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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사

'의사 이국종' 그가 살아가는 이유







'의사 이국종' 그가 살아가는 이유





 [손현덕의 생각-39] 이 글은 네 달 가까이 컴퓨터에 저장돼 있었다.

내가 이국종 교수(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를 만난 건 지난 8월 4일. 유난히 무더운 여름이었다.

많은 얘기를 듣고, 많은 자료를 봤다. 당

초 글을 쓸 생각으로 그를 만난 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사무실로 돌아와서 그에 대한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받은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귀순병사가 총상을 입었다는 뉴스를 접한 날, 사실 나는 제일 먼저 이국종 교수를 생각했다.

 "그 병사가 거기로 가겠네"라고 짐작했다. 짐작은 맞았다. 나는 이 교수와 통화했다.


북한 병사의 상황을 들었다. 처참했다.

그래도 나는 이 교수가 병사를 살릴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온몸에 피가 거의 다 빠져나간 사람인데도 칼로 가슴을 열어 심장 짜는 걸 지켜봤기 때문이다.

뼈는 붙이면 됐다. 그래서 살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벌어질 그에 대한 비난, 그리고 그의 독설도 예상했다.

우리 사회는 변하지 않았고 이 교수도 그대로인 걸 알기 때문이다.

당시 이국종 교수는 이 글이 공개되지 않길 바랐다.


우리 사회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걸 원치 않았고, 그 파장이 본인에게 어떻게 돌아올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많은 사람들이 실상을 알게 됐다.

그래서 좀 편한 마음으로 이 글을 내보낸다.

물론 나는 이 글에서 모든 걸 다 쓰지는 못했다.







22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학교병원에서 이국종 교수가 총상을 입은 채 귀순한 북한군 병사의 회복 상태 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22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학교병원에서 이국종 교수가 총상을 입은 채 귀순한 북한군 병사의 회복 상태 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스스로 말하듯, 그는 무수저에 지방대 출신이다.
 아주대 의대를 졸업하고 그곳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 아주대 병원에서 외상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이국종 교수.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그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건 지난 2011년 있었던 단 한 번의 수술이었다.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선원을 구출한 아덴만 여명작전의 영웅 석해균 선장.
정작 선원은 모두 구했으나 그는 해적들이 쏜 총탄을 맞았다. 모두 6발. 배를 뚫고 팔 다리를 관통해 뼈가 으스러졌다. 그런 석 선장을 이 교수가 살렸다.

간호사를 포함해 3명이 석 선장이 부상을 입었던 오만으로 날아갔고, 스위스의 '에어앰뷸런스'를 빌려 석 선장을
후송했다.

이 사건으로 이 교수는 일약 스타가 된다.
대한민국 의료계에서 가장 찬밥 신세를 받는 중증외상 분야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고, 국회는 소위 '이국종 법'을
만들고, 이로 인해 올해 대한민국에 모두 17개의 권역외상센터가 설립될 예정이다.

6년이 흐른 지금, 과연 업무 환경은 나아졌을까?
보다 많은 의사들이 중증외상 분야를 전공하겠다고 나섰을까?
이제 우리나라 외상센터도 선진화된 시설을 갖췄을까?
 그리하여 터지고, 깨지고, 으스러져서 요란한 앰뷸런스 소리와 함께 병원에 실려오는 환자들을 많이 구하게 됐을까?

이국종을 만나면 그 답을 얻게 된다.
불행히도 대한민국은 바뀌지 않았다.
 껍데기는 보기 좋아졌을지 모르나 시스템은 그대로다.

중증외상 의료진은 여전히 의료계의 아웃사이더고, 사경을 헤매는 환자의 생명을 구하겠다고 나서는 의사는 없으며,
 그런 그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노고를 치하해 주는 사람도 없다.
오히려 하루라도 빨리 문 닫는 게 낫겠다는 저주와 인격살인적인 투서, 그리고 이간질이 난무하는 곳.
정치가 없을 것 같지만 가장 정치가 난무하는 곳이다.

