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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사

추석 가족 사이에서 세대 간 갈등 번져…"각자 삶의 방식 존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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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이지혜 디자인기자





둘도 없는 효자(孝子)에 지쳐..이혼해"



가사 부담, 효도 강요 등에 쌓여 왔던 갈등,

명절 계기로 폭발..고통 알아채 온정(溫井)으로





결혼 20년차인 주부 김숙희씨(51·가명)는 올해 추석 때 남편과 이혼 얘기가 오갔다.

몸살이 난 와중에 제사 준비, 전 부치기, 과일상, 술상 준비 등을 도맡아 했는데 남편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친척들과 잡담하며 누워서 TV만 봤다.

여기까진 사실상 매년 비슷하게 겪던 일이라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남편이 집에 온 뒤 "시부모에 주는 추석 용돈이박한 것 같다"고 말해 김씨가 결국 폭발했다.

사실 용돈도 틈날 때마다 드렸던 터. 아내에게는 "아픈데 고생했다"는 말 한 마디 없었다.

김씨는 남편에게 울분을 터트리며 "그냥 이혼하자. 형편도 힘들고, 둘도 없는 효자에 지쳤다.

당신이 해준 게 뭐 있냐. 더 이상 못 살겠다"고 했다.

남편도 홧김에 "그래, 도장찍자"고 해 정말 이혼까지 갈 뻔 했다.

하지만 자녀들이 겨우 말렸다. 김씨는 "넘어간 것 뿐이지, 괜찮아진 게 아니다"라며 "힘든 건 여전하다"고 토로했다.


명절을 계기로 갈등이 극대치에 이르는 부부들이 늘고 있다. 명절이 직접적 원인이라기 보다 그간 쌓여 있던 앙금이

 드러난 것이란 분석이다.

 갈등의 '결정타'로 작용한 셈. 하지만 해결 방법을 몰라 문제를 키우는 부부들이 다수다. 심하면 이혼까지 가기도 한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16년 접수된 이혼신청은 10만8880건으로 하루 평균 298건이었다.

반면 추석·설날 이후 열흘간은 하루 평균 약 577건이었다. 명절 때 이혼 신청이 평상시보다 2배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특히 2016년 설 연휴 직후인 2월11일은 838건, 추석 연휴 직후인 9월19일은 1076건으로 평소의 3~4배에 달하는 이혼 신청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명절 자체가 이혼의 직접적인 계기라고 하기 보단, 이를 계기로 불거지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실제 돌싱 소셜 데이팅 어플리케이션 '은하수다방'이 이혼 남녀 36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명절이 이혼에 영향이 없거나 거의 없다'고 답한 이가 63%로 과반수를 넘었다.

영향이 있다고 한 응답자는 21.7%였다.









                    


명절을 계기로 드러난 부부 갈등 양상도 다양하다. 주로 젊은 며느리들 위주 하소연이 많다. 과거 자신의 어머니 세대와 다른 생각을 가졌고 참지 않음에도, 시댁이 요구하는 것과는 괴리가 커 갈등이 생긴다.

직장인 이정현씨(31)는 "명절 때 시어머니가 제사를 지내러 하루 전에 오라고 하고, 2박3일 있다가 가라고 했다"며

 "그걸 남편이 보고도 아무 것도 하지 않아 대판 싸웠다"고 말했다.


이씨는 "친정은 대체 언제 가는 것이냐"고 따졌더니 남편은 "명절 때 잠깐인데 그걸 못 참냐"고 해 갈등이 커졌다.

직장인 서모씨(35)도 "친정에서도 엄마가 설거지 한 번 안 시키고 귀하게 컸는데, 명절 음식 차린다고 하루종일 전

부치며 기름 냄새 맡고 있으니 '뭐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며 "남편에게 따졌더니 공감도 못하더라. 결국 싸웠다"고

 말했다.


남편들 불만도 있다.

직장인 최모씨(42)는 "명절 때마다 아내 비위 맞추랴, 부모님 눈치 보랴, 중간에서 힘들어 죽겠다"며 "처가에 가면 남편도 불편하긴 매한가지인데, 왜 남성들만 몰아붙이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부부 갈등의 첫 걸음은 각자 남편·아내가 고통 받고 있다는 걸 인지하는 것이다.


러스 해리스 박사는 저서 '행동으로 사랑하라'에서 "우리 모두는 파트너가 고통 속에 있을 때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무시하거나 일축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반응은 관계를 되살리기 보단 독으로 물들게 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온정은 이런 독성의 해독제"라며 "먼저 파트너가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당신이 가지고 있는 원래의 친절함과 만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파트너 마음 속에 고통 받는 작은 아이가 있다고 여기고, 이를 위해 생각과 감정을 나눠줄 수 있는지 살펴보라는 것

이다.




남형도 기자 human@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명절만 되면 가정내 갈등 극에 달해…상담 증가"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지난해 추석 명절이 끝난 후인 10월10일 가정폭력상담소로 한 40대 여성이 이같이 말하면서 이혼 상담을 요청해왔다.
평소 분노조절이 되지 않아 온갖 폭언과 폭행을 일삼아 온 남편이 추석을 앞두고 경제적 폭력까지 휘두르면서 더 이상 가정을 유지하지 못하겠다는 게 이 여성을 설명이었다.

