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4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8일 국회에서 첫 소신표명 연설을 한다. 도쿄=AP 뉴시스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선 기시다 후미오 전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정조회장).
도쿄 AP 연합뉴스
일본 100대 총리로 선출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64) 집권 자민당 총재. 사진=뉴시스
김창섭기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021년 9월 29일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된 직후
도쿄 자민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아베의 꼭두각시를 거부한다"..기시다 日총리, 극우인사 외면한 이유는?
기시다 후미오(64) 전 외무상이 일본의 제100대 총리(집권 자민당 총재)에 오르는 과정에서 아베 신조(67) 전 총리가 상당한 역할을 했지만, 새로 구성된 당·정 핵심포스트 인사에서 본인의 희망을 관철시키지 못한 것이 정가에 큰 화제가 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6일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복수의 정가 소식통을 인용해 “아베 전 총리가 자민당 간사장에 다카이치 사나에(60) 전 총무상을, 관방장관에 하기우다 고이치(58) 문부과학상을 임명하려고 했지만, 당내 반발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전했다.
여당의 2인자(간사장)와 정부의 2인자(관방장관) 자리를 모두 자기 측근들로 채우려 했던 아베 전 총리의 야심이 물거품이 됐다는 것이다.
로이터는 “아베 전 총리는 이달 말 치러질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보수층 결집이 중요하다고 판단, 자신과 정치적 신념이 비슷한 다카이치와 하기우다 두 사람을 각각 당정의 중심축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라고 전했다.
두 사람은 당내에서도 알아주는 극우 성향 인사들로, 위안부 만행이나 난징대학살 등 과거사를 부정하는 언동을 자주 해왔다.
하지만, 실제 인사에서는 아마리 아키라(72) 당 세제조사회장이 간사장에, 마쓰노 히로카즈(59) 전 문부과학상이 관방장관에 임명됐다.
“지나치게 보수 색채가 짙은 인선은 주류 의견에 반하는 것”이라는 당내 목소리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아베 전 총리와 같은 파벌(호소다파)의 거두 모리 요시로(84) 전 총리의 반대가 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다카이치 전 총무상은 당의 정책을 총괄하는 정무조사회장으로, 하기우다 문부상은 경제산업상으로 당초 계획보다 강등된 상태로 인사가 이뤄졌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인선을 통해 아베 전 총리가 자기 파벌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일본 역사상 최장기 총리를 지냈던 아베 전 총리의 향후 행보에 먹구름이 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조회장 자리를 얻은 다카이치의 입지도 제약될 공산이 크다.
한 여권 관계자는 “현재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자민당의 선거공약이나 경제대책 등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지만, 다카이치 정조회장은 여기에 별로 관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선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 도쿄 AP 연합뉴스
아베 신조(왼쪽) 일본 총리와 손잡고 있는 하기우다 고이치 문부과학상.
기시다 총리가 아베 전 총리 측 인사들을 간사장과 관방장관에서 배제한 것을 두고 보수 자민당 안에서도 상대적으로 중도에 가까운 자신의 컬러를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기시다 총리는 아베 전 총리가 역점을 두었던 군비 증강보다는 경제와 민생을 더 중시하는 온건 파벌(고치카이)을 이끌고 있다.
기시다 총리가 지난 4일 총리 취임 회견에서 중국에 대해 좀더 공격적인 발언을 해주기를 바랐던 당내 강경파들의 바람과 달리 “중국은 일본에 있어 중요한 나라이며, 대화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발언하고, ‘성장’보다는 ‘분배’를 강조하며 새로운 자본주의 추구를 역설한 것도 그러한 맥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교도통신이 지난 4~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기시다 총리가 아베 정권, 스가 요시히데 정권의 노선을 계승하지 않고 새롭게 전환해야 한다는 응답 비율이 70%에 달했다.