이국종은 남다른 의사가 아니다.
사명감이 투철한 의사도 아니다.
원해서 택한 전공 분야가 아니다.

 지도교수가 거기 가서 몇 년 있으면 좋은 데로 옮겨주겠다 해서 간 곳이 중증외상 분야이다.
그저 삶을 살기 위한 수단으로 의사라는 직업을 택한 평범한 직장인이다.
 대한민국 중증외상 체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것도 아니다.

 미국, 영국, 일본의 선진시설을 그대로 복사했다.
그의 논문이 특출난 것도 아니다.
그동안 나왔던 걸 좀 업데이트했을 뿐이다.

수술 솜씨가 뛰어난 것도 아니다. 나름 칼잡이치고는 손이 빠르긴 하나 일본의과대의 히사시 마스모토의 심장 여는
 솜씨를 보노라면 이국종은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어찌 보면 그는 한 명의 '시골의사'이다.

이 교수가 정말 특이한 의사라는 건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그는 2000년 외과 전문의 면허를 취득한 이후 지금까지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회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핍박받은 인생을 살았다.
이국종만 없으면 모든 사람이 다 편한데, 없어지지 않고 살아 있는 게 특이하다.

2003년 그는 1만2000원을 들여 페인트를 샀다.
그리고 건물 정면 입구 보도블록에 크게 'H'자를 그렸다.
중증외상 환자는 헬기로 수송해야 하고, 그러려면 헬기 착륙장이 있어야 하는데 그거 만드는 데 20억원 든다고 하니
병원이 못해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직접 페인트로 그렸다.
거기에 블랙호크가 앉았다.
면적이 좁아 뒷바퀴는 잔디밭에 걸쳤다.

그 잔디밭을 파고 면적을 넓히기까지는 무려 10년이 걸렸다.
그래도 학교가 이걸 해준 건 미군 환자가 돈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에겐 대리석 건물보다 중요한 게 헬기착륙장이었다.

아주대 중증외상센터를 방문해 보면 보통의 병원과는 좀 다르다.
 제법 시설도 갖추고 소위 'FM'으로 일한다.
 이 교수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중증외상센터 운영할 필요 없다"고 독설을 퍼붓는다.
 그러니 의료계에서 눈 밖에 날 수밖에.






22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학교병원에서 이국종 교수가 총상을 입은 채 귀순한 북한군 병사의 회복 상태 등을 설명하며 병실에 걸린 태극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 22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학교병원에서 이국종 교수가 총상을 입은 채
귀순한 북한군 병사의 회복 상태 등을 설명하며 병실에 걸린 태극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그는 환자가 있는 곳이면 헬기를 타고 간다.
국내든 외국이든. 오히려 야간비행이 기본이다.
사고는 대부분 밤중에 발생하기 때문. 이 교수는 "야간비행 하지 않는다면 그게 의사냐"고 말한다.
역시 동료 의사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밖에.

병원 중환자실은 기본적으로 환자 1명에 간호사 1명이 기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병원은 이렇게 운영하는 곳이 하나도 없다.
1등급이라고 해봐야 간호사 1명에 환자 2명. 그는 "오만이나 필리핀보다도 못한 시스템"이라고 비난한다.
 병원 입장에서는 그런 이국종이 거북하기 짝이 없다.

석 선장 수술로 유명세를 타자 외부활동이 잦아졌다.
언론사 인터뷰도 했다.
그는 "한번 나올 때마다 5000명의 적이 생긴다"며 "20번 정도 했으니 아마도 10만명의 적이 생겼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그게 대한민국 의사 전부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15년이다.
비난에 익숙해졌고, 쓰레기 취급받는 것에 무덤덤해졌다.

병원 본관에 빈 병상이 200개나 되는데도 중증환자는 "이곳으로 보내지 말라"는 통첩을 받고, 적자 내는 부서인지라
3개월마다 찍히는 성과급은 매번 보잘것없다. 먹고살기 위해 비참함을 견디면서, 쌍욕 먹어가면서, 앵벌이로 뛰라면
뛰면서 살아온 이국종 교수다.