가정주부였던 여성은 그동안 남편의 숱한 폭언과 폭력에도 홀로 자녀 2명을 키울 자신이 없어 이혼을 망설여 왔다.
 그러나 추석을 앞두고 "카드를 정지시키겠다"면서 경제적 협박까지 한 남편과의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급기야 이혼
상담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24일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인천지부 부설 가정폭력상담소가 제공한 지난해 7월~10월 가정폭력 상담 건수는 568건이다. 또 이혼은 347건, 부부갈등은 511건이다.
이 중 추석 연휴를 전후로 가정 내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이혼과 가정폭력, 부부갈등으로 인한 상담이 증가한다 게
상담소의 설명이다.

평소 내재하고 있던 가정 내 갈등이 추석 명절로 인해 증폭되면서 이 기간 가정 불화로 인해 문제를 겪는 가정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실제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명절 좀 없애주세요'라는 국민 청원글이 잇따라 게시되고 있다.

한 게시자는 "명절만 생각하면 이혼 급증, 막히는 고속도로, 가족간 다툼 등 부정적인 이미지만 떠오른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또 명절증후군 등 사회 부작용을 제기하면서 명절 자체를 폐지하자는 의견도 게재됐다.

조미혜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인천지부 부설 가정폭력상담소장은 "명절이 가정폭력의 원인이라기 보다, 내재돼 있던
 가정불화가 명절로 인해 표출되면서 사건이 표면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라면서 "사건이 커지거나, 오히려 완화되는 경우도 있으나 전체적으로 명절 연휴 기간에 가정 폭력 및 부부갈등, 이혼 등 상담 건수는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오용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인천지부 소장은 "가정폭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를 중심으로 가족 내 원만한
갈등조정을 통해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무료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며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법을 잘 몰라 보호를 받지 못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무료 법률 상담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천 8개 지역과 연계해 가정 폭력으로 상담이 절실한 가정을 대상으로 상담을 진행하면서 궁극적으로 가정폭력 근절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오셔서 필요한 도움을 받길 바란다"고 전했다. 

  


aron0317@




'차례상 간소화라는 구호는 오래 무력했다. 변방의 외침에 그칠 뿐 정작 의사결정권자들이
상차림을 왜, 어떻게 줄여야 하는지 무심했던 탓이다. 마침내 변화의 물꼬가 열린 것일까.
 이제는 허례허식을 버리고 합리성을 추구하겠다는 차례상 지킴이들의 행복한 전향이 시작되고 있다.
 애비야, 요즘엔 차례상 간소화라는 게 있다면서? 올해부터는 우리집도 그거 한 번 해보자.

 류효진 기자






차례상 군살 빼자” 어르신들 흔쾌한 추석 반란


차례상 지킴이들의 행복한 전향 가족 화합하는 명절,
 온갖 음식 만들다 상처만 수두룩
집안 어른이 ‘간소화’ 선포… “이젠 명절이 기다려져요”



“차례상 차리고 그 많은 가족 식사 마련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이에요.

내가 직접 하기 힘든 건 타인에게도 강요하지 말자. 그렇게들 생각한 거죠.”

경기 안성시에서 약국을 운영 중인 김용길(66)씨 가족에게 명절 스트레스나 증후군은 남의 이야기다.


추석 등 명절 아침이면 아들 내외가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온다. 상다리 휘어지는 차례상은 생략한 지 3년째다.

 이제 조상님을 생각하며 다 같이 고향 방향으로 망배(望拜)를 올릴 뿐이다.

그 후 함께 형님인 김채옥(75) 한양대 명예교수 댁, 아이들의 큰집을 찾아 간단한 다과를 나누거나 외식을 한다.


돌아가신 아버님, 조상님을 위한 차례는 명절 일주일 전 즈음 시간이 되는 형제, 자매끼리 가족묘, 선산에 가 간단히

 지내는 묘제로 대신한다.


“성묘 때도 며느리, 사위, 자식, 손주의 참석은 자율에 맡겨요. 보통은 아들과 며느리는 출근하고, 아기들은 어린이집에 가는 평일에 미리 다녀오게 되니까 권한 적도, 동행한 적도 없어요. 대단한 신념의 변화라기보단, 함께 합리적 방법을 고민하다 보니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변했어요.”


차례상 지킴이들의 대변신, 행복한 전향이 시작됐다.

가족 대화합의 장이 마련돼야 할 명절. 곳곳에서 이 기쁜 날이 화합은커녕 갈등, 불화, 홍역, 때로는 대참사로 마무리돼 온 배경에는 ‘상다리 휘어지는 차례상’이 자리했다. 송편, 만두, 탕과 국, 각종 전과 적 등 노동 집약이 아니고선 차려

내기 어려운 음식이 즐비한 데다, 불평등한 가사노동 분담의 잔혹사가 얹히니 그럴 만도 하다.


비용도 만만찮다. 4인 기준으로만 계산해도 차례상 마련엔 전통시장에서 23만6,300원, 대형마트에서 30만9,600원

(올해 한국물가정보 추산)이 든다.

매년 간소화를 결심해도 쉽지 않다. 홍동백서(紅東白西), 두동미서(頭東尾西), 조율이시(棗栗梨枾), 좌포우혜(左脯右醯)를 지키자니 색깔 별 과일, 고기와 생선, 포와 식혜 등 어느 하나를 빼놓기가 겸연쩍다.


본디 이런 차례 규율들은 격몽요결(擊蒙要訣), 주자가례(朱子家禮),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사례편람(四禮便覽) 등

어느 예서(禮書)에도 적힌 바 없이 근거가 희박한 데다, 특히 기제사가 아닌 차례는 소박해도 좋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지적(본보 2016년 9월 7일자)이다. 하지만 소위 결정권자가 바뀌지 않으면, 가족 구성원 누구 하나가 이런

지적을 들이밀거나, 분연히 들고 일어나 간소화를 외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고로 많은 자식 세대가 옛 모습의 차례상을 여전히 차려내는 속내는 요약하자면 이렇다.

