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나라가 아프간 권력 변화를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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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아프간 전역의 양귀비 재배는 급감한 건 사실이지만, 이후 탈레반이 장악한
일부 지역에서는 재배량이 증가했다 사진 출처,GETTY IMAGES
[가즈니(아프가니스탄)=AP/뉴시스] 탈레반 전사들이 15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가즈니 주지사 관저에서 탈레반기를 게양하기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카불(아프가니스탄)=AP/뉴시스]무장을 한 탈레반 소속원들이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트럭 뒤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2021.08.31.photo@newsis.com
탈레반 아프가니스탄, 운명의 갈림길에 서다
아프간 내전과 전쟁은 오래 된 것이다.
대영제국이 인도를 지배하던 시기에 영국과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 지역을 완충지로 설정하고 영국은 북진하지 않으며 제정 러시아는 남진하지 않는다는 협정을 맺었다.
아프가니스탄이 세계 제국의 틈바구니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협정은 전통적인 러시아의 남방정책에 기인한다.
러시아는 엄청난 영토를 가지고 있지만 북쪽은 북극으로 접근이 어렵고 서쪽은 영국과 프랑스 강대국이 대서양 진입을 막고있고, 동쪽은 일본과 미국 7함대가 태평양 진입을 막고 있다.
잠수함으로 나가봐야 끝없는 감시와 추적에 시달린다.
터키 보스포러스 해엽이 유일한데 조약에 따라 사전에 선박 정보를 주고 통과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지중해로 가면 나토 한대가 끝까지 감시 추적하니 작전이 불가능하다.
남쪽을 뚫어야 러시아의 세계 경영이 가능하다.
1979년 급기야 소련(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을 무력 장악했다.
그러나 9년 반의 무력점령 통치는 아프칸 이슬람 전사들 무자헤딘의 무력 저항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때 무자헤딘의 반소 무력투쟁을 주도한 사람이 사우디 아라비아 국적 빈 라덴(Bin Laden)이었다.
빈라덴은 파키스탄으로 가서 파키스탄과 아프칸 파슈튠족 이슬람전사들, 즉 탈레반들을 캠프에 모아서 훈련하고 무력 저항운동을 조직화하였다.
이때 미국 CIA서아시아 팀이 빈 라덴에게 재정 및 무기를 지원했다.
미국의 지원이 없이는 빈라덴과 탈레반이 결코 소련을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을 몰아낸 빈 라덴의 알카에다는 자기를 도와준 미국을 공격했다.
그러자 부시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에게 “빈라덴을 넘기면 공격하지 않겠다”고 했다.
당시 탈레반 최고 지도자 물아 오마르(Omar)는 거절했다.
자기들을 위해 목숨바쳐 싸운 빈라덴을 배신할 수없었다.
전형적인 이슬람 윤리에 갇혀 이후 2001년 9월 11일 미국 보복 공격으로 탈레반과 아프가니스탄은 20년 고통했다.
그러나 마침내 탈레반은 미국을 몰아냈고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했다.
9월 1일 카불은 탈레반 전사들이 쏘아 올린 축포가 밤하늘을 밝혔다. 그들은 승리에 도취했다.
소련과 미국 세계 최대강대국들을 이겼으니 이제 그 누구도 자기들을 넘보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그래서 탈레반 전사들은 국가권력을 나누려고 하지 않는다.
탈레반의 지도부는 미국 등과의 협상 과정에서 국제사회의 우려와 요구를 충분히 이해했던 것같다.
그래서 협상에 참여한 탈레반 지도부는 정상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목표로 카불 장악후 외국인 출국 보장, 기존 아프간 집권자와 참여자들에 대한 보복 금지 등을 보장한다고 선언하고 인권, 특히 여성 인권에 대해 과거처럼 안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탈레반 지도부는 카불 장악 후에는 카르자이 전 대통령 및 압듈라 압듈라 화해위원장 등 친미파 지도자들과 카불에서 새로운 정부 출범을 위해 협상을 해왔다.
탈레반 전사들은 20년 동안 미국과 그 동맹국들과 전쟁하며 싸웠다.
오랜 전쟁의 과정에서 자기 아버지가 죽고 형이 죽고 동생이 죽고 삼촌, 친구가 죽었다.
전쟁하는 전사들은 명분을 갖고 싸움을 시작하지만 좀 지나면 보복의 증오심에서 싸운다.
그리고 승리했다.
그런데 국가 권력을 적들과 나누어 갖자고 할 때 결코 동의되지 않는 것이다.
탈레반은 카불 공항 테러를 IS의 책임으로 돌리지만 그들은 서로 치열한 경쟁자이나 미국과 서방 세력에 대해서 싸울 때는 사촌이다.
아프가니스탄 IS는 다 탈레반에서 나간 탈레반 전사들의 과거 친구들이며 전우들이다.
내부 노선 갈등으로 탈레반 캠프를 이탈한 것 뿐이다.
이탈자들은 주로 비교적 젊은 청년층으로서 탈레반이 미국 군사력 앞에 너무 몸을 사리며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탈레반을 나와서 IS 호라산 지부를 만들었다.
그들은 시리아에 있는 IS 최고지도자에게 충성 맹세하고 지부로 승인을 받은 것이다.
22일(현지시간) 미국 해병대원이 아프가니스탄 카불 국제공항에서 대피하는 어린이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카불=AP/뉴시스
운명의 갈림길
탈레반은 소련과 미국을 몰아냈으니 그 승리의 유산을 내세워 국제사회에서 자존감을 지키며 정상국가로 발전할 수있는 좋을 기회를 얻었다.
누가 탈레반 아프가니스탄을 무시하겠는가?
그렇게 세계 강대국들과 호의적 외교관계를 구축하고 경재적 원조를 받고 일단 국가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면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 인도 파키스탄 등 주변 강대국들도 함부로 아프가니스탄을 자기 통제에 두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등거리 외교를 통해서 자립국가로 발전할 수있을 것이다.
그런데 탈레반은 무지의 종교의 프레임에 갇혀서 앞으로 절대로 올 수없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발로 차 버리고 있는 것이다.
정상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선결조건이 있다.
모든 정파가 참여하는 민주적 선거를 통해서 대통령을 뽑고 의회를 구성해야 한다.
이전 대통령과 정치 지도자들이 자유롭게 후보로 나오고 탈레반도 후보를 내야한다.
국제선거 감시단이 와서 선거의 투명성을 감시하도록 해야한다.
