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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사

오늘 '촛불 1주년' 집회..지난해와 무엇이 다를까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다음날인 지난해 12월 1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 어린이가 촛불을 밝히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오늘 '촛불 1주년' 집회..지난해와 무엇이 다를까



시민 자발 참여로 정치에 목소리 내는 점 같아
무슨 목소리 낼까 놓고 광화문·여의도로 갈려



(서울=뉴스1) 김다혜 기자 = 지난해 10월29일,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지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

하는 첫 촛불집회가 열렸다.

촛불 1주년을 하루 앞둔 28일 촛불이 다시 밝혀진다. 이날의 촛불은 1년 전 촛불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


우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광장에 나서 정치적 의사표현을 한다는 점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다.

 이날 오후 6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촛불1주년 대회를 여는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기록기념위원회(퇴진행동)는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을 위해 다시 만날 것을 호소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한 시민의 제안으로부터 시작된 촛불1주년 기념파티 역시 '문제는 국회에 있다'며 정치권을 비판하는 취지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앞으로 장소를 정했다. 이들은 파티를 마치고 자유한국당 당사로 행진할 예정이다.

본 집회에 앞서 다양한 시민사회단체가 각종 사전집회를 여는 점도 지난해와 비슷하다.


이날 광화문 일대에서는 민주노총, 시민나팔부대, 청년학생 공동행동, 참여연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이 Δ비정규직 철폐 Δ소수자 인권증진 Δ청소년 참정권 Δ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다양한 사회현안을 주제로 집회 및 캠페인을

진행한다.





© News1



© News1          




반면 지난해와 크게 다른 점도 있다. 먼저 촛불집회가 광화문과 여의도로 갈라졌다.

 지난해 촛불집회는 지역별로 나뉘어 열리긴 했지만 서울에선 광화문 광장 한 군데였다.

다양한 참가자들이 '국정농단과 헌정질서 파괴에 분노하며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한다'는 통일된 목소리를 냈다.


올해의 경우 촛불집회의 성과를 기념한다는 큰 틀에서는 촛불시민들의 뜻이 일맥상통하지만 촛불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놓고는 의견이 갈렸다.

퇴진행동은 "지난 2월 발표한 100대 촛불개혁과제 중 46개가 묵살되고 있고 일부 야권이 적폐청산을 정치보복이라고

규정하고 있다"며 "보다 근본적인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을 위해 다시 촛불을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의미에서 퇴진행동은 촛불1주년대회 이름을 '촛불을 계속된다'로 정했다.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을 호소하며

당부하는 의미를 담아 촛불집회 후에는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놓고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를 중심으로 "적폐는 국회에 있는데 애꿎은 청와대는 왜 가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고 퇴진행동 집회에 반대하는 한 시민의 제안으로 여의도 촛불파티가 기획됐다.


퇴진행동은 논란이 커지자 공식 행진은 취소한다고 밝혔다.

 민중총궐기투쟁본부 등 일부 단체들은 개별적으로 청와대 방면 행진을 진행할 예정이다.


여의도 촛불파티 주최 측은 '여의도 촛불파티에 없는 세 가지'로 Δ뜬금없는 반미주의 Δ기-승-전-석방 Δ대책 없는

청와대 행진 금지 등를 제시하며 광화문 촛불집회와 차별성을 부각했다.

 참여신청 인원이 4000명을 넘어섰다.


갈라진 촛불집회를 놓고 시민과 전문가들은 '하나 됐던 여론이 쪼개져 아쉽다' '다양한 목소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현상' '그 속에 숨은 갈등을 눈여겨 봐야 한다' '정부가 모두를 끌어안아야 한다' 등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지난 3월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제18차 범국민 행동의 날 집회 참석자들이 박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같은 시간 광화문광장 남측에서는 '탄핵 반대'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탄핵 반대를 외치고 있다. 2017.3.1/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지난 3월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제18차 범국민 행동의 날 집회 참석자들이

박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같은 시간 광화문광장 남측에서는

 '탄핵 반대'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탄핵 반대를 외치고 있다.


 2017.3.1/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경찰의 집회·시위 대응도 크게 달라진 점 가운데 하나다.

이번 촛불집회에서 경찰은 '차벽'을 치지 않을 예정이다.

지난겨울에도 물리력 행사를 자제하며 평화적으로 집회를 관리했지만 광화문 일대는 늘 차벽으로 둘러싸였다.


이날 경찰은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집회·시위에서 차벽이나 살수차를 쓰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경찰인력과

폴리스라인으로 집회 질서를 유지할 방침이다. 경찰은 광화문 일대에 1840명, 여의도 일대에 480명의 경력을 배치한다.

지난해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동력이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분노'를 토대로 한 주인의식이었다면, 이번

촛불1주년 기념집회의 경우 민주시민들이 이뤄낸 성과에 대한 '자긍심'이 발판이 된다는 점도 차이점 중 하나다.







dhk@news1.kr





  • 지난해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집회.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지난해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집회.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촛불은 분화 중..박근혜 이후 촛불정치란?

             
    한 때는 같은 목소리를 내던 촛불시민들이 분화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정책 방향에 따라 이들의 입장은 첨예하게
     갈렸고, 전례 없는 참여를 보였던 보수세력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동력이 떨어졌다.
     촛불정치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1주년을 맞아 기획된 촛불집회의 청와대 방향 행진이 논란 끝에 철회되는 과정은 촛불시민의 분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이다.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지난해 10월 29일 시작된 촛불집회 1주년을 기념하는 28일 광화문광장 1주년 대회는

     행사를 하루 앞두고 공식행진을 취소했다.




    ◇ 좌적폐 vs 깨시민…보수세력은 일찌감치 떨어져 나가



    오는 28일 촛불집회 개최 1주년 집회를 앞두고 지난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촛불 1주년 선포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28일 촛불집회 개최 1주년 집회를 앞두고 지난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촛불 1주년 선포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적폐는 국회에 남았는데 왜 청와대로 행진 하냐"는 날선 비판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 출범 초기 민주노총 집회에 대한 반발이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논란의 연장선상이다.

