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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Liszt -Liebesträume No.3 in A flat major

 

 

 

 

 


Franz Liszt (Portrait by Henri Lehmann, 1839)


Liebestraum No.3 in A Flat major, Op.64-3

 

 

사랑의 꿈

 

O lieb, [so lang]1 du lieben kannst!
 O lieb, so lang du lieben magst!
 Die Stunde kommt, die Stunde kommt,
 Wo du an Gräbern stehst und klagst.

 Und sorge, daß dein [Herz]2 glüht
 Und Liebe hegt und Liebe trägt,
 So lang ihm noch ein ander Herz
 In Liebe warm entgegenschlägt.

 Und wer dir seine Brust erschließt,
 O tu ihm, was du kannst, [zu lieb!]3
 Und mach ihm jede Stunde froh,
 Und mach ihm keine Stunde trüb.

 Und hüte deine Zunge wohl,
 Bald ist ein böses Wort gesagt!
 O Gott, es war nicht bös gemeint, -
 Der andre aber geht und klagt.

 O lieb, solang du lieben kannst!
 O lieb, solang du lieben magst!
 Die Stunde kommt, die Stunde kommt,
 Wo du an Gräbern stehst und klagst!

 Dann kniest du nieder an der Gruft
 Und birgst die Augen, trüb und naß,
 - Sie sehn den andern nimmermehr -
Ins lange, feuchte Kirchhofsgras.

 Und sprichst: O schau auf mich herab,
 Der hier an deinem Grabe weint!
 Vergib, daß ich gekränkt dich hab!
 O Gott, es war nicht bös gemeint!

 Er aber sieht und hört dich nicht,
 Kommt nicht, daß du ihn froh umfängst;
 Der Mund, der oft dich küßte, spricht
 Nie wieder: Ich vergab dir längst!

 Er tat's, vergab dir lange schon,
 Doch manche heiße Träne fiel
 Um dich und um dein herbes Wort -
 Doch still - er ruht, er ist am Ziel!

 O lieb, solang du lieben kannst!
 O lieb, solang du lieben magst!
 Die Stunde kommt, die Stunde kommt,
 Wo du an Gräbern stehst und klagst!  
 
 
 리스트(1811∼1886)의 가장 아름다운 소곡으로 알려져 있는 
Liebestraume No.3은
'오 그토록 오랫동안 사랑할 수 있다면'이라는 제명의
 Frailigrath의 시에 곡을 붙인 세곡의 가곡중의 하나이다.  
피아노 곡으로 편곡되어 많이 연주된다.

 

 

프란츠 리스트 조각상

 

 


 

리스트 - 사랑의 꿈

프란츠 리스트 (본명 : Franz von Liszt)

 

라이딩 출생. 에스텔하지 후작의 토지관리인의 아들로 태어나 6세 때부터 아버지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1820년 프레스부르크에서 독주회를 가져 천재의 출현이라는 평을 받았다.

 

1823년 빈으로 가서 K.체르니에게 사사하면서 A.살리에리에게서 작곡을 배우고, 다시 파리로 가서 파에르와

라이하로부터 화성(和聲)을 배웠다.

 다음해 파리에서 데뷔한 후 프랑스 각지로 연주여행을 하였고, 런던에서도 출연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1827년 여행길에서 부친을 여의고 수년 동안은 고난의 시기였으나, 그 동안에 체험한 7월혁명(1830), 여제자 카롤린과의 사랑, 페티스, 쇼팽, 베를리오즈, 파가니니 등과의 교제는 그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주었다.

특히 파가니니와의 접촉으로 그의 연주는 종래 체르니의 스타일로부터 명기주의(名技主義)의 스타일로 전환하였다.

 

그 후 교향시 창조의 기반이 되는 문학적 교양을 쌓고, 6세 연상인 다구 백작부인도 이 무렵에 알게 되었다.

1835년 리스트와 부인은 제네바로 가서 동거생활에 들어가, 두 사람 사이에서 브랑딘, 코지마, 다니엘 등 세 아이가

태어났는데, 코지마는 후에 바그너의 부인이 되었다.