그러면 결과가 어떠하겠는가? 지금의 탈레반 세력은사실상 게릴라 정권이다.
승리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국민들은 1990년대 말 탈레반이 잠시 국가를 장악했을 때 얼마나 끔직한 폭정을 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탈레반 지도부는 “우리는 과거처럼 하지 않을 것이다.
여성의 직업 활동도 보장하겠다”고 선언했지만 탈레반 전사들은 정 반대 주장을 했다.
국민들은 탈레반을 믿지 못하고 다가올 암흑과 지옥의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여 해외로 나가려고 목숨을 걸고 있다.
공항이 막히자 파키스탄 국경으로 몰려드는데 파키스탄 군인들이 총을 쏘고 위헙하자 이란 산악지대 국경으로 몰려가고 있다.
탈레반 지도부와 전사들은 카불 장악 후에 분명히 보복금지와 정상국가로 나가는 로드맵을 공개 선언하고 그에 따라 행동했어야 했다.
특히 “미군 등 외국인 협력자들과 이전 정부 관련들에 대해 보복하지 않겠다.
부정 부패자들을 제외하고 기존 군인들과 공무원들을 그대로 근무하도록 하겠다.
그랬으면 공항 탈출 러시도 없었을 것이다.
탈레반 지도부는 “우리는 국가를 운영할 전문성이 없다.
보복하지 않겠으니 탈출하지 말라!”고 호소 했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지금 탈레반은 국가 행정을 할 전문가도 없고 항공기, 전투기 운전할 전문가도 없다.
급기야 탈레반 지도부는 해외 탈출해 있는 항공기 전투기 파일러트들에게 “제발 돌아와다오”라고 호소하고 있다.
탈레반이 카불 진입 후 깡패처럼 행동했으니 그들이 돌아올리가 없다.
베트남의 예를 들어보자.
베트남도 당대 제국 프랑스를 몰아냈고 미국도 몰아냈다.
과거 중국을 지배한 몽골제국도 몰아냈으니 그 자존심을 엄청나다.
필자는 1995년에 베트남을 방문하여 장관과 하노이 대학 총장을 만났 적이 있다.
그를 만나 인사하면서 “우리나라 군인들이 참전하여 배트남 국민을 어렵게 해서 죄송하다”고 하자 그들은 한결같이 과거는 다 지난 간 것이다.
우리는 반감 없다. 한국과 좋은 관계로 협력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유럽과 한국의 기업들이 베트남에 엄청난 투자를 했다.
베트남은 승리의 유산을 국가발전을 위해 선용했다.
북한은 어떤가.
북한은 결국 핵무기를 만들었다.
세계를 경영하는 미국과 유럽이 놀라고 긴장했다.
북한은 진작 핵무기를 내세워 막대한 경제적 지원을 받고 정상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리바아를 봐라.
핵무기 포기하더니 가다피는 칼맞아 죽고 리비아는 초토화됐다”하면서 고집스럽게 협상을 번번히 망치고 있다.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리비아와 북한은 다르다.
북한은 거대 국가 UN안보리 이사국 중국과 러시아와 인접국가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이 붕괴되어 난민이 자국으로 쏱아져 나오는 것을 결코 원치 않는다.
중국과 러시아가 보장하는 다국적 협상으로 나가면 된다.
그러나 북한 지도부는 왕조체제가 붕괴되는 것을 결코 원치 않는다.
국민은 수세월 굶주려도 기득권만 살면된다.
결코 통합 불가능한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변증법적 통합은 변태적이다.
거기에 사실상 세습 왕조국가 체제이니 무지의 종교 이념의 포로가 된 탈레반 정권 이상으로 무지하고 잔인하다.
탈레반 정권은 카불 공항 운영도 못해서 터키에게 민간 전문가를 보내서 공항을 운영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군대 이외에 탈레반이 정상 운영할 수있는 국가 조직은 거의 없다.
더군다나 외국 NGO들의 도움으로 국민들이 간신히 살아 왔는데 이들도 다 떠나니 국민들의 처지는 참혹하다.
미국 내 아프간 정부 재산이 동결된 상황에서 탈레반의 아프간 정부는 군인들, 즉 탈레반 전사들의 월급도 주기 어렵다.
이대로 가면 탈레반 전사들이 반발하고 일어나서 아프간은 난장판이 될 것이다.
절호의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승리자가 자만에 빠져 있으면 무서운 속도로 파멸로 가는 것이 누구나 아는 인생사의 교훈이다.
탈레반은 자기들이 어떻게 승리했는가를 깊게 생각해야 한다.
미국이 도와서 소련을 몰아냈다.
또한 남북전쟁 이래 한 번도 없는 미국 내 진영 간 피터지는 갈등, 어설픈 바이든 정부의 정책적 오류 그리고 아프간 내 미국 국가 정보원들 간 과도한 내부 경쟁과 이로 말미암은 좌충우돌이 탈레반을 승리하게 한 것이다.
*최바울/전 T국 선교사, 전 한동대 교수, 인터콥 본부장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특수부대원들이 29일(현지시간) 수도 카불 거리에서 경계
근무를 하고 있다. 카불=AFP연합뉴스
아프간, 탈레반 장악 이후 최악의 코로나 위기
美 CRS “백신 전체인구의 5% 분량… 접종도 이제 시작”
탈레반, 백신 불신·여성혐오 겹쳐
보건 담당 여성들 잇단 사임·피신
코로나 검사도 전주比 77% 줄어
탈레반 사면 약속에도 보복 자행
前정부 인사 등 억류·사형도 늘어
최고지도자 곧 대중 앞에 나설 듯
자체 정부 구성안 발표도 초읽기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에 대한 탈레반의 불신, 그리고 특유의 여성 혐오 성향 등이 겹쳐 아프간의 코로나19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보복은 없다”는 약속과 달리 탈레반 치하에서 납치, 감금, 살해가 횡행하는 가운데 그간 베일에 가려 있던 탈레반 최고지도자가 곧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30일 미 의회조사국(CRS)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군의 철군 개시 직전까지 아프간 당국의 코로나19 대응은 초기 단계에 머물렀다.
CRS는 아프간에 지난 25일까지 공급된 코로나19 백신이 120만도스로 전체 인구의 5%가량에 불과하다면서 “의료 종사자, 언론인, 교사, 군인에 대한 백신 접종이 이제야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지난 25일까지 아프간에선 15만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그중 7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보건 전문가들은 아프간의 낮은 검사율과 국가 정보망 부족으로 실제 수치는 몇 배 더 많을 것으로 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주 아프간의 코로나19 검사 규모가 전주 대비 77% 줄었다고 우려했다.
