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지난 21일 사망자 29명이 발생한 충북 제천시 하소동 스포츠센터 대형 화재현장에서 22일
오전 경찰, 소방 관계자들이 현장감식을 벌이고 있다. 황진환기자

지난 21일 사망자 29명이 발생한 충북 제천시 하소동 스포츠센터 대형 화재현장에서 22일
오전 경찰, 소방 관계자들이 현장감식을 벌이고 있다.
황진환기자
이일 충북소방본부장 등 소방당국이 22일 오후 5시 제천시청에서 화재 초동조처 관련 상황 설명을 하고 있다.
오윤주 기자
제천 화재 1층 천장 불붙은 스티로폼 차에 떨어져 발화
충북소방본부 “폐회로텔레비전 화면 통해 화재 당시 상황 확인”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복합스포츠시설 노블 휘트니스 앤 스파(두손스포리움)의 화재 원인은 1층 주차장 공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충북소방본부는 22일 오후 5시 제천시청에서 브리핑을 열어 “사고 당시 폐회로텔레비전(CCTV) 화면을 통해 화재
신고 1분 뒤 이 복합건물 1층 주차장 천장에서 불꽃이 떨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화재 원인을 단정할 순 없지만 발화 지점은 이곳”이라고 밝혔다.
당시 이곳에선 건물 보수 작업 중이었으며, 배관·열선 설치 공사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작업 도중 불꽃이 천장에
설치한 스티로폼으로 튀면서 화재로 이어진 뒤 주차장에 주차된 차로 옮겨붙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소방당국은 “화재 원인은 현장을 정밀히 조사하고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의 합동 감식 결과를 봐야
한다”고 밝혔다.
소방당국은 화재가 일어난 뒤 4분 뒤인 오후 3시57분께 거센 불꽃이 일었으며, 주변에 주차돼 있던 차 15대와 건물 밖에 주차돼 있던 차로도 불길이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일 충북소방본부장은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화재 진압이 늦었다’는 지적에 대해 “1층 주차장 쪽 차량 15대가 불길에 휩싸여 화재가 심한데다 주변에 2t 용량의 엘피지(LPG) 가스로 옮겨붙을 우려가 있어 화재 진압에 주력했다.
구조대원이 구조를 해야 하는데 불이 나기 전 제천소방서 구조대원 4명 모두 고드름 제거 신고를 받고 출동한 상태였다.
현장에는 오후 4시10분께 출동해 구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충북지방경찰청은 23일 건물주 이아무개(53)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할 참이다.
이씨는 지난 8월 경매로 이 건물을 산 뒤 리모델링을 거쳐 10월부터 목욕탕·헬스장 등을 운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1층 주차장 공사, 소방안전시설 설치·관리, 불법 증개축 여부 등을 살필 참이다.
제천시는 23일 제천체육관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할 계획이다. 제천시와 충북도는 공식 행사를 모두 중단하고 희생자
애도, 유가족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충북교육청도 학교 안팎 행사 자제를 알리는 공문을 보내는 등 충북 전역에 애도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지금까지 제천 화재로 사망자 29명, 부상자 36명이 발생했다. 희생자들은 제천서울병원(14명), 명지병원(5명),
제일장례식장(6명), 보궁장례식장(2명), 세종장례식장(2명) 등에 안치돼 있다. 부상자들은 서울병원과 명지병원 등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경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천/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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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2층 비상구를 통해 1층으로 탈출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다.
사우나(여탕)가 있는 2층에서 희생된 사람은 20명. 21일 화재 때 정확한 비상구만 찾았다면 대부분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2층 비상구는 잠겨있었다. 탈출로는 장애물이 가로막았다.
늘 비상구를 개방했던 3층 사우나 남탕 이용객은 대부분 초기에 탈출했다. 희생자는 없었다.
비상구 하나가 생사를 갈랐다.
○ 2층에서 더 살릴 수 있었다
화재 당시 안으로부터 잠겨있던 2층 여탕 비상구 철문은 22일 활짝 열려있었다.
검게 그을린 철문 옆 벽면에는 하얀 손바닥 자국이 선명했다.
화재 당시 비상계단으로 올라간 소방관들이 내부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생긴 자국으로 보인다.
문을 강제로 연 듯 잠금장치 부분도 찌그러져 있었다.
비상구 바로 앞에는 손님들의 목욕용품을 보관하는 2m 높이의 철제 수납장이 있다.
문 양쪽 그리고 맞은편에도 있다.
비상구 폭이 1m가량이지만 수납장 탓에 50cm 남짓으로 좁아진 상태였다.
여탕 내부는 1층에서 올라온 연기 탓에 곳곳에 그을음 투성이였다. 바닥엔 소방용수가 흥건했다.
하지만 불에 탄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머리 말리는 곳에 있는 헤어드라이어와 선풍기도 멀쩡했다.
