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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사

[영어의 몰락] 저무는 영어 권력, 길 잃은 영어 교육




해가 지지 않는 제국과도 같았던 한국사회의 ‘영어패권’에 마침내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체인지업캠퍼스 양평캠프의 융합캠프 장면.

(사진=체인지업캠퍼스 양평캠프 제공)


[영어의 몰락] 저무는 영어 권력, 길 잃은 영어 교육


대학 안 갈 아이들을 위한 영어교육 대안 마련해야

대입 수능 절대평가에

공공기관 등 블라인드 채용까지


입시 입사 시험서 위상 흔들려

수능 난이도 높아 부담 여전

문법 위주 입시교육 병폐 심화

학생 영어 격차 되레 확대우려도





▲ (BOB 차세대 보안리더 양성프로그램 영어 교육 현장)

▲ (BOB 차세대 보안리더 양성프로그램 영어 교육 현장



  남편은 수능 영어도 절대평가 됐는데, 뭐 하러 영어학원을 보내냐고 해요. 당장 끊고 그 돈으로 수학학원에 보내
라는데, 영어를 이렇게 등한시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변별력은 수학이랑 국어에서 갈린다고 하지만, 막상 안 시키려니 찜찜하네요.”(서울 구로구 중3 학부모 A씨)

“수능 절대평가로 영어에 힘이 덜 들어가게 된 건 사실이죠.

하지만 내신이 상대평가인데, 영어학원을 안 보낼 수는 없어요.


대치동은 내신 영어 만점이 수두룩해서 한 문제만 틀려도 2등급으로 내려간다고요.

수능은 절대평가, 내신은 상대평가로 어정쩡하게 해 놓으니, 결국 아이들만 피눈물 나는 겁니다.

”(서울 강남구 중3 학부모 B씨)


“영어를 꼭 입시 때문에 공부하나요? 세상의 모든 읽을 만한 텍스트는 영어로 씌어 있고, 중요한 정보도 모두 영어로

 유통되는데, 아이 손에 영어라는 마스터 키를 쥐어주지 않을 이유가 없죠.

 유튜브에서 요리 레시피 하나를 보려 해도 영어가 필요한 걸요. 훗날 세상에 나가 어떤 일을 하든 그 분야에서 만족할 만한 성취를 이루려면 어느 정도의 영어실력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서울 송파구 초4 학부모 C씨)       


‘영어권력’ 마침내 해가 지는가

올 치러지는 2018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영어 절대평가가 시행되고, 문재인 정부가 외국어고와 국제고 폐지를 공언하면서 영어 사교육을 둘러싼 학부모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입시에서의 중요성 감소로 영어교육의 비중을 줄이는 것과 국경 없는 IT시대 세계공용어로서 영어의 위상이 강화되고 있는 현실 사이에서 방황 중이다. 입시뿐 아니다. 취업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토익, 토플 등 국제 공인 영어능력평가시험도 공공기관을 필두로 한 블라인드 채용의 여파로 등등했던 위세가 전만 같지 않다.


의사소통 수단으로서의 영어실력과 이렇다 할 상관관계를 보여주지 못했던 각종 영어능력 지표들이 힘을 잃으며

그 지위가 격하되는 추세다.


도무지 질 줄 모르던 ‘영어권력’에 마침내 그늘이 드리는 조짐이다.

영어 몰입교육(영어로 다른 과목들을 가르치는 것) 도입으로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영어교육 열풍의 정점을

찍었던 이명박 정부 이래, 영어교육 정책의 무게중심은 외고 입시 지필고사 폐지(2010), 수능 영어 절대평가 도입(2014) 등 사교육 부담 경감으로 옮겨졌다.


 초등생이 수능 영어와 토플 시험을 치르고, 원어민 같은 영어발음을 위해 유치원생에게 혀 설소대 제거수술을 받게

 했던 10여 년 전의 풍경을 떠올리면 지독했던 한국 사회의 영어패권에 균열이 가고 있는 건 반색할 만한 현상이다.








영어 사교육 억제정책은 영어학원 폐업률에서 그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25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유ㆍ초ㆍ중ㆍ고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 회화와 토플 등 영어 공인시험 준비 교육을

 하는 어학원은 2009년 1,213개였던 것이 올 7월 현재 837개로 7년 반 사이 476곳이 문을 닫았다.


 반면 국어 영어 수학 등 교과과목을 가르치는 서울시내 입시, 검정 및 보습학원은 2009년 7,538개에서 2017년 7월 현재 7,906로 362곳이 늘어났다. 교과 영어를 가르치는 입시학원은 늘어나고 다른 어학원들은 대거 줄어든 것이다.