아프간의 코로나19 대응 실패는 여성에 대한 탈레반의 무차별적 공격 등과 맞닿아 있다.
CRS는 “WHO 직원을 포함해 아프간에서 보건 업무를 담당하는 여성 고위직들의 사임이 잇따랐고 상당수 여성 직원도 살기 위해 피신했다”고 지적했다.
탈레반이 전통적으로 백신 접종에 부정적이란 점도 부정적 요인이라고 CRS는 지적했다.
아프간은 세계에 몇 남지 않은 소아마비 확산 지역인데 탈레반은 과거 소아마비 백신을 배포하던 보건당국을 여러 차례 공격했다.
WHO 관계자들은 “탈레반의 보건당국 공격은 여전히 도전 과제”라며 울상을 짓고 있다.
미군의 철수 시한이 임박하며 아슈라프 가니 전 대통령 정부의 주요 인사들을 겨냥한 탈레반의 보복 압력은 갈수록 커지는 모습이다.
앞서 외쳤던 ‘용서’와 ‘사면’은 공염불이 된 지 오래다.
전날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가니 정권에 복무한 주요 지도자들과 공무원들이 억류되고 심지어 사형을 선고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달 중순 하지 물라 아차크자이 바드기스주 경찰청장이 탈레반에 의해 처형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물라 청장처럼 보복 대상 리스트에 올라 억류된 인물은 10여명으로 추정된다.
여기엔 지방자치단체장, 경찰서장, 정보기관 요원 등이 포함돼 있다.
탈레반 지도부가 납치, 구금, 살해 등 보복의 규모를 얼마로 정했는지는 미지수다.
다만 탈레반이 2주 전 카불을 장악하며 국가안보국(NSD)과 통신부 건물에 침입해 기밀서류를 찾아낸 만큼 보복을 이행할 준비는 확실히 한 것으로 보인다.
관료 두 명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문서 파기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수천 건의 기밀문서와 급여 목록이 탈레반 손에 넘어갔다.
교황 “아프간 상황 우려” 29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시국 성베드로 광장과
면한 집무실에서 주일 삼종기도를 진행하고 있다.
바티칸시티=AFP연합뉴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퍼트리샤 고스먼 아시아 담당 부국장은 “탈레반이 매우 위협적으로 가니 정부 인사들을 색출하고 있는 것 같다”며 “다만 전국 단위의 보복은 아직이며, 개인적 수준에서 보복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군 철수와 함께 탈레반의 자체 정부 구성안 발표도 임박했다.
내각 구성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가운데 그간 은둔해 온 탈레반 최고지도자 히바툴라 아쿤드자다가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탈레반 측은 “아쿤드자다는 곧 대중 앞에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영, 이지민 기자 sisleyj@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더위와 기다림에 지친 아프간 여성과 아이들
아프가니스탄 난민들, 탈레반 피해 파키스탄으로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후 많은 이들이 공포에 떨며 고향을 떠났다.
현재 관심이 카불 공항에 집중되고 있지만, 다른 수천 명의 아프간 주민들은 차만 스핀 볼닥 국경 검문소를 넘어 파키스탄으로 피난했다.
BBC 슈마일라 재프리 특파원이 이들을 만나 사연을 들어봤다.
아프간 남동부 칸다하르주 국경지점인 '차만 스핀 볼닥'은 아프간에서 가장 혼잡한 국경 지역이다.
매일 수천 명의 무역업자와 여행객들이 이 먼지투성이 사막지대를 통과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탈레반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수천 명의 난민이 이곳을 통과하고 있다.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어깨에 짐을 짊어진 남성들, 부르카를 입고 남편을 따라 바쁘게 걸어오는 여성, 엄마에게 매달려 온 아이들.
이들은 찌는 듯한 더위에 지쳐 있으며, 환자들은 심지어 손수레에 실린 채 이동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 집을 습격할 것'
소수민족 하자라 출신의 여성 비비(56, 가명)를 만났을 때 그는 파키스탄 국경을 막 통과한 상태였다.
하자라 공동체는 과거 탈레반에게 핍박을 받았고, 최근 일부 하자라 남성들에 대한 무자비한 테러가 발생함에 따라 탈레반 정권에 대한 두려움이 다시 증폭되고 있다.
비비에게 안부를 묻자 그는 "가슴이 (고통으로) 타오른다"며 흐느꼈다.
영국계 회사에 다니는 비비의 아들은 아직 아프간을 떠나지 못했다.
비비는 이미 몇 년 전 하자라 공동체를 겨냥한 탈레반의 폭탄 테러로 며느리를 잃었다고 말했다.
그는 "(며느리가 죽은 후) 너무 허망해서 오랫동안 불면증에 시달렸다"며 "탈레반은 끔찍한 사람들이고 나는 그들이 무섭다"고 말했다.
아프간과 파키스탄을 가르는 '스핀 볼닥(하얀 사막)' 국경지대
사진 출처,PLANETLABS
파키스탄에 도착하기 전, 비비는 아프간의 여러 지역에서 온 24명의 하자라 여성과, 아이들과 함께 국경의 작은 임시 캠프에 수용됐다.
비비는 두 딸, 외손녀와 함께 수도 카불을 떠났다.
이제 집이 없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외손녀는 인터뷰하는 비비의 무릎에 앉았다.
비비는 손주의 어깨를 부드럽게 주무르며 "우리 집, 놔두고 온 물건들은 신경 안 쓴다.
아들과 손녀가 걱정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어디로 갈 수 있나? 무엇을 할 수 있나?"라고 반문하며 "내 손으로 이 아이의 엄마를 땅에 묻었다.
아이들을 키우려면 많은 노력과 사랑이 필요하고, 나는 또 다른 상실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시아파 무슬림 여성 자르미니 베굼(60)도 다른 여성들과 함께 이곳에 도착했다.
과거 탈레반은 아프간의 시아파 무슬림들을 공격한 이력이 있다.
베굼은 자신의 무슬림 공동체가 탈레반의 카불 장악 뉴스를 들었을 때 아프간을 떠날 수밖에 없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손수레에 실린 채 피난하는 노인과 환자들
베굼은 "우리는 탈레반이 다시 테러를 가할까 봐 두렵다"며 "그들은 우리의 집을 급습할 것이다.
탈레반은 이미 정부 관계자들을 찾고 있다.
