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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ISM 음악

Eros Ramazzotti - Se Bastasse Una Canzone

 

with Luciano Pavarotti

 

 

 

 

 

 

with Luciano Pavarotti

 

 

 

 

 Se Bastasse Una Canzone

 

 

 

 

Se bastasse una bella canzone
A far piovere amore
Si potrebbe cantarla un milione
Un milione di volte
Bastasse già
Bastasse già
Non ci vorrebbe poi tanto
A imparare ad amare di più...

Se bastasse una vera canzone
Per convincere gli altri
Si potrebbe cantarla più forte
Visto che sono in tanti
Fosse così
Fosse così
Non si dovrebbe lottare
Per farsi sentire di più...

Se bastasse una buona canzone
A far dare una mano
Si potrebbe trovarla nel cuore
Senza andare lontano
Bastasse già
Bastasse già, yeah
Non ci sarebbe bisogno
Di chiedere la carità...

Dedicato a tutti quelli che
Sono allo sbando
Dedicato a tutti quelli che
Non hanno avuto ancora niente
E sono ai margini da sempre, o
Dedicato a tutti quelli che
Stanno aspettando
Dedicato a tutti quelli che
Rimangono dei sognatori
Per questo sempre più da soli, o...

Se bastasse una grande canzone
Per parlare di pace
Si potrebbe chiamarla per nome
Aggiungendo una voce
E un'altra poi
E un'altra poi, yeah
Finché diventa di un solo colore
Più vivo che mai...

Dedicato a tutti quelli che
Sono allo sbando
Dedicato a tutti quelli che
Hanno provato ad inventare
Una canzone per cambiare, o
Dedicato a tutti quelli che
Stanno aspettando
Dedicato a tutti quelli che
Venuti su con troppo vento
Quel tempo gli è rimasto dentro, o...

In ogni senso
Hanno creduto, cercato e voluto
Che fosse così...
Che fosse così...
Hanno creduto, cercato e voluto
Che fosse così...

 

 



 

 

 

 

 


 

 

 

 

 

에로스 라마조띠(Eros Ramazzotti)는 이태리 깐쪼네와 락을 결합시킨 음악, 일명 '스파게티 웨스턴 락'으로

 세계무대에 진출한 가수이다.

탄탄한 음악성과 대중성을 지닌 에로스 라마조띠는 1963년 10월 28일 이태리 로마(Rome) 치네치따(Cinecitta)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페인트공이었는데, 음악에 대한 열정이 강했다. 그는 한 때 가수의 꿈을 키우며

 "Voglio Andare Sulla Luna", "Lui e Uno"라는 타이틀의 곡들을 레코딩 한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내게 처음으로 영감을 준 것은 바로 아버지였고, 아버지의 음악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그는 꾸준한 음악

 수업을 거쳤다.

 

본격적인 음악으로의 행로는 1982년과 1985년 사이였다. 자신의 신념을 확신한 에로스 라마조띠는 로마와 마를린을

 왔다갔다하며, 신인 아티스트를 키우는 DDD 레코딩 스튜디오로 출근 도장을 찍기에 이른다.

일과 공부만을 하며 수도원에서와 같은 생활을 했지만, 지금의 시점에서 볼 때 당시는 에로스에게 많은 음악적 발전을

 가져다준 중요한 때였다.

 

1982년 그는 직접적인 음악계의 진출을 보였다.

산레모 페스티벌의 강력한 후원자인 Gianni Ravera의 제의를 받아들여 Voci Nuove Di Castrocaro라는 가요제의

신인 부문(Nuove Proposte)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별다른 성과 없이 대회의 막은 내려졌지만 이는 DDD사와 계약하게 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 주었다.


"'Rock 80'란 노래였는데, 내가 작사했고 특별할 것 없는 노래였다.

하지만 나에게 처음으로 '레코딩 계약'이라는 타이틀을 던져준 곡이다."

 

계약 1년 뒤 에로스의 첫 번째 싱글 "Ad Un Amico(To A Friend)"를 발표하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그가 성공이라는 이름대 위에 앉게 된 것은 1984년 유럽 지역에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와 더불어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이태리의 대표적인 <산레모 가요제(Sanremo Festival)>에서였다.

 

에로스는 "Terra Promessa"를 불러 역시 신인 가수 부문에서 대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이 곡으로 그는 대중들에게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독일, 멕시코, 아르헨티나, 그리고 고향 이탈리아에서도 성공을 거두며 미래에 대한확실성을 보장받게 된다.