김태균 선임기자 windse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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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사진=AFP)
사진=교도연합뉴스
日기시다 취임 후 첫 기자회견, 한국 언급은 없었다
기시다 후미오 日100대 총리 취임 기자회견
"나는 히로시마 출신…핵없는 세계 추구할 것"
CPTPP 신청한 中에 "높은 기준 못 맞출듯"
1시간가량 진행된 기자회견서 한국 언급 안해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일본 100대 총리로 선출된 기시다 후미오가 취임 기자회견에서 납북자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미국과의 동맹을 중심으로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한국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일본인 납치문제가 최우선”…미일동맹도 강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4일 오후 수상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건 없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직접 대면하겠다”고 말했다. \북한에 납치된 모든 일본인의 귀국을 실현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히면서다.
대북문제에 있어 미국과의 협력도 강조했다.
기시다 총리는 조 바이든 행정부를 언급하며 “미국에서도 새로운 정부가 탄생했다.
새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도 잘 파악하며 일본의 역할을 고려하면서 구체적 대응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북핵 문제에도 적극 나설 것이라고 시사했다.
그는 “원폭 피폭지인 히로시마 출신의 총리로서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해 전력을 다하겠다”며 “외무상 시절부터 핵무기 없는 세계를 지향했고 이를 필생의 사업으로 임했다”고 말했다.
미일동맹의 중요성도 다시금 강조했다.
기시다 총리는 “미일동맹을 기축으로 일본에 대한 세계의 신뢰를 바탕으로 의연한 외교안보 정책을 전개한다”며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해상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 견제 성격이 크다.
미국이 탈퇴한 TPP는 2018년 이름을 CPTPP로 바꿔 출범했다(사진=AFP)
CPTPP 신청서 낸 중국에는 “기준 충족할지 불투명”
중국을 향한 견제구도 날렸다. 기시다 총리는 “힘에 의한 현상변경의 움직임이 있다”며 “보편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과 제휴하며 중국에 할 말은 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이 미국 동맹국들의 주축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공식 신청한 데 대해서도 “중국이 CPTPP가 요구하는 높은 기준을 충족할 수있을지 불투명하다”며 사실상 중국의 CPTPP 참여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CPTPP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무역 관세를 없애고 경제 공동체를 만들자는 취지의 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전신으로 한다.
지난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미국인 일자리를 뺏는다”며 TPP를 탈퇴한 뒤 명칭을 CPTPP로 바꿨다.
CPTPP 가입은 11개 회원국의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한데, 내년 의장국을 맡은 일본뿐 아니라 무역갈등을 겪고 있는 호주가 중국 참가에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이 높다.
앞서 지난달 아소 다로 전 부총리도 중국 정부가 국영기업에 보조금 등을 지급하며 국가적으로 육성한다는 점을 들며 중국의 CPTPP 가입에 대해 “중국이 가입할 수 있는 상태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내각 인사들(사진=AFP)
1시간 기자회견서 한국 언급은 없어
다만 한일관계 개선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날 오후 9시부터 1시간 동안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기시다 총리의 모두발언과 질의응답에선 한국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도 기시다 총리가 불참하면서 한일 대면 정상회담도 불발됐다.
기시다 총리는 이달 30~31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가 중의원 총선과 일정이 겹쳐 화상으로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을지 여부는 향후 양국관계를 전망하는 가늠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받았지만, 기시다 총리의 불참으로 무산됐다.
기시다 내각 면면을 봐도 아베 전 총리의 극우적 내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및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독도 문제, 한국을 향한 수출규제 등 한일관계 현안을 맡은 주무장관들이 대부분 극우 인사로 채워지면서다.
