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러시아월드컵 벨기에와의 준결승전에서 프랑스 축구대표팀을 응원하는 팬들의 모습.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크로아티아가 월드컵 결승에 진출하자 기뻐하는 자그레브 시민들.
[사진 유튜브 가디언 풋볼 캡처]
크로아티아가 월드컵 결승에 진출하자 기뻐하는 자그레브 시민들.
[사진 유튜브 가디언 풋볼 캡처


20년 전 1998 프랑스 월드컵. 지네딘 지단이 이끌던 프랑스는 결승전에서 현란한 개인기의 ‘삼바 축구’ 브라질을 3-0
프랑스는 우승 문턱에서 마지막 고비를 넘겼다. 프랑스를 괴롭힌 건 준결승에서 만난 ‘돌풍의 주역’ 크로아티아였다.
하지만 크로아티아는 개최국 이점을 등에 업은 프랑스에 1-2로 분패하며 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엇갈린 운명을 맞은 프랑스와 크로아티아가 20년 만에 다시 격돌한다.
프랑스는 11일 4강전에서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힌 ‘황금세대’ 벨기에를 1-0으로 잠재우고 결승에 안착했다. 프랑스는
크로아티아도 12일 준결승전에서 우승후보로 떠오른 잉글랜드를 연장 끝에 2-1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결승에

[프랑스 신예 킬리안 음바페의 환호.
사진=AP 연합뉴스 제공]
20년 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다시 맞붙는 프랑스와 크로아티아의 최대 변수는 체력이다.
반면 크로아티아는 16강부터 8강, 4강까지 모두 연장 혈투를 치른 끝에 결승에 올랐다.
한편 결승전에 앞서 14일 오후 11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아쉽게 결승행이 좌절된 벨기에와 잉글랜드의
잉글랜드는 1966년 자국 대회 우승 이후 52년 만의 우승 도전은 실패했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각오다.

위쪽은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의 모습, 아래쪽은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모습이다
(사진: FIFA 월드컵 트위터 캡처).
프랑스냐? 크로아티아냐?
FIFA컵 놓고 월드컵 세기의 승부16일 자정 결승전...
등 번호 7번 그리즈만 vs 라키티치,
10번 음바페 vs 모드리치 용호상박도 관심
/ 백창훈 기자
2018 러시아 월드컵 결승전이 오는 16일 자정(한국시각)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 위치한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펼쳐진다.
결승전의 주인공은 1998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우승한 뒤 20년 만에 두 번째 우승에 도전하는 ‘황금세대’ 프랑스와 ‘월드컵의 새 역사’를 쓰고 있는 크로아티아다.
두 팀의 등 번호 7번 그리즈만 vs 라키티치
축구 경기에서 등 번호 7번은 그 팀의 키 플레이어를 의미한다.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 7번은 공격수 앙투안 그리즈만(27,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선수다.
그는 프랑스 팀에서 최전방 공격수를 맡고 있지만, 일반적인 공격수와는 달리 낮은 위치에서 플레이하며 수비 가담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또 공격적인 상황에서는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공간 침투가 뛰어난 선수다.
그리즈만의 진가는 8강 우루과이 경기에서부터 발휘됐다. 전반 40분 프랑스의 코렌틴 톨리소(25, FC 바이에른 뮌헨)가 반칙으로 얻어낸 세트피스 상황에서 그리즈만이 크로스로 올린 공이 정확히 라파엘 바란(26, 레알 마드리드)의
머리에 맞으며 헤더 선제골을 도왔다.
또 후반 41분 그는 페널티 박스 밖에서 강력한 중거리 슈팅을 날려 1골을 기록했다.
이날 그리즈만은 FIFA의 MOM(Man of the Match)에 선정됐다.
4강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프랑스는 1-0을 기록하며 결승에 진출했다.
이 골은 후반 51분 코너킥 상황에서 사무엘 움티티(26, FC바르셀로나)가 날아오는 공에 머리를 갖다 대면서 헤더 골로 득점했다.
이 코너킥을 찬 선수가 바로 그리즈만이었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그리즈만은 3골 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프랑스 국가대표가 넣은 10골 중에 절반을 그가 관여한 셈이다.
반면, 크로아티아의 등 번호 7번은 미드필더 이반 라키티치(30, FC바르셀로나) 선수다.
라키티치 선수는 이미스페인 최고 명문구단 바르셀로나에서 없어서는 안 될 미드필더로 자리 잡았다.
