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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사

제재 열쇠 쥔 독일, 우크라 지원 더디지만 '전진

 

독일 국기 [로이터 연합뉴스 

 

 

 

 

 

 

[베를린=AP/뉴시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지난 3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기자회견하고 있다. 2022.04.05.

 

 

 

 

 

 

 

 

[모스크바=AP/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항공 산업 지원을 위한 고위 당국자 회의에 참석한 모습. 2022.04.05.

 

 

 

 

제재 열쇠 쥔 독일, 우크라 지원 더디지만 '전진

 

 

시아에 에너지 의존 커 서방 '약한 고리'…점차 무기·난민 지원

젤렌스키 "독일 냉정하다"면서도 "호의적 변화" 평가

 

 

 

(서울=연합뉴스) 송병승 기자 = 러시아를 압박하는 경제 제재의 열쇠를 쥔 유럽 최대 경제 강국 독일이 더디고 조심스럽지만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독일은 우크라이나와 과거사의 '악연'으로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다. 침공 전만 해도 오히려 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독일은 러시아에 에너지 의존도가 높아 서방의 제재에 미온적이어서 '약한 고리'로 지목되기도 했다.

 

여전히 독일은 미국, 영국 등 서방 주요국과 비교해 발걸음이 무겁다.

 

크리스티안 린드너 독일 재무장관은 EU가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 수입을 중단하는 것은 아직 가능하지 않다고 못 박았다.

그는 "우리는 러시아와 모든 경제적 관계를 끊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가스 공급을 끊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우리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0일 독일 언론과 인터뷰에서 "독일은 우리에게 소극적이고 냉정한 모습에 머물고 있다"며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냉정한' 독일은 그러나 최근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집단 학살한 정황이 드러나면서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 6일 연방하원 연설에서 "이런 전쟁범죄를 저지른 당사자와 이를 명령한 이들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EU의 새로운 제재로 러시아에 대한 압박 수위는 더 높아질 것이라며 "러시아가 이 전쟁에서 패배하도록 하는 게 우리의 지속적 목표"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독일의 '약점'인 러시아에 대한 석유와 가스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슐츠 총리의 이 같은 발언은 그동안 러시아 에너지 제재 동참을 주저해온 독일의 입장 변화를 시사하는 것으로 주목된다.

 

 

 

 

 

 

 

블라디미르 푸틴(좌)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하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타스 연합뉴스 

 

 

 

실제로 독일은 최근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를 위해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와 에너지 협정을 체결하는 등 러시아 의존을 줄이려는 노력에 착수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독일의 태도를 비판하면서도 10일 숄츠 총리와 통화한 뒤 "우크라이나에 대한 독일의 입장이 호의적으로 바뀌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독일은 또 러시아 침공 초기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는 것을 꺼렸지만 인도주의적 참사가 계속되고 전쟁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서서히 정책을 수정하는 움직임이다.

독일은 분쟁지역에 살상 무기를 보내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우크라이나에 대전차 무기 1천정과 군용기 격추를 위한 휴대용 적외선 유도 지대공 '스팅어 미사일' 500기를 우크라이나에 공급했다.

독일 야당은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탱크와 같은 중무기를 보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숄츠 총리는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충분한 무기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이미 많은 무기와 장비를 보냈다고 반박하면서 독일 연방군의 무기 재고를 파악해서 합리적이고 신속하게 무기를 추가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무상 지원과 더불어 독일 군수업체 라인메탈은 올해 연말까지 마르더 장갑차 35대를 우크라이나에 납품할 예정이다.

독일 군수업계에서는 이 밖에 우크라이나에 유탄포 장갑차 100대를 공급하겠다고 제안했다고 독일 언론이 전했다.

 

독일은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에도 적극적이다.

독일은 우크라이나 인근 폴란드와 루마니아 등으로 들어온 난민을 독일로 실어나르고 있다.

지금까지 독일에 도착한 우크라이나 난민은 30만명을 넘어섰다.

 

독일 정부는 이들 난민에게 기초생활 수급제도를 적용받는 수준의 생활을 보장하기로 했다.

독일은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을 위해 20억 유로(약 2조6천700억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songbs@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부차=AP/뉴시스] 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 부차 마을에서 자원

봉사자들이 살해된 민간인들의 시신을 옮기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의

민간인 학살로 보이는 증거가 드러나면서 전격적인 비난에 직면하고 있다.

2022.04.05.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 높은 독일의 고민

 
 
 
 

민간인 학살 드러나 대러 에너지 수입 중단 압박 커져
동독때 러와 연결된 파이프라인 등 과제 해결 어려워
우크라이나 에너지·무기 지원에도 러산 에너지 필요
감축 노력 상당히 진전됐지만 당장 끊는 건 불가능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 등 전쟁범죄 행위가 폭로되면서 대러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러시아로부터 막대한 에너지를 수입하는 독일에 대해 수입 중단을 촉구하는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5일(현지시간) 독일이 러시아로부터 에너지 수입을 끊지 못하는 이유를 탐색하는 기사를 실었다.


지난해 독일은 전체 석유수입량의 3분의1을 러시아로부터 들여왔다. 독일 수입 석탄도 절반 가량이 러시아산이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석유, 석탄이 독일 경제와 주민들의 삶에 깊이 각인돼 있다.

독일과 시베리아를 잇는 첫번째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은 1980년대초 건설됐다.

