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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ISM 음악

John Denver -Annie's Song ,Some Days Are Diamonds

 

 

 




 

 


John Denver -Annie's Song

 

 


Annie's Song


You fill up my senses
Like a night in a forest
Like the mountains in springtime
Like a walk in the rain 
숲속의 밤처럼
봄의 들녁처럼
빗속의 산책처럼
나의 감성을 채워주는 그대 
Like a storm in the desert
Like a sleepy blue ocean
You fill up my senses
Come fill me again
사막의 폭풍처럼
잠든 파아란 바다처럼
나의 감성을 채워주는 그대
내가 다가와 날 채워 주세요
Come let me love you
Let me give my life to you
Let me drown in your laughter
Let me die in your arms
내게 다가와 당신을 사랑하게 해주세요
내 인생을 당신께 드릴께요
당신의 웃음에 흠뻑 빠지고 싶어요
당신 품에서 생을 마감할래요
Let me lay down beside you
Let me always be with you
Come let me love you
Come love me again
당신 곁에 눕겠어요
언제나 당신과 함께 있겠어요
내게 다가와 당신을 사랑하게 해주세요
내가 다가와 다시 나를 사랑해 주세요
간주
Let me give my life to you
Come let me love you
Come love me again
내 인생을 당신께 드릴께요
내게 다가와 당신을 사랑하게 해주세요
내가 다가와 날 다시 사랑해 주세요
You fill up my senses
Like a night in a forest
Like the mountains in springtime
Like a walk in the rain
숲속의 밤처럼
봄의 들녁처럼
빗속의 산책처럼
나의 감성을 채워주는 그대 
Like a storm in the desert
Like a sleepy blue ocean
You fill up my senses
Come fill me again
사막의 폭풍처럼
잠든 파아란 바다처럼
나의 감성을 채워주는 그대
내가 다가와 날 채워 주세요
 
 
 
 
 

Some Days Are Diamonds

(Some Days Are Stone)

 

When you ask how I‘ve been here without you
I like to say I‘ve been fine and I do
But we both know the truth is hard to come by
And if I told the truth that‘s not quite true

 

당신 없이도 어떻게 지내왔느냐고요?
그럭 저럭 별 탈없이
잘 지내어 왔다고 하는 편이 말하기 쉽네요.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지요,
진실함이 함께 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 이라는 것을...
내가 그렇게 사실처럼 말을 했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는 말입니다.



Some days are diamonds, some da

ys are stone
Some times the hard times won‘t leave me alone
Some times the cold winds blow a chill in my bones
Some days are diamonds, some days are stone

 

보석과 같은 날이 있는가 하면,
아무 의미가 없는 날도 있구요
외로움으로 가득차 삶을 살기가 서글픈 때도
마치, 차디 찬 바람이 뼈 속까지 스미는 듯한,
그런 고통스런 날처럼 말입니다.
인생의 길이란,
의미 있는 삶과 그렇치 않은 날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Now the face that I see in my mirror
More and more is a stranger to me
More and more I can see there‘s a danger
In becoming what I never thought I‘d be

 

거울에 비친 지금의 내모습
살아 갈 수록 점점 더 낯설어 지는 것 같고,
나이 들어감에 따라
다가오는 생각지 못한 알 수없는 위기감이
점점 더 나를 감싸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Some days are diamonds, some days are stone
Some times the hard times won‘t leave me alone
Some times the cold winds blow a chill in my bones
Some days are diamonds, some days are stone

 

보석과 같은 날이 있는가 하면,
아무 의미가 없는 날도 있구요
외로움으로 가득차 삶을 살기가 서글픈 때도
마치, 차디 찬 바람이 뼈 속까지 스미는 듯한
고통스런 그런 때도 있었읍니다.
인생의 길이란,
의미 있는 삶과 그렇치 않은 날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Some days are diamonds, some days are stone
Some times the hard times won't leave me alone
Some times the cold winds blow a chill in my bones
Some days are diamonds, some days are stone

 

보석과 같은 날이 있는가 하면,
아무 의미가 없는 날도 있구요
외로움으로 가득차 삶을 살기가 서글픈 때도
마치, 차디 찬 바람이 뼈 속까지 스미는 듯한
고통스런 그런 때도 있었읍니다.
인생의 길이란,
의미 있는 삶과 그렇치 않은 날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주옥같은 맑은 목소리로 '올드 팬(Old Fan)'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던 '컨트리(Country)', '포크(Folk)' '싱어 송라이터(Singer Song-writer / 가수 겸 작곡가)', '존 덴버(John Denver)'~~

미국 '콜로라도(Colorado)' 주지사에 의해 '계관시인'의 칭호를 받기도 했던 연예인입니다.

