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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사

출범 6년 김정은號 장성택 제거하고, 시장개혁 '속도전'

[사진=AP연합]



서울=뉴시스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이 13일 북한 장성택 사망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북한은 지난 12일 장성택에게 국가전복음모죄를 적용해 사형을 선고했으며 노동신문을
통해 재판 장면을 공개했다.

 2013.12.13. (사진=서상기의원실 제공) photo@newsis.com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12일 평양에서 폐막한 제8차 군수공업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12일 평양에서 폐막한 제8차 군수공업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출범 6년 김정은  1) 장성택 제거하고, 시장개혁 '속도전'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 대장 군복을 입고 등장한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상중이던 지난 20111225일이었다.
 일주일 전 타계한 김정일 위원장은 생전에 하나 뿐인 여동생인 김경희의 남편 장성택에게 보위부, 보안서 등을 관할
하는 막강한 권력을 부여했지만, 군부의 대장 직급만은 끝내 주지 않았다. 권력의 저울추가 한 사람에게 쏠리는 것을
 경계한 결과였다.

하지만 장성택은 북한의 절대 권력자가 생전에 쳐놓은 금기를 간단히 허물어버렸다. 대장 계급을 단 장성택의 모습은 김정일 사후 북한을 다스리는 실질적 통치자가 누구인지 보여주는 듯 했다.
          북한의 젊은 통치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지난 201112월만 해도 최약체 지도자로 비춰졌다.

그는 부친이 타계하며 엉겹결에 권좌에 오른 세상 물정 모르는 '도련님'에 비유됐다.
반면, 고모부 장성택은 친화력이 뛰어난 인물로 조카의 보위를 언제든지 위협할 '권신'으로 주목받았다.
장성택은 김정일 위원장이 통치하던 지난 2004년에도 이미 '붕당' 혐의로 권력의 중심에서 일시적으로 물러난 바 있다.

대학시절 아코디언을 능숙하게 연주하고 춤도 잘 추던 그는 사람을 잘 모았다.
김정은은 김일성 밑에서 후계자 수업을 20년 이상 받은 아버지에 비해 권력 기반이 극히 취약했다. 북한 군부부터
저잣거리의 촌로에 이르기까지 김정은을 지도자로 인정하는 이들이 드물었다.
파탄 직전의 경제와 국제사회의 제재도 그가 풀어야 할 또 다른 숙제였다.


북한이 지난달 29일 평양 인근의 평성시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을 발사하고 있다. [사진 조선중앙통신]


북한이 지난달 29일 평양 인근의 평성시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을 발사하고 있다.


[사진 조선중앙통신]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북한이 7일 광명성 4호를 발사하고 11일 발사장면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다.


 2016.02.13. (사진=조선중앙TV 캡쳐) photo@newsis.com




◇ '-경제 개발 병진노선 발표 뒤 장성택 제거권력기반 공고화


'-경제 개발 병진노선(2013331일 발표)은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첫 단추였다.

김정일 집권기는 군의 전성시대였다. 김정은이 내건 병진노선은 비대해진 군이 주도해온 2경제(군수경제)에 쏠린

정책의 무게 중심을 서서히 당이 지도하고 내각이 관할하는 제1경제(비군수 부문)로 옮겨 나가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발로였다.


그는 앞서 2012628일 국유기업을 비롯한 경제단위의 자율권을 확대하는 내용의 6.28조치를 발표한 데 이어,

201310월에는 14개 개방구 지정을 완료하는 속도전을 펼쳤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시절, 동력이 다한 사회주의 경제에 시장의 숨결을 불어넣어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중국에 치우친 대외 무역의 기반도 다변화 해나가기 위한 포석이었다.


 그리고 불과 두 달 뒤 세계를 경악하게 한 고모부 장성택 처형이 이어졌다.

이 희대의 살인극에는 12.12 종파사건이라는 기묘한 이름이 붙었다.

종파사건은 연안파 등 정적을 겨냥해 할아버지 김일성이 주도한 숙청 작업을 떠올리게 했다.


 불과 2년 전 군복을 입고 어깨에는 대장 견장을 단 채 등장해 세력을 과시하던 장성택의 가족들은 그의 시신 조차

수습할 길이 없었다.

처형 집행은 잔인했다. 뉴욕타임스(NYT)등 일부 언론이 시신을 개에게 먹였다는 일부 보도를 확인해보라는 지시를

 한국 특파원들을 상대로 내렸다.