증가하는 학원 폐업률의 원인으로는 학령기 인구 감소가 흔히 지적된다.


서울시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서울시내 학령인구는 2010~2016년 사이 초등학생 21%, 중학생 30.4%, 고등학생

 22.4% 줄어들었다.

 하지만 입시 보습학원이 1.6% 늘어난 것은 인구 요인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 내용이 바뀌었을 뿐 입시용 사교육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수능 영어 절대평가로 영어 공부의 부담이 사라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1점 차이로 등급이 달라지는 ‘절대점수제’로 바뀌었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서울의 한 일반고 학생들이 영어수업을 듣고 있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수능 영어 절대평가로 영어 공부의 부담이 사라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1점 차이로 등급이 달라지는 ‘절대점수제’로 바뀌었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서울의 한 일반고 학생들이 영어수업을 듣고 있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시험만 준비하다가… ‘영어는 언제 잘하나’

“수능 영어는 이제 90점을 넘기는 게 지상과제예요.

 100점과 90점의 10점 차보다 90점과 89점의 1점 차가 훨씬 중요해지는 거죠. 영어가 늘 100점인 극소수의 최상위권

말고는 절대평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어요.


” 서울 서초구의 고1 학부모 D씨는 “분위기만 어수선할 뿐이지 입시 영어에 목을 매야 하는 현실은 달라진 게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교육 억제가 정책목표인 만큼 절대평가 수능 영어가 어렵게 출제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나 출제 형식과 내용이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고, 아직은 실행되기 전이라 모두가 관망하고 있는 상태다. 조자룡 한성과학고 영어 교사는 “절대평가라고 해서 학습 부담이 줄어드는 게 아니다.

절대평가에 걸맞은 내용과 형식의 변화가 논의돼야 하는데, 점수 반영 방식만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수능 영어는 학교 교육과정을 충실히 따라가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 불가능한 높은 난이도로 이미 악명 높다. 물수능이든 불수능이든 학교 교과과정과 시험 난이도 사이에는 엄청난 격차가 있고, 이 격차는 사교육으로밖에 메울 수 없는 구조다.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가 ‘당신의 영어는 왜 실패하는가’(우리학교 발행)에서 분석한 바에 따르면, 50분간

 풀어야 하는 수능 영어 읽기 지문에는 통상 4,000단어 내외의 단어가 등장한다.

이는 미국 일간지 USA투데이 수준의 글을 분당 130~200단어의 속도로 읽어야 하는 수준으로, 미국 고교생들이 읽는

교재와 비슷한 난이도다.


그러나 초ㆍ중ㆍ고교 10년간 영어수업 시수는 총 970여 시간으로, 이는 모국어가 완성되는 시기의 만 4세 아이가 듣고 말하기에 노출되는 1만1,680시간의 8.3%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영어보다 한국어 노출량이 많다. 읽기에서는 중ㆍ고교 6년간 배우는 영어 교과서를 합친 게 페이지 당 100단어씩 200쪽짜리 영어 원서 두 권(총 432쪽) 분량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정규교육으로 미국 고교생이 USA투데이를 읽는 수준의 수능 시험을 치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조자룡 교사는 “고교에서 3년간 영어를 배우면 익히게 되는 단어수가 3,500개 정도인데, 수능은 2만~3만 단어를 알아야 풀 수 있는

수준에서 출제된다”며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질의하면 검정 교과서 15종을 모두 합쳐 문제를 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온다”고 답답해 했다.


“가장 시급한 건 영어 교육과정을 다듬는 겁니다.

수능과 교육과정 사이의 이 막대한 격차를 줄이지 않으면 절대평가든 상대평가든 큰 의미가 없어요.

교육과정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평가해야 하는지부터 정리하고, 사교육 없이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지금은 학교교육만으로 수능 수준에 도달할 수가 없어요.”





영어가 입시에서 해방되지 않는 한 즐겁고 재미있게 실전 영어 배우기란 목적은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영어가 입시에서 해방되지 않는 한 즐겁고 재미있게 실전 영어 배우기란 목적은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게티이미지뱅크          



너무도 획일적인 한국의 영어교육

영어가 의사소통의 중요한 수단이고, 국제경쟁력의 핵심적 역량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서 영어공부를 많이 하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나쁠 것 없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수능 영어와 토익을 만점 맞아도 말 한 마디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며, 이는 수십 년째 한국 영어교육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돼 왔다.


