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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사

한국최초우주인 이소연 "나는 우주인 배출사업이 만들어낸 상품"



지난 2008년 4월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내 에네르기아사에서
소유즈 로켓으로 향하고 있는 이소연 박사.

[사진=연합뉴스]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 박사.


 동아일보DB







우주인 이소연


우주인 이소연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국최초우주인 이소연 "나는 우주인 배출사업이 만들어낸 상품"




[헤럴드경제=이슈섹션]한국인 최초로 우주비행을 했던 이소연(40) 박사가 자신이 “(한국의) 우주인 배출 사업이

 만들어낸 상품”이라며 “우주인 배출사업에 대해 후속 계획이 없었다는 점에서 우주과학발전의 관점에서는 성공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한국인 최초 우주비행 10년을 기념해 과학잡지 ‘에피’ 3월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국 우주인 배출 사업을 통해 2008년 4월8일부터 19일까지 10일간 러시아 소유즈 TMA-12호를 타고 우주에

 머물며 여러 실험을 진행했다. 



이어 “그때의 저는 우주에 있을 때도 후속사업이 없는지 몰랐고 이후의 다른 계획들이 잡혀 있는 줄 알았다”면서

 “귀환해서 우주인 사업이 3년짜리 단기 사업이고 후속 계획이 없었다는 것을 알고 무척 허탈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우주에 다녀온 뒤 “그래서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담당자를 만나 이러이러한 실험은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귀환 후 우주정거장에서 갖고 온 실험결과를 분석하는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우주과학팀이 뭐라도 할 수

있게끔 예산을 따러 돌아다녀야 했다고 소개하면서 “당시의 허망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고 그런 상황에서 욱한 것

 반, 먼 미래를 계획한 것 반의 이유로 한국을 떠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우주인 배출 사업이 과학기술의 저변 확대와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는 게 목표였다면 그나마 성공적인 사업이라고 볼 수 있지만, 한국의 우주과학을 발전시키는 게 목표였다면 후속 사업도 없고 후속 실험도 안 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 박사는 우주인 배출 사업에 대해 “정책 설계가 부실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그보다는 정책 설계자와 정책 수행자가 바뀌었고 그래서 목표와 방향이 달라졌던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박사는 2012년 항공우주연구원을 휴직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현재 미국 시애틀의 워싱턴대 공대 자문위원 자격으로 학생들의 연구활동을 돕고 실리콘밸리에 있는 인공위성

 스타트업 기업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강연 등도 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onlinenews@heraldcorp.com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박사.


 /자료사진=뉴시스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 잊혀진 이유 있었다… "나는 정부 사업의 상품"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박사(41)가 과거 정부의 우주인 프로젝트를 비판했다.
이 박사는 최근 과학비평잡지 ‘에피’ 3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나는 우주인 배출 사업이 만들어낸 상품이었다”고 밝혔다.  이 박사는 한국 우주인 배출 사업을 통해 2008년 4월8일부터 19일까지 열흘간 러시아 소유즈 TMA-12호를 타고

우주를 다녀왔다.  

이 박사는 “우주에 있을 때도 후속사업이 없는지 몰랐고 이후의 다른 계획들이 잡혀 있는 줄 알았다. 귀환해서 우주인 사업이 3년짜리 단기 사업이고 후속 계획이 없었다는 것을 알고 무척 허탈했다”며 “그래서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담당

자를 만나 이러이러한 실험은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주인 배출 사업이 과학기술의 저변
확대와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는 게 목표였다면 그나마

성공적인 사업이라고 볼 수 있지만, 한국의 우주과학을 발전시키는 게 목표였다면 후속 사업도 없고 후속 실험도

안 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책 설계가 부실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그보다는 정책 설계자와 정책 수행자가 바뀌었고 그래서