    이른바 '깨시민(깨어있는 시민)'이 '좌적폐(좌파와 적폐의 합성어)'라며 공격하는 대상은 시민단체나 민노총 등 그간
    진보 진영의 대표적 주체들이다.

    남정수 민주노총 대변인은 "정부의 개개 정책에 따라서 개인이나 집단의 이해가 다른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면서도

     "다만 상대를 적대하고 증오하는 수준의 의견 표출은 다른 진영은 물론 스스로에게도 독이 될 것"이라고 경계했다.

     

    여기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관련해서는 같은 목소리를 냈던 보수세력의 경우, 탄핵 이후 새 정부 출범을 거치며

    급속하게 촛불시민에서 떨어져 나갔다.

    잘못을 저지른 개인에 대한 단죄가 이뤄졌으니 집회를 이어갈 명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인터넷 포털 게시판 등에서는 집회를 주도했던 진영이 새 정부에 '촛불청구서'를 들이 밀고 있다며 비판하는 글들이

    눈에 띈다.



    탄핵은 분명 촛불집회 성과, 민주주의도 심화했을까는 고민


    이같은 촛불시민의 분화는 촛불집회 시작부터 예견된 것이기도 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최순실 등 일탈적 개인이 문제인지, 아니면 이들이 '국가 약탈'을 할 수 있었던 정경유착이
    근본 원인인지에 대한 해석이 다르면 풀어내는 방식 역시 판이할 수밖에 없다. 
             

    김창진 성공회대 교수(정치사회학)는 "넓은 전선이 가능했던 것은 성공 요인이었던 동시에 한계의 지점"라면서

     "새 정부 들어서도 개인 단죄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져 가고 있어, 촛불집회가 한국민주주의를 심화하는 힘으로

    기능할 지는 아직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당시 광장에 나올 수 있었던 노동과 환경, 여성 등 변방의 이슈는 탄핵과 새 정부 출범과 함께 현장의 열기를

     다소 잃은 듯한 인상이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공정위원회가 재벌개혁 같은 구조적 문제 대신 갑을 이슈 등에 집중하고 있는 사례를

    짚으면서 "지금 진행되는 개혁은 시스템을 건드리지는 못하는 수준이라 아쉬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 주기적으로 광장 나올 필요 없이 '일상의 정치' 가능한 환경 필요


    대통령 탄핵 같은 거대한 정치적 과업을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촛불집회에 의의를 두면서도, 승리감에 도취돼 직접

    민주주의의 성공이라는 평가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촛불집회의 목적과 의미가 단순히 대통령 탄핵에 머물 게 아니라 민주주의의 심화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위원은 "촛불집회는 정치를 내 삶과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

    했다"면서 "이제는 시민들이 주기적으로 광장에 나와 한꺼번에 폭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정치를 얘기하고 일상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CBS노컷뉴스 윤지나 기자] jina13@cbs.co.kr







    2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 문화제에서 시민들이 초에 불을 붙이고 있다. 2017.10.21/뉴스1


    2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 문화제에서 시민들이 초에 불을 붙이고 있다.


     2017.10.21/뉴스1    




    두 개의 민심, 아쉽지만 다양한 민주주의"



    28일 오후 광화문·여의도 촛불 1주년 동시 열려
    전문가 "정치색 거부한 시민..다양성으로 봐야"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한재준 기자 = 지난해 10월29일 처음 켜졌던 촛불을 기념하는 '촛불 1주년 기념집회'가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에서 각각 열린다.

    24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기록기념위원회(퇴진행동)'는 이날 오후 6시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 1주년 대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지난 5월2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퇴진행동 해산선언 및 촛불 대개혁 호소 기자회견'을 열고 해산을 선언했던 퇴진행동은 "1700만 국민과 함께 6개월 동안 외쳐온 목표를 실현하고 행복하게 해산한다"며 "촛불집회 1주년이 되는

    날 기념 집회를 열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이날 열리는 촛불 1주년 대회에서는 촛불집회 이후 1년 동안 진행된 적폐청산 평가와 결과를 담은 '촛불백서'가 공개

    되고, 퇴진행동 기록기념위원회가 촛불집회 과정에서 모금한 수입 39억8300만원 중 남은 7억7천만여원의 지출내역을 공개할 예정이다.


    하지만 일부 시민들은 같은 시각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촛불파티'를 열고 별도로 촛불 1주년 기념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촛불 1주년 대회를 기획한 퇴진행동이 '촛불집회를 연 뒤 청와대로 행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히자 '적폐는 국회에 있는데 애꿎은 청와대는 왜 가느냐'며 불만이 터져 나오면서다.


    퇴진행동은 '전 국민이 마음을 모아 제2의 촛불을 이어갈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촛불을 켜는 민심은

     두 갈래로 나뉜 형국이다.




    28일 오후 6시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기록기념위원회(퇴진행동)'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주최하는 '촛불 1주년 대회'(왼쪽)과 같은 시각 서울 여의도에서 열리는 '촛불파티' 포스터.© News1



    28일 오후 6시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기록기념위원회(퇴진행동)'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주최하는 '촛불 1주년 대회'(왼쪽)과 같은 시각 서울 여의도에서 열리는

    '촛불파티' 포스터.


    © News1          




    ◇"멀쩡한 청와대 왜 가나"…시민이 만든 또 하나의 촛불


    '촛불파티'는 한 시민의 집회신고로 시작한 자발적 집회로 기획됐다.