우리는 폭탄 테러가 언제든지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불안한 미래'
국경에 도착한 사람 중 다수는 자신들의 미래가 불확실해졌다고 느끼는 아프간의 젊은이들이다.
카불에서 영어강사로 일한 무하마드 아메르도 그중 하나다.
아메르는 카불이 얼마나 빨리 함락됐는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믿을 수 없었다"며 "솔직히 말해 우리는 탈레반이 하룻밤 사이 카불 전체를 장악할 줄은 몰랐다.
단지 앞으로 학교와 교육이 어떻게 될지 두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지만, 현 탈레반 체제의 아프간에 자신의 미래는 없을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아메르는 "스스로 결정하는 인생을 원하고, 자유를 원한다.
따라서 아프간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카불의 학생 자말 칸이 느끼는 감정도 아메르와 비슷하다.
칸은 "누구나 집에서 살기를 원하지만 우리는 아프간을 떠나야만 했다"며 "우리는 파키스탄 등 외국으로의 이주에 대해 행복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겐 아무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다른 이들은 탈레반 체제 아래 살아남을 가망이 없다고 말했다.
칸다하르에서 온 노동자 오바이둘라는 "기업들이 파괴되고 정부도 없고 경제도 완전히 엉망"이기 때문에 파키스탄으로 피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칸다하르의 상황은 정상이지만 일자리가 없다"며 "취직하려고 파키스탄에 왔다.
아마 인력거를 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탈레반은 아프간 점령 이후 아프간 주민들에게 좀 더 절제된 이미지를 보이려고 노력해 왔다.
이는 국경에서 우리와 인터뷰한 한 탈레반 병사의 태도에도 묻어났다.
그는 현재 상황이 아주 평화롭다고 주장하며 "외국 점령군이 아프간을 떠나는 즉시 아프간 국민들의 트라우마가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매일 수천 명이 스핀 볼닥 국경을 건너지만, 탈레반의 점령 이후에는 아프간으로부터의
유입이 유난히 더 많았다
그는 "이것은 오직 신뢰의 문제며, 사람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약속해온 것들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피난하는 가운데, 그들은 탈레반의 이러한 선언들이 별 의미 없다고 말한다.
아메르는 "이번에는 탈레반이 다르게 행동할지 모르겠다"며 "하지만 과거에 탈레반으로 고통받은 사람들은 아직 탈레반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프간을 탈출한다.
파키스탄은 이미 아프간인 수백만 명을 수용하고 있으며, 더 이상의 아프간인 입국을 감당할 수 없다고 밝혔다.
많은 사람들은 파키스탄이 아프간 난민들의 입국을 완전 중단시키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믿는다.
파키스탄 정부는 소련의 침공 이후 수백만 명의 아프간인들이 이주했던 1980년대와는 달리, 이번에는 국경지역에 난민촌을 설치할 것이고 아프간인들은 파키스탄 중심지까지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은 아프간인들이 차만 스핀 볼닥 국경을 통해 파키스탄으로 입국할 수 있다.
하지만 난민들은 이 창구 또한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알며, 탈출을 위해 어떤 위험도 각오가 돼 있다. 이후 앞으로 이들이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기사에 등장하는 이름은 신변보호를 위해 가명 처리했습니다.
BBC 뉴스코리아
미국이 철군하면서 탈출하지 못한 아프간인들은 탈레반에게 극도의 공포를 느끼고 있다
사진 출처,GETTY IMAGES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이 우리를 죽일 것"...
카불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 이후 지난 2주 동안 수많은 아프간 주민이 탈출을 위해 카불 공항으로 몰려들었다.
대부분 물, 음식, 화장실도 없이 며칠을 애타게 기다렸다. 이슬람국가 아프간 지부(IS-K)의 자살폭탄 공격과 잇따른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많은 사람들은 가까스로 죽음을 피했다.
미 정부 관계자들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들과 함께 지난달 31일 철군 시한 전까지 12만3000명을 대피시켰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프간 전 정부 직원, 여성 운동가, 언론인, 종교적 소수자, 성소수자 등 많은 이들은 미처 대피하지 못한 채 아프간에 남았다.
BBC는 아프간을 빠져나가지 못한 3명을 만났다. 현재 탈레반을 피해 숨어 지내는 이들의 신원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다.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한 후 나지프는 아내와 아기를 데리고 집을 떠났다.
그는 BBC에 "불행히도 나는 한곳에 머물 수 없다"며 "집을 떠나 이동 중이고 매일 위치를 바꾼다. 지금은 친척 집에 숨어 지낸다"고 말했다.
아프간 정부의 중간관리자로 일한 나지프는 탈레반과 오랫동안 얽혀 왔다.
그는 일부 농촌 지역의 주민들을 위한 대출금 감사팀에 투입되면서 곤경을 겪기 시작했다.
해당 농촌 지역은 탈레반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미국으로 대피한 이들 가족처럼 많은 아프간 난민이 제대로 된 가방조차 없이
아프간을 떠났다 사진 출처,GETTY IMAGES
그는 "감사 역할로 거의 2년간 18개 지방을 돌며 주민들을 만났다"며 "탈레반은 외국 자금을 지원받은 이 프로젝트를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일하면서 탈레반의 활동을 보고 관련 정보를 언론계 친구들에게 보냈다"고 설명했다.
탈레반은 나지프가 취재원임을 알아냈고 그의 형을 통해 "경고문을 전달"했다.
나지프는 수 차례의 경고를 무시하고 소셜미디어에서 탈레반을 직접적으로 비난하는 등 무장세력에 대한 비판 의견을 계속 표명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그가 아프간 전 정부에서 맡은 마지막 직책이었고, 이 때문에 그는 탈레반의 주요 표적이 됐다.
나지프는 "나는 사람들의 서비스 기록을 관리하는, 매우 민감한 부서에서 근무했다"며 "탈레반은 나를 체포하면 자신들이 표적으로 삼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주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그는 이웃들로부터 탈레반이 지난 2주간 최소 3번 그의 집에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지프는 "탈레반이 불과 이틀 전 아프간 전 정부를 위해 일한 7명을 살해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카불 시내를 순찰중인 탈레반 무장 대원들
사진 출처,GETTY IMAGES
그는 외국 정부에서 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방 정부로부터 공항에 나오라는 연락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운에 맡겨보기로 하고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공항에 갔다.