목표와 방향이 달라졌던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우주 개발 사업의 방향에 대해서는 “제2의 우주인이 나온다면 전 세계의 많은 우주 전문가들을 만나고 함께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맞는 사람을 찾는 일을 도울 수 있을 것 같다”며 “강대국이 한다고 해서 하는 우주개발이 아니라 우리가

 행복한 것이 우주 강국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2008년 우주 비행 당시 우주선에 탑승하자마자
바느질을 해야 했던 일화도 소개했다. 우주화물선이 처음

 우주로 올라갔을 때는 ‘과학기술부’였던 정부 부처명이, 우주에 가기 한 달 전쯤 정권이 바뀌면서 ‘교육과학기술부’로 변경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 박사에게 비행복 패치를 새로 바느질해서 바꿀 것을 지시했고, 모든 실험 장치에 붙은 ‘과학기술부’ 스티커도 떼어내야 했다.

그는 “지구와의 교신에서 번번이‘그거 다 뗐느냐? 확실히 다 붙였느냐?’

라는 말을 들었던 것이 생생하다”며 동승했던 다른 나라 우주비행사들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고 전했다.  

이 박사는 2012년 항공우주연구원을 휴직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현재 미국 시애틀의 워싱턴대 공대 자문위원 자격으로 학생들의 연구활동을 돕고 실리콘밸리에 있는 인공위성

스타트업 기업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강연 등도 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김경은 silver@mt.co.kr




우주인 이소연 260혈세 항우연 먹튀 국적



<우주인 이소연 260혈세 항우연 먹튀 국적>




먹튀 논란’ 이소연, 입 열더니…“정부 우주인 사업 의지 없더라”



한국 최초 우주인 1호 이소연 
돌연 미국행 MBA ·결혼 후 시민권 취득 
2년전 인터뷰서 “커리어 위해 한국 떠나” 




[헤럴드경제=이슈섹션] ‘먹튀 논란’으로 많은 이의 비난을 받고 있는 한국 최초의 우주인인 이소연이 과거 정부의

우주인 프로젝트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소연은 최근 과학비평잡지 ‘에피’(이음) 3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나는 우주인 배출 사업이 만들어낸 상품이었다”고

 밝혔다. 

2007년 9월 예비 우주비행사로 선정된 이소연은 고산이 보안 규정 위반으로 탈락하면서 출발 한 달 전인 2008년 3월

 우주인으로 전격 발탁됐다.  






이소연.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우주에서 겪었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이소연은 “우주선에 개인 물품을 예상하고 짐의 양을 계산해야 하는데, 정부와 항공우주연구원이 공식적인 물건을

보내는데 모두 써버려 개인 물건을 가져갈 공간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우주정거장에 도착한 뒤 겉옷은 미리 보낸 고씨의 옷을 입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우주비행사인 페기 윗슨이 보다 못해 자신의 빨간 티셔츠를 입으라고 주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소연은 그러면서 자신이 한국 정부에 앙금을 갖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그는 “정부가 우주인을 보낸다고 대국민적으로 홍보했지만, 실제로는 (우주인 배출 사업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


는 “우주인 후속 사업이 없는 게 저의 문제인 것처럼 보도될 때, 어떻게 해야 이걸 제대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며 “그런 상황에서 욱한 것 반, 먼 미래를 계획한 것 반의 이유로 한국을 떠나게 됐다”고 말했다.
우주에서 돌아온 이소연은 한동안 국내에 머물렀다.


그러나 2012년 미국으로 건너가 UC 버클리대 경영전문석사(MBA) 과정을 들었다. 이듬해 재미교포와 결혼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지만 이소연은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2014년 국정감사에서 이소연이 우주에 다녀온 뒤 4년 동안 진행한 우주인 관련 연구과제가 4건에 불과하고, 외부

 강연만 200여건에 이른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소연은 오랜만에 가진 인터뷰에서도 과거 정부와 우주인 프로젝트에 대한 비판만 했을 뿐, 국민들이 가졌을 반감에 대해서는 속시원히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강대국이 한다고 해서 하는 우주개발이 아니라 우리가 행복한 것이 우주 강국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만 말했다.

