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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사

비극의 아프가니스탄···'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의 예정된 결말

 

 

 

 

 

▲ 탈레반이 순식간에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재장악하자 수도 카불 인근의 공항은

필사의 탈출을 위해 몰려든 수많은 인파로 아수라장이 됐다. [사진=연합뉴스]

 

 

 

 

 

 

 

서방 제국주의의의 처참한 패배 이들은 지난 20여 년간 아프가니스탄을 유혈낭자한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출처 미군

 

 

 

 

 

 

 

17일(현지시각)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부르이 국제공항 외곽에 탈레반으로부터 탈출을

노리는 수백명의 주민들이 모여 있다. /AP연합뉴스

 

 

 

 

 

 

 

국외 탈출 위해 카불 국제공항 담 넘는 아프간인들 [로이터=연합뉴스]

 

 

 

 

 

비극의 아프가니스탄···'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의 예정된 결말

 

 

 

초강경 율법으로 공포정치 펼친 탈레반···

예상보다 빠른 카불 점령
인권 암흑시대 재현 공산···

스스로 돕지 않는 나라 돕는 것은 '한계'

 

 

 

【 청년일보 】 아프가니스탄은 3800만명의 인구에 국토 면적은 우리나라의 6.5배다.

내륙 국가로 대부분이 고산지대다.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던 외세는 많았다.

기원전 페르시아 제국으로부터 시작해 알렉산더 대왕과 징키스칸도 있다. 

근현대 들어서는 영국과 러시아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역사상 어떤 제국이나 강대국도 아프가니스탄을 완전히 점령하지는 못했다.

 

그들이 점령한 곳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도시 지역일 뿐이다. 산악지대는 장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 발을 들여놓은 제국이나 강대국은 도시 지역의 저항없는 태도에 속았다가 산악지대 전사를 만나면 좌절을 겪곤 했다. 

 

이는 무엇보다 아프가니스탄의 험준한 환경에 기인한다. 아프가니스탄 동쪽은 800㎞ 길이의 힌두쿠시 산맥이 동과 서를 나누고 있다.

완전한 산악지대인 셈이다. 서쪽은 거의 사막으로 몇 군데의 강 주변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정착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 같은 거친 환경으로 아프가니스탄 민족은 지역적으로 분리된 채 종족사회로 살아왔다. 

전체 인구의 42%를 차지하는 파슈툰족을 비롯해 타지크족·하자라족·우즈베크족 등 4개 종족이 다수를 차지한다.

종교적으로는 99%가 이슬람을 믿지만 수니파(80%)와 시아파(19%)가 공존한다. 

 

파슈툰족이 아프가니스탄의 주류 세력이 된 것은 18세기 아프가니스탄 민족국가 건설을 주도하면서부터다.

아프가니스탄은 '아프간의 땅'이라는 의미인데, 아프간은 파슈툰의 다른 이름이다.

 

하지만 어느 한 종족이 전국을 통치했던 적은 없다. 종족간 갈등이 끊임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대표적인 것이 무자헤딘에 뿌리를 둔 북부동맹과 탈레반의 내전이다.

 

무자헤딘은 '성전(지하드)에서 싸우는 전사'를 의미한다. 지난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친소 정권을 수립했을 때 저항에 나선 반군 게릴라를 의미한다.

 

미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무자헤딘을 적극 지원했으며, 같은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도 동참했다.

결국 소련은 10년간 5만명에 달하는 희생자를 내고 1989년 2월 철수했다. '제국의 무덤'이란 말도 이 때부터 회자됐다.

 

북부동맹의 주력은 타지크족·하자라족·우즈베크족이다. 이들은 1996년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하자 5년간 내전을 벌이게 된다.

당시 탈레반이 장악한 국토는 전체의 4분의 3에 지나지 않았다. 탈레반은 나머지 북부 지역도 장악하기 위해 북부동맹을 공격했지만 완강한 저항에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지난 2001년 9·11 테러 직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을 선포했다.

특히 미국은 9.11 테러 참사의 배후로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를 비호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지목했다.

이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북부동맹은 탈레반을 몰아내는 주도 세력이 된다. 

 

2002년 미국은 탈레반에 대한 대규모 소탕작전을 벌인다. 하지만 이들은 험준한 남부 지역의 산악지대로 숨어버렸다. 특히 2003년 미국이 이라크와의 전쟁으로 발목이 잡히면서 기사회생한 탈레반은 2005년부터 본격적인 반격에 나섰다.

그리고 2007년 이슬람 국가 재건이라는 목표 아래 화려하게 부활했다. 

 

탈레반은 극단적인 이슬람 근본주의를 신봉하는 집단이다. 온건 파슈툰족과는 또 다르다는 얘기다.

실제 탈레반은 파슈툰족 거주 지역에 산재한 이슬람 신학교의 교육을 이수한 신학생들, 그 중에서도 전쟁 고아들이 주축이다. 

 

이들이 이슬람권 국가들마저 경악할 초강경 율법을 펼치며 공포정치에 나선 것도 어쩌면 정해진 수순인지 모른다. 

 

탈레반은 집권 당시 수니파 이슬람 이외의 모든 종교를 탄압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바미안 석굴을 파괴한 것이 대표적이다.

암벽에 조각한 석불들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했으며, 동굴 내 불화는 화염방사기로 태워버렸다.

심지어 아프가니스탄 박물관에 있는 유적들을 도끼로 박살내 사막에 갖다버렸다. 

 

이 같은 문화재 반달리즘도 인권침해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탈레반은 모든 언론활동을 중단시켰으며, TV와 라디오는 오로지 하나의 채널로 24시간 쿠란만 방송하도록 했다.

서구식 학교, 도서관, 극장은 모조리 폐쇄시켰다.

절도범은 손목을 잘랐고, 재범일 경우에는 발목을 잘랐다.

 

남성들은 수염을 자르지 말아야 했고, 면도하는 이들을 공개처형했다.

특히 의료, 교육, 법률의 권리를 박탈하는 등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다.

 

여성이 재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면 여성 변호사를 선임할 수는 있다. 하지만 여성에 대한 교육이 금지돼 있는 만큼 여성 변호사가 있을 수 없다.

