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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사

현금이 안 보인다"…삶 속에 파고든 비대면 거래

은행

 

 

김범근기자

 

 

 

 

 

 

 

25일 금남시장 입구 [사진=박예진 수습기자]

 

 

 

 

 

현금이 안 보인다"…삶 속에 파고든 비대면 거래

 

 

기기조작 어려운 노인, '디지털 난민' 전락…

MZ세대, 현금 결제 '눈치'

 

 

 

 

 

[아이뉴스24 박예진 수습 기자]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대면 결제 기피로 현금 소지가 줄어든 한편, QR코드 인증 활성화, 각종 페이 산업 등으로 모바일 거래가 증가하고 있다. 또 접촉 후 손소독제 사용 부담, 모바일 지역화폐 이용에서 오는 편리함과 관리 비용 절감 경험이 모바일 결제 문화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전통시장서 자취 감춘 현금…2030 대부분 '모바일 결제'

 

특히 현금 결제가 비교적 많던 전통시장에서도 모바일 페이가 활성화되면서 현금이 자취를 감춘 모습이다.

모바일 페이는 제로페이와 온누리 상품권과 같은 모바일 지역화폐를 통해 더욱 확산됐다.

 

실제로 한국간편결제진흥원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판매된 모바일 온누리상품권 금액은 약 2천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3.8배 이상 상승했다.

모바일 온누리상품권은 제로페이 연계 상품권으로, 상시 10% 구매 할인율을 제공한다.

 

게다가 모바일결제가 확산되면서 온라인 플랫폼들의 간편결제 서비스가 카드사용도 대체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7개 전업 카드사의 체크카드 발급수는 6천403만2천 매로 집계됐다.

 

지난해 동기보다 255만1천 매(3.8%) 줄어든 수치다. 반면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간편결제 이용액은 하루 평균 4천492억원으로 전년 대비 41.6% 늘어났다.

특히 카카오페이, 네이버파이낸셜 등 전자금융사업자들의 이용액 비중은 45.7%로 가장 높았다.

 

실제로 지난 25일 오전 서울 금호동 금남시장 곳곳을 살펴본 결과, 대부분이 상품권이나 모바일페이로 거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금남시장의 많은 상인들은 코로나19 이후 모바일 결제를 선호하는 손님들이 더 많아졌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금남시장에서 손칼국수집을 25년째 운영하는 김경자 씨는 "코로나19 이후에는 모바일 결제 자체가 40% 정도 늘었다"며 "젊은 층이 특히 제로페이를 많이 쓴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에는 현금도 다 정확히 세무사에게 넘겨 계산하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 현금이 더 편한 건 없다"며 "손님 입장에서도 현금이 아닌 모바일로 결제하면 더 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칼국수가게 문에 붙어 있는 지역화폐 스티커 (좌), 금남시장 '네이버 장보기' 배송함

(우) [사진=박예진 수습기자]

 

 

 

 

젊은 사업자의 경우 비대면 소비가 늘어나는 환경을 이용해 온라인 플랫폼으로 판로를 확대하는 분위기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1년 전보다 25% 넘게 늘어 11년여 만에 최고 증가율을 기록했다.

특히 음·식료품과 농축수산물, 배달음식 등 음식서비스(58.7%)가 많이 늘어났다.

 

이 같은 분위기 탓에 금남시장에서 정육점을 6년째 운영하는 김정재(27) 씨는 최근 '네이버 장보기'를 비롯한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다.

김 씨는 "네이버 장보기의 경우 하루 4~5건 정도긴 해도, 배송함에 물건을 넣기만 하면 돼서 편하다"며 "지난 겨울 금남시장에서 연예인을 섭외해 진행했던 라이브 커머스 행사에서도 꽤 성과가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9월에 열릴 고기 배달 플랫폼에도 입점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일부 상인들까지 온라인 판로 확장에 나서면서 현금 결제 문화는 시장 내에서도 더 축소되는 분위기다.

 

김 씨는 "현금 비중은 전체 결제에서 20%밖에 안 된다"며 "아직은 신용카드가 70% 정도고 나머지에서 온누리상품권과 제로페이는 반반"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앞으로 모바일페이가 확대되면 편할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아직 노인층에게 모바일페이는 생소할 수밖에 없다. 판매자에게도 구매자에게도 아직 고령자에게 어렵고 익숙지 않은 모바일 거래는 넘어야 할 산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에는 교통과 같은 공적 영역으로도 현금 없는 거래가 확대됐다.