영어실력과 정비례하지 않는 정답 맞히기 기계들만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이런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전일제 유아 영어학원(일명 영어유치원)부터 각종 놀이식 영어학원과 회화학원들이 등장, 새로운 영어 사교육의 트렌드를 만들었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이것과도 작별이다.


“중학교 1학년이 되는 순간 일사불란하게 신속, 정확한 문제풀이 영어라는 입시 체제 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니까요.

” 교육문제에 매우 개방적인 학부모 E(서울 종로구)씨는 “아이들을 꼭 대학에 보내겠다는 생각이 없어서 즐겁게

영어회화를 배울 수 있는 학원에 보내려고 했는데, 중고생이 갈 수 있는 회화학원은 한 군데도 못 찾았다”고 혀를 찼다.


 “입시 영어가 아니라 직업의 기술로서, 미래의 방편으로서 영어가 필요한 아이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영어를 배우라는 말인가요? 종로에 있는 대형 회화학원에 문의했더니 성인만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 유치원 시절 즐겁게 영어를 배우던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는 순간부터 왜 필요도 없고 관심도 없는 입시영어를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모두가 문제풀이식 영어시험의 문제점을 비판하지만, 평가의 편의성 때문에 이 제도는 사라질 기미가 없다.

영어 사교육 억제책이 강력히 시행돼도 끝까지 살아남는다.

중3 학부모 B씨는 “영어유치원에서 말하고 듣는 영어 즐겁게 배우고 잘 하던 아이가 입시와 마주하면서 흥미를 잃고

 영어를 짐처럼 여기게 됐다”며 “정규교육 시스템을 싹 바꾸지 않으면 답이 안 나온다”고 말했다.


한국의 영어교육과정은 분명히 읽기와 쓰기, 듣기와 말하기를 교육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평가와 연루되면 오직 읽는 영어만 위세를 떨친다.

문제는 읽고 쓰는 영어(아카데믹 영어)와 듣고 말하는 영어(실용 영어)는 전혀 다른 차원의 학습이라는 것.


이병민 교수는 “영어 중 읽고 쓰는 영역은 수학이나 과학처럼 지식을 배우는 공부지만, 듣고 말하기 영역은 피아노 연주나 수영처럼 반드시 직접 몸으로 행동하고 익혀야 하는 학습분야”라고 지적한다.

장시간의 지속적 연습과 훈련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것이다. 고로 ‘명문대씩이나 나와서 영어로 말 한 마디 못하는 사람들’은 지극히 당연한 현실인 것이다.











해남교육지원청(교육장 김종남)은 지난 17일 해남 꿈누리센터에서 캐나다 현직교사 19명을

초청하여 해남 관내 초5-중2학년 학생 306명을 대상으로 7월 24일(월)부터 8월 17일(목)까지

 해남동초등학교에서 실시한‘캐나다현직교사 초청 해남영어교육프로그램’수료식을 가졌다.


다시 쉽고 유용한 말하기 영어로

최근 수년 새 영어교육 업체들의 매출성장은 이 시대 한국에서 영어교육의 현주소를 명시한다.

 2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초ㆍ중등 대상 영어교육 1위 기업 청담러닝의 매출액은 2014년 1,305억원에서 201년 1,355억원, 2016년 1,410억원으로 보합세를 보였다.


2위 기업 정상제이엘에스도 같은 기간 782억원, 803억원, 834억원으로 횡보세였다.

성인 영어교육의 전통적 강자인 YBM에듀와 파고다 아카데미는 2014년 각각 766억원, 575억원에서 2016년 709억원,

506억원으로 매출이 감소했다.


성장엔진이 꺼진 영어교육 업체들이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린 사이 신규시장을 창출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은

시원스쿨, 야나두, 뇌새김 등이 이끄는 성인 대상 온라인 기초영어 시장.

이중 업계 1위인 시원스쿨은 2015년 매출액 480억원에서 2016년 1,287억원으로 168% 성장하는 기염을 토했다.


 간단한 단어들의 조합으로 입을 떼주는 일명 ‘단어연결법’으로 쉬운 영어회화 시장을 열어젖히며, 최근 회원수 120만명을 넘겼다.

십 수 년간 읽어왔지만 말은 한마디도 못하는 3040세대의 억눌렸던 영어 수요를 제대로 타격한 것. 연령별로는 30대가 가장 많고, 40대, 20대, 50대가 뒤를 잇는다.


