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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사

러시아는 왜 학살을 반복하는가..우크라이나 '절멸'로 돌아서는 푸틴

 

 

 

 

[크라마토르스크=AP/뉴시스] 8일(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텔레그램에 공개한 사진으로, 크라마토르스크 기차역 미사일 공격 현장.

 2022.04.08

 

 

 

 

 

 

[사진] 부차(Bucha)에서 발굴된 암매장 시신 중에는 이렇게 손이 뒤로 묶인 경우가

많았다. 군인 포로를 이런 식으로 처형하는 것도 국제법상 전쟁범죄 행위다. 민간인에

대해서는 말할 나위도 없다. (사진, 4월4일 AP-연합)

 

 

 

러시아는 왜 학살을 반복하는가..우크라이나 '절멸'로 돌아서는 푸틴

 

 

 


부차, 모티딘, 보로댠카 등 이번에 러시아군의 학살로 인한 피해가 드러난 도시들은 우크라이나의 북쪽 국경, 수도 키이우 일대에 주로 위치하고 있다.

이 일대에서 수습된 시신은 4백 구를 넘어섰으며, 매일 추가로 시신이 발견되고 있어 전체 피해 규모는 아직 알 수 없다.

 

 

 

 

 

 

 

 

 

 

 

부차에서 서쪽으로 32㎞ 떨어진 모티진(Motyzhyn) 시의 한 숲에서는 오르가 스첸코(50) 시장과 남편 이고르, 아들, 올렉산드르 등 일가족이 포함된 시신들이 발견됐다.

이들은 지난3월 23일 러시아군에 납치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스첸코 시장 일가족 시신은 양 손이 결박된 상태였고, 눈가리개도 씌워져 있었다.

 

특히 스첸코 시장의 시신은 팔과 손가락이 심하게 부러져 있었다고 한다.

러시아 군에 의한 고문의 흔적으로 추정된다.

AP통신이 지역 주민들을 취재한 바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시장 등 지역 공직자들을 생포했고, 이들이 협력하거나 우크라이나 방어군의 정보를 불지 않으면 살해했다.

 

 

 

 

 

 

 

 

키이우 인근 모티진(Motyzhyn) 숲에 암매장된 시신의 발굴, 로이터 4월4일-연합.

 

 

 

 

 

 

미국은 러시아 군의 침공 전부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가지도부 제거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살생부가 작성되었다는 첩보를 공개했었다.

만일 수도 키이우가 함락되었으면, 젤렌스키 대통령도 스첸코 모티진 시장과 같은 운명을 맞았을 수 있다.

더해지는 야만성... '배신자'니까 다 죽이겠다는?


이번에 키이우 주변지역에서 드러난 러시아 군의 학살범죄는 침공 초창기의 민간인 대상 공격보다 더 악질적이다.

침공 초기에는 원거리에서 민간인시설- 방어군 관련시설 가릴 것 없이 포격 또는 폭격을 했다면, 이번엔 직접 사람을 잡아다 고문하고, 성폭행하고, 묶고, 총살한 것이다.

 

 

 

 

 

 

 

키이우 인근 부차(Bucha)에서 발굴된 시신들. 4월6일, AFP-연합.

 

 

 

 


러시아 군은 왜 이런 학살을 저지를까. 처음 푸틴의 계획은 수도 키이우를 신속하게 점령해 우크라이나 지도부를 제거하고 친러 정부를 세우는 것이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군이 저항하지 못할 것으로 오판했을 뿐 아니라, 일단 자신의 군대가 국경만 넘으면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환영해 줄 것으로 믿었다.

 

국경을 넘어온 러시아 부대들이 2~3일치 보급밖에 받지 못했던 것이 그 증거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강력한 저항을 당한 러시아군은 엄청난 전력 손실을 봤다.

이제 푸틴은 "내 것이 될 수 없다면 누구의 것도 될 수 없어. 차라리 죽여버리겠어!" 라고 외치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치정살인극의 남성캐릭터 같은 상태가 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 기사] 푸틴은 어쩌다 '푸틀러'가 되었나

피오나 힐(Fiona Hil) 전 미국 백악관 고문은 서방에서 푸틴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국가안보회의(NSC) 유럽·러시아 선임 국장을 지냈다.

20년간 푸틴을 연구했으며, 여섯 차례 푸틴을 대면한 경험이 있다.

그런 피오나 힐이 최근 영국 더 타임스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모스크바에 대한 '배신자'로 보고 응징 모드로 전환했으며, 우크라이나 장악이 아니라 절멸(annihilation, 깡그리 죽여 없앰)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절멸전쟁(war of annihilation, 독일어로는 Vernichtungskrieg)은 나치 독일이 2차대전 당시 소련을 침공했던 '독소전쟁'의 성격을 가리키는 말이다.

상대국에 어떤 정치적 어젠다를 강제한다든가 국경분쟁을 해결하는 정도를 넘어, 상대방 국가 또는 국민을 완전히 파괴해버리는 것을 목표로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무제한 전쟁을 말한다.

 

나치독일은 소련에 쳐들어가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하거나 독일로 끌고가 강제노동을 시켰다.

