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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Tchaikovsky, The Nutcracker

 

Tchaikovsky, The Nutcracker

차이코프스키 '호두까기 인형'

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

 

Valery Gergiev conductor

St. Petersburg Kirov Orchestra, Orchestra

1998, Philips

 

해마다 이맘쯤이면 으레 두 개의 작품이 전국 각지의 클래식 공연장을 점령하기 마련이다. 하나는 말할 것도 없이 베토벤 <교향곡 9번>이고, 다른 하나는 차이코프스키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이다. 그런데 왜 많고 많은 발레 가운데 차이코프스키이며, 그 가운데서도 왜 다른 곡은 놔두고 유독 <호두까기 인형>만 찾는 것일까? 발레의 배경이 크리스마스라는 점이 아마도 가장 중요한 이유겠지만, 동화적인 분위기로 누구나 줄거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차이코프스키 특유의 귀에 착 달라붙는 선율미가 십분 발휘되었다는 점 등이 이 작품을 연말의 단골 레퍼토리로 만든 요인이 아닐까 싶다.

 

 

차이코프스키 선율미의 정수를 들려주는 ‘호두까기 인형’

차이코프스키는 50세 되던 해인 1890년에 신작 발레를 위촉받는다. 위촉자인 우세볼로즈스키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 감독관을 역임하면서 러시아 발레 문화를 개혁하는 데 큰 업적을 세운 인물로, 차이코프스키와는 오래 전부터 친교가 깊었으며 1888년에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의 작곡을 위촉하기도 했다. 대본 창작의 경우엔 이야기가 좀 복잡하다. 독일의 작가이자 작곡가였던 호프만의 동화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을 원작으로 프랑스의 소(小) 뒤마가 각색한 것에 기초해 당시 마린스키 극장의 수석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가 발레로 구성하고 차석 안무가 이바노프가 수정한 것이 지금까지 그대로 내려오고 있다.


차이코프스키는 처음에는 이 곡의 작곡을 그리 내켜하지 않았다. 발레에 쓰기에는 약간 유치한 이야기라고 판단한데다가 동화의 세계를 표현할 능력이 자신에게 있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더구나 당시 작곡가는 공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무척 바쁘고 피로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미 과중한 작곡 위촉에 시달리고 있던 데다, 이 무렵 차이코프스키를 후원했던 폰 메크 부인과의 후원 관계가 파탄에 이르렀고 또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서서히 높아가고 있었던 것 등이 그의 심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발레 <호두까기 인형>은 연말 공연장의 단골 레퍼토리이다. 인형이 왕자로 변신해 주인공과 함께 환상 속의 나라를 여행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막상 1891년 1월에 착수하자 작곡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그런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듬해에 관현악 편성 작업을 하던 중 또 신작을 위촉받은 차이코프스키는, 따로 작품을 쓸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발레 전곡 가운데 여덟 곡을 골라 관현악 모음곡으로 정리했으며 바로 이 모음곡판은 초연의 대성공 이후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한편 1892년 12월에 초연된 발레의 경우 음악은 박수를 받았지만 공연 자체는 준비 부족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으며, 진가를 인정받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동화 속으로 떠나는 낭만적인 여행

발레의 줄거리를 대강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클라라를 비롯한 아이들이 할아버지에게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기뻐한 뒤 잠들었을 때, 생쥐 왕이 부하들을 이끌고 습격해 온다. 호두까기 인형이 병사 인형들을 지휘해 맞서지만 전황은 불리하기만 하다. 이때 클라라가 슬리퍼를 던져 생쥐 왕을 쓰러뜨리자 생쥐들은 모두 도망가버린다. 호두까기 인형이 왕자로 변신해 생명을 구해준 보답으로 클라라를 과자나라에 초대한다. 각 과자를 상징하는 요정들이 차례로 춤을 춘 뒤 모두가 한데 어울려 흥겹게 춤추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발레 전곡을 기준으로 할 경우 서곡을 포함해 전체 열여섯 곡(세분하면 스물네 곡)이 약 90분에 걸쳐 연주되는데 모두 언급하려면 길어지므로 여기서는 모음곡 버전을 기준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모음곡에 수록되지 않은 것 가운데서도 나름대로 아름답고 들을 만한 곡이 많으므로 기회가 되면 전곡을 감상하는 것이 좋다. 모음곡 버전은 ‘서곡―성격 춤곡―꽃의 왈츠’로 이어지는 3부 구성으로 정리된 것이 특징이다. 알파벳은 프랑스어 표기다.  

 

<호두까기 인형>은 동화 속 판타지 세계를 무대 위에 그대로 펼쳐놓는다. 다양한 볼거리와 아기자기한 춤이 매력적이다.

 

1. 작은 서곡 Ouverture miniature

원래 발레 전곡 버전에서는 ‘서곡’이라고만 되어 있는데 모음곡 버전에서 ‘작은’이란 말이 추가되었다. B♭장조, 2/4박자. 소나타 형식에서 발전부를 뺀 형태의 구성으로, 현과 목관의 사랑스런 연주가 돋보이는 행진곡풍 곡이다.