그래도 다 죽어가는 사람 살리고 나면, 그를 면회 오는 가족들의 웃는 모습, 그리고 "선생님 덕분에 다시 직장에
복귀했어요"라는 감사의 편지를 받을 때 그 느낌.
그게 이 교수가 살아가는 이유다.

원래 1시간 정도를 예상하고 아주대병원에 그를 취재하기 위해 갔지만 3시간 30분을 훌쩍 넘겼다.
 그의 한 맺힌 이야기를 듣느라 정작 하고 싶은 질문은 제대로 못하고 나왔다.

참 많이도 지쳐 있었다.
세월호 때 오른쪽 어깨가 부서지고 왼쪽 눈은 망막이 파열됐다.
그의 부친도 1군단 통신병으로 있으면서 비무장지대서 6·25 때 북한군과 교전하다 왼쪽 눈을 잃었다.
우연치고는 묘하고 운명치고는 기구하다.

그는 이제 국가에, 이 사회에 바라는 게 없다.
그저 직장서 그만둘 때까지만 일을 하겠다고 한다.
가로 3M, 세로 6M의 초라하고 작은 사무실. 야전침대가 책상 뒤에 놓여 있고, 벽에는 미군 부대 모자와 기념사진과
 임명장 같은 것들이 걸려 있다. 허름한 책꽂이에는 유독 소설가 김훈의 작품들이 몇 권 있었다.

"김훈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니 "그의 '칼의 노래'를 거의 외우다시피 읽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나는 그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노량해전을 준비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손현덕 논설실장] 
   

[ⓒ 매일경제 & mk.co.kr,





이국종 교수의 하루… “1년에 200번 헬기, 밥도 못 먹어”



2012년 9월 17일에도 이국종 교수는 발로 뛰고 있었다.
 그해 11월 방영된 ‘MBC 스페셜’에서 중증외상센터 의사로서의 삶을 보여준 그는 그날 음주운전 차량에 치인 택배기사를 구하러 갔다.

“태풍 분다니까 아무도 못 태우겠다.
김 선생하고 나하고만 가자.” 응급 용품을 어깨에 둘러메고 폐부터 가슴, 복부 아래, 골반까지 모두 으스러진 환자를
구하러 의료진들은 태풍이 궂은 이날에도 어김없이 닥터헬리에 올라탔다. 

교통사고, 추락사고, 자상과 같은 중증환자들에게 사고 후 1시간은 생사를 가르는 ‘골든아워’다.
 13일 공동경비구역(JSA)으로 귀순한 북한 병사 역시 헬기 안에서 주한 미8군의 더스트 호프팀 장병들이 빠르게
응급처치를 한 덕에 병원에 도착하는 30분의 시간 동안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만큼 환자를 헬기 안에서부터 응급 처치하는 것은 아주대 경기 남부 중증외상센터 의료진들과 이국종 교수에게는
일상이다. 
중증외상이란 교통사고, 추락 등 일반 응급실에서의 처치 범위를 넘어서는 다발성 골절, 출혈 등을 말한다.

권역외상센터는 외상환자가 왔을 때 10분 이내에 처치할 수 있도록 외상외과, 신경외과, 응급의학과 등으로 구성된
전문 외상팀이 365일, 24시간 상주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환자의 소생, 초기 처치, 응급시술까지 통합적이고 필수적인 치료를 즉각적으로 제공한다.

“살려야죠, 살려야 합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중증외상환자들의 수술을 담당하는 이 교수는 주말도 휴일도 없이
일한다.
36시간 연속으로 밤새워 일하고 잠시 눈을 붙인 뒤 다시 36시간 연속으로 일하는 생활을 수년째 이어가고 있다.  

1년에 200번 닥터헬리로 환자를 이송하고, 헬기 안에서 환자의 생명을 구해내며 과중한 노동과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이 교수의 건강은 악화되고 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2014년 세월호 사고 현장에 갔다가 오른쪽 어깨가 부러졌고, 왼쪽 무릎은 헬기에서 뛰어내리다 꺾여서 다쳤다.