 

서울시가 10월부터 일부 시내버스를 대상으로 현금승차 폐지를 시범 운영하겠다고 지난 22일 밝혔기 때문이다. 노인들에게도 QR코드 등 모바일 결제는 목전에 다가온 과제다.

금남시장 골목 빌라에서 60년 넘게 살며 시장에서 주로 소비하는 강재순(85) 씨는 "아예 신용카드가 없다"며 "현금만 가지고 다닌다"라고 밝혔다.

 

강재순 씨 옆에 앉아 있던 친구 역시 "나도 카드 없다, 현금으로 주로 결제한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서울 시내버스에서 현금승차가 금지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냐고 묻자 "그럼 우린 앞으로 어떡하냐"고 우려했다.

 

고령인 판매자에게도 모바일 거래가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제일기름집을 20년째 운영하는 황숙자(77)씨는 젊은 손님들이 요청하는 모바일페이를 다룰 줄 모른다.

황 씨는 "(내가 계산할 줄 모르니) 젊은 손님들이 단말기에 알아서 휴대폰을 갖다 댄다"며 "요새 현금은 거의 안 들어오고, 온누리 상품권과 제로페이를 많이 쓴다"고 밝혔다.

 

하지만 모바일 제로페이를 이용할 때도 어려움은 있었다. 실시간으로 입금을 확인할 수 있는 계좌이체와 달리, QR코드로 결제하는 제로페이의 경우 2~3일 뒤 입금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편한 점으로 꼽히고 있다.

거래 내역을 확인하는 방법을 몰랐던 황 씨는 "제로페이는 돈이 들어온지 안 들어온지 제때 알 수가 없다"며 "이 때문에 매번 다 장부를 만들어놔야 해서 불편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양대 앞 카페. 코로나19 전에는 자리가 꽉 차는 경우가 많았다.

[사진=박예진 수습기자]

 

 

 

 

 

전통시장과 달리 주 고객 대상이 2030세대인 대학가 카페에선 오히려 손님들이 현금을 되도록 사용하지 않으려 하거나, 때로는 결제 전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현금을 받지 않으려는 매장들이 이전보다 눈에 띄게 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타벅스에선 2018년부터 선보인 '현금 없는 매장'의 수를 현재 국내 매장의 60%까지 늘려 운영하고 있다.

이날 방문했던 한양대 근처 '카페루보브'에서도 대부분의 손님들은 현금을 사용하지 않고 모바일이나 카드로 메뉴를 주문했다.

 

젊은 층이 많아선지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손님들도 많았다. 실제로 이곳에선 하루 30팀 중 최대 1팀 정도로 현금 결제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젊은 손님들은 신용카드와 모바일 결제에 익숙한 데다가 현금 거래 이후 손소독을 해야 하는 등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현금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이은진 카페루보브 대표는 "현금을 거슬러주는 게 상대적으로 번거롭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욱 카드나 모바일 결제를 선호하는 것 같다"며 "최근에도 한 손님이 '죄송하지만 혹시 만원권을 드려도 되냐'고 먼저 물어보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 그는 "앞으로 모바일 거래를 선호하는 고객을 위해 QR코드로 결제하는 네이버페이 서비스를 신청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가속화된 '현금 없는 사회'…곳곳서 부작용 속출

 

이처럼 현금 거래를 기피하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예를 들어 판매자들도 현금 소지가 줄면서 거스름돈을 바꿔주는 과정에서 다툼이 발생하는 등 손님과 종업원 간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또 현금이 모바일 페이에 비해 관리가 어렵다는 점에서 갈취나 분실 등 안전 우려가 작용하기도 한다.

 

이 대표 역시 3달 전 새벽 가게에 도둑이 들면서 이와 같은 상황을 경험했다.

이 대표는 "당시 시재에 있던 현금 15만원을 몽땅 도둑 맞았다"며 "앞 파전집 아주머니는 이런 도난 우려 때문에 아예 현금을 가게에 두지 않는다고 한다"고 전했다.

