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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Musical

Bizet, 오페라 ‘카르멘’(Bizet, Carmen)

Bizet, Carmen

비제 오페라 ‘카르멘’

Georges Bizet

1838-1875

Carmen: Anna Caterina Antonacci

Don José: Jonas Kaufmann

Escamillo: Ildebrando D'Arcangelo

Micaela: Norah Amsellem

Chorus of the Royal Opera House

Orchestra of the Royal Opera House

Conductor: Antonio Pappano

Covent Garden, London

ROH Opera 2006

 




                              





The Opera Carmen



 

1875년 3월 3일,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이 파리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초연되었을 때 객석에는 유명 예술가들이 가득했습니다. 작곡가 들리브, 구노, 뱅상 댕디, 오펜바흐, 마스네뿐만 아니라 알렉상드르 뒤마 2세 같은 문인들도 이 공연을 관심 있게 지켜보았지요.

비제는 뛰어난 신진 작곡가에게 주는 ‘로마 대상’을 받아 이탈리아에 유학했고, <닥터 미라클>(1857), <진주잡이>(1863), <페르트의 아름다운 처녀>(1867), <자밀레>(1872) 등의 오페라로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 특별한 ‘히트작’이 없었기 때문에 이 작품 <카르멘>에 유난히 공을 들이고 열정을 쏟았습니다. 오페라 <카르멘>은 초연 당시 무자비한 혹평을 받는 바람에 비제는 그 3개월 후 37세의 한창 나이로 세상을 떴다.

하지만 결과는 반쪽자리 성공이었습니다. 음악가들과 평론가들에게서는 대단한 찬사를 얻었지만, 일반 관객들의 반응은 냉담했거든요. 브람스는 <카르멘>의 예술성에 감탄하며 공연을 20회나 관람했고, 철학자 니체는 “음습하고 우울한 독일적 분위기를 단번에 날려버리는 찬란한 태양의 음악”이라고 말하며 “풍요롭고 정밀한 동시에 건축적으로 완벽한 작품”이라고 <카르멘>을 극찬했습니다. 훗날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오케스트레이션 기법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면 <카르멘>의 악보를 연구하라. 음표 한 개도 버릴 것이 없다”는 찬사까지 이 작품에 바쳤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음악적으로 탁월한 오페라가 대체 왜 관객의 호응을 얻지 못했을까요?

전통적 여성 이미지와 도덕을 뛰어넘는 여자 카르멘

가장 큰 이유는 카르멘이라는 여주인공의 독특한 개성 탓이었습니다. 대체로 ‘청순가련형’인 이탈리아 오페라의 소프라노 여주인공들과는 달리 이 메조소프라노 여주인공(소프라노도 부릅니다)은 전통적인 여성의 이미지와 도덕을 뛰어넘는 인물이었거든요. 마리아 칼라스는 <카르멘> 전곡 음반을 남겼고 독창회에서 이 오페라의 아리아를 노래하기도 했지만, 카르멘 역으로 오페라 무대에 서는 일을 꺼렸습니다. 그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칼라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카르멘은 남자의 내면을 지닌 강한 여자죠. 하지만 저는 상당히 여성적인 성격이고, 여성적인 역할을 좋아해요. 그래서 이 배역으로 무대에 서는 걸 원치 않아요.”

게다가 당시 오페라 코미크 극장은 가족이 함께 공연 나들이를 하거나 맞선을 보는 데 주로 사용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시라는 하층민이 떼로 등장해 밀수를 하고, 점을 치고, 결투를 벌이다가 결국 치정살인으로 끝나는 오페라를 봐야 하니 관객은 심기가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겠지요. 특히 초연 때 카르멘 역을 맡은 가수 셀레스틴 갈리 마리의 관능적이고 공격적인 연기는 관객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고 합니다. 카르멘은 당연히 그래야 하는데도, 당시의 관객은 이런 여주인공에게 전혀 익숙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프랑스 역사학자이자 소설가 프로스페르 메리메(1803-1870)의 원작 <카르멘>(1845)에 비하면, 오페라 속 카르멘은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훨씬 순화된 캐릭터인데도 말입니다.