소련은 나치 독일과 맞서 싸우느라 전투원만 8백만명 이상, 민간인을 포함하면 2천만명에 이르는 국민을 잃었다.

 

괴물과 싸우면서 괴물을 닮는다는 말처럼, 소련은 독일 침략군을 밀어내고 베를린으로 진격하는 과정에서 독일의 악행을 같은 악행으로 되갚았다.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의 성격을 절멸전쟁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나치의 수법과 가장 닮은 전쟁을 벌이면서 '우크라이나 내의 나치 척결'을 명분이라고 내건 것은 씁쓸한 아이러니다.

쏘아 죽이는 것으로는 부족? 대량으로 굶겨 죽이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총으로 학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규모로 굶겨 죽이려 한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우선은 남부의 전략거점 항구도시 마리우폴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그렇다.

 

러시아군은 2월말부터 지금까지 마리우폴을 포위공격하고 있다.

3월 중순 이후로는 식량과 식수, 의약품의 외부 공급도 사실상 끊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민간인 사망자가 5,000명을 넘었고 사회기반 시설 90% 이상이 파괴된 마리우폴 도시 전체를 말려죽일 심산인 것이다.

 

 

 

 

 

 

 

 

구호물품을 받기 위해 모여든 마리우폴 시민들. 4월5일 로이터-연합.

 

 

 

 

 

 

그런데, 배고픔을 무기로 삼는 학살 시도는 이 정도 규모에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한 나라 굶겨 죽이기: 푸틴은 우크라이나에서 배고픔을 무기로 쓰고 있다」는 제목의 지난 1일자 기사에서, 푸틴이 1930년대 홀로도모르(Holodomor)와 같은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홀로도모르는 현지어로 '사람에 의한 대(大)기근 참사'를 뜻하며, 스탈린이 우크라이나에 조장했던 굶주림과 그로 인한 대규모 사망 사태를 가리킨다.

 

 

 

 

 

 

 

 

홀로도모르 당시인 1933년 하르키우의 거리. 굶주림에 지친 사람과 굶어죽은

시신이 거리 곳곳에 널부러져있는 것은 당시 우크라이나의 익숙한 풍경이었다고

한다. 하버드대 도서관 자료. wikipedia.org.

 

 

 

 

 

우크라이나는 소련 초창기에도 연방 전체를 먹여살리는 곡창지대였다.

1929년 스탈린은 그런 우크라이나에 농업집단화 명령을 내렸고, 우크라이나 농민들은 집단농장으로 이주하거나 땅과 생산물, 농기구 등을 내놔야 했다.

당연히 반발이 클 수 밖에 없었고 곡물 생산도 급감했다.

 

스탈린은 본때를 보이겠다는 식으로 농업 수탈을 강화했고, 밭을 갈 소와 파종할 씨앗까지 압수했다. 반발하는 농장이나 마을은 통째로 블랙리스트에 올려 식량공급을 차단했고, 체포-투옥, 강제이주, 처형 등으로 탄압했다.

이로 인해 1932-33년 우크라이나에서 3백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이번에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벌이는 짓들을 보면 '배고픔의 무기화' 의도가 엿보인다는 게 폴리티코의 분석이다.

전투와 상관없는 농토에 폐기물이나 지뢰를 묻어놓고 간다든지, 농기구, 농로 등 농업시설을 고의로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년같으면 한창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 할 시기라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유럽연합의 농업부문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야누시 보이치에호프스키 EU 집행위원도, 푸틴의 군대가 우크라이나에 굶주림을 창출하고 그것을 무기로 쓰려는 것이라고 현 상황을 해석했다.

우크라이나의 농업기반 파괴는 우크라이나의 기아(飢餓,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림)로 끝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는 밀과 식용유 원료 등의 세계적 수출국이기 때문이다.

세계 농산물시장이 벌써 공급차질을 예상해 값이 뛰고 있고, 당장 우리나라의 식용유, 밀가루 등 식재료 가격이 오르고 있다.

중동과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은 주식인 빵의 가격이 오르게 돼 더 큰 고통을 받을 전망이다.

습관처럼 반복되는 '학살의 도구화'


크렘린은 문제에 봉착하면 '다 죽여버리자'를 해법으로 채택하는 짓을 반복해 왔다.

외국에 대해서만 학살을 자행한 것도 아니다.

자국민도 학살의 대상이 되었다.

 

1937~1938년 스탈린이 권력 강화를 위해 벌인 대(大)숙청(Great Purge)에서는 기록이 남은 처형 희생자만 68만 명이 넘는다.

수용소나 교화소에 갇혀 강제노동과 고문 등으로 고통받다 죽은 사람도 최소 13만여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러한 대규모 숙청은 스탈린 치하 정치경찰로 악명이 높았던 NKVD(내무인민위원회)가 기획하고 집행했다.

 

 

 

 

 

 

 

1937년의 스탈린(가운데)과 NKVD의 수장 예조프(오른쪽). 예조프는 키 150cm

정도의 작은 체구였지만 가학적인 성향으로 피의 숙청을 집행했다.

'스탈린의 개'로 불렸지만 1938년말 토사구팽당했고, 1940년 고문끝에 비참하게

처형되었다. 

