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4월 반도체 업계 대표들과 화상 회의에서 반도체
실리콘 웨이퍼를 들고 있다. /사진제공=워싱턴=AP/뉴시스
미국 텍사스주에 위치한 삼성전자 오스틴 공장 전경. <삼성전자 제공>
대만 파운드리업체 TSMC가 미국 정부의 반도체 기밀 정보 요구에 응하겠다고 했다가
다시 입장을 번복했다. 사진=로이터
미국은 왜 일본 반도체를 무너트렸나..한국은?
바이든 행정부의 정보공개 요구,
사흘 앞으로 다가온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선택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TSMC(대만반도체제조회사) 등 한국과 대만 반도체 기업들에게 자국 자동차 및 IT 기업들에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을 해야한다는 이유로 고객 정보 등을 요구한 마감기한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오는 8일 마감 시한을 앞두고 기업들의 고심이 깊어지는 가운데 미 행정부가 기업들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민감 정보는 빼고 산업별 통계 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의 자료제출을 요구하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 그나마 다행이다.
미 정부는 당초 오는 8일까지 자발적으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국방물자생산법(DPA)까지 적용해 강제로 자료제출을 요구하려고 했지만 최근 분위기를 바꿔 강성 기조에서 벗어나 숨고르기를 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초강대국인 미국이 언제 또 다시 생각을 바꿀지는 모를 일이다.
호주와 프랑스가 맺었던 핵잠수함 계약을 미국이 가로챘듯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미국이 세계의 경찰로서 '선한 관리자'의 역할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반도체 부문에서의 행동도 마찬가지다.
2차 대전 이후 일본의 재건을 지원했던 미국이 지나치게 커버린 일본 반도체 기업들을 한순간에 날려보냈던 기억은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 기업들이 절대 강국 미국의 압박을 이길 수 있을까.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견딜 방법은 쉽지 않다. 미국의 오랜 통상압박 전술은 약소국에 무자비하다.
특히 일본이나 한국, 대만 등 미국 군사력의 수혜국이라고 인식하는 나라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미국은 왜 일본을 키웠나?...자국의 원조 부담 축소와 대중국 방어막 목적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이 미국의 진주만을 공습한 날을 기념한 행사 사진. 진주만
추념일에 당시 참전 노병들이 먼저 간 전우들을 기리며 그들이 잠든 진주만 바다를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DB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7년 12월 미국 동부 뉴저지주 머레이힐에 위치한 AT&T의 연구소인 '벨랩'에선 향후 수십년간 세상의 변화를 이끌 반도체가 탄생했다.
미국 동부에서 발아한 반도체 산업은 서부로 이어져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만 인근 남부에 실리콘밸리를 형성했다.
그 반도체의 씨앗은 1950년대 패전국인 일본으로 넘어갔고, 이 때부터 1990년대까지는 일본 반도체와 전자업계의 전성기였다.
여기에는 일본 부흥의 밑거름이 된 한국전쟁이라는 자양분이 자리잡고 있다.
1945년 8월 일본의 2차 세계대전 항복 이후 미 군정은 패전국 일본의 전후 복구와 재건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늘어나는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미국은 일본이 스스로 일어서기를 바랐고, 막 시작된 반도체 기술의 특허 제공 등을 통해 자립을 지원하면서 일본 전자산업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미국은 특히 중국과 소련(현 러시아) 등 공산세력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승전국인 일본의 재건이 필요했다.
이런 요소들이 패전국 일본이 전후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문제는 일본의 성장이 반도체 로열티에 취해 있던 미국의 반도체 기업들을 '잡아먹는' 상황까지 도달하면서 생겼다.
최초의 반도체 개발 기업인 AT&T의 반독점 규제에서 시작된 특허 개방은 RCA(Radio Corporation of America)에 이르러서는 미국 기업들에게는 달콤한 독주(毒酒)였다.
달콤한 특허 로열티의 유혹은 미국에서 일본으로의 기술유출에 가속도를 붙였다.
미 공정경쟁당국의 독점규제로 인해 1951년 AT&T의 자회사인 웨스턴 일렉트릭이 일본 기업들에게 반도체 특허를 공개한 이후 1980년대까지 일본 기업들은 급격하게 성장했다.
미국의 반도체 기술을 도입한 일본의 신생기업 소니, 샤프 등은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전자계산기 등 당시로는 첨단 전자제품의 길을 열면서 신시장을 만들어냈다.
1980년대엔 전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일본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80%에 달하면서 미국 기업의 생존을 위협했다.