다음 해인 1985년에도 "Una storia importante"로 산레모에 출전, 입상하지는 못했으나 대신 청중들로부터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

 연이어 세 번째로 참가했던 1986년 제 36회 산레모에서는 마침내 "Adesso tu"로 대망의 우승 트로피를 가슴에

 안았으며 이태리 뿐만 아니라 유럽 지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에로스는 어느 잡지와 가졌던 인터뷰에서 당시 청중들의 환호와 벅찬 감동과 감격의 눈물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만큼 산레모 가요제에서 우승한다는 것은 가수로서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초창기 세곡의 히트곡들은 모두 1985년에 발표되었던 그의 정식 데뷔 앨범 [Cuori agitati]와 [Nuovi eroi]에 각각

 나뉘어 수록되었다.

 뒤이어 1987년에 발표된 세 번째 앨범 [In certi momenti]는 비평가들의 찬사와 대중적인 사랑을 동시에 받았으며

 유럽 지역에서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앨범 발매와 함께 펼쳐진 투어 콘서트에서는 1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아 이태리 록 쇼 사상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우기도 한다.

1988년 봄에는 [Musica e]이라는 미니 앨범을 발매하여 연속 히트 행진에 순회 공연을 가지면서 남미 지역까지 그의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에로스 라마조띠라는 뮤지션에게 있어서 슬럼프라는 말은 없어 보였다.

 그는 나날이 승승장구했고,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다섯 번째 앨범인 [Adesso tu]는 초창기 작품들을 재수록한

음반이었다.

 

음악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가수로서 확고한 자리 매김을 한 여섯번째 앨범인 1990년작 [In ogni senso]는 가사에

 있어서 각 수록곡들간의 긴밀한 유대 관계를 갖는 독특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Amarti e' l'immenso per me", "Dammi la luna"와 "Se bastasse una canzone" 등의 히트곡들을 수록하고

 있다.

또한 그의 목소리는 데뷔 시절보다 더 확고하고 명확해졌으며 어쿠스틱 사운드가 울려 퍼지는 거대한 합창과 함축적인

가사, 잘 짜여진 편곡 등 성숙해진 예술성과 음악 세계를 들려준다.

 

이 앨범으로 그는 처음으로 미국에서 공연을 갖게 되었고, 이 공연 후 그의 콘서트 실황을 녹음한 본격 라이브 앨범인

 [Eros in Concert(콘서트의 사랑)]가 1991년 발매되었다.

 

[Eros in concerto]에 이어 1993년 에로스 라마조띠는 [Tutte storie]를 발표하였다.

 단순하고 우아하고 로맨틱한 발라드 곡들과 업템포(uptempo)의 팝송들은 라마조띠 스스로 생애 가장 심혈을

 기울인 프로젝트라고 밝힌 [Tutte Storie]는 급작스런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이 앨범은 편안한 멜로디를 무기로

 백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이 앨범은 기존 칸초네풍의 스타일에 락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으며 아마도 국내에서 상업적으로

 에로스 라마조띠의 존재를 더욱 확고히 해준 앨범이라 할 수 있다.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A mezza via"가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1995년 세계 굴지의 레이블 BMG와 전세계적인 계약을 체결한 에로스 라마조띠는 [Tutte Storie] 이후 3년간의

침묵을 깨고 여덟번째 앨범 [Dove c'e musica]를 발표하였다.

 에로스 라마조띠에게 있어 [Dove c'e musica]는 락을 도입시킨 변화의 앨범이었다. 이 앨범은 두 번째 싱글이었던

 "Yo Sin Ti"의 성공과 함께 700만장 이상이라는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며 에로스 라마조티에게 명실상부한 슈퍼스타의 자리를 확고히해 주었다.

 

"Yo Sin Ti"는 스페인어로 불린 곡으로 도미니카의 리듬인 메렝게(merengue)와 살사(salsa) 리듬이 조화되어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의 초기 발표작에서 기대치 않았던 그러한 음악적 성숙함을 보여 준 것이었다.

 [Dove C'e Musica(Where There's Music)]는 음악에 대한 에로스 라마조띠의 생각과 가치관을 묘사한 가사들과

 에로스 라마조띠 특유의 전형적인 멜로디와 새로운 실험 정신으로 보다 팝 음악에 가까운 스타일을 들려준다.