그는 주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지만 측면, 공격형, 수비형 가리지 않고 모든 포지션을 소화하는 만능 플레이어다. 또 전 후반 90분 내내 지치지 않는 체력과 넓은 시야, 킬 패스가 장점인 선수다.
라키티치 선수의 첫 골은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나왔다. 후반 추가시간 3분, 라키티키가 날린 강력한 슈팅을
아르헨티나 골키퍼 카바예로(38, 첼시 FC)가 정확히 처리하지 못했다. 튕겨 나온 공을 받은 크로아티아의 마테오
코바시치(25, 레알 마드리드)선수가 다시 라키티치에게 패스했고 골로 연결시켰다.
라키티치는 잉글랜드와의 준결승 경기에서 골은 넣지 못했다.
하지만 통계 회사 ‘옵타 스포츠’가 공개한 4강 자료를 보면, 득점에 관여한 패스 공급 상위 3명에 라키티치가 포함돼
있다.
이것으로 보아 이 날 크로아티아 승리에 그가 크게 이바지했음에는 틀림없다.

두 팀 에이스 등 번호 10번, 음바페 vs 모드리치
축구경기에서 등 번호 10번은 주로 팀 내 에이스들이다.
이 번호를 부여받은 선수는 축구 실력뿐 아니라 전술 이해도, 체력 등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다.
프랑스 국가대표 10번은 킬리안 음바페(19, 파리 생제르맹 FC) 선수다.
그는 1998년생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약 2336억의 몸값을 받고 있다.
그는 16세의 어린 나이에 프랑스 리그 모나코 클럽팀에서 최우수 선수로 뽑히면서 ‘제2의 앙리’로 불렸다.
음바페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돌파 능력이다. 이 뿐만 아니라 뛰어난 개인기, 과감한 슈팅력을 가진 선수로 호날두와 메시를 이을 차세대 유망주로 꼽힌다.
음바페는 16강 아르헨티나의 경기에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프랑스의 역습상황에서 공을 잡은 그는 빠른 스피드를 이용해 순식간에 상대 팀 선수 4명을 제치고 페널티 킥 기회를
만들어 냈다.
이 때 그의 최고속도는 38km로 밝혀졌다.
이 뿐만 아니다. 후반 64분 아르헨티나 골문 앞에서 혼전 상황이 벌어졌다.
그 순간 공을 잡은 음바페는 좁은 공간에서 드리블 후 득점에 성공했다.
이어 7분 뒤인 후반 68분 올리비에 지루(33, 첼시 FC)가 측면으로 내준 공을 잡은 그는 빠른 스피드로 골문까지
돌파해 쐐기골을 박았다. 이 날 경기에서 음바페는 FIFA가 선정한 MOM(Man of the Match)을 받았다.
반면, 크로아티아의 등 번호 10번은 주장 루카 모드리치(34, 레알 마드리드) 선수다.
그는 팀 동료인 라키티치와 함께 중앙 미드필더를 맡고 있으며 축구 실력에 걸맞게 ‘중원의 지배자’라는 별명을
가졌다.
모드리치의 최대 강점은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강한 탈압박을 가졌다.
또한 신체 밸런스와 공 간수 능력이 뛰어나 웬만한 상황에서도 공을 뺏기지 않는다.
주로 날카로운 패스로 인해 어시스트를 기록한다.
모드리치의 첫 골은 아르헨티나와의 예선 경기에서 터졌다.
후반 80분 마르첼로 브로조비치(27, 인테르나치오날레)로부터 받은 패스를 패널티 박스 밖에서 강한 중거리 슈팅을
통해 득점을 올렸다.
잉글랜드와의 준결승 경기에서 모드리치는 어시스트와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지만 미국 스포츠 매체 ‘폭스 스포츠’는
트위터를 통해 그가 121분 경기 내내 39,1마일(약 63km) 뛰었으며,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한 736명의 선수 중
가장 많은 활동량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한편, 월드컵에는 20년 주기로 첫 우승컵 징크스가 있다.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브라질이 우승했고 1978년 아르헨티나가 자국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1998년 자국에서 열린 프랑스 역시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 후 20년을 맞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우승 경험이 없는 크로아티아가 우승컵을 들어 올릴지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취재기자 백창훈 reporter1@civicnews.com
<저작권자 © CIVICnews / 시빅뉴스,
![프랑스 디디에 데샹 감독(왼쪽)과 크로아티아 즐라트코 달리치 감독.[AP=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t1.daumcdn.net/news/201807/14/yonhap/20180714063626283kjpc.jpg)
프랑스 디디에 데샹 감독(왼쪽)과 크로아티아 즐라트코 달리치 감독.