숙청의 총대는 김정은의 핵-경제 병진 노선 발표 후 기득권의 상당부분을 내각에 내준 북한 군부가 맨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시신 조차 수습하지 못할 정도로 잔인한 처형 방식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북한 사회를 다스리지 못할 정도로 김정은 정권이 이미 갈 때까지 다 간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북한 붕괴론이 이번에도 다시 맹위를 떨쳤다.


파산직전 북한 경제, 김정은 집권 뒤 고속성장

그로부터 4년후, 북한은 여전히 젊은 지도자 김정은이 다스리고 있다,

김정일 집권기에 파산 직전이던 북한 경제는 지난해 3.9% 성장했다.

출범 이후 4차례 핵실험을 한 김정은 정권을 향해 옥좨오는 국제 사회의 제재를 뚫고 이뤄낸 성과였다.

같은 기간 한국 경제는 2.8% 성장했다.


 양국 간 경제 규모 차이가 크지만, 성장률만 놓고 비교해보면 북한에 뒤졌다.

인민의 생활을 도외시 한 채 풍부한 석탄, 철광석 등 광물 수출을 대거 늘려 얻은 반쪽 자리 성장이라는 비판도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고난의 행군기에 무너져 내리며 유명무실해진 행정 체계도 김정은 집권 이후 상당부분 복구됐다. 공포정치가 주효했다. 그 불똥은 탈북자들에게 튀고 있다.

김정은 정권의 인정 사정없는 반부패 드라이브에 가위 눌린 군인이나 관료들이 몸조심을 하면서 월경 수수료 또한

수백 달러 수준에서 2000달러로 급등하고 있다고 김영환 북한 민주화 네트워크 연구위원은 진단한다.


북한 경제가 독재자 김정은의 집권 이후 지난해까지 플러스 성장을 유지한 데는 시장 개혁이 주효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획일적인 계획 경제의 유산을 딛고, 독립 채산제를 실시해 근로자들의 의욕을 고취했다. 아울러 집단농장을 이루는 개별 농가의 최소 단위도 대폭 줄이는 등 생산성을 전반적으로 높이기 위한 조치들을 시행한 결과라는 것이다.


북한 사회의 풍경도 크게 변했다.

혁명의 성지 평양은 이제는 자본주의의 단 맛을 본 인민들이 돈을 좇는 욕망의 도시로 변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장마당도 이러한 변화의 도화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주민들은 이 공간에서 자본주의의 원리를 익히고, 독자 생존의 지혜를 체득하고 있다.


현재 북한 정부의 공인을 받은 이러한 장마당만 400개 이상에 달한다.

북한 주민들은 정부가 깔아준 멍석에서 물건을 사고팔며 거둔 소득의 일부를 국가에 사용료로 납부하고 있다.


시장에서 돈을 번 신흥 계층도 세를 넓히고 있다. 일부 전주들은 장마당에서 번 자금을 종잣돈 삼아 금융업을 하거나, 유통업 등에 다시 투자하는 등 사업의 외연을 넓혀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전주들이 굴리는 돈은 적게는 수십만 달러에서 많게는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이 초기 산업 자본 축적에 소요되는 자금 일부를 국내에 이미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김정일이 앞서 지난 200911월 화폐 개혁을 단행한 것도 이들의 자금을 양성화해 산업화의 실탄으로 활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실패한 바 있다.

 한국에서 박정희 정권이 쿠데타 이후 화폐 개혁을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김정일 사망-김정은 집권 6년…독재체제 강화-핵질주 




여전히 갈길 먼 김정은 정권북핵 동결·경제개혁 어떻게 풀까

하지만 김정은 정권의 개혁은 거꾸로 북한이 가야할 길어 얼마나 먼지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길을 걷는 중국은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을 선언한 1978년 이후 인민공사를 허무는 작업에 돌입했다. 승포제가 대표적이다.


 생산성이 극히 낮은 중국의 농촌에 묶여 있던 인력들은 이어 농민공이라는 이름으로 도시로 대거 옮겨왔다.

고향을 떠나 도시의 공장에서 일하는 이러한 농민공들이 무려 2억 여명에 달한다.

 하지만 북한은 중국이 39년 전에 닻을 올린 농업 개혁 작업이 첫단추를 이제 채운 셈이다.