 “어른들 마음 상하실까 봐 하던 대로” “어른들 생전까지는 우선 이렇게” “분란 일으키느니, 1년에 두 번인데 나 하나가 힘들고 마는 게 낫다”


곳곳에서 번지는 ‘그 어른들’의 선제적 변화, 김용길씨 형제와 같은 차례상 지킴이들의 간소화 선포는 그래서 더 빛이

 난다.


◇ “합리성 추구하니 자연스레”

8남매인 김씨 가족도 누구보다 전통과 효를 중시하는 문화를 배우며 자랐다.

 매년 고향인 전북 부안을 찾아 기제사 8번, 차례 2번을 모셨다.

교수, 약사, 목사 등 각자 소임을 해내며 사회 각계에 자리 잡은 이들에게 효나 체면이 중요치 않을 리도 없다.


6년 전 돌아가신 아버님 건강이 약해지면서부터 제사 횟수를 줄이긴 했지만, 제사와 차례를 서울로 옮겨와 십수 년을

정성껏 모셨다. 그런데도 변화를 결단한 건 “마음이 다치는 사람이 없어야 고향 사랑도, 조상님 은혜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형님댁에서 매년 지내다가, 점점 연로해질 형님과 형수님께 죄송해 저희 집으로 옮겨와 꼬박 10년을 지냈어요.

그런데 아버님 3년 상을 치르고, 두 아들도 모두 장가를 가니 아내가 어느 날 조심스럽게 내비치더라고요.

 ‘나는 계속해낼 수 있지만 이걸 아들 며느리들에겐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정말 맞는 말, 현명한 의견이었죠.”


평소 설과 추석 다음 날만 되면 근육통, 두통을 호소하는 주부들로 약국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모습을 매년 봐온 터였다. 넌지시 형을 포함한 형제자매들의 의견을 물었고 가족회의가 소집됐다.


나온 결론은 크게 두 가지.

첫째, 제사는 아버님 기일에 산소에서만 지내되 참석은 무조건 자유에 맡긴다.

상은 참석자가 원하는 대로 준비한다.


둘째, 설과 추석 명절은 각각 가정이 원하는 방식으로 각자 보낸다.

 김씨는 “무엇보다 아내가 좋은 생각을 했고, 전통을 중시해 오신 형님이 고민이 깊으셨을 텐데 큰 결단을 해주셨다”고 공을 돌렸다.





김용길(66)씨는 “고향과 가족이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존재로 남으려면 마음 다치는

 사람이 없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김혜영 기자



가장 큰 소득은 평소 김씨가 중시하는 합리성, 배려, 긍정의 원칙이 명절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는 점이다.

“웃으며 할 수 없는 일은 바꾸거나 미뤄서라도 웃으며 해내자고 생각해요. 명절인데 더욱 더 내 가족 중에 마음 다치는 사람이 나오면 안 되잖아요. 고향은 바라만 봐도 웃음이 나오는 곳이고, 가족은 떠올리기만 해도 미소가 번지는 존재

인데요.”


시어머니, 시아버지의 이런 뜻을 모를 리 없는 며느리는 감사편지로 존경을 표한다.

 “가족끼리 소원해지지 않냐고요? 아이들은 늘 감사를 표하고요, 함께 외식하고 야구장 관람하며 잘만 지냅니다.

 형제자매들도 결혼식 등 경사가 있을 때 외식으로 뒤풀이를 크게 하며 화기애애하게 지내죠. 합리성 덕분에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행복하게 흘러왔어요.”


◇ “찡그릴 바에야 웃으며 축소”

경북 영천시의 김미희(58)씨 가족도 꾸준히 차례상 규모를 줄이거나 차림에 변화를 주다 지난해 추석부터 묘제로 차례를 대신한다. 평생 전통 제사상, 차례상을 차려내고 지켜 온 어머니 박태득(86)씨의 결단이 있었다.

“살아 계실 때 잘해야지, 돌아가신 뒤에 낭비하고 먹지도 않는 것들 차려내는 게 무슨 소용이냐는 어머님 말씀이 있어가, 이미 차림을 확 줄인 지는 몇 년 됐어요.


나물도 파란 나물 한 가지. 생선도 식구들이 좋아하는 종류로 한 마리만. 국도 고깃국 말고 좋아들 하는 고디국

(다슬기국)으로. 전은 특히 예전만큼 안 부쳤어요. 좋아하셨던 외국 과일 몇 개 올라갑니데이.”

그나마도 작년부터는 성묘 가서 간단히 포와 과일만 올린다. 김씨는 “돈이 적게 드는 점도 크지만 무엇보다 심정적

부담이 확 줄다 보니 명절을 기다리는 마음가짐이 다르다”고 했다.


“예전처럼 힘들지 않고 즐겁죠. 벌써 죽도시장 가서 생선 장도 봐다 놨어요.

 산소에 가져갈 포, 과일, 술 등 간단히 챙기려고요.

살아계실 때 잘하고, 조상님은 마음으로 공경하면서 남은 가족들이 화목한 게 제일 중요한 게 아니겠어요.”


이처럼 전향적 변화는 아니지만, 한 걸음씩 작은 움직임을 모색하는 이들도 있다.

경북 안동시 남호준(40)씨 가족의 차례에는 10년 전만 해도 총 네 상이 동원됐다.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후손 없이 돌아가신 작은 아버지 각각을 위한 차례상 한 상씩에, 안동 지역에서 중시하는

성주신(城主神ㆍ집을 담당하여 지키는 신)을 위한 성주상 한 상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종 장비 대여업을 하는 남씨는 추석 연휴 4박 5일 전부터 차례상 준비를 위해 안동으로 향했다. 이런 식이라면 아버지가 돌아 가신 뒤에는 다섯 상을 차릴 추세였다.

