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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사

외계인설 거인설' 7대 불가사의 피라미드 미스터리 풀리나

 

이집트 북부 기자 피라미드 /AFP=뉴스1

 

 

 

 

 

 

이집트 피라미드 / 사진=연합뉴스

 

 

 

 

 

 


이집트 피라미드 상공서 비행하는 블랙이글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지금은 없어진 나일 강의 쿠푸 지류 상상도. /사진=미국 국립과학원 회보

 

 
 

 

외계인설 거인설' 7대 불가사의 피라미드 미스터리 풀리나

 

 

 

건설 가능케한 지류 발견
식물 꽃가루 화석 분석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이집트 북부 기자의 피라미드.
이 중 가장 큰 쿠푸왕의 대피라미드는 높이 147m에 밑변 길이 230m로 건축에 들어간 석회암고 화강암 등 2t이 넘는 대형 석재가 약 230만개, 5900만t에 달한다.

더욱이 건축 시기가 기원전 2560년 무렵이어서 어떻게 이 많은 돌을 운반했는지가 미스터리가 됐다.
이 때문에 외계인이 지었다는 설, 거인족이 있었다는 설 등 다양한 추측이 제기돼 왔다.
하지만 꽃가루 화석을 이용한 환경 분석을 통해 기자 피라미드 인근을 흐르던 나일강 지류의 흔적이 확인돼 피라미드를 건설하는데 가장 큰 미스터리로 꼽혔던 석재 운반을 둘러싼 의문이 풀리게 됐다.

31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프랑스 '유럽 환경지구과학 연구교육센터'(CEREGE)의 환경지리학자 하데르 세이샤가 이끄는 국제 연구팀은 기자 피라미드 주변에서 시추한 퇴적층에서 발견된 꽃가루 화석을 통해 나일강 지류의 증거를 확보한 결과를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에 발표했다.

이 연구팀은 PNAS에서 이집트 제4왕조의 두 번째 파라오인 쿠푸왕의 이름을 따 '쿠푸 지류'로 명명된 이 하천이 나일강 본류에서 약 7㎞ 떨어진 피라미드 건설 현장까지 물자를 수송하기에 충분한 수위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연구팀은 쿠푸 지류로 추정되는 곳을 따라 여러 해에 걸쳐 5곳을 시추해 확보한 수천년에 걸친 퇴적층 시료에서 과거 식물의 상태를 알 수 있는 꽃가루 알갱이 화석를 확보해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양치식물과 종려나무 등 61종의 식물이 확인됐는데 이는 약 8000년에 걸친 주변 환경의 변화를 파악하는 단서가 됐다고 연구팀은 강조했다.

연구팀은 쿠푸왕 대피라미드와 카프레, 멘카우레 피라미드가 건설된 기원전 2686∼2160년에는 쿠푸 지류가 약 40%의 수위를 유지해 물자 수송에 충분하면서 범람할 위험이 없어 피라미드 건설에 적합했던 것으로 분석했다.

이후 기원전 1350년 무렵 투탕카멘왕이 즉위하고 얼마 안 돼 수위가 수백년에 걸쳐 더 낮아지면서 물자를 수송할 수 없게 돼 피라미드 건설도 끝나게 됐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한편 쿠푸 피라미드는 23년 동안 상 이집트와 하 이집트를 다스렸던 쿠푸 왕의 무덤이다.

최근 로봇에 카메라를 설치해 피라미드의 좁은 통로를 조사한 결과, 왕의 영혼이 별을 향해 여행할 수 있도록 피라미드가 오리온별과 일직선을 이루게 놓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피라미드 옆에는 최후의 휴식처까지 왕을 태우고 갔던 43m짜리 장례용 배가 놓여 있었으며, 왕실 식구들이 묻힌 작은 무덤들도 있었다.

당시로서는 전례 없던 광경이다.

 

 

 

 



[이상규 매경닷컴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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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 ⓒ gettyimagesbank

 
 
 
 
 
 
 
 
 

2t 돌덩이 230만 개 옮긴 비법은?"…

피라미드 건설 미스터리 풀릴 증거 발견됐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피라미드 건설의 미스터리가 풀릴 만한 증거가 나왔다.

피라미드 건설에 사용된 대형 석재 운반에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나일강 지류 흔적이 확인됐다.

 

미국 매체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30일(현지 시각) 프랑스 '유럽 환경지구과학 연구교육센터' 소속 환경지리학자 하데르 세이샤가 이끄는 국제 연구팀이 이집트 북부 기자 피라미드 주변에서 나일강 지류의 흔적을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발견은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에 발표됐다.

 

피라미드 건설 방식은 지난 4,500년 동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였다.

쿠푸왕의 피라미드의 경우 석회암과 화강암 등 2t이 넘는 대형 석재 약 230만 개가 사용될 정도의 초대형 공사였기 때문이다.