    지난 26일 시민 A씨가 28일 오후 6시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 '촛불 1주년 기념 촛불파티' 이름으로 1500명 규모

    집회신고를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24일 여의도 한강공원에 집회신고를 내려던 A씨는 한강공원 관할단체가 서울시이고 공공인도가

     아닌 공원부지라는 점 등 문제로 집회장소를 여의도 국민은행 앞으로 변경하고 50명 규모의 집회신고를 접수했다.

    하지만 A씨는 이틀 뒤 다시 경찰서를 찾아 집회 참석인원을 30배 늘려서 재신고했다. 집회 시작지도 국민은행에서

    산업은행으로 바꿨다.


     하루 사이 '나도 집회에 참석하겠다'며 참여의사를 밝힌 시민이 400명을 넘어서면서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기

     때문이다.

    현재 촛불파티 참여신청을 한 시민들은 4000명을 돌파한 상태다.


    지난 23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촛불 1주년 여의도로 모이자'며 촛불파티 포스터를 올린 A씨는 "국회가 문제면 여의도로 가면 되는데 왜 청와대로 가느냐, 국회에 적폐청산을 요구하러 여의도로 모이자'며 참여를 독려했다.


    A씨의 주장에 동의하거나 시민·노동단체에 대한 반감을 품은 시민들도 잇따라 동참의사를 밝혔다.

     한 네티즌 B씨는 '왜 잘하고 있는 청와대로 몰려가 딴지를 거느냐'며 '여의도 촛불파티에 동참하겠다'고 참여를 신청

    했다.


    A씨의 '촛불파티' 아이디어는 네티즌들의 호응을 받으면서 '핼러윈 데이 파티도 같이 열자' '적폐가 모여있는

    자유한국당사로 행진하자'는 의견까지 합쳐지면서 대규모 집회로 발전했다.

    A씨도 주최측을 꾸리고 인터넷을 통해 '28일 여의도 촛불집회 참여 설문조사를 통해 시민 의견을 받고 자원봉사자와

    후원금 모집에 나서는 등 본격적인 집회 준비를 마친 상태로 알려졌다.


    이날 촛불파티에서는 Δ올해 최고의 적폐인물을 뽑는 '2017 적폐어워드' Δ자유한국당 행진 Δ핼러윈파티 Δ촛불파티

     포토존 Δ시민 자유발언 등 다양한 문화제가 병행된다.


    아울러 주최 측은 '여의도 촛불파티에 없는 세 가지'라는 제목으로 Δ뜬금없는 반미주의 Δ기-승-전-석방 Δ대책 없는

    청와대 행진을 금지한다는 계획이다. 네티즌들은 '촛불집회를 명분으로 범죄자를 석방하자는 억지를 부리는 시위꾼이 거슬렸다' '멀쩡한 청와대 앞에서 분란을 떼쓰지 말자' 등 다양한 의견을 표현하며 지지의사를 밝혔다.


    광화문 촛불집회를 반대하는 시민이 늘어나자 퇴진행동은 26일 '호소문'을 통해 '청와대 행진은 적폐청산과 사회대

    개혁을 당부하는 의미로 기획된 것'이라고 해명하면서 '시민들의 반응을 세심히 고려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사과했다. 이어 '촛불집회 후 공식 행진은 없다'며 청와대 행진 일정을 취소했다.


    하지만 이날 퇴진행동과 함께 촛불 기념집회에 참여하는 '민중총궐기투쟁본부'는 "새 정부는 사드 배치를 강행하고

    박근혜 적폐세력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며 "청와대 행진을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퇴진행동은 "청와대 행진을 반대하는 의견이 존중돼야 하듯, 청와대로 행진하자는 의견도 존중돼야 한다"며 투쟁본부의 청와대 행진을 묵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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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 "운동권 vs 반정치권 간 대립…다양성으로 해석해야"


    시민들은 갈라진 촛불민심을 바라보며 '촛불로 하나 됐던 여론이 1년도 되지 않아 쪼개진 것 같아 아쉽다'고 우려를

    표하면서도 '다양한 목소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현상'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직장인 이모씨(32)는 "촛불민심이 두 동강 난 것 같아 씁쓸했다"며 "촛불이야말로 특정 정파나 단체의 독점물이 아닌

    시민 모두의 소유물이었다"고 촛불집회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어 "진보·보수·중도를 가릴 것 없이 광화문 광장에 모였던 100만명의 시민이 한목소리로 박근혜 정권 퇴진을 외쳤을 때의 전율과 감동을 잊을 수 없었다"며 "기분좋게 1주년 촛불집회에 참석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반면 "민주주의의 한 현상으로 보면 이상할 게 없다"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었다.


    대학원생인 윤모씨(31)는 "그만큼 시민의 목소리가 다원화됐다는 의미"라며 "대학 축제를 가더라도 서로 즐기는 공간이 각양각색인 것처럼 자신의 방식과 가치관에 맞게 1주년을 기념하면 된다"고 보았다.

    반드시 광화문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축제' 그 자체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나누어진 촛불집회를 "다양한 목소리의 표출로 해석해야 한다"면서도 "그 안에 숨겨진 '갈등'을 놓쳐서는

    안 된다"며 신중한 해석을 내놨다.

    구정우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집회에 참여하는 분들의 견해차가 반영된 현상"이라고 분석하면서 "다양성이

    심화·확산하면서 사회 저변에서 소신있는 목소리가 분출되는 현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택광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큰 틀에서는 다양한 의견표출"이라면서도 "그 속에 숨은 갈등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지난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 중 다수는 '정권교체'라는 하나의 목적 아래 광장에 모였지만 동시에

     '반정치적 성향'을 보였다"며 "그 증거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돌발행위를 철저하게 금지하고 평화집회를 고집한

    모습"이라고 해석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반정치적 성향이란 집회나 시위에 정치색이나 정치적 목적을 띄는 행태를 꺼리는 선호를 말한다.