이처럼 냉전시대의 유산이 독일 동부 지역 에너지 인프라스트럭처에 그대로 남아 있기에 독일이 다른 에너지 공급원을 찾기가 어렵다.

유럽 지도자들은 최근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에너지를 포함시킬 것인지를 두고 논란을 벌이고 있다. 이 와중에 러시아 에너지가 꼭 필요한 독일이 곤혹스런 입장에 처해 있다.
이날 룩셈부르크 유럽연합(EU) 회의 참석차 출발한 크리스티안 린드너 독일 재무장관은 "독일이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에 크게 의존하게 된 것은 실수"라고 말했다.

그는 독일이 러시아에 대한 5번째 제재 방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우르술라 본 데어 라이옌 EU의장이 5일 밝힌 석유 수입 금지 등의 조치가 포함된 방안이다.

린드너 장관의 발언은 에너지 수입 제한이 러시아보다 독일에 더 큰 피해를 준다며 저항해온 독일의 입장이 변했음을 시사한다.

꼬마곰 젤리부터 화학, 철강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 대표들은 가스, 석유, 석탄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지 않으면 생산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독일 가정은 절반 가까이 천연가스로 난방한다. 또 발전소도 천연가스를 많이 사용한다.

 

또 화학, 광산, 제약 부문의 강력하 노동조합들이 가스 수입을 줄일 경우 실업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한편 레오폴디나 한림원의 경제학자들은 지난달 러시아 천연가스의 단기적 수입 중단은 다른 에너지원 활용으로 감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또 로베르트 하벡 독일 에너지장관은 카타르와 미국을 순방해 에너지 협력을 모색함으로써 준비하는 모습이다.

독일은 이미 올들어 3개월 동안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를 15% 줄여 40% 이하로 내렸다.

그러나 산업계 지도자들은 러시아 천연가스 수입금지 제재에 반발하고 있다.

마르틴 브루더뮐러 BASF사 CEO는 "꼭지를 잠그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다른 데서 구하거나 다른 에너지원으로 전환하는 데는 몇 주가 아니라 4~5년이 걸린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자이퉁지와 인터뷰에서 "수십년 동안 일궈온 나라 경제 전체를 망가트리려 하느냐? 그런 시도는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초콜릿, 스낵, 사탕 생산업체들도 가스가 부족하면 고에너지 식품을 생산할 수 없게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독일제과협회는 "가스는 독일 제과업체들에게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이다.

식품을 생산하는 독일 제과업체들은 독일인들에게 비중이 크다.

특히 식품이 부족한 비상시기에 더 그렇다"고 밝혔다.
지난 주 리투아니아는 4월부터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을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인구 280만명의 리투아니아는 전체에너지에서 천연가스 의존도가 11%인데 비해 독일은 27%에 달한다.
독일 정부는 올해 러시아산 천연가스 560억 입방m 수입을 대체하기 위해 액화천연가스 수입 터미널을 건설키로 하고 5억유로(약 6643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액화천연가스는 천연가스 대체품으로 먼 나라로부터 해상으로 수입한다.

러시아는 또 가즈프롬 독일 국영에너지기업의 자회사들이 소유하는 방식으로 독일에 수천km에 달하는 파이프라인과 핵심 저장탱크를 보유하고 있다.

그중 아스토라가 서유럽 최대 천연가스 저장탱크를 보유하고 있다.

하벡 장관은 4일 가즈프롬의 독일내 주 자회사이자 아스토라의 모회사인 가즈프롬 게르마니아를 최소 9월까지 국가가 직접 통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러시아로부터 가스 주도권을 되찾는데 핵심조치다.

독일에서 정제되는 석유의 3분의 1 이상이 이중 상당량이 러시아산으로 냉전시대 동유럽에 설치된 파이프라인을 통해 수입된다.

이에 따라 러시아산 석유를 다른 곳에서 수입하려면 지난해 270억t을 러시아로부터 수입한 막대한 양의 수입대체국을 찾아야 하는 동시에 독일 동부 지역 정유공장에 이들 석유를 공급할 수단도 확보해야 한다. 동서독 사이엔 파이프라인이 설치돼 있지 않다.

독일은 올들어 3개월 동안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35%에서 25%로 낮추었다.

4월 중순부터 독일 동부 로이나 정유공장은 러시아산 석유를 지난해의 절반만 정제하고 서독에서 트럭과 철도로 운송되는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 석유를 처리할 예정이라고 독일 경제부가 밝혔다.

반면 독일 봉부 슈베트에 있는 PCK 정유공장은 러시아 에너지 회사 로스네프트가 소유한 곳으로 러시아산 석유 대신 다른 곳의 석유를 처리하는데 호응하지 않고 있다.

독일 언론들은 에너지부가 국가가 에너지 안보를 위해 이 회사를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석탄은 대체가 쉬운 에너지원이지만 2018년 탄광을 모두 폐쇄한 독일은 러시아로부터 수입 석탄의 절반을 수입해왔다.

지난 6주 동안 독일은 공급망을 조정하고 새로운 공급계약을 체결함으로써 러시아산 석턴 수입을 절반 가량 줄였다고 경제부가 밝혔다.

현재 석탄 수요의 25%만이 러시아산 석탄이다.

여름까지는 모든 석탄 수입을 중단할 계획이다.

