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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사

선진국’ 일본은 없었다…‘올림픽 리스크’에 위신 추락

 

 

 

도쿄(일본)=뉴시스] 최진석 기자 = 23일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성화 봉송의 마지막 주자인 오사카 나오미가 성화대에 불을

붙힌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1.07.23. myjs@newsis.com

 

 

 

 

 

 

도쿄(일본)=뉴시스] 최진석 기자 = 23일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2020 도쿄

올림픽 개막식이 열리고 있다. 2021.07.23. myjs@newsis.com

 

 

 

 

 

 

도쿄올림픽 개막식이 임박한 가운데 7월21일 오후 일본 도쿄도(東京都)의 한 고층 건물

전망대에서 경비원이 근무 중이다. 뒤쪽으로 도쿄올림픽의 메인 스타디움으로 사용될

일본 국립경기장이 보인다. ⓒ 연합뉴스

 

 

 

 

선진국’ 일본은 없었다…‘올림픽 리스크’에 위신 추락

 

 


도쿄올림픽이 일본의 새로운 리스크로 떠올랐다. 코로나19 대확산 우려 속에 자국 여론은 물론 국제사회도 이번 올림픽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후원사로 이름을 올렸던 일본 기업들도 앞다퉈 개회식 불참 및 광고 철회를 선언하며 등을 돌리고 있다.

 

주요국 정상 불참 속에 아베 신조 전 총리마저 "참석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비치면서 국민적 분노도 정점을 치닫고 있다.  

여기에 선수촌 시설과 운영 등 곳곳에서 문제가 터져나오며 '도쿄체전'이라는 국제적인 조롱을 받는 처지에 놓였다.

당초 일본 정부는 올림픽을 계기로 동일본 대지진을 딛고 일어선 '재부흥' 이미지를 각인하려 했지만, 엉성한 준비와 대응으로 위신 추락 위기에 직면했다.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가 7월18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을 초청해 환영 행사를 연 일본 도쿄 모토아카사카 영빈관 주변에서 올림픽 취소

등을 주장하는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개막 직전까지 출구 못 찾고 '대혼선'

도쿄올림픽은 개최가 확정된 직후부터 각종 논란에 휩싸였다.

2013년 올림픽 유치가 결정된 이후 국제사회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문제를 지적하며 대회 진행에 대한 큰 우려를 표했다.

이후 2015년 올림픽 공식 로고가 발표됐는데, 벨기에의 한 극장 로고를 표절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결국 위원회 측은 공식 엠블럼을 교체하며 망신을 당했다. 
경제 부흥을 기치로 올림픽에 매진하던 일본 정부는 2019년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에 대한 '뇌물 살포' 의혹에 휩싸였다.

개최를 목전에 두고선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이 때만 해도 국제 사회에서는 유례없는 팬데믹 속에 올림픽 개최지의 부담을 떠안은 일본 정부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었다. 
분위기가 반전한 것은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의 헛발질이 반복되면서다. 중심에는 모리 요시로 전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위원장이 있었다.

83세의 고령인 모리 전 위원장은 지난 3월 "여성이 많으면 회의가 길어진다"는 등 여성 비하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뭇매를 맞았다.

IOC까지 사태 심각성을 지적하고 나오자 모리 전 위원장은 결국 사퇴했다. 도쿄올림픽 개최를 불과 6개월 앞두고 터진 대형 악재였다. 

일본 정치권도 모리 전 위원장의 발언 직후 '감싸기' 발언을 했다가 역풍을 맞는 등 대혼선을 연출했다. 그리고 이 혼선은 올림픽이 임박해지면서 강도가 더 세졌다. 

 

 

 

 

 


2월13일 존 코츠 IOC 조정위원장과 모리 요시로(오른쪽) 당시 도쿄올림픽 조직위원장

이 도쿄에서 올림픽 준비 상황을 점검하는 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개막을 하루 앞둔 22일 도쿄올림픽 조직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 학살을 희화화하는 과거 동영상으로 논란이 된 개막식 연출 담당자 고바야시 겐타로(48)를 해임했다고 발표했다.

이보다 사흘 전에는 개회식 음악감독이 학창 시절 장애인을 괴롭혔다는 폭로가 불거지며 사퇴했다.

때문에 '도쿄올림픽 조직위가 시작도 전에 공중분해 되는 것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코로나19 재확산이다.

일본 내 코로나19 확산세가 빨라지면서 '지금이라도 올림픽을 멈춰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현재 일본의 일일 신규확진자 규모는 5000명에 육박한다.