2년 전 직원건강검진에서는 왼쪽 눈이 실명된 사실을 발견했다.
 망막혈관 폐쇄와 파열로 80대 당뇨병 환자가 걸리는 병이다.
이마저 관리를 하지 않으면 오른쪽 눈에도 발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알고 있어도 생활 패턴을 바꿀 수가 없다.
이런 이국종 교수의 하루는 어떤 모습일까?











태풍이 몰아치던 2012년 9월 17일, 의료진들은 애타게 닥터헬리를 기다렸다.
폭우의 위험을 뚫고 헬기가 도착하자 재빠르게 올라탔다.
택배 일을 하던 중 중앙선을 침범한 음주운전 차량과 충돌한 환자는 근처 병원에 갔으나 수술할 수술실이 없어
이곳에 도움을 청했다.

교통사고를 당해 혈압이 급격하게 떨어진 상태의 환자. 병원에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기에 의료진은 가장 빠르게 찾아갈 수 있도록 헬기를 탔다.
병원이 있는 수원에서 환자가 있는 오산까지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환자의 골든타임을 확보했다. 








의료진은 닥터헬리에 탄 환자의 기도를 확보하고 혈압을 잡았다.
 혈압이 잡히지 않았다. 혈압이 잡히지 않는다는 건 생명이 몹시 위태롭다는 뜻이다.
병원에 도착한 환자에는 곧바로 수술이 들어갈 수 있도록 빠른 조치가 이어졌다.

환자는 이미 의식이 없었다.
여러 장기에서 출혈이 심해 수혈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환자의 CT를 찍은 의료진은 빠르게 수술방을 확보했다.






“얼굴뼈도 부서지고 폐 양쪽에 다 부서지고 내장, 골반, 그리도 대퇴골 밑에 정강이뼈까지 다 부서진 겁니다.” 
환자 수술에 들어가기 전 이국종 교수는 손을 닦으며 환자를 어떻게 수술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피가 멎을까. 어떻게 하면 좀… 절제해내는 장기를 최소화할 수 있을까.”
그렇게 환자가 병원에 도착한 지 15분 만에 수술이 이뤄졌다. 






이 교수는 환자를 겨우 살려 응급수술실에 들어가 긴 수술을 마쳤다.
수술이 끝나도 환자가 살아날지는 장담할 수 없다.
환자의 생명이 위태로워지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희가 이렇게 끌고 가는 데 한계가 있어요.
더 못 끌고 가게 되면 돌아가게 되실 수 있어요.”

2012년 공사장에서 일하던 중 2층 높이에서 떨어져 내장과 골반을 다친 일용직 노동자 박모씨의 보호자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수천명의 중증외상환자들을 수술해온 그에게 이 어려운 한마디 역시 안타깝게도 일상이다.
보호자는 이렇게 말한다. “제발 선생님… 부탁드릴게요.”








수술실에서 수술이 끝난모습

“우리는 사람이 할 일을 다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의 힘으로, 의학의 힘으로 할 일을 다 하는 거고, 최종적인
 결과는 어떤 때는 우리가 내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도리만 다 하는 거죠. 기다리는 거예요 그리고.” 

죽거나, 살거나. 중증외상환자는 이 두 가지 중 한 가지의 모습으로 수술방을 나간다.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의사는 최선을 다해 죽음과 싸워야 하고, 적어도 손 한 번 써보지 못한 채 허무한 죽음을 맡게 해선 안된다”고 이 교수는 믿는다. 








수술이 끝난 이국종 교수는 밥을 먹을 시간도 확보하지 못한다.
 JSA 귀순병 2차 수술 다음 날인 16일 낮 아주대병원 구내식당에서 동아일보가 바라본 이 교수는 여전히 파란색
수술 모자를 쓰고 있었다.

수술에 방해될까 봐 손목시계에는 테이프가 붙여져 있었다.
손목시계 밴드와 버클 부분을 의료용 테이프로 감아 놓은 것이다. 