    그는 "정권교체로 목적을 이룬 촛불은 이후 '운동권'과 '반정치권'이라는 갈등 관계로 분화됐다"며 "이번 촛불 1주년

     집회도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현 정권의 한계까지 비판하는 운동권과, 운동권의 정치색을 반대하고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반정치권의 대립이 표면에 드러난 것"이라고 보았다.


    이어 이 교수는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는 정권교체의 동력이 되어준 촛불민심이 두 갈래로 나뉜 현실에서 어느 한쪽

    입장을 배제하지 않고 모두를 끌어안아야 한다는 딜레마를 극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dongchoi89@






     1년 전, 나라를 뒤흔든 국정농단의 폭풍 속에 촛불이 피어올랐다. 믿을 수 없는 뉴스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던 그때, 지역과 나이·성별로 구분 지을 수 없는 시민들이 2016년 10월29일을 기점으로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났다. 시민들은 청와대로 행진하는 길을 평화로운 시위로 열었고, 빨간 손팻말에 촛불을 비춰 귀 막고 부패한 권력을 향해 레드카드를 펼쳤으며, 광화문에서 시청까지 가득 메운 촛불의 파도를 일으키는 장관을 빚었다. 진흙 속에 피어나는 연꽃처럼 시민들이 만들어낸 도도한 역사의 물결은 ‘이게 나라냐’ 한탄하던 세상을 ‘이게 나라다’라고 보여주며 바꿔가고 있다. 그날로부터 올해 4월29일까지 모두 23차례에 걸친 촛불집회의 특징적인 장면을 담은 사진 23장을 모아봤다. 지난 24일 오후 온전한 일상으로 돌아온 광화문광장에 그날의 기억들을 펼쳐놓고, 퇴근길을 서두르는 차량들의 불빛 궤적을 장노출로 촬영했다. 이정아 김명진 기자 leej@hani.co.kr


    1년 전, 나라를 뒤흔든 국정농단의 폭풍 속에 촛불이 피어올랐다. 믿을 수 없는 뉴스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던 그때, 지역과 나이·성별로 구분 지을 수 없는 시민들이
    2016년 10월29일을 기점으로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났다. 시민들은 청와대로 행진하는 길을
     평화로운 시위로 열었고, 빨간 손팻말에 촛불을 비춰 귀 막고 부패한 권력을 향해 레드카드를
    펼쳤으며, 광화문에서 시청까지 가득 메운 촛불의 파도를 일으키는 장관을 빚었다.

    진흙 속에 피어나는 연꽃처럼 시민들이 만들어낸 도도한 역사의 물결은 ‘이게 나라냐’ 한탄하던
    세상을 ‘이게 나라다’라고 보여주며 바꿔가고 있다. 그날로부터 올해 4월29일까지 모두 23차례에
    걸친 촛불집회의 특징적인 장면을 담은 사진 23장을 모아봤다. 지난 24일 오후 온전한 일상으로
     돌아온 광화문광장에 그날의 기억들을 펼쳐놓고, 퇴근길을 서두르는 차량들의 불빛 궤적을
     장노출로 촬영했다.


     이정아 김명진 기자 leej@hani.co.kr



              

    촛불혁명이1주년을 맞았다. 한국사회에 새로운 시공간을 열어젖힌 촛불로 인해 이 나라의
    주권자들은 촛불 이전과 결코 동일한 사람이 될 수 없다. 나에게 촛불은 무엇이었으며,
     촛불은 나를 어떻게 바꾸었을까.

     홍인기 기자





    내 가슴속 촛불은 아직도 타오른다

    촛불 1년-시민 6명이 말하는 '나의 촛불'
    뜨거웠던 광장에서..
    '커다란 하나'였던 우리
    촛불은 이제 내 삶 속에서 타오른다



    ▶ 2016년 10월29일. 세계 역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촛불혁명의 첫 신호탄을 쏘아 올린 날이다.
    1차, 2차, 3차…. 매 주말 촛불집회가 열릴 때마다 전국의 거리와 광장엔 갈수록 더 많은 시민들이 쏟아져 나왔다.

    첫번째 촛불집회가 열린 날로부터 정확히 1년. 국정을 농단하던 전직 대통령과 그 무리들은 자리에서 쫓겨나 법의
    심판을 받고 있다.
     촛불 1년. 지난겨울 ‘커다란 하나’였던 우리 모두에게 촛불은 무엇으로 남아 있을까. 
              

    지난겨울 촛불을 들었던 우리는 커다란 하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돈도 실력’이라는 몰염치 앞에 분노하던 이대생이었고, 청와대 앞길을 가로막은 차벽 앞에서 가슴 쥐며

    통곡하던 세월호 유가족이었습니다.


    우리는 ‘이게 나라냐’ 외칠 수밖에 없었던 하나의 촛불이었습니다.

    이제 광화문광장에는 출퇴근길 걸음을 재촉하는 직장인들과 자동차 헤드라이트만이 분주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저마다 삶 속에서 하나의 촛불을 들고 있습니다. <한겨레>는 지난겨울을 누구보다 따뜻하게 보낸

    시민 6명을 찾아, 그들 가슴속 촛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속에 우리가 보이시는지요.




    지난겨울, 찬 바람 부는 거리에서 우리 모두는 꺼지지 않는 촛불이었다. 지난 3월4일 저녁 ‘박근혜 없는 3월, 그래야 봄이다! 헌재 탄핵 인용! 박근혜 구속! 황교안 퇴진! 19차 범국민행동’ 집회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박근혜 탄핵을 염원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3월10일 헌법재판소는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




    지난겨울, 찬 바람 부는 거리에서 우리 모두는 꺼지지 않는 촛불이었다. 지난 3월4일 저녁

    ‘박근혜 없는 3월, 그래야 봄이다! 헌재 탄핵 인용! 박근혜 구속! 황교안 퇴진! 19차 범국민행동’

    집회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박근혜 탄핵을 염원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3월10일 헌법재판소는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 장애진씨.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 장애진씨.     