 

또 비평가와 팬들로부터 '창조적이며 흥분을 자극시키는 앨범'이라는 평을 얻어내기도 했다. 이렇게 데뷔 시절부터

그의 음악을 도와주는 이들로는 공동 프로듀서이자 작곡가인 삐에로 까싸노(Piero Cassano), 작사를 담당해주는 아디오 꼬리아띠(Adio Cogliati)와 그 외 첼소 발리(Celso Valli), 마우리지오 바씨(Maurizio Bassi) 등이 앨범 제작 때마다 에로스와의 공동 작업에 참여해주고 있다.

 

이들중 삐에로 까싸노는 ’70년대 이태리 프로그레시브 록의 황금기에 등장했던 그룹 마띠아 바잘(Matia Bazar)과

이 룽고 에띠(JET)출신의 키보디스트로 활동했던 실력파 뮤지션이다.

1998년 에로스 라마조띠는 이전의 히트곡들과 신곡들을 이상적으로 엮어낸 베스트 앨범 [Eros]를 발표하고 휴지기에 들어갔다.

 

새로이 BMG와 계약을 체결한 후 에로스 라마조띠는 팝 중심의 음악에서 보다 정통적인 락 음악을 구사하기 시작했고, 1995년 락 오버 유럽 페스티발(Rock over Europe Festival)을 위해서 락 밴드를 결성하기도 했다. 그의 라이브 앨범은 1998년 발매되었다.

 

2000년 에로스 라마조띠는 국제적으로 위신있는 많은 뮤지션들이 공동참여한 앨범 [Stilelibero]를 발표하였다.

이 앨범에는 마돈나(Madonna), 셀린 디옹(Celine Dion), 뉴 레디컬스(New Radicals), Mel C.와 같은 내노라하는 뮤지션을 맡았던 프로듀서 겸 작사가인 Rick Nowels이 참여했고, Claudio Guidetti와 Adelio Cogliati가 공동작사로 참여하고 있다.

 

이 앨범은 전체적으로 라틴의 화려함과 록의 거칠음보다는 블루스적인 애들립과 함께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한, 그러나 당연히 라틴팝이라는 분위기가 앨범 전체를 관통하고 있었다. 맑고 아름다운 기타톤과 더불어 에로스 라마조띠의 남성적인 보컬 라인을 들을 수 있는 앨범이었다.

 

2003년 발표한 앨범 [9]는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홉번째 정식 스튜디오 앨범이었고, 모든 작곡과 프로듀싱에

당연하게도 에로스 라마조띠 자신이 참여하였다.

이 앨범은 모국인 이태리에서 무려 95주간이나 차트에 머물렀고, 그 중 70주는 톱 25위 안에 들어있는 진기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2005년엔 그의 열번째 스튜디오 정규 앨범인 [Calma Apparente]가 발매되어 이태리 앨범차트 1위를 위시하여 전 유럽차트를 석권하였다.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은 한계가 있었으나 전세계적으로 3천만장 이상에 달하는 앨범 판매고를 올린 에로스 라마조띠는 이태리가 자랑하는 가수로 감미로운 목소리와 멜로디와 감성이 풍부한 곡들을 발표하며 전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다.

얼핏 보기에 에로스 라마조띠의 음악은 미국적인 팝 음악같이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세계의 주류 음악인 팝적인 양식에 이태리의 서정과 정신을 투영시켜 하나의 완벽한 자기 음악을 완성한

아티스트이다.

바로 이 점이 오늘날 그가 이탈리아와 전 세계 음악팬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일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에로스는 "대도시의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빠지기 쉬운 타락과 유혹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음악에 대한 사랑과 정열 때문이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음악이 있는 곳, 음악을 향한 정열이 함께 하는 한 에로스 라마조띠는 앞으로도 많은 대중들의 기억 속에 뛰어난

음악인으로서 존재할 것이다.

 

 

 

 

 

 

Eros Ramazzotti

 

 

 

 

 

에로스는 1963년 10월 28일 로마시 치네치따(Cinecitta)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3년 동안 공부하던 회계학을 과감히 포기하고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기타와 노래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에로스가 이태리 음악계에 데뷔한 것은 1982년 까스뜨로까로(Castrocaro) 가요제의 신인 부문(Nuove Proposte)에 참가하면서였고 이를 계기로 밀라노의 DDD 레코드 회사로부터 음반 녹음 계약을 제의받고 첫 싱글 Ad un amico를 발표했다.