하벡장관은 그 이전까지는 독일이 경제 엔진 역할을 하는데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또 지난달 유럽 전력망에 연결된 우크라이나에 에너지를 공급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하벡 장관은 우크라이나에 이례적으로 무기공급을 시작한 독일의 무기 생산에도 러시아에서 수입한 석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석탄을 어떻게 대체할 수 있을 지는 아직 방안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하벡 장관은 지난주 ZDF TV와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자원 공급 요청을 받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인프라스트럭처가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AP Photo

 

 

 

독일이 러시아 제재 망설이는 진짜 이유

 

 

 

독일인의 65%가 ‘경제에 나쁜 영향이 있더라도 러시아를 제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독일의 태도가 변했지만 ‘러시아 에너지 수입 중단’만은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3월13일 독일 공영방송 ARD의 시사 프로그램 〈안네 빌〉에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이 화상으로 출연했다.

 

그는 독일과 러시아의 협력적 관계가 러시아의 ‘전쟁 권력’ 형성에 일조했다고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요청했다.

첫 번째는,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방어용 무기를 공급해달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 독일이 대(對)러시아 경제제재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라고 요구했다.

마지막 요청은,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 가입에 대한 독일의 지지다.

하지만 쿨레바 장관의 요구는 독일 정부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위기에 대한 입장을 상당 부분 바꾼 뒤에 나온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에 군대를 집결시키며 전운이 감돌던 당시까지 독일 정부는 러시아에 온건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지난 2월22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독일 정부는 ‘노르트스트림 2’(러시아와 독일을 직접 잇는 천연가스 수송라인)에 대한 운영 허가 절차를 즉각 중단시켰다.

 

노르트스트림 2는 러시아 국영 가스기업인 가즈프롬이 약 80억 유로를 투자해 진행한 대형 경제 프로젝트다.

 

러시아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독일로서는 완공 이후 허가 절차만 남긴 노르트스트림 2에 대한 제재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러시아가 이에 대한 보복 조치로 이미 운영 중인 노르트스트림 1의 가동을 중단시켜 독일에 에너지 대란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까지 독일 정부의 원칙은 ‘분쟁지역엔 무기를 수출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실상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거부했던 셈이다.

 

그러나 침공 이후인 지난 2월27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연방의회에서 ‘대전차 무기 1000기와 군용기 격추를 위한 지대공 스팅어 미사일 500기를 우크라이나에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숄츠 총리는 이와 함께 독일의 군비 증강 계획도 발표했다.

우선, 연방군 강화를 위해 2022년에 1000억 유로 규모의 추가 특별예산을 편성한다.

 

또한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을 국방비로 편성하라’는 나토의 요구에 맞춰 독일의 국방비를 증가시킬 것이라고 발표했다.

숄츠 총리는 푸틴이 러시아 제국을 완성하기를 원한다며, 독일도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 정부의 이런 기조 변화는 입장 발표 전날(2월26일) 숄츠 총리에 의해 급작스럽게 결정되었다. 〈차이트〉가 인용한 정부 관료의 말에 따르면,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가장 정신없는 하루”였다.

‘정신없는 하루’는, 다른 나라 정부들이 독일에 우크라이나 지원을 요청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날(2월26일) 아침, 네덜란드 정부는 자국이 보유한 독일산 대전차 무기 400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것을 승인해달라고 독일 정부에 요청했다.

독일산 무기를 매입한 국가들은 독일 정부의 승인 없이 해당 무기를 다른 나라에 보낼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간, 폴란드 총리와 리투아니아 대통령도 갑작스럽게 ‘독일의 적극적 대응’을 요청하며 숄츠 총리를 방문했다.

이날 열린 G7 고위 외교관 화상회의에서는 미국과 영국 측 대표가 ‘우크라이나에 스팅어 미사일을 공급할 계획이며 이후 48시간이 우크라이나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며 독일을 압박했다.

 

이에 따라 무기 지원을 반대했던 아날레나 베르보크 독일 외무장관과 크리스티네 람브레히트 국방장관이 각각 ‘우크라이나에 스팅어 미사일 공급’을 요청하거나 지원 가능한 무기 목록을 제시하는 등 입장을 180° 바꿨다.

독일, 상당한 에너지를 러시아에 의존

 

이날 독일 정부는 러시아 은행들을 ‘스위프트(SWIFT:국제 금융거래 결제망)’에서 배제하는 데 대한 찬성 여부도 결정해야 했다.

당시까지 독일 정부는 러시아로부터 공급받는 가스 대금을 결제하지 못할 경우 벌어질 수 있는 에너지 대란이 두려워 이 결정을 망설여왔다.

 

그러나 결국 2월26일 저녁, 숄츠 총리는 내각회의 대신 총리실 측근들과 논의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국방비 특별편성’ ‘러시아 은행들을 스위프트에서 배제’ 등의 결단을 내린다.

이런 방향 전환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정부와 독일 내 일부 여론은 더 강경한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서방국가들에 전투기 지원 및 EU 가입 절차의 신속화를 요구한다.

그러나 독일 정부는 ‘전투기 지원이 전쟁 국면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며 일단 거부한 상태다. EU 규정상 우크라이나의 빠른 가입 역시 불가능하다는 시각이 강하다.

 

 

 

 

 

 

 

3월15일 독일 동부 슈베트에서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활동가들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를 요구하며 정유공장으로 통하는 철로를 막은 채 시위하고 있다.ⓒdpa

 
 
 
 
 
 
 

그러나 독일 정부에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러시아산 에너지의 수입 문제다.