[AP=연합뉴스 자료사진]
'극과 극' 인생역정 두 감독..마지막에 웃을 자는
'1998 우승 주역' 데샹 프랑스 감독, 사령탑으로 두 번째 우승 도전
달리치 크로아티아 감독의 '무명 반란' 한계 도전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2018 러시아 월드컵 결승에서 맞붙는 프랑스와 크로아티아의 사령탑 디디에 데샹(49)과 즐라트코 달리치(51) 감독은 선수 시절 둘 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쉰 살 전후 두 감독의 공통점은 이 정도가 전부다.
둘의 축구 인생은 '극과 극'이었다.
데샹 감독의 이력은 화려하다.
1985년 낭트(프랑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데상은 마르세유, 유벤투스, 첼시, 발렌시아 등 유럽 주요 구단을 거치며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연령대별 대표팀을 거쳐 프랑스 대표팀에서 1989∼2000년까지 103경기를 뛰었다.
실력뿐만 아니라 탁월한 리더십으로도 인정을 받은 그는 프랑스가 1998 프랑스 월드컵과 유로 2000에서 우승할 때
주장 완장을 차고 있었다.
은퇴 이후엔 AS모나코에서 곧바로 감독 경력을 시작했는데 이 역시 성공적이었다. AS모나코의 2003-2004 유럽축구
연맹(UEFA) 준우승을 이끌었다.
유벤투스로 옮겨서는 팀의 세리에A 승격을 이뤄냈고, 마르세유에선 리그컵과 리그앙 우승을 달성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2012년 프랑스 대표팀을 맡은 데샹 감독은 장기 집권하며 대표팀을 월드컵 결승까지 올려놨다.
프랑스가 우승을 차지하면 데샹은 선수와 감독으로서 모두 월드컵 우승을 경험한 역대 세 번째 감독이 된다.
결승 진출에 성공한 후 데샹 감독은 "20년 전의 성취는 영원히 남아있겠지만 계속 백미러만 볼 수는 없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우리는 지금 역사의 새 장을 쓰러 왔다"고 말했다.
![데샹의 2018년(왼쪽)과 1998년 [AFP=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t1.daumcdn.net/news/201807/14/yonhap/20180714063626434pwra.jpg)
데샹의 2018년(왼쪽)과 1998년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데샹 감독이 선수로서도 감독으로서도 비교적 '탄탄대로'를 걸었다면 달리치 감독은 '가시밭길'을 개척해왔다.
달리치 감독은 1983년부터 2000년까지 크로아티아와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여러 프로팀에서 뛰었다. 국가대표 경력은 전무하다.
은퇴 후 코치를 거쳐 크로아티아 여러 프로팀에서 감독을 지낸 달리치는 2010년 중동 무대에 도전했다.
감독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알파이살리를 맡아 2010-2011시즌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됐다. 알힐랄을 거쳐 2014년 아랍에미리트(UAE) 알아인으로 옮겨서는 여러 차례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팀을 가파르게 성장시켰다.
축구 정보 사이트 풋볼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알아인은 2014년 3월까지만 해도 세계랭킹 335위에 해당하는 구단
이었는데 달리치 감독이 온 후 2015년 12월 122위까지 올라갔다.
알아인 감독 시절 국내 팬들에게는 색다른 기억을 남기기도 했다.
알아인은 지난 2016년 1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전북 현대와 맞붙었는데 박충균 전북 코치가 주심 판정에 항의하자 달리치 감독은 박 코치가 경기 흐름을 방해한다며 전북 벤치로 와서 소리를 질렀다.
달리치는 박 코치를 향해 주먹을 날리기도 했고 결국 둘은 함께 퇴장당했다.
중동을 떠나 크로아티아 대표팀을 맡게 된 것은 불과 9개월 전인 지난해 10월이었다.
안테 차치치 전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후 급히 부름을 받았다.
크로아티아가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 물러난다는 조건이었으나 달리치는 본선 진출을 물론 사상 첫 결승 진출까지 이뤄내며 크로아티아 축구사를 새로 썼다.
결승을 앞두고 달리치 감독은 "살면서 나는 항상 어려운 길을 택했고 스스로 싸워야 했다.
사다리의 맨 밑에서 시작했다"며 "유럽의 어떤 감독들은 단지 그들이 선수로서 유명했다는 이유만으로 빅클럽을
감독직을 맡지만, 나에겐 아무것도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크로아티아 감독직 제안을 받았을 때 협상도 하지 않고 수락했다.