“회원들 대부분이 직장인이고, 고연령층에서는 가정주부도 꽤 많아요.

 영어를 공부해서 취업이나 이직을 하겠다는 것보다는 해외여행 가서 음식 주문 정도는 하고 싶다는 정도의 확실한

목표가 있는 분들이죠.


이런 수요가 많아 여행영어 상품도 만들었고요.” 정주희 시원스쿨 홍보과장은 “기초영어라고 하면 영어 수준이 낮은

분들이 배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는 않다”며 “문법과 독해 위주로만 영어공부를 해온 분들이 직장생활과 해외

교류 경험 등을 통해 실전 영어에 대한 필요를 뼈저리게 느끼고 다시 기초 영어회화로 되돌아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영어교육은 입시 제도에 묶여 읽기 일색의 교육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실수하지 않는 정답 고르기 능력과 의사소통을 의한 자기표현 능력 사이에는 이렇다 할 상관관계가 없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의 영어교육은 입시 제도에 묶여 읽기 일색의 교육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실수하지 않는 정답 고르기 능력과 의사소통을 의한 자기표현 능력 사이에는 이렇다 할

 상관관계가 없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 같은 영어교육 시장의 급격한 변화는 한국 영어 공교육의 문제점을 여실히 노출한다.

 영어교육의 목적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정도는 해야지’, 더 나아가 ‘반 총장 영어도 발음은 별로더라’ 정도로

맹목적이었던 과거의 광풍은 정부의 강력한 사교육 억제책으로 인해 잦아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영어의 중요성이 날로 강화되고 있는 세계적인 추세에서 한국만 외딴 섬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

한국의 아이들에게 어떤 영어를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가르칠 것인가, 사교육을 최소화하며 이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교육 시스템을 바꿀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전무하다.

환부를 도려내는 수술은 감행하고 있지만, 체력을 강화할 대안은 부재한 상태다.


학부모 E씨는 일찌감치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한 고3 아들과 지난해 방학을 말레이시아에서 보냈다. 여행 겸

한국에서는 배울 수 없는 영어회화를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반에서 10등 바깥에 있는 아이들은 아마도 대학을 못 가거나 안 갈 거잖아요.


 이 아이들은 끝없이 문제만 풀어대는 영어시간이 정말 괴롭습니다.

그렇다고 엎드려 잠이나 자면 되느냐, 그렇지는 않아요.


이 아이들이야말로 앞으로 직업세계에 나가면 실전 영어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아이들이 대학에 가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무기를 손에 쥐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왜 교실은 이 아이들을

방치하죠?”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기사의 0번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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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악의 근원으로 지목받는 책?



영어교육 논쟁에 대하여



 

최근 영어를 쉽게 배울 수 있게 해 준다는 한 기사 댓글에 난리가 났다(관련 기사: 영어를 그려주마 1. 영어 어순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때아닌 영어 교육 논쟁을 흥미롭게 지켜 보고 있던 입장에서 이 떡밥을 놓칠 수 없어 나도

한 숟갈 얹어 보고자 한다.

 

참고로 이야기하자면 나는 80-90년대를 관통하는 한국의 제도권 영어 교육만을 받고 자랐다.

성문 기본 및 종합 영어는 나의 훌륭한 영어 길잡이였다. 

운 좋게도 그 교육을 잘 흡수해 인생에 영어가 걸림돌이 되어본 적은 없다.


 학교 영어 시험이건 토플이건 토익이건 IELTS건 그 어떤 영어 시험에서도 만점을 받지 않은 시험의 숫자가 그렇지

못한 시험의 숫자보다 많았다.

외국에 직장을 잡은 지 꽤 되었는데, 영어에 큰 어려움이 없던 덕분에 외국 생활을 잘 하고 있다.


오래 지내다 보니 비영어권 국가들도 여러 곳 옮겨 다니며 산 관계로, 회화가 가능한 언어는 5가지 정도, 읽고 해석하는 것까지 포함하면 대략 7-8개 정도 되었다.


여러 언어를 공부하다보니 영어에서 너무 당연해 궁금해하지조차도 않는 궁금증들, 예를 들면 go는 '고'라고 읽으면서

 to는 왜 '투'라고 읽는가.. shoe는 어쩌다 'shu' 소리를 가지게 되었는가 같은 기본적인 물음에 답할 수 있게 되었다. 일종의 체험 비교 언어학이랄까. 개인적으로 외국어를 배우는 과정은 즐거움이었고, 지금도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제각각의 인간들이 공통의 언어인 영어로 대화하는 환경에서 일한 지 꽤 되다 보니, 외국인이

한국어나 일본어를 배우려 노력하는 과정도 매우 면밀히 목격할 수 있었고, 자녀들이 멀티 링규얼(바이 링규얼이

 아니라 '멀티'다. 3개 이상..)이 되어 가는 과정도 지켜봤다.