도쿄 지역만 2000명에 달하고 있으며, 이 수치는 올림픽이 진행되는 동안 더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갖은 우려에도 일본 정부는 '안전 올림픽' 개최를 자신했지만, 이 약속이 지켜지기 힘들 것이란 관측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조직위는 이날 선수촌 4명을 포함해 대회 관계자 등 전날 하루에만 총 12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로써 이번 대회 참가자의 누적 코로나19 감염자는 87명이 됐다. 일본 시민들의 감염 위기감이 한층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까지의 일본 정부나 조직위의 소극적 대응으로 볼 때 감염 확산을 제대로 막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도 점차 커지는 양상이다. 

 

 

 

 

 

 


7월14일 일본 도쿄에 설치된 대형 올림픽 메달 모형 앞을 전통 복장을 한 여성들이

걸어가고 있다. ⓒ 로이터 연합

 

 

 


발 빼는 아베 전 총리, 기업도 '손절' 릴레이

NHK방송 등에 따르면, 도쿄올림픽이 자칫 코로나19 감염의 온상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 주요 광고주와 후원사들도 발을 빼고 있다.

도쿄올림픽 최고위 스폰서인 도요타자동차가 개회식 불참과 일본 내 TV 광고를 보류한다고 밝힌데 이어 파나소닉 등 기업도 잇달아 경영진의 개막식 참석을 보류하거나 불참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표면적으로는 무관중 개최에 대한 부담이 있다고 하지만, 개회식에 참석하거나 대대적인 올림픽 광고를 하는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을 고려한 조치라는 것이 교도통신 등 일본 주요 언론의 분석이다. 

여기에 도쿄올림픽 개최의 최대 공신으로 자처해 온 아베 신조 전 총리마저 불참이 확실시 되면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아베 전 총리는 당초 23일로 예정된 도쿄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최근 조직위에 사실상 불참을 통보했다고 NHK 등이 보도했다. 

 

 

 

 

 

 

2016년 8월22일 브라질 리우 마라카낭 주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데자이네루

올림픽 폐막식에서 다음 개최지인 일본의 아베 신조 당시 총리가 인기 게임 캐릭터

슈퍼마리오 모자를 쓰고 나타나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아베 전 총리는 총리 재임 시절인 2013년 9월 IOC 총회에서 직접 올림픽 개최를 위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등 개최 주역으로 꼽혀왔다. 그 스스로도 올림픽 개최를 가장 큰 업적으로 꼽아 왔다.

그러나 도쿄올림픽의 상징적 인물이자 코로나19 대확산 우려에도 개최 강행에 함께 힘을 보탰던 아베 전 총리가 이제와서 발을 빼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일본 국민들의 분노도 함께 치솟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의 '정상 외교'도 불가능해졌다. 대회를 계기로 일본을 방문하는 각국 정상급 인사는 다음 개최지인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포함해 20명 미만에 그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해 주요국 정상은 대부분 불참하며, 문재인 대통령도 소마 히로히사 주한일본대사관 총괄공사의 막말 등 영향으로 방일이 불발됐다.

결국 개회식 참석 인원은 당초 1만 명 수준에서 950명 수준으로 대폭 축소됐다.  


 

 

 

 

 

도쿄올림픽 관계자가 7월20일 도쿄 하루미 지역 올림픽선수촌 한국 숙소동 주변에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골판지 침대, TV·냉장고는 유상 대여…조롱거리 전락한 선수촌



'산 넘어 산'인 도쿄올림픽은 출전 선수들이 속속 선수촌에 입촌하면서 '도쿄체전'이라는 웃지 못할 조롱과 비유까지 받게 됐다. 
조직위는 친환경 등을 이유로 선수촌 내 침대를 '골판지'로 제작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조직위 측은 '골판지 침대'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약 200㎏의 하중을 견딜 수 있다고 반박했지만, 선수들은 경기 시적 전부터 구겨져버린 침대 사진을 SNS에 올리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설령 하중을 견딘다 하더라도 신체 컨디션이 가장 중요한 운동선수들에게 이같은 침대를 제공한 것은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뉴질랜드 대표팀 공식 SNS 계정에 올라온 영상에는 조정 선수 숀 커크햄이 침대 모서리에 앉자 골판지로 된 프레임이 찌그러지는 장면이 담겼다.

커크햄과 그의 동료는 이 상황이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고 네티즌들은 이를 조롱하며 '누가 올림픽에 장난감 침대를 가져다 뒀는가' 등의 질타가 이어졌다. 

앞서 미국 육상 국가대표인 폴 첼리모는 자신의 트위터에 "누군가 내 침대에 소변을 본다면 박스가 젖어서 침대에서 떨어질 것이다.

결승전을 앞둔 밤이면 최악이 될 수도 있다"며 "내 침대가 무너지는 상황을 대비해 바닥에서 자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비꼬기도 했다. 