문득 마음에 드는 남자를 보고 장미꽃을 입에 물고 유혹하는 카르멘.

안달루시아의 집시, 최하층 노동자 계급의 여자 카르멘

집시는 유럽에서 유태인보다도 더 심하게 천대와 박해를 받아온 소수민족의 하나입니다. 본래 서남아시아에 살던 인도 아랍계 유랑민족인 이들은 살던 땅에서 내몰린 뒤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며 떠돌이 생활을 했습니다. 나라에 따라 ‘신티/로마, 마누슈, 히타노’ 등으로 불리는 이들 집시는 어느 나라에서든 사회에서 정상적인 직업을 가질 수 없도록 법적 제한을 받았기 때문에, 남들이 하지 않으려는 밑바닥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거나 도둑질, 암거래, 밀수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끝없이 도피, 유랑생활을 계속하게 된 것이죠.

신대륙을 정복하고 나서 남아메리카 선주민들에게서 담배를 배운 유럽인들은 유럽 곳곳에도 대규모의 담배공장을 지었는데, 오페라 <카르멘>의 배경이 된 1820년경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도시 세비야 담배공장 노동환경의 열악함이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한여름에도 통풍이 되지 않는 작업장 안에 5백 명쯤 되는 여자들이 빼곡히 들어앉아 담뱃잎을 말았습니다. 이 당시 담배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이란 신분 면에서나 보수 면에서나 최하층 노동자에 속했는데, 이들 대부분이 안달루시아의 집시들이었고, 카르멘 역시 그들 중 하나였습니다.

“사랑은 제멋대로인 한 마리 새, 누구도 길들일 수 없어/ 스스로 다가오지 않는 한 불러봐도 소용없지/ 협박도 애원도 소용없는 일...” 이렇게 시작되는 카르멘의 아리아 ‘아바네라(Habanera)’는 원래 1800년경 쿠바의 아바나 지방에서 태어난 유행한 춤곡입니다. 탱고와 비슷한 두 박자 리듬에 셋잇단음이 따라 나오는 것이 특징이죠.

Yannick Nézet-Séguin/MET Opera 2010 - Bizet, Carmen

Carmen: Elina Garanča

Don José: Roberto Alagna

Escamillo: Teddy Tahu Rhodes

Micaela: Barbara Frittoli

Metropolitan Opera Chorus

Metropolitan Opera Orchestra

Conductor: Yannick Nézet-Séguin

Metropolitan Opera House, NY

MET Opera 2010

카르멘의 불같은 매력과 깊은 절망과 허무의 오페라

1막

보수적이고 진지한 바스크 지방 출신의 하사 돈 호세는 아바네라를 부르며 자신에게 꽃을 던져준 카르멘에게 영혼을 빼앗기고 맙니다. 어머니 뜻대로 얌전하고 착한 고향 처녀 미카엘라와 결혼하려고 마음먹어보지만 도저히 카르멘을 마음에서 몰아내지 못하죠. 그때 담배공장 여공들끼리 싸움이 벌어지고, 카르멘이 폭행죄로 체포됩니다. 그러나 카르멘은 호송 책임을 맡은 호세를 스페인 춤곡 ‘세기디야’로 유혹해 도주하는 데 성공합니다.  카르멘은 불같은 매력을 가진 집시 여성으로 당시의 도덕적 여성상에 반하는 야성적인 캐릭터이다.