앞서 이소연은 지난 2016년 1월 미국 여성 패션지 ‘코스모폴리탄’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한국을 떠났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당시 “한국을 떠나는 것은 힘든 일이었지만, (한국의) 우주인 사업이 종료됐으므로 내가 다음 커리어를 찾아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onlinenews@heraldcorp.com 














2012년 한국 첫 우주인 이소연씨(가운데)가 미국 시애틀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한국인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2년 한국 첫 우주인 이소연씨(가운데)가 미국 시애틀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한국인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나는 우주인 배출 사업의 상품이었다"


 한국 첫 우주인 이소연 10년만에 정부 비판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인 이소연씨(41)가 과거 정부의 우주인 프로젝트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올해는 이씨가 2008년 4월8일부터 19일까지 열흘간 우주를 비행하고 돌아온 지 10년이 되는 해다.

이씨는 최근 과학비평잡지 ‘에피’(이음) 3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나는 우주인 배출 사업이 만들어낸 상품이었다”며

자신의 경험담과 우주인 사업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2007년 9월 예비 우주비행사로 선정됐던 이씨는 고산씨가 보안 규정 위반으로 탈락하면서 출발 한 달 전인 2008년

 3월 우주인으로 전격 발탁됐다.

이씨는 인터뷰에서 첫 우주인으로 느꼈던 혼란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는 “(우주선에) 우주인의 개인 물품을 예상하고 짐의 양을 계산해야 하는데, 가져갈 짐의 양을 늘릴 수가 없어서

겉옷은 미리 보낸 고씨의 옷을 입어야 했다”며 “우주정거장에서 (미국 우주비행사인) 페기 윗슨이 빨간 티와 긴 바지

하나를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우주선에 탑승하자마자 바느질을 해야 했던 일화도 소개했다.

우주화물선이 처음 우주로 올라갔을 때는 ‘과학기술부’였던 정부 부처명이, 이씨가 우주에 가기 한 달 전쯤 정권이

바뀌면서 ‘교육과학기술부’로 변경됐다.

정부는 이씨에게 비행복 패치를 새로 바느질해서 바꿀 것을 지시했고, 모든 실험 장치에 붙은 ‘과학기술부’ 스티커도

 떼어내고 바꿔야 했다.


그는 “지구와의 교신에서 번번이‘그거 다 뗐느냐? 확실히 다 붙였느냐?’라는 말을 들었던 것이 생생하다”며 동승했던

 다른 나라 우주비행사들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고 전했다. 

이씨는 특히 지구로 귀환한 후 정부가 우주인 후속 사업에 대한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허망함을 느꼈다고 전했다.


 이씨는 “정부가 우주인을 보낸다고 대국민적으로 홍보했지만, 실제로는 (우주인 배출사업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

 과학실험에 대해 본질적으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일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허탈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주인 후속 사업이 없는 게 저의 문제인 것처럼 보도될 때, 어떻게 해야 이걸 제대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며 “그런 상황에서 욱한 것 반, 먼 미래를 계획한 것 반의 이유로 한국을 떠나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현재 미국 워싱턴대 강사이자 워싱턴대 공대 자문위원으로 일하며, 실리콘밸리의 인공위성 스타트업 기업에서 해외사업개발을 맡고 있다.

이씨는 우주 개발 사업의 방향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그는 “제2의 우주인이 나온다면 전 세계의 많은 우주 전문가들을 만나고 함께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맞는 사람을 찾는 일을 도울 수 있을 것 같다”며 “강대국이 한다고 해서 하는 우주개발이 아니라 우리가 행복한 것이 우주 강국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주인 이소연씨가 우주선에서 쓴 일기의 한 부분. 이음 제공




우주인 이소연씨가 우주선에서 쓴 일기의 한 부분.