 

마땅한 운반 도구가 없던 과거에 개당 2t이 넘는 석재를 어떻게 운반했는지는 학자들 사이에서 초미의 관심사였다.

 

앞서 학계에서는 피라미드로부터 약 7km 떨어진 나일강이 건축 물자 운반에 이용됐으며, 건설 현장까지 수로를 팠을 것이라는 가설이 제기됐으나 이를 입증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번 연구팀이 나일강 지류의 흔적을 확인하며 석재 운반 관련 미스터리는 풀리게 됐다.

연구팀은 기자 피라미드 근처에서 시추한 퇴적층에서 꽃가루 화석을 발견했다.

이 화석을 통해 기자 피라미드 인근을 흐르던 나일강 지류의 흔적을 확보했다.

 

대형 석재는 이 지류를 통해 운반됐을 것으로 보인다.

연구팀은 해당 지류의 이름을 이집트 제4왕조 두 번째 파라오인 쿠푸왕의 이름을 따 '쿠푸 지류'로 명명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쿠푸 지류의 수위는 피라미드 건설 현장까지 석재 등 물자를 운반하기 충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쿠푸 지류는 기원전 1350년 무렵부터 수백 년에 걸쳐 수위가 낮아져 기원전 332년 알렉산더 대왕이 이집트를 정복했을 때는 메말랐을 것으로 분석했다.

 

연구팀은 "기자 자연환경이 피라미드 건설에 이용됐다는 점을 밝힌 것이 고대 건축물을 둘러싼 많은 의문 중 일부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다"라며 "환경에 대해 더 많이 알면 피라미드 건설을 둘러싼 수수께끼를 풀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 데일리안 

황기현 기자 (kihyun@dailian.co.kr)

 
 
 
 
 
 
 
 
 
 

아마존 고대 피라미드. 사진 출처=네이처



아마존 피라미드 미스터리 풀렸다…"고대 문명 존재 증거"[과학을읽다]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아마존 지대에서 발견된 고대 피라미드의 신비가 풀렸다.

아마존에도 인구가 밀집한 도시가 있었으며, 그 중심부에 피라미드가 건설됐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동안 아마존 일대에는 인구가 희박해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곳이라는 편견이 깨지는 역사적 발견이다.

 

독일 베를린 소재 '독일 고고학 연구소' 연구팀은 지난달 25일 이같은 내용의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공개했다.

고고학자들은 그동안 아마존 지역이 16세기 유럽인들이 침략하기 전까지는 고작해야 작은 규모의 유목민 부족이 거주하는 인구가 희박한 지역이었을 것이라고 여겨왔다.

 

16세기 초 유럽에서 온 탐험가들도 처음엔 마을과 도시들을 발견했다고 전해왔었지만 이후에 도착한 이들에겐 밀림만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고고학자들은 2000년대까지만 해도 아마존의 척박한 토양이 대규모 농경을 불가능하게 했고, 이에 따라 인구 증가를 막아 동남아시아나 중앙 아메리카 등에서 발견되는 열대 문명이 들어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일부 고고학자들이 아마존 열대 우림 지대에서 비정상적으로 밀도가 높은 작물 식물군과 인공의 손길이 확연한 비옥 토양을 발견하면서 이견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고대 아마존 일대에도 인구 밀집 거주지와 도시 문명이 존재했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2018년 남부 아마존 열대 우림 지역에서 삼림 벌채 과정에서 수백개의 고분을 발견하면서 이같은 주장에 힘이 붙기 시작했다.

분명 고대 문명의 존재를 시사하는 유적이었지만 아직까지는 직접적인 증거는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아마존 고대 피라미드. 사진 출처=네이처




 

결정적인 증거는 1999년부터 조사가 시작된 볼리비아 국경 내 아마존 분지에 대한 발굴 및 레이저 관측 조사에서 나왔다.

이곳은 우기에 범람하는 늪 지대로, 나무로 덮인 언덕이 곳곳에 솟아 있는 곳이다.

 

기존 발굴 결과 이 곳은 서기 500년부터 카사라베인으로 알려진 부족 거주지 정도로 추정되고 있었다.

연구팀은 2019년부터 헬리콥터에 레이저 원격 관측 장비를 장착해 이 지대를 넓게 촬영해 분석했다.

 

이 결과 무려 26개의 주거지가 발견됐다.

기존 방식으로 했으면 400년이 걸릴 만한 연구지만, 첨단 장비를 이용해 순식간에 찾아낸 것이다.

또 피라미드 2개를 중심으로 약 100헥타르, 즉 바티칸 시티의 3배가 넘는 도시가 존재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연구팀이 촬영한 영상에는 지면에서 6m 높이로 솟아 있는 넓은 테라스가 있는 벽으로 둘러 싸인 복합 구조물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그 한 쪽 끝에는 흙으로 쌓은 원뿔형 피라미드가 우뚝 솟아 있었다.