 

 

 

 

 

 

 

 

왕십리역 로봇 카페. 키오스크로 모든 결제가 이뤄진다. [사진=박예진 수습기자]

 

 

 

 

택시 기사들도 최근 카드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현금을 거의 가지고 다니는 일이 없어졌다.

이로 인해 가끔 손님들과 잔돈으로 마찰을 빚을 때가 많다는 이들도 많았다.

 

택시 기사를 5년 이상 했다는 이인재(77) 씨는 "하루 평균 25명의 승객 중 현금 결제하는 사람은 한두 명 정도"라며 "가끔 기본요금을 결제하는데도 5만원 권을 내는 분들이 있는데 잔돈이 없어 바꿔와야 해 기다려달라고 말하면 불만을 표하거나 다투게 되는 손님들이 꼭 있다"고 하소연했다.

모바일 결제 움직임이 가속화되면서 고령자 등 디지털 소외 계층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모바일, 카드 결제를 기반으로 한 키오스크 등 디지털 기기들의 등장으로 무인 점포가 확산되고 있지만, 많은 노인들은 기기조작에 어려움을 느껴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외식업체 중 키오스크(무인 단말기)를 사용한다고 답한 비율은 2018년 0.9%에서 2020년 3.1%까지 3배 늘었다.

게다가 많은 노인들은 키오스크에 오래 있으면 줄을 기다리는 뒷사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심리적 부담을 느끼는 경우도 많은 듯 했다.

 

지난해 9월 한국소비자원이 1년간 키오스크 이용 경험이 있는 고령소비자 245명을 대상으로 키오스크 이용 중 불편한 점을 조사한 결과 노인들은 '복잡한 단계'(51.4%, 126명)를 가장 많이 꼽았다.

또 '다음 단계 버튼을 찾기 어려움'(51.0%, 125명), '뒷사람 눈치가 보임'(49.0%, 120명), '그림·글씨가 잘 안 보임'(44.1%, 108명) 등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에 따라 성동구는 이달부터 왕십리 이마트, CGV, 왕십리역 롯데리아, 메가박스 성수 총 4개 장소에 설치된 키오스크 중 1대를 키오스크 사용에 익숙지 않은 어르신들을 위한 '느려도 괜찮아' 코너로 지정했다.

 

 

 

 

 

 

 

왕십리역 CGV 느린 키오스크(맨 오른쪽) [사진=박예진 수습기자]

 

 

 

 

같은 날 방문한 왕십리 CGV의 경우 '기다림선 표시'와 '큰 안내판'을 사용한 '느린 키오스크'가 눈에 띄었다. 간혹 '느린 키오스크'에 관심을 보이는 노인도 있었다.

하지만 이날 왕십리역 롯데리아에 있던 3대의 키오스크 중 맨 앞에 위치한 '느린 키오스크'는 따로 찾지 않는 이상 잘 보이지 않았다.

 

점원은 "원래 큰 안내판이 있었는데 지금은 배너 정도로 축소했다"며 "특별히 어르신들이 '느린 키오스크'를 더 이용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 지자체에서 '키오스크 체험존'을 중심으로 여러 시도가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 노인들이 디지털 사각지대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갈 길이 멀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코로나19 여파로 비대면 거래가 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노인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거래 교육이 더 활발히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제는 노인의 경제적 빈곤만이 문제가 아니라 '디지털 빈곤'도 심각한 문제로 봐야 한다"며 "디지털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만 몰입될 것이 아니라 소외 계층들이 잘 소화하고 따라올 수 있도록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예진 수습 기자(true.art@inews24.com)

 

 

 

 

 

 

서울 시내 한 은행의 대출 창구 모습.© News1 김진환 기자

 

 

 

 

은행 영업점 다 사라질라'…시중은행, 비대면거래 비중 80% 육박

 

 

 

주요 시중은행 예·적금, 대출 등 비대면 판매비중 70%~80% 달해
인터넷전문은행 도전에 맞서 시중은행 디지털전환 더욱 빨라질듯

 

 


시중은행에서 비대면 거래가 빠르게 늘고 있다.

주요 금융상품인 예·적금, 신용대출의 올 상반기 비대면 판매 비중이 최고 70%~80%대에 달했다.

