족 아는 ‘문고리 권력’ 맑고 담백 한결같은 성격…갑작스러운 부인喪 MB ‘외면’하자 ‘절교’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분신. 움직이는 일정표. 집사 중에 집사. MB 돈지갑. 이명박(MB) 전 대통령과 김희중(50)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같은 사이였던 김 전 부속실장이 최근 이 전 대통령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유용 의혹, 다스(DAS) 실소유주 의혹, BBK 140억 투자금 회수 과정에서의 청와대 개입 의혹 등 이 전 대통령 관련 각종 의혹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최측근의 입이 ‘봉인 해제’된 것이다. 김 전 부속실장은 이 전 대통령 으로부터 인간적 배신을 당하며 버림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일요서울은 ‘키맨’으로 떠오른 김 전 부속실장을 조명해봤다. 청와대 제1부속실은 대통령 일정과 주요 문서를 수발하는 곳이다. 대통령 집무실 바로 옆에 위치하며, 때론 대통령 개인적인 일을 보좌하기도 한다. 이 곳에서 김 전 실장은 이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때문에 이명박 정부시절 그는 ‘문고리 권력’으로도 불렸다. MB 美 연수 때도 보좌 ‘혼란기에는 김 비서관’ 충남 홍성 출신인 김 전 실장은 서울 사대부고를 나와 서강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광고회사를 다닌 것으로 알려진 김 전 실장은 1997년 이를 그만두고 당시 이명박 국회의원의 6급 비서관 공채를 통해 이 전 대통령과 첫 인연을 맺었다. 그는 이후 이 대통령의 일정을 줄곧 책임졌으며 이 전 대통령이 1998년 말 미국으로 연수를 떠난 후에도 서울에 남아 이 전 대통령을 보좌한 것으로 알려진다. 2002년 이 전 대통령의 서울시장 당선 시절엔 의전비서관, 청와대 입성 뒤엔 제1부속실장을 맡은 그는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이자 비서로 일했다. 15년간 이 전 대통령의 손과 발이 돼 각종 민원을 일선에서 처리한 그는 ‘영원한 비서관’이라 불리기도 한다. 대통령과 최단 거리에 있는 만큼 어깨에 힘이 들어갈 법 하지만 김 전 실장의 성격은 이와 정반대로 알려져 있다. 외모에서도 풍기듯 순박하면서 선한 사람으로 전해진다. 한때 이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정두언 전 의원은 김 전 실장을“굉장히 맑고 담백하고 착한 친구”라고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의 신분이 국회의원→서울시장→대통령으로 바뀌면서도 김 전 실장은 한결같이 겸손함을 잃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권력’의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 그저 청와대라는 직장에서 일하는 중년 남성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평소 ‘주당’이라고 불릴 정도로 술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지지만, 부속실장을 맡으면서는 업무에 치여 술을 멀리했다고 한다. 김 전 실장은 ‘혼란기에는 김 비서관’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이 전 대통령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사안이 생소하거나 복잡해 이 대통령의 뜻이 잘 파악되지 않을 경우 김 전 실장에게 물어보면 답이 나온다는 뜻이다. 이러한 그가 ‘검은 돈’에 연루되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저축은행 비리’연루돼 징역 김 전 실장은 2011년부터 터지기 시작한 ‘저축은행 비리 사건’에 휘말렸다. 당시 저축은행은 높은 이자를 내걸고 서민들의 자금을 빨아들였는데, 이 과정에서 일부 저축은행이 부실 금융기관으로 선정되면서 각종 비리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FF)에 상당한 규모의 대출을 해준 저축은행들은 2008년 금융위기와 부동산 침체를 겪으면서 대출금을 제때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결국 2011년 부산저축은행을 시작으로 8개 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맞았다. 당시 일부 저축은행은 영업 정지 사태를 막기 위해 정·관계 인사들에게 금품 로비를 시도했고, 김 전 실장은 이에 연루됐다. 김 전 실장은 평소 친분이 있던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금융당국으로 하여금 솔로몬저축은행에 대한 경영진단 등 검사기준을 완화해 솔로몬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받지 않도록 해 달라’라는 청탁과 함께 세 차례에 걸쳐 1억8000만 원을 받은 혐의를 받았다. 김 전 실장은 의혹이 불거지자 “언론보도처럼 금품을 수수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일로 내 이름이 거론된 것과 관련해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면서 곧장 사표를 냈다. 당시 ‘윗선’으로 꼽히던 이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도 현금 3억 원을 받은 혐의로 사법 처리를 받는 등 파문은 확산됐다. 청와대는 진상 조사하겠다고 밝혔지만 김 전 실장이 사표를 내자 ‘민간인 조사 불가’를 이유로 침묵을 이어갔고, 김 전 실장은 2012년 7월 구속기소돼 같은 해 11월 1심에서 징역 1년3개월을 선고받았다. 김 전 실장과 검찰 모두 항소를 포기해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극심한 생활고에부인 끝내… 당시 퇴임을 앞둔 2월 설 무렵 이 전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단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김 전 실장이 특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왔다. 언론에서도 그가 사면리스트에 올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전 실장은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과 달리 사면 대상에 오르지 못했다. 그는 이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김 전 실장은 “구속된 지 6개월쯤 됐는데 어찌 대통령이 사면할 수 있겠나”며 “사면을 기대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부인 장례와 관련해선 이 전 대통령에게 상당히 섭섭함을 느낀 것으로 알려진다. 김 전 실장 구속 이후 가족은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는데 이 전 대통령 측 아무도 이를 챙겨주지 않았다고 한다. 