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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사

조용하고도 이국적인, 다른 동네와 너무 다른…

 

조용하고도 이국적인, 다른 동네와 너무 다른…

 

 

  • =최보윤 기자
  • 사진=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 입력 : 2014.10.02

 

서울 연희동]

 


도심이 가까운데 새소리 지저귄다
인테리어 좋은 곳은 많지만
사람 향기 좋은 곳은 드문데…
연희로 11가는 그런 곳이다

 


	연희동의 랜드마크인 ‘사러가 쇼핑센터’
그저 동네 마트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외국 유명 식재료 상점에 온 듯 제품 구성이 다채롭다. 연희동의 랜드마크인 ‘사러가 쇼핑센터’.
혹자는 강북의 ‘SSG(신세계푸드마켓·고급 식품관)’라고 부른다.
 
주말이면 외국인이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외국인에게 특히 사랑받는다.

 

 

좀 지쳤던 것 같다. 새로 뜬다며 찾았던 곳들이 어느새 머릿속에서 중첩되기 시작했다. 창고를 개조하고, 공장 지대를

 단장하고, 예스러움을 현대적으로 조화시킨 공간들.

 철재 소품이나 노출 콘크리트를 동원한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의 가게들은 '복제'한 듯 어딜 가나 하나씩 꼭 있다.

 

온갖 수식어를 동원하며 내뱉었던 경탄은 점차 '아'라는 짧은 감탄으로 바뀌고, 어느 순간 '또'라는 탄식으로 탈바꿈했다.

주말만 되면 차로까지 도열하는 사람 물결은 가끔, 현기증마저 유발했다.

출사족 카메라 시선을 피해 다니는 고단함 속에 통행의 자유마저 뺏긴 느낌이다.

자본의 확산과 발달의 평준화라는 측면에선 박수받을지는 몰라도 남다른 희소성을 찾는 이들에겐 슬픈 현실일 뿐이다.

그때 마주하게 된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은 어쩌면 이런 한탄에 대한 일종의 위로다.

'다름'에 대한 발견이었다.

 용산구 한남동과 이태원에 이어 외국인 선호 주거 지역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인데, 색깔은 완전히 달랐다.

 

동네 대부분이 1종 주거전용지역인 데다 인근 초등학교·외국인 학교가 여럿 들어서인지 '유흥' 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때, 새소리가 귀를 잡는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소리다.

 아니, 다른 곳서도 분명 새는 지저귈 텐데 사람이 만드는 소음에 묻힌 게다. 괜히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진다.

연희동이 주목받는 건 연희로 11가 길 때문이다.

최근 1~2년 사이 디자인 갤러리와 카페·레스토랑이 속속 들어섰다. 지금 가장 '뜨거운' 동네인 연남동의 연장선상에서

 주목받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횡단보도 하나 건너면 서로 닿는 거리에, 화교가 많은 것도 공통점이다.

실상 연남동이란 동네도 연희동에서 떼어져 나온 게 아닌가.


 


	연희동 외국인 비율

 

 

한배에서 나와도 이렇게 다를 수 있나 보다. 둘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곳 주민들은 지하철과 바로 연결되지 않는

 

'교통의 불편함'이 역설적으로 동네의 느낌을 보존하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미래학자 리처드 왓슨의 말처럼 트렌드는 역트렌드를 동반하지 않는가.

 

빠르고 간편한 걸 찾다가도 느림의 미학을 원하고, 기계적인 화려함에 매료됐다가 히피적인 자연 속에 파고드는 것처럼

 

말이다.

 

홍대 인근임에도 홍대 상권 영향이 상대적으로 미미하다는 희귀함이 연희동의 독자성을 지켜내고 있었다.


연희동에서 39년간이나 자리를 지킨 '사러가 쇼핑센터'는 그 세월만큼이나 연희동의 DNA를 그대로 담고 있다.