내 평생의 꿈이었기 때문"이라며 "크로아티아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나를 믿었고 선수들을 믿었다"고 말했다.
![달리치 크로아티아 감독(오른쪽)이 루카 모드리치를 안아주고 있다. [AP=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t1.daumcdn.net/news/201807/14/yonhap/20180714063626553hjgz.jpg)
달리치 크로아티아 감독(오른쪽)이 루카 모드리치를 안아주고 있다.
[AP=연합뉴스 자료사진]

뤼카 에르난데스(왼쪽)와 벤자민 파바드.
(사진=노컷뉴스/gettyimages)

'20년만의 우승 꿈꾸는' 프랑스의 베스트 일레븐
[골닷컴] 이범수 에디터 =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벨기에를 꺾고 올라온 프랑스 대표팀의 주전 라인업을 소개한다.
20세기 마지막 월드컵 챔피언 프랑스가 다시 한 번 월드컵 트로피에 도전한다.
당시 프랑스 대표팀 주장이었던 데샹은 감독의 자격으로 다시 한 번 결승 무대에 오른다.
상대는 돌풍의 팀 크로아티아다.
프랑스는 새로운 황금 세대와 함께 월드컵 우승을 꿈꾼다.
프랑스의 스쿼드는 화려하다.
주전 선수들 대부분이 유럽 주요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스쿼드에서 딱히 약점이 없다는 평이다. 또한, 주전 선수들의 활약이 전반적으로 좋다.
수비형 미드필더 캉테는 대회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으며, 그리즈만과 음바페도 적시에 좋은 활약을 펼쳤다.
'동유럽의 맹주' 크로아티아 대표팀의 소개에 앞서,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벨기에를 꺾고 올라온 프랑스 대표팀의
주전 라인업을 소개한다.

프랑스 골키퍼 위고 요리스. (사진=노컷뉴스/gettyimages)
골키퍼: 위고 요리스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 (잉글랜드)
배번: 1번
프랑스 대표팀의 주장이다.
이번 대회를 포함하여 총 세 차례의 월드컵에 출전한 베테랑이다.
이번 대회에서도 놀라운 선방들을 보여주며,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다.
유럽 무대에서의 풍부한 경험과, 노련함을 바탕으로 프랑스의 골문을 지킨다.
레프트백: 뤼카 에르난데스
소속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스페인)
배번: 21번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뛰는 레프트백과 센터백을 겸하는 멀티 자원이다.
대표팀에서는 레프트백으로 출전하여,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번뜩이는 공격 가담보다는 안정적인 수비를 자랑한다. 어떠한 윙어를 마주하더라도 안정적인 경기력을 선보였다.
센터백: 사무엘 움티티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스페인)
배번: 5번
움티티는 벨기에전의 영웅이었다.
움티티는 높은 점프를 자랑하며 헤더 결승골을 넣었다.
경기를 거듭할수록 폼을 회복하고 있어서 더욱 무섭다.
움티티는 시즌 후반과 대회 초 다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호주전에서는 어리석은 핸드볼 파울로 위기를 자초했다.
그러나, 대회를 거듭할수록 안정감을 되찾았고,벨기에와의 8강전에서는 경기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센터백: 라파엘 바란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스페인)
배번: 4번
바란의 커리어는 화려하다.
만 25세의 나이에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네 차례 경험했다.
이제 그의 눈은 월드컵을 향해있다. 벨기에전에서 움티티의 득점이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면, 우루과이전의 주인공은
바란이었다.
바란은 세트피스 상황에서 헤더 결승골을 넣으며, 우루과이의 짠물 수비를 상대로 득점에 성공했다.
바란은 움티티와 함께 환상호흡을 자랑하며, 팀의 두 경기 연속 무실점을 이끌었다.
라이트백: 뱅자맹 파바르
소속팀: 슈트트가르트 (독일)
배번: 2번
당초 예상과는 달리 데샹 감독은 시디베 대신 파바르를 중용했다. 파바르는 다소 흔들리는 모습도 노출했으나, 전반적으로 대회를 잘 치러냈다.
아르헨티나전에서는 페널티 에어리어 바로 바깥에서 파울을 범해 실점의 발단이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환상적인 발리슛으로 득점에 성공하며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공격 가담이 좋고, 축구 지능이 높은 라이트백이다.
수비형 미드필더: 은골로 캉테
소속팀: 첼시 FC (잉글랜드)
배번: 13번
이번 대회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빼어난 경기력을 자랑하는 선수다. 흔들림이 없으며, 매 경기 최고의 활약을 펼치는
미드필더다.