 이음 제공












이소연(李素姸) 

               

2008년 4월 대한민국 최초로 우주 비행 참가자(Space Flight Participant)로서 국제 우주 정거장에서 11일간 체류하였다.




광주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2008년 3월에는 바이오시스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0년 12월 과학기술부(현 교육과학기술부)가 러시아와 공동으로 우주여행자 양성계획을 수립하고, 2006년 4월에

 실시한 우주여행자 모집공고에 응모하였다.


 2006년 12월, 약 9개월간의 총 4단계 선발과정을 거쳐 한국 최초의 우주인 후보자 2인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고산과

 함께 우주비행사 후보가 되었다.

2007년 3월부터 1년 여 동안 모스크바 북동쪽 근교의 스타 시티에 위치한 유리 가가린 우주인 훈련 센터(GCTC)에서

우주적응과 우주과학 실험수행을 위한 기초 훈련을 받았다.


훈련 중이던 2007년 9월 5일 고산이 우주여행자로 선정되고 이소연은 예비 우주여행자로 선정되었으나, 2008년 3월

고산의 관련 보안규정 위반으로 인해 이소연이 우주여행자로 교체되었다.


2008년 4월 8일(한국시각 기준) 오후 8시 16분 39초에 이소연은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소유스 TMA-12를 타고 우주로 출발하였고, 예정시간보다 약 3분 빠른 4월 10일 오후 9시 57분(한국시각 기준)에 국제우주정거장(ISS)과의 도킹에 성공하였다.

4월 11일 밤 12시 41분(한국시각 기준)에 세르게이 볼코프에 이어 두번째로 건너가면서 157번째 ISS 탑승자가 되었다.


ISS에서는 9박 10일간 머물면서 18가지 우주과학 실험 등의 우주임무를 수행하고, 4월 19일 오후 2시 6분 30초(

한국시각 기준)에 기존에 머물고 있던 엑스퍼디션 16의 공식 크루 멤버였던 러시아의 유리 말렌첸코, 미국의 페기

윗슨과 소유스 TMA-11로 갈아타고 도킹을 풀었다.


19일 오후 5시 28분경(한국시각 기준) 예상 착륙지점에서 420km 떨어진 카자흐스탄 국경 부근의 오르스크 시 남동쪽 초원지대에 착륙, 귀환하였다. 이로써 한국은 36번째 우주인 배출 국가가 되었고, 이소연은 전세계적으로는 475번째, 여성으로서는 49번째 우주인, 역대 3번째로 나이가 어린 여성 우주인이 되었다.

또 2명의 아시아계 미국인의 이중국적자를 포함하여 4번째 아시아 여성 우주인이 되었다.


이후 이소연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2년간의 의무 복무 기한을 끝내고 2012년 8월 미국으로 건너가

경영학 석사(MBA)과정을 밟았다.

 이어 그로부터 약 2년 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공식 퇴사했다.


 MBA 과정을 시작할 때부터 260억이라는 금액을 써서 훈련시킨 우주인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국가기관과 당사자의 사명감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2013년 한국계 미국인과 결혼하여 미국 시애틀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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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素姸



이학박사. 전 세계적으로는 475번째, 여성으로서는 49번째로 우주에 가본 우주여행 참가자다.

영주권을 취득하고 거주 중인 미국에서는 'Astronaut'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미국 기준을 정확히 적용한다면 우주여행참가자(participant)다.

광주과학고등학교KAIST 출신이다.


원래는 우주인 선발 과정에서 고산이 최종 우주인으로, 이소연은 예비(spare) 우주인으로 선정되었다.

우주인은 만약을 대비해 보통 2배수를 교육시킨다.

 그런데 고산이 반출 금지 서적을 무단 반출하여 규정을 위반했다는 사유로 탈락하고 예비 우주인인 이소연이 우주로 가게 되었다.