 

 

 

 

 

 

 


소련 내의 여러 소수민족들도 학살의 대상이 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그리스 출신자들에 대한 학살이다. 러시아의 기획·탐사 전문 월간지인 '소베르센노 세크레트노(SS)'는 2015년, NKVD가 1937-1938년 사이 그리스계 숙청작전을 벌여 2만2천여명을 총살했다고 보도했다.

 

그리스계가 소련 남부에서 해운, 무역, 농업 등에 종사하며 반혁명 스파이 활동에 연루됐다는 게 공산당이 내세운 이유였다.

카틴(Katyn)숲의 학살


1940년에는 폴란드에서 엄청난 규모의 학살을 자행했다.

이른바 '카틴(Katyn)학살' 또는 '카틴 숲 학살'로 불리는 일련의 학살 사건이다.

서구에선 이번 우크라이나에서 드러난 학살이 2차대전 당시의 카틴 학살을 연상시킨다는 보도가 많이 나왔다.

 

 

 

 

 

1943년 발굴된 카틴 집단 암매장지. 당시 소련과 전쟁중이던 나치 독일이

발굴해 공개했다.

 

 

 

 

2차대전 초기인 1939년, 소련은 폴란드를 점령한다.

숙청 담당기관인 NKVD(내무인민위원회)의 수장은 이 당시 라브렌티 베리야로 바뀌어 있었다.

베리야는 소련에 반기를 들 가능성이 있는 폴란드 지도층 인물들을 모조리 제거해야 한다고 스탈린에게 건의해 승인을 받았다.

 

베리야의 지휘로, NKVD는 1940년 4-5월 사이 폴란드인 장교, 경찰관, 변호사, 기업인, 교사, 성직자, 농민 등 남성 2만2천여 명을 총살했다.

 

학살은 여러 지역에서 자행되었는데, 이가운데 벨라루스 국경 근처 카틴 숲의 구덩이에서 12겹으로 쌓인 3천여 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나중에 이곳에서 발굴된 시신은 4천4백여 구로 늘었다.

이 사건이 '카틴 학살'로 불리게 된 이유다.

 

카틴 학살은 여러가지 끔찍한 기록을 낳았는데, 그중 하나가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사형집행자'로 알려진 바실리 미하일로비치 블로힌(Vasily Mikhailovich Blokhin)의 악마적인 살육 기록이다.

 

 

 

 

 

 

 

 

 

권총을 든 미하일 블로힌으로 알려진 사진.

 

 

 

 

 

 

NKVD 소령이었던 블로힌은 카틴 학살 당시 28일 동안 7천 명 가까운 사람을 자신의 권총으로 사살했다.

블로힌은 도살자답게 가죽앞치마와 어깨까지 올라오는 가죽장갑을 착용한 채 권총으로 자신의 작업실에 끌려온 처형대상자의 두개골 아랫부분을 쏘았다.

하루 3백명 처형을 목표로 삼아 3분에 1명 꼴로 죽였다고 한다.

부차 학살과 판박이…2000년 체첸에서의 '자치스트카' 학살

러시아군은 2000년 체첸 수도 그로즈니 일대에서 '자치스트카 또는 자키스트카 (Zachistka, 싹쓸이, 소탕)'로 불리는 학살을 자행했다.

원래 자치스트카는 건물의 방을 일일이 뒤져가며 적군을 소탕하는 근접전투를 이르는 러시아군의 용어였다.

 

당시 러시아군은 체첸 반군의 뿌리를 뽑겠다며 민간인 가정을 집집마다 뒤져 반군활동에 조금이라도 관여된 것으로 의심되는 남자들을 체포 또는 살해하는 자치스트카 작전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노약자나 여성에게도 총을 쏘거나, 공포에 질린 이들이 숨은 지하실에 수류탄을 던져넣어 수십 명을 살해하는 등의 전쟁범죄 행위를 잇따라 저질렀다.

 

 

 

 

 

 

 

 

2000년 2차 체첸 전쟁 당시, 시신을 대량매장하는 러시아군

(Natalia Medvedeva -ipvnews.org)

 

 

 

 

 

당시의 학살범죄는 휴먼라이츠워치 등 인권단체들에 의해 외부세계에 알려져 국제적 공분을 일으켰고, 이후 서구에서는 '자치스트카'라는 말이 체첸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처럼 쓰이게 되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3일, "당시 러시아군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체첸 민간인을 잔혹하게 처형했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일은 그런 어두운 역사의 그림자를 다시 유럽에 되살리고 있다"고 썼다.

러시아는 대체 왜 자꾸 이러는가

러시아군은 2010년대 중반 시리아 내전에도 개입해서 아사드 독재정권의 민간인 상대 화학무기 공격을 지원했거나 화학무기 개발을 도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러시아군은 시리아 반군지역에 대한 무차별 공중폭격을 통해 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내기도 했다.

 

'아랍의 봄' 시위의 확산을 틈타 중동지역에 퍼지는 서구자유주의를 차단하려면 시리아의 권위주의 정권을 지원해야 한다는 푸틴의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자유주의 서구세력의 확산을 차단하려는 군사행동이라는 점에서, 러시아의 시리아 내전 개입은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과 닮은 꼴이다.