 

연구팀은 주민들이 이 테라스를 중심으로 모여 살았으며, 이를 연결하는 둑길을 통해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이코 프뤼메르스 독일고고학연구소 연구원은 "우리는 아마존에 대해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푸른 사막'이라고 생각해왔지만 다른 열대 지역의 사례로 볼 때 아마존에만 사람이 살지 않았을 이유는 없을 것"이라며 "촬영된 이미지에 저수지도 있었던 것으로 볼 때 과거에는 이 지역이 침수되지 않아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었다고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또 "(토양에서 수집된) 꽃가루들을 분석해봐도 옥수수가 이 지역에서 수천년 동안 계속 재배됐으며, 이는 지속 가능한 농업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고 덧붙였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김병준 기자

 
 
 
 

 

 

고대 7대 불가사의 피라미드 건설 가능케한 지류 있었다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이집트 북부 기자의 피라미드는 웅장한 규모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중 가장 큰 쿠푸왕의 대피라미드는 높이 147m에 밑변 길이 230m로 건축에 들어간 석회암과 화강암 등 2t이 넘는 대형 석재가 약 230만 개, 5천900만t에 달해 기원전 2560년 무렵의 기술로 어떻게 이 많은 돌을 운반했는지가 미스터리가 돼왔다.

 

하지만 꽃가루 화석을 이용한 환경 분석을 통해 기자 피라미드 인근을 흐르던 나일강 지류의 흔적이 확인돼 대형 석재 운반을 둘러싼 의문이 풀리게 됐다.

프랑스 '유럽 환경지구과학 연구교육센터'(CEREGE)의 환경지리학자 하데르 세이샤가 이끄는 국제 연구팀은 기자 피라미드 주변에서 시추한 퇴적층에서 발견된 꽃가루 화석을 통해 나일강 지류의 증거를 확보한 결과를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에 발표했다.

 

PNAS와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연구팀은 이집트 제4왕조의 두 번째 파라오인 쿠푸왕의 이름을 따 '쿠푸 지류'로 명명된 이 하천이 나일강 본류에서 약 7㎞ 떨어진 피라미드 건설 현장까지 물자를 수송하기에 충분한 수위를 유지했던 것으로 제시했다.

 

 

 

 

 

 

 

 

 

기자 피라미드(쿠푸, 카프레, 멘카우레)와 쿠푸 지류 위치

[PNA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피라미드 물자 운반에 나일강이 이용되고 건설 현장까지 수로를 팠을 수도 있다는 가설이 제기돼 왔으나 지금까지는 이를 입증할 수가 없었다.

연구팀은 쿠푸 지류로 추정되는 곳을 따라 여러 해에 걸쳐 5곳을 시추해 확보한 수천년에 걸친 퇴적층 시료에서 과거 식물의 상태를 알 수 있는 꽃가루 알갱이 화석를 확보해 분석했다.

 

그 결과, 양치식물과 종려나무 등 61종의 식물이 확인됐으며 이는 약 8천년에 걸친 주변 환경의 변화를 파악하는 단서가 됐다.

예컨대 부들이나 파피루스 등의 꽃가루는 물가주변 환경을 나타내고 가뭄을 잘 견디는 식물 꽃가루는 하천과 멀리 떨어진 환경을 나타내는데 이를 통해 쿠푸 지류의 위치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사하라 일대가 호수와 초지로 덮여있던 약 1만4천800∼5천500년 전 무렵의 '아프리카 습기'(African Humid Period)에는 기자 일대가 물에 잠겨있거나 쿠푸 지류의 수위가 높았으나, 아프리카 습기가 끝난 뒤에는 건조화가 진행되면서 수위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쿠푸왕 대피라미드와 카프레, 멘카우레 피라미드가 건설된 기원전 2686∼2160년에는 쿠푸 지류가 약 40%의 수위를 유지해 물자 수송에 충분하면서 범람할 위험이 없어 피라미드 건설에 적합했던 것으로 분석했다.

이후 기원전 1350년 무렵 투탕카멘왕이 즉위하고 얼마 안 돼 수위가 수백년에 걸쳐 더 낮아지면서 물자를 수송할 수 없게 돼 피라미드 건설도 끝나게 됐으며, 알렉산더 대왕이 이집트를 정복한 기원전 332년 무렵에 바짝 말라붙은 지류가 피라미드 묘역으로 전환된 것으로 나타났다.