 첫 변화의 물고를 든 건 아버지였다. “돌아가시기 전에 이제는 ‘한 상으로 줄여서 해라’하시더라고요.

 아마 본인이 직접 후손들을 위해서 줄여놓지 않으면 자식들이 그대로 할 수나 있겠나 싶으셨던 것 같아요.”


상은 딱 하나로 줄이고, 성주상을 간소화했다.

그 뒤 남씨 형제가 상차림을 주도하면서부터는 차림새의 변화도 조금씩 꾀했다.

남씨는 “예전에나 음식 귀하고 해서 전 같은 것 좋아하고 그랬지만, 지금은 많이 먹지도 않고 식구들 좋아하는 메뉴가 아니지 않냐”라며 “조리가 힘든 것들은 줄이고 사서 올릴 수 있는 과일 위주로 한다”고 했다.






허례를 탈피하려는 노력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전통을 귀히 여기는 경북 안동 지역의

남호준씨 가족은 총 네 상을 차리던 차례상을 한 상으로 줄였고, 대대로 중시하는 성주상도

 사서 올릴 수 있는 과일 위주로 구성하고 있다.


남호준씨 제공



◇ 전(煎), 이렇게 많이 부칠 일인가

이런 변화상에 전문가들도 반색한다.

송유미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장(대구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은 “사실 최근 많은 가정에서 유지되는 차례상의 형식과 규모는 조상이나 사회규율을 감안한 것이라기 보다는, 그런 관행을 여전히 믿는 집안 어른들을 배려하는 측면이 크다”며 “그러니 많은 가정에서 ‘어른들 계시는 동안까지는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자’는 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어지간하면 어른들 생각 거스르고 싶지 않고, 마음 편하게 해드리려고 하는 거죠. 저희 집만 해도 세대가 바뀌면 올리는 음식부터 실용적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고 좋아하는 것들로 바꾸려고 해요.

그런 변화들은 점점 많은 곳에서 속도가 붙지 않을까요.”


‘한식의 품격’(반비 발행)의 저자 이용재 음식평론가는 “차례상이야말로 음식의 맛이나 완성도와 무관하게 여러 종류를 차려내야 한다는 집착이 반영된 ‘한식의 전개형 한상차림’ 그 자체”라며 “조리과정, 맛, 노동분담에 불합리한 구석이

 많은데, 전통으로 포장된 이런 습관에 대한 회의가 일어날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음식의 온도나 맛의 균형은 제쳐놓고, 모든 음식을 거나하게 한 상에 담아 과시하는 차림이 일종의 강박은 아닐지 돌아봐야 한다는 취지다.

 이씨는 책에서 명절을 “서로 가까워야 한다는 부담이 너무 큰 나머지 아무도 가깝지 않은”데다 “일의 분업조차 그다지 공평하지 않았던” 날로 회고했다.


 “전만 봐도 그대로 구워도 될 재료에 굳이 켜를 입혀 낮은 온도의 기름에 오래 익히는 음식이잖아요.

계란이 과조리로 뻣뻣해지고, 그나마 바로 먹으면 맛있을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죠.

다시 덥힐 때 눅눅히 기름을 흡수하고요. 가부장적 질서 아래에서 이걸 힘들게 만드는 사람은 뻔한데, 정말 지금쯤

 되면 전은 그만 부치거나, 소량을 사서 쓰는 편이 현명하지 않을까요.”


일부러 열량을 높이기 위해서거나, 조금 더 복잡한 조리과정을 거치려는 ‘체면치레’가 덧입혀진 음식이라면 원치 않는데도 계속해나갈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그는 “명절에 이건 꼭 먹어야 한국인이라고 이야기하는 모든 음식은 조리가 쉽지 않은 데다 조리법을 들여다봐도 불합리하다”며 “명절 노동과 얽힌 정서 문제가 매우 큰 데도 이를 다 집에서 누군가 하도록 강제하기보다는 가짓수를 줄여가거나, 전문 영역으로 넘겼으면, 즉 사서 썼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이명숙 원장은 “차려놓은 상이 얕거나 좁으면 불효라는 인식 때문에

차례상이 점점 화려해졌다”며 “음식의 양은 중요하지 않고, 정성을 들여 깨끗하게 차려내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류효진 기자




◇ 다 놓겠다면 사는 것도 방법

“즐거운 마음으로 정성껏 차려야지 가짓수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요즘은 맞벌이에 여행도 가시는데, 즐겁게 할 수 없을 때는 차라리 주문을 하세요.

 할 수 없는 걸 억지로 하다 보면 당연히 신경질이 나죠. 저도 바쁠 때는 주문해요.

제가 사서 쓰시라고 이렇게 말하는 건 처음이에요.” (웃음)


평생 전통음식과 반가 및 명가의 내림음식을 연구해 온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이명숙(75) 원장의 조언이다.

 경우에 따라선 가짓수를 줄여나가는 편이, 그조차도 사서 쓰는 편이 정성 측면에서 낫다는 얘기이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한국전통음식연구소에서 만난 그는 “사실상 송편 하나만 해도 빚는데 하루가 걸리지 않느냐”

라며 “요령껏 하시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이 원장에 따르면 가정, 지방마다 다르지만 최근 통상 차례상에 올라가는 음식은 23~25가지 정도다.