 

 

 

 

 

 

 

 

양민학살하는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는 러시아를 규탄하는 시위, 2018년

터키 이스탄불, 러시아 대사관 앞 (게티이미지)

 

 

 


이런 여러 사례를 살피다 보면, 학살은 구소련부터 이어지는 러시아 핵심부의 집단적 기억 속에는 학살이 유용한 도구의 하나로 저장되어 있는것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나치 독일과 군국주의 일본도 20세기에 끔찍한 학살 범죄를 저질렀지만, 두 나라의 경우 전쟁에 패배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두 나라에서 학살을 포함한 비인도적 전쟁 정책을 주도한 인물들은 전범재판으로 처벌됐고, 국가는 이전 체제와의 단절을 강요당했다.

패전과 전후 재건에 따르는 고난의 시간을 겪으면서, 국민들은 지도자들의 전쟁범죄 명령을 무비판적으로 수행했거나 체제에 순응했던 과거에 대해 일단 반성의 계기를 가질 수 있었다.

 

 

 

 

 

 

 

 

나치 독일의 전쟁범죄를 단죄한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의 피고석.

1945년 10월31일.

 

 

 

 

 


반면 러시아는 패배를 통한 단절과 반성을 강요당한 적이 없다.

2차대전에서 소련은 나치독일을 꺾은 전승국이었으므로 2차대전중 소련이 벌인 학살은 단죄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냉전기에는 공산주의진영의 우두머리로서 세계의 절반을 호령한 슈퍼파워였고, 구소련연방이 해체된 이후에도 지배층은 사실상 그대로 이어졌으므로, 역시 단절과 반성의 계기는 없었다.

오히려 지금의 러시아는 소련 이전으로 퇴행하여 제정러시아를 지향하고 있는 판국이다.

이런 얘기를 쓰면 꼭 따라붙는 반론이 있다.

 

미국도 한반도, 베트남, 중동 등 세계각지에서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주장이다.

맞다. 미군도 전쟁범죄를 저질렀고, 국제형사법정에서 단죄되지 않았다.

 

그래도 미국은 내부 비판여론이 자유롭고, 스스로의 행동을 교정하려는 자정작용이 활발한 나라다.

미군이 전투중 저지른 민간인 살상이나 포로에 대한 비인도적 행위를 여론화해 당사자들을 처벌받게 한 건 미국의 활동가들과 언론이었고, 미국의 사법당국과 법원이었다.

 

권력자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화학물질 테러를 당해 목숨을 잃거나 감옥에 끌려가고 매체 문을 닫아야 하는 나라들과는 다르다.

푸틴의 지지율, 우크라이나 침공 후 오히려 높아져

러시아 국민들의 푸틴 지지율은 우크라이나 침공 후 오히려 높아졌다.

권력자의 입맛에 맞는 국영매체의 선전 외에 다른 정보가 통제되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르지만, 개탄스러운 일이다.

 

 

 

 

 

 

 


1999년 6월부터 러시아 국민들의 푸틴의 지지율을 조사하고 있는 모스크바의

레바다 센터에 따르면, 푸틴의 활동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지난해 여름(2021년 8월)만

해도 61%로 역대 최저 수준이었으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올해 2월 71%, 3월

83%로 급속히 올랐다. 푸틴 집권 20여년 사상 최고 수준에 근접하는 지지율이다.

 

 
 
 

 

 
 

레바다 센터의 데니스 볼코프 국장은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될 때 러시아인들은 충격과 혼란을 느꼈으나 현재 국민들은 러시아가 서방 국가들로부터 포위돼 (공격과 비난을 받고 있으므로) 푸틴을 중심으로 결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내부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은 견디지 못하고 나라를 떠나는 중이다.

러시아 체제 안에서 반발이 일어나 푸틴이 권좌에서 내려오는 것을 전쟁 종식의 유일한 희망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에겐 암울한 현실이다.

 

 

 

 

 

 

 

 


푸틴의 러시아가 저지른 전쟁범죄를 법정에서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지만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참고 기사] 푸틴을 전범으로 처벌하기 어려운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죄를 위한 노력은 시효 없이 계속되어야 한다.

전 인류적인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더욱 중요한 문제다.

김정은이 보고 있기 때문이다.

 

 

 

 

[구성: 이현식 D콘텐츠 제작위원 / 콘텐츠 디자인: 옥지수]

이현식 D콘텐츠 제작위원hyunsik@sbs.co.kr

저작권자 SBS & SBS Digital News Lab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AFP=뉴스1

 
 

 

 

죽거나 갇히거나…푸틴 숨은 재산 폭로한 그들이 사라진다

 

 

#2012년 러시아 야권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공개된 것보다 훨씬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푸틴이 산악지대 호화 리조트 등 부동산 20개, 자가용 비행기 수십대, 호화 요트 4대, 수억원대 시계 11개를 가지고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리고 3년 뒤 그는 모스크바강 다리 위에서 총을 맞아 사망했다.