또 여성의 몸은 여성만 진료할 수 있는데, 여성 의사가 있을 수 없다.

부르카를 입지 않으면 사형시키는 것은 물론 매니큐어를 칠하다 걸리면 손가락을 잘랐다. 

 

수 많은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수도 카불 인근의 공항으로 몰려든 아비규환의 장면이 펼쳐진 것도 바로 이 같은 탈레반 집권 시기의 악몽 때문이다. 

탈레반은 과거에 비해 온건해졌고 합리적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교조적 종교 신념을 토대로 수 십년 동안 큰 희생을 치르며 전쟁을 해온 탈레반이 변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인권의 암흑시대가 재현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아프가니스탄은 누구나 탐을 내는 전략적 요충지는 아니다.

영국은 중앙아시아로 진출하는 통로로 활용하려 했고, 소련은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발판으로 삼으려 했지만 사실상 계륵(鷄肋)이었다. 

 

아프가니스탄 북부 지역에 원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다고 하는데, 개발은 되지 못하고 있다.

설사 원유와 천연가스가 생산돼도 파키스탄을 거쳐 아라비아해로 이어지는 파이프라인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활용이 어렵다.

큰 대가를 치르면서 꼭 손에 넣고 있어야 하느냐는 의문이 드는 땅인 셈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엄청난 비용을 들이고도 철수를 결정한 것은 아무리 도와줘도 성과가 없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탈레반의 카불 점령이 예상보다 빠르기는 했지만 예정된 결말이었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이 자신의 나라를 지키지 못한다면 미군이 1년 더, 또는 5년 더 주둔해도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언급은 이를 핵심적으로 대변한다.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 돕지 않는 나라를 국제사회가 돕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반복되는 전란 속에서 고통받는 것은 보통 사람, 특히 여성이다.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상황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오는 이유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 

 

 

 

 

아프간의 여성들과 어린이들이 줄지어 카불을 탈출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에게 속절없이 빨리 넘어간 이유

 

 

 

전 세계는 탈레반에 점령된 나라를 탈출하기 위해 카불 국제공항에 몰려든 아프간인들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다.


지난 20년 동안의 전쟁, 6000명 이상의 미국인 인명 손실, 10만 명 이상의 아프간인 사망, 2조 달러를 넘는 미국의 비용이 들어간 전쟁이었다.

이제 아프간은 탈레반의 지배로 결론지어졌고, 아프간의 미래는 암울하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이렇게 빨리 인수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프간 정부군은 미국으로부터 890억 달러의 자금 지원과 훈련을 받았다.

CNBC가 16일(현지시간) 탈레반이 지난 2001년보다 빨리 아프간을 점령하게 된 배경을 보도했다.

분석가들은 기본적으로 정보의 실패, 더 강한 탈레반, 아프간 정부의 부패, 문화적 차이, 의지력 등이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 인지의 오류


미군 정보기관은 아프간의 상황을 파악하고 평가하는데 실패했다.
민주국방재단의 빌 로지오 선임연구원은 16일 CNBC '스쿼크 박스 아시아' 프로그램에서 "이번 사건은 1968년의 베트남전 이후 가장 큰, 비참한 수준의 인식 실패"라고 분석했다.

로지오는 탈레반이 5월 초부터 ‘최종 공격’을 시작하기 전에 장비와 자재를 미리 배치하고 조직과 세부적인 계획 아래 대규모 공세를 펼쳤다고 말했다.

미국은 현지 정부와 군이 6개월 이상 버텼어야 한다고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 전투의지의 붕괴


런던 왕립연구소(RUSI)의 잭 와틀링 연구원은 "탈레반은 지난 몇 년간 교전하면서 농촌 지역을 점령해 50%의 통치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며 "탈레반은 도시 지역에 침투해 조종사 등 주요 인물을 암살하고, 지휘관 가족을 위협하면서 항복을 유도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구하리라는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에 항복했으며 싸움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갑자기 무너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빠른 붕괴 속도는 군사 역량이 아니라 전투 의지의 붕괴를 반영했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철수를 단행한 것이 붕괴를 가속화했음은 물론이다.

바이든은 "미군은 아프간군이 스스로 싸우려 하지 않는 전쟁에 참여해 죽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탈레반이 카불에 진입하자 15일 저녁 해이로 도피했다.

가니는 카불에서의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도망쳤다고 주장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물질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군에 모든 것을 의존했다.

미군이 철수하면서 이미 승부는 끝났다는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미군의 철수가 시작된 직후부터 아프간 군대와 관리들은 탈레반을 달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 탈레반의 강한 군사력


아프가니스탄의 혼란이 미군 철수 때문만은 아니다.

탈레반은 1990년대 이후 더욱 강력해졌다.

대서양위원회의 중동 안보 담당 커스틴 폰텐로즈 이사는 CNBC의 '스쿼크 박스 유럽'에 출연해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에 이슬람 에미리트를 세우는 목표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군사적으로나 비군사적으로 훨씬 능숙해졌다"고 말했다.

미군 철수는 아프간 정부가 주도권을 상실한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폰텐로즈는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포위하고 정부군이 필요로 하는 보급선을 차단했으며, 새로운 전략을 개발하는 동안 수적으로도 크게 성장했다고 말했다.

 

 

 

 

 

 

 

탈레반 무장 세력이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 사진=로이터

 

 

 


◇ 아프간 정부의 부패와 군사적 약점



탈레반이 전면적인 군사 공격과 저항에 직면했다면, 점령은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와틀링은 "정부군이 저항했어도 결국은 탈레반이 승리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아프간 국군은 조직적으로 부패하고 효과적인 지휘와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자신의 부대에 얼마나 많은 병사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으며, 장비 대부분이 해체, 도난, 매각되어 제 기능을 못 하는 부대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아프간 군부는 정부로부터 음식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했고 급여도 지급받지 못했다.

많은 부대가 장비를 현금으로 탈레반에게 팔았고, 탈영이 빈발했다.

이로 인해 장부의 병력 숫자와 실제의 차이가 너무나 컸다.