10건 중 7~8건 이상이 영업점 방문 없이 비대면, 온라인으로 가입됐다는 얘기다.
인터넷전문은행의 급성장으로 금융의 디지털전환이 대세 흐름이 되고, 코로나19 장기화로 비대면·온라인 선호가 더욱 강해지면서 비대면 거래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6일 우리금융그룹의 상반기 실적 자료에 따르면 우리은행에서 올 상반기 이뤄진 신용대출 중 비대면 가입이 67.3%(신규 좌수 기준)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대면 가입 비중은 2019년 28.8%에서 지난해 55.9%로 늘어난 데 이어 올해도 급성장세를 이어갔다.

적립식예금의 비대면 비중은 지난해 84.7%에서 올 상반기 89.2%로 늘었다.

새로 개설된 계좌 10건 중 9건이 비대면 가입이었다.

2019년엔 비대면 비중이 80.7%였다.

펀드의 비대면 가입 비중도 2019년 61.6%, 2020년 78.5%에서 올 상반기 83.8%로 높아졌다.

하나은행에서도 비대면 상품 가입이 크게 늘었다.

하나은행의 올 상반기 신규 신용대출 중 비대면 비중은 건수 기준으로 88%에 달한다.

2019년 82%, 2020년 86%에서 꾸준히 증가했다.

적립식예금의 비대면 비중은 2019년 59%에서 2020년 72%, 올 상반기 74%로 늘었고, 펀드는 2019년 37%에 그쳤으나 2020년 68%로 증가한 데 이어 올 상반기 93%로 급증했다.
다른 은행들도 아직 상대적으로 비중은 적지만 비대면 거래가 꾸준히 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적립식예금 중 비대면 판매 비중이 2019년 40.3%에서 2020년 46.5%, 올 상반기 54.0%로 늘었고, 펀드는 2019년 48.3%, 2020년 50.0%에서 올 상반기 66.3%로 증가했다.
NH농협은행은 신용대출 가운데 비대면 비중이 2019년 11.5%에서 2020년 18.9%, 올 상반기 20.4%로 늘었고, 적립식예금은 2019년 19.3%에서 2020년 20.7%, 올 상반기 42.4%로 높아졌다.

은행의 비대면 거래 비중이 급증하면서, 문을 닫는 현장 점포는 갈수록 늘고 있다.

모바일과 인터넷 뱅킹 발달로 고객이 영업점을 직접 찾는 경우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영업점 수는 지난 2016년 4917개였으나, 지난해 4425개로 5년간 약 500곳이 문을 닫았다. 올해에도 약 124개 영업점이 통폐합될 예정이다.

인터넷은행과 핀테크 업체들의 도전이 갈수록 거세짐에 따라 시중은행들의 비대면·디지털 영업 전환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후승 하나금융 재무총괄 부사장(CFO)은 지난주 실적 발표 뒤 컨퍼런스콜에서 "전세대출, 리테일 상품의 모바일화를 추진 중이고, 모빌리티 등 다양한 제휴를 통해 생활금융플랫폼으로의 전환을 노력하고 있다"며 "지분 투자한 토스뱅크와도 시너지를 내서 디지털 은행을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최근 하반기 경영전략회의에서 올해 경영목표를 ‘디지털 퍼스트, 디지털 이니셔티브(Digital First Digital Initiative)’로 정하고 디지털 혁신을 가속화해나가기로 했다.

권광석 우리은행장은 “빠른 자만이 살아남는 속자생존의 시대를 맞아 디지털 혁신을 더욱 가속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jhkuk@news1.kr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은행 신규 계좌 개설 시 하루 30만원까지만 이체할 수 있도록 한 ‘한도계좌’ 제도가

소비자 불편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광화문의 한 건물 앞에 주요 은행

ATM이 나란히 설치돼 있다. 한경DB

 

 

 

 

하루 이체 한도 30만원..5천만원 찾으려면 5개월 걸릴 판"

 

 

대출규제에 다시 불거진 '금융거래 한도 계좌' 논란
대출위해 새로 튼 계좌 인출 제한
"주거래 계좌 바꾸면 풀어주겠다"


은행, 은근슬쩍 끼워팔기 영업
"대출 찾아 뺑뺑이 돌리게 하더니
내돈도 못찾게 하나" 소비자 분통

 

 


서울 마포의 한 주택에 전세로 살고 있는 직장인 A씨는 오는 10월 본인 소유의 인근 아파트에 입주하기로 하고 세입자에게 돌려줄 전세금 마련에 나섰다.

