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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사

30조 럭키금성을 '160조 글로벌 LG'로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故) 구본무 LG 회장의 발인식에서 고인의 동생 구본준(앞줄 가운데) LG 부회장, 구본능(오른쪽) 희성그룹 회장, 구본식(왼쪽) 희성그룹 부회장이 고인의 마지막길을 배웅하고 있다.  <br /> 사진공동 취재단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故) 구본무 LG 회장의

 발인식에서 고인의 동생 구본준(앞줄 가운데) LG 부회장, 구본능(오른쪽) 희성그룹 회장,

 구본식(왼쪽) 희성그룹 부회장이 고인의 마지막길을 배웅하고 있다.


    사진공동 취재단






 고(故) 구본무 LG 회장    30조 럭키금성을 '160조 글로벌 LG'로


20일 별세한 LG 구본무(73) 회장은 LG를 글로벌 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은 경영자로 평가 받는다.
LG 창업주 고(故) 구인회 회장이 1947년 설립한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에서 출발한 LG는 2세 경영(구자경 LG
명예회장)에서 한국 대표 대기업으로, 구본무 회장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럭키금성’을 글로벌 시장에 맞는 ‘LG’라는 이름으로 바꾼 것도 구 회장의 의지였다.
LG그룹의 매출은 1995년 구 회장 취임 당시 30조원대에서 2017년 160조원대로 5배 이상 늘었다.
특히 해외매출은 10조원에서 약 110조원으로 10배 이상이 됐다.   




 
LG그룹 구본무 회장 별세   (서울=연합뉴스) 20일 LG그룹 구본무 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했다.   사진은 1997년 서울 올림픽 제1체육관에서 LG그룹 창립 50주년 기념식 중 회사기를 흔들고 있는 구본무 회장. 2018.5.20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LG그룹 구본무 회장 별세 (서울=연합뉴스) 20일 LG그룹 구본무 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했다. 사진은 1997년 서울 올림픽 제1체육관에서 LG그룹 창립 50주년 기념식 중 회사기를 흔들고 있는 구본무 회장.



2018.5.20 <저작권자(c) 연합뉴스,








"주변에 폐 끼치지 말라" 뜻 따라 구본무 회장 비공개 가족장





글로벌 LG로 키운 구본무 회장의 삶

 
구 회장은 ‘승부근성’이 강한 경영자로 유명했다.
 그가 회장에 취임하기 전까지 LG는 보수ㆍ안정적인 이미지였지만, 구 회장은 취임 직후 줄곧 ‘1등’, ‘초우량 기업’,
 ‘승부근성’ 등을 강조하며 LG의 변화를 주도했다.

특히 그는 매년초 LG인화원에서 그룹 CEO 수십명이 참여하는 1박 2일 글로벌 전략회의를 주재하며 ‘변화’와 ‘혁신’을 강조해왔다.
창업 70주년을 맞은 지난해 초에도 구 회장은 “100년 이상 영속하려면 기업은 변화하는 환경에 맞게 지속적으로 혁신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 숙환으로 별세   (서울=연합뉴스) 20일 LG그룹 구본무 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 사진은 2016년 2월 LG테크노콘퍼런스에서 대학원생들과 함께 대화하는 구 회장 모습. 2018.5.20 [LG 제공=연합뉴스]   phot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사진은 2016년 2월 LG테크노콘퍼런스에서 대학원생들과 함께 대화하는 구 회장 모습.


 2018.5.20  <저작권자(c) 연합뉴스,



 
2000억 적자에도 “길게 봐라”…디스플레이ㆍ2차전지 개척 
 
구 회장은 과감한 투자로 LG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 냈다. 디스플레이와 2차전지, 통신사업이 대표적이다.
구 회장은 1998년 LCD 전문기업 ‘LG LCD’를 설립했다. LG전자와 LG반도체가 각각 운영하던 TFT-LCD(초박막 액정
표시장치) 사업을 한 데 모으고는, 대규모 장치산업인 디스플레이에 투자를 결정했다.