유족들은 푸틴을 배후로 지목했지만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푸틴의 정적 알렉세이 나발니는 지난해 초 '푸틴 궁전'으로 알려진 흑해의 초호화 리조트를 폭로했다.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가 투입된 이 리조트에는 원형경기장, 지하 하키링크, 개인항구 등을 갖추고 있다.

나발니는 이곳의 경비를 러시아 대통령 경호기구가 맡고 있고 상공은 비행금지구역, 주변 해역은 항해금지구역이라며 푸틴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2020년 독살 시도로 한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나발니는 현재 횡령 등의 혐의로 러시아 감옥에서 복역 중이다.

러시아 내부에서 푸틴의 자산을 폭로한 인물들은 의문사를 당하거나 투옥되고 있다.

푸틴의 자산을 공개하는 게 러시아에서 극도로 위험한 행위라는 얘기다.

325조원 부자 머스크 "푸틴이 나보다 더 부자일 것"러시아에서 공식적으로 알려진 푸틴의 재산은 모스크바에 있는 작은 아파트 1채와 연봉 14만달러(약 1억7000만원)가 전부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20여년간 러시아 최고 권력자로 군림하며 러시아 신흥재벌(올리가르히)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만큼 푸틴의 실제 자산은 세계 최고 부자 수준일 것으로 보고 있다.
자산 2680억달러(약 325조원)을 보유한 세계 최고 부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지난 3월 "푸틴이 아마 나보다 훨씬 부자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러시아 투자회사를 이끌었던 빌 블라우더 영국 헤지펀드 투자자는 2017년 미 의회에 출석해 "푸틴의 재산이 2000억달러에 달할 수 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당시 포브스 기준 세계 최고 부자였던 빌게이츠의 재산 890억달러보다 2배 이상 많은 수준이다.

 

 

 

 

 

 

 

셰에라자드 내부/사진=트위터

 
 

 


화장실 휴지걸이도 금칠? '푸틴 것' 입증 어려워지난달에는 푸틴 소유로 추정되는 8000억원 상당의 초호화 요트가 공개되기도 했다.

 

아랍 고전 설화 '천일야화'에 등장하는 페르시아 왕비의 이름을 본뜬 '셰에라자드'(세헤라자데)란 이름의 6층짜리 초대형 요트 내부는 수영장, 스파, 운동장, 헬리콥터 착륙장을 갖췄으며 화장실 휴지걸이까지 금칠이 된 호화로운 모습이었다.

푸틴은 또 자신의 전처, 정부, 자식 등을 통해 해외에 호화 부동산을 다수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프랑스 남부의 호화 빌라에는 푸틴의 전처가, 모나코에 호화 저택에는 푸틴의 과거 정부가 푸틴 사이에서 낳은 딸과 함께 살고 있다.

 

리듬체조 선수 출신인 '푸틴의 연인' 알리나 카바예바는 푸틴과 낳은 4명의 자녀와 함께 스위스에 거주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문제는 수많은 자산이 푸틴의 것으로 추정되지만 차명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 뿔뿔이 흩어져 있어 푸틴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셰에라자드의 경우 마셜제도에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유령회사가 소유주로 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NYT)는 6일 러시아 내부에서도 푸틴의 자산을 두고 다양한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며, 미국과 동맹국이 압류나 몰수 등의 제재를 위해 푸틴의 자산을 추적하고 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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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외곽에서 묘지 작업자들이 부차 마을에서 살해된

민간인 희생자들의 시신을 안치소로 이송하기 위해 트럭에 싣고 있다.

2022.4.7 ⓒ 연합뉴스 

 

 

 

 

 

 


 

연합뉴스

 

 

 

 

 

국제형사 재판소 건물 전경 2021.5.20 연합뉴스

 

 

 


 

▲ 몰도바에 위치한 우크라이나 난민 임시대피소. ⓒ 피스윈즈코리아

 

 

 

 

 

(모스크바 EPA=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시내 루즈니키 경기장에서 열린 크림반도 병합 8주년 기념 콘서트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2022.3.20 jsmoon@yna.co.kr

 

 

 

 

 

제노사이드와 푸틴의 운명

 

 

 

(서울=연합뉴스) 정규득 논설위원 = "음악의 반대가 무엇입니까?

폐허가 된 도시와 죽은 사람들의 침묵입니다.

전쟁으로 인한 침묵을 여러분의 음악으로 채워주세요"

 

 

지난 4일(현지시간) 열린 제64회 그래미 시상식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깜짝 등장했다.

그는 사전녹화한 화상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음악인들은 턱시도 대신 방탄복을 입는다.

다친 사람들을 위해 병원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말로 자국의 참혹한 상황을 전달했다.

 

그러면서 세계인들에게 '침묵을 제외한 모든 도움'을 청했다.

그의 연설은 우크라이나 소도시 부차에서 러시아군이 자행한 민간인 집단학살을 놓고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이 들끓는 상황에서 이뤄졌다.

젤렌스키는 이날 러시아의 만행을 '제노사이드'(genocide)로 규정했다.

 

제노사이드는 인종을 뜻하는 그리스어 'genos'와 살인을 뜻하는'cide'의 합성어다.