 

1984년에는 유럽 지역에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와 더불어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이태리의 대표적인

<산레모 가요제(Sanremo Festival)>에서 Terra promessa를 불러 역시 신인 가수 부문에서 대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이 곡으로 그는 대중들에게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아마도 에로스에게는 가장 의미 있는 곡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베스트 앨범에서도 당당히 첫 번째 트랙으로 선곡되었다.


다음 해인 1985년에도 Una storia importante로 산레모에 출전, 입상하지는 못했으나 대신 청중들로부터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

연이어 세 번째로 참가했던 1986년 제 36회 산레모에서는 마침내 Adesso tu로 대망의 우승 트로피를 가슴에 안았으며 이태리 뿐만 아니라 유럽 지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에로스는 어느 잡지와 가졌던 인터뷰에서 당시 청중들의 환호와 벅찬 감동과 감격의 눈물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만큼 산레모 가요제에서 우승한다는 것은 가수로서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초창기 세곡의 히트곡들은 모두 1985년에 발표되었던 그의 정식 데뷔 앨범 Cuori agitati와 Nuovi eroi에 각각

나뉘어 수록되었다.

 

 뒤이어 발표된 세 번째 앨범 In certi momenti는 비평가들의 찬사와 대중적인 사랑을 동시에 받았으며 유럽 지역에서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네번째 앨범 Musica e'로 연속 히트 행진에 순회 공연을 가지면서 남미 지역까지 그의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고

 다섯 번째 앨범인 Adesso tu는 초창기 작품들을 재수록한 음반이었다.


음악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가수로서 확고한 자리 매김을 한 여섯번째 In ogni senso는 가사에 있어서 각 수록곡들간의 긴밀한 유대 관계를 갖는 독특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Amarti e' l'immenso per me, Dammi la luna와

Se bastasse una canzone 등의 히트곡들을 수록하고 있다.

또한 그의 목소리는 데뷔 시절보다 더 확고하고 명확해졌으며 어쿠스틱 사운드가 울려 퍼지는 거대한 합창과 함축적인 가사, 잘 짜여진 편곡 등 성숙해진 예술성과 음악 세계를 들려준다.


그의 콘서트 실황을 녹음한 본격 라이브 앨범인 Eros in concerto에 이어 공개된 Tutte storie는 기존 칸초네풍의

스타일에 록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으며 아마도 국내에서 상업적으로 에로스 라마조띠의 존재를

 더욱 확고히 해준 앨범이 아닐까 하는데, 여기에 A mezza via가 수록되어 있다.

 

이후 3년간의 침묵을 깨고 발표한 아홉번째 앨범 Dove c'e' musica에서는 음악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묘사한 가사들과 라마조띠 특유의 전형적인 멜로디와 새로운 실험 정신으로 보다 팝 음악에 가까운 스타일을 들려준다.

 

그리고 이렇게 데뷔 시절부터 그의 음악을 도와주는 이들로는 공동 프로듀서이자 작곡가인 삐에로 까싸노

(Piero Cassano), 작사를 담당해주는 아디오 꼬리아띠(Adio Cogliati)와 그 외 첼소 발리(Celso Valli),

 마우리지오 바씨(Maurizio Bassi) 등이 앨범 제작 때마다 에로스와의 공동 작업에 참여해주고 있다.

이들중 삐에로 까싸노는 ’70년대 이태리 프로그레시브 록의 황금기에 등장했 던 그룹 마띠아 바잘(Matia Bazar)과

 이 룽고 에띠(JET)출신의 키보디스트로 활동했던 실력파 뮤지션이다.

에로스의 노래를들을 때마다 항상 느끼는 것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목소리에 있으며 이와 더불어 이태리의 낭만적인 정서가 자아내는 칸초네의 정통성이다.

그의 노래들의 주된 테마는 시대를 공유하는 젊은이들의 희망과 절망, 우정과 사랑 등으로 ‘노래(음악)와 사랑’은

지극히 평범한 주제이지만 순수한 감정과 진실한 경험을 표현하고자 하는 영원한 매개체이기도 하다.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에로스는 ‘대도시의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빠지기 쉬운 타락과 유혹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음악에 대한 사랑과 정열 때문이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음악이 있는 곳, 음악을 향한 정열이 함께 하는 한 에로스 라마조띠는 앞으로도 많은 대중들의 기억 속에 뛰어난

 음악인으로서 존재할 것이다.

유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