포백 보호는 물론, 볼 배급과 패스에도 탁월함을 보였다.
상대팀의 에이스들은 모두 캉테 앞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경기장을 넓게 쓰며, 공격의 흐름을 차단했다.
캉테가 어느 순간 나타나 볼을 탈취하면, 상대 공격은 맥이 빠질 수 밖에 없다.
중앙 미드필더: 블레이즈 마투이디
소속팀: 유벤투스 (이탈리아)
배번: 14번
데샹 감독은 세 명의 미드필더 자리에 포그바와 캉테를 고정으로 두고, 톨리소와 마투이디에게 기회를 주었다. 기회를 잡은 선수는 마투이디였다.
마투이디는 볼배급과 인터셉트, 전진에 능했다.
공격과 미드필더간의 훌륭한 연결 고리 역할을 해냈다.
무엇보다도 많이 뛰며 팀의 엔진 역할을 해냈다. 공수 가담이 훌륭한 미드필더다.
중앙 미드필더: 폴 포그바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잉글랜드)
배번: 6번
포그바는 한 단계 더 성장했다.
지난 대회 최고의 영 플레이었던 포그바는 원숙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프랑스를 결승으로 이끌었다.
이번 대회에서 포그바는 군더더기 없고, 이타적인 플레이를 선보이며, 우려를 불식시켰다.
팀에 녹아들어 움직였고,여러 차례 찬스 메이킹 능력도 선보였다.
이번 대회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윙포워드: 앙투안 그리즈만
소속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스페인)
배번: 7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그리즈만은 세 골을 넣었고, 두 개의 도움을 기록했다.
세트피스 상황에서 그리즈만의 킥은 바란과 움티티를 향했고 득점으로 이어졌다.
그리즈만은 유럽 무대를 점령한 세계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이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소속으로 팀의 챔피언스리그 준우승과 유로파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영리한 움직임과 날카로운 킥으로 기회를 만들어내고, 자신에게 찾아오는 기회를 잘 놓치지 않는 선수다.
윙포워드: 킬리앙 음바페
소속팀: 파리 생제르망 (프랑스)
배번: 10번
이번 대회 최고의 영 플레이어다. 만 21세 이하 최우수 선수에게 주어지는 영 플레이어 상은 따 놓은 당상이다.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는 멀티골을 기록하며, 팀의 8강을 이끌었다.
또한, 경기에 나설때마다 위협적인 돌파를 자랑하며 상대 수비를 괴롭혔다.
역습 상황에서 음바페는 더욱 무섭다. 빠른 속도로 공격에 가담하고, 공을 운반한다.
혼자의 힘으로도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는 선수다.
센터 포워드: 올리비에 지루
소속팀: 첼시 FC (잉글랜드)
배번: 9번
지루는 주전 공격수로 중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회 무득점에 그쳤다. 벨기에전에서는 좋은 기회가 많이 찾아
왔지만, 결정력 부족으로 득점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는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는 평이다.
전방에서 공을 지키고, 연계를 통해 윙포워드들에게 공을 전달한다.
지루의 헌신적인 움직임 덕분에, 프랑스는 공격 기회를 더 많이 만들어낼 수 있었다.
프랑스 축구대표팀 감독 디디에 데샹이 11일(한국시간) 2018 러시아월드컵 벨기에와의 4강전에서 팀이 1대 0으로 승리해 결승 진출을 확정한 뒤 두 팔을 위로 올리며 기쁨을 표시하고 있다. 프랑스가 월드컵에서 우승할 경우 데샹은 선수뿐 아니라 감독으로도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AP뉴시스
감독: 디디에 데샹
데샹 감독이 프랑스 대표팀에 부임한 지 어느덧 6년이 흘렀다.
데샹 감독은 부임 이후 프랑스를 하나의 팀으로 만들었고, 브라질 월드컵 8강, 유로 2016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냈다.
이번 대회에서도 다시 한 번 결승에 오르며, 자신의 진가를 증명했다.
20년 전 대표팀의 주장으로 월드컵을 들어올렸던 그가, 이번에는 감독으로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올리기를 꿈꾼다.
결승전을 앞두고 프랑스의 우승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는 유로 2016 결승전을 앞둔 모습과 닮았다.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의 유로 2016 우승을 예상했으나, 포르투갈에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프랑스는 똑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를 경계하고 있다.
프랑스가 이변 없이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을지가 많은 관심을 모은다.

허벅지 부상으로 결승전 결장 가능성이 제기된 이반 페리시치.