 3대 세습 국가가 얼마나 낙후돼 있는 지 보여주는 방증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생전에 농업개혁을 추진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김정은이 직면한 최대 난제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푸는 일이다. 북한의 핵실험이 거듭되며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 강도도 커지고 있다.


김정은 정권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32월 이후 지금까지 모두 네 차례 핵 실험을 했다.

북한이 건국 이후 지금까지 한 핵실험 6차례 중 4번이 김정은 정권 들어 이뤄졌다.

 김정은 정권이 출범 후 얼마나 폭주하고 있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김정은 정권의 폭주는 '핵 방벽'을 세워 국가안보부터 지키고, 이어 경제개발에 '올인'하기 위한 시도로 해석됐다.

김정은은 한국과 미사일, 탱크, 전투기를 늘리는 재래식 무기경쟁을 하는 것은 '뱁새가 황새를 따라하는 격'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핵무기를 포기한 뒤 결국 내란에 휘말리며 목숨을 잃은 리비아 무아마르 가다피의 최후도 보았다.


김영환 북한민주화 네트워크 연구위원은 뉴시스와 인터뷰에서 김정은 정권의 거듭되는 핵·미사일 도발이 트럼프

행정부와 핵동결을 담판 짓고 전면적 개혁개방의 길로 나가기 위한 전초작업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북한 김정은 정권은 뚜렷한 타임 테이블이 있다면서 ·미사일 개발을 빨리 끝내고 경제 개발에 집중하려고

할 것이라며 그 배경을 설명했다.




yunghp@newsis.com










북한 주체사상을 정리한 교본 '강철서신' 필자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


2017.12.12.  chocrystal@newsis.com




2) 김영환 , 핵무장 빨리 끝낸뒤 경제개발 올인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1990년대 학생운동권을 풍미한 '강철서신'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김영환(54) 북한
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은 5북한 김정은 정권은 뚜렷한 타임테이블이 있다·미사일 개발을 빨리 끝내고
경제개발에 집중하려고 할 것이라며 거듭되는 핵·미사일 도발의 배경을 분석했다.

 김 연구위원은 이날 오후 뉴시스 본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핵무기·미사일 무력을 완성하면) 북한이 국방비를 절반으로 줄이고, 군인도 줄여 개혁·개방에 집중하겠다는 선언을 한 뒤 경제 개발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북한의 젊은 사람들은 다 군에 가 있다. 복무기간이 10"이라며 "병력이 120만이고,국방비가 GDP24%"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은  북한이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도널트 트럼프 행정부를 위협해 평화조약을 체결한 뒤 주한미군
철군과 한반도 적화를 노리는 대전략을 구사한다는 관측에 대해서도 "말도 안된다"며 일축했다

 주한 미군이 어떤 이유에서든 철군한다고 해도 남·북한 국력차가 커서  북한이 주도해 한반도를 적화하는 시나리오
자체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김 위원은 서울대 법대 재학시절  5편의 강철 서신으로 학생 운동권과 재야를 격동시킨 주체사상 이론가 출신이다.

주체사상을 국내에 소개하고, 광주민주화 운동과 미국 책임론을 제기한 이 때가 불과 23세였다.
 지난 19915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해 김일성 주석을 만났지만, 주체의 나라 북한과 동구권의  남루한 현실에 실망해 전향한 뒤 북한 민주화 운동을 펼쳐왔다다음은 일문일답

북한 잠수정을 타고 평양에 몰래 들어가 김일성 주석을 만난게 1990년대 초반이지 않았나.

불과 20대 후반의 나이였다.
19915월이었다.
 남북이 유엔에 동시가입하기 직전이었고, 구소련이 무너지기 수개월 전이었다.


-강철서신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학생운동권의 별이 위험한 바닷길로 평양에 가 김일성을 만나야 할 절박한 이유라도 있었나.

북한의 철학자들, 그리고 주체사상을 창시한 김일성과  새로운 사회주의에 관해 토론을 해보고 싶은 욕구가 상당히
있었다. 그래서 북한에 가자마자 최고급 철학자, 사회학자들과 미래지향적 사회주의를 토론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루마니아 차우세스쿠 정권이 무너졌다. 동구권이 붕괴되며 마르크스주의나 주체사상이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 게 아닌가는 생각을 했다.


-무너지는 사회주의 재건의 해법을 찾고 싶었다는 뜻인가.