 

그는 1838년 빈에서부터 시작하여 유럽 일대를 무대로 한 연주여행을 하였으며, 이것은 그가 바이마르에 정주(定住)

한 1847년까지 계속되었다.

 

 1847년 유럽 전역에 걸친 연주여행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리스트는 바이마르에 정주하였고, 그것은 동시에 여행 중에 알게 된 비트겐슈타인 후작부인과의 새로운 생활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바이마르에서는 지휘자 ·작곡가 ·교육가 ·사회활동가로 폭넓게 활동하였으며, 지휘에서는 슈만 ·베를리오즈 ·바그너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창작면에서도 《3개의 연주회용 대연습곡》 《초절기교연습곡(超絶技巧練習曲)》 《파가니니에 의한 대연습곡》과

소나타 ·협주곡 등의 피아노곡, 《파우스트교향곡》 《단테교향곡》 《전주곡》 《타소》 《마제파》 《오르페우스》 《이상(理想)》 등의 교향시와 대표작을 연달아 내놓았다.

 

1861년 후작부인과의 결혼식 때문에 로마로 갔으나 부인 친척의 이의(異議)로 실패, 그 후 부인은 종교생활에 들어가고, 리스트도 수도원에 들어가서 평생 동안 흑의(黑衣)를 두르게 되었다.

이 때부터 그의 작품에는 종교성이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869년 로마에서 바이마르로 돌아와서는 교육자로

활동하였다.

 

리스트는 피아노 연주상의 명기주의의 완성과 표제음악의 확립이라는 음악사상 매우 중요한 공적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편곡까지 포함하여 방대한 수에 이르며 악종도 다양한데, 그 중심이 되는 것은 《헝가리광시곡》과

《순례의 해》를 포함한 피아노곡과 교향시이다.

이 곡은, 독일의 혁명 시인 '페르디난트 프라일리히라트'의 시 <오! 그토록 오랫동안 사랑할 수 있다면>의 한 편에 곡을 붙인 것으로, 후에 피아노로 편곡되어 가곡과 함께 유명해졌다.

독일인은 어떤 노인이건 리스트의 <사랑의 꿈>으로 하여 다시 젊어진다면서 좋아한다고 한다.

모두 세 곡이 있는데, 제 3번의 A flat 장조가 유명하고, 우늘날엔 제 1번과 제 2번은 잊혀진 상태이다.

 

사랑의 꿈으로 알려진 이 피아노곡의 원곡은, 리스트가 작곡한 3곡의 가곡을 모두 피아노 곡으로 편곡한 곡이다.

이 3곡의 가곡은 리스트의 가곡 [고귀한 사랑 G.307], [가장 행복한 죽음 G.308],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리라

G.208]을 말하며, 리스트는 이 3곡의 가곡을 피아노 소품의 장르인 녹턴으로 편곡하여, 1850년에 [3곡의 녹턴 G.541] 이라는 타이틀로 출판한다.

 

이 [3곡의 녹턴 G.541"에는 위의 가곡을 편곡한 3곡의 피아노 녹턴곡이 수록되어 있으며, 이 3곡 중에서 3번째 곡인

"녹턴 3번 A flat 장조 작품 62-1 (S.541-3)번이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의 꿈"의 정확한 곡명이고, 이 곡의 원곡은

 가곡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G.298" 이다.

사랑의 꿈의 원곡은 가곡이고, 피아노곡으로 편곡된 곡의 장르는 녹턴에 속하니, 악장같은 것이 있지는 않다.

* 가곡 작곡가로도 많이 알려진 리스트의 고요한 이미지인 아름다운 곡이다. 앞부분은 사랑의 꿈을 꾸는듯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중간에선 위기가 닥친듯이 불안하지만 후반에 다시 아름다운 사랑의 광경이 연상된다.

워낙 유명한 음악이기때문에 여러장르의 음악으로 많이 편곡되어 많이 연주된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도록 하면서도 감미롭게 만드는 연주곡이다.

 

 

 

    

 

 

 

리스트 / Liebesträume No.3 in A flat major

 

 

 

이 곡이 말해 주듯이 정말 아름다운 곡이다. 리스트는 당시 유명한 피아니스트로서 그의 작품은 대개가 피아노 곡이며

 이 곡들은 모두 고도의 테크닉을 구사한 화려한 작품들이다.