나지프는 "네 번이나 탈출을 시도했지만 떠나지 못했다"며 "민감한 분야에서 근무했고 목숨이 위태롭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서류도 있었지만 그 어떤 대사관 관계자들과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공항 출입구 근처에도 못 갔다"고 설명했다.
나지프는 카불에서 탈레반의 영향력이 확장되면, 이동이 힘들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는 밀수업자들에게 돈을 지불하고 아내, 아이와 함께 위험한 이동을 시도하려 준비 중이다.
그는 이것이 힘든 여정임을 알고 있다.
이동 중에 수많은 이주민들이 살해됐고, 여성들에게 특히 위험한 여정이다.
나지프는 탈레반이 주변국들의 국경을 봉쇄했기 때문에 "이 위험한 이동마저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돼 있다.
그는 "탈레반은 나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며, 내가 카불에 남으면 탈레반은 나를 찾아 죽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군 주도의 아프간 주둔 병력이 모두 철군하며 아프간의 운명은 더 알 수 없게 됐다
사진 출처,GETTY IMAGES
아흐메드도 "내 삶이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기에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수년간 언론사에서 일한 후 아프간 정부 부처의 언론 자문관을 역임했다.
그는 직접적인 살해 위협을 받지는 않았지만, 탈레반이 그가 근무했던 사무실에 침입해 그의 이름이 적힌 직원 명단 등 모든 서류를 가져갔다며 불안해했다.
아흐메드는 "탈레반이 지금 특이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향후 그들이 정부를 수립할 때 어떻게 행동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탈레반이 여전히 세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적으로 간주하는 자들을 제거"할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아흐메드는 탈레반이 일반사면을 내리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의 아내와 남동생은 그에게 아프간을 떠날 것을 권유했다.
아흐메드는 유효한 영국 비자를 갖고 있었고 지난 26일 카불 공항에 가려고 했지만, 공항에 도착했을 땐 이미 정문 바깥 도로 전체가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는 공항에 가려는 절박한 심정에 긴 줄을 피해 도로 옆에 있는 하수로에 뛰어들었다.
그는 무릎까지 올라오는 물길을 따라 걷고 있을 때 폭발음을 들었다.
아흐메드는 "폭발은 매우 강력했고, 나는 충격으로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며 "손과 얼굴에 멍이 들었고 폭탄이 터진 곳은 약 150m 거리였다"고 말했다.
이날 자살 테러 공격으로 미국과 서방 주요국가의 대피 수송 작전은 중단됐고, 미군 13명을 포함해 170 명이 사망했다.
아흐메드가 휴대전화로 찍은 동영상은 버려진 가방과 신발 위로 시체가 나뒹구는 장면을 그대로 보여줬다.
남동생이 그를 데리러 왔고 그는 몇 시간 후 집에 도착했다.
아흐메드는 아프간 전 정부에서 언론 담당관으로 일한 12명이 항공기를 타고 외국으로 대피했다고 말했다.
아흐메드는 최대한 빨리 떠나길 원한다.
그는 민간 항공기가 언제 카불 공항에서 운항을 재개할지 알 수 없기에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에서 자신의 운을 시험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는 "끔찍하다"라며 "탈레반은 지나가는 차들을 세우고 모든 사람을 점검하며 주민등록증 제시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로부터 연락을 받은 파르바나는 아프간을 떠나기 위해 급히 카불 공항으로 향했다.
그는 "남편이 외국군에서 일했기 때문에 나도 위험에 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파르바나는 현재 아프간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파르바나는 아프간에 주둔 영국 군대에서 통역사로 일한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몇년 전 영국으로 이주했고,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한 후에야 아내가 영국으로 올 수 있는 허가를 받아냈다.
하지만 파르바나는 비자를 받지 못했고 이제 목숨이 위태롭다는 공포를 느낀다.
캐나다에서 열린 아프간 대피 수송을 촉구하는 집회
사진 출처,GETTY IMAGES
그는 "카불의 외국 대사관들은 폐쇄됐다. 영국 정부는 어떤 재정착 계획을 갖고 있느냐?"고 반문하며 "제3국으로부터의 재정착이 어떻게 진행될지도 모르겠다.
상황이 너무 나쁘고, 절망적이다.
나는 영국에 갈 수 없다"고 말했다.
영국은 지난달 14일부터 1만5000명 이상을 대피시켰다.
하지만 파르바나는 영국으로 떠난 대피 행렬에 끼지 못했다.
그는 "6일 밤낮을 기다렸지만 결국 대피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 또한 "사람이 너무 많았다.
나는 먼지 구덩이 위에 앉아 있었다.
그곳은 전혀 안전하지 않았다.
공항 안에 들어가려고 수없이 노력했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사람들이 계속 공항으로 몰려오면서 파르바나의 음식과 물도 동이 났다.
그는 "화장실이 없어서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려 했다"며 "낮에는 너무 더웠고 나는 완전히 지쳐버렸다"고 말했다.
파르바나는 화장실에 가기위해 공항을 벗어나 친척 집에 들렸다.
그는 "친척 집에서 돌아왔을 때 군중은 더욱 늘어났고 나는 이전보다 더 멀리 공항에서 떨어져 있었다"며 "공항 출입구에서 매우 먼 위치였다"고 말했다.
파르바나는 대피 수송이 재개될 경우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몰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집에 돌아왔다.
현재 거리 곳곳에 있는 탈레반의 존재 때문에 파르바나의 이동 반경은 줄어들었다.
그는 "거리가 거의 텅 비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모두 집에 머물고 있다"며 "기관총과 유탄발사기(RPG)를 든 탈레반 병사들이 거리를 순찰하며 아프간을 떠나려는 사람들을 심문한다"고 설명했다.
파르바나는 매우 보수적인 가정 출신으로 얼굴을 가리고 부르카를 입는 것에 익숙하다.
그는 현재 직업이 없고 소셜미디어를 주시하며 정보를 찾고 있다.
파르바나는 "탈레반은 보복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며 "하지만 나는 그들이 카불에서 몇 명의 군 장교들을 죽이는 동영상을 봤다. 난 그들을 신뢰할 수 없다.
미국인들이 떠난 후 탈레반은 더 많은 사람들을 찾아 죽일 것"이라고 말했다.
파르바나는 마지막 대피 수송기가 떠나버리자 희망이 사라졌고, 부디 서방 국가들이 탈레반에 압력을 가해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사람들에게 안전한 이동 경로가 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사회는 우리를 잊지 않고 당장 우리를 돕기 위한 모든 것을 해야 한다"며 "그들이 계속 시간을 낭비하면 나 같은 사람들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탈레반 깃발을 꽂은 차량이 거리로 나와 미군 철수와 아프간 독립을 축하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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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탈출을 위해 미국 수송기 C-17에 탑승한 아프간 사람들. 연합뉴스
첫 생리는 남편 집에서 하라" 탈레반은 왜 여성에 악독한가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겠다.