〈슈피겔〉에 따르면, 독일이 2020년 수입한 천연가스의 55%, 석탄의 46%, 석유의 36%가 러시아산이다.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가 낮은 미국과 달리 독일이 갑자기 러시아산 천연가스와 석유의 수입을 전면 중단하기는 어렵다.

 

앞서 나온 ARD의 시사 프로그램 〈안네 빌〉에 나온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경제기후장관이 ‘독일은 러시아 에너지로부터 자립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밤낮으로 노력 중’이라고 밝힌 이유다.

하베크 장관은 에너지차관에게 가능한 한 최대치의 액화가스를 비싼 가격으로라도 글로벌 차원에서 구입하라고 지시한 상태다.

 

노르트스트림 1(지금까지 운영해온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천연가스 수송라인)을 통한 천연가스 구입량도 늘렸다.

〈슈피겔〉은 이에 대해, ‘독일이 러시아로부터의 가스 수입을 선제적으로 중단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러시아 측에서 가스 공급을 먼저 끊었을 경우에 대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슈피겔〉에 따르면, 독일이 현재 러시아에 지불하는 천연가스 대금이 푸틴의 전쟁 비용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독일이 천연가스를 풍부하게 확보해놓으면, 러시아와 천연가스 거래가 실제로 끊어지는 경우에 독일보다 러시아의 피해가 더 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 경제기후부는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이 갑자기 중단되면, 독일의 산업 생산 역시 큰 차질을 빚게 된다는 점을 우려한다.

 

하베크 경제기후장관이 ‘러시아산 에너지로부터 점차적 독립’을 선호하는 이유다.

하베크 장관뿐 아니라 연정을 구성하는 사민당이나 자민당의 주요 정치인, 야당인 기민당 정치인들의 상당수가 즉각적인 러시아 에너지 수입의 중단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전쟁으로 겪는 고통에 비한다면 독일이 러시아 에너지 수입을 중단했을 때 감내해야 하는 고통은 견딜 만한 것이라며, 독일 정부가 즉각적으로 러시아산 에너지를 거부해야 한다는 여론 또한 적지 않다.

〈슈피겔〉이 3월 초 여론조사기관 치베이(civey)에 의뢰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독일인의 65%는 독일 정부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더라도 러시아를 제재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27%만이 이에 반대했다.

 

 

 

 

 

저작권자 © 시사IN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EPA연합뉴스

 

 

 

 

우크라 침공 수혜국은 독일과 영국, 그리고 북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화들짝
독일은 재무장, 영국은 EU와 재결속
北, 러시아에 붙어 정치·경제적 이득
태양절 등 4월 기념일 맞춰 도발 전망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세계 경제와 질서에 변곡점을 가져왔다. 

에너지 공급 부족에 따른 국제 유가 상승으로 세계는 경제적 타격을 입었고, 냉전 시대를 방불케 하는 러시아와 서방국들 간의 긴장 고조로 금융시장이 동요하고 주변국의 정치·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다.

하지만 이런 혼돈 속에서도 몇몇 국가는 이득을 봤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부의 적 맞아 내부 결속 다진 유럽

 

러시아라는 외부의 적이 등장하자, 유럽이 다시 뭉치기 시작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으로 흔들리던 유럽연합(EU)의 결속이 보다 공고해 진 것이다.

 

특히 가장 큰 수혜는 독일과 영국이 봤다는 평가다.

독일은 재무장 기치를 다졌고, 유럽연합 탈퇴 이후 아웃사이더로 전락했던 영국은 다시금 유럽대륙과 가까워질 기회를 잡았다.

 

세계대전 전범국이라는 족쇄에 묶여있던 독일은 본격적으로 국방력 강화에 나설 전기를 마련했다. 

최근 독일 정부는 향후 러시아의 위협에 대비한다는 명분을 들며 이스라엘제 미사일 방어(MD)체계 도입 가능성을 내비쳤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AP연합뉴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달 27일(현지시간) 공영 방송 ARD과의 회견에서 독일이 이스라엘제 요격 미사일 체계 ‘아이언돔’(Iron Dome)과 같은 방어체계 구입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숄츠 총리는 러시아를 겨냥해 “자기 이익을 위해 폭력 사용을 할 준비가 된 이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숄츠 총리는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연설을 통해 올해 1000억유로(약 134조2000억원)의 추가 국방기금을 조성하고 2024년까지 현재 GDP 대비 1.5% 수준인 국방비도 2%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미국산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 F-35를 최대 35대까지 도입할 계획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은 러시아를 향한 서방의 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동맹을 과시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영국이 EU를 탈퇴한 이후 경색됐던 양측 관계가 우크라이나전을 계기로 가까워졌다”고 평가했다.

 

트러스 외무장관은 “이 위기(우크라이나전)와 관련해 말하고 싶은 점은 영국이 EU와 매우, 매우 긴밀하게 협력했다는 것”이라며 “물론 EU와 이견을 보이는 분야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우리는 자유, 사람들이 스스로 정부를 선택할 권리를 믿는 민주주의 국가로서 하나로 뭉쳤다”고 강조했다.

 

 

 

 

 

 

 

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은 신냉전 반겨…정치·경제적 이득 볼 것

 

서방대 러시아라는 진영 구도는 북한에게 나쁠 것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미 북한 전문매체 ‘38노스’는 최근 북한이 러시아에 밀착해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이득을 볼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38노스는 “현 상황에서 북한이 가장 중요하고 실제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분야는 경제”라면서, 북한이 서방 제재로 수출길이 막힌 러시아산 원유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고 봤다.