 

이 곡은 39세때의 작품으로서 리스트는 <사랑의 꿈>이란 제목으로 3 개의 피아노곡을 작곡 하였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유명한 것이 이 <제 3번 내림 가장조>의 곡이다. 이 곡은 원래 독일의 시인 프릴리·그리트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이었던 것을 후에 피아노 곡으로 편곡한 것이다.

 

리스트는 헝가리의 라이딩 근처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아담 리스트는 에스터하지 백작 밑에서 첼리스트와 피아니스트로 일했다. 어머니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안나

 라거이다. 리스트는 여섯살 때 아버지에게서 처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금방 천재적 재능을 보였다.

그 재능을 높이 산 지방 유지들의 도움을 받아 리스트의 아버지는 리스트를 데리고 비엔나로 유학을 떠난다.

 

비엔나에서 리스트는 잠시 훔멜에게서 수업을 받았지만 훔멜의 수업료가 너무 비쌌기 때문에 그만둔다.

리스트는 베토벤의 제자였던 칼 체르니에게서 피아노를 배웠고, 열두살이 되던 1822년 12월 데뷔했다.

칼 체르니는 리스트의 첫 정식 피아노 교사이자 마지막 스승이었다. 리스트는 프레데리크 쇼팽과도 친해졌지만 이는

 곧 라이벌 관계로 발전했다.

 

1823년 파리로 옮겨간 리스트는 1824년부터 파에르와 레이하 밑에서 푸가와 대위법을 공부했다.

1827년 아버지 아담 리스트가 불로뉴에서 세상을 떠났다.

리스트는 큰 충격을 받았으며, 잠시 성직자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비쳤다. 1832년 천재 바이올린 주자 파가니니의

공연에 다녀온 후 리스트는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마음먹고 매일 10시간이 넘도록 연습을 했다고 한다.

 

 

 

 

 

1834년 리스트는 마리 다구 (Marie d'Agoult) 백작부인과의 사이에서 장녀 블랑딘, 차녀 코지마, 그리고 일찍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아들 다니엘을 두었다.

1840년부터 1841년까지 리스트는 영국에서 두차례 순회공연을 했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리스트 신드롬"이 유럽을 휩쓴 것은 그 이듬해인 1842년이었다. 리스트는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했다.

리스트의 잘생긴 외모와 쇼맨십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의 공연에서 여성팬들이 여러번 기절하기도 했다고 한다.

 

리스트는 베를리오즈, 슈만, 장차 그의 사위가 되는 바그너 등의 당대의 음악가들과 화가 앵그르, 시인 하이네, 동화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등과 친분을 다졌다.

리스트는 잠시 탈베르크와 경쟁관계에 놓였으나 탈베르크의 명성은 점차 희미해졌다.

 

 이 후 리스트의 라이벌은 언제나 쇼팽이었다.

 1847년 리스트는 바이마르의 궁정에서 케펠마이스터로 일한다.

이 시기 리스트는 자인-비트겐슈타인 Sayn-Wittgenstein 공작부인과 깊은 사랑에 빠져 다구 백작부인과 헤어졌다.

 

피아노 공연보다는 작곡에 주력할 것을 권한 사람도 공작부인이었다.

두 사람은 결혼하려 했으나 비트겐슈타인 부인의 남편은 아직 살아 있었고, 교황청은 공작부인의 이혼을 승낙하지

않았다.

 

리스트는 1861년 로마로 옮겨갔다.

1865년 리스트는 예전의 희망대로 카톨릭 성직자가 되어 종교 음악 작곡에 헌신했다.

1869년부터 리스트는 로마, 바이마르, 부다페스트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했다.

같은 해 리스트의 딸 코지마가 바그너와 결혼하면서 개신교로 개종하자 리스트는 몇년동안이나 코지마와 연락을

하지 않았다.

 

1876년부터 죽기 전까지 리스트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1886년 7월 31일 리스트는 둘째 딸

코지마의 품에 안겨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