시세 15억원 초과 아파트여서 은행 대출은 불가능했다.

 

다급해진 그는 백방으로 알아본 끝에 가까스로 한 신용카드사에서 신용대출 5000만원을 받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계열 은행 계좌로만 대출금을 받을 수 있다는 카드사 안내에 그동안 거래 관계가 없던 B은행에서 새로 입출금 계좌를 개설했다.

문제는 이 계좌가 보이스피싱 방지 등을 위한 ‘금융거래 한도계좌’로 분류돼 하루 30만원만 이체가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5000만원을 다 찾으려면 5개월이 넘게 걸린다는 얘기다. 당황한 A씨가 은행 영업점 창구에 찾아가 재직증명서와 소득금액확인서 등을 내밀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자 은행원이 “신용카드 결제 계좌만 바꾸면 돈을 한꺼번에 찾을 수 있다”고 은근슬쩍 요구했다.

 

결국 A씨는 주거래은행에 연동돼 있던 신용카드 결제 계좌를 B은행으로 바꿔야 했다.

그는 “내 돈을 내가 찾겠다는데도 은행은 각종 제한을 걸어놓고 신규 영업만 유도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내 돈도 못 찾게 하나”

금융거래 한도계좌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커지고 있다.

금융거래 한도계좌는 신규로 은행 입출금 계좌를 연 소비자가 각종 증빙서류 등을 내지 못할 경우 인터넷·모바일뱅킹이나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하루 30만원, 영업점 창구에선 하루 100만원까지만 이체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제도다.

 

최근 대출 규제 강화로 주거래은행이 아닌 다른 금융사에서 대출받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이 같은 한도계좌에 걸려 불편을 겪는 소비자도 그만큼 늘고 있다.

은행들이 이처럼 한도계좌를 운영하는 이유는 ‘대포통장’과 보이스피싱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금융감독원은 2012년 은행연합회와 신규 통장 개설 시 은행이 금융거래목적을 확인하는 절차를 도입했다.

처음엔 미성년자와 외국인, 단기간에 여러 계좌를 연 사람에게만 확인 서류를 받았지만, 2015년 7월 모든 신규 계좌를 대상으로 금융거래목적 확인서를 받도록 범위를 넓혔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 명의로 각각 은행 계좌를 열어주고 1000만원씩 증여한 직장인 이모씨도 입출금 한도 때문에 은행 창구 직원과 한참 실랑이를 벌였다.

두 자녀에게 우량주식에 장기투자하도록 유도하는 ‘경제 교육’을 해줄 요량이었지만 은행에선 미성년자 계좌 이체가 하루 30만원으로 제한된다고 통보했다.

 

아무리 항의해봐도 해당 직원은 “은행 규정상 어쩔 수 없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한도 제한을 푸는 기준은 금융거래목적 확인 증빙이다.

신규로 개설한 계좌가 연금 수령, 공과금 자동이체, 모임통장, 카드 결제 등의 용도로 쓰인다는 증거를 은행에 제시하면 제한을 풀 수 있다.

 

단 미성년자 계좌는 해당 증빙을 제시하더라도 일회성으로만 풀 수 있고 그때그때 사용 목적에 맞는 새로운 증빙 서류를 갖춰 영업점을 방문해야 한다.

증빙 서류는 일반적으로 재직증명서, 근로계약서, 구성원 명부(모임통장의 경우), 공과금 납입 영수증 등이지만 은행마다 기준이 제각각이다.

 

일부 은행은 ‘영업점 창구 직원 혹은 지점장의 판단’으로 한도 제한을 풀어주기도 한다.

이런 탓에 한도계좌가 은행 마케팅에 이용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대출금을 받는 입출금 계좌나 신용카드 결제 계좌를 당행이나 계열 은행 계좌로만 지정하도록 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한도 제한 규제를 마케팅에 활용”

 

그나마 5대 은행 중에서는 하나은행이 다른 은행에 비해 한도 제한을 푸는 데 덜 인색하다는 게 소비자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하나은행은 ‘적금 및 청약 최소 10만원 이상, 펀드 3개월 이상 납부 명세’ 등을 내면 제한을 풀어주고 있다.

은행 창구 직원의 ‘재량’ 측면에서도 비교적 융통성이 크다는 평가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들의 문턱은 더 낮다. 직장인이라면 계좌를 여는 즉시 손쉽게 한도 제한이 풀릴 수 있다.