(사진=노컷뉴스/gettyimages)

페리시치 부상 결장? 결승 앞둔 크로아티아 비상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결승에 오른 크로아티아가 비상이 걸렸다.
데일리 메일 등 영국 언론은 13일(현지시간) "크로아티아 윙어 이반 페리시치(인터 밀란)가 결승전에 결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데일리 메일에 따르면 페리시치는 잉글랜드와 4강전이 끝난 뒤 이튿날 모스크바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허벅지 부상이다. 페리시치는 잉글랜드와 4강전 후에도 허벅지에 아이스팩을 대고 있었다.
현지 언론들은 프랑스와 결승전 결장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크로아티아는 말 그대로 비상이다. 페리시치는 크로아티아 공격의 핵이다.
월드컵 6경기에서 542분을 소화하면서 2골 1어시스트를 기록 중이다.
특히 잉글랜드와 4강전에서는 동점골을 넣고, 역전골을 어시스트했다.
즐라트코 다리치 감독은 "모든 선수들이 회복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선수들의 몸 상태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 골든볼 수상이 유력한 모드리치.
ⓒ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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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골로 단독 선두인 해리 케인 득점왕 유력
지난달 15일 개막한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이 어느덧 3~4위전과 결승전만을 남겨두고 있다.
우승팀 못지않게 큰 관심을 모으는 부분은 개인 타이틀 경쟁이다.
1998 프랑스 월드컵 이후 지난 20년 동안 우승팀에서 골든볼 수상자가 배출되지 않은 게 무척 흥미롭다

CROSSOVER] 찢겨버린 강호 유고슬라비아
(베스트 일레븐)
“정말 죄송합니다. 답변하기가 좀 그렇네요.”
2017년의 일이었다. 당시 부천 FC에 활약했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출신 공격수 하리스에게 유고슬라비아 역사와
내전에 관해 물어보니 이렇게 답했다.
울산 현대에서 뛰었던 크로아티아 공격수 코바도 답변을 사양한다는 메시지를 전해 왔다.
그렇다고 서운함이나 야속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도리어 이해했다. 한때 유고슬라비아라는 이름 아래 축구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동유럽의 대표 강국으로
전성기를 누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전 때문에 그 전성기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두 선수의 그 아픔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또 잊힌 강국, 유고슬라비아의 아픔은 여전히 진행 중임을 알 수 있었다.
복잡한 땅이 하나로
‘남(南: Jugo) 슬라브인의 땅(slavija)’라는 뜻을 가진 유고슬라비아의 역사는 설명하기가 상당히 복잡하다.
민족 이름만 보면 언뜻 하나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슬라브어파 언어를 쓰는 남유럽의 한 종족이라는 뜻이나, 실질적 혈통은 저마다 제각각이어서다.
더군다나 이 지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잦은 침략을 받은 터라 종교적으로도 상당히 복잡한 곳이었다.
큰 틀에서 슬라브족이라는 인식은 갖고 있을지 모르나, 혈통과 종교가 다르다 보니 통합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때문에 유고슬라비아라는 국명을 가진 최초의 국가는 20세기 초가 되어서야 나타났다. 다만 이 왕국은 오래 가지
못했다.
두 차례 세계대전 여파로 왕국이 무너지고, 다시 군소 독립국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이 어수선한 정국을 유고슬라비아의 국부로 불리는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통합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토 내의 군소 국가를 모두 통합해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을 출범시킨 것이다.
이 나라가 바로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원조’ 유고슬라비아다.
사실 유고슬라비아는 ‘인공 국가’라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언급했듯 각 민족 간 이질감이 존재했던 데다, 로마 가톨릭·동방정교회·이슬람이 뒤섞여 살아가는 종교적 여건 탓에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어려운 나라였기 때문이다.
티토는 이런 나라를 강력한 카리스마를 앞세워 하나의 국가로 통합하는 데 성공했다.
이른바 ‘형제애와 일치(Brotherhood and Unity)’ 정책으로 각 연방국의 민족주의를 억누른 것이다.
지도자의 강력한 의지 덕에 이 시기 유고슬라비아는 그간 발칸 반도에서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하나의 단일 국가로
나아갈 토대를 닦게 된다.
하나 된 유고슬라비아는 모든 면에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축구 역시 마찬가지다.
유고슬라비아는 ‘플라비(Plavi)’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유럽의 내로라하는 강호로 인정받았다.
유로와 올림픽에서 각각 두 번이나 결승 무대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위상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불온한 공기, 그리고 막시미르 사건
그러나 티토가 1983년 사망한 후 유고슬라비아는 균열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각 연방국 내에 잠재해 있던 민족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서 파열음이 나왔다.