유대계 폴란드인이자 법률학자인 라파엘 렘킨(Rafael Lemkin)이 1944년 처음 사용했다.

국제법상 '비인도적 폭력 범죄'를 가리키는 용어로 정립된 것은 그로부터 4년이 지나서다.

 

1948년 12월 유엔 총회는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Prevention and Punishment of the Crime of Genocide, CPPCG)'을 채택하면서 '특정 국민과 민족, 인종, 종교, 정치 집단의 전체 또는 일부를 절멸시킬 목적으로 행해지는 폭력'을 제노사이드로 정의했다.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한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에 충격을 받은 국제사회가 다시는 그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려고 만든 국제법이다. 우리나라는 1950년 이 조약에 가입했다.

1932∼1933년 우크라이나의 '홀로도모르'도 집단학살의 대표적 사례다.

스탈린 정권의 무자비한 수탈과 탄압으로 대기근이 발생해 많게는 1천만 명이 굶어 죽었다.

 

홀로도모르는 '기아로 인한 대량살인'(mass killing by hunger)이라는 뜻이다.

2차대전 후 캄보디아에서 '킬링필드'로 200만 명이 숨졌고, 옛 유고슬라비아에서는 '인종청소'로 1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중세 십자군이 유대인들을 불에 태워 죽인 것이나, 고대 로마가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뒤 카르타고를 파괴한 것도 지금 시각에서 보면 전쟁범죄다.

 

이번 '부차 학살'이 제노사이드에 해당하는지 현재로선 단언하기 어렵다.

미국은 푸틴을 '전범'이라 칭하면서도 제노사이드로 규정하는 데는 신중한 입장이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조사에 나선 만큼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11일 한국 국회에서 화상 연설을 한다.

국제사회의 지지와 연대를 호소할 것으로 보이지만, 국제사회도 마땅한 방법이 없다.

그는 5일 유엔 안보리 연설에서 유엔의 무능과 무기력을 개탄했는데, 설령 부차 사건이 제노사이드로 결론 나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무탈할 것이다.

 

제노사이드의 단죄는 권좌에서 쫓겨나거나 국외 추방이 돼야 가능하다.

'발칸의 도살자' 밀로셰비치도 실각 후 1년이 지나서야 체포됐다.

그런데 푸틴은 종신집권 체제를 구축한 사실상의 황제다.

지지율도 80%를 넘는다.

 

ICC가 기소를 해도 실효성이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러한 푸틴도 끝내 피해가지 못할 심판대가 있으니 '역사의 법정'이다.

그는 21세기 가장 야만적인 독재자와 침략자의 한 명으로 기록될 것이다.

 

 

 

 

wolf8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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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6일(현지시간)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에서

세르게이 멜리코프 다게스탄 공화국 대통령을 접견하고 있다.크렘린궁 제공

 

 

 

 

 

[세계는 지금] 푸틴 야욕에 경제 추락…러시아 국민도 피해자

 

서방 "푸틴이 두 딸에 재산 은닉 의혹"

러시아 경제성장 -10%~-20%대 전망

 

 

 

 

 

국제사회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강화한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일가의 막대한 재산 규모가 조명받고 있다.

푸틴 재산이 200조 원이 넘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반면 러시아 경제는 급속히 후퇴 중이다.

해외 전문가들은 올해 러시아 경제성장률이 -10%~ -20%로 역성장해 장기적으로 옛 소련 시절로 회귀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국제사회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강화한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일가의 막대한 재산 규모가 조명받고 있다.

푸틴 재산이 200조 원이 넘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반면 러시아 경제는 급속히 후퇴 중이다.

 

해외 전문가들은 올해 러시아 경제성장률이 -10%~ -20%로 역성장해 장기적으로 옛 소련 시절로 회귀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공개된 재산은 1억7000만 원

공개된 푸틴의 자산은 모스크바에 있는 작은 아파트 1채와 연봉 14만 달러(한화 약 1억7000만 원)가 전부다.

비공개 자산을 합치면 200조 원이 넘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때 러시아 최대 외국인 투자자로 꼽혔던 펀드와 자산관리회사를 운영한 미국 금융가 빌 브라우더는 2017년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푸틴의 개인 재산은 최대 2000억 달러(약 248조 원)에 달할 수 있다”고 폭로했다.

이탈리아 당국은 슈퍼요트 ‘셰에라자드’ 소유주를 푸틴으로 추정한다.

길이 140m에 헬기 착륙장 2개를 갖춘 이 요트 가격은 7억 달러(약 8600억 원) 수준. 반면 ‘셰에라자드’는 마셜제도에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유령회사가 소유주로 표기돼 있어 실제 주인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

2012년에는 러시아 야권 지도자인 보리스 넴초프가 “푸틴이 20개 부동산과 수십 대의 자가용 비행기는 물론 요트 4대를 사용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넴초프는 2015년 모스크바강 다리 위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유족들은 푸틴이 암살 배후라고 주장했으나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투옥된 러시아의 반체제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도 지난해 ‘푸틴 궁전’으로 알려진 흑해의 초호화 리조트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0억 달러(한화 약 1조2000억 원)가 투입된 리조트 건설 경비는 러시아 대통령 경호기구가 맡는 것으로 알려졌다.