 

 

 

 

 

 

도쿄올림픽 선수촌에 설치된 골판지 침대 ⓒ AFP 연합

 

 


러시아 펜싱대표팀 감독은 선수촌의 좁은 방과 시설에 대한 불편함을 호소하며 "중세시대 같다"고 직격했다.

4~5명이 함께 쓰는 방에 화장실이 1개 밖에 없는 점도 선수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란 반발이 쏟아졌다. 

이 밖에도 장신 선수들을 고려하지 않은 화장실 및 샤워 시설, 무더운 날씨와 코로나19로 외부 활동이 차단된 선수들에게 TV와 냉장고를 '유상'으로 대여해 주고 있는 점, 선수 식단에 사용되는 후쿠시마산 식재료 등도 논란을 빚었다.

 

특히 메달권 진입이 유력한 주요 종목의 일본 국가대표 선수들은 선수촌이 아닌 경기장에서 가까운 외부 호텔 등을 활용토록 해 형평성 논란을 자초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5월5일 일본 총리공관 앞에서 코로나19 확산

으로 인한 긴급사태 발효와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악화 일로인 상황에서도 스가 총리는 여전히 올림픽 성공 개최를 자신하고 있다. 

스가 총리는 최근 관저에서 미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를 갖고 올림픽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에 대해 "경기가 시작돼 국민들이 TV로 관전하면 생각이 바뀔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코로나19 재확산 우려에 대해서도 "(일본의) 감염자 수 등을 해외와 비교해 보면 한 자릿수 이상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적다"며 심각한 상황이 초래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취소하는 것이 제일 쉽고, 편한 일"이라며 "도전하는 것이 정부 역할"이라며 올림픽에 강행 배경을 설명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농구선수 하치무라 루이(23)가 23일 도쿄올림픽 개회식에 기수로 등장했다

(사진=AFP)

 

 

 

 

 

순혈주의' 일본이 변했다? 올림픽에 등장한 '하푸'

 

 

 

 

기수자도, 마지막 성화주자도 혼혈 선수들
"세계에 다양성 보여주려는 일본의 열망"
적극적 이민정책으로 일본 거주 외국인↑


보수층 사이에선 단일민족 신화 여전
"日, 원할 때만 혼혈 편 선다" 비판도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일본 선수단 중에서 홀로 우뚝 솟을 정도의 신장(203cm)에, 인사할 때는 반사적으로 꾸벅 고개를 숙인다.

아프리카 베냉 출신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1998년생 ‘하푸(ハ-フ·일본 국적 혼혈인)’ 농구선수, 하치무라 루이(23)가 23일 도쿄올림픽 개회식에서 일본 국기를 들고 등장했다.

마지막 성화주자로는 하치무라와 동갑내기 테니스 스타 오사카 나오미(23)가 나섰다.

아이티 출신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오사카는 전 세계 남녀 스포츠인을 통틀어 수입 2위(약 690억원)에 오른 선수다.

 

 

 

 

 

테니스 스타 오사카 나오미가 마지막 성화주자로 나서고 있다(사진=AFP)

 

 

 

 

‘순혈주의’를 고집해 온 일본이 달라지고 있다. 도쿄올림픽이 ‘다양성’과 ‘조화’를 대회 목표로 내세우면서 이번 일본 올림픽 대표팀 583명 중 다인종은 35명에 달한다.

뉴욕타임스(NYT)는 “개회식에서 가장 주목받는 역할 두 가지가 다인종 선수들에게 돌아간 건 일본이 세계에 다양한 얼굴을 선보이고자 하는 열망이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이코노미스트 역시 “인종 동질성 사상이 오랫동안 지배해 온 나라에서 인종과 정체성에 대한 태도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실제 현재 일본 사회에는 여느 때보다도 외국인이 많아졌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이민자를 수용한 결과, 10년 전 200만명이던 일본 거주 외국인이 300만명 수준까지 올라왔다.

 

여전히 전체 인구의 2%에 불과하다는 지적은 있지만, 도쿄의 20대 중 적어도 10%는 외국 혼혈일 정도로 다양성이 커졌다는 평가다.
다문화에 대한 인식도 나아지고 있다.

 

외국인과 결혼하는 것에 대해 1993년에는 30%만 찬성했지만 2013년에는 56%로 늘었다.

반대한다는 응답도 34%에서 20%로 줄었다.

그 결과 1980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태어난 아이들 135명 중 1명만 다문화 가정 출신인 데 비해 오늘날은 50명 중 1명 수준으로 늘었다.

 

 

 

 

 

올림픽 개회식에서 공연단이 오륜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사진=AFP)

 

 

 

 

일본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외국인을 배척하는 나라였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극단적인 고립주의 정책을 폈다.

임진왜란 이후 전국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 내 기독교 선교를 금지하면서다.