 이들 음식 가운데 의미가 덜한 순서대로 빼기 시작하면 최종 가짓수를 금세 10개 내외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규율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각 음식에 나름의 의미는 있어요.

예를 들어, 나물은 그냥 쓰는 것이 아니라 뿌리와 이파리, 즉 조상과 후손을 의미해요.


나와 부모, 조상이 연결될 수 있는 것을 생각 한 거죠. 간소화할 때는 이런 의미가 가장 적고 먹어서 득이 되지 않는

종류부터 덜어내면 좋아요.”

대표적인 음식이 적(炙), 다식, 사과, 강정 등이다.


이 원장은 “성의가 없는 것 같아 가짓수를 줄여나가는 게 늘 쉽지는 않다”면서도 “경우에 따라 설날엔 떡국이 있으니

 면이나 편을 빼고, 적은 경우에는 사람들이 잘 먹는 육적을 남긴다거나 하는 나름의 원칙을 세워 시작하면 도움이

된다”고 했다.

“본래 제례 음식이라는 게 가가례(家家禮)에요.


 나는 이런 것들 다 빼고 아버님이 예전에 좋아했던 미역국과 가족이 원하는 음식만 올리고 싶다면, 그것들로 차례를

지내도 괜찮아요.”

그래도 기준, 준칙이 없으면 어쩐지 불안하다는 이들을 위해 첨언하면, 그가 꼽는 ‘가장 의미가 있는 차례 음식’은 대추, 밤, 감, 배, 포, 나물이다.


전통음식 연구에서 부여하는 의미가 깊은 것들이다.

이 원장에 따르면 △한 번 꽃이 피면 반드시 열매가 맺히는 대추는 자손 번창과 혈통을 △땅에서 썩지 않는 밤은 조상과의 연결을 △가지치기를 잘 해줘야 열매가 맺히는 감은 많이 가르쳐야 훌륭하게 자라는 사람 △배는 백의민족을 △알을 많이 낳는 명태로 만든 북어포는 자손번창을 의미한다.


“필요한 만큼만, 재료구입부터 가짓수를 줄여 시작해보세요.

 요즘엔 돌아가신 분들이 좋아하던 음식도 다 사서 올릴 수 있으니 그런 것도 올려보고요.

무엇보다 준비는 남녀가 함께하세요. 조선에서조차 임진왜란 전에는 남성들이 당연히 차례음식을 만들었답니다.

즐거운 명절인데 화목하게, 정성껏, 깨끗하게 차린다는 마음이 중요하지 않겠어요.”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송은미 기자 mysong@hankookilbo.com

박수현 인턴기자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즐거운 명절, 올해도 부부싸움 하실 건가요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30대 부부는 추석 명절을 보내고 오는 차 안에서 말이 없었다.
부인 A 씨는 늘 그렇듯 처댁보다는 시댁을 먼저 갔고 또 가자마자 온갖 집안일로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하지만 남편 B 씨는 내년 추석에는 꼭 처댁에 먼저 가자며 위로했다.

문제는 B 씨의 이런 위로는 말뿐이라는 데 있다. 사실 A 씨는 시댁에서 보낸 힘든 상황보다 B 씨의 이런 행동이 더
 힘들고 미웠다.
 내가 힘든 것이 저 사람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을 걸까. 이렇게 갈등의 골을 깊어만 갔다. 

추석 등 명절을 전후로 이혼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 ‘월별 이혼 접수 건수’를 보면 2012년 1월부터 2017년 8월까지 설·추석이 있는 달과 그다음 달의 이혼 접수가
평균 15% 늘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명절마다 여자인 며느리가 받는 스트레스는 정신질환 및 심리치료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또한 명절 후에는 이혼율도 높아집니다”라며 “남녀평등 명절 문화를 위하여 정부에서 홍보 또는 제도화해주시길 요청
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청원인은 “남녀평등 명절 문화를 위하여 정부에서 홍보 또는 제도화해주시길 요청합니다.”라며 “남자 쪽 집안이 우선시 되는 이런 문화를 정부에서 홍보 및 안내 등으로 고착된 명절 문화의 인식을 개선 시켜주셨으면 합니다“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요즘은 남녀평등시대입니다. 하지만 며느리라는 이유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눈물 흘리며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명절은 여성들에게 가사 등 스트레스로 인식되고 있었다. 지난해 9월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수도권 거주자 만 19세에서 59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명절 인식을 조사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명절 차례를 지낼 때 남녀의 가사 분담 비중은 여성(77.9%)이 남성(22.1%)보다 월등히 높았다. 

특히 ‘명절이 여성들에게 상당한 스트레스와 부담감을 주는 날이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88.8%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관련해 또 다른 청원인은 “시대가 변했는데 어른들은 여자들에게 며느리의 역할을 강조한다.
기대하는 바, 역할을 못 했을 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남편의 부모님이라는 이유로 며느리에게 상처 되는 말을
한다.”며 명절은 “가부장적 제도가 뿌리박혀있는 명절 문화 변화”라고 지적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가족 모두 즐거워야 할 명절이 이런 상황에 있다 보니 명절 기간 가정폭력 등의 피해를 보고 상담을 요청하는 여성은
 꾸준히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24일 여성가족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2017년 설과 추석 명절 기간 전국 18개
소 여성긴급전화(1336)에 접수된 상담 건수는 총 31,416건이었다.

연도별로 보면 2013년 3,163건이었던 상담 건수는 2014년 4,725건, 2015년 5,788건, 2016년 6,234건, 2017년 8,779건 등으로 매년 늘어가는 추세다. 지난 5년 새 2.78배 증가한 수치다.
피해 유형별로는 가정폭력이 전체의 60.7%인 19,078건으로 가장 많았다. 또한, 성폭력(4.54%·1,428건)과 성매매
(1%·316건)도 뒤따랐다. 