NEC를 필두로 도시바, 히타치, 후지쯔, 미쓰비시, 마쓰시타(파나소닉) 등은 D램 등 전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주름 잡았다.
최초 D램 업체인 인텔은 1984년 D램 산업을 포기하고 CPU(중앙처리장치)로 사업을 전환했고, 일본에 반도체 특허를 제공하던 RCA는 1986년 문을 닫았다.
이런 위기감이 미국으로 하여금 일본 반도체 기업을 규제토록 하는 단초가 됐다.
미국은 왜 일본 반도체를 무너트렸나?...지나친 성장, 자국 산업 피해 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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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 있는 인텔 본사 전경./사진=인텔
반도체 시장조사업체인 IC인사이츠에 따르면 1990년 당시 NEC를 비롯해 도시바, 히타치, 후지쯔, 마쓰비시, 마쓰시타 등 6개 일본 기업이 D램 시장의 80%를 차지했다.
톱10 기업 중 미국 기업은 인텔과 TI, 모토로라 등 3개 기업 뿐이었다.
1947년 트랜지스터 개발 이후 1980년대 이전까지 미국 기업이 장악했던 반도체 시장은 어느 새 '일본천하'가 됐다.
1981년부터 시작된 레이건 행정부는 당시 전세계 반도체 매출 톱10 기업 중 6개가 일본기업이라는 데 크게 위기감을 느꼈다.
레이건은 일본 반도체 기업의 덤핑이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고 압박했고, 미국 언론은 일본 반도체 기업의 저가 공세를 '제2의 진주만 공습'으로 비유하며 미국 정부의 강공에 힘을 실어줬다.
인텔이 D램 사업을 포기한 직후인 1985년 6월 14일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는 무역대표부(USTR)에 일본 정부가 민간 기업을 지원한 반도체산업정책이 불공정하다며 제소했다.
이어 6월 24일에는 미국 D램 업체인 마이크론이 일본 NEC, 히타치, 미쓰비시, 도시바 등을 반덤핑 혐의로 제소했다. 반도체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레이건 정부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1985년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일본, 서독, 프랑스, 영국과 함께 서방 5개국 재무장관(G5)회의를 열고, 일본 엔화와 서독 마르크화의 고평가와 미 달러 저평가가 이뤄지도록 환율조작을 압박했다.
미국의 힘에 의해 이뤄진 이 플라자합의를 통해 일본 기업의 반도체 가격경쟁력이 급격히 악화됐다.
여기에 더해 1986년 미국 정부와 일본 반도체 기업간의 협정(이른바 서스펜션 협정)과 미 정부와 일 정부간의 협정(미합중국정부와 일본정부간의 반도체 무역에 관한 협정)이 진행됐다.
이에 따르면 일본 반도체 업체는 미국에 생산 원가공개와 자국 내 미국 반도체 업체의 시장점유율을 20%까지 높이기로 했다. 이 협정은 이후 5년간 유지됐으며, 이를 1차 미·일반도체협정이라고 한다.
미국은 일본정부가 미일 반도체협정을 지키지 않는다며 1987년엔 슈퍼301조(통상법 301조)를 통해 무역보복을 실시했고, 이어 1996년까지 이어지는 제2차 미일반도체협정을 맺었다.
1986년부터 1996년까지 10년간 미국의 환율 정책과 무역보복 등으로 일본 반도체는 결국 무릎을 꿇고 만다.
그 결과 1997년 인텔은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의 자리를 되찾았고, 그 이후 현재까지 왕좌를 지키고 있다. 당시 인텔의 뒤를 이어 모토로라, TI 등 미국 기업들이 상위권에 올랐고, 삼성전자도 그해 반도체 매출 7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2020년 현재 전세계 반도체 매출 톱10 기업에서 일본 기업들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에서 이름을 바꾼 키옥시아가 12위 정도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일본 기업들의 자리에는 인텔을 비롯해 마이크론, 퀄컴, 브로드컴, 엔비디아, TI 등 6개 미국 기업이 앉았다.
1980년대에 순위표에 보이지 않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과 TSMC가 40년 후 신흥 강자로 이름을 올렸다.
한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미국 극복이 과제, 민관 머리 맞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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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캠퍼스 2라인 전경/사진제공=삼성전자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1960년대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후공정을 맡았던 시기부터 출발한다.
페어차일드와 모토로라의 후공정 생산라인에서 시작해 1974년 모토로라반도체 출신인 강기동 박사가 경기도 부천에 설립한 최초의 전공정 회사인 한국반도체로부터 싹이 텄다.