◇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무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국의 실패는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몰이해로 귀결된다.

아프가니스탄은 서방 국가들과 너무나 달랐다.
미국의 전 정보장교는 "아프가니스탄에는 중앙 정부가 존재한 적이 없다.

 

미국이 통일 정부를 설립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고 지적했다.

"탈레반이 권력을 되찾는 것에 대해 놀라는 것은 미국이 얼마나 아프간을 이해하지 못하는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수많은 부족, 언어, 민족, 종교 종파로 이루어진 나라이며, 미국과 나토 동맹국들은 아프가니스탄을 서구적 가치를 전제로 한 통일된 민주주의로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의 부족 동맹은 때로는 국가 동맹보다 우선하고 충성은 돈과 권력을 따른다.

탈레반의 강점은 파슈툰족으로서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민족 집단에 속한다는 데 있었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국가를 지배할 능력이 전혀 없는 소수 민족의 ‘잡동사니’를 지지했다"고 그는 말했다.
2020년 초 미국이 중재한 탈레반과의 휴전 또한 아프간 정부의 이미지를 더욱 약화시켰다.

 

와틀링은 "트럼프 행정부가 주도한 협상은 아프간 정부의 지도부를 배제했다"며 "아프간 정부는 이미 지역사회의 존중을 거의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라고 말했다.

3900만 아프간 국민들은 나라의 미래를 심각하게 두려워한다.

1996년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6년 후인 2001년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하면서 처음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었던 여성들의 두려움은 더욱 크다.

미군과 연합군의 주둔으로 찾아왔던 아프간의 기본적인 자유가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조민성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mscho@g-enews.com

 

 

 

 

 

 

 

 

 

 

 

 

 

 

탈레반과의 전쟁 20년...미국에게도 '무덤'된 아프가니스탄

 

 

 

 

 

영화인지 실제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줬던 2001년 9.11 테러는 미국과 탈레반 전쟁의 서막이었다.
탈레반이 9.11 테러의 배후인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을 숨겨주고 넘기라는 요구를 듣지 않자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그리고 탈레반 정권은 한 달 만에 무너졌다.
[조지 부시 / 전 미국 대통령(2001년, 개전선언) : 미군은 제 명령에 따라 아프간 탈레반 정권의 알카에다 테러훈련캠프와 군사시설에 공격을 시작했다.]

2011년 9.11 테러 10년 만에 오바마 정부는 테러의 배후였던 빈라덴이 은둔한 곳을 파악해 급습했다.
빈 라덴을 사살하는 데 성공했다.
[오바마 / 전 미국 대통령 (2011년 5월) : 미국은 알카에다의 리더이자, 테러리스트인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는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교전 중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고 시신을 확보했다.]

미국의 심장, 뉴욕을 공격해 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빈 라덴을 처형하면서 미국은 목적을 달성했고 아프간에 주둔할 명분도 없어졌다.
미군의 희생이 반복되고 전쟁 비용도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면서 2014년 오바마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시도했다.

[오바마 / 전 미국 대통령 (2014년, 아프간 미군 기지) : 여러분들 중 많은 사람은 올해가 아프간에서 보내는 마지막 해가 될 것이다.

올해 말까지 미군의 모든 역할을 아프가니스탄 이양될 것이다.

아프간 국민이 자신들의 안보를 전적으로 책임질 것이고 우리의 전투 임무는 끝날 것이다.]

하지만 아프간 정부군으로 모든 역할을 이양하는 건 쉽지 않았다.
탈레반의 저항과 공격에 미군과 민간인 희생이 늘었고 탈레반과의 전쟁은 계속됐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 내 철군 계획은 이듬해 취소됐다.
아프간의 미군 철수를 염원한 건 오바마 전 대통령뿐만이 아니었다.

미군이 해외에 주둔하는 것이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했던 트럼프 대통령도 아프간에서 발을 빼고 싶어 했다.
그래서 특히 탈레반과의 '평화협정'을 시도했고, 지난해 탈레반과 협상했음을 선언했다.

[트럼프 / 전 미국 대통령 (지난해 2월) : 탈레반과 매우 성공적인 협상을 했다.

탈레반 지도자들과 조만간 개인적으로 만날 예정이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군 철수 계획을 발표한 지 불과 넉 달 만에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에 항복했다.
미국이 탈레반을 척결하기 위해 지난 20년간 쏟아부은 돈과 시간은 실패로 마침표를 찍게 된 셈이다.
AP통신은 아프간에서 미군 2천4백여 명이 숨졌고, 2천500조 원의 세금을 쏟아부었다고 지적했다.

1979년, 이슬람 무장세력을 진압하겠다며 아프간을 침공했던 소련도 10년 만에 소득 없이 빈손으로 철수한 만큼, 아프가니스탄은 '강대국의 무덤', '제국의 무덤'이라는 별칭이 더 공고해졌다.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YTN 강려원 (ryeowon0114@ytn.co.kr)


[저작권자(c) YTN & YTN plus 

 

 

 

 

 

 

 

카불 공항에서 아프가니스탄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비행기에 타려 하고 있다

출처 Budiey(플리커)

 

 

 

 

 

 

탈레반 아프간 점령에 내외신 “플랜B 없는 철수가 사태 키워”

 

 

 

 

 

“탈레반 점령 가능성 아주 낮아” 지난달 바이든 단언 뒤집혀
“공항 장면, 탈레반 협조로 이뤄져”…

페이스북, 탈레반 홍보 콘텐츠 금지

 

 

 

 

아프가니스탄 무장조직 탈레반이 15일(현지 시간) 수도 카불을 장악한 뒤 국내 미디어에도 해당 소식을 다룬 보도와 이미지가 쏟아지고 있다.

필사적으로 출국하려는 아프간 시민들로 아수라장이 된 카불의 국제공항 현장 관련 보도가 쏟아진 뒤 비상 대책 없이 철수한 미국 정부에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외신은 탈레반 군의 15일 카불 점령이 사실상 ‘무혈 장악’에 가까울 정도로 저항 없이 빠른 속도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탈레반이 카불에 도착한 직후 도피했다. 군의 저항도 없다시피 했다.