전문가들은 부부간 진심 어린 소통을 해보길 권했다. 경찰 관계자는 “명절 연휴 기간 전체 112신고는 평소보다 감소하지만, 가정폭력 관련 신고는 오히려 증가한다.”면서 “시댁, 처가에 대한 스트레스와 명절 증후군 등이 이전에 있던
부부 갈등 상황에 대해 불만을 터지게 하는 방아쇠가 된다. 명절 후 서로에게 고마움 표시하기” 등을 조언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상처를 준 배우자가 진심으로 반성한다면 사과를 받아주고 문제가 재발하지 않는지 관찰하며 지내
보며, 사과한 배우자는 상대방의 상처가 회복될 때까지 그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들어보고 그것을 채워주려고 노력하기를 조언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벌초하는 모습


벌초하는 모습[산림조합중앙회 제공]




 추석 가족 사이에서 세대 간 갈등 번져"각자 삶의 방식 존중해야      


 

"각자 삶의 방식 존중하고 서로 이해해야"·구 소통 중요"
"언제 결혼하느냐"·"둘째는 가질 거니"얼굴 붉히기도



 

(전국종합=연합뉴스) 즐거워야 할 추석 명절이다.

그러나 많은 가정에서는 그렇지 않고 가족 구성원에게 오히려 스트레스만 주는 날이 됐다고 한다.


오래전에 핵가족화한 현대 가정 구성원이 명절 때만 갑자기 전통적인 공동 가족 군에 합류함으로써 더 심한 스트레스를 겪고, 이를 잘 극복하지 못해 몸과 마음에 병이 난다는 것이다.

설날을 합쳐 1년에 두 번 돌아오는 명절이나 주부, 신혼부부, 취업준비생 등은 그 증후군과 세대 간 갈등을 겪고 있다.


벌초 문제로 세대 사이 갈등


최근 벌초가 가족, 세대 간 갈등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제주에서는 추석을 보름 앞둔 음력 8월 초하루를 앞뒤로 가족·문중별로 '벌초 행사'를 한다.

추석에는 못 오더라도 벌초에는 반드시 참여하는 것을 불문율처럼 여긴다.


직계가족(부계 8촌 이내)이 모여 고조부 묘소까지 하는 '가족 벌초'와 각 지파 가족대표가 함께 처음 제주에 정착한

선조인 '입도조'부터 5대조까지 하는 '모둠 벌초'로 보통 2차례 진행한다.

객지로 떠난 가족도 이때가 되면 제주로 돌아와 벌초에 참여하고 온종일 묘소 10∼30여 기를 돌아다닌다.


어떤 문중에는 벌초에 참여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도록 강제하고 또 다른 지역에서 벌초하러 내려오면 항공편 편도

비용을 대주기도 한다.

A(72) 씨는 "문중 벌초를 할 때 젊은 사람이 없다.


다른 곳에 간 자식들, 조카들은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참여하지 않는다"며 "옛날에는 걸어서 가면 몇 날 며칠을 낫과

호미로 했는데 지금은 벌초기로 순식간에 할 수 있는데도 불평이 많다"고 핀잔을 준다.


서울에 사는 B(38) 씨는 "추석 전에는 벌초하러 제주에 내려가야 하고, 추석에 또 가야 한다.

 이만저만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시대도 변했고 앞으로 방식이든 시기든 뭔가 바꿔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추석을 앞두고 이달 초 벌초 문제로 다투다 형제 사이에 살인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경기 양주경찰서는 지난 9일 오후 7시 30분께 친형 D(67) 씨 집을 찾아가 형 얼굴에 깨진 술병을 휘두른 혐의로 C(62) 씨를 붙잡아 조사 중이다.

앞서 두 사람은 산소 벌초를 하는 문제로 전화로 말다툼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화를 끊고 화가 난 동생이 자고 있던 형을 찾아가 범행을 저질렀다. 다행히 형은 생명에 지장이 없다고 경찰은

 밝혔다.


정치·경제 문제로 티격태격

창원에 사는 김모(36)씨는 이번 추석에도 친척 간 '정치 문제'로 설전이 벌어져 머리가 아팠다.

지난 설에는 잠잠했지만, 최근 평양 남북정상회담으로 남북관계가 이슈가 되자 어김없이 식사 자리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아버지 김 모(69) 씨는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문재인 정부가 해결하고 있다"며 정상회담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 씨 사촌(46)도 "북한 김정은 위원장도 완전태도를 바꾸고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하자는 의지가 보인다"고 거들었다.

그러나 옆에 앉아 있던 다른 친척(74)은 "북한에 퍼주기만 하는 그런 정치쇼에 불과하다"며 "과거에도 속았는데 또 속을 게 뻔하다"고 비판했다.


30분 넘게 이어진 논쟁에 오랜만에 모인 친척은 서로 얼굴을 붉히며 식사를 했다고 한다.

김 씨는 "한 해 한두 번밖에 못 봬 사이좋게 지내도 부족한데 정치 문제로 너무 싸워 명절이 반갑지 않다"고 말했다.


결혼·출산 문제로 얼굴 붉히기도


대구에 사는 박초롱(34·여)씨는 추석에 차례를 마치고 식사를 하던 중 지난해처럼 결혼 문제로 집안 어른과 말다툼을 했다.