국제사회의 대러시아 제재 동참 압박을 받는 중국과 달리 북한은 이미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는 ‘왕따’ 신세인 만큼,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해도 잃을 게 많지 않다는 분석이다.

 

또 38노스는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가 미국 주도로 만들어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 제재를 따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평가했다. 

안보리 제재에 따른 북한의 연간 정제유 수입 한도는 50만 배럴인데, 러시아가 더 많은 양을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안보리 제재를 무시하고 북한 노동력 수입을 재개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간 교역의 경유지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도 거론됐다.

 

38노스는 외교적 측면에서도 “전 세계가 다시 진영화되는 데 대해 북한이 ‘편안함’을 느낄 것”이라고 평가했다.

공산권 붕괴 이후 어려움을 겪어왔던 북한이 신냉전 도래로 자신들의 이익을 더 성공적으로 추구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38노스는 “한국의 정권 교체로 대북 정책에 변화가 예상된다면서도,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북한이 한국 측의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줄어들 것”으로 봤다. 

 

 

 

 

 

 

 

 

김일성 생일인 태양절 110주년 행사를 일주일 앞둔 8일 경기도 파주 오두산전망대에서

바라본 황해북도 개풍군 국경 일대에 북한 군인들(빨간 동그라미)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뉴스1

 

 

 

 

프랑소와 봉땅 신임 주한 벨기에대사도 “북한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힘을 과시할 기회로 활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멈춰야 한다”고 우려했다.

 

북한이 우리나라에 대한 도발 수위를 높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4월은 북한의 대형 기념일이 몰려있어 북한이 대내 선전용 무력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

오는 11일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제1비서로 추대된 지 10년이 되는 날이고, 15일은 북한 최대 명절인 ‘태양절(김일성 주석 생일)’ 110주년 기념일이다.

 

25일은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이다.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지난 6일(현지시간) 전화 브리핑에서 “4월15일 기념일과 관련해 북한이 또 다른 도발적 행동에 나설 유혹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너무 추측하고 싶지는 않지만 미사일 발사일 수도 핵실험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북한이 추가 도발을 자제하기를 확실히 희망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2021년 7월 미국 백악관에서의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왼쪽)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노르트스트림

2 사업 포기를 종용했으나 메르켈 총리는 단호히 거부했다. 워싱턴=AP연합뉴스

 

 

 

 

 

 

 

 

 

2017년 10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만난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모스크바=AP연합뉴스

 

 

 

독일 , 지난 100년간 세 번째 미국에 패배하다

 

 
 
 
 
 

[해외 시각] 미 대외정책을 장악한 세 과두세력 : 무기, 석유, 금융 산업

 

 


현재 우크라이나에서는 두 개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자국의 독립, 또는 안보를 위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재래식 전쟁, 그리고 미래의 세계 경제 패권을 둘러싼 미국/유럽 대 러시아/중국의 지정학적 경제 전쟁이다.

 

운용자산 10조 달러인 세계 최대의 사모펀드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는 투자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코로나19에 이은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지난 30년간 지속돼온 세계화의 시대는 끝났다’고 진단했는데, 앞으로 세계의 운명은 적어도 10년 이상 지속될 미국/유럽 대 러시아/중국의 경제전쟁에 의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1차 대전과 같은 패권 계승 전쟁의 막이 오른 것이다.

인류공동체와 지구생태계의 존속을 위협하는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모든 국가들이 힘을 합쳐도 부족한 판에 벌어진 이번 전쟁은 매우 비극적 사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전쟁이 지속될 경우 최대의 피해자는 우크라이나, 그리고 독일을 비롯한 유럽이 될 것이라는 점 또한 확실하다.

재래식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우크라이나는 이라크, 아프간, 시리아와 같은 국토 및 국가 파괴의 운명에 처할 수도 있다. 경제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유럽이다.

 

자본 및 기술을 가진 유럽은 에너지 및 자원 부국인 러시아와의 경제 교류를 통해 상호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도 있었음에도 미국이 일으킨 경제전쟁에 끌려들어가 러시아와 적대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나토라는 군사동맹 체제를 통해 미국에게 군사주권을 위임한 유럽의 대미 종속, 그리고 미국의 대외정책이 무기, 석유, 금융 산업이라는 특수 이익집단에 예속됐기 때문이다.

이번 전쟁의 배경을 미 대외정책을 장악한 세 과두세력의 전횡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한 마이클 허드슨 미주리대 명예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이 글은 허드슨 교수의 개인 홈페이지(https://michael-hudson.com/) 2월 28일자에 "미국, 1세기만에 세 번째 독일을 꺾다(America Defeats Germany for the Third Time in a Century)"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편집자

 

현재 벌어지고 있는 신냉전은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해결하려 하는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누가 전쟁을 일으켰는지를 물어야 한다.

전쟁에는 언제나 두 편이 있기 마련이다. 공격하는 자와 공격당하는 자.

 

공격하는 자는 특정한 결과를 노리는 반면, 공격당하는 자는 자신에 유리하게 작용할, 의도치 않은 결과를 추구한다.

이번 우크라이나전쟁의 경우, 양 측은 두 가지의 의도하는 결과와 특별한 이익들을 추구한다.

 

(소련이 붕괴한) 1991년 이후 미국은 언제나 능동적 군사 행동과 침략자의 역할을 맡아 왔다.