1983년 삼성전자와 현대전자가 D램 사업에 진출했고, 3년 후인 1986년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 협정이 맺어지면서 일본의 위축을 틈타 우리 기업들이 기회를 잡은 측면이 있다.
이는 준비된 자에 주어진 기회였다.
일본 기업들이 미국 정부가 싸우는 데 신경을 쓰는 동안 심한 견제를 받지 않고 출발선에 설 수 있는 기회였다.
그 이후 한국의 성장은 파죽지세였고, 현재는 삼성전자가 세계 반도체 1, 2위를 인텔과 다투고 있고, SK하이닉스가 3, 4위권을 오가고 있다.
미국이 일본에 이어 우방인 한국과 대만 반도체 기업의 고삐를 죄는 이유는 두가지다. 미국의 유일한 경쟁국으로 떠오른 중국의 성장을 견제하면서, 자국의 자동차와 IT 산업의 안정적인 시스템 유지를 위해 '반도체 헤게모니'는 반드시 쥐어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인류는 지구를 가득 메운 질소와 산소를 호흡하며 생존하지만, 진화하기 위해선 실리콘(Si: 반도체 소재)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됐다.
또 힘의 근원은 '아는 것'이고 현 시대는 그 '앎'의 근원이 반도체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안다.
미국이 우방들의 통신망을 장악해 가는 중국 화웨이에 반도체 공급을 막음으로써 세력 확장을 저지한 것도 이 때문이다.
화웨이가 5세대 이동통신 장비를 전세계 통신업체들에게 공급하게 된다는 것은 미국에겐 큰 위협이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화웨이 장비를 우방들이 구매하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한편, 매년 화웨이 장비를 쓰는 기업들에게는 "언제까지 쓸거냐?"는 등 압박을 가하는 것도 이런 위협감 때문이다.
또 미국이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인 ASML에게 중국에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공급하지 못하도록 압박함으로써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꺾은 것도 반도체가 국가전략산업이어서다.
중국이 반도체까지 장악할 경우 미국의 경쟁상태로서 힘이 더욱 커져 미국의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인식한다.
결국 중국의 칭화유니가 파산에 접어든 것도 미국의 압박과 무관하지 않다.
대만 TSMC 본사/사진=머니투데이 DB
이런 시점에서 미국이 한국과 대만에 미국 내 생산공장 건설 요구와 기업정보 제공이라는 청구서를 내민 이유는 두 나라의 안보에 미치는 미국의 영향력에 대한 대가를 요구한 것이다.
미국은 우리에게는 북한과의 군사적 대치의 힘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는데 대한 것이고, 대만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과 안정을 유지토록 하는 데 대한 청구서다.
미국은 코로나19 직후 미국 산업의 근간인 자동차 산업에 안정적으로 차량용 반도체가 공급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한 후 반도체 군기잡기에 나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벌어진 자동차용 반도체의 수급불균형은 일시적일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업계 전문가들은 내년 상반기쯤이면 공급망이 안정화되고 앞으로는 이같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낮다고 진단한다.
미국이 우려하는 것은 이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자국 반도체 기업들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인텔이나 마이크론, TI, 퀄컴, 엔비디아(Nvdia) 등등이 TSMC나 삼성전자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완결성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TSMC 등이 자국 기업처럼 움직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자국 내에 생산시설을 두도록 압박하고 있다.
이런 미국의 자국 중심적인 압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또 우리 정부나 기업들이 이를 무시하거나 넘어설 수 있는 길도 요원한 게 현실이다.
따라서 미국의 압박을 지혜롭게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를 주고, 하나를 얻는 것'이다.
일본은 1950년대 섬유무역분쟁에서 섬유수출을 자율적으로 규제하는 조건으로 미군 점령지인 '오키나와'를 받았다.
미국의 청구서에 대한 우리의 지불은 1953년 남북분단 이후 근 70년간 동북아의 완충지로서 충분히 치렀다.
기업들의 반도체 경쟁력을 무기로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얻을 것이 무엇인지를 두고 정부와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매일 만나서 논의해봐야 한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hunt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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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4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진행된 쿼드 정상회담 당시 모습.
[사진=AP·연합뉴스]
안보와 부흥'...일본 '반도체 新전략'이 노리는 것은?
쿼드 연계...대만 TSMC·미국 마이크론과 집중 협력
민간에선 미·중 양자택일 피할 '중립적 공급망' 제안
일본 정부의 '반도체 신(新)전략'이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단순히 산업 정책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급변하는 국제 환경 속에서 새롭게 설정된 외교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미국의 인도·태평양 정책에 동조하고 있는 일본 정부가 대만 TSMC와 전면적인 협력을 선언한 것은 중국을 겨냥한 고도의 경제안보 전략이라는 지적이다.
