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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Beethoven -Triple Concerto C장조, Op.56

3중 협주곡은 피아노 트리오 편성에 오케스트라 반주가 붙는 형식의 곡이다.

 

 

 

Beethoven, Triple Concierto y Fantasía Coral. Yo-Yo Ma, Perlman, Barenboim

 

 

Ludwig van Beethoven (1770 - 1827)

Triple Concerto Triple Concerto y Fantasía Coral

in C major, Op.56

 

 

 

Ludwig van Beethoven : portraits...

 

 

베토벤 - 삼중협주곡 C장조, 작품 56

 

1. Allegro
2. Largo (attacca)
3. Rondo alla polacca

 


Itzhak Perlman, violín
Yo-Yo Ma, violonchelo
Daniel Barenboim, piano y director.


(Sala de la Berliner Philharmonie en Berlín-Tiergarten.

 

 

 


 

 

1st Allegro

 

제1악장은 협주풍 소나타 형식이다.

먼저 첼로와 더블베이스만으로 제1주제가 연주된다.

 

이어 제1바이올린이 G장조로 제2주제를 노래한다.

주제는 스타카토에 의한 셋잇단음표로 반주된다.

 

독주부의 첼로가 제1주제로 등장하면, 바이올린이 5도 위에서, 피아노는 원래의 조성으로 이 주제를 이어받는다.

경과부에서는 세 독주악기의 기교가 화려하게 반복되어 총주로 일단락된다.

이어 피아노는 아르페지오로 연주되며 첼로가 제2주제를 연주한다. 발전부로 들어가면, 첼로가 제1주제를 연주하고,

바이올린, 피아노 순으로 주제가 연주된다.

 

재현부는 제시부처럼 독주악기군의 화려한 기교가 반복적으로 펼쳐진 후 곡을 마무리한다.

 

 


 

 

 2nd Largo

 

제2악장은 라르고로 불과 53마디의 간주곡풍 악장이다. 약음기를 낀 바이올린의 짧은 도입에 이어 피아노가

섬세한 아르페지오를 연주하면, 오보, 파곳 그리고 현악기가 피치카토를 도입하여 선율을 노래한다.

 

여기서 피아노가 아르페지오를 연주할 때, 바이올린과 첼로가 앞의 주제를 변주한다. 이 변주 다음 최초의

도입선율이 목관으로 나타나며 독주부의 카덴차 풍 연주 다음 곧바로 3악장으로 이어진다.

 

 


 

 

 

 3rd Rondo. Alla polaca

 

 

제3악장은 론도 알라 폴라카이다.

여기서 폴로네이즈풍의 경쾌한 악장을 도입한 것은 전체적으로 곡을 무겁게 하지 않으려는 베토벤의 의도로 보여진다. 그리고 3악장에서는 첼로의 역할과 비중이 매우 높다.

 

주제는 현의 반주로 첼로가 노래하고, 이것을 독주 바이올린이 5도 위에서 반복한 후, 여기에 새로운 악상을

더하며 진행한다. 이어 3대의 독주악기로 이 주제가 연주된 후, 관현악이 총주로 이어간다.

이후 바이올린이 매우 특징적인 리듬의 새로운 악상을 제시하면, 독주악기들이 차츰 빠른 악구를 연주한다.

 

이어 첼로에 의해 제2주제가 나타난다.

그리고 론도주제가 독주첼로로 재현되고, 도입부가 반복되다가 관현악이 강하게 ‘폴로네이즈 리듬’을 연주하는 사이,

제3주제가 바이올린으로 제시된다.

 

이 제3주제는 첼로, 피아노의 순서로 이어지고 오케스트라가 격렬하게 3번째 론도 주제를 제시한다.

이어 제2주제가 첼로에 의해 재연되고, 다시 원래의 템포와 박자로 돌아가 독주악기군과 오케스트라가 격렬하게

 대응하면서 전곡을 마친다.