 

고급 수퍼마켓 앞 미제 상품 판매대는 다양한 인종이 공존하는 연희동의 한 단면이다.

 

30년 단골의 힘이 어찌나 센지 그 흔한 대형 마트 하나 진입하기 어렵다.

 

연희동에 새 가게를 내려던 유명 셰프에게 이곳 토박이 셰프들이 이런 조언을 했다고 한다.

 

"TV에 좀 나오고 인테리어 신경 썼다고 다 됐다고 생각 마라. 다른 곳에선 손님 끌진 몰라도 여기선 몇 달 버티기 힘들 거다.

 

자부심이 다른 동네다.

 

매일 출근하고 전력 다해 주민 마음 잡을 각오 없으면 생각부터 접어라."


그 동네가 뜨는 건 몇몇 유명한 셰프나 독특한 인테리어 감각의 아티스트가 전적으로 좌우한다 생각했다.

 

그들 명성을 좇아 그 동네를 그렇게 다녔으니까. 생각해보니, 앞뒤가 바뀌었다.

 

사람과 동네는 동떨어진 게 아니다. 셰프와 아티스트의 발을 잡은 건 동네 냄새고, 사람의 향기이며 분위기고 정이다.

 

먼저, 그 동네의 매력에 반해 자리를 잡은 게다. 단지 가격만으로는 부족하다.


연희로 11가 길을 지나 작은 공원에 닿는다. 40년 된 시민 아파트가 철거된 뒤 2006년 조성됐다.

 

궁동 공원. 궁이 있던 터란 뜻과 더불어 산이 마을을 자궁같이 포근히 감싸 안은 형상을 딴 말이란다.

 

엄마의 품. 숨이란 걸 불어넣어 준 생명의 공간. 연희동은 그랬다. 그곳엔 사람이 있었다. 

 

 

 

 

우리집 장독대는 프로방스 풍… 동네 마트에선 '루콜라(피자 등에 얹는 향긋한 채소)' 삽니다

  • 나카가와 히데코·셰프 

히데코가 말하는 연희동

 


	히데코가 말하는 연희동
히데코(왼쪽 둘째)씨가 자신의 요리 교실에서 수강생들과 디저트를 나누며 이야기하고 있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정확히 7년 전 9월 17일, 요즈음의 서울처럼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이 펼쳐졌던 날.

 지금의 연희동 집과 운명처럼 만났다. 마치 설렘 가득한 남녀의 첫 만남처럼, 그렇게.

아직 아들 둘이 초등학생이던 무렵이었다. 남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바비큐를 하고 싶은 남편, 매일 함께 산책하고픈

 대형견을 키우고 싶어 안달인 아들들, 정원에 꽃과 허브를 심고 맑게 갠 날에는 바깥에 이불과 빨래를 널고 싶은 나.

우리는 가족 모두의 꿈을 이루기 위해 편리한 아파트 생활을 접고 작고 낡은 집이라도 독채로 이사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겨우 찾아낸 집과 계약하는 날 아침, 기대로 부푼 가슴을 안고 연희동 부동산을 방문했다.

하지만 우리와 계약할 예정이었던 집주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힘없이 고개를 푹 숙인 우리에게 부동산 아저씨가 말했다. "지금까지 보신 물건들보다 가격이 좀 높지만,

저 산 쪽에 좋은 집이 있어요. 모처럼 오셨으니 밖에서라도 보실래요?", "그럼 그럴까요…."

출근 전이었던 남편과 나는 다시 기운을 내어, 부동산 아저씨가 적어주신 주소에 의지해 그 집으로 향했다.

연희동이라고 하면 전 전 대통령의 커다란 사저가 늘어선, 평지의 주택가라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실제로

연희동을 걷다 보면 경사가 급한 비탈길이나 야트막한 산을 마주칠 때가 많다.

 

그 집도 N서울타워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궁동산 기슭의 주택가 한구석에 있었다.