제가 대학 다닐 때  서울대에서 고전연구회 활동을 했다
후배들에게 자본주의 국가가 무너진 경우는 있어도 사회주의 국가가 무너진 사례가 없지 않느냐는 애기를 자주 하고
다녔다.

 그런데 한 두개 나라가 아니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가 거의 싹 무너졌다.
아 이거는 계급론 등 사회주의 이론 자체에 뭔가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닌가는 생각을 하게 됐다


-두렵지는 않았나. 박정희 정권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은 1970년대초 김일성과 만났을 때 청산가리를 몸에 지니고 있었다는 후일담을 남겼다.

(김일성 주석이) 말을 참 잘하더라(웃음). 기억력도 상당히 비상했다. 카리스마가 있고, (성품 또한) 온화했다.
  친절하고 인간적인 공산주의 리더라고 할까. 텔레비전에서 보던 (김 주석의) 이미지와 부합했다.

-주체사상의 창시자인 김일성이 남한에서 온 학생운동권의 스타 강철에게 당시 무슨 말을 하던가.

(김 주석은)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을 앞두고 미리 양해를 구했다.
우리가 반발할 것으로 봤기 때문일 것이다. (19915월은)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가입하기 직전이었다.
(남한) 운동권에서는 당시 (영구분단을 우려해) 동시 가입에 반대했다.
김일성 주석과는 당시 이틀에 걸쳐 만났다. 6시간가량 대화했다. 파격적인 대우였다.


-1990년대 초는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권이 송두리째 무너지던 격변기였다. 김 주석이 남한의 대학생을 만날 여유가 있었을까
   
(김일성 주석은) 자신들이 겪는 정치적 위기, 경제적 위기, 외교적 위기 등 '트리플 위기'에 대해 당시 절박함을
 잘 못 느끼고 있었다.
실무를 김정일에게 이미 많이 떠넘긴 상황이었고, 이런 상황이 (그의 이러한 판단에도) 영향을 준 거 같다.

물론 고령인 나이도 무시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이도 그때 79센가 아마 그랬을 거다. 그때는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이 붕괴되기 불과 몇 달 전이었다.

-김일성이 남한 운동권의 스타를 왜 북으로 불렀다고 보나. 

남조선 혁명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김영환이라는 친구가 남한에서 뭔가 엄청난 일을 했구나. 이 친구가 남조선 혁명을 이끌 핵심 리더가 돼 뭔가 큰 작품이 나오겠구나. 그런 식으로 생각 했을 것이다.



발표하는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


발표하는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


-북한에 다녀온 뒤 불과 3년 만에 주체사상을 버렸다. 방북이 사회주의에 환멸을 느낀 계기가 된 것인가.

(방북 당시) 북한 학자들, 김 주석과 이틀에 걸쳐 토론을 했다.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사회주의의 미래를 논의하고 싶었다.
하지만 학자들은 당과 국가가 정한 텍스트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마치 벽에 대고 얘기하는 느낌을 받았다. 학자들이야 앵무새처럼 그럴 수 있지만, 김일성도 다르지 않았다.

 그의 사고는 30년 항일 빨치산 활동 당시에 머물러 있었다. 전략 전술 이론이 더 이상 변화 발전이 없었다.
 (김일성은) 주체사상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공부를 안했더라. 철학적인 토론을 하기가 어려웠다.


-김일성조차 자신이 만든 주체사상을 제대로 몰랐다는 뜻인가.

(김 주석이) 철학적 토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깊이 있는 공부를 안했다는 거다.


-주체 사상의 교조주의적이고, 획일적 성격이 북한이 남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뒤처지는 빌미를 제공한 것은 아닌가.

김일성이 통치하던 북한은 모든 게 규격화되고 통제된 사회였다.
누구 집에 숟가락, 밥그릇이 각각 몇 개 있는 지 까지 철저히 알고 감시하는 사회였다.
학생들도 등하교 때 줄을 딱딱 맞춰 이동했다.

사회가 잘 조직돼 있었지만, 자유가 철저히 통제되는 그런 사회였다.
김일성 시대에 북한은 이미 망해가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김정일 시대 들어 탁 터진 것이다.


-김정일도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망해가는 국가를 살려보려고 무던히 노력했지만결국 실패하지 않았나. 리더십의
 문제는 없었나.