중국의 역내 위협을 경계하고 있는 일본과 대만 양국이 '대(對)중 반도체 동맹'을 맺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6월 4일 '반도체·디지털 산업 전략'을 발표했으며, 이후 같은 달 30일에는 '2021년 통상백서'를 발간했다.
일본 경산성은 두 보고서에서 일관된 논조로 자국의 반도체 산업 부활과 국제공급망 재편을 강조했다.
이와 같은 전략은 이후 지난 9월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쿼드 정상회담에서 더욱 확대된다.
쿼드는 미국의 주도로 결성된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협의체로 미국과 일본, 인도, 호주가 참여하고 있다.
쿼드의 성격은 당시 첫 대면 정상회담을 통해 군사 협력이 아닌 산업·인프라 협력으로 굳어졌다.
이에 따라, 당시 공동성명문은 쿼드의 주도로 해당 지역에서 '반도체 공급망 이니셔티브(협력체)'를 출범하겠다고 밝혔다.
미국과 일본은 기존의 반도체 산업 기반을 강화하고 이를 호주와 인도가 지원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대만·미국과 집중 협력...TSMC·마이크론 공장 유치
이후 일본의 반도체 신전략은 대만, 미국과의 집중적인 협력으로 이어졌다.
가장 두드러지는 성과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의 일본 신공장 건립 계획이다.
TSMC는 지난 10월 14일 22~28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반도체를 생산하는 공장을 일본 구마모토현에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회사는 당초 지난 2월 해당 지역에 연구센터만을 설립할 예정이었지만, 이후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계획에 공장 신설로 계획을 틀었다.
구체적인 지원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일본 정부는 TSMC 신공장 투자 금액의 절반가량인 5000억엔(약 5조1580억원)을 지원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소니 역시 TSMC와의 협력을 발표했다. 지난달 28일 소니는 올 3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TSMC 일본 공장의 건설과 운영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해당 결정은 구마모토현을 산업용 반도체 공급기지로 탈바꿈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대만 협력 의지가 그대로 드러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간 반도체 설계와 제조를 모두 자체적으로 진행해왔던 소니가 TSMC에 제조 공정 일부를 일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반도체 협력 역시 성과를 보이고 있다.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지난달 20일 최대 8000억엔을 투자해 일본 히로시마현에 D램 공장을 신축할 계획을 발표했다.
또한, 일본에 남은 마지막 반도체 기업인 키오시아와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의 인수·합병(M&A) 논의도 여전히 불씨가 살아있는 상태다.
키오시아 인수 논의의 경우, 기업이 자국에 남는 것을 조건으로 거는 선에서 일본 정부가 이례적으로 반대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정부는 자국 기업의 외국 인수에 호의적이지 않은 편이다.
◇민간에선 미·중 양자택일 피할 '중립적 공급망' 제안도
다만, 민간에서는 일본의 반도체 산업이 미·중 대립 국면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케베 료 센슈대 상학부 교수는 미·중 대립 국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국의 반도체 산업이 '중립적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일본의 새로운 지정학, 서태평양 연합 제안>을 저술한 그는 지난달 26일 일본 경제지인 도요게이자이 기고문을 통해 이와 같은 제안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일본과 한국, 동남아시아 지역, 호주, 뉴질랜드 등이 민주주의 국가 연합체인 '서태평양 연합'을 결성하고, 이 과정에서 베트남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중립적 공급망'을 구축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케베 교수는 향후 미·중 갈등이 격화하며 신냉전 체제에 들어간다면 국제 경제도 과거 냉전 당시의 분단 상황을 피할 수 없다고 전망한다.
따라서 그는 미국과 중국 각각의 기술 표준과 원산지 인증 등 '양자 택일' 상황을 피해갈 적합한 산업 지대로 자국과 베트남을 꼽았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사진=AP·연합뉴스]
최지현tiipo@ajunews.com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24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반도체· 희토류
·배터리 등 핵심 품목의 공급망을 확보하는 내용의 행정명령 서명을 앞두고 반도체
칩을 들고 연설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美, 반도체 부족 동맹·민간 규합해 돌파…대만 지원 포함
지난주 로마 개최 G20 정상회의 당시 논의…
모멘텀 살릴 것
미국이 반도체 등 공급망 부족 사태를 동맹국 및 민간 부문과의 협력으로 돌파하는 전략을 펼 것이라고 3일(현지사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미 정부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지난달 30~31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계기 찾은 모멘텀을 살려 협력을 강화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보도에 따르면 맷 머리 미 국무부 무역정책·협상 담당 부차관보는 이날 브리핑에서 "반도체 공급 부족은 미 정부가 집중하는 가장 시급한 현안 중 하나"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주말 로마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세계 정상들과 공급망 회복 중요성을 논의했고, 이를 모멘텀으로 힘을 규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상간 논의에서는 투명성과 다양성, 공급, 보안, 지속가능성 같은 부분이 상당히 중요했고, 이러한 영역은 현재 반도체 문제 관련 우리가 직면한 위기와도 밀접하다"고 부연했다.