 

알 자지라는 이날 가니 대통령이 떠난 지 수시간 뒤 탈레반 사령관들이 대통령궁에 입성해 대통령 경호원과 악수하는 장면을 방송했다.

탈레반은 지난 열흘 간 아프간의 지방 도시 34곳 가운데 26곳을 점령했다.

일부 지역에선 탈레반이 지역 군벌과 거래를 맺으면서 갈등 없이 장악이 이뤄졌다.

소셜미디어와 언론엔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아프간 민간인 수백 명이 이륙하려는 미군 군용기에 올라타려 활주로를 달리는 영상이 퍼졌다.

미국은 아프간 철수 이후 병력 6000명을 파병해 대피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날 공항에서 최소 5명이 숨졌다.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외국의 아프간 주재 대사관도 문을 닫고 직원을 대피시켰다.

 

 

 

 

 

 

 

탈레반 사령관들이 지난 15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에 입성해 대통령

경호원(왼쪽)과 앉아 있는 모습. 사진=알자지라 유튜브 캡쳐

 

 

 

 

 

 


바이든 행정부가 아프간 철수를 결정하면서 비상 사태에 대한 대책이 전무했다는 점에 내외신 비판이 나왔다.

탈레반 장악은 미국이 지난달 8일 바이든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에서 20여 년의 전쟁을 끝나고 군대를 철수하겠다고 밝힌 뒤 이뤄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철군 발표 당시 “이제 탈레반의 점령이 불가피한가”라고 묻는 기자 질문에 “우리에겐 7만5000명 정도의 탈레반에 맞서 30만 명의 잘 갖춰진 아프간 군이 있다”며 “탈레반이 이 모든 것을 뒤엎고 나라 전체를 손에 쥐게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고위관리를 인용해 미 정부 안에서 아프간 정권이 이달 안에 붕괴할 것으로 예상한 이는 없었다고 밝혔다. 미 관리들은 지난 6월까지 아프간 붕괴 시점을 미군 철수 뒤 6개월~1년 사이로 내다봤고, 국방부는 지난주 90일로 예측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바이든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얼마나 틀렸나” 보도 갈무리

 

 

 

 


탈레반 관련 심층 보도를 해온 파키스탄 언론인 아흐메드 라시드는 16일 비영리 독립언론 ‘데모크라시나우’에 출연해 사태의 핵심은 “계획 없는 철수”라며 “미국은 아프간 내 임시정부나 연합정부에 대한 논의 등 정치적인 협의 없이 카불에서 철수하지 말아야 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군과 정보 당국이 하는 일이야말로 비상사태에 계획하는 일이다. 그런데 계획이 잘 운영되지 않으면 플랜B와 C는 무엇인지 전혀 마련해두지 않고 철수했다”며 “그리고 이제는 완전한 혼돈이 왔다”고 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외신 보도를 보면 철군 결정이 문제라기보다 바이든 대통령이 철군 이후 아프간 상황을 오판했고 대책 마련도 허술했다는 비판이 많다”며 “아프간 사태는 비극적인 9.11 테러 직후 미국이 시작한 대테러 전쟁이 얼마나 일방적이고 취약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한국일보도 “바이든 정부의 오판도 사태를 키웠다”며 “2001년 9.11 사태 한달 뒤 미국의 탈레반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은 탈레반의 재장악으로 끝이 났다”고 했다.

 

 

 

 

 

 

 

 


▲CNN 유튜브 갈무리

 

 

 

 


공항의 장면이 미국이 아프간 시민들을 탈레반에 맞서 구출하는 모양새로 묘사되지만 실상은 다르다는 지적도 나왔다. 에이미 굿먼 데모크라시나우 앵커는 “미디어에 수천 명이 군이 파병된 공항의 장면이 묘사되고, 이는 마치 (미군이) 탈레반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상 탈레반의 전적인 협조 아래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한편 소셜미디어 플랫폼도 탈레반 관련 계정과 콘텐츠 관련 방침을 서둘러 발표했다.

페이스북은 16일 탈레반을 테러 단체로 지정하고 탈레반이 올렸거나 탈레반을 홍보하는 콘텐츠를 플랫폼에서 금지한다고 밝혔다.

 

알자지라는 “탈레반의 점령은 미국 IT 기업들에 몇몇 정부로부터 테러리스트로 여겨지는 집단이 만든 콘텐츠를 다루는 데 있어 새로운 곤란을 안기고 있다”고 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6일 긴급회의를 열고 탈레반의 즉각적인 적대행위 중단과 통합정부 수립을 촉구했다. 참여연대는 17일 입장문을 내 한국 정부가 한국 기관을 도왔다 위험에 처한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의 현황을 파악하고 비자를 부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국내 거주 아프가니스탄 국적 외국인들에 대한 송환과 구금을 즉각 중단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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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불 함락 이후 기뻐하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전사들ⓒ사진=뉴시스/AP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쓸데없는 일이라는 걸 증명하는데 20년이 걸렸다

 

 

 

 

 

 

카불이 함락됐다. 그건 필연이었다. 그리고 포스트-제국주의 서방의 환상이 하나 깨졌다.

하지만 서방의 반응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재앙, 굴욕, 재앙적인 실수로 이를 묘사해도 좋다.

 

듣기에 좋기만 하면 말이다.

제국의 후퇴는 깔끔한 법이 없다.

그러나 20년이 걸리기는 했지만, 최소한 끝은 신속하지 않았는가. 이런 식이다.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제대로 하자.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아프가니스탄이 ‘테러리스트 국가’였던 적도 없었고, 미국과 전쟁을 치르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미국은 1996년에 탈레반이 러시아에 맞서며 권력을 장악할 수 있도록 지원했었다.

물론 탈레반이 탈레반의 창시자이자 최고 지도자였던 물라 오마르와 친했던 오사마 빈라덴을 아프가니스탄에 머무르게 해 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빈라덴은 9/11 이틀 전에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주의 운동가이자 영웅이었던 아흐마드 샤 마수드를 암살한 터였다.