이 서적은 일종의 매뉴얼로, 단순한 서적이 아니고 사실상 러시아의 필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어 세세한 곳까지

커버하는 일종의 FM이라고 한다.
이소연 본인의 말에 따르면 갑작스런 우주인 변경 탓에 여간 곤란한 게 아니었다고 한다.


우주인이 생활할 개인용품은 우주인이 올라가기 전에 미리 다른 로켓편에 우주정거장으로 올려놓는데, 이소연으로 우

주인이 변경된 시점에선 이미 고산의 물품이 올라가있던 상황. 본인이 우주선에 들고 올라갈 수 있는 개인용품이 정말 한정적이어서 꽤나 골치 아팠다고 한다.


하지만 러시아 측 우주인과 교관의 배려로 규정보다는 좀 더 많은 개인용품을 올려보내줬다고 한다.

 물론 러시아 우주인들도 마찬가지로 눈을 피해서 규정 이상의 개인용품을 우주선 어딘가에 짱박아서 올라간다고 한다.

당시
광고로 돈을 벌어 아파트 등을 사고 싶다라는 식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많은 네티즌들의 비난을 받았다.

우주관광사업을 지원했던 SBS의 자화자찬식 북치고 장구치기식 홍보도 더해져 대중의 반감을 더욱 부른 건 덤.

그런데 논란이 된 원본 인터뷰는 최종후보 30명에 뽑혔을 때 찍은 것이고 우주인이 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한국은 미국과 일본과 달리 국가에 수입 중 일부를 낸다면 광고를 자유롭게 찍을 수 있다"는 말을 하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말한 다음 그 돈으로 무언가를 하겠다는 답변이다.


인터뷰 답변 내용은 '학교에 기부하겠다'와 그 논란이 되는 '아파트 등을 사고 싶다' 등이다.

 구성을 보면 하고 싶은 것의 비중 중 가장 높은 지분을 가진 것이 바로 저 '아파트 등을 사고 싶다'는 발언. 거

기에 추가로 "유명해지면 교만해질까봐. 그러지 않겠다고 또 한 번 마음판에 새긴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연구를 계속해야 하는데 건방져질까봐, 게을러질까봐 벌써부터 고민이다."라는 내용도 있었다.

해석하기에 따라 여러 가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는 하나, 두고두고 논란이 되었다.









2008년 4월 우리나라 첫 우주인 이소연이 탄생했다. 허나 후속 우주인은 없었다.

 이소연은 과학잡지 에피와의 우주비행 10주년 인터뷰에서 아쉬움을 토로했다.


 연합뉴스








2008년 4월 10일 당시 우주정거장(ISS)에서 생활한 이소연 박사



2008년 4월 10일 당시 우주정거장(ISS)에서 생활한 이소연 박사


ⓒ뉴시스






먹튀인가 일회성사업의 희생자인가





먹튀라고 보는 측


이소연은 수백억대의 국가 프로젝트를 등에 업고 우주로 나간다는 것의 책임의 크기를 애초에 충분히 자각하지 못하고 지원했음을 인터넷에 공개한 글을 통해 인정했으며. 불과 몇 년 뒤에는 결국 관련 커리어를 포기함으로써 우주인으로서 최소한의 긍지조차 지키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물론 이소연은 NASA 우주비행사 자격을 박탈당한 리사 노왁 같이 추한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다.

 우주인으로서 기관에서 나온걸 우주인 자격 박탈로 치면 NASA를 나와서 연방해양대기청장을 하고 있는 미국 여성

최초 EVA 기록자 캐스린 설리번도 우주비행사 자격이 박탈된 셈이다.


이소연은 계약에 따른 항공우주연구원 의무 근무기간도 모두 이행했기 때문에 최소한 법규상으로는 아무런 하자도

없다.

도의적인 문제로 논란이 되는 것.