이슬람 율법의 틀 안에서…”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 정권을 장악한 탈레반은 전세계 여론을 의식한 듯 지난달 17일 기자회견에서 여성 인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세계 언론 대부분은 이 발언에 대해 “믿는 사람이 거의 없다”, “미심쩍다”라고 평했다.
실제로 한 아프간 여성이 부르카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탈레반에게 사살되는 일이 있었다.
10대 미혼여성이 집에 찾아온 탈레반 대원들에게 결혼을 강요 당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뉴스진행자를 비롯해 수많은 여성이 “당장 직장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라”라는 협박을 받았다는 증언이 SNS에 쏟아졌다.
아프간 시민들이 영국군이 지키는 호텔의 철조망 너머로 아기를 넘기려 하고 있다.
SNS 캡처, 연합뉴스
이틀 뒤 아프간 수도 카불의 한 호텔에선 아프간 시민들이 철조망 너머 영국 군인들에게 "아이만이라도 탈출시켜 달라"며 아기를 던지는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아프간 시민들은 아이에게 ‘혹독한 미래’가 펼쳐지리라 예상한 것이다.
탈레반은 극단적 여성 차별로 악명 높다.
과거 탈레반 치하에서 여성들은 교육 받을 권리를 박탈당했고, 직업 얻을 자유를 잃었다.
탈레반 규율을 어겼다가 채찍을 맞거나 처형당한 여성도 부지기수다.
매니큐어를 바른 여성의 손가락을 자른다거나 남자 의사에게 몸을 보이면 안된다는 규율을 들어 병에 걸려도 방치하는 등 가축만도 못한 취급을 받은 아프간 여성의 사례는 차고 넘친다.
탈레반은 왜 여성을 이렇게 대하는 걸까.
이들의 생각과 철학은 다른 이슬람 국가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 걸까.
벼락스타처럼 등장한 탈레반
인구의 99.7%가 무슬림인 아프간은 정통 이슬람 국가다. 7세기 이슬람 제국 아바스 왕조가 이 지역에 이슬람교를 전파했다.
1960년대에 공산주의가 아프간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공산주의는 이슬람교에 위협적인 존재였다.
냉전 시대 소련은 키르기스스탄ㆍ타지키스탄ㆍ투르크메니스탄 등을 공산화하면서 이웃 국가인 아프간에도 손을 뻗쳤다.
1978년 공산주의 세력의 쿠데타 이후 아프간은 지금까지 정치적 안정을 누리지 못하고
기나긴 세월을 전쟁에 시달렸다. 사진 위키피디아
마침내 1978년 공산주의 세력인 인민민주당이 쿠데타를 일으켜 아프가니스탄 왕국(바라크자이 왕조)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잡았다.
인민민주당은 대대적 사회개혁에 착수했다.
여성에게 정치에 참여할 권리와 교육을 받을 권리, 직업을 선택할 자유를 줬다.
부모 마음대로 딸을 결혼시키는 강제 결혼을 없앴다.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부르카도 벗게 했다.
이슬람교 관습을 깡그리 무시한 조치에 이슬람 세력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이슬람교도들은 공산주의 사회 개혁에 강력히 저항했다.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박현도 연구교수는 “이슬람 세계관에서 개혁은 금기사항과 다름없다”며 “전통에 어긋나는 변화를 극도로 싫어하는 집단”이라고 설명했다.
이슬람 세력은 '무자헤딘'이라는 게릴라 조직을 결성해 소련과 공산주의에 맞섰다.
무자헤딘은 지하드(성전)를 치르는 전사를 뜻한다. 사진 Erwin Franzen
이슬람 세력이 ‘무자헤딘’이라는 군사조직을 만들고 공산주의 정권에 ‘지하드(성전)’를 선포하면서 아프간은 내전에 휩싸였다.
1979년 소련은 공산주의 정권 요청에 따라 아프간을 침공했다.
미국은 소련과 싸우는 무자헤딘을 지원했다. 무기를 공급했고 군사교육을 도왔다.
무자헤딘의 끈질긴 게릴라전에 지친 소련은 1989년 철수했다.
소련 철수 이후에도 정부군과 이슬람 반군 간 기나긴 내전이 이어졌다.
그 와중 벼락처럼 등장한 세력이 탈레반이다.
탈레반은 아프간 최대 민족인 파슈툰족 말로 ‘학생들’이라는 뜻이다.
이슬람 신학교에서 원리주의(原理主義)를 받들며 공부한 학생들이다.
내전으로 집과 부모를 잃은 가난한 파슈툰족 아이들은 탈레반의 비호 아래 교육을 받고 전쟁에 투입됐다.
이들은 학교에서 이슬람 율법과 함께 사상 교육을 받으며 소련군과 공산주의를 향한 복수심을 키웠다. 당시 그들이 배운 산수ㆍ과학 등의 교과서는 미국이 공급했다.
탈레반은 총과 총알, 무기를 세면서 숫자를 익혔다.
“소련군 3명 중 한 명이 탈레반 전사에게 죽었다.
남은 이는 몇 명인가”와 같은 예제로 덧셈과 뺄셈을 배웠다.
미국에게서 제공 받아 탈레반이 사용한 산수 교과서. 탈레반 학생들은 무기로 숫자를
익혔다. 사진 미국군사박물관
소련군 철수 후 아프간엔 군인들의 횡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군인들은 통행세ㆍ자릿세 등 말도 안 되는 명목으로 세금을 걷으며 사람들을 착취했다.
탈레반은 이슬람 원리주의에 따라 이상 국가를 건설하겠다며 아프간인의 환심을 샀다.
도로를 건설했고 지역 개발 사업을 벌였으며, 군인의 고질적인 부패를 없앴다.
탈레반은 전쟁으로 지친 아프간 사람들 마음을 달래주는 ‘스윗한’ 존재였다.
1994년 10월 등장한 탈레반은 아프간 국민의 열광적 지지 속에 한 달 만에 아프간 남부 대도시 칸다하르를 장악했다.
2년도 되지 않아 수도 카불을 함락했고 이슬람 국가 건설을 선포했다.