푸틴의 은닉 재산 대부분은 영국 런던에 있다는 의혹도 나온다.

영국 정부가 전담팀을 꾸려 푸틴 개인 재산 추적에 나선 이유다.

●“푸틴 두 딸이 재산 관리”

서방이 추가 제재 명단에 넣은 푸틴의 두 딸 마리아(37)와 카테리나(36)도 상당한 재력가로 알려졌다. 2015년 푸틴은 연례 기자회견에서 딸에 대한 질문에 대해 “딸이 자랑스럽지만 절대 공개적으로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또 관영 타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선 딸들이 “러시아에서만 교육을 받았다.

3개 국어를 구사한다”고 자랑했다.

외신에 따르면 장녀 마리아는 의료서비스 분야 전문 러시아 투자회사인 노멘코의 공동 소유주다.

차녀 카테리나는 모스크바대학의 과학연구진흥재단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은 푸틴의 두 딸을 제재 대상에 포함한 이유에 대해 “푸틴의 자산 가운데 상당 부분이 가족들에게 은닉돼 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8일 “미국이 족벌주의적이면서 부패한 푸틴의 모습을 러시아 국민에 폭로하는 효과를 내기 위해 두 딸을 제재했다”고 분석했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UC버클리)의 스티븐 피시 정치학 교수는 “푸틴은 자신의 정권이 현대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이길 바란다”면서 “현실이 이런 바람과는 반대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전략은 좋은 구상이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2022년 4월 7일 모스크바에서 보행자들이 러시아 최대 민간 은행인 알파 은행 지점을

지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옛 소련으로 복귀하는 러 경제

푸틴이 막강한 권력을 바탕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는 반면 러시아 경제는 침체일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을 인용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10%에 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EBRD는 당초 올해 러시아의 성장률이 3%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몇몇 분석가들은 올해 러시아 경제성장률이 -20%를 기록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러시아는 주요경제 지표인 루블화 환율방어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다른 경제 지표와 달리 환율만큼은 숨기거나 조작할 수 없어 러시아가 환율 방어에 모든 힘을 쏟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앞으로 몇 달 동안 물가가 급등하고 국내총생산(GDP)이 급감한다 해도 푸틴 정부가 이를 인정하겠는가.

아마 아닐 것”이라며 “권위주의 정부는 종종 불리한 경제 지표를 숨기려 한다”고 말했다.

크루그먼의 경고대로 러시아 실물경제는 위축되는 중이다.

NYT는 약 500개의 해외기업이 러시아 지분 처분이나 투자·운영 철회를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유럽연합(EU)이 7일 러시아산 석탄 수입과 러시아 선박의 역내 항구 진입 금지에 합의하면서 러시아는 더 고립되는 모양새다.

 

120일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오는 8월 발효되는 러시아 석탄 금수 조치는 러시아 에너지를 겨냥한 EU의 첫 제재라는 의미가 있다.

미국과 달리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이 큰 EU는 이 분야의 제재에 미온적이었다.

 

EU는 석탄의 45%를 러시아에서 수입한다. 금액으로는 연간 40억유로(약 5조3000억 원) 규모다.

이번에 같이 금지되는 러시아산 주요 원자재와 장비의 경우는 연간 55억유로(약 7조300억 원) 규모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페루의 수도 리마 도심에서 7일(현지 시각) 시위대가 페드로 카스티요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푸틴이 불붙인 인플레이션···“물가 올라 못살겠다” 지구촌 곳곳 항의 시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길어지며 치솟는 물가에 지구촌 민심이 폭발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공급망 붕괴로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심화된 가운데 전쟁이 유가와 곡물값이 급등시키며 물가 상승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 이어 남미와 유럽에서도 연료와 식량 가격 상승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7일(현지시간) 라레푸블리카 등 외신에 따르면 페루에서 연료 가격 상승에 항의하는 트럭 운전기사들의 고속도로 봉쇄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수도 리마를 비롯해 이카, 라리베르타드, 우앙카요 등 페루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는 지난달 28일 트럭 기사들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연료 가격이 급등하며 생계 유지가 어려워진 기사들이 고속도로를 봉쇄하고 시위를 벌인 것이다.

 

여기에 비룟값 상승으로 신음하는 농민들도 가세했다. 지금까지 열흘간의 시위 기간동안 최소 6명의 사망자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페루 정부는 이날 전국 도로망에 30일간의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미국 CNN은 “페루의 시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어떻게 전 세계 시장에 영향을 주는지, 어떻게 불안정을 부추기고 정치적 분열을 심화하는지를 보여준다”고 전했다.

 

 

 

 

 

 

7일(현지시간) 스리랑카 총리 관저 입구 도로에서 가격 인상과 연료 부족에 반대하는 시위자

들이 항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7일(현지시간)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시민들이 등유를 사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스리랑카는 극심한 경제난 속에 식량, 연료, 의약품 등 필수품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AP연합뉴스

 

 

 

 

 

고물가로 민심이 폭발한 건 페루만이 아니다.