그래서 젊은 지도자들이 물라에게 빈 라덴을 추방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파키스탄이 언젠가는 빈 라덴의 항복을 이끌어냈을 것이다.

 

2001년 침공 직후 도널드 럼스펠드 당시 미 국방장관은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탈레반을 혼내 주고 얼른 빠져 나오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부시도,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도 말을 듣지 않았다.

둘은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그들은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아무런 이익이 걸려 있지 않았던 NATO를 동원해 그게 마치 레고로 만들어지는 양 아프가니스탄의 국민형성(nation-building)에 착수했다.

 

소프트 파워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한 조세프 나이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는 아프가니스탄을 소프트 파워로 지배하는 ‘벨벳 패권’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떠들어댔고, 완전히 설명되지 않은 이유 때문에 블레어는 ‘국제 사회 독트린’을 발표하며 영국이 첫 카불 폭격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리고는 탈레반의 주 수입원이었던 양귀비 재배를 막기 위해 클레어 쇼트 국제개발 장관을 아프가니스탄에 보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는 미군ⓒ사진=미국 육군

 

 

 

 

 

나는 2006년에 카불을 방문했는데, 당시 들리는 얘기는 이미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이는 미국과 영국의 무모한 시도에 대한 욕설뿐이었다.

그때 3,400명의 영국군이 지원해 헬만드에서 무장항쟁을 하는 탈레반 ‘반군’을 진압하러 갔었다.

 

존 리드 영국 국방장관은 “탈레반의 찌꺼기만 남아 있기 때문에 총알 하나도 필요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고, 데이비드 리처드스 영국 장군은 그 임무가 영국이 손쉽게 점령한 후 보다 손쉽게 통치하기 위해 정부를 세웠던 “또 다른 말라야(1946~48년)”가 될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나자 패배한 영국군이 퇴각했고, 대신 미국이 발 벗고 나섰다. 결국 패배했지만 말이다. 외세에게 굴욕을 안겨주는 데에는 아프가니스탄의 파슈툰인 만한 사람들이 없다.

미국의 퇴각은 시간 문제였을 뿐이다.

아프가니스탄의 현재 상황은 끔찍하다.

 

20년간 서방의 부자 납세자들에게 의존해 온 친구들이 협박당하고 살해되는 모습이 군인과 통역가, 언론인 및 학자들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수 년 간의 지원과 훈련이 물거품이 될 판이다.

그리고 1조 달러로 알려진 미국의 돈과 370억 파운드에 달하는 영국의 돈이 낭비됐다.

 

대체 영국인들에게 얼마나 더 얘기를 해야 이해를 할까? 대영제국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고 말이다.

대영제국은 죽었다. 끝났다. 시대에 뒤떨어졌고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방금 남중국해에 항공모함을 보냈다.

영국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다른 국가를 지배할 필요도 그럴 권리도 없다.

 

그것을 위해 군인도 목숨을 내걸 필요도 없다. 아프가니스탄에서 454명의 영국 군인과 민간인이 죽을 이유는 전혀 없었다.

지금으로서 영국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아프가니스탄의 새 정부와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카불의 이웃 나라 파키스탄, 그리고 이란과 함께 말이다.

세상은 영국을 위협하고 있지 않다.

테러리즘은 국가의 지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국가의 정복으로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

 

 

 

 

 

 

 

부르카 판매하는 옷가게 지나가는 아프간 여성

(카불 EPA=연합뉴스)

 

 

 

 

 

부르카의 부활'…공포에 떠는 아프간 여성들

 

 

 

방송사 여직원들 정직에 외출·복장 제한 가시화

탈레반 귀환에 아프간 부르카 가격 10배까지 폭등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기자 =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함에 따라 20년 전 집권 시절 국제 사회의 비판을 받았던 여성 억압이 재연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1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탈레반은 아프간 국영 TV의 유명 앵커인 카디자 아민을 비롯해 여성 직원들을 무기한 정직시켰다.

 

아민은 "나는 기자인데 일할 수 없게 됐다"면서 "다음 세대는 아무것도 갖지 못할 것이며 우리가 20년간 이룬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다.

탈레반은 탈레반으로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이런 고백은 탈레반 미디어팀 소속 간부 몰로이 압둘하크 헤마드가 TV 뉴스채널에서 여성 앵커 베헤슈타 아르간드와 나란히 앉아 인터뷰하는 등 과거와 달라진 모습을 선전하는 가운데 나왔다.

 

NTY는 "이들 두 앵커의 사례는 탈레반이 나라를 장악함에 따라 아프간 여성들이 어떤 상황에 부닥칠지에 대한 불확실성과 깊은 불안감을 반영한다"며 "아프간 여성들은 억압적인 과거로 돌아갈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여성에 대한 편견은 용납되지 않겠지만 이슬람적 가치는 우리의 틀"이라면서 이슬람법을 적용할 것임을 시사했다.

문제는 탈레반의 이슬람법 해석이 2001년 미국의 침공 이전 집권 당시처럼 엄격할 것인지 여부다.

아프간 곳곳에서는 탈레반이 낡은 질서를 다시 확립하기 시작했다는 징후가 이미 포착되고 있다.

각 지역의 아프간 여성들이 탈레반의 강력한 규제를 우려해 거리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리는 부르카(얼굴까지 검은 천으로 가리는 복장)를 착용하기 시작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아프간 일부 지방의 여성들은 남성 친척이 동행하지 않는 한 집을 떠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카불 대학교에서는 여학생들이 남자 보호자와 동행하지 않는 한 기숙사 방을 나가지 못하도록 했다.

아프간 서부 헤라트에서는 탈레반 무장 괴한들이 대학 정문을 지키며 여학생들과 강사들의 캠퍼스 출입을 막았다.

 

칸다하르에서는 여성 건강 관리 클리닉이 문을 닫았다.

일부 지역에서는 탈레반이 여학교를 장악한 이후 폐쇄했다.

 

 

 

 

 

 

 

 

부르카 착용한 아프간 여성

(카불 EPA=연합뉴스)

 

 

 

 

 

일부 아프간 여성은 집을 나설 때 몸을 가리고 남자 친척과 동행해야 한다는 탈레반의 엄격한 규칙을 지키려다 보니 부르카를 살 시간이 없다고 호소했다.