스마트폰을 통해 은행이 건강보험납입증명원 등의 소득증빙 서류를 자동으로 긁어가기(스크래핑) 때문이다.

 

대학생은 등록금 납입증명서를, 주부라면 해당 월 포함 2개월간의 통신비 납입 확인서를 사진으로 찍어 내면 해제할 수 있다.

케이뱅크 관계자는 “지점이 없는 은행 특성상 서류가 확인되면 2~3영업일 후 제한을 풀어주고 있다”고 했다.

 

은행들은 “금융당국이 대포통장, 보이스피싱 계좌에 대해 금융사를 제재하고 있어 한도계좌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금융사고에 대해 ‘문턱만 높이면 되겠지’라며 규제를 만든 정부와 ‘책임만 회피하면 그만’이라는 은행의 태도로 인해 소비자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소비자 불편을 오랫동안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금융전문 변호사는 “금융거래를 제한해 금융사기를 예방한다는 일차원적인 규제와 금융사 태도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분통 터지는 한도제한계좌? 금융당국을 위한 변명

 

 

 

30만원 이체 제한에 불만 증폭...신규 개설 서류도 제각각
'보이스피싱' 첫 감소..."소수의 큰 피해 막기 위해 다수의 인내 필요"

 

 

 

[FETV=권지현 기자] #30대 직장인 K씨는 A은행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개설한 계좌가 소액 이체만 가능한 한도제한계좌여서 불편함을 느끼자 일반 입출금계좌로 변경하기 위해 영업점을 방문, 직원으로부터 재직증명서와 급여명세표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K씨의 상황을 들은 직장 동료는 자신이 문의한 B은행은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 한 가지 서류만 요청했다며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도제한계좌'가 금융권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시행된 지 5년이 지났지만 피로감과 불편함이 쌓이면서다.

한도제한계좌는 입출금 계좌를 새로 연 소비자가 각종 증빙서류 등을 내지 못할 경우 인터넷·모바일뱅킹이나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하루 30만원, 영업점 창구에서는 하루 100만원까지만 이체할 수 있는 계좌를 말한다.

 

서류를 제출해야 하므로 은행 앱 등을 통해 비대면으로 계좌를 개설하려면 한도제한계좌를 만드는 수밖에 없다.

한도제한계좌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급증하는 '보이스피싱'이 있다.

 

금융감독원은 2012년 보이스피싱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은행연합회와 신규 통장 개설 시 은행이 금융거래 목적을 확인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계좌가 많이 개설될수록 대포통장 등을 활용한 범죄 역시 증가할 가능성이 높아 정확한 목적을 갖춘 계좌만 개설을 허용하겠다는 뜻이다.

 

당시엔 미성년자와 외국인, 단기간에 여러 계좌를 만든 사람에게만 확인 서류를 받았지만 2015년 7월 모든 신규 계좌 대상으로 확대, 2016년도부터는 한도제한계좌로 완화·시행하고 있다.

취지는 좋지만 당장의 불편함은 소비자의 몫이다. 이를 토로하는 고객에게 '상황'을 설명하느라 영업창구 직원이 에너지를 배로 들이는 모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한도제한계좌가 소비자로부터 '원망'을 사는 요인은 크게 세 가지다.

그중 제일은 '내 돈도 마음대로 찾지 못한다'는 불편함이다.

당장 수백만원 이상을 이체해야 하는 고객에게는 소액으로 묶인 한도제한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모바일뱅킹을 통해 한도제한계좌에서 300만원을 이체하려면 10일, 영업점을 방문할 경우 3일이 소요된다. 요즘 같은 비대면·디지털금융 시장에선 더욱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한도제한계좌의 불편함을 피하고자 한도제한을 풀거나 아예 영업점에서 신규로 계좌를 만들 경우 은행마다 요구하는 서류가 제각각이라는 점도 불만이다.

 

통상 신규 계좌는 급여·법인(사업자)·모임·공과금이체·아파트관리비·아르바이트·사업자금계좌 중에서 만들어진다.

 

일반적으로 급여 계좌 개설을 위해서는 재직증명서·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급여명세표가 필요하며, 아르바이트통장을 개설하려면 고용주의 사업자등록증(사본) 외에 근로계약서·급여명세표 등의 고용확인 서류가 필요하다.