구내식당에 도착한 이 교수는 쉬지 않고 음식을 입에 집어넣었다고 한다.
함께 밥을 먹던 간호사는 “체력을 보충하려면 (단백질 중심으로) 먹어야 해요”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주로 고기와 계란 프라이를 먹고 있었다.
그때 한 간호사가 달려와 귓속말을 하자 이 교수는 절반 넘게 밥이 남아 있었지만 숟가락을 놓고 일어섰다. 







이국종 교수의 하루는 여느 중증외상센터 의료진들의 하루와 비슷하다.
2011년 아덴만 사건 당시 소말리아 해적 총격을 받은 석해균 선장을 기적적으로 살려내 ‘영웅’으로 칭송받던 그는
 이번 JSA 귀순병을 살려내며 또 다시 칭송받았다.
권역위상센터에 대한 찬사도 이어졌다.

하지만 이 교수는 22일 브리핑에서 논란에 대한 “자괴감”과 중증외상센터의 열악한 현실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북한 군인이 한국에 살면서 기대하는 삶의 모습은 자기가 위험한 일을 당해 다쳤을 때 30분 내로 중증외상센터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고, 병원에 도착하면 골든아워에 치료가 이루어지는 나라다.
그런 곳에서 살기 위해 (남측으로) 넘어왔다고 생각한다.”

2012년 이후 지금까지 복지부는 전국에 16개 권역외상센터를 선정했으나 이 중 9곳만이 운영되고 있다.
권역외상센터의 숫자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권역외상센터의 필수 충족요건인 전담외상인력도 많이 부족하다.
아주대 의료진들의 숨 막히는 하루에서 단번에 드러나듯 확보된 전담인력에 대한 처우 역시 매우 열악한 상태다. 










우리나라에서 외상으로 인한 사망 중 적절한 치료가 이뤄졌다면 생존할 수 있었을 ‘예방 가능 외상사망률’은 2010년 \기준으로 35.2%에 달한다.  

이 교수는 22일 “한국에 살다가 사고가 났는데 정작 그때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갈 곳이 없고, 전화 한 통 할 데가 없어서 응급실에 깔려 있다가 허무하게 생명을 잃는다면 왜 넘어왔겠습니까?”라고 덧붙였다.
이어 “우리가 만들어야 할 나라는 바로 그런 나라다.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박세원 기자 sewonpark@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이국종 아주대학교병원 중증외상센터장이 22일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에서 총상을

 입은 채 귀순한 북한군 병사의 회복 상태 브리핑 도중 심경을 밝히고 있다.


수원=연합뉴스





아주대학교병원 이국종 교수


김종대 정의당 의원(왼쪽)과 이국종 아주대 교수. [중앙포토]



김종대 정의당 의원(왼쪽)과 이국종 아주대 교수.


[중앙포토]



팟캐스트 ‘푸른밤 이동진입니다’ SNS
[






이국종 교수가 귀순병에게 GEE ‘락버전’ 들려준 이유는?
[



국민 의사’ 이국종 교수는 귀순병에게 소녀시대의 ‘GEE’의 오리지널 버전과 록 버전을 들려줬다고 밝혔다.
“왜 록 버전이지?”하는 반응이 나왔지만 이국종 교수의 취미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이 교수의 음악 사랑은 역사가 깊다.

는 대학생 때 통기타를 잡은 후 록 음악에 빠져들어 독학으로 연습해왔다고 알려졌다.
2004년부턴 의과대학 밴드 동아리인 ‘식스 라인스(Six Lines)’의 지도교수를 맡아왔다.
그의 수술실에는 특이하게 클래식 대신 록 음악이 흐른다고 언급한 바 있다.
 수술 직후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다. 

그는 2011년 11월 20일 열린 한국 의사가요대전에 아주대병원 그룹사운드 ‘어레스트(arrest)’의 지도교수이자
베이시스트로 참가했다.
서태지의 ‘시대유감’을 연주한 밴드 어레스트 팀은 1등 상을 수상했다.