반도체는 모든 전자제품에 필수적인 마이크로칩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노트북과 비디오 게임 콘솔 수요가 늘자 공급 위기가 불거졌다.
지난 분기 자동차 판매량도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되면서 차량용 반도체 수요가 늘자, 반도체 공급 위기는 가중하고 있다.
최근에는 로스앤젤레스(LA)와 롱 비치 항이 극심한 항만 적체를 빚고 있어 물류 지연이 심각하다.
이에 공급망 위기가 미국은 물론 세계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공급망 전략 핵심은 국제적 관여다.
바이든 대통령은 올 초 공급망 회복 관련 행정명령을 발표한 바 있다. 당시 행정명령에는 글로벌 공급망을 보호하기 위해 동맹국과 협력국이라도 중요한 상품과 재화를 식별해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백악관은 지난 6월 전반적인 공급망 관련 보고서를 발표하고, 글로벌 공급망 취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동맹 및 파트너국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와 관련, 미 상무부 국제경제정책담당 차관보를 지낸 토마스 듀스터버그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날 한 토론회에서 "대만을 공급망 해결책의 중심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반도체 제조에 있어서는 한두 걸음 뒤처져 있고, 대만이 대규모 투자를 통해 선도적인 생산국 역할을 하고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대만을 가입시켜 대만의 입지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12일 워싱턴DC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삼성 등
전세계 주요 관련기업 최고경영자들과 반도체 품귀 현상에 대한 화상 회의를 진행
하는 모습. © AFP=뉴스1
이날 브리핑에서 머리 부차관보는 민간부문과의 협력 중요성도 강조했다고 SCMP는 전했다.
머리 부차관보에 따르면, 국무부는 이미 주요 반도체 제조사와 관련 협의를 가졌다.
머리 부차관보는 "공급망의 대부분은 거의 전적으로 민간부문이 소유하고 운영하고 있지만, 정부는 공급망 위험을 파악하고 각기 다른 관계자들을 하나로 모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무부의 역할을 보여주는 사례로, 현재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주재 미국 대사관은 현지 코로나 봉쇄 관련 반도체 제조시설 조기 경보 시스템을 가동, 셧다운 영향을 완화하는 등의 지원을 하고 있다.
아울러 상무부는 지난 9월 반도체 생산-소비-중개 등 공급망 병목현상을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해 관계 기업에 재고와 주문 등 내부 정보를 자발적으로 공유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SK하이닉스와 인텔 등 일부 기업은 이미 협조 의사를 밝혔고, 삼성을 포함해 다른 기업들도 오는 8일까지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sabi@news1.kr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미국 워싱턴의 상무부 건물.
미국 상무부, 반도체 공급망 자료 관련 '고객사 명단' 대신 '
산업용도별' 자료 제출 허용
미국 정부가 반도체 관련 업체들에게 요구한 공급망 관련 자료 제출 시한이 다가오는 가운데 고객사 이름을 명시한 자료 대신 산업용도별 공급 현황을 제출해도 좋다는 입장으로 선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들이 민감하게 여기는 고객사 정보 제공 요구를 완화해 산업용도별 공급 현황 자료를 받아보겠다는 것이다.
워싱턴 소식통들은 3일(현지시간) 미 상무부가 개별 기업들의 자료 제출 관련 문의와 상담에 응하는 과정에서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고객사 정보는 기업 입장에서는 민감한 영업 기밀에 속하기 때문에 고객사 정보 대신 자동차용, 휴대전화용, 컴퓨터용, 가전제품용 등 해당 기업이 생산·공급하는 반도체의 용도별 자료를 제출하겠다는 기업들의 요청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미 상무부는 자동차용 반도체 부족으로 포드 등 미국 자동차 기업들의 생산 라인을 중단시키는 등 어려움을 호소하자 지난 9월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과 화상회의를 열어 11월 8일까지 반도체 재고와 주문, 판매 등 공급망 정보에 관한 설문지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반도체 관련 글로벌 공급망의 문제점을 파악해 대책을 세우려면 정확한 자료가 필요하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미 상무부가 요구한 설문은 일반적인 현황에서부터 기업들이 민감하게 여기는 생산·판매 관련 정보를 요구하는 것까지 26개 문항으로 이뤄져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반도체 생산 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공급망 정보 제공 대상 기업에 포함돼 있다. 기업들은 미국 정부의 공급망 정보 제공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영업 기밀에 해당하는 민감한 정보들을 모두 공개할 수 없기 때문에 어느 선까지 정보를 제공할 것인지를 두고 고심을 거듭해 왔다.