같은 은행이라도 지점마다, 심지어 한 지점 내 창구 직원마다 요구하는 서류가 다를 때도 있어 소비자의 분통을 키우기도 한다.

 

기자가 직접 서울 종로구 소재 B은행 같은 영업점에 이틀 연속 방문, 신규 계좌 개설(급여 계좌)을 위해 필요한 서류를 문의하자 전날에는 직원 O씨로부터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 다음날에는 직원 M씨로부터 재직증명서와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이 필요하다는 답을 들었다.

'실효성' 또한 소비자들이 갖는 불만이다. 한도제한계좌를 통해 과연 보이스피싱 피해가 줄었는지의 여부다. 시중은행 영업점 한 직원은 "금융당국이 한도제한계좌를 만든 데는 보이스피싱이 매일 100건가량 일어나는 상황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면서 "고객의 반응을 보면 한도제한계좌 도입 이후 보이스피싱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고객의 불만만 키운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소비자 불만에 대한 금감원의 생각은 무엇일까.

 

 

 

 

▲ 보이스피싱 피해액 현황(단위: 억원). [자료 금융감독원]

 

 

 

 

먼저 실효성 관련, 금감원이 지난 6일 발표한 '2021년 상반기 보이스피싱 피해 현황'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845억원으로 1년 전(1577억원)보다 46.4%(732억원) 줄어들었다.

1년 단위로는 지난해 2353억원을 기록, 2019년 6720억원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2019년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했으나 지난해 감소세로 처음 돌아섰다.

한도제한계좌가 '진정한' 실효성을 증명하려면 이 계좌가 도입된 2016년 이후부터 순차적으로 보이스피싱 피해액이 줄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곽원섭 금감원 사기대응팀 팀장은 "'사기'라는 범죄 관련 통계는 어떠한 상황이 변한다고 해서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를 곧바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 변수들과 이에 따른 인지가 축적돼 서서히 드러나는 경향을 보인다"면서

 

"한도제한계좌는 2016년에 본격적으로 도입됐으나 직접적인 보이스피싱 감축 효과로 이어지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린 것으로, 지난해 피해액과 올 상반기 피해액이 처음으로 줄어든 것이 이를 증명한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소액 이체 한도에 따른 고객 불편함 역시 알고 있으나 소수의 극심한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기 위해 다수의 공감대가 일정 부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곽 팀장은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소수이지만 피해 규모와 그 여파는 대중이 좀처럼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한순간에 한 가정을 파탄 낼 수도, 한 사람을 개인회생자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 보이스피싱"이라고 말했다.

 

실제 피해 사례는 이를 입증한다.

지난 2월 P씨는 딸이 자주 사용하는 문자 말투와 이모티콘까지 사칭한 보이스피싱으로 2400만원의 피해를 입었으며, J씨의 경우 지난 6월 가족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에 속아 보낸 대출금 3000만원이 대포통장 20개로 분산 이체됐다.

 

누구나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대포통장이 될 빌미를 없애는 것이 보이스피싱 피해를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이보다 피해금액이 클 경우 가정과 사람이 무너지는 경우를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한도제한을 풀어 일반계좌로 개설할 경우 구비해야 할 서류가 제각각인 것에 대해 금감원은 은행 자율성에 따른 것으로, 요청 서류가 획일적인 것에 대해 역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같은 은행이라도 지점, 직원마다 요구하는 서류가 다른 것에 대해서는 개선 가능성을 열어뒀다.

 

곽 팀장은 "이체한도와 관련 서류 목록의 경우 은행에게 자율성을 부여한 부분"이라며 "오히려 모든 은행이 같은 서류를 요구하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범죄 관련자들에게 쉽게 목록이 노출, 계좌개설을 제한하고자 하는 원래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는 뜻이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충분한 논의를 거쳐 보완해야겠지만 올해 수치로 드러났듯이 현재로서는 보이스피싱 피해를 줄이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 한도제한계좌라고 생각한다"면서 "당장 나조차 아들의 이름으로 계좌를 개설하려고 해도 불편을 겪는 상황이지만 소수의 극심한 피해를 막기 위해 다수가 조금만 더 불편을 감내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고 말했다.

 

 

 

 

권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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