사진=교도연합뉴스
29일 도쿄의 한 호텔에서 실시된 일본의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된 기시다
후미오 전 외무상이 당선 확정 후 동료 의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도쿄 교도=연합뉴스
기시다 日총리 취임…한일관계 변화 바람 불까
외교안보 라인 유임…'아베-스가노선' 이어갈 전망
"김정은 만날각오"라면서도 한국에 대해 언급 없어
31일 총선 실시로 G20에서 첫 한일정상 대면 불발
스가 정권의 뒤를 잇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 내각이 공식 출범하면서 한일관계에도 어떤 방향으로든 변화의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시다 총리가 내각의 65%를 새로운 얼굴로 채웠지만, 외교·안보 정책을 책임지는 외무상·방위상은 그대로 유임시키면서 한·일 관계에 당장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특히 기시다 총리는 지난 4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를 거론하며 "조건 없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직접 마주할 각오"라고 북일 정상회담 가능성을 거론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 변화에 따라 한일관계도 움직일 수 있다는 여지를 둔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 입장에서 한일관계에 먹구름이 드리운 것은 가시다 정권의 핵심에 '아베의 그림자'가 짙다는 점이다.
기시다 총리는 모테기 외무장관과 기시 노부오 방위장관은 유임하면서 아베-스가 내각 노선을 이어간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기시다 정부의 대변인이자 내각 2인자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가 문제없다고 여기는 인물이고, 아베 전 총리의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 방위상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패전일에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모테기 외무장관 역시 아베·스가 내각에서 각종 한일 관련 현안에 강경 입장을 보여준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한국 법원의 강제징용과 위안부 배상 판결과 관련해 "한국이 해결책을 가지고 오라"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文대통령, 한일정상회담 못하고 퇴임하나
더욱이 기시다 총리는 3대 중점 정책 중 하나로 외교 안보 정책을 들었으나 한국에 대해선 특별한 언급이 없었다.
이에 기시다 내각도 한일관계에서 역사 관련 이슈는 '한국이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기시다 총리에게 서한을 보내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자고 밝혔다.
다만 "마주 앉아 대화하고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손을 내밀었지만, 당장 연내 대면 정상회담이 이뤄지긴 어려운 상황이다.
당초 첫 한일정상 간 만남이 예상됐던 G20(주요20개국) 정상회의에 기시다 총리가 불참할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기시다 총리는 이달 30~31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는 G20정상회의가 총선 일정(31일)과 겹쳐 참가를 보류하기로 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와의 전화 통화와 대면 정상회담을 단계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이미 기시다 총리는 5일 오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며 본격 취임 외교를 시작했다.
임기를 7개월 남겨둔 문 대통령은 지난 7월 도쿄올림픽 계기 정상회담이 무산된 이후 일본과 정상외교를 제대로 펴지 못하고 있다.
한일 정상회담은 아베 신조 정권 때인 2019년 12월 이후 22개월간 열리지 않았다.
©(주) 데일리안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도쿄(일본)=AP/뉴시스]4일 오전 일본 집권 자민당 당사에 기시다 후미오 신임 총재가
도착한 모습. 그는 이날 일본의 총리로 취임한다. 2021.10.04.
[도쿄/AP=뉴시스] 일본 자민당의 기시다 후미오 총재가 4일 오후 중의원에서 차기
총리로 선출돼 박수를 받고 있다. 2021.10.04.
日기시다 내각 美와 안정적 관계 유지…中엔 강경책
미일동맹 중시 '아베·스가' 노선 계승 전망
中에도 이전처럼 강경 정책 유지 가능성
코로나19 경기침체 살리려면 中 무시 못해
새로운 對中 강경책 나오지 않을 것 예상
[서울=뉴시스]김혜경 기자 = 4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내각이 공식 출범하는 가운데 미·일, 중·일 관계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기시다 신임 총리는 자민당 내 대표적인 비둘기파(온건파)로, 그가 총리에 선출된 것은 자민당이 '개혁'보다는 '안정'을 택했다는 것으로 풀이되면서 향후 주변국과의 관계에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지통신 등 일본 언론은 기시다가 아베 정권에서 4년 반 가량 외무상을 맡았다며, 미일동맹을 기축으로 한 외교를 추진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기시다 내각에서도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무상과 기시 노부오(岸信夫) 방위상이 유임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일 관계를 우선시하는 '아베·스가 노선'이 그대로 계승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런 이유로 미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안도감이 확산하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다만 미 정부는 스가 정권이 1년 만에 교체되자 일본 정치의 불안정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면서, 기시다 정권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정권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기술 패권 등을 놓고 중국과 대치하는 데 있어서 동맹국 일본의 안정적 정권 유지는 미국에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반면 기시다 정부는 중국에 대해선 강경 정책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기시다는 이번 선거 과정에서도 중국을 염두에 둔 조치로 반도체 등 중요 물자 확보 및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한 경제안보추진법을 제정하고 담당 각료도 신설하겠다고 공약했다.
