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故) 구본무 LG 회장의
발인식에서 고인의 동생 구본준(앞줄 가운데) LG 부회장, 구본능(오른쪽) 희성그룹 회장,
구본식(왼쪽) 희성그룹 부회장이 고인의 마지막길을 배웅하고 있다.
사진공동 취재단
LG그룹 구본무 회장 별세 (서울=연합뉴스) 20일 LG그룹 구본무 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했다. 사진은 1997년 서울 올림픽 제1체육관에서 LG그룹 창립 50주년 기념식 중 회사기를 흔들고 있는 구본무 회장.
2018.5.20 <저작권자(c) 연합뉴스,
구 회장은 ‘승부근성’이 강한 경영자로 유명했다.
. 사진은 2016년 2월 LG테크노콘퍼런스에서 대학원생들과 함께 대화하는 구 회장 모습.
2018.5.20 <저작권자(c) 연합뉴스,
사진은 2011년 서초구 양재동 LG전자 서초R&D캠퍼스에서 현미경을 보고 있는 구본무 회장.
2018.5.20 <저작권자(c) 연합뉴스,
2차 전지 역시 구 회장의 투자로 현재 LG의 핵심사업으로 성장했다.
가시적인 성과가 좀체 나타나지 않고, 2005년에는 2차전지 사업이 2000억 가량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구 회장은
사진은 2002년 10월 구 회장이 전기차배터리 개발을 위해 만든 시제품을 테스트하고 있는 모습.
2018.5.20 <저작권자(c) 연합뉴스
구 회장은 1996년 LG텔레콤을 설립해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한 뒤 유선통신(데이콤ㆍ파워콤) 인수를 통해 통신을 LG의 주력 사업으로 키웠다.
[출처: 중앙일보]

고 구본무 회장
소록도 할매 천사로 알려진 이들은 전남 고흥군 소록도병원에서 약 40년 동안 한센병 환자를 돌본 마리아네 스퇴거
간호사(84), 마르가리타 피사레크 간호사(83)다.
고인은 소록도 할매 천사들이 고향으로 돌아간 뒤 최저 수준의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먼저 제안한 뒤 현재까지 매달 생활비를 지원해 오고 있다.
LG그룹 관계자는 “2016년 2월경 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 기념식을 앞두고 스퇴거 간호사가 한국을 다시 찾으면서
그들의 사연과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이 외부로 알려졌다.
구 회장은 동아일보 기사를 읽은 뒤 평생 소록도에서 환자들을 위해 봉사했던 두 간호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고, LG복지재단을 통해 평생 생활비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소록도 할매 천사’로 알려져 있는 마리아네 스퇴거 간호사(왼쪽)와 마르가리타 피사레크
간호사. 20일 타계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2016년 초부터 이들에게 생활비를 지원해 왔다.
동아일보DB
생활비 지원은 고인이 먼저 제안했다. 두 간호사는 “그렇게 많은 돈은 필요 없다”며 수차례 고사했지만 구 회장이 거듭 설득해 지원받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스퇴거 간호사는 대장암 수술을 수차례 받았고, 피사레크 간호사는 현재 경증 치매 증상을 앓아 요양원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의사마저 접촉을 꺼리던 한센인을 밤낮으로 돌본 두 간호사의 봉사정신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스퇴거
간호사는 오스트리아의 한 간호대를 졸업한 뒤 1962년 “소록도에 간호 인력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듣고 소록도를
찾았다.
피사레크 간호사 역시 4년 뒤 소록도에 도착했다.
이후 맨손으로 한센인의 상처에 소독약을 바르고 함께 식사를 했다.
그러다 40여 년이 흐른 2005년 ‘건강이 악화돼 환자들을 돌볼 수 없어 부담만 주는 것이 미안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남기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인은 평생 기업인으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려 애썼다.
기업이 사회적 의인(義人)에게 위로금을 전달하면 그 행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개인 혹은 기업이 힘을 보탤 수 있는 그 나름의 방법을 찾은 셈이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한때 정상국 LG 그룹 홍보팀장(부사장)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정상국 한국CCO클럽 회장. |
구본무 회장을 보내며, 그리워하며…
오늘 LG 구본무 회장님께서 별세하셨다.
새를 좋아하고 자연을 사랑하며, 사람들과 만나 정답게 이야기하기를 좋아하시던 和談(화담) 具本茂(구본무) 會長
(회장)께서 불과 73세의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슬프다.마음이 몹시 아프다..