 특히, 1999년 8월 당시 국내 기업이 유치한 외국 자본으론 사상 최대 규모였던 16억 달러를 필립스로부터 유치해
합작사 ‘LG필립스 LCD’를 출범시켰다. 2008년엔 단독법인 LG디스플레이를 출범시켜 세계 1위 기업으로 키웠다.  




 
구본무 LG그룹 회장 별세   (서울=연합뉴스) 20일 LG그룹 구본무 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했다.   사진은 2011년 서초구 양재동 LG전자 서초R&D캠퍼스에서 현미경을 보고 있는 구본무 회장. 2018.5.20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사진은 2011년 서초구 양재동 LG전자 서초R&D캠퍼스에서 현미경을 보고 있는 구본무 회장.


 2018.5.20 <저작권자(c) 연합뉴스,

 
2차 전지 역시 구 회장의 투자로 현재 LG의 핵심사업으로 성장했다.
 1992년 부회장으로 그룹 사업 전반을 챙기던 구 회장은 영국 출장에서 처음 2차전지를 접하고 무릎을 쳤다.
 한번 쓰고 버리는 건전지가 아니라, 충전후 반복 사용할 수 있는 2차전지를 LG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꼽은 것이다.

구 회장의 지시로 럭키금속이 2차전지를 연구했고, 회장 취임이후인 1996년엔 럭키금속의 연구팀이 LG화학으로 옮겨 연구를 계속했다.   
      가시적인 성과가 좀체 나타나지 않고, 2005년에는 2차전지 사업이 2000억 가량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구 회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길게 보고 투자와 연구개발에 더 집중하라”, “끈질기게 하다 보면 꼭 성과가 나올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며 다독였다.
 현재 LG화학은 2차전지 분야에서 세계 1위로, 현대기아차ㆍGMㆍ포드ㆍ르노ㆍ아우디ㆍ상하이차 등 완성차 업체 30곳 이상에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 별세   (서울=연합뉴스) 20일 LG그룹 구본무 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 사진은 2002년 10월 구 회장이 전기차배터리 개발을 위해 만든 시제품을 테스트하고 있는 모습. 2018.5.20 [LG 제공=연합뉴스]   phot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사진은 2002년 10월 구 회장이 전기차배터리 개발을 위해 만든 시제품을 테스트하고 있는 모습.


 2018.5.20  <저작권자(c) 연합뉴스

 
 구 회장은 1996년 LG텔레콤을 설립해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한 뒤 유선통신(데이콤ㆍ파워콤) 인수를 통해 통신을 LG의 주력 사업으로 키웠다.
 2010년 통신3사를 합병한 LG유플러스 출범후, 구 회장은 과감한 투자로 4세대 이동통신 LTE 시장의 판을 뒤흔들었다.

구 회장은 “단기 경영실적에 연연하지 말고 네트워크 구축 초기 단계에서부터 과감히 투자하라”고 말했다.
3년으로 예상된 LTE 전국망 구축을 9개월만에 끝냈다. 
 하지만, 반도체 사업은 구 회장의 통한(痛恨)으로 꼽힌다.

구 회장은 1979년부터 LG가 투자해온 반도체 사업을 DJ정부의 대기업 간 사업 교환 방침, 일명 ‘빅딜’에 따라 현대그룹의 현대전자에 보내야 했다. 당
시 구 회장은 두 반도체기업 통합 후 경영권을 확보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지만 눈물을 머금고 지분을 현대전자에 넘겨야 했다.

그러나 2년 뒤 현대전자는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에 들어갔고, 이름을 하이닉스로 바꾼 뒤인 2011년 SK텔레콤에
 인수됐다.

LG는 지난 2007년 발간된 『LG 60년사』에서 “인위적인 반도체 빅딜의 강제는 LG반도체와 현대전자의 통합법인 출범 이후의 모습에서 나타났듯이 한계사업 정리, 핵심역량 집중이라는 당초의 취지와 어긋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출처: 중앙일보]





고 구본무 회장



고 구본무 회장          




'소록도 할매 천사' 남모르게 뒷바라지.. 故 구본무 회장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20일 타계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소록도 할매 천사’로 알려진 오스트리아 간호사들에게 LG복지재단을 통해 매달
수백만 원의 생활비를 지원해 온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소록도 할매 천사로 알려진 이들은 전남 고흥군 소록도병원에서 약 40년 동안 한센병 환자를 돌본 마리아네 스퇴거

간호사(84), 마르가리타 피사레크 간호사(83)다.