 궁동산은 연희동의 야트막한 산. 지은 지 40년 가까이 된 그 집은 아침 햇살을 받아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하지만 아침부터 부동산에 가느라 바빴던 탓에 완전히 잊고 있다가, 계약이 성사된 그날 밤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허브와 사계절을 수놓을 꽃을 심고 싶었던 나는, 소나무, 감나무가 우뚝 솟아있고 한구석에 장독대가 묻혀 있던 마당을

 어떻게든 프로방스 풍으로 바꾸고 싶었다. 나는 열의에 가득 차서 방수공사, 전 주인 취향의 스테인리스 대문을 바꾸는

 공사에 손바닥만 한 정원의 공사와 관리까지 부탁하기 위해 연희동 아저씨들과 친하게 지냈다. 아마 연희동 아줌마들 중

아저씨들의 1t 트럭 조수석에 올라타 필요한 재료를 함께 사러 다닌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 바비큐를 꿈꾸던 남편은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보다 옥상을 좋아했다. 바비큐 그릴과 의자, 테이블, 파라솔을

 갖춰 놓고 이사 당시에는 거의 매주 고기를 구웠다.

 

 동네 사람이 "보통 독채로 이사 오면 바비큐를 3년 정도만 하는데, 히데코 씨 댁은 꽤 오래 하시네요…"

하며 심술궂은 농담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바비큐는 계속된다.

그리고 연희동으로 이사한 후 우연히 시작한 요리교실. 재료를 사기 위해 하루 한 번, 아니 두 번은 가는 '사러가'라는

 마트가 연희동 입구에 있다. 사러 가는 연희시장 자리에 마트를 세우고 원래 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상인들을 그곳으로

 입점시켜 재래시장과의 공존을 꾀하고 있다.

 

 소위 '미제 아줌마'가 팔 것 같은 이국적인 상품들도 잘 구비돼 있는데 요리교실에서 자주 쓰는 쿠스쿠스나 디종

 머스터드 같은 수입품, 각종 허브에 앙디브, 루콜라처럼 희귀한 채소를 언제나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스페인 요리에 가장 필요한 사프란과 오징어 먹물, 파프리카 파우더는 요청해 보았지만 들여 주지 않았다.

사실 나는 스페인에서 살다가 1994년에 한국에 왔다. 90년대에 연세대 유학생으로 연희동에서 하숙한 적이 있으니,

연희동은 내게 각별한 추억이 있는 장소이다. 그래서 우리 집 옥상이나 뒷산인 궁동산 정상에서 보이는 연희동이 내 눈에는 동화 속 나라처럼 보이는지도 모른다. 지인에게 연희동에 대한 애정이 지나치지 않으냐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요즘의 연희동은 20년 전에 비하면 아주 많이 달라졌다. 강남까지 가지 않더라도 연희동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화덕에 구운 피자를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오래된 집들이 한 채씩 새집으로 바뀌거나 개조되어 1층에 세련된 갤러리가 오픈하기도 한다.

 

하지만 40년 전부터 이 동네에 살던 진짜 연희동 토박이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아파트 문화에서 탈출해

여기로 온 나는 맑게 갠 날 마음껏 이불을 널고, 새들의 지저귐을 들을 수 있는 연희동이 제 모습을 지키기를 바란다.

나카가와 히데코는

귀화 한국인으로, 연희동 자기 집에서 ‘구르메 레브쿠헨’ 요리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2011년 ‘셰프의 딸’ (

마음 산책)을 시작으로 분방한 에세이스트로 사랑을 받고 있다. 프랑스 요리 셰프였던 아버지와 플로리스트 어머니를 따라 어린 시절을 지중해 연안에서 보낸 그는 얼마 전 현지의 맛을 담은 ‘지중해 샐러드’·‘지중해 요리(로그인)’ 책을 냈다. 