내가 처음 구본무 회장님을 알게 된 것은 (주)럭키에 입사했던 1978년 무렵이다.
그때 구 회장은 수출본부에서 관리 업무를 맡고 있었는데 대기업 그룹들의 규모가 지금처럼 크지 않기도 했지만,
무슨 한국 최대 재벌의 아들 같은 분위기도 전혀 없었다.
그저 보통 사람, 관리부장이었다.
특별히 잘 알고 지내지도 않았으며, 그 이후에도 구본무 부장에 대해 달리 관심을 갖거나 의식한 적 없이 그저 나를
중심으로 바쁘게 회사 생활을 하면서 지냈다.
내가 다시 구 회장님을 가까이서 뵙게 된 것은 1990년 1월, 당시 럭키금성 회장실 홍보팀 부장으로 승진 발령을 받고서부터다.
◇차라리 2등을 하자던 50세의 젊은 회장님
구 회장은 당시 럭키금성그룹의 부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그때부터는 크고 작은 여러 일로 뵐 기회가 많았고, 나중에
내가 회사를 그만두게 되는 2012년 말까지 23년을 업무적으로, 비업무적으로 가까이서 자주 뵙게 된다.
1995년, 럭키금성에서 LG로 CI를 바꾸고, 새로 출범하는 'LG그룹'의 50세 젊은 회장으로 취임하자마자 구본무 회장은 ''우리 사회도 이제 바른 길로 기업 경영을 해야 한다''며, "正道経営(정도경영)을 통해 ㄧ等(일등) LG를 달성하자"며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신선한 주장이어서 반향이 크기도 했지만, 우리 사회 여건으로는 무리하다는 반응도 많았던
게 사실이다.
특히 LG 내부 일선 영업 부서 등에서는 우리 사회의 관행과 현실적 어려움 등을 내세우며 다소의 편법은 아직 '필요악'이라며 볼멘소리를 했고, 그런 반발에 구본무 회장은 ''당당히 실력으로 1등을 하든지, 부정한 방법으로 일등을 할
거면 차라리 2등을 해도 어쩔 수 없다!''며 강하게 밀어붙였다.
구본무 회장은, 크게 도움도 되지 않고 그리 싹싹하지도 않은 나를, LG에서 35년이나 녹을 먹게 해 주신 참 고마운 분이지만, 내게 특별히 잘해 주거나 하시지는 않았고, 실제로도 칭찬받은 기억보다 야단맞은 기억이 훨씬 더 많기도 하다.
또한 구 회장은 내가 일을 시원찮게 했을 때는 불같이 화를 내며 호되게 야단도 치셨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억울하다거나 이른바 '재벌의 갑질'이라는 식의 생각을 한 적은 없었으며, 늘 내가 잘못했고 누를 끼쳐드렸으며 미안하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부하 직원이라고해서 '이유 없이' 함부로 대하지는 않으셨다.
게다가 화를 내고 나서는 시간이 지난 다음, 쑥스러워하며 이런 저런 방법으로 은근히 미안하다는 마음을 표현하시는 분이 또한 구본무 회장이다.
◇결코 나서지 않고…부끄러움을 알았던 회장님
1995년 LG상남언론재단을 설립하며 나를 상임이사로 임명하고 이사진은 전원 외부의 언론인이나 관련 교수로 구성
하면서, "앞으로 언론재단 일은 전적으로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
저나 LG는 전혀 신경쓰지 마시고 최고의 언론재단으로 잘 운영해 주이소" 라고 한 약속을 끝까지 지켜 최근까지도
일절 언론재단 일에 간섭하시지 않았다.
1998년 IMF 정국의 이른바 '반도체 빅딜' 때는 어쩔 수 없이 LG반도체를 현대전자에 넘겨 주게 되지만, 마지막 순간
전광석화처럼 'LG LCD'를 설립해 당국과 현대의 허를 찌르며 이 땅에 Display 산업의 초석을 다지는 결단을 내리
셨던 구본무 회장.