혼자 사는 것이 편하고 좋아 자신을 '독신주의자'라고 하는 박씨는 "언제 결혼하나. 서둘러 남자를 만나야 한다"는

친척들 재촉에 발끈해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박씨는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혼자 벌어 먹고사는 게 좋다"고 밝혔다.

그러나 몇몇 친척은 "나이도 많은데 빨리 결혼해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설득했다.





부부싸움

부부싸움[연합뉴스TV 제공]



결국 박씨는 밥을 다 먹지도 못하고 서둘러 큰집을 빠져나왔다.

한 어른이 집을 나서는 박씨를 붙잡고 "부족한 것 없는 우리 조카가 혼자 있는 것이 안타까워 그런다"며 "내가 아는 사람이 있는데 소개팅할 생각이 있느냐"고 제안했다. 그러나 박씨는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또 다른 집안에서는 출산 문제로 주장이 엇갈렸다.

결혼 10년 차에 접어든 김 모(41) 씨는 아이를 낳지 않고 반려동물을 키우며 아내와 가정을 이루고 있다.

추석에 김씨를 본 할머니는 "이제 나이도 마흔이 넘었는데 하루빨리 아이를 낳아야 한다"며 재촉했다.

김씨는 할머니와 대화를 피하려고 이방 저방을 옮겨 다니다 아내와 집을 나섰다.


그는 "내년에도 같은 말을 하면 차례에 참석하기 어려울 거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인천에 사는 최모(36·회사원)씨는 추석에 고향인 경북 봉화 본가에 왔다가 아버지(65)와 말다툼을 할 뻔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4살짜리 딸을 둔 아들에게 아들 손주 얘기를 하며 "둘째는 언제 가질 거니"라고 물었다.


이미 여러 차례 "둘째 계획은 없고, 딸 하나만 잘 키울 생각"이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둘째를 낳으라고 채근한다.

그는 이 문제로 아버지와 다투는 횟수가 늘자 이제는 손자 얘기가 나오면 다른 얘기로 화제를 돌리거나 슬그머니

자리를 뜨며 충돌을 피한다.


최씨도 둘째 생각을 아예 안 해본 건 아니나 아내와 맞벌이를 하며 하루하루 힘겹게 생활하는 빠듯한 형편에 엄두가

 나지 않아 진작에 포기했다.


◇ "각자 삶의 방식 존중하고 서로 이해해야"

손경락 파주시정신건강복지센터장은 "지난 시절 우리나라는 전쟁, 산업화, 빠른 성장, 그리고 IMF 이후 경험한 정체기 등 두·세 세대를 거치며 너무나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며 "이에 따른 세대 간 가치관이 충돌하고, 그런데도 서로 처지를 이해하고 공유할 여유도 없이 여기까지 왔다"고 진단했다.


이어 "중요한 건 듣는 사람이 기분 나빠하지 않는지, 사생활을 존중받을 수 있는지 등인데 아직 그런 부분을 잘 고려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밝혔다.


또 "기성세대가 젊은이를 독립 존재로 바라보고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며 "젊은이도 부모 세대와 소통하려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가족 구성원 모두 한가족이란 마음으로 서로를 아끼고 돕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우용 강종구 백도인 한종구 권숙희 변지철 양지웅 손형주 김준범 권준우 김동민 정회성 노승혁 기자)

nsh@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여성만 가사 분담” “남자가 돼 가지고”… 명절이 더 괴로운 이유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연휴는 즐거움과 설렘이 더 클까, 고통과 두려움이 더 클까.
그동안 못 봤던 가족·친지들을 만난고 조상들께 차례를 지내는 의미있는 시간일까, 아니면 부부·친지 간의 다툼이
 잦아지고, 후회만 남는 부담스러운 시간일까.

많은 이들이 전자에 더 무게를 두고는 있지만 ‘명절 증후군’이란 말이 해마다 되풀이될 정도로 명절에 부담을 느끼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해당 시기 이슈를 반영하고 있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서도 어떤 부분이 문제가 되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다.

현재 청원 게시판에는 ‘명절이나 추석연휴를 없애달라’ ‘명절을 가족 친화의 날로 국가에서 대체해달라’ 등의 글이
100건 이상 올라와 있다.
폐지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제사문화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추석연휴를 앞두고 8월말부터 집중적으로 글이 게재됐다.

명절 기간 여성에게만 집중되는 가사분담, 가족이나 친지와의 만남이 그동안 못 봤던 아쉬움을 달래는 시간이 아니라 서로의 상처를 들추는 시간이 되는 것 등에 대한 고통을 호소하는 글이 대다수다.

 “남녀는 평등한데 한국의 제사문화는 여성에게만 노동을 강요한다” “명절 때 대다수 여성들은 친정에 먼저 가지
 못하고 며칠간 힘든 노동을 마치고서야 뒤늦게 친정에 갈 수 있다” “명절 끝나면 이혼하고 가족 간 열등감으로 마음
 상하면 다음에 안보게 되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등의 의견이다.

여성들뿐 아니라 남성들의 고충을 호소하는 글도 있다. 다른 청원인은 “명절 때마다 남자도 눈치보인다. 남자나 여자나 스트레스 받는 건 마찬가지”라고 썼다.
실제로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최근 1170명을 대상으로 명절 성차별 사례를 조사한 결과 남녀 모두 ‘명절에 여성만 하게 되는 상차림 등 가사분담’(53.3%)을 1위로 꼽았다. 여성들만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는 이 비율이 57.1%로 더 높았다.

 여성들은 “애미야 상 차려라” 등을 가장 듣기 싫은 말로 꼽았고, 30대 여성들의 경우 “젊고 예쁠 때 얼른 결혼해라”
“살 찌면 안 되니까 조금 먹어라” 등을 대표적인 성차별 발언으로 지목했다.