미 상무부가 고객사 명단 대신 산업용도별 자료 제출을 허용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기업들이 느끼는 부담은 일부 완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기업 입장에서는 고객사 정보가 아닌 산업용도별 자료를 제출하라는 것만으로도 부담이 상당히 줄었다”고 말했다.
다른 소식통은 “미 상무부가 자료 제출을 요구한 대상이 매우 광범위하기 때문에 헬프 데스크를 운영하면서 개별 기업들의 문의에 상담에 응하면서 자료 제출 관련 일부 기준들이 구체화하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미국 정부의 입장이 대폭 완화됐다기보다는 기업들의 입장을 반영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문승욱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 제니퍼 그랜홈 에너지부 장관과의 면담을 위해 다음주 미국을 방문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문 장관은 러몬도 상무부 장관, 그래홈 에너지부 장관과 만나 세계적인 공급망 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하면서 반도체 공급망 정보 제출과 관련한 한국 기업들의 우려를 전달하고 자료 제출 이후 과정에 대해서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TSMC 12인치 웨이퍼 펩. /TSMC
반도체 업계, 미국에 정보 제출 임박…영업 비밀 지킬 수 있을까
[메트로신문] 반도체 업계가 공급망 관련 자료 제출을 앞두고 막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요구 사항을 다소 완화했음에도 기밀 유출 우려는 여전히 적지 않은 가운데, 정부도 협상에 나서려는 모습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오는 8일까지 미국 상무부에 공급망 정보를 제출할 예정이다.
앞서 미국 상무부는 주요 반도체 업체들에 최근 3년간 매출과 고객, 재고 등 현황을 요구한 바 있다.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에 대응해, 공급망 투명성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는 이유다.
업계에서는 미국측 요구가 영업 기밀을 포함하고 있다고 난색을 표했다.
특히 고객사 정보는 영업비밀이라 자칫 법적 분쟁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에 따라 미국측은 고객사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대신, 산업별로만 제출하도록 기준을 완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제출하지 않겠다던 대만 TSMC도 다시 제출에 응하기로 입장을 바꿨다.
그럼에도 반도체 업계는 여전히 민감한 내용이 드러날 수 밖에 없다는 분위기다.
반도체 업계 특성상 산업별 공급 정보만으로도 고객사 현황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판매 가격이나 재고 수준 등은 가격을 정하는데 중요하게 활용된다.
고객사들에 정보가 유출되면 가격 협상에서 불리하다는 얘기다. 주요 고객 중 상당수가 미국 기업인데다가, 정보 취합 이유가 현지 공급망 안정화인 만큼 유출 가능성을 배재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기술 유출 가능성도 있다.
생산 장비와 시설, 생산 제품과 공급량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면 공정과 수율 등 주요 사업 정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 설명이다.
미국이 이 정보를 활용해 현지 생산 시설 및 투자에 반영하면 국내 반도체 업계를 압박하는 것도 가능하다.
중국과의 거래도 문제다. 중국 매출이 적지 않은 상황, 구체적인 자료 공개는 미국이 중국 공급을 줄이라고 압박할 근거가 될 수 있다.
중국에서 미국 측에 민감한 정보를 넘겼다고 문제를 제기하면 난감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일단 국내 반도체 업계는 정보를 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 측이 제출 여부를 자율에 맡기겠다고는 했지만, 추후 강제할 수 있다고 언급하며 강도 높게 압박하고 있어서다.
최대한 민감한 정보를 제외한다는 방침이라도 주요 정보를 완전히 제외할 수는 없을 전망이다.
정부도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이달 중 미국에 보내 상무부 장관과 협의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실효성 있는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업계가 내부 정보 보안에 크게 예민한 이유는 작은 사실 만으로도 많은 정보를 이끌어낼 수 있어서다"라며 공급망 정보 공개 자체에 우려를 표했다.