설상가상으로 구소련을 비롯한 동유럽의 공산 정권이 연쇄 붕괴하면서 혼란은 더 커졌다.
동유럽 국가들은 민족별로 다시 뭉쳐 정권을 재구축하기 시작했고, 이 거대한 시대적 흐름은 아슬아슬하게 하나임을
강조하던 유고슬라비아를 뿌리부터 뒤흔들어놓았다.
각 연방국마다 ‘우리 민족만의 국가’의 기치를 든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등 각 연방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난립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이들은 민족 국가를 만들 수만 있다면 내전과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위험한 발상을 갖고 있었다. 이
런 분위기에 각 연방국의 국민도 휩쓸려버렸고, 통합의 수단이었던 축구도 큰 상처를 받았다.
1989-1990시즌 유고슬라비아 프로축구 리그 디나모 자그레브-츠르베다 츠베즈다의 맞대결에서 벌어진 대규모 폭력
사태, 이른바 ‘막시미르 사건’이 대표적이다.
경기 1주일 전, 크로아티아에서는 ‘국부’로 칭송받는 프라뇨 투지만이 크로아티아 민주동맹이 선거에서 승리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에 위치한 막시미르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크로아티아 대표 클럽
(디나모 자그레브)과 세르비아 대표 클럽(츠르베다 츠베즈다)의 맞대결은 더는 축구가 아니었다.
경기 전부터 폭력 사태가 빚어졌다.
그런데 경기장에 투입된 세르비아 출신 경찰들이 사태 수습을 명목으로 세르비아에서 원정 온 팬들은 보호하고, 홈팀인 자그레브 팬들을 폭력으로 진압했다.
이러한 경찰 병력의 태도는 크로아티아인의 분노를 자아내기 충분했다.
심지어 훗날 크로아티아와 AC 밀란의 레전드로 성장하게 되는 당시 디나모 자그레브의 천재 미드필더 즈보니미르
보반은 관중들과 함께 경찰들에게 발길질을 가하는 등 격하게 반응하기도 했다.
물론 이 사건은 내전이 직접적 이유가 아니다. 원인은 연방국 내 잠재해 있던 민족주의의 발현이다.
하지만 당시 유고슬라비아의 민심이 어느 정도 분열되어 있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이라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결국,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는 1년 후인 1991년 독립을 선언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시작이다.

포탄 속에 갈갈이 찢기다
이 중 슬로베니아는 단 열흘 만에 독립했다. 이유가 있다.
당시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맹주국을 자처하던 국가는 세르비아였다.
세르비아는 연방에서 이탈하려는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와 양면 전쟁을 벌일 경우 큰 군사적 부담을 안아야 했다.
또한, 다른 연방국과 달리 슬로베니아는 슬로베니아인이 90% 이상 차지하는 터라 자국민을 지키겠다는 명분도 세우기 힘들었다. 그래서 슬로베니아는 그리 많은 피를 흘리지 않고 독립할 수 있었다.
대신 세르비아는 나머지 국가는 놓아주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크로아티아와 5년에 걸친 긴 전쟁을 펼친 이유다.
크로아티아 내전은 하나였던 유고슬라비아가 완전히 멸망했음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다.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추구하자, 다른 연방국들도 덩달아 독립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대세가 세르비아 편이 아니었다. 개전 1년도 안 돼 엉뚱하게도 남부의 마케도니아가 독립 선언했다.
세르비아는 워낙 치열하게 크로아티아와 전쟁하고 있던 터라 무기력하게 인정해줄 수밖에 없었다.
크로아티아도 공식적으로는 1992년 상대로부터 독립을 승인받았으니, 단 1년 만에 세 개의 연방국이 날아가 버린 것
이다.
다만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은 이후에도 3년을 더 끌었다.
이는 크로아티아 내 세르비아계 주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세르비아가 계속 군사적 개입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1992년 독립을 선언했다.
그런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크로아티아보다 더 위험한 국가였다.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중심인 이곳에는 크로아티아계·보스니아계·세르비아계가 어울렸고, 종교적으로는 로마 가톨릭·동방정교회·이슬람이 뒤섞여 살았다.
세르비아는 물론 크로아티아까지 내전이 뛰어들면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유럽의 지옥이 되어버렸다.
인종 청소와 학살 등 온갖 전쟁 범죄가 난무했다.
결국, 세르비아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독립도 막지 못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1995년에 독립했다.