당시 중증외상특성화 센터장을 역임하던 이국종 교수는 “밴드가 한 개의 악기로 온 하모니를 이루지 못하지만 여러 개의 악기가 모이면 조화롭고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룰 수 있다” “환자분들도 이렇게 조화로운 인생을 살길 바라고,
 어서 건강해지길 바란다”는 수상소감을 남겼다.

우승상금 1000만원 중 절반은 유니셰프(UNICEF)에 기부해 빈곤국가 어린이를 위해 쓰였다.
또한 이국종 교수는 바쁜 스케줄에도 짬을 내 ‘직밴(직장인 밴드) 록 페스티벌’의 2014년, 2016년도 심사위원직을
 역임했다.
 올해 4월 4일 팟캐스트 ‘푸른 밤 이동진입니다’에 출연해 이동진 영화 평론가와 함께 심도 깊은 음악 얘기를 나눴다. 

그는 2012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외과 의사들 끼린 ‘손목 스냅’만 잠깐 지켜봐도 그 내공을 알 수 있다.
 이론이 완벽해도 결국 손끝에서 결판나는 게 생명을 만지는 외과 수술이다” “기타 연주도 외과 수술과 비슷하다.
그래서 매력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누리꾼들은 “이렇게 음악을 사랑하시는 분이 과중된 업무로 취미를 즐기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고 반응했다.
이국종 교수는 외상 의사로 일하며 15년간 36시간 연속으로 일하는 삶을 반복했다.
이로 인해 2년 전 직원 건강검진에서 왼쪽 눈이 실명된 사실이 발견됐으며 오른쪽 눈도 안전하지 않다.
현재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이국종 교수를 비롯한 중증 외상 외과의 처우 개선 국민 청원이 쇄도하고 있다. 









15일 오후 경기도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이국종 교수가 총상을 입은 채

귀순한 북한군 병사의 수술결과 및 환자 상태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아시아뉴스통신=윤의일기자




이국종 교수, `원흉` `죄인` 등으로 자신을 질타한 이유



이국종 교수가 자신을 ‘원흉’이라고 표현해 주목된다. 
총상을 입은 귀순 병사를 살려낸 이국종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외상외과 교수)이 환자를 살리기 위해 `몸부림`

쳐도 개선되지 않은 현실에 안타까움을 토로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된 것.

이국종 교수눈 "환자마다 쌓여가는 (진료비) 삭감 규모가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까지도 이르렀다.

 결국 나는 연간 10억 원의 적자를 만드는 원흉이 됐다"고 자신을 스스로 깎아내렸다.

이처럼 이국종 교수가 자신을 `연간 10억원 적자의 원흉`이라고 표현하며 중증 외상외과 분야의 해결되지 않는

의료수가 문제를 지적한 것을 두고 누리꾼들은 “이 또한 적폐” “문재인 정부에서 좀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이국종 교수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김종대 의원은 또 뭐라고 할까 궁금하다” 등의 반응이다. 

이국종 교수가 직접 쓴 이 글은 아주대학교 교수회가 발행하는 소식지 `탁류청론` 50호에 지난 9월 게재됐다. 
이국종 교수는 "(중증외상 환자의) 수술은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필요한 생명 유지 장치와 특수 약품의 수는 적지 않다"며 "비용을 많이 지출하는 대형병원은 투입된 자본에 비해 수가가 받쳐주지 않으므로 중증외상 환자를 반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국종 교수는 “우리나라는 보건복지부가 의료 행위나 약제에 대한 급여 기준을 정한다”라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일선 병원이 그 기준을 준수하는지 확인하는데 이 과정에서 진료행위에 대한 의료비 삭감이 잦았다”고 털어놨다. 
이국종 교수는 이어 "보험심사팀은 삭감률을 줄여야 했으므로 삭감될 만한 진료비를 미리 경고했지만 사경을 헤매는

환자의 필수적 치료를 줄일 순 없었다"며 "그건 줄여야 할 항목이 아닌 목숨을 살려낼 마지막 지푸라기"라고 강조했다. 