탈냉전 이후 (동유럽의) 바르샤바조약기구가 해체되면서 (서유럽의) 나토도 해체되는 것이 마땅했다.

그러나 나토가 해체되지 않으면서 지난 30년간 "평화 배당금"은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클린턴 행정부 이후 미국 행정부는 나토의 새로운 군사적 팽창을 계속함으로써 지난 30년간 일종의 "전쟁 배당금"을 독점했다.

서유럽 및 여타 미국의 동맹국들의 대외정책을 자신의 국내정치적 필요가 아닌 미국의 "안보 이익"에 종속시키도록 만든 것이다.

 

나토는 유럽의 대외정책 결정 기구가 되었으며, 심지어 유럽 동맹국의 국내 경제적 이익까지도 좌지우지 하는 위치에 올랐다.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신나치 그룹에 의한 마이단 쿠데타) 이후 친서방 우크라이나정부의 러시아계 주민에 대한 탄압을 통해 러시아를 전쟁에 끌어들인 최근의 사태 전개는, 나토 동맹국 및 여타 달러화 사용 위성국들에 대한 미국의 정치, 경제적 장악력이 약화되는 데 대한 미국의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들 나라들은 중국 및 러시아와의 교역 및 투자를 통해 커다란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고 있었다.

미국은 왜 전쟁을 일으켰나

이러한 상황이 미국의 대외정책 목표와 이익에 얼마나 위협이 되는가를 이해하려면, 미국 정치와 그 이면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미국 대외정책의 핵심은 겉으로 드러나는 정당정치를 통해서는 절대 알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연방정부의 상원의원이나 하원의원이 자신이 대표하는 주, 또는 자신의 지역구 유권자를 위하여 만드는, 그런 것이 아니다.

 

미국의 경제 및 대외정책을 보다 현실적으로 관찰하려면 공화당이나 민주당의 정책이 아니라 군산복합체, 석유.가스 및 광산 업체, 그리고 은행 및 부동산 업체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예산위원회, 외교위, 국방위 등의) 핵심 상원의원이나 하원의원들은 자신이 속한 주나 지역구보다는 자신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대주는 경제 및 금융 이익집단을 위해 움직인다.

오늘날 미국 정치에서 정치인들은 유권자가 아니라 정치헌금 집단을 대표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위의 세 집단이 미국 정치의 가장 중요한 정치 헌금 집단을 구성하고 있다.

 

이들 세 과두집단은 정치자금으로 상원과 하원을 매수하는 한편 국무부와 국방부에 자신들을 위한 정책 결정자들을 심어놓는다. 그 첫 번째가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 : MIC), 즉 레이시온, 보잉, 록히드마틴 등의 무기제조업체들이다.

이들은 가능한 한 많은 주, 미국의 거의 모든 주에 공장을 세워 고용을 창출한다(그래야 의원들이 국방 예산 배정에 열성일 것이므로).

 

특히 국방 예산을 결정하는 핵심 의원의 지역구에는 더욱 신경을 쓴다.

이들의 경제적 기반은 무기 생산 독점에 따른 지대 추구(monopoly rent)로 특히 나토 국가들, 중동의 산유국들, 국제수지 흑자 국가들에 대한 무기 수출을 통해 막대한 이윤을 거둬들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이 한창인 22일(현지시간) 노르웨이에서 펼쳐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연합훈련 '콜드 리스펀스'(Cold Response 2022)에서

핀란드와 스웨덴군 탱크가 보인다. ⓒ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의 침공 소식과 함께 이들 무기제조업체의 주가가 치솟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무기 제조비용에 일정 비율의 이윤을 무조건 보장해주는 "펜타곤 자본주의" 하에서 전쟁 발발은 곧 엄청난 무기 생산, 즉 막대한 이윤 창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무기제조업체는 캘리포니아 주와 워싱턴 주에 밀집해 있으며, 따라서 이들 지역의 의원 및 군부 친화적인 남부 주들의 의원들이 전통적으로 군산복합체를 대변해 왔다.

이번 전쟁으로 나토 및 미국의 우방국들에 대한 무기 수출이 폭증했고, 특히 독일은 군사비 지출을 GDP의 2%까지 올리기로 즉각 결정했다.

 

두 번째 과두집단은 석유(Oil), 가스(Gas), 그리고 광산업체(And Mining : OGAM)로 이들 역시 독점에 의한 지대 추구를 통해 막대한 이윤을 챙긴다.

특히 막대한 지하자원을 채굴해 대기 중으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바다 및 수자원을 오염시킴에도 불구하고, 안보산업이라는 이유로 특별 감세 혜택을 누린다.

 

은행 및 부동산 부문이 주택 등 자산의 가격 상승을 통해 경제적 지대를 최대화하고 자본 이득을 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OGAM 부문 역시 에너지 및 원자재의 가격을 최대한으로 올려 자연자원 독점에 따른 지대의 극대화를 추구한다.

 

지난 1년 여간 미국의 주요 정책 목표는 달러화 사용 국가들에서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를 퇴출시키고, 이들 국가들에 대한 미국산 석유의 독점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즉 독일 등 유럽과 러시아의 경제적 연계를 더욱 강화시킬 위험이 있었던 노르트 스트림2 가스관의 가동을 좌절시키는 것이었다.

