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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사

우주로 떠난 스티븐 호킹 우주 비밀 탐구…진리 향한 인간 의지의 승리


스티븐 호킹 박사가 2016년 4월12일 미국 뉴욕 원월드트레이드 센터에서 우주 사진을 배경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욕 | EPA연합뉴스


스티븐 호킹 박사가 2016412일 미국 뉴욕 원월드트레이드 센터에서 우주 사진을

배경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욕 | EPA연합뉴스







영국의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76세를 일기로 자택에서 타계했다. 전신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는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으나 연구에 몰두한 그는 우주론과 양자 중력 연구에

기여했으며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계보를 잇는 물리학자로 평가받았다. 사진은 지난 2015년 모습이다.


/ 2018314, 영국





스티븐 호킹 박사. [중앙포토]


스티븐 호킹 박사. [중앙포토]






우주로 떠난 스티븐 호킹  우주 비밀 탐구…진리 향한 인간 의지의 승리




육체를 쓰러뜨린 질병도 우주를 향한 호기심을 막을 수 없었다. 14일 타계한 영국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진리를 탐구하는 성실한 학자이자 장애를 극복한 위대한 인간으로서 세계인들에게 깊은 울림과 감동을 남겼다. 

호킹은 194218일 영국 옥스퍼드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이소벨 호킹은 아들의 우주 사랑이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다고 회고한다.


여름밤 집 뒷마당에서 함께 별을 볼 때도 스티븐은 언제나 강한 호기심을 느끼곤 했다별이 그를 끌어당기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17세 때인 1959년 옥스퍼드대학에 입학한 호킹은 1962년 자연과학부를 최우수로 졸업한 뒤 케임브리지 대학원에 진학해 우주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을 공부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대학원 입학 1년 만에 불행이 찾아왔다. 계단에서 떨어지거나 말을 더듬는 일이 잦아졌다.

 이를 이상히 여긴 아버지는 호킹에게 진료를 권했고, 의사는 근위축성 측삭경화증(루게릭병) 진단을 내렸다.

기껏해야 2년 반 정도를 더 살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의 나이 불과 21세였다. 


그러나 장애는 오히려 그를 위대한 과학자로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호킹은 진단을 받기 전까지 내 인생은 정말 지루했다어차피 죽는다면 뭔가 좋은 일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호킹은 장애 판정을 받은 후 이전보다 더 열성적으로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의 병세도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됐고, 1965년 결혼한 부인 제인 와일드도 극진한 병간호로 남편의 투병을

도왔다.


1985년 기관지 절개수술을 받은 후에는 발성 기능까지 완전히 상실했다.

간병인의 도움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병세가 악화됐지만 호킹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휠체어에 탑재된 음성합성기를 이용해 저작과 강연 활동을 이어갔다.


두 손을 쓸 수 있을 땐 손가락으로 자판을 눌러 의사소통을 했고, 손가락이 마비된 뒤에는 눈동자의 움직임만으로

문장을 만들었다. <블랙홀과 아기우주>(1993), <호두 껍질 속의 우주>(2001)와 같은 대표작들이 이 시기에 쓰였다. 

호킹은 대중의 사랑을 받은 과학자이기도 했다.


 1988년 발간한 <시간의 역사>는 전 세계적으로 1000만부 이상 팔렸다.

영국 선데이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237주 동안이나 오르며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그의 삶은 2014년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으로 재조명을 받았다.


                 












1988년 스티븐 호킹 박사가 저술한 '시간의 역사'.

 사진=네이버 이미지 캡처


                

물론 55년간의 투병 생활은 그에게 큰 고통이었다.

 2013년 출간한 자서전 <, 호킹의 역사>에서 나의 병은 연구에 더 몰두하도록 힘이 되기도 했지만, 두 번의 결혼

생활을 망가뜨리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그럼에도 그는 유머감각을 잃지 않았다.

 그의 저서에는 동료 교수들과 블랙홀 등 천체물리학을 놓고 벌이는 내기 에피소드가 곧잘 등장한다.