김정일의 문제는 정책의 일관성이 없었다는 점이다.
시장 문제도 그렇다.
통제하고 억압했다가 다시 풀었다를 반복했다.
대중국 정책을 비롯한 대외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김정일  시대에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거다.
김정일은 늘 좌고우면하는 리더였다. 물론 그 여건은 사실, 김일성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김일성 때 북한 경제는 이미 망가지고 있었다.


-북한은 김정일 시대 들어 통제 시스템이 무너지고, 부패도 자본주의 국가보다 더 깊은 이상한 사회주의 국가가 됐다

(기근으로)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북한 주민들도 그 전에는 겁이 나서 뭘 못했는데 앉아서 죽느니 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다.
 통행증 없이 다른데 가면 안 되는데도 식량을 구하러 다녔다.

심지어는 국경까지 넘었다.
이런 현상이 사회에 만연했다.
기존의 통제 시스템이 균형을 잃은 정도가 아니라 무너졌다.

그게 관료들까지 확산했다. 관료들도 굶어 죽을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관료들이 살아날 방법은 뇌물이다. 그래서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김일성 때라고 부패가 없었겠는가.

(부패는) 그 이전부터 조금씩 있었지만, 1990년대에 가파르게 확산됐다. 물론 긍정적인 면도 있다.
 기존의 통제 체제가 완화되고 제 기능을 못하면서 주민들의 자율적인 공간이 늘어났다. 외부에서는 장마당만 보지만, 사람들의 친교 관계라든지 여러 측면에서 자율적 공간이 확대됐다.


-김정일은 우유부단한 지도자였나.
중국 선전, 주하이를 비롯해 상전벽해의 현장을 둘러보고도 과감한 개혁개방의 대해로 나가지 못했다.

김정일은 늘 오락가락했다. 이상이 없는 리얼리스트라고 할까.
개혁개방을 하다가 북한이 망할 수 있다는 걸 생각했다.
 그는 그래도 개혁개방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고민하다 다시 주저 앉았다.

김정일 시대는 경제적으로 침체되고 정치적으로도 뚜렷한 방향을 설정하지 못했다.
 행정 시스템도 붕괴된 상태였고. 그러다보니 통제도 잘 안됐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 보는 사람들이 급증했지만,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국경을 넘는 사람들은 꾸준히 국경을 넘었다. 현실적 문제만 자꾸 고려하다 보면 결코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그게 김정일 시대였다.


-그런 논리라면 북한경제는 지금쯤 무너졌어야 하지 않나. 하지만 지난해 북한경제 성장률이 3.9%.

무엇보다, 김정은 시대는 시장정책의 일관성이 있다.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
 그 다음에 정부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한다그런 게 있어야 과감히 투자를 하고 적극적인 시장 활동도 할 수 있다.
그런 믿음이 있어야 한다. 내가 투자했다가 갑자기 정부가 태도를 달리하면 돈을 날릴 수 있지 않겠나.
사람들이 정책을 신뢰하고. 투자도 과감하게 하고 산업 활동도 늘리고 있다.













-김정은 집권 이후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가 탈북자 수의 감소다. 북한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탈북자들에게 돈을 받고 국경을 통과시켜주던 국경 경비대들도 두려움을 느끼는 거다.
 이들이 지역보위부에 상납을 하고, 또 군 직속 상관에게 뇌물을 주는 부패사슬이 형성돼 있다.
 그런데 갑자기 평양에서 감사반을 보내 돈 받은 경비병을 적발해 총살을 하니 겁이 나서 그걸 못하고 있다.

월경도 300달러에서 400달러 정도를 주면 됐다. 지금은 뇌물 받는 경비를 찾는 게 어렵다. 그러다보니 위험수당이
 붙어서 이제는 2000달러씩 줘야 겨우 국경을 넘을 수 있다.

-뇌물 없이 한 치도 움직이지 않던 북한 사회가 김정은 집권 이후 달라지고 있다는 뜻인가

북한에는 뿌리 깊은 부패의 사슬이 있다.
그러니까 (관료들이) 뇌물을 과감히 받을 수 있는 것도 (더 윗선에) 상납을 주기적으로 잘 했기 때문이다.
 뇌물을 받다 걸려도 위에서 또 봐준다는 얘기다.
부패가 심한 나라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김정은
이 그 권위를 과감히 공격하기 시작했다. 너무 잔혹하게
사람을 처형하니 상납을 받던 관리들도 위축됐다. 겁이 나지 않겠나.