 

OGAM 부문은 미국의 모든 주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투자자들만큼은 거의 모든 지역에 분포해 있다. 텍사스와 서부의 석유 생산 및 광산 소재 주들의 상원의원들이 핵심 로비스트로 활동하며, 국무부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이들 업체들에 특별 세제 혜택을 부여한다.

이밖에 석유, 가스, 석탄의 사용을 줄이고 생태 친화적 에너지로 대체하자는 환경운동의 요구를 묵살, 저지하는 것도 이들의 주요한 정치적 목표다.

 

이에 따라 바이든 행정부는 해양 석유 시추 확대를 지지했고, 세계에서 가장 더러운 석유자원으로 꼽히는 아타바스카 타르 샌즈로부터의 캐나다 송유관 건설과 환경오염으로 악명을 떨쳐온 미국 내 수압파쇄방식 석유 채굴(프래킹)을 승인했다.

 

세 번째 과두집단은 서로 공생관계에 있는 금융(Finance), 보험(Insurance), 부동산(Real Estate : FIRE) 부문으로 이들은 봉건 시대 이후 토지 지대로 거대한 부를 축적한 유럽 토지 귀족의 현대판 금융자본주의 계승자라 할 수 있다.

오늘날 토지 지대는 모기지 이자 및 원금 상환 형태로 주로 은행에 납부되고 있는데, 미국 및 영국 은행들의 대출 중 80%가 부동산 관련이다.

미국과 영국 은행들은 토지 가격을 상승시키는 방식으로 자본 이득을 취하고 있다.

 

월가에 중심을 둔 은행 및 부동산 부문은 군산복합체보다도 더욱 조밀하게 각 선거구 별로 분포돼 있다. 월가가 있는 뉴욕 주 상원의원 척 슈머를 필두로 신용카드 산업의 본거지인 델라웨어 주의 전 상원의원 조 바이든, 그리고 보험 산업이 몰려있는 코네티컷 주의 상원의원들이 그 핵심 로비스트들이다. 국내적으로 FIRE 부문의 목표는 토지 지대를 상승시켜 지대 소득과 자본 소득을 극대화 하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FIRE 부문의 목표는 외국의 공공 부문 경제(건강보험, 교육, 교통, 통신, 정보 기술 등)를 자신의 수중에 사유화 하는 것이다.

그 나라 국민에 대한 기본적 서비스를 독점해 그 가격을 극대화함으로써, FIRE는 미국이 독점한 달러 발행의 특권을 최대한 누리는 반면 해당 국가의 생활수준은 악화되고 기업 활동은 위축된다.

 

또한 월가의 금융세력은 언제나 석유 및 가스 업체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예컨대 석유 재벌 록펠러그룹은 시티그룹 및 체이스맨해튼은행을 거느리고 있다)

FIRE, MIC, 그리고 OGAM은 오늘날 탈산업화된 금융자본주의를 지배하는 3대 지대 추구세력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군산복합체(MIC)와 석유.가스 업체(OGAM)의 주가가 치솟으면서 이들의 입지는 한층 강화됐다.

또한 SWIFT 등 서방의 금융결제시스템에서의 러시아 축출과 러시아산 에너지의 유럽 공급 차단에 따른 악영향이 가속화되면서 달러화 금융자산에 대한 대규모 자금 유입이 예상된다.

 

앞서 얘기했듯이 미국의 경제 및 대외정책은 공화당과 민주당 간의 정당정치가 아니라 이들 세 지대 추구세력의 관점에서 관찰하는 것이 훨씬 더 현실에 부합된다.

주요한 상원의원과 하원의원들은 자신을 선출한 주나 지역구가 아니라 이들 세 과두집단의 경제적, 금융적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오늘날 미국의 제조업이나 농업 부문이 미국의 대외정책에 이렇다 할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세 과두집단의 정책 목표가 한 방향으로 수렴되면서 노동과 (군산복합체를 제외한) 제조업의 이익은 묵살되고 있다.

 

세 지대 추구세력의 강력한 동맹이야말로 오늘날 탈산업화된 금융자본주의의 결정적 특징이다.

기본적으로 이는 노동 및 산업자본과는 무관한 경제적 지대 추구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들 세 과두 지배세력이 어떤 이유로 러시아로 하여금 우크라이나 침공에 나서게 했고, 또한 서방의 러시아 경제 제재를 추동했는가, 하는 점이다.

 

미국의 세 지대 추구세력은 신냉전의 결과를 이미 알고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설명했듯이, 현재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군사 분쟁 강화의 목표는 우크라이나가 아니다. 바이든은 당초부터 미군 병력을 투입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1년 전부터 독일에 대해 러시아의 값싼 천연가스를 공급받을 수 있는 노르트 스트림2의 가동을 중단하는 대신 훨씬 값비싼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를 구매해줄 것을 요구해 왔다.

미국 정부는 처음에는 노르트 스트림2의 건설을 중단시키려 했다. 이 공사를 맡은 기업들이 미국의 제재를 받았으나, 결국 러시아는 자체 힘으로 가스관 건설 공사를 마무리했다.

 

그러자 미국은 전통적으로 미국에 고분고분한 독일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제멋대로 가스 공급을 중단한다면 독일 및 유럽에 중대한 안보 위협이 될 것이라면서 정치경제적 양보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독일은 완공된 노르트 스트림2의 가동 승인을 포기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신냉전에서 미국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유럽의 가스 시장에서 러시아를 몰아내고 미국 업체들이 독점하는 것이다. 이미 전임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의해 메르켈 총리는 미국산 액화천연가스의 하역을 위한 항만 시설 건설에 10억 달러를 투입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2020년 11월 트럼프의 대선 패배와 뒤이은 메르켈의 정계 은퇴로 이 투자 약속은 없던 일이 돼버렸다. 결국 독일로서는 러시아산 가스의 수입 외에 다른 대안이 없게 된 것이다. 가스는 주택 난방이나 전력 생산은 물론 비료 생산에도 필수적인 원료다.