호킹은 주로 자신의 생각이 아닌 그 반대쪽에 내기를 걸었는데, 자신과 생각이 다른 결과가 나오면 내기에 이겨서 좋고, 자신이 져도 이론이 옳은 것으로 판명되니 잃을 것이 없다는 이유다.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킵 손과의 블랙홀 내기에서 패배해 잡지 구독권을 사준 것도 유명한 일화다. 


호킹은 학계를 넘어 사회참여 목소리도 꾸준히 내왔다.

특히 그는 기후변화와 핵전쟁 등에 따른 인류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예측을 여러 차례에 걸쳐 밝혔다. 

그를 움직인 평생의 동력은 우주는 왜 이런 모습이고, 왜 이렇게 존재하는지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누구보다 우주를 동경해온 그는 우주로 돌아갔다.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76살의 나이로 숨졌다.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 네이처는 "21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물리학자이자 현대 과학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스티븐 호킹이 세상을 떠났다"고 애도했다.


스티븐 호킹은 우주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학설을 제시한 천재 물리학자이자 희귀병인 루게릭 병을 극복한 장애인

과학자로 대중적으로도 큰 사랑을 받아왔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생애를 사진으로 돌아본다




 

1979년 10월 미국 뉴저지를 방문한 스티븐 호킹 박사


197910월 미국 뉴저지를 방문한 스티븐 호킹 박사


스티븐 호킹은 19421월 영국 옥스퍼드에서 태어났다.

 물리학 성적이 뛰어나 17살 때 옥스퍼드 대학교에 입학했고, 자연과학 분야의 최우등 학위를 받은 뒤 1962

케임브리지 대학원에 진학했다.

박사과정 중이던 21살 때 루게릭 병으로 불리는 근위축성측색경화증(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ALS) 진단을

받았다. 당시 의사는 2년 정도의 시한부 삶을 예고했다.






첫 아내 제인 와일드와 함께한 스티븐 호킹 박사


첫 아내 제인 와일드와 함께한 스티븐 호킹 박사


의사의 예상에 비해 병의 진행 속도는 느렸다.

스티브 호킹은 루게릭병 진단을 받기 전부터 교제해 온 제인 와일드와 1965년 결혼했다.

부부는 25년간 결혼생활을 하며 세 자녀를 두었다.


호킹은 1975년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응용수학 및 이론 물리학과 교수가 되었고 1979년 석좌교수가 되었다.

1988년 출간한 대중 과학서 '시간의 역사(A Brief History of Time)'는 그에게 전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주었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2000년 한국을 방문해 청와대에서 강연하고 김대중 대통령 부부와 환담을 나누는 모습


스티븐 호킹 박사는 2000년 한국을 방문해 청와대에서 강연하고 김대중 대통령
 부부와 환담을 나누는 모습



스티븐 호킹은 1985년 폐렴에 걸려 기관지 절개 수술을 받은 뒤 목소리를 잃었다.

그러나 이후 30여 년간 고성능 음성 합성기를 통해 의사소통하며 왕성한 대중 강연을 펼쳐왔다.

그는 스타트렉, 심프슨 가족, 빅뱅 이론 같은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에 깜짝 출연하기도 했다.

 호킹 박사는 1990년과 2000년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2008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넬슨 만델라와 만난 스티븐 호킹 박사


2008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넬슨 만델라와 만난 스티븐 호킹 박사




전 세계적인 명성을 누렸지만 스티븐 호킹은 음성 합성기를 통한 의사소통에 대해 외로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2015BBC와의 인터뷰에서 호킹 박사는 "사람들이 음성 합성기를 통해 나오는 내 의사 표현을 좀처럼 기다리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내게 말을 거는 것조차 무서워해 무척 외로웠다"고 말했다.

넬슨 만델라도 스티븐 호킹 앞에서 입을 열기를 주저한 것을 전해진다.





 2016년 12월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난 스티븐 호킹 박사


201612월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난 스티븐 호킹 박사



스티븐 호킹 박사는 2010년 출간한 '위대한 설계(The grand design)'에서 신의 존재를 부정했다.