또 중국의 신장위구르 자치구를 염두에 두고 인권문제 담당 보좌관직도 신설하겠다고 하는 등 대중국 강경책을 예고했다.
중일간 영유권 분쟁지인 센카쿠 열도에 대해서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강조했다.
일본 언론은 기시다가 중국을 염두에 두고 인권문제를 담당하는 총리보좌관직을 신설하겠다고 밝힌 것은 "인권 문제를 중시하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의 긴밀한 미일관계 구축을 목표로 한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이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기시다가 자민당 내 2인자인 간사장에 반중 성향을 가진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당 세제조사회장을 기용한 것도 중국에 대한 강경 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는 부분이라는 분석이다.
중일관계에 정통한 베이징(北京)의 한 싱크탱크 연구원은 "스가 정권은 대중 강경자세를 보였지만, 물밑에선 친중파인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전 자민당 간사장이 중일관계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해 왔다"며, 아마리가 새 간사장으로 낙점된 데 대해 "향후 기시다 차기 정권이 대중국 관계를 어떻게 관리할지 아직 전망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일본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고 실리적·안정적 균형 외교를 펼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재는 일본의 코로나19 감염자 수가 감소 추세라 코로나가 큰 쟁점으로 부각되지 않고 있지만, 만일 다시 감염이 확산돼 경제 재건에 실패한다면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참패할 수 있다.
중국은 기시다 내각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중국 매체인 중국신문망은 기시다 개인에 대해서는 비둘기파로 보고 있지만, 선거 기간 동안 대외 강경 태도로 전환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중국 언론에서는 기시다가 대중 강경노선으로 선회한 것은 선거에 이기기 위한 '전략'에 불과하다며, 새로운 대중국 강경책을 내놓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편 한일관계에 있어서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및 일본군 위안부 동원 등 역사문제에서 유화무드가 조성되기는 어렵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기시다는 외무상 시절이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주도해, 한국과의 관계에서 관계 개선 기대감도 나오고 있지만, 그간 선거 과정 등에서 한국에 대한 강경한 발언을 볼때 역사문제에서 타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일본 언론은 보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chkim@newsis.com
기시다 후미오 일본 신임 총리가 4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기시다 총리가 아무리 온건파인들
자민당 여전히 아베-아소가 장악
비둘기파 기시다 총리 입지 좁아
한일관계 개선은 여전히 난망
10월 4일 일본을 이끌 기시다 후미오 신 정권이 탄생했다.
작년 9월 건강 악화로 전격 사임한 아베에 이어 등판했던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코로나19 방역 실패 등에 따른 민심 이반으로 1년짜리 단명 정권으로 끝났다.
이번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기시다는 라이벌인 고노 다로 행정개혁상을 누르고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했다. 기시다의 당선에는 당내 대형파벌을 이끌고 있는 아베, 아소, 다케시타 등 주류파 지도부의 용의주도한 책략과 지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국민 지지율 1위에 당내 비주류 세력, 소장파 의원들의 광범한 지지를 받던 고노 다로는 예상 외로 고전했고 현역의원 득표에서 우익정치인 다카이치 사나에보다 밀리는 수모를 겪었다.
돌이켜 보면 2012년 이후 자민당 정권은 호소다파-아소파 연합이 줄곧 권력의 향배를 쥐락펴락해 왔다.