CNN은 "아프간 여성들에게 부르카는 지난 20년 누렸던 권리의 갑작스러운 박탈을 의미하며 이들은 이를 되찾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아프간 여성들이 갑자기 부르카를 착용하며 공포에 떠는 이유는 탈레반이 1996∼2001년 집권 당시 이슬람 샤리아법(종교법)을 앞세워 엄격하게 사회를 통제했기 때문이다.

당시 아프간 여성은 취업 및 각종 사회 활동이 제약됐고 교육 기회가 박탈됐다. 외출할 때는 부르카까지 착용해야 했다.

한편, 인도 매체인 인디아투데이는 여성 억압의 상징인 탈레반의 귀환으로 아프간 여성들이 부르카 착용에 나서면서 카불의 부르카 가격이 10배나 급등했다고 보도했다.

 

카불에 사는 한 아프간 여성은 "나와 여동생, 어머니가 나눠 쓸 부르카가 1~2개밖에 안된다"면서 "부르카가 없으면 더 큰 스카프를 만들기 위해 침대 시트라도 가져와야 한다"고 말했다.

 

 

 

president21@yna.co.kr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를 결정했다. 사진은 지난 5월 한미회담에서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모습. (사진/뉴시스)

 

 

 

 

 

미군 아프간에서 철수...중국 압박은 강화

 

 

 

아프가니스탄서 미군 철군하자 탈레반 점령
철군한 미군, 인도·태평양 작전 투입될 수도
 
대중국 견제 움직임은 더욱 높아지고 있어
주한미군의 성격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한국뉴스투데이] 지난 5월부터 미군은 철수를 시작했고, 탈레반이 그 일정에 맞춰 아프가니스탄을 차례대로 점령했고, 급기야 수도까지 점령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완전히 장악했다.
이슬람 극단 무장세력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했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히려 휴가를 즐기는 등 여유있는 모습이다. 

제2 베트남전?

미국 내부에서는 이번 미군 철수와 탈레반의 아프간 점령을 놓고 제2 베트남전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미국에서 베트남전은 가장 치욕적인 전쟁으로 기억된다. 수없이 많은 인력과 자원을 쏟아부었지만 결국 미국은 베트남에서 손을 떼야 했고, 손 떼자마자 월맹군이 베트남 전역을 점령했다.

아프가니스탄은 베트남을 떠올리게 만든 전쟁이다.

미국으로서는 자존심이 구겨진 전쟁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 책임은 아프간에게 있다”면서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전세계 경찰국가를 자처한 미국이 이례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일각에서는 100조원 가까이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아프간 정부가 자국을 지킬 의지가 없었기 때문에 미국이 결국 손을 털고 나갔다는 평가도 있다.

미국이 아프간에 주둔하면서 얻는 실익이 없다는 점이다.

이번 일로 인해 경찰국가라는 미국은 자존심을 잃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행정부가 미군의 철수는 잘한 일이라고 평가한 것은 그만큼 다른 이유 때문이다.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를 두고 미국의 의중에 대한 궁금증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동북아 정세는 요동

미군이 철군을 했다고 해외 파병 부대가 갑작스럽게 미국으로 귀국하지는 않는다.

결국 그 부대는 다른 지역으로 배치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전선을 확대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과 태평양 전쟁으로 확대했을 뿐 그동안의 전쟁에서 전선을 확대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미군 철군은 결국 다른 지역으로의 배치로 이어진다.

즉,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철수시킬만큼 긴박한 상황이 돌아가고 있는 요인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한반도 정세 전문가들은 중국으로 파단하고 있다.

중국이 계속적으로 확장을 하면서 대중국 견제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아프가니스탄에 계속 미군을 주둔하면서 중국을 견제한다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아프간에서 미군을 철수하고 그 미군을 다른 곳에 재배치하는 등의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



대중국 견제는 더욱 커지고



다시 말하면 인도·태평양 지역 내에 미군의 역할이 더욱 커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인도·태평양 지역 내 동맹의 역할을 지금보다 더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미국은 주한미군을 북한의 위협이 아니라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는 역할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주한미군 철수와 같은 상황은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된다고 해도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오히려 한반도를 중심으로 인도·태평양에서의 미국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뼈 아픈 상황에도 불구하고 미군 철수를 하는 이유다.
미국을 현재 가장 위협하는 국가로 중국이라고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도·태평양의 역할을 더욱 강화할 것이고, 이는 우리에게도 역할을 주문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에 따른 우리 군의 역할도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전시작전권의 전환과도 연결되는 대목이다.

 

 

 

 



이주현 기자 leejh@koreanewstoday.com
저작권자 © 한국뉴스투데이


 

 

 

 

 

 

16일(현지시간) 미군들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국제공항에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내 친구들은 왜 죽었나"…'20년 전쟁' 결말에 미군도 허탈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쏟아부은 시간 20년, 돈 1조 달러(약 1170조원). 여기에 최장기 해외 전쟁을 치르는 동안, 인명 수혈도 어마어마했다.

꽃다운 젊음을 아프간에 바친 미군이 77만 5000여명이고 이 가운데 2300여명이 숨졌다.

 

여기에 맞섰던 탈레반 측 전사자는 9만4100여명(추산), 민간인 사상자도 수십만명을 헤아린다.

이렇게 20년을 끈 전쟁 끝에 아프간이 다시 탈레반 손아귀에 떨어졌다.
 
아프간인들의 ‘필사의 탈출’ 시도를 바라보는 미군들 심정은 착잡하다.

16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아프간 참전용사이자 전시 동맹자 협회 자문위원회 의장 매트 젤러는 "지난 20년이 완전히 무의미하고 헛되지는 않았는지 의아하다"며 허탈감을 표했다. 
 
그는 2008년 아프간에 배치됐다. 젤러는 "911 테러로 군에 입대했고 그 사건부터 거의 20년째 이 자리에 앉아 있다"며 "내 친구들은 무엇을 위해 죽었나, 이게 결말이면 그들의 희생은 뭔가"라고 말했다.
 젤러 역시 아프간에서 목숨을 잃을 뻔했다.