고인은 소록도 할매 천사들이 고향으로 돌아간 뒤 최저 수준의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먼저 제안한 뒤 현재까지 매달 생활비를 지원해 오고 있다.

LG그룹 관계자는 “2016년 2월경 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 기념식을 앞두고 스퇴거 간호사가 한국을 다시 찾으면서

그들의 사연과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이 외부로 알려졌다.


 구 회장은 동아일보 기사를 읽은 뒤 평생 소록도에서 환자들을 위해 봉사했던 두 간호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고, LG복지재단을 통해 평생 생활비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소록도 할매 천사’로 알려져 있는 마리아네 스퇴거 간호사(왼쪽)와 마르가리타 피사레크 간호사. 20일 타계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2016년 초부터 이들에게 생활비를 지원해 왔다. 동아일보DB


‘소록도 할매 천사’로 알려져 있는 마리아네 스퇴거 간호사(왼쪽)와 마르가리타 피사레크

 간호사. 20일 타계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2016년 초부터 이들에게 생활비를 지원해 왔다.


동아일보DB      



    

스퇴거, 피사레크 두 간호사는 각각 43년 9개월, 39년 1개월 동안 소록도에 머물며 한센병 환자를 돌봤다.
국내에서는 수녀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간호사다. 간호사를 직업으로 삼고 종교인의 생활 및 정신을 실천하는 ‘재속회’ 소속이다.
이 때문에 고국으로 돌아간 뒤 수녀원의 도움을 받지 못했고, 사실상 연금이 생활비의 전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생활비 지원은 고인이 먼저 제안했다. 두 간호사는 “그렇게 많은 돈은 필요 없다”며 수차례 고사했지만 구 회장이 거듭 설득해 지원받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스퇴거 간호사는 대장암 수술을 수차례 받았고, 피사레크 간호사는 현재 경증 치매 증상을 앓아 요양원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의사마저 접촉을 꺼리던 한센인을 밤낮으로 돌본 두 간호사의 봉사정신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스퇴거

간호사는 오스트리아의 한 간호대를 졸업한 뒤 1962년 “소록도에 간호 인력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듣고 소록도를

찾았다.


피사레크 간호사 역시 4년 뒤 소록도에 도착했다.

 이후 맨손으로 한센인의 상처에 소독약을 바르고 함께 식사를 했다.

러다 40여 년이 흐른 2005년 ‘건강이 악화돼 환자들을 돌볼 수 없어 부담만 주는 것이 미안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남기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인은 평생 기업인으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려 애썼다.

기업이 사회적 의인(義人)에게 위로금을 전달하면 그 행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개인 혹은 기업이 힘을 보탤 수 있는 그 나름의 방법을 찾은 셈이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한때 정상국 LG 그룹 홍보팀장(부사장)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사진= 정상국 한국CCO클럽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한때 정상국 LG 그룹 홍보팀장(부사장)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정상국 한국CCO클럽 회장.





구본무 회장을 보내며, 그리워하며…



오늘 LG 구본무 회장님께서 별세하셨다.
새를 좋아하고 자연을 사랑하며, 사람들과 만나 정답게 이야기하기를 좋아하시던 和談(화담) 具本茂(구본무) 會長

(회장)께서 불과 73세의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슬프다.마음이 몹시 아프다..

내가 처음 구본무 회장님을 알게 된 것은 (주)럭키에 입사했던 1978년 무렵이다.
그때 구 회장은 수출본부에서 관리 업무를 맡고 있었는데 대기업 그룹들의 규모가 지금처럼 크지 않기도 했지만,

무슨 한국 최대 재벌의 아들 같은 분위기도 전혀 없었다.

그저 보통 사람, 관리부장이었다.
특별히 잘 알고 지내지도 않았으며, 그 이후에도 구본무 부장에 대해 달리 관심을 갖거나 의식한 적 없이 그저 나를

중심으로 바쁘게 회사 생활을 하면서 지냈다.