가장 과격한 이슬람 전통을 이어받은 탈레반
탈레반은 영국의 식민지배에 저항한 파키스탄 이슬람 전통을 흡수했다.
여기에다가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의 영향을 막으며 세력을 키운 사우디 종교 이념 와하브파 사상(와하비즘)이 스며들었다.
이슬람 원리주의의 한 분파인 와하브파는 지나친 배타주의와 심각한 여성 차별주의로 악명이 높다.
탈레반의 이러한 과격한 뿌리는 정권 장악 후 곧바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탈레반은 아프간 전역을 장악하면서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엄격하게 적용하며 비인간적 처벌을 일삼았다. 살인범과 간통범을 공개 처형했고, 물건을 훔치면 손발을 잘랐다.
영화와 음악 같은 예술 활동은 하는 것도 즐기는 것도 금했다.
놀이와 여가 활동을 제한했다.
TV나 각종 미디어 시청도 금지했다.
심지어 연날리기와 체스 같은 일상적 활동도 금했다.
탈레반 치하에서 여성들은 즉결 처분으로 처형을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사진 아프간여성혁명연합
특히 여성들에게 유독 잔혹하고 엄격했다.
샤리아 자체가 여성 차별 대우를 명하고 있지만 탈레반은 정도가 심했다.
샤리아는 이슬람 경전 ‘코란’과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의 언행을 기록한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고대 경전인 만큼 추상적이어서 샤리아를 일상에 적용하기 위해선 율법학자 해석에 의존해야 한다.
샤리아 해석은 각 이슬람 국가의 관습, 부족의 풍습에 따라 다르다.
같은 이슬람 국가더라도 터키인과 아프간인의 생활 방식은 천지차이다.
여성을 인격적 존재로 보지 않는 ‘파슈툰왈리’
샤리아만으로도 충분히 여성 차별적인데, 탈레반은 여기에 한술 더 뜬다.
탈레반을 구성하는 부족인 파슈툰족의 관습법 ‘파슈툰왈리’ 때문이다.
파슈툰왈리는 고대부터 내려온 파슈툰족의 불문율로 일종의 사회 규범 역할을 한다.
친구를 환대하고 의리를 지키며, 적에게 반드시 복수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지키지 못해 부족의 명예가 실추되는 일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막아야 한다.
박현도 교수는 “탈레반이 미국의 폭격을 감수하고서라도 오사마 빈 라덴을 숨겨준 것도 친구와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파슈툰왈리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프간의 파슈툰족은 여성을 독립적 존재로 보지 않고 남성에게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 보호의 정도가 지나쳐 일말의 자유조차 주지 않는다.
파슈툰왈리의 또 하나 중요한 가르침이 ‘어떤 수를 써서라도 여성을 보호한다’이다.
파슈툰족은 여성을 독립적 존재로 보지 않고 반드시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로 여긴다.
남성의 허락 없이 여성은 밖으로 다니지 못하고 결혼도 할 수 없다.
결혼 역시 두 독립적 인간의 인격적 결합이 아니라 남성이 피보호 여성을 선택하는 행위에 가깝다.
아프간의 오래된 격언 중엔 “여성의 첫 생리는 아버지의 집이 아니라 남편의 집에서 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가족 내 여성이 이러한 규율을 어기면 파슈툰족은 가족의 명예가 실추된 것으로 여겨 여성의 목숨을 빼앗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하미드 칸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 교수는 “파슈툰족은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동생이나 형이 죽으면 그 아내를 물려받거나, 사촌끼리 결혼하는 경우도 흔하다”고 설명했다.
온몸을 부르카로 가리고 밖을 나서야 하는 아프간 여성들. 사진 AP=연합뉴스
아프간은 우리와 달리 부족제 국가로 중앙집권적 통치 경험이 적다.
국가의 사법 체계와 행정 시스템보다 부족 차원의 결정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
이 때문에 샤리아와 파슈툰왈리에 따라 부족이 내린 형사적 처벌이 집행되는 일이 잦다.
여성이 부족 명예를 실추했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부족 주민들이 임의로 여성을 살해하는 ‘명예살인’이 빈번하게 이뤄진다. 박현도 교수는 “탈레반은 이슬람교의 겉옷을 입고 있지만, 속은 파슈툰왈리의 관행에 따라 움직인다”며 “이 때문에 다른 나라의 이슬람교보다 여성에게 더욱 가혹하다”고 말했다.
아프간의 여성 인권 수준은 세계 최하위다.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성 격차 지수는 2021년 156개국 중 156위, UNDP의 성 불평등 지수는 189개국 중 169위다.
아프간에서 활동하는 현지 여성 운동기구에 따르면 부족 전통 속에 갇혀 사는 아프간 여성이 오히려 여성 인권 운동을 거부하는 일도 빈번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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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어두운 아프간의 미래
탈레반이 장악하고 있는 한 아프간 여성 인권 향상은 요원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아랍여성협회 사무총장인 리나 아비라페 박사는 “아프간 여성들은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지 않고 있다”며 “그들은 악순환에 빠진 듯한 느낌을 받으며 살아간다”고 말했다.
아프간에서 활동 중인 여성인권단체 이퀄리티 나우(Equality Now)의 야스민 하산 사무총장은 “지난 20년간 아프간 여성 인권을 높이기 위해 많은 단체가 엄청난 작업을 해온 결과 여성들이 경찰이 되었고 판사ㆍ장관이 됐으며, 국회의원을 배출했다”며 “하지만 탈레반 집권 후 이런 노력은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였다”고 했다.
그나마 아프간인들은 카불 북부의 도시 판지시르에서 시작된 저항군 ‘민족저항전선’의 반격에 기대를 건다. 무자헤딘의 지도자이자 판지시르의 사자라고 불리던 아프간 전쟁 영웅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아들이 저항군을 이끌고 탈레반에 맞서고 있다.
박현도 교수는 “외부의 도움 없이 저항군의 힘만으로 탈레반을 물리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 아프간을 둘러싼 여러 나라가 아프간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어 외부의 개입에 따라 변수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정봉 기자 mole@joongang.co.kr, 영상=김지선·정수경·이세영 PD, 김지현·이가진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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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라프로즈 에프테카르의 모습. 인스타그램 캡처
본색 드러낸 탈레반, 첫 고위직 여경찰 돌로 잔혹히 팼다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장악한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여성 인권을 보장하겠다고 전 세계적으로 알린 가운데 탈레반 조직원들이 경찰 고위직을 지낸 여성을 집단으로 구타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포스트 및 영국 데일리 메일 등에 따르면 아프간 내무부 범죄수사 차장을 지낸 굴라프로즈 에브테카르는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탈레반으로부터 잔혹한 구타를 당했다고 말했다.