김 전 실장은 형편이 어려워 아내와도 헤어진 끝에 다시 결합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결국 만기출소 1개월을 앞둔 2013년 9월 부인은 형편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영월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김 전 실장은 귀휴(복역 중인 사람이 일정 기간 휴가를 얻는 일)를 얻어 문상객을 맞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조문뿐 아니라 조화도 보내지 않았다. 정두언 전 의원은 “김 전 실장으로서는 너무나 철저하게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김 전 실장은 “대통령 직계가족 한 사람이라도 오셨으면 하는 섭섭함을 표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이를 계기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 실망감이 커져갔던 것으로 보인다. 정 전 의원은 “(출소 이후) 김 전 실장 자체가 얼씬도 하지 않았다. 쳐다도 안 봤다”며 “내가 그랬다. ‘가서 인사라도 드리지 그랬냐’ 했더니 ‘됐어요. 무슨 인사를 해요’ 하고 안 갔다. 이미 마음이 거기서 끊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은 이 전 대통령이 그를 우습게 여겨 외면한 것으로 판단했다. 정 전 의원은 “(이 전 대통령이) 상갓집도 안 오고, 꽃도 안 보내고, 전혀 돌보지 않았다”며 “완전히 그냥 바보 취급한 것”이라고 밝혔다. 상황 역전“모든 진실은 MB가” 상황은 이제 역전됐다. 버림받았던 그가 이제 이 전 대통령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 16일 밤 핵심 측근인 김백준 전 총무기획관이 국정원 특활비 수수 혐의로 구속되자 이 전 대통령은 이튿날 대국민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당초 김 전 기획관의 구속으로 이 전 대통령이 위기감을 느껴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었다. 하지만 실제 ‘키맨’은 따로 있었다. 김 전 실장이었다. 이 전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는 그가 검찰에 협조적으로 나서자 이 전 대통령에 비상이 걸렸다는 것이다. 김 전 실장은 비슷한 시기에 조사받은 김백준 전 기획관, 김진모 전 민정비서관과 달리 구속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은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돈을 받은 통로 역할이었고, 받은 돈은 김윤옥 여사 측 여성행정관에게 전달한 적이 있다고 밝히는 등 상당수 사실을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방위 檢 수사…MB 입 열까 이러한 김 전 실장의 행동에 ‘아름다운 복수’라는 말이 등장한다. 물론 그러한 부분도 작용했을 수 있겠지만, 그는아내를 잃고 남은 자식을 챙겨야 하는 ‘가장의 책임’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말한다. 그는 검찰 출두 전 정 전 의원에게 문자를 보내 “더 이상 아이들한테 부끄러운 아빠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도 “무엇보다 제겐 가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더 이상 잘못된 모습을 보이면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나가겠나”면서 “탄핵 (정국) 이후 국민들의 시선도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안고 갈,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김 전 실장은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 분(MB)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국정원 특활비 유용 의혹과 다스 비자금 의혹 등 각종 의혹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가운데 이 전 대통령의 입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권녕찬 기자 kwoness7738@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 |
문고리 권력
권부의 핵심 인사들조차 대통령 다음으로 어려워하면서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챙기는 이들이 있었다.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을 만나고 나올 때면 ‘문고리 권력’으로 불리는 부속실장을 만나 ‘두둑한 봉투’를 건네곤 했다고 한다.
문고리를 잘 챙기는 실세는 대통령의 기분 상태를 수시로 전달받고 대통령 기분이 최고로 좋을 때 면담 시간을 주선
받다 보니 그만큼 ‘성과’도 좋다.
반면 그렇지 않은 이들은 대통령 면담을 아예 하지 못하거나 문고리 비서가 좋지 않은 얘기를 대통령에게 자주 전달해 사이가 멀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만큼 대통령의 눈과 귀를 장악한 문고리 권력의 위세는 대단하다.
지금 청와대 구조를 보면 문고리가 힘을 가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집무하는 본관은 비서실과 한참 떨어져 있다 보니 문고리를 통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이재만 총무비서관 등 이른바 ‘문고리 3인방’에 권력이 집중됐던 것도 박 전 대통령이 거의 비서동에 나오지 않고 관저에서만 일했기 때문이다.
이들을 통해서만 여당 및 비서실과 소통하기 때문에 문고리에 잘못 보이면 바로 권력에서 멀어졌다.
최근 재판에서 안 전 비서관이 증언한 바에 따르면 대통령과 문고리들의 회의 때 최순실 씨가 모두 배석했고 대통령도 비키라는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하니 최 씨는 문고리 중의 문고리였던 셈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김희중 전 제1부속실장도 이 전 대통령의 정계 입문 때부터 수행비서를 하며 문고리 역할을 했다. 그러나 김 전 실장이 재임 중 저축은행으로부터 뇌물을 받아 구속된 이후 이 전 대통령이 김 전 실장을 전혀 챙겨보지 않은 것이 화근이 돼 지금은 되레 저격수가 돼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의 장학로·홍인길, 김대중 전 대통령 때
이수동,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양길승·최도술 씨 등이 문고리 역할을 했지만 말로가 좋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문고리 폐해를 없애기 위해 총무비서관에 기획재정부 공무원 출신인 이정도 비서관을 임명해 돈과
관련된 잡음을 없애고 비서동에 집무실을 차려 문고리 역할을 많이 줄였다고 한다.
그러나 대통령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구중궁궐 청와대에서 집무를 보는 한 문고리 권력의 폐해가 없어질까.
이현종 논설위원
의


▲김희중 이미지. ⓒ 사진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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