본의 아니게 잘난 척을 한 것 같아 죄송하지만, 외국어 교육 방법에 대해서 나도 작은 목소리 하나 낼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은 백그라운드를 설명하기 위해 좀 길게 써봤다.

영어 공부 논쟁은,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며 말을 하면 어순과 문법을 쉽게 알 수 있다는 저자와, 문법은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그룹으로 나뉜 것 같다. 


우선, 이 논쟁은 대전제인 '영어를 잘하는 것'에 대한 정의가 빠져있다. 

즉, 영어를 공부함으로써 도달하고자 하는 최종 목적지가 서로 다른 상태에서 논쟁을 시작하고 있는 모양이다. 

 일반적으로 영어를 공부하는 목적은 대략 다음 정도로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 외국인을 만나서 일상적인 대화를 무리 없이 나누는 목적. 미드나 영화를 원어로 감상하는 수준도 여기에

 들어가겠다.

2. 외국의 신문이나 사설, 논문과 같은 심도 있는 글을 문제없이 읽는 목적

3. 계약서나 논설문, 혹은 논문을 스스로의 언어로 작성해 내며 그 언어로 논쟁을 하는 목적

4. (이건, 우리나라에만 있는 목적인데) 취직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영어 시험 고득점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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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본인이 영어 공부를 하는 목적이 1번이라면, 문법은 정말 필요 없다. 많이 듣고 많이 말하는 것만으로 가능한

수준이다.

이런 관점에서 성문 기본/종합 영어로 대변되는 우리나라의(라 쓰고 일본 문법책을 베껴온) 전통적인 영어 교육 방식은 틀려먹어도 한참 틀려먹었다. 기사의 댓글에서 문법 교육의 불필요성을 부르짖으시는 분들의 목적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영국 문화원을 비롯하여 일반인의 영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교수법은

이 목적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다 보니 문법은 다루지 않고 오로지 소리를 강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반면 2번 목적을 지니고 있다면, 듣고 말하기는 사실 필요 없다.

이런 사람들에게 소위 말하는 생활 영어 강습 같은 것은 다 무의미하다.

사전 찾아가면서 밑줄 쳐 가면서 공부하는 게 최고다.

이런 목적에 최적화가 되어 있는 영어 교육법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이 일본 교육법을 그대로 가지고 오다 보니 어쩔 수 없다.

다만 이런 목적으로 공부해 놓고서 외국인 만났을 때 말이 안나온다고 불평하면 안 된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1988년이 돼서야 비로소 해외여행 자유화가 된 고립된 국가였음을 잊지 말자.


역사적으로 평범한 한 한국인이 외국인을 실제로 만날 가능성은 정말 희박한 상황을 수천 년간 살아온 나라다.

 그런 환경에서의 영어 교육의 목적은 외국의 고급 문헌를 우리 말로 바꾸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하다. 

지금이라도 새롭고 다양한 교수법이 들어오는 것은 천만다행이다.

 

3번 목적을 가진 사람이라면 문법은 필수다. 5형식이 어쩌네 저쩌네를 따지는 게 아니라, 내가 쓴 문장이 그 언어에서 약속된 규칙, 즉, 문법에 맞는지 틀리는지를 즉각적으로 알아낼 수 있는 능력은 필수다.

많이 읽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별도의 맹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다. 무언가를 창조해 낼 수 있지 않는 한 그것을 안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거다.

 

4번 목적은 워낙 독특해서 따로 다루지는 않겠다. 

 위 세 가지 목적을 모두 달성했다면, 그제서야 한 언어를 마스터했다라고 이야기할 만하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 사람 중 몇이나 되는지 모르겠다.

그 이야기인즉슨, 사람들마다 자신의 필요에 맞는 교수법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한번은 다국적으로 구성된 동료들과 그룹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멤버는 나를 포함하여 헝가리인, 네덜란드인, 인도인, 중국인이었다.

중국인을 제외한 나머지 네 명은 native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영어를 구사한 반면, 이 중국인 동료는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다고 말이 안 통하는 것은 아니고, 본인이 생각하는 바를 영어로 표현하는 속도가 다른 동료들보다 조금 느린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친구가 써내는 영어 문장들은 그야말로 주옥같은 명문들이었는데, 마치 그 표현력이나 문장의 구성력이

영어 성경책에 나오는 문장들 수준이었다.