 

150년간 이어진 내전을 매듭짓고 혼란한 정국을 안정시키는 게 최우선 목표인 도쿠가와 막부의 눈에 봉건질서를 비판하고 평등사상을 강조하는 선교사들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17세기부터 도쿠가와 막부는 외국인 선교사들을 국외로 추방했으며 이는 200년 넘게 이어졌다.

쇄국정책은 끝났지만 단일민족 신화는 남았다. 이코노미스트는 “제국주의 이후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일본인들과 일본의 경제적 기적에 대한 설명을 원하는 이들이 단일민족 신화를 재생산했다”고 꼬집었다.

 

동질성에 대한 환상을 갖고있는 보수주의자들이 오늘날까지 순혈주의에 매달린다는 설명이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은 지난해 1월 “2000년간 하나의 민족, 하나의 왕조가 이어져 온 국가는 일본 뿐”이라고 말해 소수민족인 아이누족을 부정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일본 애니메이션 ‘테니스의 왕자’ 원작자가 그린 오사카 나오미의 모습. 피부색과

머리색을 밝게 묘사해 화이트워싱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사진=CNN)

 

 

 

 

그래서일까. 도쿄올림픽에 혼혈 선수들을 앞세운 건 위선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일본 선수단 기수로 나선 하치무라도 “소셜미디어에서 거의 매일 혐오발언 메시지를 받고 있다”고 토로할 정도다.

하치무라 뿐일까.

 

마지막 성화주자로 주목받은 오사카 역시 2019년 호주 오픈에서 우승한 뒤 ‘화이트 워싱(모든 작품 배역을 백인으로 캐스팅하는 행위)’ 당한 바 있다.

그의 후원업체이자 일본 최대 라면업체인 닛신식품이 오사카를 그린 애니메이션 광고에서 피부는 하얗게, 머리는 갈색으로 묘사하면서다.

 

당시 오사카는 “내 피부는 누가 봐도 갈색”이라 일침했고 닛신식품이 사과와 함께 광고를 삭제하며 논란이 일단락됐다.
유명인들도 일본 내 인종차별에서 자유롭지 않은데 일반인들은 오죽할까. 일자리를 구하거나 월세집을 구하는 것도 혼혈 일본인들에겐 쉽지 않다고 한다.

 

길을 가다가 일본 경찰이 영장도 없이 멈춰세운 뒤 수색하는 일도 이들에겐 드물지 않다고. 일본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고 있는 바하마 혼혈 오모테가와 알론조(25)가 이번 도쿄올림픽 개회식을 지켜본 뒤 로스앤젤레스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이 나라는 원할 때만 우리 편에 선다.”

 

 

 

 

 

사진=뉴시스

 

 

 

 

도쿄올림픽 = 부흥올림픽’이라는 이데올로기

 

 

◇역대급 규모의 도쿄올림픽 자원봉사단

 

일본인 지인이 소셜 미디어에 ‘고민 끝에 올림픽 자원봉사를 포기했다’는 포스트를 올렸다.

그는 집에서 멀지 않은 수영 경기장에서 자원봉사를 할 예정이었다.

코로나19가 재확산하는 와중에 해외 선수단과의 접촉을 포함해 대외 활동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올림픽 자원봉사에 큰 부담을 느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딸은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워했지만, 가족의 건강을 위험에 빠뜨려서는 안 된다는 아빠의 결단을 이해해 주었다고 한다.

2020 도쿄올림픽 강행에 대한 일본 국내 여론은 좋지 않다. 글로벌 팬데믹 속에서 강행하는 대규모 국제 행사에 대한 불안이 상당하다.

 

적극적으로 항의 행동에 나서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시민들이 이미 대회 중지를 선언할 적기를 놓쳤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올림픽이 반갑지는 않아도 큰 불상사 없이 절반의 성공이라도 거두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대부분의 일본인은 자국에서의 올림픽 개최를 반가운 일로 받아들였다.

일본 시민들이 아낌없이 보내 온 응원의 바로미터는 역대급이라고 할 만한 도쿄올림픽 자원봉사단의 규모다.

 

조직위원회(조직위)가 총괄하는 경기장 내 자원봉사자(필드 캐스트)가 8만 명, 도쿄도가 모집한 시내 자원봉사자(시티 캐스트) 3만 명, 그 밖의 지역에서 활동할 1만5,000여 명을 합치면 12만여 명이 자원봉사자로 나설 예정이었다. 모집은 벌써 2년 전에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이들을 위한 연수 프로그램도 일찌감치 실시되고 있었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도 2만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대활약을 했다.