     “세월호 진상규명 위해 내가 할 일은 하고 싶어요”

        


    세월호 생존자’로 발언 두려웠지만 용기 내 무대 올라
    “헬기·해경 왔다기에 기다렸지만 결국 우리 스스로 탈출”
    당장 바뀌지 않더라도 꾸준히 진실 되찾길
    세월호 경험에 ‘응급구조사’로 장래희망 바뀌



    ‘세월호 생존자’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대 위에 올라가는 게 두려웠어요.

    한명이 대표해서 글을 읽어야 하는데 친구들은 다 직접 못 읽겠다고 하는 거예요.

     어쩐지 저는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가 대표해서 읽은 거예요.

    “저희는 모두 구조된 것이 아닙니다. 저희는 저희 스스로 탈출했다고 생각합니다.


    구하러 온다 해서 정말 구하러 와줄 줄 알았습니다.

    헬기가 왔다기에, 해경이 왔다기에 역시 별일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지금,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할 수 없게 됐고 앞으로 평생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무엇을 잘못한 걸까요. 아마도 저희가 잘못한 게 있으면 그것은 세월호에서 살아 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월, 세월호 1000일을 맞아 무대에 올라간 거 후회 안 해요.

    거기서 말하고 난 뒤 더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서 잘했다고 생각해요.

    그 전에도 촛불집회에 한번 참석했었는데 세월호와 아무런 관련 없는 사람들도 방송차에 올라타 “미안하다”고 발언하는 걸 봤어요.


    그런 사람들을 볼수록 진상규명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위로해줘도 그 전엔 인터넷으로 보거나 들어서 실감이 잘 안 났어요. 무대 위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보니 ‘아직도 기억해주시는구나’ 직접 보는 거잖아요. 촛불로 많은 위안을 얻었어요.


    이후에 건너서 아는 사람이 부탁해와서 세월호 관련 인터뷰를 했고 그게 많이 알려졌는데, 에스엔에스(SNS)로

     몇백명씩 친구 추가 신청을 보내왔어요. 페이스북 메시지도 많이 왔고요.

    너무 많이 와서 잠을 못 잘 정도였어요. 힘내라고 응원을 하거나, 잊지 않겠다고 하는 식으로요.


    가끔 미안하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러실 건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잊지 않겠다”고 해주시는 말씀이 너무

    좋았어요.

    촛불 이후에 미수습자 수색도 이뤄졌고, 선생님 순직도 인정되고 하나하나 풀리고 있지만 한번에 모든 게 바뀐다고

    보진 않아요.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를 기억해주셔서 조금씩 바뀌고 있지만, 아빠는 이 사건이 해결되려면 오래 걸릴 거라고 했어요. 당장 바뀌지 않더라도 계속 알리고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조금씩 변화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대학에서 제 전공은 응급구조과예요. 전공 선택에 세월호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죠.


    원래는 유치원 선생님이 꿈이었거든요. 사실 공부를 잘하는 편이 아닌데, 응급구조사가 되려면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3학년이 되면 국가고시를 봐서 자격증을 따고 응급구조사가 되려고 해요.

     맡은 일을 다하는, 사람 살리는 데 최선을 다하는 그런 응급구조사요.





    통인동 커피공방 박철우씨.



    통인동 커피공방 박철우씨.  



    촛불이 저희 동네로 왔죠. 할 수 있는 일로 같이 했을 뿐이에요”


    통인통 평화행진에 따뜻한 보리차에 펼침막으로 응원
    노숙농성하던 세월호 유가족이 개선장군처럼 보여
    마을을 찾은 촛불 대접하려 카페 일상도 집회에 맞춰
    이웃들도 “동네가 인심은 잃지 않은 것 같아 다행”


    저는 촛불집회에 참여한 적이 한번도 없어요. 제가 집회에 가는 게 아니라 집회가 저희한테 왔었죠. 시민들은 영하의

    추위에도 행진에 나섰고, 저는 우리 동네(통인동)를 찾은 시민들께 따뜻한 차를 대접하고 카페 화장실을 개방했어요.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시민들과 함께하고 싶었어요. 제 ‘홈그라운드’가 여기였다는게 다른 점일 뿐이었죠.


    촛불집회 초반에는 동네분들과 고민도 좀 했습니다.

    차벽을 넘어 여기까지 오게 되면 시위가 격렬해질 텐데 어떡한다,

    가게에 피해가 미치진 않을까. 보통 사람들의 소소한 고민이었죠.

     그런데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법원에서 청와대까지 행진을 허가하면서 3차 촛불집회 때부터 시민들이 이곳까지 왔습니다.

     길목에 있는 저희는 따뜻한 보리차 한 모금 나누고 화장실을 개방했습니다. 사실 번거로운 일이기도 해서 4차 촛불집회부터는 화장실만 개방할까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앞으론 세월호 유가족이 선두에 선다고 해서 계속 따뜻한 차와 펼침막을 준비했어요.

    이 마을에도 당신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4차 촛불집회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청와대 앞 100m까지 올 수 있던 첫번째 날이었습니다.

     그때 저희도 펼침막을 처음으로 걸었는데 “어머님 아버님 힘내세요”라고 문구를 썼죠. 행진이 시작되고 도로가 고요해지더니 북소리가 둥둥 울리면서 멀리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유가족 중 한 아버님이 방송차 위에 타고 구호를 외치면서 오셨고요.

    제가 길가에서 지켜보고 있던 중에 아버님과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서로 멋쩍게 웃는데, 그게 참 감동적이었어요.


    박근혜 대통령과 면담을 요구하며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노숙농성하던 분들이었잖아요.

    그분들이 청와대 앞 100m까지 딱 100m 더 가까워지는데 2년4개월이 걸렸어요.