이국종 교수는 특히 "세계적으로 쓰이는 외상외과 교과서의 표준 진료지침대로 치료했다는 내용을 (심평원에) 제출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결국 나는 연간 10억원의 적자를 만드는 원흉이 됐다"고 자신의 직업에 대핸 자괴감을 표출

했다. 
이국종 교수는  "나는 일을 하면 할수록 손해를 불러오는 조직원이었다"며 "무고했으나 죄인이었다"고 한탄했다. 

특히 이국종 교수는 해당 글에서 "원칙대로 환자를 처리했고 써야 할 약품과 기기를 썼다.

 수술은 필요한 만큼 했다"면서 우회적으로 진료비 삭감이 과다하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국종 교수는 `아덴만 여명작전`에서 해적의 총에 맞은 석해균 선장을 치료했던 중증외상 환자 치료 전문가다.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하다가 총상을 입은 북한 군인의 수술과 치료를 맡으며 이국종 교수는 다시금

대한민국의 영웅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일부 정치권에서 그를 ‘존경한다’면서도 의료계의 현실을 전혀 모른 채 ‘쓴소리’를 쏟아내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국종 교수가 방송에 출연하면서 김종대 의원과 이국종 교수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과연 어느 게 진실인가? 김종대 의원도 이국종 교수도 22일 언론은 매우

중요하다는 공통적인 지적을 내놔 사실상 김종대 의원과 이국종 교수의 공통된

지적은 언론이었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



김종대 정의당 의원 









정의당 김종대 의원이.


/아시아뉴스통신DB







김종대 의원, 인격테러 발언은 망발" 의료계, 이국종 교수 지지 성명


의료계, 성명서 통해 이국종 교수의 헌신적 진료 지지 "김종대 의원 사퇴해야"
병원의사협의회, 이국종 교수 지지 성명서 발표 





의료계가 이국종 교수를 비난한 김종대 정의당 의원을 두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국종 교수는 JSA를 통해 귀순하려다 총상을 입은 북한 병사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장내 기생충 등으로 치료가 어렵단 상황을 설명했고 이로 인해 김종대 정의당 의원으로부터 '인격테러범·의료법 위반 범법자'로 비난받았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이하 소청과의사회)와 대한병원의사협의회(이하 병의협)는 23일 각각 성명서를 내고, 이 교수의 헌신적인 진료에 대해 지지하고 응원한다는 뜻을 밝혔다.
먼저 소청과의사회는 김 의원이 지난 17일 이 교수를 지칭하며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대해 '망발'이라고 규정했다. 

소청과의사회는 "이 교수는 건설현장 사고·총상·대형 교통사고 등으로 인해 주요 장기가 크게 손상된 중증 외상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라며 "이런 이 교수에 대해 망발을 한 김 의원은 진심으로 사과하고 당장 국회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청과의사회는 "이 교수는 그동안 사회경제적 약자인 중증외상 환자들의 목숨을 살리는 의료 시스템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해왔다"며 "그의 주장처럼 제대로 된 중증외상 진료 시스템을 만들어야 안타까운 희생자가 발생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병의협 또한 "환자를 살리겠다는 신념 하나만으로 헌신적인 치료를 한 이 교수에게 돌아온 것은 '환자 인권을

 테러했다'라는 정치적인 비난"이라며서 "(이국종 교수)에게 응원이나 격려는 못 할망정 환자 인권을 테러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대체 무슨 의도인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이국종 교수가 그토록 원했던 권역별 응급외상센터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책에 대한 논의도 제기됐다.


병의협은 "과감한 치료가 필요한 응급의료에 진료비 삭감의 칼날을 들이대고 의사를 압박한다면 그 누가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데 집중할 수 있겠는가"라고 토로했다.