하계 올림픽이 동계보다 규모가 훨씬 크지만, 대여섯 배에 가까운 시민이 선뜻 자원봉사자로 나섰던 것은 주목할 만하다.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1만3,000여 명이 자원봉사 활동을 포기했다.

성화를 봉송할 예정이었던 연예인과 사람들이 가두 행사에 협조할 수 없다며 사퇴하는 해프닝도 잇따랐다. 조직위 인사의 성 차별 발언 등 불상사가 빈발하며 자원봉사의 의미도 빛이 바랬다.

설상가상으로 이번에는 조직위가 자원봉사자들에게 ‘집에서 유니폼을 착용하고 경기장으로 출근할 것’을 지시해 구설수에 올랐다.

 

가뜩이나 여론이 좋지 않은데 유니폼 차림으로 대중교통 수단에 오르는 것에 부담스러움을 토로하는 자원봉사자들이 많다.

경기장을 오가며 코로나바이러스를 확산시키는 주범으로 지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관중 개최가 결정되면서 국내외 관람객의 관광 안내를 도맡을 예정이었던 시내 자원봉사자들은 활동 자체가 사라졌다.

중고 물품 거래 사이트에 자원봉사자 유니폼이 판매 물품으로 대거 올라왔다는 씁쓸한 뉴스도 있다.

 

더 나빠질 수도 없는 최악의 조건 속에서 도쿄올림픽이 개막한다.

논란과 잡음이 끊이지 않는 이 행사에 힘을 보태는 자원봉사자들의 마음도 편치는 않을 것이다.

◇재해 현장으로 달려가는 ‘볼런티어’의 문화

일본에서 자원봉사의 문화는 굳건히 뿌리내리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시민들이 솔선해서 자원봉사 활동에 선뜻 나선다.

수십 년 동안 유수의 식음료 제조업체에서 일해 온 지인은 여가 시간을 활용해 대지진 등 재해 상황에서 조달 가능한 간이식에 대해 연구했다.

 

정년 퇴직한 뒤에는 지역 대학과 공동으로 재해 급식에 대한 연구회를 조직하고, 그 결과를 대가 없이 사회에 공유하고 있다.

그녀는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할 수 있겠느냐”며 이 일에 열정을 쏟는다.

 

한국에서는 종교적인 이유에서의 자원봉사가 많다.

자원봉사라고 하면 불우 이웃을 돕거나 허드렛일을 하는 자선 활동이라는 인상도 있다.

또는 진학이나 취업을 앞둔 젊은이가 이력서에 기재할 경력을 의식해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경향도 있다. 그에 비해 일본에서는 사회 경험이 풍부하고 삶이 안정된 장년층이 자원봉사에 더 적극적이다.

 

오랜 사회 생활 속에서 축적한 전문성을 공동체에 환원하는 ‘재능 기부’의 형태를 띄는 경우가 많다.

‘볼런티어(ボランティア, 자원봉사를 뜻하는 영단어 ‘volunteer’를 일본어로 옮긴 말)’라는 어색한 외래어가 일본 사회에서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1995년 간사이 지방을 초토화시킨 한신대지진이었다.

한겨울 새벽에 일어난 이 대지진으로 오사카 서쪽의 대도시 고베는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도심으로 진입하는 주요 고속도로를 포함해 교통, 통신, 전기 등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인프라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피해 수습은커녕, 인명 구조 인력이 현장으로 접근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급박한 상황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재해 현장으로 구조 물품을 실어 나르고 피난소에서 이재민을 도왔다.

 

후원금을 보내거나 PC통신(인터넷의 대중화 이전에 사용되던 폐쇄형 컴퓨터 네트워크)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는 등 후방에서 지원한 시민도 적지 않았다. 특히 젊은이들도 몸을 사리지 않고 재해 현장으로 뛰어들어갔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쾌락적 소비를 즐긴다는, 소위 ‘신인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계기도 되었다.

지진 발생 이후 1년 동안 재해 현장에서 자원봉사를 한 시민은 137만 명이 넘는다.

 

이전에도 종교 단체나 회사 등 조직이나 집단 단위의 자원봉사 활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신대지진을 기점으로 개인이 자발적으로 떨쳐 일어나는 자원봉사가 급격히 늘어났다. 일본 경제기획청은 이 해를 ‘자원봉사 원년’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경험은 일본 시민 사회에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다.

고베의 재해 현장에서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샐러리맨에서 비영리단체의 활동가로 명함이 바뀐 지인도 있다.

많은 시민들이 지진, 폭우 등 큰 재해가 있으면 방관하지 않고 행동에 나선다.

자원봉사자가 쇄도하는 것이 현장에서 오히려 방해가 될 정도다.

 

1990년대 말 한국 사회에서는 외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장롱 속 금수저를 기부한 ‘금 모으기 운동’이 있었다.