    방송차로 구호를 외치며 시민들과 함께 걸어오는 모습이 더 이상 죄인 같지 않고 개선장군을 맞이하는 기분이었어요.


     마을 사람들은 “자하문로가 열렸다”고 표현했죠. 그 집회에 나온 사람들 서로가 감사했을 겁니다.

    그 뒤론 카페의 일상이 촛불을 중심으로 돌아갔어요. 일요일과 월요일에는 토요일 집회 뒤처리를 하고, 화요일에는

    다음번 집회엔 뭘 할까 고민하고 수·목요일에는 펼침막 만들고, 금요일에는 촛불을 맞이할 준비를 했죠.


    촛불집회가 끝나고 4~5월에는 썰물이 밀려간 것처럼 갑자기 확 조용해진 기분이 있었어요. 급격히 일상으로 돌아왔죠. 대통령 하나 바꾼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변화도 있었죠. 마을에 계신 보수적인 철물점 사장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박 사장이 대체 왜 이러나 했는데, 덕분에 동네가 인심은 잃지 않은 거 같아서 다행이다.

    하던 대로 하라”고.

    “환호성이 들리진 않았지만 시민들 표정과 눈빛, 손짓을 봤어요”




    촛불집회 자유발언에 참여한 농아인 김세식씨.


    촛불집회 자유발언에 참여한 농아인 김세식씨.  

            


    한국어가 외국어처럼 낯선 농인들
    촛불집회 이전엔 박근혜 정부가 잘하는 줄 알아
    자유발언 나서 작은 수화통역창 지적
    노래·함성 듣진 못해도 그날의 신명 모두 느껴



    흔히 ‘티브이(TV) 뉴스만 봐서는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 수 없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신문도 읽고 시사 프로그램을 보고 팟캐스트도 듣는다더군요.

    한국어가 외국어나 다름없는 농인에게는 신문 기사를 읽기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실 촛불집회에 나가기 전까지는 박근혜 정부가 잘하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매주 광장에 모이는 사람이 늘어나고 그 자리에 수화통역사도 있다길래 한번 참여해봤어요.

    티브이 뉴스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가 어찌 그리 많은지 깜짝 놀랐습니다. 이걸 도저히 혼자 볼 수가 없어서 농인

    친구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뼈가 시릴 만큼 추웠지만, 집회에서 접하는 새로운 세상이 재미있어 매주 토요일 꼬박꼬박 나갔습니다.


    나는 광장에서 정치를 처음 만났습니다. 내가 몰랐던 정치인의 비리, 나의 권리 그리고 다른 소수자의 고통을 알게

    됐어요. 내친김에 용기를 얻어 자유발언도 했습니다.

     “비장애인에겐 별거 아니지만 내게는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인 수화통역창이 조금 더 커지면 좋겠다”고 말이죠.


    환호성이 들리지는 않았지만 날 응원하는 시민들의 표정과 눈빛, 손짓을 봤어요.

    그동안은 장애로 차별받고 소외당한 일도 많았지만, 그 순간만큼 나는 이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참여했어요.

    나는 아직도 농인 친구들과 비장애인 시민들이 다 함께 공연을 보면서 춤을 추듯 수화를 따라 하던 광장의 광경을 잊지 못합니다. 노래를 듣지 않아도 광장에 모인 우리가 모두 얼마나 흥이 올라 있었는지 나는 다 느낄 수 있었습니다.


    촛불집회는 내 일상을 바꿨습니다. 촛불 이후 시민들은 조금씩 달라졌어요.

    얼마 전 한 시민에게 길을 물었더니 친절히 알려주고는 ‘감사하다’며 수화를 하는 거 있죠? 수첩에 글씨를 써서 도움을 요청하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지 않아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항상 회의적이던 내 농인 친구들도 이제 변화의 가능성을 믿습니다.

    시민들이 모여 대통령도 바꿨는데 우리가 농인의 삶을 바꾸지 못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우리는 지난 대선 기간에 방송국 앞에 모여 시위도 했습니다.

     바로 대선 토론회 때문이었습니다.


     혹시 참가자 모두가 똑같은 목소리로 말하는 토론회가 상상이 되나요? 후보들의 치열한 공방을 단 1명의 수화통역사가 전달하면 농인들은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답니다.

    나는 앞으로 내 참정권을 되찾는 데 힘을 쏟아볼 생각입니다. 미국 대통령이나 일본 총리처럼 한국 대통령이 기자회견장에 수화통역사와 함께 들어오는 그날을 기다리면서요.


    장애를 넘고 언어를 넘어 함께 웃고 울던 촛불광장, 이제는 내 일상이 되길 바랍니다.

    “묵상의 촛불이 외침의 촛불로 바뀌었어요”





    임미이 광주장애인스쿨 교장(오른쪽).



    임미이 광주장애인스쿨 교장(오른쪽).          






    촛불집회 현장에서 거대한 에너지 체험
    “사회에서 실천하는 것이 참다운 신앙”
    문재인 정부 진정성에 흐뭇한 마음
    장애인 현장의 열악함에 지치지 말자 다짐해



    솔직히 난 그동안 불편한 곳에 가본 적이 없었다. 4대째 기독교를 믿어온 집안 분위기 때문에 교회와 가정을 중심으로 조용히 살아왔다.

    ‘광주장애인스쿨’ 김동효 이사장한테서 “촛불집회에 나가자”는 제안을 받고 “그래요” 하고서도 내심 걱정이 됐다.

    처음 촛불집회에 나갔을 땐 조용히 지켜보는 현장 구경꾼이었다. 구호에 맞춰 팔을 올리기도 어색했다.


    두번째, 세번째 광주 금남로 촛불집회부턴 동화되기 시작했다. 아스팔트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아 구호를 외칠 때마다 주먹을 쥐고 팔을 뻗었다. 말로만 나라 걱정 하고 나쁜 것을 보면 “그러면 안 된다”고 되뇌던 내가 현장에서 힘을

    보탰다.