죽음의 내전이 연이어지자 이 시기 유고슬라비아 선수들은 서유럽·아시아 등 해외 무대로 줄줄이 빠져나갔다.
한때 국가대표팀에도 승선했던 유고슬라비아 출신 선수들, 이를테면 라데 보그다노비치·사샤 드라큘리치·라디보예
마니치 등이 K리그에 진출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실력 있는 선수만 가능했지, 대부분의 선수는 전장으로 끌려 나갔다.
수많은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다.

비극 속 희망이 되어준 축구
세 차례 전쟁이 끝나자 발칸의 강국으로 불렸던 유고슬라비아는 급격히 쇠퇴했다.
축구적으로 설명하자면, 1998 FIFA 프랑스 월드컵 때 출전한 신(新) 유고슬라비아는 앞서 언급했던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등 내전을 치른 상대를 비롯해 혼란을 틈타 독립한 마케도니아가 모조리 떨어져
나간 후의 국가를 뜻한다.
세르비아가 지금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 해석하는 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1998년 발발해 1년 6개월간 진행된 내전으로 사실상 독립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코소보도 연방에서 뛰쳐나갔다.
사실상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가 유이한 연방국이었고, 그 몬테네그로도 독일 월드컵이 벌어진 2006년 이후 결별했다. 1991년 내전 발발 후 단 15년 만에 완벽하게 연방이 해체된 것이다.
이 내전이 비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순히 어느 강성했던 국가의 불행한 몰락 정도로 마름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고슬라비아는 티토가 정권을 잡은 후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하나의 정체성을 쌓아갔던 국가였다.
민족적으로 혹은종교적으로는 다를지라도 그들은 같은 공간에서 차를 마시고, 함께 일하며 더 나은 나라를 만들고자
하나로 뭉치려고 했다.
이 때문에 국제 사회에서는 냉전 시대에 제3세력을 표방했던 비동맹 연합의 맹주가 될 수 있었고, 동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유고슬라비아 축구가 강성했던 것도 이처럼 하나가 된 나라의 힘이 발현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랬던 나라에서 함께 웃으며 일하던 동료, 옆집 아저씨, 뒷집 청년들은 어느 날 갑자기 적이 되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어야 했던 일이 발생한 셈이다.
그것도 민족적·종교적으로 극렬히 증오했다. 이보다 더한 비극이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그 어두운 시기에 축구는 빛이 되어주었다.
당시 전 세계 수많은 유고슬라비아 출신 선수들이 고향의 독립 여부를 떠나 공습을 하지 말아 달라는 메시지가 담긴
셔츠 세리머니를 했다.
한 팀으로 뛰던 이들은 누구보다 통합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치는 지금 선수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서로 다른 여권을 가지게 됐어도, 자신이 유고슬라비아인임을 자부하는 선수들이 지금도 지구촌 그라운드를 뜨겁게
만들고 있다.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결승에 오른 크로아티아도 그 선봉 중 하나다.

유고슬라비아 출신 K리거가 전하는 유고슬라비아 이야기
수원 삼성 FW 데얀 다미아노비치(현재 국적: 몬테네그로)
“저는 몬테네그로 국적이지만, 여전히 유고슬라비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누나는 무슬림과 결혼했고, 사촌들은 크로아티아인들이죠.
친구 중엔 보스니아 사람들도 있어요.
제 가족 중에는 가톨릭 교도도 있고, 전 정교회를 믿습니다.
다들 친합니다. 저 역시 어디 출신인지, 무슨 종교인지를 갖고 사람을 판단하지 않아요.
내전은 이런 다양함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정치인들 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축구적 측면에서는 자랑스럽습니다. 모든 국가가 좋은 성적을 내고 있으니까요.
앞으로도 더욱 좋은 성적을 냈으면 합니다.”
전남 드래곤즈 MF 베드란 유고비치(현재 국적: 크로아티아)
“이런 내전이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해요. 우리는 원래 한 국가였고,그래서 서로를 존중하고 도우며 평화롭게
살아야 하니까요.
특히 젊은 세대들은 전쟁을 경험하지 않았기에 상대방을 나쁘게 얘기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과거의 일을 잊고 계속 친구로 남아야죠. 사람이 좋으면 지금 국적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유고슬라비아 축구에 대해서도 한마디를 하자면, 추억하기에는 매우 오랜 시간이 지나버린 것 같아요.
하지만 영광스런 시기가 있었던 건 사실이고, 그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강호였다는 걸 많은 축구 팬이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사진=ⓒgettyImages/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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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라트코 다리치 감독.
(사진=노컷뉴스/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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