 

세이샤 연구원은 뉴욕타임스와의 회견에서 기자의 자연 환경이 피라미드 건설에 이용됐다는 점을 밝혀낸 것은 고대 건축물을 둘러싼 많은 의문 중 일부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됐다면서 "환경에 관해 더 많이 아는 것이 피라미드 건설을 둘러싼 수수께끼를 풀 수 있다"고 했다.

 

 

 

 

 

 

 

 (서울=연합뉴스) 지난 3일(현지시간) 공군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이집트 기자

피라미드 인근에서 열린 '피라미드 에어쇼 2022'에 참가해 피라미드 상공을 비행

하고 있다. 2022.8.4 [공군 제공 photo@yna.co.kr eomns@yna.co.kr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이집트 피라미드... 상식을 벗어난 건축기술

 

 

 

[SOH] 피라미드는 줄곧 과학자들에게 있어서 풀기 어려운 미스터리다.

“고대인들은 그렇게 많은 큰 돌을 어떻게 운반할 수 있었을까?

현대인들도 운반하기 불가능한 그 큰 돌들을 어떻게 규칙적인 모양으로 가공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과학자들은 많은 이론을 제시했지만 현재까지 완전히 납득될만한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이집트 피라미드의 대부분은 비교적 작아서 인력으로 건설이 가능하다.

그러나 쿠푸의 대 피라미드, 카프레왕의 피라미드 등의 건설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고고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쿠푸의 대 피라미드는 높이 146m, 밑변 230m, 면적 5만2,900평방미터고 230만 개의 석재가 사용됐다. 그 중 가장 작은 것이 1톤, 가장 큰 것은 100톤이다.

그렇다면 매일 10시간 일한다고 계산할 경우 노동자들은 1분에 하나씩 몇 톤이나 되는 암석을 운반해 가공한 후 실수 없이 쌓아야 했는데 고대의 인력 및 사회 실정에 비춰보면 이것은 불가능하다.

 

일부 학자들은 대 피라미드를 건설하기 위해선 10만 명의 인원과 2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1년 내내 피라미드를 건설하지 못하고 나일강이 범람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3개월 동안만 건설이 가능했다고 한다.

 

이집트학자들은 30여종 이상의 건축방식에 대한 분석을 통해 당시 이집트인의 기술과 능력으로는 이런 거대한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피라미드는 언제 건설됐을까?

 

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에 대한 연대분석은 더욱 도전적이다.

우선 대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인의 손에서 나온 것으로 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대 피라미드의 수치들이 그 당시 기술력으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대단히 정밀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각 능선은 거의 정확하게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고 각 방위의 오차는 5분(1분은 1도의 60분의 1)이내다.

이토록 방대한 건축물이 엄청난 정밀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학자들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대 피라미드를 이렇게 높은 기술로 건설하려면 적어도 수천 년의 문명 발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집트 역사를 돌아보면 이런 기술 발전 과정과 기록을 찾을 수 없다. 

현재 대 피라미드는 기원전 2500백 년 전 이집트 제4왕조에 건설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집트에서 하룻밤 사이에 신과 같은 기술자나 거인들이 출현해 피라미드를 만들었단 말인가?

그 외 이집트인은 파라오를 기념하고 칭송하기 위해 왕묘 내부를 대단히 화려하게 장식했고 풍부한 부장품을 묻었다. 

 

그러나 서기 820년, 대 피라미드를 최초로 발굴했을 당시에는 내부는 아주 수수했고 부장품, 보물, 조각은 물론 파편 하나 없었으며, 벽에도 그림이나 문자조차 없었다.

그렇다면 대 피라미드를 건설한 주인공이 누구인지 사실 전혀 알 수 없다.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대 피라미드 근처의 스핑크스다.

과학자들은 스핑크스에서 물로 침식된 듯한 흔적을 발견했는데 조사 결과 스핑크스가 습한 기후에 노출됐었다고 한다.

그러나 기원전 3천년 이래로 기자의 고원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기원전 1만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이런 대규모의 침식을 일으킬 날씨가 존재했다.

따라서 스핑크스는 기원전 1만년 이전, 즉 매우 과학이 발달했던 초고대문명 시기에 이미 존재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고대 이집트학의 아버지 쟝 프란시스 챔폴리온은 “이 피라미드 주인공들의 지혜는 30미터 장신의 거인에서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스핑크스를 연구하던 지질학자 존 웨스트는 “문명의 발전이 결코 직선적이지 않았으며, 우리가 몇 만년 전에 우리보다 세련된 사람들이 살았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할 뿐”이라고 말했다.

 

 

 

 

 

/ SSCN 디지털뉴스팀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원전 18~12년경에 세워진 로마의 피라미드는 당시 유력 정치인 가이우스

세스티우스의 무덤이다.

사진은 도축장을 전시공간 등으로 탈바꿈시킨‘테스타치오의 도축장

프란체스코 알베르티 이탈리아 전 마이니치 신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