 이걸 봐주다가 정치범 수용소에 가는 정도가 아니라, 화염방사기로 죽을 지도 모르는 그상황이니까 뇌물을 못 받는
 거다. 그러다보니 과거에 비해 행정 시스템이 많이 정상화됐다.


-북한이 지금까지 핵실험을 6차례 했고, 이 가운데 4차례가 김정은 시대 들어와 이뤄졌다.
경제가 중요하다면 이럴 수 있는건가.

일단 핵무기가 있어야 못 쳐들어온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선의만을 어떻게 믿겠나.
김정은은 분명한 타임플랜이 있다. 북한을 부강한 나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핵과 미사일을 하루빨리 완성해 국면 전환을 해야지 개혁개방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핵과 미사일을 계속 붙잡고 있으면  개방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그러니까 빨리 끝내고 싶어 한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는 젊다.
최소한 40~50년을 더 다스려야 하는데, 북한을 언제까지 낙후된 상태로 내버려두려고 하겠나. 미국이 (핵 동결을)
수용할 리 없겠지만,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안 한다고 나오면 한국 중국 양국은 그래도 경청할 수 밖에 없지 않겠나.


-김정은 타임 플랜의 마지막 칸은 무엇인가

북한의 젊은 사람들은 다 군에 가 있다. 복무기간이 10년이다
인구가 얼마 안 되는데. 병력이 120만이다. 국방비가 GDP24%.
사실 아주 돈이 막 넘쳐나는 나라도 국방비가 GDP24%면 아주 힘들다. 경제개발이 되겠나.

(·미사일 무력을 완성하면) 북한이 국방비를 절반으로 줄이고, 군인도 줄여 개혁개방에 집중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경제개발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타임플랜이 분명하다.
빨리 끝내자. 그 다음에 경제개발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북핵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명박·박근혜 보수정부가 실패한 지점에서 풀어나가야 하지 않겠나.

백약이 무효다. 문재인 정부의 목표는 북한이 핵과 ICBM개발을 안하도록 그 의지 자체를 분쇄하거나, 아니면 다른
대안이나 당근을 줘서 그것을 포기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목표다. 김정은은 결코 그럴 의사가 없다.
 북한 입장에서는 체제를 위협하는 상대에 한국도 포함된다

한국의 발전된 사회상 그 자체가 북한에는 위협이다. 그래서 한국과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아하는 그런 생각이 있다한국정부가 북한에 우호적 태도를 취한다고 해도 남북관계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한국과 미국 양측이 북한의 핵 동결 제안을 거부한다면  김정은 정권이 선택할 수 있는 또 다른 대안이 있는가.

"북한이 국면 전환을 시도했을 때 중국이 북한을 완전히 외면하거나 그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어쨌든 북한을 괘씸하게 보고 뭔가 교훈을 줘야 겠다는 생각은 할 수 있지만, (이 나라를완전히 버리자는 이런 생각을 지닌 사람이 중국에는 많지 않다고 본다.


-북한이 핵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손발을 묶은 뒤 장기적으로 주한미군 철수와 한반도 적화를 겨냥하고 있다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말도 안된다. 지금 북한 실력가지고 우리랑 뭔가 한판 붙어보자 이런 것은 꿈도 꾸지 못하는 거다.
주한미군이 없다고 해도 김정은이 뭘 생각하기는 어렵다

김정은이 먼 미래에  돈도 모으고 기술도 발전시켜서 엄청나게  고도화된 무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되면 그 때가서는 모르겠다.
  20년후나 30년후가 될까. 그때 가서 (남한과) 한판 붙자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


-끝으로 김일성 일가 삼대를 평가해달라. 할아버지는 결국 과거에 머물렀고, 아버지는 우유부단하지만, 아들은 결단력이 있다고 볼 수 있나.

김정일을 보자. 농업개혁도 김정일 시대는 말뿐이었다.
김정일 때는 농업개혁을 하겠다고 해놓고, 나중에 농업개혁을 얘기하면 반동분자로 몰았다.
일관성이 없었다. 농업개혁 한다고 떠들었지만, 정상적으로 진행하지 못했다. 관료들도 그러니까 못했다.
김정은 시대에는 다들 어렵다고 했지만, 집단 농장에서 가족농으로 가는 농업개혁도 확실하게 진행하고 있다.



yunghp@newsis.com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 6주기인 17일 평양의 만수대 언덕에서 북한

군인 및 주민 등이 김일성, 김정일의 동상에 헌화했다고 이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