이 운동이 외화 유동성 부족을 해결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지만, 한국 시민들이 국가라는 경제 공동체의 일원임을 실감하는 계기였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자연재해가 잦은 일본에서는 대지진 등의 위기 상황에서 서로 돕고 공생을 도모하는 시민 공동체의 존재를 체감한다. 일본 시민들에게 재해 복구에 힘을 보태는 것은 단순한 자원봉사의 의미를 넘어선다. 시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마땅히 수행해야 하는 공적인 활동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부흥 올림픽’이라는 딜레마에 빠진 일본 시민 사회

도쿄올림픽은 후쿠시마 지역의 재기를 위한 ‘부흥 올림픽’을 대대적인 목표로 내걸었다.

올림픽 개최를 지지하는 시민 중에는 보수적 국가주의 강화를 원하는 일본 정부의 내심에 동조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올림픽을 통해 세계인의 평화로운 교류에 기여하고 후쿠시마 지역의 부흥을 꾀하겠다는 ‘선의’에 힘을 보태려는 시민이 대다수일 것이다.

 

일본 국외에서는 후쿠시마라고 하면 원전 사고로 불모지가 되었다는 인상뿐이다.

하지만, 일본인들에게 그곳은 사고 이후 10여 년이 지났음에도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한 ‘아픈 손가락’이다.

 

이를 올림픽 프로젝트와 연결 지음으로써 비판적 여론을 잠재우려는 일본 정부의 정치적 의도는 분명하다.

어떻게 천문학적 규모의 나랏돈을 퍼부어야 하는 스포츠 대회가 후쿠시마 지역의 진정한 부흥에 도움이 되겠는가?

 

오히려 악화일로인 원전 사고의 실상을 은폐하고, 지원이 절실한 주민들을 소외시킬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쿠시마를 도와야 한다’는 명분이 있는 한 목소리를 높여 반대하기 어려운 것

이다.

‘도쿄올림픽=부흥올림픽’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일본 시민 사회를 딜레마에 빠뜨렸다.

 

 

 

김경화 문화인류학자

 

 

 

 

 

 

 

 

한겨레 자료사진화려했던 ‘긴기라기니’ 시대의 일본은 끝났다



[한겨레S] 김도훈의 낯선 사람
곤도 마사히코

80~90년대 한국이 동경했던 일본
거품 꺼지며 한-일 사이 역전현상
젊은 세대 이미 ‘추월의 시대’ 살아
선망 아닌 파트너로 상대 바라봐야

 

 

1980년대의 초등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긴기라기니’라고 노래를 불렀다.

그 시절 나는 경상남도 마산에 살았다. 부산도 그렇지만 일제강점기 때 항구로 성장한 마산 역시 일본 문화가 빠르게 전해지던 도시였다.

가라오케도 시내 곳곳에 생겨났다.

합법적으로 상륙한 것은 아니었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일본 문화를 개방하기 전까지 일본에서 오는 모든 문화와 제품은 불법이었다. 사람들은 불법을 좋아하는 법이다.

80년대의 많은 초등학생은 보따리장수들이 수입한 코끼리 밥통을 들고 다녔다.

 

‘조지루시 마호빈’이 생산한 이 밥통을 한국인들은 코끼리 밥통이라 불렀다.

조지루시는 코끼리표라는 뜻이다.

나도 코끼리 밥통을 들고 다녔다.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열면 다들 감탄했다.

 

뜨거운 국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코끼리 밥통은 가히 선진국의 유물 같은 것이었다.

 

 

 

 

 

 

 

 

1980~90년대 곤도 마사히코의 노래 ‘긴기라긴니 사리게나쿠’는 다른 나라 젊은이들

에게 동경의 대상이던 일본 문화를 상징하는 것 중 하나였다. 지금 일본은 그의 노래

가사처럼 ‘화려했지만 자연스럽게’ 추월의 대상이 되고 있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한국은 일본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변방의 촌구석이었다. 1980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일본의 17분의 1가량에 불과했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686달러였다.

일본은 1만달러에 가까웠다.

 

일본은 선진국이었고 한국은 막 가난을 벗어나기 시작한 개발도상국이었다.

문화도 당연히 차이가 났다.

불법으로 들어온 일본 문화는 초등학생의 눈으로 봐도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선진적이었다.

무역선 선장으로 일했던 아버지는 종종 일본 잡지를 집으로 가지고 왔다.

 

나는 일본어를 모르면서도 일본 잡지들을 집요하게 훑었다.

반질반질하고 선명한 컬러 페이지는 한국 잡지들과 너무 달랐다.

나는 일본을 가슴이 아플 정도로 선망했다.