우주의 기원인 '빅뱅'은 신이 아니라 자연현상이라고 강조하며 "우주는 신이 설계한 것이 아니라 저절로 생겨났다",

 "과학은 신을 불필요하게 만든다"라는 도발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블랙홀과 관련한 우주론과 양자 중력 연구에 기여했으며, 대우주에 대한 상대성 이론과 소우주에 관한 양자이론을 통합하는 데 몰두했다.
실험으로 재현하기 어려운 이론 물리학 분야의 특성 때문에 그의 연구는 노벨상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스티븐 호킹

박사는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계보를 잇는 천재 물리학자로 평가되고 있다.

 



인터넷 뉴스 





                           
[포토] “무척 외로웠다” 사진으로 보는 스티븐 호킹의 생애




 

 



사진=2018 평창 공식 트위터






스티븐 호킹의 삶... 시간 낭비를 싫어했다!






스티븐 호킹, 일분일초스티븐 호킹, 시간은 소중하다!


스티븐 호킹은 인간 승리의 표본이다. 스티븐 호킹은 76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스티븐 호킹의 자녀들은 성명을 통해 스티븐 호킹의 별세 소식을 전했다.

스티븐 호킹은 위대한 과학자이자 비범한 인물이었다. 스티븐 호킹의 업적과 유산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고 스티븐

호킹의 자녀들이 전했다.


스티븐 호킹은 뉴턴과 아인슈타인 등 천재 물리학자들의 계보를 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티븐 호킹은 21세의 나이로 전신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는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지만 연구에만 몰두했다.

스티븐 호킹은 결국 학문적 성과를 꽃피웠다.


스티븐 호킹의 집념은 무서운 병마조차 꺾을 수 없었다.

 스티븐 호킹은 휠체어에 의지한 채 앞면에 부착된 센서로 컴퓨터에 문자를 입력하고 이를 목소리로 바꾸는 방식으로 대화를 했다. 스티븐 호킹은 최근까지도 연구를 수행하고, 글을 쓰고 강연하는 활동을 계속 했다.


스티븐 호킹은 시한부 판정을 받았으나 55년 동안의 삶을 이어오면서 고독한 연구를 이어갔다.

 스티븐 호킹은 슈퍼 컴퓨터로 우주의 기원을 찾는 코스모스 팀과 협업도 했다.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1962년 그의 나이 21세에 근위축성 측색경화증(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스티븐 호킹은 40년 동안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우주론과 양자중력 연구에 업적을 남기며 세계적인 인정받는

 물리학자가 됐다.

스티븐 호킹은 1965년 케임브리지대 대학원에 진학했고 박사학위도 취득했다.


스티븐 호킹의 뛰어난 연구성과 때문에 연구원, 교수 등을 거쳐 1979년부터 2009년까지 케임브리지대 수학 석좌교수도 역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블랙홀이 입자를 방출하다 증발해 사라질 수 있다는 호킹 복사이론을 발표하면서 물리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스티븐 호킹은 2010년 미국의 물리학자 레너드 믈로디노프와 함께 위대한 설계라는 책을 썼다.

 스티븐 호킹은 책을 통해 우주는 신이 설계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스티븐 호킹의 무신론주장은 세계적으로

큰 논쟁거리가 되었다.


스티븐 호킹은 빅뱅은 중력 같은 물리학적 법칙의 불가피한 결과이지 신의 손이나 우연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스티븐 호킹은 또한 우주는 중력의 법칙과 양자이론에 따라 무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나 신의

개입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며 우주의 자발적 창조론에 대해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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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영국 가디언과 했던 인터뷰에서 스티븐 호킹은 인간의 뇌가 부품이 고장 나면 작동을 멈추는 컴퓨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장 난 컴퓨터에 천국이나 사후 세계란 없다고 스티븐 호킹이 주장한 것이다.


이는 스티븐 호킹이 위대한 설계에서 말했던 우주의 자발적 창조론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무신론적 입장을 견지한

 것이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이러한 자신의 입장을 밝힌 뒤 2014년 스페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과학을 이해하기 전에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믿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티븐 호킹은 이제 과학은 더욱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티븐 호킹의 나이는 76세였다... 닐 디그레스 타이슨은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천체물리학 교수로 알려졌다.


 헤이든 천문관 관장을 맡고 있는 타이슨은 미국 국방부의 혁신자문위원회 위원이고, 미국의 우주 관련 정책에 깊이

 관여하는 인물이라고 한다.