독이 든 성배니 뭐니해도 이소연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상 좋든 싫든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다. 그정도 각오도 하지 않고 단지 일정기간 의무근무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퇴사 후의 행보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렇다치면 고산은 대체 무엇이고 왜 그렇게 홍보와 언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우주관련활동을 하는 것인가

 외국으로 이민가다시피한 건(아직 시민권을 얻기 전이니.) 개인의 삶의 선택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백번 양보해서 항우연이 그것을 종용했다 치더라도 외부강의의 경우 그것 자체가 선발과정 인터뷰에서 나왔듯이 자신이 원하던 일이고 그것으로 수입도 짭짤히 챙겼다.


굳이 국정감사로 밝혀지기 전에도 그것은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었고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또한 이전에도 이소연은 선발 당시 인터뷰와 과학간증 등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일으킬지 생각도 않고 일을

일으켰다.

애초에 항공우주사업은 시작부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점증주의적 정책결정이 거의 불가능하다.

때문에 일단 긍정적인 이슈를 만들어 국민들의 지지를 뒷받침한 후에 본격적으로 실행에 들어가야 한다.

당시 참여정부에서는 항공우주산업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와 관심을 얻기 위해 한국우주인배출사업이라는 이슈메이킹을 계획한 것이다.


이소연 지지 측에서는 우주인의 '귀중한 경험'을 활용할 생각은 하지 않고 '얼굴마담'으로 간주했다고 비난하지만,

우주인 배출사업의 주요 목적 중 하나가 국민들의 지지와 관심을 얻기 위한 것이었던 만큼 이는 사업의 목적에 부합

하는 것이었다.

애당초 이소연이 우주에서 수행한 임무라는 것도 과학기술 발전에 의미가 있는 결과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닌, 국민들의 흥미를 일으키기 위한 교육적 실험들이었다.

다시 말해서, 우주인으로서의 '귀중한 경험'이라는 것은 (실제로 '귀중한'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연구원으로서의 경력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일단 국민들의 관심을 얻어서 예산을 확보하고 본격적으로 실행에 들어가야 그 경험을 활용하건 말건 할 수 있는

 일이다.

국민들의 관심을 얻기 위한 활동을 시킨 것은 사업 목적과 현실에 정확하게 부합되는 것이며, 그것을 이유로 항우연을 비난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NASA에서도 여러 대중적인 이벤트에 우주비행사들을 내세워서 대중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경우는 있어도, 우주비행사로서의 경험을 살려서 로켓을 개발하는 엔지니어로 채용하자고 하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실행 중간에 일어난 사건들과 정치인들의 백지와 다름없는 차후계획, 항우연 자체의 무계획적 운영,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지 못했고 결국 본격적인 사업은 시작도 못해본 채 한낱 역사의 한줄 해프닝으로

 끝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소연 개인의 부적절한 언행 또한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소연은 남을 비난할 입장이 아니다.



2014년 8월 미국 시애틀 박물관에서 항공우주캠프 체험 프로그램의 안내 역할을 맡는 장면이 알려지면서 더더욱

먹튀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2015년 6월에는 미국의 우주 관련 민간 교육 프로그램에 패널참석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 첫 우주인인 이소연씨
클릭하시면 원본 보기가 가능합니다.



▲ 한국 첫 우주인인 이소연씨



[출처: 서울신문




일회성 사업의 희생자라고 보는 측



이소연은 2년간 선임연구원의 복무를 수행하는 조건인데, 이소연은 4년간 역할을 수행했다. 따라서 비난은 이소연이

아니라 우주비행 이후 아무런 계획을 하지 않은 항우연에게 있다.

실제로 이소연 박사는 연구활동을 위해 공군의 모 시설을 빌리기도 하는등 개인적으로는 여러 노력을 통해 30여건의

우주과학 눈문을 발표하고 1건의 특허를 등록하였다.


 국내 우주기초과학계는 이소연 박사가 우주에서 실험한 것들은 모두 결과물로 정리된 상태로써 한국인 최초 우주인

으로서 주어진 미션을 완수했다고 여긴다.