내가 다시 구 회장님을 가까이서 뵙게 된 것은 1990년 1월, 당시 럭키금성 회장실 홍보팀 부장으로 승진 발령을 받고서부터다.

◇차라리 2등을 하자던 50세의 젊은 회장님

구 회장은 당시 럭키금성그룹의 부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그때부터는 크고 작은 여러 일로 뵐 기회가 많았고, 나중에

내가 회사를 그만두게 되는 2012년 말까지 23년을 업무적으로, 비업무적으로 가까이서 자주 뵙게 된다.


1995년, 럭키금성에서 LG로 CI를 바꾸고, 새로 출범하는 'LG그룹'의 50세 젊은 회장으로 취임하자마자 구본무 회장은 ''우리 사회도 이제 바른 길로 기업 경영을 해야 한다''며, "正道経営(정도경영)을 통해 ㄧ等(일등) LG를 달성하자"며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신선한 주장이어서 반향이 크기도 했지만, 우리 사회 여건으로는 무리하다는 반응도 많았던

게 사실이다.


특히 LG 내부 일선 영업 부서 등에서는 우리 사회의 관행과 현실적 어려움 등을 내세우며 다소의 편법은 아직 '필요악'이라며 볼멘소리를 했고, 그런 반발에 구본무 회장은 ''당당히 실력으로 1등을 하든지, 부정한 방법으로 일등을 할

거면 차라리 2등을 해도 어쩔 수 없다!''며 강하게 밀어붙였다.

구본무 회장은, 크게 도움도 되지 않고 그리 싹싹하지도 않은 나를, LG에서 35년이나 녹을 먹게 해 주신 참 고마운 분이지만, 내게 특별히 잘해 주거나 하시지는 않았고, 실제로도 칭찬받은 기억보다 야단맞은 기억이 훨씬 더 많기도 하다.
또한 구 회장은 내가 일을 시원찮게 했을 때는 불같이 화를 내며 호되게 야단도 치셨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억울하다거나 이른바 '재벌의 갑질'이라는 식의 생각을 한 적은 없었으며, 늘 내가 잘못했고 누를 끼쳐드렸으며 미안하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부하 직원이라고해서 '이유 없이' 함부로 대하지는 않으셨다.
게다가 화를 내고 나서는 시간이 지난 다음, 쑥스러워하며 이런 저런 방법으로 은근히 미안하다는 마음을 표현하시는 분이 또한 구본무 회장이다.

◇결코 나서지 않고…부끄러움을 알았던 회장님

1995년 LG상남언론재단을 설립하며 나를 상임이사로 임명하고 이사진은 전원 외부의 언론인이나 관련 교수로 구성

하면서, "앞으로 언론재단 일은 전적으로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

 저나 LG는 전혀 신경쓰지 마시고 최고의 언론재단으로 잘 운영해 주이소" 라고 한 약속을 끝까지 지켜 최근까지도

 일절 언론재단 일에 간섭하시지 않았다.

1998년 IMF 정국의 이른바 '반도체 빅딜' 때는 어쩔 수 없이 LG반도체를 현대전자에 넘겨 주게 되지만, 마지막 순간

전광석화처럼 'LG LCD'를 설립해 당국과 현대의 허를 찌르며 이 땅에 Display 산업의 초석을 다지는 결단을 내리

셨던 구본무 회장.

가끔 공식적인 일로 외부 행사장에 모시고 갔을 때 보면, 결코 앞 줄에 나서지 않고 잘난 척하지도 않으며, 조용히 뒤에 서 있다가 행사가 끝난 직후에는 운전기사에게 직접 핸드폰으로 전화해 차를 나오라고 했고, 행사장 주차 공간이 복잡


할 때는 도로 건너편 어디든 한가한 곳으로 차를 대라고 해서는, 때로 지하도를 건너 차까지 걸어가 직접 차문을 열고 타시는, 그런 분이 구본무 회장이다.
당연히 그래서 구 회장은 나대거나 잘난 척하는 사람들을 '별로'로 여기셨다.