인도 뉴델리에서는 폭등한 연료값에 항의하는 오토바이 운전사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극심한 에너지난과 경제난을 겪고 있는 스리랑카에서는 정부의 무능을 규탄하는 반정부 시위가 격화하며 내각 장관 전원이 사임하는 등 정국이 혼란에 빠졌다.

시위를 촉발시킨 요인은 식량과 에너지 가격 상승이 초래한 생활고다.

석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 부국인 러시아와 밀, 옥수수 등 주요 곡물 수출국인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공급이 막히면서 올 들어 국제유가는 28%, 밀 선물 가격은 37% 급등했다.

 

3월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식량가격지수(FFPI)는 전달(141.4) 대비 12.6% 급증한 159.3포인트로 1996년 지수 도입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FFPI는 2월에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이를 한 달 만에 경신한 것이다.

 

각국의 정치 경제 상황은 다르지만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쟁이 이미 코로나발 인플레이션에 직격타를 맞은 신흥국들의 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산 밀 의존도가 높은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은 식량 안보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우크라이나산 곡물 의존도가 80%가 넘는 이집트와 레바논 등은 빵값이 2배 가까이 오르며 식량 위기에 직면했다.

 

일각에선 2008년 밀가루 값 폭등 사태를 계기로 촉발된 2010년 ‘아랍의 봄’ 사태가 재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아프리카 수단에서는 지난해 10월 군사 쿠데타 이후 식량 가격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연일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고유가와 근로조건에 항의해 파업 중인 스페인 트럭 운전사들이 지난달 25일

(현지시간) 수도 마드리드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서방의 선진국들도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트럭 기사들이 비싼 기름값에 항의하며 고속도로를 막고 시위를 벌였고 그리스 농부들은 지난달 중순 아테네의 농업부까지 트렉터를 몰고 와 지원책을 요구했다.

 

전쟁 발발 이후 영국을 비롯해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연합(EU) 주요국들의 물가가 급등하며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수십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영국 정부는 치솟는 물가로 가계 생활비 압박이 커지자 내년 3월까지 유류세를 리터당 5펜스(약 80원) 내리고 저소득층의 소득세 부담 덜어주기로 했다.

지난달 영국의 물가상승률은 30년 만에 최고치인 6.2% 기록했다.

 

 

 

 

 

 

8일(현지 시각)독일 베를린 브란데부르크 문 앞에서 러시아에 대한 석유 금수 조치를

지지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집회가 열리고 있다./AP 연합뉴스

 
 

 

 

푸틴을 사랑한 獨 엘리트들

 

 

러시아군이 키이우 인근 ‘부차’에서 저지른 민간인 학살이 확인된 지난 3일(현지 시각),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4년간 계속된 대러 양보 정책의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메르켈과 사르코지를 부차로 초청한다”고 말했다.

 

지난 2008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반대해 무산시키고, 이후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연결 같은 대러 유화책을 계속한 것을 비판하는 발언이었다.

 

이틀 후인 5일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도 인터뷰에서 “독일은 이 전쟁을 막는 데 실패했다. 푸틴을 오판했다”고 실패를 인정했다.

사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취재하며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도 독일의 대러 정책이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시절인 2005년 러시아와 노르트스트림2 프로젝트에 서명한 뒤, 실제 가스관이 완공된 지난해까지 이를 중단할 만한 사건은 얼마든지 있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간 조지아를 침공(2008년)했고,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합병(2015년)했으며,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방사성 물질 ‘폴로늄’이나 화학무기 ‘노비촉’ 같은 것으로 정적(政敵) 제거를 시도했다.

 

푸틴을 믿을 수 없었던 미국과 우크라이나, 폴란드 등은 노르트스트림2에 줄곧 반대했다.

그런데 슈뢰더에 이어 메르켈까지 16년간 독일은 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 패닉한 독일인들은 탈원전을 서둘렀다.

그런 와중에 독일이 쓰는 천연가스의 30%를 공급하던 네덜란드가 최대 가스전의 폐쇄를 결정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은 독일이 직면한 에너지난을 해결할 손쉬운 해법이었다.

그럼에도 1225km의 가스관으로 독일과 러시아를 꼭 연결할 필요는 없었다.

도대체 왜 독일인들은 유럽의 안보를 쥐고 흔들 수단을 러시아의 손에 쥐어주려 했던 것일까.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지난달 28일 “푸틴의 유용한 독일 바보들”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메르켈을 포함해 “’오스트폴리틱(동방 정책)’이나 ‘교류를 통한 변화’ 같은 1970년대 데탕트 정책의 향수에 눈먼 동세대의 모든 독일 정치인”이 문제였다고 분석했다.

 

구소련 공산권과의 대화·교류가 냉전 종식으로 이어졌다는 일종의 ‘전설’에 심취한 독일 엘리트들의 노스탤지어가 대러 정책을 그르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대화와 교류로 적대적 상대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란 감성, 가스관 연결로 상호 의존도를 높이면 평화가 온다는 근거 없는 믿음, 그 감성과 믿음을 공유하는 한 세대의 정치인들. 모두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였다.

적어도 독일은 직접 그 대가를 치르지는 않았지만,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