7년 8개월간 계속된 제2차 아베 정권과 스가 정권 1년을 거치는 동안 AA(아베-아소) 그룹의 주도권은 날로 증대되었고 이번 기시다 정권의 성립도 그 연장에서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베 전 총리는 최대 파벌인 호소다파의 사실상 오너로 최장수 집권 기간 자민당 실력자들에게 각료직과 당 요직을 나눠주며 맹우 관계를 구축했다.
뿐만 아니라 재임 중 치러진 6번의 중의원·참의원 선거에서 당 총재로 공천권을 행사하여 수많은 소장파 의원들을 당선시켰다.
이는 여전히 아베 전 총리가 당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정치적 자산이다.
기시다는 자민당 내 비둘기파인 고치카이(宏池會)의 명맥을 잇는 지도자로 이념과 정책의 성향으로 보면 아베-아소 그룹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온건하고 리버럴한 성향을 지니고 있다.
고치카이 출신 지도자들은 관용과 인내를 바탕으로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정치 성향을 보여왔다.
한국과의 수교를 이끌어 낸 이케다 하야토, 아태 평화 외교를 주도했던 오히라 마사요시, 1990년대 초반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솔하게 사과했던 미야자와 기이치-고노 요헤이 모두 고치카이 출신 정치인들이다.
기시다 역시 2015년 위안부 합의 당시 외상으로 서명했던 당사자이기도 하다.
4일 발표된 기시다 신 내각의 주요 각료와 당 요직에는 예상대로 아베 정권 당시의 실력자인 3A(아베,아소+아마리) 세력을 전면에 포진시켰다.
모테기 외무상과 아베의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 방위상은 유임되었고 관방장관에 아베와 같은 파벌의 마쓰노 히로카즈가 그리고 경제산업상에는 아베의 측근인 하기우다가 등용되었다.
재무상에는 아소의 처남인 스즈키 슌이치가 임명되었다. 자민당 요직 인사에서는 아소가 자민당 부총재로 다시 기용되고 간사장에는 아소파의 아마리 아키에, 정조회장에는 아베의 총애를 받는 다카이치가 등용되어 아베, 아소 세력에 대한 보은 인사의 색채가 강하게 드러났다.
기시다 총리의 최대 과제는 당장 이달 말 치러질 중의원 선거를 승리로 이끌고 더 나아가 내년 여름의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의 과반 의석을 회복하는 일이다.
만약 선거를 자민당 승리로 이끌지 못한다면 기시다 정권도 단명 정권으로 끝날 것이다.
따라서 기시다 총리가 자신의 정치·외교 색깔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듯하다.
비둘기파 출신의 총리 등장에도 불구하고 자민당 내 권력의 역학관계를 고려할 때 기시다 총리가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 손을 내밀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현재 한일관계 악화의 뇌관인 위안부-징용문제에 기시다 정부의 새로운 접근 가능성은 기대 난망이다.
오히려 악화된 한일관계 개선의 이니셔티브는 우리의 대일외교에서 찾는 것이 현실적일 듯하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자민당 신임 총재 겸 100대 총리 당선자/AFP=뉴스1
文정부에 분노 표했다는 그…'새 日총리' 기시다 후미오는 누구?
[日 100대 총리 선출]
3대 세습·9선의 베테랑…
자민당 내 기시다파 수장,
2015년 위안부 합의 도출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해 일본 100대 총리에 오르는 기시다 후미오는 1993년 정치에 입문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중의원을 지낸 히로시마 지역구를 물려받은 세습 정치인이다.
1957년생으로 올해 64세이며 총 9번의 중의원 선거(40~48대)에 출마해 모두 당선됐다.
1954년생인 아베 신조 전 총리보다 3살 어리지만 같은 해 정계에 발을 들인 '정치 동기'다.
통산성 관료였던 아버지가 뉴욕 총영사관으로 발령을 받아 기시다는 초등학교 1~3학년 미국 뉴욕에 거주하며 퍼블릭스쿨에 다녔다.