2000년대 초 무렵, 소위 '차떼기 사건'이 터졌을 때는 ''정도경영을 부르짖던 내가 창피하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다''며, 당시 TV에서 틀고 있던 '정도 경영, 사랑해요, LG' 광고를 바로 내리라고 지시했고, 그 해 연말의 언론인

모임 송년 행사장에도 사람들 볼 낯이 없다며 참석하지 않으실 정도로 경우 있고 염치를 아시던, 정말 양심적인 분이다.

2003년에는 우리나라 대기업 그룹으로서는 최초로 持株会社体制(지주회사체제)를 도입하여, 한국 기업사의 오랜 과제였던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실천해 오너는 지주회사 지분을 소유하고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는, 혁신적인

책임경영 시스템을 앞장서 도입하기도 하셨다.

◇좀더 가진 사람이 양보하면 싸울 일이 없다

또한 GS, LS, LIG, LF로 계열분리를 할 때도 "좀 더 가진 사람이 양보하면 싸울 일이 없습니다"며, 57년간 함께 동업

하던 분들과의 관계를 아무 잡음 없이 잘 마무리해 당시 언론에서도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런 사례는 없다며 "아름다운 동업, 아름다운 이별" 이라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나도 회사를 그만둘 때는 충분히 오래 다녔음에도 섭섭한 마음이 없잖아 있었다.
그런 나의 소인배적 심사를 눈치 채셨는지, 퇴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따로 불러 금일봉과 함께 따뜻한 위로의 말씀으로 격려해 주셨고, 나중에는 LG상남언론재단의 감사를 시켜 주기도 하셨다.

'부하 직원에게라도 혹시 내가 인간적으로 잘못하고 있지나 않은지'..

언제나 그런 것들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고 걱정하시던, '인간적인, 그야말로 인간적인' 분이 구본무 회장이다.


외부와의 약속은 물론, 내부 임직원과의 약속에도 언제나 20분 정도 먼저 도착해 손님을 맞고, 식당에 가서도 서빙하는 종업원들에게도 많은 돈은 아니어도 꼭 팁을 따로 챙겨 조그맣게 접어 손에 꼭 쥐어 주고는 하시던 인자한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유머를 알고…배려를 알았던 선배님

어떤 모임에서나 좌중이 썰렁하기라도 하면 마치 당신의 책임이라도 되는 듯 미리 준비해 온 다양한 유머와 마술,

 그리고 우스개 소리로 여러 사람들을 편하고 즐겁게 웃겨 주시고, 누구를 만나도 반말하는 법이 없으며, 언제나 먼저 명함을 건네며 "저, LG 구본뭅니다.

 이거는 그냥 찌라십니다. 받아 두이소" 하시던 동네 아저씨 같던 구본무 회장.

골프를 칠 때는 '제 2의 캐디'를 자처하며, 그린의 경사도 봐주고 깃대도 들어 주며 소탈하게 남을 먼저 배려하시던

 구본무 회장님이 오늘 돌아가셨다.
그래서 오늘 나는 정말 많이 슬프다.

함께 모시는 동안, 혼자 잘난 척하며 '회장보다는 회사를 위한답시고' 입바른 소리로 마음 아프게 해드렸던 여러 일들도 이제 와 생각하니 개 코도 아무 것도 아닌 치기 어린 짓거리였으며, 후회스럽기 그지없다.
그냥 뭐든지 하자시는대로 따르고 말씀드릴 것을…

지금 구본무 회장님과 웃으며 함께 찍은 사진을 본다.
하늘나라에서도 여러 사람들을 편하고 즐겁게 해 주고 계시는 회장님의 모습을 그려 본다.
구본무 회장님의 명복과 영생을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정상국



  • 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발인식.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데일리한국 사진공동취재단] 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발인식이 엄수된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구광모 LG전자 상무가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하고 있다.




  • 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발인식.
  •  
  • 사진=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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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공동취재단] 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발인식이 엄수된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영정이 모셔진 운구차량 뒤로 유가족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18.05.22






    [사진공동취재단] 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발인식이 엄수된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구광모 LG전자 상무가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하고 있다.


    2018.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