2. 성격 춤곡 Danses caractérisitiques

a. 행진곡(Marche) : G장조 4/4박자로 발레에서는 1막의 두 번째 곡이다. 아이들이 크리스마스트리를 둘러싸고 행진하는 모습을 그렸다.

b. 사탕요정의 춤(Danse de la Fée-Dragée) : 2막의 다섯 번째 곡 ‘파 드 되’(2인무)의 세 번째 순서에 해당한다. 네 마디의 현악 피치카토를 타고 첼레스타가 신비로운 선율을 연주한다. 첼레스타는 1886년에 발명된 건반악기로 차이코프스키가 파리 여행 중에 발견했다. 이 악기의 독특하고 영묘한 음색에 매료된 작곡가는 지인에게 이 악기를 사놓으라고 부탁하면서 림스키-코르사코프나 글라주노프에게 알려지는 일이 절대 없도록 하라고 신신당부하기까지 했다. 발레곡에서는 이 곡 외에도 여러 대목에서 첼레스타가 자주 등장한다.

c. 러시아의 춤, 트레팍(Danse russe Trépak) : 2막의 디베르티스망(여러 무용수가 번갈아 다른 춤을 추는 것으로 대개 줄거리와 상관없는 볼거리 위주로 진행된다) 중 네 번째 곡. 트레팍은 러시아의 전통 민속춤이다. G장조 2/4박자. 현 위주의 활기차고 빠른 곡이다.

d. 아라비아의 춤(Danse arabe) : 디베르티스망 중 두 번째 곡. 동양풍의 곡으로 그루지야 지방의 자장가 선율을 사용했다고 한다. 약음기를 단 첼로와 비올라가 북소리를 흉내 낸 뒤 잉글리시 호른과 클라리넷이 이에 응답한다. 이윽고 약음기를 단 바이올린이 주선율을 연주한다.

e. 중국의 춤(Danse chinoise) : 전곡 발레에서도 ‘아라비아의 춤’ 바로 뒤에 등장한다. B♭장조 3/4박자. 바순과 더블베이스의 뒤뚱거리는 듯한 리듬을 타고 플루트가 낭랑하게 노래한다.

f. 풀피리의 춤(Danse des mirlitons) : 발레 버전에서는 ‘트레팍’ 다음에 나온다. 아몬드 과자로 된 여자 목동이 풀피리를 불면서 추는 춤이다. 2/4박자. 중저음현의 피치카토 반주를 타고 세 대의 플루트가 선율을 연주한다. D장조에서 F단조로 전환되는 중간부에서는 금관이 새로운 주제를 연주한다.


3. 꽃의 왈츠 Valse des Fleurs

발레 버전에서는 디베르티스망에 이어 등장하며 마지막 곡은 따로 있지만 이 곡 역시 모음곡을 마무리하는 데는 아무런 손색이 없다. 사탕 요정의 시녀 스물네 명이 추는 군무 장면, 서주를 지닌 확장된 왈츠, 서주에 이어 하프의 카덴차풍 경과구를 지나 호른이 기품 있고 우아한 주제를 연주한다. 이후에도 클라리넷, 플루트 등이 가세해 성대하고 화려하게 클라이맥스를 구축한 다음 그대로 마무리한다. ‘북방의 왈츠 왕’이라 불리는 차이코프스키의 왈츠 가운데서도 손꼽을 만한 걸작이다.

 

아래 유투브 동영상은 2007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에서의 <호두까기 인형> 공연 장면입니다. 마린스키 극장 음악감독인 발레리 게르기에프가 관현악단 지휘를 맡았습니다.


[Act 1-No.9] ‘Scene and Waltz of the Snowflakes’(눈송이 왈츠)


[Act 2-No.4] ‘Waltz of the Flowers’(꽃의 왈츠)

 

차이코프스키의 이른바 '3대 발레' 가운데 마지막에 속하는 이 작품은 앞의 두 곡 <백조의 호수>와 <잠자는 숲 속의 공주>에 비하면 길이도 좀 짧고 분위기도 가벼운 편이지만 그만큼 더 친숙해지기 쉬운 감흥을 지니고 있다. 차이코프스키의 작품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애상적인 분위기 없이 밝고 달콤한 선율이 전곡에 걸쳐 흐르면서도, 전투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극적인 효과 또한 충분히 살리고 있다. 또 당시 러시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악기인 첼레스타를 십분 활용해 음색 면에서도 독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어느 모로 보나 차이코프스키의 작품 전체뿐만 아니라 발레 음악의 역사 속에도 길이 남을 작품이라 할 만하다. 올 연말에는 차이코프스키와 함께 달콤한 과자 나라를 여행해 보는 게 어떨까. 충치 걱정도, 살찔 염려도 없는 달콤함의 세계로.

 

사탕요정의 시녀들이 화려한 군무를 펼치는 <호두까기 인형>의 아름다운 무대

 

추천음반 전곡 수록 음반과 모음곡 음반을 두개씩 소개한다. 안탈 도라티의 1975년 녹음(Philips)은 고풍스럽지만 격조 높은 음향을 들려주며 최근에 SACD로 재출시되어 구하기 쉬워졌다. 게르기에프의 98년 녹음(Philips)은 화려한 음색과 탁월한 녹음이 돋보인다. 모음곡 버전 가운데서는 카라얀의 녹음(DG)이 돋보인다. 악상을 주선율 위주로 쉽게 강조해 차이코프스키의 ‘달콤함’을 극한까지 추구한다. 같은 베를린 필 녹음이라도 로스트로포비치의 1978년 녹음(DG)은 화려함에만 치우치지 않고 강건함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황진규(음악칼럼니스트) 클래식 음악 전문지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스트라드> <인터내셔널 피아노> <콰이어 앤 오르간> <코다> <라 무지카> 등 여러 잡지에 리뷰와 평론, 번역을 기고해 온 음악칼럼니스트이다. 말러, 브루크너, 쇼스타코비치, 닐센의 음악을 가장 좋아하며, 지휘자 가운데서는 귄터 반트를 특히 존경한다.  

 

  원글 출처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1723  

  음원 출처 : http://blog.naver.com/psk6406?Redirect=Log&logNo=30099052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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