 

 

 


 

 

 

 

피아노와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독특한 협주곡

통상 ‘3중 협주곡’(트리플 콘체르토)로 불리는 이 작품은 베토벤이 남긴 협주곡들 가운데  독특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의 다른 모든 협주곡들이 단 하나의 독주악기를 위한 것인 데 비하여 이 협주곡만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등 세 대의 독주악기를 기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고전파 시대에 유행했던 ‘협주 교향곡’의 형태를 계승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당시 유행하던 ‘피아노 3중주’ 편성에 관현악을 결합시킨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협주곡은 베토벤의 생애에서 가장 생산적이고 진취적인 시기에 탄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으로서의 완성도 면에서는 같은 시기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다소 퇴보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이 ‘걸작’으로 불리는 경우는 없으며, 진지한 베토벤 애호가들조차 이 작품에 제한적인 의미만을 부여하고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이 협주곡 역시 베토벤의 음악이 아니면 불가능한 매력과 나름의 의미를 지닌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관현악은

 베토벤다운 당당한 위풍과 힘찬 기백을 뿜어내고, 독주악기들도 화려한 명인기와 교묘한 앙상블을 뽐낸다. 특히 세 명의 뛰어난 독주자가 관현악의 적절한 지원을 받으며 연주할 경우 그 매력은 배가된다.

아마도 베토벤의 의도는 당대에 각광받았던 실내악 형식이자 자신의 작곡가로서의 본격적인 출발점이기도 했던 ‘피아노 3중주’를 관현악이라는 보다 강력한 표현 매체와 결합하는 것이었던 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수법이 다분히 유희적인 차원에 머물렀다는 데 있다.

 즉 베토벤은 이 곡에서 주제를 치밀하게 발전시키는 대신에 서정적인 선율들을 세 개의 독주악기에 골고루 나누어주고 느슨하게 반복하도록 했다.

당연히 곡은 필요 이상으로 길어졌는데, 유감스럽게도 그 선율들이 지닌 힘은 그 깊이를 온전히 지탱하기엔 약했다.

아울러 세 독주악기를 관현악과 결합시키는 수법도 그리 세련되거나 혁신적이지 않고, 악상의 풍부함이나 전개의 치밀함이라는 면에서도 별로 돋보이지 않는다.

이런 약점들은 베토벤이 비슷한 시기에 작곡한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더욱 두드러진다. 베토벤이 이 이 협주곡을 작곡한 것은 그의 나이 30대 초반이었던 1803년에서 1804년 사이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 그는 ‘크로이처 소나타’와 ‘피아노 협주곡 3번 c단조’를 발표한 직후였고, ‘발트슈타인 소나타’와 ‘영웅 교향곡’을 작곡 중이었다.

다시 말해서 음악사에 신기원을 이룩한 혁신적이고 완성도 높은 걸작들을 속속 꺼내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3중 협주곡’도 그러한 혁신 또는 실험의 일환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고된 작업 도중에 쉬어 가는 경유지 정도의 의미였을까?

 

 

 

 

루돌프 대공과의 인연

베토벤이 이런 특이한 형태의 협주곡을 작곡하게 된 동기는 분명하지 않다. 그의 비서 노릇을 했던 안톤 쉰틀러에 따르면, 애초에 이 곡의 피아노 파트는 루돌프 대공을 위해서, 바이올린 및 첼로 파트는 각각 게오르크 아우구스트 자이틀러와 안톤 크라프트를 염두에 두고 작곡된 것이었다고 한다.

 이 가운데 루돌프 대공은 이 협주곡이 만들어지던 무렵 베토벤을 처음 만나 그에게 작곡과 피아노를 배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로부터 베토벤과 대공은 신분과 나이를 초월하여 신실한 우정을 나눴다.

대공은 베토벤에게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었고, 베토벤은 대공에게 ‘대공 트리오’, ‘황제 협주곡’, ‘하머클라비어 소나타’, ‘장엄 미사곡’ 등 최고의 걸작들을 헌정했다.

루돌프 대공의 음악적 재능과 피아노 실력은 상당히 뛰어났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협주곡이 작곡될 무렵 대공의 나이는 아직 15~16세였다.