    세월호 어머니들이 무대에서 “바닷속 주검을 찾아달라”고 호소할 때 ‘엄마의 마음’으로 울었다. 중학생들이 나와 “이게 나라냐?”고 발언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신선했다. ‘이 나라에 희망이 있다’는 생각에 뭉클했다. 마지막 촛불집회 땐 장구와 꽹과리를 치며 놀았던 것도 좋았다.


    촛불집회 현장에 나가면서 마음이 탁 열린 것 같다. 그동안 남을 돕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기도하고 헌신하는 것이 몸에 뱄지만, 모든 것이 교회 중심이었다. 이젠 사회 안에서 실천하는 것이 참다운 신앙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촛불집회를 만나기 전 나에게 촛불은 침묵의 상징이었다.

    교회 촛불은 고요하고 은은한 가운데 하나님에게 묵상하는 분위기로 이끈다.


    촛불 앞에서 반성하고 잘못을 조아린다. 하지만 촛불집회 때 만난 촛불은 거대한 외침이었다.

     소리를 지르고 질러도 도달할 수 없는 곳까지 도달하는 함성이었다. 어마어마한 힘을 한꺼번에 표현하는 메시지가

    촛불의 물결이었다.

    촛불 하나하나는 나약하지만 촛불이 모여 횃불이 되면 누구도 꺼뜨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촛불집회 이후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언제든 문제가 생기면 촛불에 합류할 것이다.

    촛불의 뜻을 받은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뒤 지금까지 흐뭇한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다.

    특히 올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때 문재인 대통령이 ‘아버지의 마음’으로 보여준 행동에서 진정성을 느꼈다.

     지금까진 큰 틀에선 긍정적이다. 하지만 정책들이 밑으로 내려오다 보면 참된 의미가 도달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특히 장애인 정책 분야에선 정부와 자치단체가 세심하게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촛불집회 때 뛰어다니던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보고 남을 위해 몸을 불사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장애인 현장이 열악하다고 두 손 놓지 말자고 다짐하고 있다.

    광주장애인스쿨은 20~30대 3급 발달장애인 14명이 바리스타, 도자기 빚기, 파크골프를 배우는 공동체다.


    학생 중엔 바리스타로 취업했다가 비장애인들한테 상처를 받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다음달엔 학생들과

    협동조합을 꾸려 카페 창업에도 도전할 생각이다. 촛불집회 때 거리에서 만난 한 평화통일운동단체에 매달 1만원씩

    기부하고 있다.


    광주장애인스쿨 직원 2명도 매달 5천원씩 시민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흐뭇한 변화다.

    “눈앞의 욕심보다 모두의 미래를 먼저 생각하게 됐어요”




    ‘밀양 할매’ 정임출씨

    ‘밀양 할매’ 정인출씨.


    ‘밀양 할매’ 정인출씨.     


         


    흙 밟으러 이주한 밀양에 거대 ‘송전탑’
    문재인 대통령 당선에 덩실 어깨춤 췄지만
    신고리 5·6호기 건설 소식에 눈물만
    촛불집회 뒤 “내 이익보다 모두의 미래 고민”


    경남 밀양시 부북면 위양마을에 사는 ‘밀양 할매’ 정임출(76).

    늙어서는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흙 밟으며 살고 싶어, 2004년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밀양 위양마을에 들어왔어요. 그런데 2005년이 되니까 마을에 송전탑이 들어온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그냥 송전탑이 아니고, 지금까지 우리가 한번도 본 적 없는 큰 송전탑이.


    이미 송전탑이 들어선 지역에 견학을 가봤는데, 한결같이 사람이 살 수 없는 동네가 됐더군요.

    그래서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에 참여하게 됐고, 지난겨울 촛불집회에도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가했죠.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에도 두번 갔는데, 광화문 집회에는 박근혜를 탄핵하려고 갔고, 밀양 촛불집회에는 원전을 없애고 송전탑을

    철거하기 위해 갔어요.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너무너무 좋아서 춤을 췄어요. 탈원전 정책을 공약으로 낸 후보였으니까요.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목이 메고 눈물이 나서 말을 하지 못하겠네요.

    그런데 신고리 5·6호기를 다시 건설한다니. 문재인 대통령을 그렇게 믿었는데, 믿었던 만큼 실망도 너무너무 커요.

    신고리 5·6호기 건설이 결정됐을 때 청와대 앞에 가서 통곡을 했어요. 차라리 나를 죽여서 원전 밑에 묻으라고.


    정말 답답하고 원통해요. 앞으로 탈원전 정책을 펴겠다고 대통령이 약속했지만, 정권이 바뀌면 그 약속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나는 살 만큼 살았으니 지금 원전이 터져서 죽어도 전혀 겁나지 않아요.


    그렇지만 우리 후손들은 어떻게 해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나자 일본 바다에서 잡은 고등어나 명태도 위험하다며 먹지 말라던 사람들이 어떻게 이 땅에 원전을 건설하는 것을 찬성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요.


    추운 겨울에 촛불집회에 가려니까, 누가 그러더군요.

     “나라에서 하는 일이고 대통령이 하는 일인데, 니들이 백날 그렇게 떠들어봐라. 하나라도 바뀌는 게 있는가.

    ”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우리가 다 같이 떠들면 바꿀 수 있는 일도, 너처럼 뒤로 빠질 구멍만 찾는 사람들

     때문에 바꾸지 못한다”고.


    정부와 한전이 돈으로 아무리 유혹해도, 밀양주민 모두가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송전탑 건설을 반대했다면 송전탑은

    결코 세워지지 않았을 거예요.

    원전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돈 문제를 핑계로 원전 건설을 반대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는 결코 원전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예요. 그렇지만 후손들에게 욕먹을 짓은 하지 않아야죠. 목에 칼이 들어온다고 해도.