 

탈레반 전사의 손에 죽을 뻐한 위기에서 아프간 통역사 제니스 신와리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

젤러는 제니스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그가 미국 비자를 얻도록 도왔다. 그는 아프간인들이 탈출하기 위해 비행기에 기어오르는 모습을 보며 "(미국이) 완전하고 완전한 실패자처럼 느껴진다", "지금 이 시점에 내가 가치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프간 장교들 부패해…이렇게 끝날 줄 알았다"

 

 

 

16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에서 자국민 철수를 돕기 위해 공군기 아틀라스에 탑승

하는 프랑스 군인들. [AFP=연합뉴스]

 

 

 

 

 

 

뉴욕타임스(NYT)도 미군 참전용사들 소식을 전했다.

이들은 고통과 분노 속에 일부는 전쟁이 끝났다는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지리한 전쟁을 겪으면서, 전쟁의 효용에 의문을 품던 군인들도 있었다는 얘기다.
 
참전 용사 자비어 매키는 2008년 아프간 배치 당시 자신의 동료가 매복 공격을 받고 사망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리고 고위 아프간 장교들이 (미군에게 지원받은) 장비를 개인적 이득을 위해 파는 모습,

아프간 군대가 교전 중에 도망치는 모습도 봤다고 한다.
 
아프간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그는 이 전쟁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갖게 됐다.

자신도 총을 두 번이나 맞고 목숨이 위험할 뻔했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전쟁인지 의문이었다는 것이다.
 
2018년 퇴역하고 플로리다에 살고 있는 그는 "(전쟁으로) 여전히 아프다.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많은 것을 희생했고, 매년 죽음을 봤다. 함께 복무한 사람들은 아마 이렇게 끝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다만 "이런 식의 혼란 속에 전쟁이 끝난 것은 우리를 화나게 한다.

우리가 (그들에게) 모든 것을 준 후에 명예롭게 떠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2012년 퇴역한 공군 대령 진저 윌리스는 "아프간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NYT에 말했다.

그는 복무 당시 미국이 아프간을 진정시키려는 노력이 성공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탈레반이 아프간을 점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그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15일 오전 뉴스를 보다 TV 채널을 돌렸다는 그는 "정말 가슴이 아프다"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이대로 끝나는 것이 싫지만, 아프간 군대가 탈레반에 대항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더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16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미군 C-17

수송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를 따라 이동하자 탑승하지 못한 아프간 시민 수백 명이

수송기를 따라 내달리고 있다. 카불 AP=연합뉴스

 

 

 

 

 

 

아프간 다음은 대만"… 미국 영향력 줄이기 나선 중국

 

 

 

中, 탈레반 아프간 장악 '미국의 실패' 규정
중국군, 대만 인근 해역·공역서 합동 훈련

 

 

 

 

중국이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을 ‘미국의 실패’로 규정하고, 대만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17일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즈는 사설과 전문가를 인용해 “아프간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함락시킨 것은 1975년 베트남전에서 함락되고 미국이 자국민을 긴급히 대피시킨 일을 연상시킨다”며 “이는 대만에 큰 충격을 줬고, 대만의 운명에 대한 모종의 전조인가”라고 물음을 던졌다.

 

글로벌타임즈는 “아프간의 지정학적 가치는 대만보다 절대 낮지 않지만, 너무 큰 비용이 들기 때문에 미군이 철수하는 것으로 미국은 헤게모니 유지를 위한 더 나은 방법을 찾고 있다”며 “대만이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처럼 미국이 버릴 다음 ‘체스의 말’이 될 것”이라고 직격했다.

 

신문은 “대만의 일부 인사들이 대만과 아프간은 다르며 미국이 대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혼자만의 착각’”이라며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에 맞서기 위해 대만이라는 섬에 얼마나 지불할 의향이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만의 입장이 아프간과 다르다는 의견도 있지만, 부인할 수 없는 공통점은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것”이라며 “미국이 아프간에 지원을 보장한 지 한 달도 안돼 철수가 이뤄졌는데, 대만의 미래도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런민대 진찬룽 교수는 “대만 정부는 미국의 아프간 실패 우려를 축소하려고 할 것”이라며 “미국의 철수는 미국이 동맹을 돌보지 않고 자국의 이익을 언제나 우선으로 챙긴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또 외교부 화춘잉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8·17 미중 공동성명(코뮤니케) 39주년 즈음해 공동성명 약속에 입각해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 등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화 대변인은 미국을 향해 “실질적 행동으로 ‘하나의 중국 원칙’과 미중 공동 코뮤니케 3건의 규정을 준수”하라면서 “미국과 대만의 공식 교류를 정지하고, 미국과 대만의 군사협력과 무기 매매를 정지하고, 대만독립과 분열활동에 반대”할 것을 촉구했다.

 

화 대변인이 거론한 미중 공동 코뮤니케 3건은 1972년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의 방중 계기에 작성된 미중 공동성명(2·28 공동성명·상하이 코뮤니케)과 1979년 양국 수교 공동성명, 대만관계법을 둘러싼 갈등을 미봉한 1982년 미중 공동성명(8·17 공동성명) 등을 의미한다.

 

미국은 8·17 공동성명에서 대만에 판매할 무기의 성능과 수량에서 중미 수교 이후 몇년간 제공된 수준을 초과하지 않을 것과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를 점차 감소시킬 의향이 있다는 점, 일정 시간이 경과한 뒤 최종적 해결을 이끌어 낼 것 등을 공언했다.

 

그러나 미국은 1979년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기로 하는 등의 내용을 담아 입법한 대만관계법의 법적 지위가 미중 공동성명에 우선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중국군은 이날 대만 인근 해역과 공역에서 합동 실전훈련을 벌였다.

 

스이 동부전구 대변인은 동부전구가 작전함정, 대잠초계기, 전투기 등을 동원해 대만의 서남쪽과 동남쪽 등 주변 해·공역에서 실사격 등 실전 훈련을 벌이며 합동 작전능력을 점검했다고 밝혔다.