남성들의 경우에도 가사분담이 고민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위 조사에서 남성들이 꼽은 성차별 행동 1위도 ‘가사분담’(43.5%)으로 나타났다.
‘도와주고 싶은데 눈치가 보인다’는 의견이 뒤따랐다. 남성들은 또 “남자가 돼 가지고”라거나 “남자만 운전하고 벌초
하는 문화”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런 지적들은 그동안 명절 때마다 제기돼왔음에도 개별 가족 내에서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국민들이 청원 게시판을 통해 명절 문화 개선에서부터 폐지까지 다양한 의견을 내는 것도 정부의 구체적 행동을 촉구하려는 취지다.

한 청원인은 “어느 한쪽으로만 효를 강요하는 분위기가 허탈감을 만들고 결혼의 의미를 퇴색시킨다”고 지적했다.
 다른 청원인도 “며느리가 개별 제안을 한다면 시댁과의 불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시대 변화를 반영한 공익 캠페인을 진행해달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 불청객으로 전락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저마다의 사정으로 추석을 두려워하는 추석 포비아가 나타난다. 사진은 한 보좌관이 의원회관 로비에 쌓인 택배를 의원실로 옮기는 모습. /국회=임현경 인턴기자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 불청객으로 전락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저마다의 사정으로

 추석을 두려워하는 '추석 포비아'가 나타난다. 사진은 한 보좌관이 의원회관 로비에 쌓인

 택배를 의원실로 옮기는 모습.


/국회=임현경 인턴기자






추석 연휴 막바지인 25일 오전 서울역에서 고향을 다녀온 귀경객들이 역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다 부질없는 XX" 2018년 대한민국, 추석의 의미




[이데일리 장영락 기자] 명절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회자되는 전설의 댓글이 있다.

“다 부질없는 X뻘짓”이라는 비속어로 시작되는 이 댓글은 제사 등 명절 전통 관습에 대한 어느 누리꾼의 신랄한 논평을 담고 있다.

이 누리꾼은 “진짜 조상 잘 만나 조상 덕 본 사람들은 지금 다 해외여행 가고 없다. 조상 덕이라곤 1도 못 본 인간들이 음식상에 절하고 집에 와서 마누라랑 싸운다”며 자조한다.

이미 수년 전 국내 최대 포털 사이트 한 기사에 댓글로 달린 이 메시지는 누리꾼들의 엄청난 공감을 얻으며 몇 년째

 ‘명절 명언’이라는 이름으로 온라인상에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 글은 명절을 맞아 가족들이 모여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관습이 현실사회에서 얼마나 부조리한 결과를 낳는지를 날카롭게 비평하고 있다.

메시지의 초점이 해외여행 간 이들 보다 명절마다 제사 지내고 가족들과 싸우기도 하는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에게 맞춰져 있음은 물론이다.


물론 현실과 맞지 않는 과장과 극단적 비유가 섞여 있으나, 경제적 이해관계 등을 둘러싼 가족 간 불화를 봐온 이들에게 이 댓글보다 명절을 잘 설명한 표현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추석과 같은 명절은 많은 사람들에게 두려운 행사가 돼가고 있다.


특히 3포를 넘어 ‘그냥 인생을 포기했다’는 1포 세대라는 농담까지 나오는 오늘날 청년세대에게 명절은 가족들 얼굴을 보기 더욱 두려운 순간이다. 각종 채용사이트 등에서 실시하는 설문을 보면 취업준비자의 절반 가까이가 명절 때 고향에 내려가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취업과 결혼에 성공한 이들도 출산과 같은 개인사에 대한 질문을 피하기 어렵다.

 명절 때 가족이나 친지가 물어오는 질문들은 안부 인사라기보다 부담스런 추궁이 됐다.
가족 간 불화도 심각한 수준이다.


경찰청 119 신고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명절 연휴 가정폭력 신고건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2017년 기준 하루 평균 신고 건수는 명절 연휴 기간 1000건에 가까워 연중 평균 670여건보다도 많다. 부부간 다툼으로 명절 직후 이혼 신청 건수 역시 2배 가까이 늘어난다는 통계도 있다.

이런 가운데 명절 관습을 대표하는 제사도 사라지는 추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17년 추석 소비자 패널 59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추석 차례상을 차리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28.8%였다.


이전해 전년 25.6%보다 증가한 수치다. 유통업체 티켓몬스터가 이번 추석을 앞두고 30~40대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추석에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40%에 가까웠다.

납골당, 수목묘 등으로 매장 문화가 바뀌어가는 추세와 더불어 선조를 기념하는 방식 역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추석이 명절보다 휴가로서 가지는 기능 또한 커졌다.

OECD 국가 노동시간 2위의 나라답게 명절을 휴가로 활용하는 경향은 최근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명절 기간 해외 여행객 수치는 해마다 늘어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이번 추석 연휴 6일 동안 118만여명의 여객이 인천공항을 이용한 것으로 추산했다.

역대 명절 가운데 하루 평균 기록을 갱신한 수치다.


다만 이같은 부작용 속에서도 한국인들은 명절날 오랜만에 이뤄지는 가족의 회합에 여전히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이번 연휴 가족을 만나기 위해 이동한 인원은 3600만명에 이르러 귀성길, 귀경길 교통 전쟁이 어김없이 재현됐다. 추석 다음날인 25일 절정을 이룬 고속도로 정체는 26일 오전이 돼서야 풀렸다.

이처럼 전통과 현실 사이 간극은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 가운데 2018년 추석 연휴 마지막 날도 저물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