 

엄청난 소리 내며 거품 꺼진 일본

 

그리고 ‘긴기라기니’가 등장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유행인지는 모르겠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들이 일본어로 된 노래를 제멋대로 부르기 시작했다.

틀리지 않고 부르는 대목은 ‘긴기라기니’뿐이었다.

 

나는 곧 그게 곤도 마사히코라는 일본 가수가 1981년에 발매한 앨범 <긴기라긴니 사리게나쿠>(첫째 사진)라는 걸 알게 됐다.

‘화려하지만 자연스럽게’라는 뜻이었다.

불법 카세트테이프에 담겨 있는 이 뽕끼 어린 댄스곡은 꽤나 중독적이어서 아무리 흥얼거려도 질리지가 않았다.

 

당시 한국 가요에는 댄스곡이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나미의 ‘빙글빙글’이 1984년 나왔을 때에야 나는 한국에도 댄스곡 비슷한 것이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 80년대의 초등학생에게 ‘긴기라기니’가 얼마나 거대한 문화 충격이었을지 한번 상상해보시라.곤도 마사히코는 일본 버블(거품) 경제의 상징과도 같은 아이돌이다.

한국 아이돌 기획사들이 모델로 삼았던 일본 아이돌 기획사 ‘자니스’가 1979년에 데뷔시킨 그는 ‘긴기라긴니 사리게나쿠’를 히트시키며 국민적 아이돌이 됐다.

 

일본 남자들은 그의 헤어스타일을 따라 했다. 나이키 스니커즈 같은 아이템들을 일본에 유행시킨 것도 그였다.

 

자니스는 1962년에 창립한 기획사지만 현대적 아이돌 산업의 시작은 80년대였다.

그리고 그 시작은 곤도 마사히코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당시 한국에는 아이돌이라는 것이 없었다.

 

혜은이를 한국 아이돌의 시작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혜은이의 노래는 여전히 ‘어른들의 가요’ 속에 머물렀다.80년대 내내 곤도 마사히코는 승승장구했다.

1987년에는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의 전성기는 만들어진 아이돌이 그렇듯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90년대가 오자 새로운 아이돌들이 신전에 올라섰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그룹 스마프(SMAP)의 기무라 다쿠야가 전성기를 맞이했던 90년대에 곤도 마사히코는 좀 낡은 존재가 됐다.

“화려하지만 자연스럽게. 그게 나의 방식. 화려하지만 자연스럽게 살아갈 뿐이야”라고 삐딱하지만 자신감 넘치게 노래하던 시절은 가고 있었다.

 

도쿄의 부동산을 팔면 미국도 살 수 있다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었다.

1990년대를 지나며 버블은 꺼졌다.

엄청난 소리를 내며 꺼졌다.

잃어버린 10년이 곧 시작될 참이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94년에 대학생이 된 나는 일본 드라마를 다운로드받아서 보고 또 봤다.

지금 기준으로야 불법이지만 당시에는 ‘냅스터’라는 음원 사이트가 세상의 모든 노래를 ‘합법적으로’ 공짜로 풀던 시절이라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당대 일본 최고의 스타였던 기무라 다쿠야가 주연한 <롱 베케이션>(1996)과 <러브 제너레이션>(1997)은 몰래 일본 문화를 좋아하던 대학생들에게는 바이블이나 마찬가지였다.

한국에도 트렌디 드라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일본의 것과 비교하자면 여전히 좀 촌스러운 데가 있었다. 최근 ‘왓챠’라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두 작품이 올라왔으니 꼭 보시길 권한다.

 

버블이 꺼지기 전 세상에서 가장 트렌디한 도시였던 도쿄의 빛나는 시절이 소행성 충돌을 미처 내다보지 못하고 죽은 공룡처럼 박제되어 있다.나는 이 글을 심야 뉴스 채널을 보며 쓰는 중이다.

올림픽 뉴스들을 보면서 나는 한때 지구에서 가장 부유하고 질서 있고 세련되던 한 국가가 기우는 소리를 듣는다. 팬데믹이라는 통제할 수 없는 요인이 있긴 하다.

 

그럼에도 도쿄는 도무지 이 거대한 국제적 이벤트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일본은 당황하고 있을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올림픽은 일본의 재생을 상징하는 행사가 되었어야 한다. 국뽕의 파티가 되었어야 한다. 지금 국뽕은 오히려 한국의 것이다.

 

특히 나는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의 방문을 이리 재고 저리 재는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부터 어떤 불편함과 당황스러움을 읽었다.

일본을 따라 하려 애쓰던 옆 나라 촌놈이 동등한 위치에 올라서기 시작한 것을 도무지 받아들이지를 못하는 눈치라고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추월의 시대’ 도래한 한-일 관계

함께 일하던 전 직장 동료가 공저자로 참여한 <추월의 시대>를 읽었다.