타이슨 교수는 14SNS 트위터를 통해 스티븐 호킹 박사의 죽음은 지적 공백을 남겼지만 완전히 비어있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 측정할 수 없는 시공간에 퍼지는 진공의 에너지로 생각하시라, 편히 잠드소서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스티븐 호킹 저서 시간의 역사


스티븐 호킹은 1988년에 대중 과학서 시간의 역사를 발표했다. 스티븐 호킹의 이 책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1천만 권 이상 팔렸다. 스티븐 호킹은 2006년 자신이 앓고 있는 병을 생각하며 일찍 죽을 것이라는

예상 속에 내 인생의 대부분을 살았다고 고백했다. 따라서 스티븐 호킹에게 시간은 언제나 귀중한 것이었다.


스티븐 호킹은 또한 하고 싶은 것들이 많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스티븐 호킹은 존립이 위태로운 자선 버스 서비스를 유지하는 지역 캠페인에도 참여했다.

스티븐 호킹은 작년 11월에는 지구의 종말이 머지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스티븐 호킹은 불덩어리가 지구를 삼키기까지 600년도 남지 않았다며 경고의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스티븐 호킹 박사와 닐 디그레스 타이슨 교수.


스티븐 호킹 박사와 닐 디그레스 타이슨 교수.






2016년 9월23일 스티븐 호킹 박사가 영국 케임브리지 자택에서 ‘경향포럼’ 기조강연 영상 촬영을 마친 뒤 김민아 논설위원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경향신문 촬영팀


2016923일 스티븐 호킹 박사가 영국 케임브리지 자택에서 경향포럼

 기조강연 영상 촬영을 마친 뒤 김민아 논설위원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경향신문 촬영팀





경향 70돌에 홀로그램 강연한 스티븐 호킹



혁신은 삶 전체를 아우르는 막대한 범주에서 일어납니다.

 미래에는 훌륭한 발명들이 있을 것이고, 이것이 우리가 살고 일하고 먹고 소통하고 여행하는 방식에 혁신을 가져올 것입니다.


14일 타계한 영국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2016928일 경향신문 창간 70주년 기념 경향포럼에서 특별기조

강연을 했다.

뉴 노멀 시대-혁신과 통찰을 주제로 한 포럼에서 호킹 박사는 사전에 제작된 홀로그램 영상을 통해 무대에 등장했다.


그는 젊은이들의 미래는 어느 때보다도 과학과 기술에 달려 있다무한한 상상을 통해 지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주인공은 바로 다음 세대 청년들이라고 말했다.

호킹 박사의 맏딸이자 과학소설가인 루시 호킹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과학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강연을 했다. 

경향신문 취재팀은 포럼 닷새 전인 923일 호킹 박사의 기조강연 영상 촬영을 위해 영국 케임브리지 자택을 방문했다.


루게릭병 환자인 호킹 박사는 1985년 폐렴으로 기관지 절개수술을 받은 뒤 목소리를 잃었다.

이후 컴퓨터 스크린에서 원하는 글자를 손끝으로 선택해 문장을 구성한 뒤 음성을 합성하는 방식으로 소통했다.

그러다 손가락마저 움직이기어렵게 되자 얼굴의 움직임으로 문장을 만들면 컴퓨터가 음성신호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취재팀은 호킹 박사의 접견실에서 기조강연 영상을 촬영하는 동안 이를 생생히 지켜볼 수 있었다.

호킹 박사가 안면 근육을 미세하게 움직이면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 음성으로 바뀌어 흘러나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음성 전환 속도가 빨라졌다.

기계로 전환된 음성은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호킹 박사의 일상은 매일 같은 시간 산책을 했다던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를 연상케 했다.

 오후 130분부터 한 시간 동안 점심을 먹고, 작업을 하다가도 오후 4시가 되면 차를 마시는 규칙을 지키고 있었다.

오랜 기간 병마와 싸우면서도 탁월한 연구와 저술을 남긴 배경에는 철저한 자기관리도 영향을 미쳤을 법하다.

살아있음만으로도 인간 존재의 위대함을 보여준 거인, 호킹의 안식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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