메트로신문 김재웅 기자 juk@metroseoul.co.kr
연합뉴스
[스트레이트뉴스 신용수 기자]
삼성전자는 오는 11월 8일까지 미국 정부에 반도체 기밀 정보 요구에 대한 데이터
제출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사진=SK하이닉스)
삼성·SK하이닉스, 미국에 반도체 정보 제출한다
미국 정부의 반도체 공급망 정보 요구 제출 시한이 이틀 앞으로 다가오면서 국내 기업들이 막판 자료를 가다듬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영업상 비밀유지 조항에 저촉되지 않고, 민감한 내부 정보를 제외하는 선에서 오는 8일 시한에 맞춰 자료를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도 앞서 지난달 26일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해 차분히 잘 준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미국 정부는 전 세계적인 반도체 부족 사태가 한창인 지난 9월 24일 글로벌 반도체 업계와 화상 회의를 열어 45일 내로 반도체 재고와 주문, 판매 등 공급망 정보를 담은 설문지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 설문지는 일상적인 정보에서부터 회사 사정에 개입하는 질문까지 총 26가지 문항으로 이뤄져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국내 반도체 업계는 영업기밀이 노출될 수 있다며 우려를 제기해왔다.
그간 우리 정부는 국내 기업 및 미국 정부와 수시로 소통하면서 기업들의 자료 제출 부담을 덜어주되 큰 틀에서는 미국과 협력하는 쪽으로 협의를 진행해왔다.
정부는 기업들이 자료 제출을 마치는 대로 미국 상무부와 반도체 공급망과 관련한 양국 협력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이달 중 미국을 방문해 지나 러만도 미 상무부 장관과 회담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양국 정부는 앞서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의 안정적 공급망 구축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이 일환으로 최근에는 반도체 분야에서 정례적으로 협력을 논의할 수 있는 국장급 반도체 대화채널을 신설하는 데 합의했고, 기존 국장급 `한미 산업협력대화`도 격상해 운영하기로 했다.
한국경제TV 디지털전략부 이영호 기자
hoya@wowtv.co.kr
반도체 칩 들고 행정명령 취지 언급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EPA 연합뉴스]
바이든식' 반도체 군기잡기…삼성전자, 앞으로가 더 문제
미 정부 반도체 정보 요구 시한 D-2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기밀 공개 수위 고심
"美 정부 정보 공개 매년 지속될 가능성"
미국 정부의 반도체 공급망 정보 요구 제출 시한이 이틀 앞으로 다가오면서 다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정보 공개 수위에 막판 고심을 하고 있다.
민감한 기밀과 고객사 이름을 명시하는 대신 산업별 현황을 제출하는 등 묘책 찾기에 골몰하는 가운데 미국 측의 무리한 요구가 매년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반도체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양상이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 핵심 자료 속속 제출
6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미 상무부가 반도체 관련 정보를 제출하도록 요구한 사이트에 21개 기업들이 자료를 제출했다.
이들은 제출된 자료에 대해 공개·비공개를 선택할 수 있는데 21곳 중 13곳이 공개를 선택했다.
특히 세계 7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이스라엘 타워세미컨덕터는 고객 정보에 대해 업체명을 기재하지 않고 산업군으로 뭉뚱그렸다.
또 반도체 정보는 제품 종류와 소재, 활용하는 공정 노드(nm), 납품 기간(리드 타임) 등의 일부만 공개했다.
제품 가격이나 판매량, 고객사 등 민감한 정보는 비웠다.
세계 1위 반도체 패키징·테스트 업체인 대만의 ASE와 미국 차량용 부품 제조업체 오토키니톤, 미국 인쇄회로기판(PCB) 기업 이솔라 등도 제출했고 코넬대와 UC버클리 등 대학에서도 미 정부에 자료를 제출했다.
이들이 공개한 자료는 누구나 확인할 수 있지만 '기밀'(Confidentail)로 제출한 자료는 미 상무부만 열람할 수 있다.
대만 TSMC 로고 [사진=AFP 연합뉴스]
이들 기업이 선택적으로 정보를 제공한 배경에는 미국 측의 태도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 3일 워싱턴DC 소식통에 따르면 미 정부는 반도체 기업들이 노출을 꺼리는 민감한 내부 정보 대신 자동차용, 휴대전화용, 컴퓨터용 등 산업별로 제출하겠다는 기업들의 요청을 용인했다.
미국 역시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구축이라는 '큰 그림'이 목표여서 굳이 업체명까지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개별 기업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가 기업의 우려 사항을 미 정부에 지속적으로 전달한 점도 절충안에 영향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70,200 -0.57%)와 SK하이닉스(107,000 +0.94%) 등 국내 반도체 기업도 영업상 비밀유지 조항에 저촉되거나 민감한 내부 정보를 제외하는 선에서 최종 자료를 정리 중이다.