따라서 베토벤이 어린 대공의 연주력을 감안하여 이 곡의 피아노 파트를 비교적 평이하게 썼다는 가설은 메우 그럴 듯하다. 하지만 루돌프 대공이 이 곡을 연주했다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또한 이 협주곡은 루돌프 대공이 아니라 로프코비츠 공작에게 헌정되었다

 

 

프랑스를 향한 구애

다른 한편, 어떤 이들은 이 협주곡의 작곡 동기를 베토벤의 ‘프랑스에 대항 관심’과 관련짓기도 한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젊은 시절 베토벤은 나폴레옹(황제 자리에 오르기 전)에게 깊이 경도되어 있었다. 또 한때는 빈을 떠나 파리로

근거지를 옮겨 활동하려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유명한 ‘영웅 교향곡’의 작곡도 원래는 그런 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3중 협주곡’의 경우에는, 그 장르적 연원이 바로 프랑스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협주곡의 독주부에 복수의 악기를 배치하는 ‘협주 교향곡’(symphony concertante) 양식은 18세기 중엽 프랑스에서부터 발달하기 시작하여 차츰 독일의 만하임과 본 등지로 확산되어 나갔던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모차르트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나 ‘플루트와 하프를 위한 협주곡’도 그 영향권 아래에서 탄생한 작품들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베토벤의 ‘3중 협주곡’은 역시 단순한 장르의 차용이나 답습에 그치지 않았다. 우선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독주부는 ‘협주 교향곡’의 전통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형태이다.

 이것은 역시 베토벤다운 실험정신의 발현이라고 보아줄 수 있는 부분이다. 아울러 독주부의 주도권이 ‘피아노 3중주’에서 관레적인 피아노나 바이올린이 아니라 첼로에게 주어진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이 곡에서 첼로는 모든 악장의 주제 제시를 도맡는 것을 비롯하여 전곡에 걸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베토벤이 이 곡을 작곡할 때 염두에 두었다는 안톤 크라프트는 하이든이 봉직했던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궁정악단에서 수석 첼리스트로 활약했던 당대의 손꼽히는 명연주가였다.

정리하자면, 이 ‘3중 협주곡’은 당대의 가장 대중적인 실내악 편성과 영웅적인 오케스트라의 결합을 통해서 또 하나의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자 했던 베토벤의 실험정신의 산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비록 그 실험이 얼마만큼의 성과를 거두었느냐에 대한 평가는 따로 내려야 하겠지만 말이다.

 

 

 

 

 

베토벤은 1804년 여름 <삼중협주곡>을 작곡하여 라이프치히의 ‘브라이트코프’社에 출판을 요청한다.

그는 이때, ‘영웅교향곡’과 종교음악 ‘감람산의 그리스도’ 그리고 3개의 피아노 소나타(발트슈타인, 22번,

열정)와 함께 출판을 요청하는 편지를 출판사로 보낸다.

 

이 독특한 협주곡의 탄생배경은 정확히 알려지진 않았지만, 쉰들러에 의하면 피아노 파트는 베토벤의 피아노 제자였던 ‘루돌프 대공’을 염두에 두고 쓰여졌으며, 바이올린은 ‘칼 아우구스트 자이틀러’, 첼로는 ‘안톤 크라프트’를 위해

작곡되었다고 한다.

 

근대 협주곡의 독주부를 3대의 독주악기가 나눠서 연주하는 아이디어에 기초하고 있는 이 곡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의 삼중주에 오케스트라가 협연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진 곡이다. 또한 악상의 구상이나 전개도 당시의 다른 독주

 협주곡에 비해 다소 뒤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을 뿐 아니라, 특별히 숙련된 명연주자가 모이지 않고는 그 미묘한 독주의 뉘앙스를 살려내기 어려워 좀처럼 잘 연주되지 않는 곡이기도 하다.

 

초연은 베토벤이 피아노를, 바이올린은 ‘칼 아우구스트 자이틀러’가 첼로는 ‘안톤 크라프트’가 맡았다.

출판은 3대의 독주악기와 오케스트라의 협연을 이해하지 못한 당시 브라이트코프 출판사의

무관심으로 3년 동안 방치되었다가, 1807년 빈의 미술공예사에서 비로소 출판이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