문법적으로 오류가 없음은 물론이고.

 

결국 프로젝트 리포트는 이 중국 친구의 문장으로 작성했으며, 지금까지도 길이길이 회자되는 리포트로 남았다.

그 누구도 이 중국 친구를 영어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즉, 영어를 더듬는다고 해서 영어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한때 한국 영어 교육의 최고 성공작이라 꼽히던 반기문의 영어가 미국 사람처럼 유창해서 그런 평가를 받은 게 아니다. 반기문이라는 한 개인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그의 영어 실력은 영어를 모국어로 하여 태어난 사람들보다 좋았으면 좋았지 못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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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연설을 들려준 후 한국인과 외국인이 보인 반응

한국인이 생각하는 "잘 하는 영어"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전설의 짤

(영상은 이곳에서)





 문법 교육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영어를 십 년을 배워도 외국인에게 말 한마디 못하는 교육이

쓰레기다, 이다.

외국어 교육의 가장 기본적인 목표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의사소통하는 거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하는 의사소통의 방식은 당연하게도 말하기와 듣기이다. 이 두 가지가 안 되니 영어 헛배웠다는

소리가 나오는 거다.

문법에 투자할 시간에 차라리 일상 대화를 익혀 나가는 것이 조금이라도 더 영어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이다는 주장이 여기에서 나온다.

 

하지만 문법이 없이 진행되는 영어는 그 한계가 있다.

 한국 과학자들이 해외 저널에 내는 수많은 영어 논문들, 다 비싼 돈 주고 영어권 감수자의 감수를 받고 나간다.

문법이 모든 이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문법 없이도 영어를 마스터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말로 쓰여진 신문 기사를 보다가도 주술 관계가 불명확하거나 문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글을 보면 인상 찡그려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 아닌가.






▲ 원어민과 전화 소통을 위한 교육 장면 ⓒ뉴스타운



 




참고로, 외국에서 영어 문법을 별도로 가르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걔네들 문법과 기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어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언어 중에서 가장 단순한 언어라 특별히 가르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토플 점수가 영국인보다 높기로 유명한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이나 네덜란드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하는 건 그네들의 언어와 상당히 유사하면서도 단순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그냥 TV를 영어로 보면서도 배워지는 언어다. 전혀 다른 어족인 한국어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에게도 이상적인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다.

 

반대로 외국인이 한국말 배울 때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한국어 문법과 철자다. 생각해보자. 우리도 국민 학교 때 받아

쓰기랑 문법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나.

그 개고생을 외국인들도 지금 다 하고 있다.


외국인 교포 2세로 자라나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의 아킬레스건은 바로 직접 볼펜 잡고 한글로 본인의

 문장을 써 나가는 상황이다.


본인이 외국인 만나서 말 한마디라도 터 볼 생각으로 회화 위주의 공부를 하는 것은 훌륭한 선택이나, 우리의 자라나는 아이들이 문법 없는 영어 교육을 받게 하지는 말자.

걔네들이 나중에 세계 어디에서 어떤 정도의 영어를 구사하며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모르는데 말이다.

 

요약하자면, 본인이 어느 정도의 영어를 원하는지를 미리 판단하고 그에 맞는 교수법을 택하시라는 거다.

사실 시중에 나와 있는 어느 교수법을 택하더라도 영어를 까먹는 교수법은 없다. 영어 교육이야말로 엄청나게 많은

 연구가 진행된 분야이다 보니 다 나름의 효과가 있다.


빨리 가고 늦게 가고의 차이이지, 다른 버스가 내 버스보다 좀 늦게 간다고 그 버스 운전사를 욕할 필요는 없는 거다.



딴지일보







영어교육협동조합 잉쿱의 조경현(오른쪽 끝) 이사가 22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잉쿱

 사무실에서 신규교사들을 대상으로 교육과정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이퓨쳐가 '제 12회 베트남 국제 영어교육학회'에 참가해 자사 교육콘텐츠를 선보였다. / 사진제공=이퓨쳐


이퓨쳐가 '제 12회 베트남 국제 영어교육학회'에 참가해 자사 교육콘텐츠를 선보였다.


 / 사진제공=이퓨쳐






한라산국립공원 탐방안내소를 찾은 영어교육센터 레인보우 영어캠프
참가자들[교육부 제주영어교육센터

 제공=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