 

 

 

 

情이 있는 곳엔 사람이 있고… 사람이 있는 곳엔 '맛'이 있네

  • 최보윤 기자

 

연희동 맛 골목

 

 


	연희동 Hot Place
1 목란의 ‘탕수육’. 2 작은나폴리의 ‘반반 피자’. 3 피터팬제과의 ‘건강빵’.
4 몽고네의 ‘타르타르’. /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5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연희동의 골목길.
 
 브런치 카페 뱅센느의 따스한 불빛은 저녁 산책길 사람들에게 길잡이가
된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연희동 Hot Place

 

몽고네

신사동 '그라노'와 이태원 '소르티노스' 등 유명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총지배인으로 일했던 몽고 대표가

그라노에서 함께 일하던 루피 셰프와 합심해 문을 열었다. '몽고'는 대표의 별명.

 성산로 입구 쪽으로 향한 골목 초입에 위치했는데 동네를 딱 들어서는 순간 '여기다' 싶었단다.

 

 파스타와 뇨끼 등 기본 메뉴는 물론 트뤼프 오일을 가미한 버터소스 요리 등 각종 창작 요리가 입맛을 돋운다.

계절별로 특선 메뉴가 있는데 여름엔 어란 성게 파스타를, 가을엔 어란 고노와다 파스타를 내놓는 식이다.

 

제주도 조랑말 농장에서 직송한 말고기 타르타르와 드레싱, 피스타치오를 곁들인 전채요리(2만원)는 말 그대로

 싱싱한 에너지가 입안에서 춤춘다. 연희동 192-29. (070)8623-0680


	연희동 Hot Place
몽고네

 

디자인 프리마켓


1층엔 카페와 숍이 있고, 2층·3층의 갤러리 소유에선 회화·사진·공예 등의 작품이 전시된다.

 

'아카데미 작당'에선 디자이너나 작가들이 직접 강사로 나서 고객과 소통한다. 일반 소비자들은 디자이너의 작품을

 

구매하고, 캘리그래피나 가죽공예, 천연 화장품 제조법 등을 배울 수 있다. 연희동 132-41. (070)7729-0041


 

매뉴팩트 커피


카페라고 하기엔 협소한 데다 화려한 간판 하나 없고, 생긴 지도 1년 남짓인데 벌써 연희동 사랑방이 됐다.

 

커피 마니아인 김종필·김종진 형제가 운영한다. 차가운 물에 커피를 내린다고 해서 '콜드 브루'라고 한다.

 

제조 허가도 정식으로 받았다. 실험실 같은 작업실이 내부에 있다. 김종필 대표는 "상업화된 도심에서 아직 순수한 느낌의

 

동네여서, 좋은 커피를 제대로 만들자는 우리 철학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핸드드립커피 3000원.

 

연희동 130-2. (02)6406-8777

 




	연희동 Hot Place
매뉴팩트 커피

 

 

76㎡


연희동의 명물 129-11 카페 밑에 있는 편집 숍이다.

 

남성 구두 '바이바또마스티' 이도명, 안경 및 선글라스 '토모아이웨어'의 이정귀, 여성 플랫슈즈 '토레로' 이경묵 등

 

3명의 디자이너가 의기투합해 문을 연 사무실 겸 쇼룸이다. 카페 129-11이 번지수를 그대로 이용했다면 76㎡는

 

면적을 나타낸다. (02)3785-0620


 

 

작은 나폴리


사진작가 출신 류창현 대표의 감성이 돋보이는 곳. 화덕 피자는 400도 이상 온도에 구워 쫀득한데 고르곤졸라 유자

 

피자(1만5000원)가 별미다.

 

마르게리따 피자와 반반 메뉴(1만5000원)로 주문할 수 있다. 로제 소스에 성게알, 명란, 계란 노른자가 들어 있는

 

리치오 디 마레(1만4000원)는 뒷맛이 매콤한 것이 중독성 있다. 1층의 꽃집 벤자민&데이지도 한번 둘러보면 눈이 즐겁다.

 

연희동 133-30. (02)306-8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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