    촛불집회에 참가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어요. 당장 눈앞의 내 욕심보다 우리 모두의 미래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또 우리 모두가 마음을 모으면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촛불시민의 냉소와 외면 기억해 공영방송 살리겠다”






     
    대전엠비시(MBC) 보도국 막내 조명아 기자.



    대전엠비시(MBC) 보도국 막내 조명아 기자.     


         


    지난해 겨울 시민들 손가락질 잊지 못해
    내가 만든 뉴스가 사회에 해악만 끼쳐
    “내가 이러려고 기자가 됐나” 자괴감
    촛불시민이 주신 소중한 기회, 파업 투쟁마다 떠올려




    “엠비시(문화방송)는 나가라!”

    지난겨울 촛불 든 한 시민의 외침이 귓전을 때렸다.

    엠비시가 감히 무슨 낯으로 여기 왔느냐는 분노가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 틈으로 일렁였다.


    촛불혁명의 한복판에서 엠비시 기자인 나는 외면당했다. 촛불시민들은 우리에게 인터뷰를 허락하지 않았다.

    보수단체의 태극기 집회에선 엠비시를 반겼다. 카메라와 함께 지나가면 “파이팅”이라며 우리를 응원했다.

    엠비시만 본다는 태극기 집회의 환호성 앞에 만감이 교차했다. 비참했다.

    그 시기 대전엠비시 노동조합 안에서 “우리가 먼저 시민에게 사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매주 토요일 대전과 서울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기자가 아닌 노조원으로서 깃발을 들고 거리에 나섰다. 내가 만든 뉴스가 사회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해악을 끼치는

    상황을 경험하며 ‘내가 이러려고 기자가 됐나’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괴로웠다.


    내가 쓴 촛불집회 예고 기사를 보도국장이 직권으로 ‘날려버린’ 일도 있었다. 매번 하는 촛불집회를 굳이 주말 기사로

    쓸 필요가 있느냐는 이유였다.

     ‘데스킹’(보도국 내 의사결정) 과정을 모두 무시한 일방적인 처사였다.


    갑을오토텍 노조 파괴, 대덕특구 내 비정규직 문제, 세월호 관련 취재 등 여러 발제가 보도국장 앞에서 ‘킬’ 당했다.

    아침마다 국장은 우리의 취재계획을 이진숙 사장에게 보고했다. 이 모든 일에 분노했지만 제대로 따지진 못했다.

    당시 보도국에는 ‘똥이 더러워 피하지 무서워 피하냐’는 식의 분위기가 팽배했다.

    어차피 엄혹한 시절이니 조금 참자는 말이었다. 그런 선배들의 태도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점


    차 선후배 사이 대화는 사라졌고, 대전엠비시 보도국은 마치 독서실처럼 무거운 침묵만 가득했다.

     우리는 무기력했다.

    촛불집회는 엠비시에 기회를 줬다. 거리의 시민들은 우리에게 공영방송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실히 보여줬다.


    우리가 무서워해야 할 대상은 정권도 아니고, 정권 밑에 있는 낙하산 사장과 사장에 부역하는 보직 간부들도 아니었다. 촛불집회는 진짜 두려운 대상이 시민이란 사실을 증명했다.

    촛불혁명이 없었다면 엠비시, 케이비에스(한국방송) 파업은 불가능했다.


    파업 투쟁을 하면서 그 사실을 늘 떠올린다. 광주민주화항쟁 때 제대로 방송하지 않은 광주엠비시의 건물이 시민 손에 불탔다.


     그 뒤 광주엠비시는 어떤 권력의 탄압에도 시민 편에 서는 것을 지표로 삼는다고 한다.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에게 손가락질당한 아픈 기억은 엠비시가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는 소중한 기준이 될 것이다.

     선배들이 그 기억을 잊는다면 막내로서 쓴소리도 서슴지 않을 거라 다짐한다.

    다시 기회를 준 촛불시민에게 감사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촛불혁명은 비폭력 평화시위로 전 세계를 감동시켰다.
     지난해 11월 26일 서울 세종로에 세워진 경찰버스에 꽃 스티커가 잔뜩 붙여져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세월호의 아이들을 태운 파란 고래풍선을 서울 종로구 청운동주민센터 앞으로
     옮기고 있는 시민들.

    연합뉴스



    청와대 앞에서 대통령 퇴진 구호를 외치고 있는 촛불 시위대.

    한국일보 자료사진





    촛불집회를 이끈 주역인 박미애(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장애인정보문화누리 활동가,
     박혜신 전 박근혜퇴진전국대학생시국회의 집행위원,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소장 양홍석 변호사,
     정강자 참여연대 공동대표,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이강훈 작가.

     본인 제공ㆍ연합뉴스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회원들이 10월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
    에서 촛불1주년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2017.10.23/뉴스1 © News1 황기선



    2016년 11월1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4차 촛불집회 현장. ‘얼룩말 연구회’라는 이름의 펼침막을 든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2016년 11월1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4차 촛불집회 현장. ‘얼룩말 연구회’라는

    이름의 펼침막을 든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2016년 11월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 ‘박근혜 퇴진 부적’을 등에 붙이고 나온 한 시민의 모습.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2016년 11월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 ‘박근혜 퇴진 부적’을 등에 붙이고 나온

     한 시민의 모습.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2016년 11월12일 민중총궐기 집회 현장.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2016년 11월12일 민중총궐기 집회 현장.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촛불은 한국 주권자들의 유전자에 정치 효능감을 아로새겼다. ‘나는 주권자고, 당신은 대리인이다.’
     최대 인파가 운집한 지난해 12월 3일 광화문에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는 촛불 시민들의 행렬.

    한국일보 자료사진






    6차 촛불집회가 열린 지난해 12월3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 모인 시민들이 촛불을 밝힌 채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2016.12.3/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