가끔 공식적인 일로 외부 행사장에 모시고 갔을 때 보면, 결코 앞 줄에 나서지 않고 잘난 척하지도 않으며, 조용히 뒤에 서 있다가 행사가 끝난 직후에는 운전기사에게 직접 핸드폰으로 전화해 차를 나오라고 했고, 행사장 주차 공간이 복잡
할 때는 도로 건너편 어디든 한가한 곳으로 차를 대라고 해서는, 때로 지하도를 건너 차까지 걸어가 직접 차문을 열고 타시는, 그런 분이 구본무 회장이다.
당연히 그래서 구 회장은 나대거나 잘난 척하는 사람들을 '별로'로 여기셨다.
2000년대 초 무렵, 소위 '차떼기 사건'이 터졌을 때는 ''정도경영을 부르짖던 내가 창피하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다''며, 당시 TV에서 틀고 있던 '정도 경영, 사랑해요, LG' 광고를 바로 내리라고 지시했고, 그 해 연말의 언론인
모임 송년 행사장에도 사람들 볼 낯이 없다며 참석하지 않으실 정도로 경우 있고 염치를 아시던, 정말 양심적인 분이다.
2003년에는 우리나라 대기업 그룹으로서는 최초로 持株会社体制(지주회사체제)를 도입하여, 한국 기업사의 오랜 과제였던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실천해 오너는 지주회사 지분을 소유하고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는, 혁신적인
책임경영 시스템을 앞장서 도입하기도 하셨다.
◇좀더 가진 사람이 양보하면 싸울 일이 없다
또한 GS, LS, LIG, LF로 계열분리를 할 때도 "좀 더 가진 사람이 양보하면 싸울 일이 없습니다"며, 57년간 함께 동업
하던 분들과의 관계를 아무 잡음 없이 잘 마무리해 당시 언론에서도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런 사례는 없다며 "아름다운 동업, 아름다운 이별" 이라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나도 회사를 그만둘 때는 충분히 오래 다녔음에도 섭섭한 마음이 없잖아 있었다.
그런 나의 소인배적 심사를 눈치 채셨는지, 퇴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따로 불러 금일봉과 함께 따뜻한 위로의 말씀으로 격려해 주셨고, 나중에는 LG상남언론재단의 감사를 시켜 주기도 하셨다.
'부하 직원에게라도 혹시 내가 인간적으로 잘못하고 있지나 않은지'..
언제나 그런 것들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고 걱정하시던, '인간적인, 그야말로 인간적인' 분이 구본무 회장이다.
외부와의 약속은 물론, 내부 임직원과의 약속에도 언제나 20분 정도 먼저 도착해 손님을 맞고, 식당에 가서도 서빙하는 종업원들에게도 많은 돈은 아니어도 꼭 팁을 따로 챙겨 조그맣게 접어 손에 꼭 쥐어 주고는 하시던 인자한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유머를 알고…배려를 알았던 선배님
어떤 모임에서나 좌중이 썰렁하기라도 하면 마치 당신의 책임이라도 되는 듯 미리 준비해 온 다양한 유머와 마술,
그리고 우스개 소리로 여러 사람들을 편하고 즐겁게 웃겨 주시고, 누구를 만나도 반말하는 법이 없으며, 언제나 먼저 명함을 건네며 "저, LG 구본뭅니다.
이거는 그냥 찌라십니다. 받아 두이소" 하시던 동네 아저씨 같던 구본무 회장.
골프를 칠 때는 '제 2의 캐디'를 자처하며, 그린의 경사도 봐주고 깃대도 들어 주며 소탈하게 남을 먼저 배려하시던
구본무 회장님이 오늘 돌아가셨다.
그래서 오늘 나는 정말 많이 슬프다.
함께 모시는 동안, 혼자 잘난 척하며 '회장보다는 회사를 위한답시고' 입바른 소리로 마음 아프게 해드렸던 여러 일들도 이제 와 생각하니 개 코도 아무 것도 아닌 치기 어린 짓거리였으며, 후회스럽기 그지없다.
그냥 뭐든지 하자시는대로 따르고 말씀드릴 것을…
지금 구본무 회장님과 웃으며 함께 찍은 사진을 본다.
하늘나라에서도 여러 사람들을 편하고 즐겁게 해 주고 계시는 회장님의 모습을 그려 본다.
구본무 회장님의 명복과 영생을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정상국



[사진공동취재단] 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발인식이 엄수된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영정이 모셔진 운구차량 뒤로 유가족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18.05.22

[사진공동취재단] 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발인식이 엄수된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구광모 LG전자 상무가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하고 있다.
2018.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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