 

스 대변인은 “최근 미국과 대만이 잇따라 도발을 감행하면서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파괴해 대만 해협의 안보에 최대의 위험 요소가 됐다”며 “외부세력의 간섭과 ‘대만 독립’ 분열세력의 도발에 대한 엄정한 대응”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동부전구는 전쟁 대비 훈련을 지속해서 강화할 것이며 모든 '대만 독립'분열 활동을 격파하고 국가 주권과 영토 보전을 확고히 수호할 의지와 능력이 있다”고 밝혔다.

 

 

 

 

 

베이징=이귀전 특파원 frei5922@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 대변인인 자비훌라 무자히드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후 이날 첫 공식 기자회견을 가진

무자히드 대변인은 아프간 전쟁은 종료됐다고 선언했다. /AP 연합뉴스

 

 

 

 

 

탈레반이 접수한 아프가니스탄

 

 

 

아프가니스탄 정부 지도층 부정부패와 권력층 내부분열 지속
국가안보 관련 문제 만큼은 국익 최우선으로 한 목소리 내야
중국, 탈레반과 외교 회담, 중앙아시아 역학 구도 주목할 필요

 

 

[굿모닝경제=이상배 외교/안보 정책연구위원] 2001년 9월11일 19명의 아랍인들이 미국 민항기 4대를 납치해 초대형 테러를 저질렀다.

알카에다 조직원이었던 이들은 아메리칸 항공과 유나이티드 항공편을 세계 무역센터에 강제로 충돌시켜,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 전원과 무역센터 종사자, 납치범을 포함 2996명이 사망한 믿기 어려운 대형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이후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탈레반에게 테러의 주범이자 주세력인 오사마 빈라덴 인도와 알카에다 축출을 요구했다.


하지만 탈레반은 빈라덴이 9·11 테러에 개입한 증거가 있음에도 그 요구를 거부하자 마침내 2001년 10월 7일 영국과 함께 ‘항구적 자유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게 되었다. 이 작전은 종국적(終局的)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알카에다를 해체하고,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는 것이 목표였다. 

전쟁이 진행되며 아프가니스탄 내전에서 탈레반과 맞서 싸웠던 북부 동맹이 합세하고, 2003년 8월부터는 NATO 국제안보지원군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2003년 말 NATO 국제안보지원군이 지휘권을 인수하며 대부분의 병력은 NATO 회원국 군인들이었으며, 그밖에 43개국에서 파병된 병력으로 구성되었다.

2011년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과 국제안보지원군에서 활동하는 외국군은 14만명에 이르렀는데 이들 중 10만명이 미군이었다.

2011년 5월1일 미국의 특수임무부대인 네이비 실(Navy SEALs)이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서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했지만 결과적으로 5만여명 이 전쟁에서 사망했다. 

2014년 12월 미국은 작전종료와 잔여병력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다고 선언하면서 NATO 역시 공식적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국제안보지원군 지휘권을 종료했고,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모든 권한을 인계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국면 속에 탈레반 세력은 더욱 강해지면서 사태의 해결이 더욱 어려워졌고, 미군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게 되자 철수하지도 적극적으로 싸우지도 않는 모습이 연출됐다. 

2017년 5월 이후에는 1만3000명 아프가니스탄 주둔 외국군이 철수에 관한 공식적인 계획 없이 남아있게 됐다.  

급기야 2020년 2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이후 바이든 대통령은 5월 1일 미군의 철수방침을 발표했으며, 7월2일 가장 규모가 큰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철수를 개시했다. 

이렇게 미군이 철군하기 시작하자 무장반군 탈레반이 공세에 나섰고 주요 도시가 차례로 함락되면서 지난 15일(현지시간) 수도 카불까지 탈레반이 접수를 하게 되었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인수했다”는 보도 자료.

[사진=알자지라 페이스북 캡쳐]

 

 

 

 

 


이로써 아프가니스탄은 20년 만에 다시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의 나라가 됐다.

압둘 사타르 미르자크왈 아프간 내무부 장관은 “과도 정부에 평화적인 권력 이양이 있을 것”이라며 탈레반에 사실상 항복을 선언했다.

아프가니스탄군이 탈레반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모습에 외신들은“미래가 점차 불확실해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분명해지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독자적으로 싸울 수 있는 군대를 키우려 20년간 최소 740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되는 천문학적인 전쟁비용과 2400여명이 사망했음에도 결과적으로 탈레반을 축출하지 못했기에 실패한 점”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필자는 아프가니스탄 정부 지도층의 부정부패와 아프가니스탄 권력층의 내부분열이 지속된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는 판단이다.

과거 남베트남이 망해가는 모습과 너무도 흡사해 더욱 그렇다.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는 한반도 안보상황에 비춰보자면 많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한미동맹을 비롯한 국가안보와 관련한 문제 만큼은 국익을 최우선하여 한목소리로 대비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지난 7월28일 탈레반의 2인자로 알려진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를 중국으로 불러 회담을 진행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왕이 외교부장은 이자리에서 “중국은 아프가니스탄의 최대 이웃으로 주권독립과 영토의 완전성을 존중하며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며 “탈레반이 모든 테러 단체와 철저히 선을 긋고 지역의 안전과 발전 협력을 위한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슬람 근본주의인 텔레반이 중국 내 이슬람지역의 자치와 독립을 요구하고 있는  신장위구르족과 손을 잡고 불을 지필 가능성이 농후하고, 신장 위구르족과 탈레반 모두 수니파라는 점을 잘 살펴봐야 한다.

특히 중국은 '일대일로' 전략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지정학적 요충지인 아프가니스탄의 영향력 또한 고려하고 있다. 

향후 아프가니스탄 중심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역학 구도가 어떻게 그려질지 관심있게 지켜 볼 일이다.

 

 

 

 

 



이상배 외교/안보 정책연구위원 sangbae0302@kpinews.co.kr



 

 

 

 

 

 

16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공항에서 미군의 C-17 수송기가 이륙을 위해

이동하자 탑승하지 못한 아프간 시민들이 수송기를 따라 내달리고 일부는 비행기에

매달려 있다. 카불/A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