이어 병의협은 "문재인 케어보다 중요한 것은 재난적 의료비에 대한 대책·응급의료 대책·적절한 수가 책정·충분한

의료인 양성 및 시스템 건설"이라며 "환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고 있는 의료진에게 따뜻한 시선과

 격려를 당부드린다"고 호소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이 22일 경기 수원아주대학교
 병원 아주홀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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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선 튄다고 비난받아도…해외선 영웅된 이국종




'대담하면서 섬세한 매력으로 사람을 매료시키는 의학 드라마 주인공.' '환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튀는 걸 좋아하는
 아웃사이더.'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교수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평가다.
전자는 외신이 그의 최근 행적을 보면서 제기한 평가이고, 후자는 한국 정치인과 동료 의학계의 평가라는 점을
 확인하면 기가 막힌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워싱턴포스트(WP), 뉴욕타임스(NYT),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들은 일제히 귀순한 북한 병사의 생명을 살린 인물로 이국종 교수의 활약상과 인생 스토리를 비중 있게 조명했다. 
WP는 '북한 병사를 위해 한국인들은 이 의사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증외상 권위자인 이 교수의 활약상과 인생 스토리를 비중 있게 담았다.
기사는 "이번 사태의 '맥드리미(McDreamy)'는 바로 이국종 교수"라고 소개했다. 맥드리미는 미국의 인기 의학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 속 유능하고 매력적인 남성 주인공 의사의 이름이다. WP는 이 교수의 과거 행적도 자세히 소개했다. 기사는 "이 교수가 주목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며 "2011년 소말리아 해적의 총격으로 위독한 상태에 처했던
한국인 선장의 생명을 구하며 전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고 전했다.

WP는 2011년 '아덴만 여명작전' 당시 이 교수가 중동 오만의 병원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고된 수술 끝에 석해균 선장을 성공적으로 치료한 에피소드를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이 교수가 실제 한국의 인기 의학 드라마 모델이 됐다는 내용도 신문은 흥미롭게 전했다.

'아덴만 여명작전'의 활약상에서 영감을 받아 TV 드라마 '골든타임'이 등장했으며, 지난해 인기를 끈 의학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에도 역시 이 교수를 모델로 삼은 캐릭터가 등장한다고 소개했다.
또 올해로 48세인 이 교수가 36시간 교대근무의 지극히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며 한쪽 눈은 거의 실명 상태라고 전했다.

한국에서 의학을 공부한 뒤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 메디컬센터에서 증증외상 치료를 공부한 이 교수가 귀국 후 어느 병원에도 제대로 된 중증외상센터가 없어 3만여 명의 외상 환자가 매년 사망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국의 의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야 했던 사연도 소개됐다.

이 교수의 자문으로 한국에서는 2012년 5월 '이국종법'으로 불리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개정안이 통과돼 정부가 현재까지 권역외상센터를 16곳으로 늘렸으며 현재 교통범칙금의 20%가 외상센터로 가고 있다는 내용이다. 
반면 한국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외신과는 다소 다르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이 지난 21일 "북한군 병사가 치료받는 과정에서 몸 안 기생충, 내장의 분변, 위장의 옥수수까지
공개되는 등 인격 테러를 당했다"며 이 교수를 비판했다. 
이 교수는 과거 인터뷰에서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대학 출신끼리 어울리고 다른 대학 출신을 따돌리는 한국 의료계의 문제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아주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22일 귀순 병사 관련 브리핑에서도 "여러분이 선호하시는 소위 서울 빅5 병원과 달리 저희는 힘이 없다"면서 "중증외상센터는 미국에서나 가능하지 한국에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아주대 교수회가 발행하는 소식지 '탁류청론' 50호(2017년 9월 발행)에 기고한 글에서 "세계적으로 쓰이는
 외상외과 교과서의 표준 진료지침대로 치료했다는 내용을 (삭감 결정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제출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병원은 나로 인해 연간 10억원의 적자를 봤고, 나는 일을 하면 할수록 손해를 불러오는
 조직원이자 '무고한 죄인'이었다"고 아픈 심경을 토로했다.

원칙대로 환자를 처리했고, 써야 할 약품과 기기를 썼으며, 수술은 필요한 만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진료비를 과다하게 삭감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신찬옥 기자 / 오신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