나는 제목을 듣는 순간 얼얼할 정도로 무릎을 쳤다.

‘추월’이라는 단어를 누가 골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제대로 고른 단어라고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한국은 추월의 시대에 돌입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했다.

이 기구의 회원국이 선진국으로 지위가 바뀐 건 1964년 기구 설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한국의 1인당 구매력이 일본을 넘어섰다는 뉴스도 있다.

40대인 나에게 일본은 어쩔 도리 없이 극복해야 하는 무언가다.

한국의 10대와 20대에게 일본은 그냥 한국과 비슷하게 사는데 길거리가 조금 더 강박적으로 깨끗한 나라일 따름이다.

 

누구도 일본 드라마를 보며 도쿄를 꿈꾸지 않는다.

중년 이상 한국인들은 여전히 일본에 대한 묘한 열등감을 갖고 있지만 새로운 세대에게 열등감은 없다. 그들은 이미 추월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나는 요즘도 종종 곤도 마사히코의 ‘긴기라긴니 사리게나쿠’ 무대를 유튜브로 보곤 한다.

여드름쟁이 시절을 갓 벗은 사내가 화려한 무대에서 댄서들과 춤을 추며 격정적으로 노래하는 모습을 본다. 이제 그건 “화려하지만 자연스럽게” 황금기를 즐기던 한 시대의 지나간 상징처럼 보인다.

나는 이어서 방탄소년단(BTS)의 뮤직비디오를 본다.

 

황금기를 시작하는 한 시대의 새로운 상징이다.

어쩌면 한국과 일본은 이제서야 진정한 속내를 보여주며 서로를 동등한 파트너로 바라볼 수 있는 시기를 맞이했는지도 모른다.

일본을 선망하던 20세기 소년의 시대는 갔다. 21세기 친구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지난 2010년 영화 '아웃레이지'로 칸 영화제에 참석한 일본 기타노 다케시 감독.

[로이터=연합뉴스]

 

 

 

 

 

 

창피해서 외국도 못 가겠다" 개회식 비꼰 기타노 다케시

 

 

 

 

시사프로서 "세금 돌려달라" 신랄 비판
렌호, "런던올림픽보다 더 비싼 개막식"

 

 

 

일본 영화감독이자 코미디언인 기타노 다케시(北野武·74)가 23일 밤 열린 도쿄올림픽 개회식에 대해 "(개회식에 쓴) 세금을 돌려줬으면 좋겠다"며 혹독하게 비판했다.

'비트 다케시'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기타노 감독은 24일 밤 TBS 시사정보프로 '뉴스캐스터'에 출연해 "어제 개회식, 재밌었네요. 많~이 잤어요.

돈을 돌려줬으면 좋겠네요"라고 비꼬았다.

 

사회자가 "돈을 내셨나요?"라고 묻자 "(개회식에) 세금이 들어갔잖아요. 그거 돌려줘요.

큰일났네, 외국도 창피해서 못 가겠어"라고 말했다.

23일 진행된 도쿄올림픽 개회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속에서 축소된 규모로 다소 진지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에 대한 배려가 돋보였다는 평가가 나오는 반면, "졸렸다" "장례식 같았다"는 외신들의 혹평도 이어졌다.

 

 

 

 

 

 

 

 

23일 밤 열린 도쿄올림픽 개막식 불꽃놀이. [AP=연합뉴스]

 

 

 

 


'하나비' '소나티네' '피와 뼈' 등의 영화로 다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했고, 배우·작가로도 활동하는 기타노 감독인 만큼 그의 개회식 평가를 여러 일본 언론들이 기사화했다.

기타노 감독은 이 방송에서 "연출가가 바뀌는 등 제약이 많지 않았냐"는 사회자의 반론에도 "(나중에 돌아보면) 일본이 얼마나 바보같았는지 알게 될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입헌민주당의 렌호(蓮舫) 참의원 의원도 25일 기타노 감독의 뉴스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리며 올림픽 개회식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 사실을 비판했다.

 

렌호 의원은 "대회 연기에 따라 개폐회식을 맡은 (광고회사) 덴츠와의 계약도 연장됐고, 코로나19를 반영한 메시지로 내용도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용 변경, 연기에 따른 인건비 증가 등으로 91억엔(약 948억원)이었던 비용은 165억엔(약 1720억원)까지 늘어났다"면서 "이는 런던올림픽 비용을 웃돈다"고 적었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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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일본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화려한

불꽃이올림픽 개막을 알리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23일 일본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1964년

도쿄 올림픽부터 시작된 픽토그램 이미지의 변천사와 2020 도쿄 올림픽의 전 종목을

픽토그램으로 표현한 팬터마임 공연으로 보여줬다. (도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