일본으로 돌아와서는 지요다구립 고지마치 중학교, 카이세이 고등학교, 와세다대학 법학부 등을 졸업했다.
자민당 내에서는 46명 의원이 소속된 기시다파 파벌을 이끌고 있다.
일본 내각부 특명담당대신과 외무성장관, 방위성장관 등 내각과 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정무조사회장 등을 두루 지냈다.
특히 기시다는 2012년 아베 정권 출범 이후 4년 8개월간 외무상을 맡아 아베 정권의 외교를 이끌었다. 2015년 윤병세 당시 외교장관과 한일 위안부 합의를 도출한 인물이기도 하다.
평소 온건한 성격이지만 위안부 합의를 원점으로 돌리자고 주장한 문재인 정권에 크게 분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합의에 부정적이었던 아베 총리 등을 열심히 설득해 합의를 이끌었는데 한국이 이를 뒤집는다면 체면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자민당 신임 총재 및 100대 총리 후보자
'아베 바라기' 행보 평가 엇갈려…지난해 선거선 고배2018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 입후보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기사다는 결국 입후보를 포기하고 당시 아베 총리를 전격 지지하는 결정을 했다. 비슷한 시기에 정치를 시작한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이 아베와 반대 진영을 이뤄 '반 아베' 정치인으로 자리를 굳혔지만 기시다는 아베 내각에 머무르며 '포스트 아베'로 낙점받을 기회를 노렸다.
이는 정치권에서 그를 '인내의 정치인'이라고 부르는 배경이 됐다.
일각에선 리더십이나 결단력이 부족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3대를 이어온 세습 정치인으로 9선의 베테랑 중의원이지만 국민 여론조사 지지율이 고노 다로 행정개혁상이나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 등에 한참 못 미치는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지난 2017년 10월 당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이
중의원 선거 결과를 확인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AFP
기사다는 지난해 9월 지병을 이유로 중도 퇴임한 아베 전 총리의 후임을 뽑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 도전했었다.
스가 요시히데, 이시바 시게루 등과 경합을 벌였지만 아베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스가에게 큰 차이로 패했다. 이번에 두 번째로 총재 선거에 도전해 승리한 것이다.
'아베 바라기'였지만 이번에도 아베의 첫 번째 선택을 받지는 못했다.
아베 전 총리는 극우성향 정치인으로 알려진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성 장관을 적극 지지했다.
하지만 자민당 내 다른 파벌의 지지를 얻어 모두의 예상을 깨고 1차 투표와 결선 투표에서 모두 최다 득표했다. 국회의원 표(382표)와 도도부현(광역지자체) 표(47표) 등 총 429표가 걸린 결선투표에서 그는 257표를 얻어 고노 행정개혁상(170표)을 87표차로 물리치고 자민당 신임 총재로 당선됐다. 다음 달 4일 임시국회에서 총리 지명 선거를 거쳐 총리 자리에 오른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박영서 논설위원
日 100대 총리 기시다, 한국에도 귀 열어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자민당 총재가 지난 4일 중·참 양원 본회의에서 열린 총리 지명 선거에서 일본 총리로 선출됐다.
1885년 내각제를 도입해 초대 총리를 맡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이후 100대째 내각총리대신이다.
일본의 역대 총리 가운데 '기시다'란 성씨를 가진 총리는 이번이 처음이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기시'(岸)는 '기슭'을 뜻하고, '다'(田)는 '논밭'을 가리킨다.
따라서 '기시다'란 강 기슭에 있는 농경지를 의미하는 것이 된다.
확실히 강 기슭에는 논이 많다.
농사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이고, 물을 얻기 좋은 강변은 농사에 안성맞춤 땅이다.
나아가 '기시'는 지형이 크게 변화하는 경계선의 장소 부근까지도 가리킨다.
산과 평지의 큰 경계, 즉 절벽 땅도 '기시'라고 불렀다.