1943년 12월 31일 '뉴 멕시코(New Mexico)'주에서 공군 장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십대시절 할머니에게서 선물로 받은 1910년형 '깁슨 기타(Gibbson Guitar)'가 그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답니다.

'텍사스(Texas)' 공대에 다니던 시절 그는 '로컬 클럽(Local Club / 지방에 작은 클럽을 말함)에서 노래를 시작했고, 그가 사랑하던 '록키(Rocky)'산 지역의 지명을 따서 '덴버(Denver)'로 예명을 하였답니다.

'존 덴버(John Denver)'는 '컨트리(Country)'의 극단적 낙천주의자' 또는 '컨트리(Country)'의 '미키마우스

(Mickey Mouse)'라는 '닉네임(Nickname)'을 얻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미소를 머금고 평화와 사랑, 자연의 전원적 정취를 읊조리는 '존 덴버(John Denver)'의 천진스러운 곡조는

대중과 평론가들을 놀라게 하기도 하며 환희에 넘치게도 했습니다.


그는 1964년 대학을 중도에 그만두고 LA로 옮겨가 '채드 미첼 트리오(The Chad

 Mitchell Trio)'에 가담하게 되며, 이 '트리오(Trio)'는 '존 덴버(John Denver)'의

가입과 함께 전성기를 누리게 됩니다.

그 후 작곡력을 인정받은 '존 덴버(John Denver)'는 '머큐리(Mercury)' '레이블

(라벨 / Label)'과 계약을 맺고 '채드 미첼 트리오(The Chad Mitchell Trio)'는 일련의 '레코딩(Recording)'을 하게 됩니다.

'머큐리(Mercury)'는 이 '레코딩(Recording)'을 1974년에 '비기닝스 위트 더 채드 미첼 트리오 (Beginnings with

 the Chad Mitchell Trio)'란 '타이틀(Title)'로 다시포장을 하여 발매를 합니다.

'채드 미첼 트리오(Chad Mitchell Trio)'는 창설자인 '채드 미첼(Chad Mitchell)의 탈퇴에 따라 '덴버, 보이스 앤 존슨(Denver, Boise and Johnson)이란 이름으로 바꾸어 잠시 활동을 하지만 이 '트리오(Trio)'도 핵심인 (John

 Denver)'가 1969년 '솔로(Solo)' 활동을 위해 떠남으로써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그를 더욱 확고한 가수 겸 작고가의 위치에 올려놓은 것은 바로 '애니스 송(Annie's

Song)'과 백 홈 어게인('Back Home Again)' 등의 연이은 '히트(Hit)' 곡들이었습니다. 1974년 발표한 '베스트 앨범(Best Album)'은 세계적으로 1천만 장 이상이 팔렸고 '차트(Chart)'에는 무려 2년 여 동안 머물렀답니다.

1970년대 그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고,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Tenor Placido

Domingo)'와 함께 '퍼햅스 러브(Perhaps Love)'를 취입하기도 했지만 그 후로 그의

인기는 점점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으며,

1980년대 이후 그는 가수로서보다는 환경운동가, 우주 탐험과 같은 쪽에 관심을 돌렸고 당시 공산주의 국가에서 공연을 하는가 하면 1987년엔 원전 폭발사고가 있었던 체르노빌에서도 공연을 갖기도 했다.

1990년대, 그의 생활은 점점 파멸의 길로 치달았고, 1993년엔 음주운전을 하다가 체포되기도 했으며, 결국 항상 하늘을 동경했던 그는 1997년 비행기 사고로 유명을 달리해 '팬(Fan)'들에게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John Denver


국적 : 미국
출생 : 1943년 12월 31일 출생-   1996년 10월 12일 사망
데뷔 : 1969년
장르:팝 컨츄리
 
빌보드 싱글차트 No.1 히트곡:4곡
Sunshine on My Shoulders('74년 1주간)
Annie's Song('74년 2주간)
Thank God I'm A Country Boy('75년 1주간)
I'm Sorry('75년 1주간)
컨츄리란 장르를 세계적인 음악으로 부상시킨 대표적인 인물
25장의 정규 앨범과 1백여곡이 넘는 히트곡을 배출해냈음
1975년 TV 스페셜 존 덴버 이브닝 쇼로 에미상 수상
그래미상 컨츄리 부문 단골 수상자이며, 컨츄리 어워드 단골 수상자
 환경운동가로 자연을 노래한 대표적인 가수, 죽기 직전까지 환경 콘서트를 벌이기도 함
 지난 96년 10월 비행기사고로 사망
 