굴라프로즈는 아프간에서는 처음으로 경찰 고위직에 오른 여성으로, 많은 아프간 여성들의 롤 모델이 됐다고 한다.
그는 방송 및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서 여성과 아동의 권리를 주장해 왔고, 이슬람 극단주의 등에 맞서왔다.
그러나 지난달 15일 탈레반이 아프간 수도 카불을 장악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굴라프로즈 또한 생존을 위해 아프간을 탈출하고자 했다.
그는 수도 카불의 국제공항 인근에서 물도 식량도 없이 닷새를 보내며 탈출 기회를 노렸다.
굴라프로즈 에프테카르의 모습. 인스타그램 캡처
굴라프로즈는 외신에 “나와 내 가족을 구하기 위해 여러 나라의 대사관에 연락을 취했지만, 모두 소용없었다”고 밝혔다.
굴라프로즈는 당시 공항에 주둔하고 있던 병사들에 도움을 청했지만, 오히려 시내로 내쫓겼다고 주장했다.
굴라프로즈는 다시 한번 공항으로 이동해 탈출하려 했지만, 탈레반 조직원들이 막아섰다.
굴라프로즈는 “탈레반 조직원들은 주먹과 무기, 군화, 심지어는 돌로 나를 때렸다”며 “맞고 나선 일어설 수 없었고, 말을 할 수조차 없었다”고 호소했다.
굴라프로즈는 앞서 탈레반으로부터 자신의 직업에 대해 경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굴라프로즈는 “탈레반은 내게 경찰에서 일해선 안 되고, 여성의 인권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고 전했다”며 “왜 SNS에 사진을 올리는지도 물었었다.
이젠 그들이 힘을 가졌다”고 탄식했다.
그러면서 “탈레반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라며 “그들은 여성이 일하거나 공직에 참여하고, 자유로워지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탈레반은 여성들이 이슬람 체계 내에서 교육, 보건, 취업 등 모든 권리를 갖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여성 인권 탄압 사례는 언론 등을 통해 계속해서 보도되고 있다.
실제로 아프간 여성이 부르카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탈레반에게 사살되는 일이 발생했고, 조직원들과의 결혼을 강요받았다는 사례도 나왔다.
1일(현지시간) 부르카를 입은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이 수도 카불의 거리에서 걷고
있다. AFP=연합뉴스
나운채 기자 na.un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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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서 신원증명서 흔들며 탈출 지원 호소하는 아프간인들 (카불 EPA=연합뉴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려는 피란민들이 26일
(현지시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을 경비하는 미군 등 외국군을
향해 자신들의 신원증명서를 흔들며 탈출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워싱턴=연합뉴스)
아프간에 발묶인 미국인·현지인, 두려움 속 배신감까지 토로
대피 의사에도 탈출 못한 미국인 100~200명..
자격 갖춘 아프간인 수천명도 발동동
류지복 특파원 =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때 미처 대피하지 못한 미국인과 현지 조력자들이 불확실성 속에 두려움에 떨고 있다.
미국이 수도 카불 공항 주변의 테러 위험 등을 이유로 대피 시한을 연장하지 않고 지난달 30일 밤 철수를 완료함에 따라 현지에 남은 이들이 적지 않다.
미 당국은 대피 의사가 있지만 아프간에 남은 미국 시민권자를 100~200명으로 추산한다.
외신은 아프간전 때 매국에 협력한 수천 명의 아프간 현지인도 대피 자격을 갖췄지만 발이 묶이는 바람에 탈출하지 못했다고 전하고 있다.
자신을 사라라고 소개한 한 미국인은 CNN방송과 인터뷰에서 미국이 떠났다는 것을 알고 잠시 할 말을 잊었다면서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사라는 14년간 아프간에서 통역사로 일했고, 현재 대피 대상 37명과 함께 집에 머물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다른 이들과 함께 미 국무부의 지시에 따라 카불 공항으로 나가 출입구를 돌아다녔지만 공항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고 전한 뒤 "무엇을 믿어야 할 지 모르겠다"며 "그들이 우리를 누구에게 남겨뒀느냐. 항상 우리를 죽이기를 원한 사람들에게?"라고 토로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미국 영주권자인 29세의 아프간인 마이크 역시 가족 9명과 함께 카불 공항에 가 공항 진입을 시도했지만 36시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다.
그는 미국의 마지막 비행기가 떠난 뒤 돈과 희망이 거의 바닥난 채 카불 외곽의 한 호텔에 머물고 있다.
마이크 가족을 돕기 위해 노력한 미국의 한 전직 군인은 아프간 탈출자들을 축하해야겠지만 임무는 반만 끝난 것이라며 "우리는 이들을 데려올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카불 공항서 영국군에 아이 건네는 아프간 남성 (카불 AP=연합뉴스)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26일
(현지시간) 국외로 탈출하려는 한 아프간 남성이 아이를 영국군 낙하산 부대원에게
건네고 있다. [미 육군 제공]
군 통역사로 활동한 존이라는 아프간인 역시 아내, 1살짜리 아이와 함께 미국의 특별이민비자를 받고 공항으로 달려갔지만 결국 들어가지 못했다.
수많은 인파 탓에 이 비자를 보여줄 입구까지 이르지도 못했다.
탈레반이 집에 들이닥칠까 두려움 속에 산다는 존은 "나는 하루 24시간을 안에서 지낸다.
매우 힘들다"며 미국이 자신을 대피시킬 프로그램이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많은 아프간인이 배신감을 느낀다.
카불에는 분노와 실망이 있고, 나는 산산조각이 났다"고 토로하는 한 여성도 있었다.
미군이 대피 종료 마지막 몇 시간 동안에는 영주권자가 아니라 미국 여권 소지자만 공항 안으로 들여보냈다는 주장도 나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대국민 연설에서 "마감 시한은 없다"며 남은 미국인들의 대피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미 당국은 대피를 희망하는 미국인이 아프간을 떠날 수 있도록 탈레반이 보장했다고 밝혔지만, 이 같은 약속이 문제없이 준수될지에 대해선 우려가 적지 않다.
jbry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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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 국가들은 20여년간 이어진 전쟁에서 군인들을 도운 이들고 민간인을 대피시키는
대규모 작전에 착수했다 파블로 우초아 BBC 월드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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