쌀이 경제의 기본이었던 옛날에는 평지는 물론이고, 절벽으로 이어지는 땅까지 가능한 한 모두 갈아서 농경지로 만들었다.
절벽 바로 아래 땅까지 힘들여 경작한 곳이 '기시다'이고, 이 땅을 소유한 사람이 바로 '기시다'씨다.
이런 기시다 집안에서 총리가 배출됐다.
3대 세습 정치인인 기시다 후미오는 자민당 내 명문 파벌 '고치카이'(宏池會, 일명 기시다파)를 이끌면서 좌절도 여러번 맛보았지만 마침내 총리에 올랐다.
그가 정치의 '큰 꿈'을 품게된 것은 어렸을 적 겪었던 인종차별 때문이라고 한다.
기시다는 통상산업성(현 경제산업성) 관료였던 아버지의 미국 부임으로 초등학교 1~3학년을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보냈다.
당시 같은 반 학생들과 동물원에 갔을 때 선생님이 옆에 있는 친구와 손을 잡으라고 했다.
그런데 옆에 있던 백인 소녀는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을 보이며 기시다가 내민 손을 잡지 않았다.
기시다는 "정치를 통해 인종차별같은 부조리를 없애고 싶다"고 마음 먹었다.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최고 명문 도쿄(東京)대학을 목표로 공부했다.
아버지를 포함해서 주변에 도쿄대학 졸업생이 많아 자신도 당연히 도쿄대학에 들어갈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하지만 3번이나 실패했다.
결국 와세다(早稻田)대학 법학부에 진학했다.
졸업 후 일본장기신용은행에 입사해 약 5년 동안 근무했다.
공무원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아버지 기시다 후미타케(岸田文武) 중의원의 비서가 되면서 1987년 정계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1992년 부친이 사망하자 그 지역구를 물려받았다.
이듬해인 1993년 히로시마(廣島) 제1구에 자민당 후보로 출마해 중의원에 당선됐다.
35세 때였다.
그는 소극적이고 자기 주장이 강하지 않은 국회의원이었다.
기회만 오면 '셀프 홍보'에 열을 올리는 정치판에선 보기 드문 인물이었다.
눈에 띄지 않았고 출세도 상대적으로 느렸다.
지역구 지지자들이 "좀 튀어보라"고 조언하자 "꾸준히 땀 흘리는 사람도 필요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2007년 1차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에서 내각부 특명장관(오키나와·북방·국민생활·과학기술·규제개혁 담당)으로서의 첫 입각도 당선 동기 중에선 빠르지 않은 편이었다.
이후 기시다는 아베 내각에서 4년 7개월이나 장기간 외무상을 지내면서 아베의 정책을 충실히 따랐다. 기시다는 박근혜 정부 당시 한일 위안부 합의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아베의 지원에 힘입어 그는 이번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유력한 후보였던 고노 다로(河野太郞)를 누르고 당선됐다.
본인은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이 자신의 강점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적을 만들지 않는 스타일이고, 성실한 성품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유력자의 목소리만 듣는 것 아니냐"라는 비아냥이 나온다.
우유부단이란 평도 따라다닌다.
그렇지만 새 총리, 새 내각이 들어섰으니 한일 관계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한일관계가 국교 정상화 이래 최악의 상태여서 그에게 거는 기대감이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취지의 축하서한을 보냈다.
새 총리가 전임자의 전철을 답습하지 말고 전향적 발걸음을 내딛기를 기대한다.
그의 조상들이 피땀흘려 농경지를 개간했듯이 새 총리 역시 한일관계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펴 극적인 돌파구를 마련했으면 한다.
박영서 논설위원
[도쿄(일본)=AP/뉴시스]지난 13일 기시다 후미오 전 정조회장이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가지고발언하고 있다. 그는 일본 차기 총리를 결정하는 집권 자민당
총재선거에 출마한 상태다.
선거는 오는 29일 실시된다. 2021.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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