내한 공연
88년 11월 11일, 12일 힐튼 호텔 컨베션 홀에서 공연
94년 잠실에서 환경 콘서트를 벌였던 최초의 외국인 가수

John Denver의 대표 히트 송 중 하나인 Annie's song은 존 덴버가 자신의 아내 '애니'를 위해 만든 곡이라고 한다.
로 빌보드 1위를 차지한지 4달만에 1974년 7월 이 으로 다시 빌보드 1위를 차지하게 되므로서 존덴버는 최고 절정의

컨추리 가수가 된다.

음악적 완성도, 음악인으로서의 천부적 재능, 예술적인 연주기법 등을 차치하고서라도 이 노래처럼 사람들에게 언제나

행복, 위로, 격려를 줄 수 있는 즐거운 연주, 즐거운 취미 밴드를 해볼 수 있겠지만 나에겐 아무런 음악적 재능이 없는

 것이 언제나 나의 뒤덜미를 잡고 늘어지고 있다.

비행기 사고로 절명한 존덴버(john denver), 우리나라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얻은 가수이다. 현대 대중 음악의 맏형

 정도의 위치가 아닌가 싶다..

존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는 아마 현재의 어린아이들 흥얼 거리 것으로 짐작하는데 과거 통키타로 이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을 보며 얼마나 좋아했는지 아직도 그 생각이 나곤한다.

자연을 너무 사랑한 덴버는 록키산맥을 좋아했다 그래서 성도 바꾸었을 정도다. 인상에서도 느껴지지만 그는 심성

 착한 엔터테너이다.

 자연을 사랑하고 그것을 자신의 영혼에 담에 노래로 담아낸 아마도 최초의 자연친화적 엔터테이너 리더역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록키산의 독수리라는 정다운 애칭과 더불어 전 세계 젊은이로부터 아낌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 John Denver는

1943년 12월 31일 뉴 멕시코주의 로스웰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헨리 듀센돌프인데 자주 이사를 다니면서 좋아하게 된 콜로라도주의 덴버시를 예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는 독일계였던 아버지가 비행기술에서 세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던 관계로 자신도 장래 파일러트가 되리라고

 꿈을 꾼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할머니에게 깁슨 기타 선물을 받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매력을느끼기 시작하였으며, Elvis Presley의 노래를 듣고 크게 감명을 받아 컨츄리 스타일의로큰롤과 포크송에 심취하게 됐다. 

이후 텍사스 공과대학에 입학하여 건축학을 전공하였으나 전공보다는 기타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고, 이와 비례해

어린 시절부터 익혀 오던 기타솜씨도 제법 늘어 12현기타까지 마스터하여 서부 해안의 한 클럽에서 아르바이트로

 연주를 하게 됐다.

 

그러나 대학에서는 낙제를 하여 결국 퇴학을 당하자 전공이었던 제도공으로 일하면서 밤이면 커피하우스에 나가 그의 맑은 목소리로 꿈을 키워갔으며, 가끔 자신의 노래를 데모 레코드로 제작하여 판매를 하기도 하였다.

1965년 이를 눈여겨 본 당시의 유명한 포크 그룹 Chad Mitchell Trio의 리드 보컬리스트가 탈퇴해 같이 일하자는

 제의에 쾌히 승낙을 하고 4년간 체드 미첼 트리오의 멤버로 연주 활동을 하며 충분한 실력을 쌓아 나갔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사이키델릭 사운드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던 때였으므로 따분한
느낌이었던 그들의 노래가 관심을 끌지 못하고 해산하자 존 덴버는 69년, 솔로로 독립하여 고향이나 다름없는 아스펜으로 돌아왔다.

처음으로 발표한 앨범인 「Rhymes And Reason」은 전문가들에게는 호평을 받았으나 대중들에게는 어필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 때부터 TV와 무대에 자주 출연하게 되어 그의 얼굴이 제법 알려지게 되었으며, 데뷰 앨범에 수록되었던

 자작곡 <Leaving on A Jet Plane>을 그룹 Peter, Paul & Mary에게 주어 크게 히트를 하자 일단은 작곡가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후 James Tayler, Carole King, Joni Mitchell 등에게 곡을 만들어 주기도 하다가 1971년 그가 발표한

<Take Me Home Country Roads>가 챠트에 오르면서 전 세계에히트하자 가수로서도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자신감을 얻어 같은 해 앨범 「Poems, Prayers And Promises」를 발표하여

 세계적인 수퍼스타가 되었다.