비료 생산의 감소는 식량 생산의 감소를 의미한다.

 

즉 나토 대 러시아의 대결 상황을 연출해낸 미국의 최대 전략 목표는 석유 및 가스 가격을 최대한 올리는 것이다. 이는 물론 독일에 매우 안 좋은 결과다.

유가 상승은 미국 석유업체의 이윤 및 주가를 올려주겠지만 독일 경제는 높은 에너지 가격으로 고통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독일은 (1, 2차 대전에 이어) 한 세기만에 세 번째로 미국에 패배당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패배가 이어지면서 독일 경제 및 정치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은 갈수록 강화되고 있으며, 이제 나토는 독일 국내의 국민적 저항에 대한 효과적 통제수단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가솔린을 비롯한 기타 난방용 에너지 가격의 상승은 미국과 다른 국가(특히 에너지 자원이 부족한 남반구 국가들) 소비자들의 살림살이를 어렵게 할 것이다.

 

에너지 비용 부담 증가로 국내 소비가 감소할 것이며, 결국 한계 상황에 직면한 주택 소유주들이 집을 내놓으면서 부자들의 주택 소유가 늘어나고 주거의 양극화가 가속화될 것이다.

밀을 비롯한 식량 가격 역시 폭등할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세계 밀 수출의 25%를 담당한다)

 

이에 따라 중동을 비롯한 남반구 국가들의 식량 사정이 악화되고, 경상수지도 악화되며 외채 상환 불능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미국 신냉전 전사들의 장기적 목표는 러시아를 해체하는 것이다.

최소한 옐친/하버드대 도당들이 만들어낸 꿈만 같았던 1990년대를 재현하는 것이다.

 

당시 옐친은 제프리 삭스 등 하버드대 경제학자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러시아 국영 기업들을 묻지마 방식으로 사영화하면서 서방 주식시장에 엄청난 이윤을 안겨줬다.

 

미국의 석유업체들은 아직도 (러시아의 거대 석유, 가스 업체인) 유코스, 가즈프롬의 인수를 꿈꾸고 있다. (2003년 푸틴이 유코스 소유주 호도로프스키를 구속한 것은 유코스 주식을 미국 석유기업 엑슨모빌에 팔려 했기 때문이다) 미국 월가는 러시아 (주로 석유,가스 기업) 주식 붐의 재현을 기대하고 있다. 또한 군산복합체 투자자들은 이러한 꿈의 실현을 위해 보다 많은 무기들이 팔릴 것이라는 행복한 꿈에 젖어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러시아는 미국이 초래한 전쟁의 의도치 않은 결과에 기대를 걸고 있다

러시아는 무엇을 노리는 것일까?

당장 급한 것은 2014년 마이단 쿠데타를 주도한 신나치, 반러시아 세력을 제거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중립화, 즉 친러시아적으로 만들어 체첸이나 조지아처럼 미국 주도 반러시아 공세의 교두보가 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유럽을 나토와 미국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중국과 함께 경제적으로 통합된 유라시아를 건설하고 여기에 중심을 둔 다극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나토를 해체하며, 그동안 러시아가 추구해온 광범위한 군비 해제와 탈핵무기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미국산 무기의 구매를 축소하는 것은 물론 미국 주도의 군사모험주의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것이다. 세계 경제의 탈달러화가 가속화된다면 미국의 군사작전 수행을 위한 자금 동원 능력도 축소될 것이다.

이제 지각 있는 관찰자라면 사태의 진상이 분명히 드러났을 것이다.

 

(1) 나토의 목표는 방어가 아니라 침략이다,

(2) 옛 소련의 영토 중 더 이상 정복할 땅이 남아 있지 않은 마당에 도대체 나토 확대를 통해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러시아가 유럽을 침공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침공으로 얻을 것이 없다.

우크라이나를 앞세운, 러시아에 대한 나토의 안보 위협을 제거하는 것만이 러시아의 목표다.

과연 유럽의 민족주의 지도자들은(유럽 좌파는 거의 친미로 돌아섰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을까?

 

우리를 위험에 빠뜨릴 뿐인 미국산 무기를 무엇 때문에 사야 하는가?

러시아와의 교역과 투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을 포기한 채 값비싼 미국산 LNG와 석유를 사고, 러시아산 곡물과 원자재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게다가 러시아와의 적대를 통해 중국과도 갈등을 빚는 것이 과연 현명한 처사인가?

 

지난 해 아프간 탈레반 정부의 외환 준비금을 몰수한 데 이어 러시아의 외환준비금마저 압류한 미국 정부의 행위는 달러본위제에 대한 각국 정부의 신뢰를 잠식했고, 세계 통화로서의 달러의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와 중국은 이미 양국 화폐로 무역 결제를 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탈달러화는 가속화될 것이다. 보다 장기적으로 러시아는 중국과 함께 미국이 지배하는 현 IMF 및 세계은행 체제의 대안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박인규 편집인(=번역·정리)(inkyu@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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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미지 출처=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