2막

2막이 열리면 파스티아의 술집입니다. 다른 집시들과 함께 카르멘은 ‘집시들의 노래’를 부릅니다. 이 노래는 느리고 나른하게 시작했다가 템포가 점점 빨라져 나중에는 플라멩코의 ‘두엔데’(duende: 강렬한 춤을 통해 영혼의 폭발을 체험하는 순간)를 연상시키는 광기로 마무리됩니다. 이때 이 술집에 인기 투우사 에스카미요가 자신의 숭배자들을 거느리고 찾아와 ‘투우사의 노래’를 부릅니다. 출옥한 호세는 자신의 진심을 알리기 위해 서정적인 아리아 ‘꽃노래’로 카르멘에게 절절한 심정을 전합니다. 그러나 카르멘을 찾아온 자신의 상관과 싸움을 벌이게 된 호세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집시들과 함께 밀수의 길을 떠납니다.

3막

3막에서 유랑생활과 범법자 신세에 불안과 회의를 느끼게 된 호세는 가책에 시달리고, 카르멘은 호세가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한편 카르멘에게 반한 투우사 에스카미요는 집시들이 머무르고 있는 산 속까지 찾아와 카르멘을 투우장에 초대하고, 미카엘라도 ‘두렵지 않다고 말은 하지만’이라는 투명한 아리아를 부르며 이곳까지 찾아와 호세에게 ‘어머니가 위독하시다’고 전합니다. 질투와 원망과 증오로 마음이 일그러진 호세는 카르멘을 위협하고 고향으로 갑니다.

4막

4막 도입부에 나오는 투우장의 합창과 파소도블레(paso doble) 음악이 사용된 ‘투우사들의 입장’은 활력과 색채감이 넘치는 장면입니다. 카르멘은 투우장에 입장하는 에스카미요와 사랑을 확인합니다. 어머니의 장례를 마치고 투우장에 찾아온 호세는 카르멘에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애원하다가, 카르멘의 차가운 거절에 이성을 잃고 카르멘을 칼로 찔러 죽입니다. 이 오페라 여주인공의 독특한 매력은 관객을 사로잡는 불같은 열정과 넘치는 에너지에 있을 뿐만 아니라 깊은 절망과 허무에 있습니다. 카르멘이 죽음을 무릅쓰고 지키려 했던 것은 결국 투우사에 대한 새로운 사랑이 아니라 집시의 유일한 재산인 자유였습니다. “관능을 무시하지 말라. 늘 모차르트를 곁에 두어라”라고 말했던 비제의 말 속에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 <카르멘>의 성공 비결이 담겨 있습니다.

 

추천 음반 및 영상물 (카르멘-돈 호세-미카엘라-에스카미요 순)

마리아 칼라스의 뇌쇄적이고 날카로운 목소리의 카르멘은 오랫동안 명반으로 칭송받았다. 마릴린 혼의 카르멘은 메조 소프라노의 매력을 마음껏 보여주는 음반이다. 마리아 유잉은 거칠고 야성적인 카르멘의 자유분방한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불량기마저 넘치는 유잉의 카르멘 연기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안나 카테리나 안토나치 역시 대형 메조소프라노로 건강미 넘치는 카르멘을 연기하지만 이 영상물에서는 요나스 카우프만의 돈 호세 역시 카르멘의 열정에 뒤지지 않는 뜨거운 연기를 펼친다.

[음반] 마리아 칼라스, 니콜라이 게다, 안드레아 기요, 로베르 마사르 등. 조르주 프레트르 지휘, 파리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1964년 녹음

[음반] 마릴린 혼, 제임스 맥크라켄, 톰 크라우스, 아드리안 말리폰테 등.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와 맨하탄 합창단, 1973년 녹음

[DVD] 마리아 유잉, 루이스 리마, 레온티나 바두바, 지노 킬리코 등. 주빈 메타 지휘, 런던 코벤트 가든 로열 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누리아 에스페르트 연출, 1991년 실황

[DVD] 안나 카테리나 안토나치, 요나스 카우프만, 일데브란도 다르칸젤로 등. 안토니오 파파노 지휘, 런던 코벤트 가든 로열 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프란체스카 잠벨로 연출, 2006년 실황

 

이용숙(음악평론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클래식>명곡 명연주 2010.01.18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6&contents_id=1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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