 따라서 마냥 이소연을 비난하는 행위는 올바르다고는 할 수 없다.


다른 나라의 상황을 보면 인기인으로 다른 일을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우주여행 후의 우주인 인생은? 국가 영웅 되기도 하지만 우주여행 이후 전혀 다른 인생 살기도. 최초가 아니더라도

우주인은 인기가 많아서 교수나 정치인이 되는 사례가 종종 있는데, 미국 최초로 궤도 비행에 성공한 우주인인

존 글렌은 상원의원을 4번이나 지냈으며, 대통령 경선까지 나서기도 했다.


영국 최초의 우주인인 여성 헬렌 셔먼은 과자공장 직원 출신으로 우주인이 된 후에는 작위를 받고 대학교수가 되었다. 아폴로 17호해리슨 슈미트는 뉴멕시코 주의 공화당 상원의원을 지냈고, 아폴로 13호잭 스와이거트도 하원의원

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엉뚱한 길을 걷게 되기도 하는데 달에 갔었던 제임스 어윈찰스 듀크는 지구에 돌아온 뒤 전도사가 되었다.[
2014년 미래창조과학부의 항우연 국정감사에서 진실이 드러났다.

국정감사에 따르면 항우연은 우주인의 귀환 후 미래계획과 후속사업에는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관심도 의지도

없었으며 얼굴마담으로서 혹사에 가깝게 부려먹어 연구할 시간도 없었다고. 항우연은 이소연 박사를 외부강연 235회,


과학 전시회·행사 90회, 대중매체 접촉 203회 등 총 528회의 대회활동을 소화시켰다. 그러나 우주인 관련 연구는 고작

4회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내가 점점 비어가는 느낌"이라고 인터뷰한 적도 있는데 이때가 고작 돌아온지 6개월이 지난 후였다.

우주에서의 귀환 이후 이소연 박사가 명백히 연구원으로서 항우연에 남았던 것을 생각하면, 이소연 박사가 우주에서

 얻은 귀한 경험을 활용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저 얼굴마담으로만 생각한 것이다.


미국의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실험실에서 전화를 받으면 '비서 말고 연구원과 통화하고 싶다'는 말을 듣는 때가

 많았고 남성 연구원들 가운데 일부는 남자 연구원과 일하거나 얘기하고 싶다고 내게 직접 얘기하기도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실상 연구원이라고 여기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지금까지도 우주인에 대한 후속 계획이 없으니 그 후로 얼마나 항우연이 있었든 강연만을 다녔으리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먹튀논란을 피하기 위해 의미있는 일도 하지 못하고 10년, 15년 항우연에서 월급만 받는 것은 오히려 세금

낭비라고 할 수 있다.

우주인 후보였던 고산은 의무기간 2년이 끝나고 얼마되지 않아 항우연을 그만두고 하버드로 유학을 떠났으며 현재는

 3D 프린터 업체를 창업하였다.

2013년에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로보월드 2013' 전시장에서 고산은 우주인 후속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소연과 고산 두 명이 모두 우주와 연관되지 않은 일에 종사한다는 것은 항우연이 우주인 훈련에 참여했던 두 명

 모두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으며 의미있는 계획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할 수 있는 일은 끝났고 그 후 우주여행 관련 경험을 이용하여 무언가 해보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미국으로 떠났다는 뜻이다.


후에 MBA를 선택한 이유도 정부의 정책과 예산 배정에서 밀리면서 소외되었던 경험이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이에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홍의락 의원은 이소연 박사에게 직접 사과했다.


 이 사건 이외에도 우리나라가 이공계 전문인력에 대해 얼마나 홀대하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인재들이

해외로 유출되는지 생각해보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결국 10년 만에 본인이 직접 당시 정부의 행태를 비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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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 / 사진=아시아경제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