지난달 26일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은 서울 코엑스에서 "여러 가지를 고려해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고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은 지난달 28일 서울 코엑스에서 "내부 검토 중이고, 정부와도 이 건에 대해 소통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정보 제공 어느 선까지 했는지 미국이 차등 분류할 것"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말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업별로 정보 제공을 어느 선까지 했는지 미국 내부적으로 차등 분류해 관리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 정보가 향후 미국 내 사업 과정에서 제약의 이유로 활용될 여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바이든 정부가 내세우는 '글로벌 공급망 구축'이라는 명분보다 그 이면에 깔린 미중갈등 국면에서 미국에 얼마나 협조를 하는지 시험해 보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 아니겠나"라고 추측했다.
실제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G20 정상회의와 별도로 중국을 겨냥한 글로벌 공급망 정상회의를 개최한 것도 한국 기업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글로벌 물류대란과 공급망 문제를 다룬 이 회의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유럽 주요국인 영국·독일·이탈리아·스페인, 쿼드 참여국인 인도·호주·일본, 캐나다·싱가포르 등 미국의 주요 동맹 14개 국가 정상이 참석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월 경기도 평택 3공장 건설 현장을 점검하는
모습. 2021.1.4 [사진=삼성전자 제공]
바이든 대통령은 이 회의에서 "공급망 문제는 어느 나라의 일방적인 조치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동맹국 간 조율이 핵심"이라고 재차 동맹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실패할지도 모르는 단일 공급원에 의존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공급망을 다각화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은 글로벌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하며, 이를 위해 회의 참가국에 암묵적으로 미국 편에 설 것을 요구한 것으로 읽힌다.
아울러 바이든 대통령은 회복력 있는 공급망 구축을 위해 △투명성 △다양성과 개방성 및 예측 가능성 △안전성 △지속가능성 등 4가지 핵심 축을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반도체 기업들은 이를 두고 다시 한 번 정보 제출을 압박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정보 제출을 '산업'이 아닌 '안보'와 '한미동맹' 차원으로 이해하고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중국 시장을 아예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반대 목소리도 힘을 내고 있다.
한국 수출의 5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반도체는 중국이 가장 큰 시장이어서다.
산업통상자원부의 '10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한국의 반도체 수출액은 111억7000만달러로 전체 한국 10월 수출액 555억5000만달러의 20.1%를 차지했다.
이중 중국으로의 수출액은 36억7000만달러로 전체 반도체 수출액의 32.8%를 차지했다. 미국 수출액은 5억8000만달러였다.
반도체 공동 대응 '삼성전자-정부' 드림팀 뜰까
삼성전자 미국 오스틴 반도체 공장 전경 [사진=삼성전자 제공]
때문에 삼성전자와 정부가 힘을 합쳐 공동 대응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정치권을 상대로 전방위적인 로비 활동과 설득 과정에 한국의 일관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오는 9~11일 미국 방문길에 올라 한미 양국 간 산업·에너지 협력 강화 및 철강·반도체 등 현안을 대응하기로 했다.
방미 시점은 정보 제출 기한이 끝난 직후이지만 문 장관은 방미 기간 지나 레이몬도 미 상무부 장관과 제니퍼 그랜홈 에너지부 장관을 잇달아 면담할 예정이다.
문 장관은 레이몬도 장관과 만나 한국 반도체 기업이 낸 자료를 설명하고 추가 자료를 내기 어려운 사정 등을 설명할 것으로 전망된다.
각국의 반도체 기업에 정보를 요구한 주체가 미 상무부라는 점에서 문 장관과 레이몬도 장관의 면담은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번 사태 해결사로 나설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부회장은 20조원 규모의 미국 내 삼성전자 제2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부지를 결정하기 위해 이달 중 미국 출장을 계획 중이다.
이 부회장은 출장 기간 미국 정재계 인사들을 만나 민감한 반도체 정보가 공개되지 않도록 설득할 가능성이 높다.
이 부회장은 이르면 주말께 출장길에 오를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지만 오는 18일 재판이 휴정되면서 둘째 주나 셋째 주 사이에 출장을 떠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가까운 대만 TSMC와 한국의 삼성전자가 어떻게 나올지 가장 관심이 크다"며 "정보 제출 요구가 한 번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향후 대책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가장 확실한 방어 전략은 과감하고 선제적인 연구개발(R&D) 투자"라며 "기술적으로 우리가 우위에 서야 미국의 과도한 요구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국가별 반도체 생산 점유율 변화 및 전망/게티이미지뱅크,그래픽=김의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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