 

그는 노래 속에 자연을 그리는 작업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것의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 담겨져

있으며, 확신에 가득찬 그의 시와 기도는 이미 오랜 전에 약속을 받았던 것처럼 존 덴버의 꿈을 읽을 수 있다.

72년 9월 걸작 앨범 「Rocky Mountain High」가 앨범 챠트에 53주간 머무르면서 싱글 <Rocky Mountain High>가 Top 10안에 들었으며, 73년 6월, 6번째 앨범Farewell Andromeda」와 또 하나의 앨범 「John Denver's

 Greatest Hits」가 넘버 원에 오르면서 기록적인 판매고를 보였다. 

74년 1월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상영되었던 연화 『Sunshine』의 주제가인
<Sunshine on My shoulder>가

 Top에 랭크되었고, 6월 두장짜리 8번째 앨범도 역시 1위를 기록함으로서 미국의 레코드 판매 실적이 가장 많은

가수로 알려졌으며, 여기서 싱글 커팅된 <Annie's Song>이 넘버 원, 이어서 <Back Home Again>도 상위를

기록하는 큰 히트를 내었다.

 

1980년에는 산의 노래가 담기 앨범 「Autograph」중에서 <Autograph>가 싱글 커트되었으며, 81년에 앨범

「Some Days Are Diamonds」로 새로운 음악 세계를  펼쳐주는 듯 싱글 <Some Days Are Diamonds>가

좋은 반응을 얻었다.

 

비록 외국의 노래이기는 하나 국내 팬에게는 그 다정함은 어느 노래도 따를 수 없는 것으로 티없는 그의 목소리는

소박함과 따스함을 우리 모두에게 느끼게 해 준다.

 


존 덴버(John Denver)는 70년대∼80년대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던 포크송 가수이다.

특히 환경문제에 대해 갖고있던 지대한 관심을 자신의 음악활동과 접목시켜 아름답고 순수한 노랫말, 부드럽고도

감미로운 음악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단정하고도 대중적인 외모와 더불어 나이나 학벌, 배경과 상관없이 거의 전 계층에 의해 폭넓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그는 영화배우 겸 환경운동가로서도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1943년 12월 뉴멕시코에서 출생한 덴버는 십대에 할머니로부터 1910년형 깁슨 어쿠스틱
기타를 받으면서 음악에

대한 흥미와 열정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텍사스 공과대학에 재학 중에 각종 로컬 클럽에서 연주를 시작했고 1964년 LA로 이주하기 위해 학교를 중퇴한 후에는 채드 미첼 트리오(Chad Mitchell Trio)와 결합하여 그룹활동을 전개하였다. 

69년 존 덴버는 자신으로 인해 세인에게 더욱 알려질 수 있었던 이 그룹에서의 활동을
마감하고 솔로로 데뷔한다.

그의 데뷔앨범인 [Rhymes and Reason]은 불행히도 그가 기대한 것만큼의 성과를 안겨주지는 못했지만, 그 자신이 가장 아끼는 곡 중 하나인 'Leaving on A Jet Plane'이 수록되어 있는 귀중한 앨범이다.

 

이후 [I'd Rather Be A Cowboy](73), [Sunshine on My Shoulder](74)와 3백만장 이상의 놀라운 음반

판매를 기록한 [Anny's Song]을 통해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또한 이미 오페라 음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던 Placido Domingo와의 크로스오버 듀엣곡인 'Perhaps

 Love'를 발표, 수많은 이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음악을 통한 외교 대사관으로서 러시아와 중국을 두루 방문하게 된 그는 자선 활동이나
생태학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음반활동이 저조해졌다.

이로 인해 몇몇 음악 비평가로부터 그의 음악이 너무 무미건조하고 유약하다는 비평을 받기도 하였다. 

나이와 계층, 국적을 막론하고 폭넓게 사랑받았던 존 덴버는 지난 1997년 10월 전용기로 
 태평양을 비행하던 중

 추락사고로 세상을 떠나 전세계의 음악팬들에게 크나큰 충격과 슬픔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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