화재 열기가 전혀 미치지 않은 듯 전신거울도 전혀 깨지지 않은 채 온전했다.
생존자들에 따르면 화재 당시 사우나 내부에는 10명이 넘는 손님이 있었다.
목욕탕 특성상 외부 상황을 알기 어려웠다.
사이렌이 울렸지만 대부분 알아채지 못했다.
한 50대 생존자는 “나와 카운터 여직원이 소리 질렀는데 탕 안에 있는손님들은 대부분 씻느라 정신이 없어 잘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탕 안에 있던 손님 대부분은 화재를 뒤늦게 알고 빠져나오다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중앙계단으로 이어지는 사우나 정문 앞에서는 사망자 11명이 발견됐다.
이 문은 작은 버튼을 눌러야 열린다. 긴박한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 사우나 관계자는
“길쭉하게 생긴 출입문 버튼이 평소 잘 작동하지 않아 ‘여기를 누르면 된다’며 빨간 스티커까지 붙여 놨다”고 말했다. 나머지 사망자는 탈의실 주변에서 발견됐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비상구에서 5m 남짓 거리에 흩어져 있었다.
비상구만 찾았다면 살 수 있었다. 건물주 이모 씨(53)는 22일 “손님들이 목욕용품을 도난당할 수 있다고 민원을 제기해 비상구 문을 잠그고 철제 수납장을 놓았다”고 말했다.
○ “1초만 늦었어도 죽었다”
같은 사우나가 있는 3층 남탕의 상황은 정반대였다.
3층 비상구 앞에는 이발소가 있다.
주변이 완전히 개방돼 있다. 휴게실 등에서도 비상구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무엇보다 24시간 열려 있었다.
사고 당시 이발사 김모 씨(63)가 비상구 쪽으로 손님들을 안내해 남탕 이용객 중에는 사망자가 거의 없었다.
만약 여탕 이용객이 바로 아래층 비상구를 통해 나왔다면 같은 비상계단을 이용해 빠져나갈 수 있었다.
김 씨는 “비상구 위치가 머릿속에 들어있었기 때문에 그쪽으로 손님들을 유도한 뒤 마지막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2층 사우나에 있던 여성 손님 중에는 정문을 나선 뒤 중앙계단으로 탈출을 시도한 사람도 많았다.
생존자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대부분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1층과 2층 사이 계단까지 내려갔다가 자욱한 연기에
막혀 더 이상 내려가지 못했다.
그러다 통유리를 깨뜨리기 위해 다급한 마음에 화분을 집어던졌지만 소용없었다. 강화유리였다.
마지막 살 길은 가로 1m, 세로 70cm 크기의 미닫이 창문. 여탕 이용객들은 매캐한 연기에 콜록거리며 창문을 열고
그 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2m 아래로 뛰어내리는 방식으로 겨우 탈출할 수 있었다.
4∼7층 헬스클럽에서 내려온 일부 남성은 2층 여탕 이용객이 먼저 탈출하도록 도왔다.
김모 씨(68·여)는 “내가 창문 밖으로 나갈 때 뒤에서 화염이 쏟아졌다. 1초만 늦었어도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방화 관리 상태 ‘엉망’
스포츠센터 건물은 지난달 말 소방점검을 받았다.
본보가 확인한 점검결과에 따르면 1층 출입구와 지하 기계실에 설치된 스프링클러를 보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에 인명 피해를 키운 화재감지기 회로는 18곳이나 끊어져 있었다.
새로 설치가 필요한 지점이 3곳, 작동 불량이 5곳이었다.
또 피난 유도등은 1, 3, 4, 6, 7층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비상계단 등에 있는 소화기를 교체하고 사이렌 작동이 불량해 보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담은 점검결과는 화재가 나기 이틀 전에야 건물주에게 전해졌다.
제천=김동혁 기자 hack@donga.com·송영찬·이민준 기자

[사진=연합뉴스]
[제천 화재 대참사] 안전장치 있었지만…규제 피하다 ‘참변’
규제 강화 직전 건축허가…가연성 마감재 그대로 사용
-‘방화 지구’ 지정됐지만, 정작 화제에는 제 기능 못 해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 50여명의 사상자를 낸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와 관련해 피해를 키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가연성 외장 마감재에 대한 지적이 이전에도 있었지만, 정작 피해 건물은 안전검사에서도 제외되는 등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와 소방청은 지난 2015년 의정부 오피스텔 화재와 지난 6월 발생한 영국 런던 그렌펠
아파트 화재사고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된 ‘가연성 외장 마감재’에 대한 대책을 지난 7월 마련했다.
대책 중 하나로 정부는 가연성 외장 마감재를 사용한 건축물들을 대상으로 화재성능평가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평가 대상은 30층 이상인 전국 135개 고층 건물로 한정됐다. 예산 문제로 저층 건물에 대해서는 내년도로 평가가 미뤄진 것이다.
한 소방 관계자는 “30층 이하 건축물에 대해서도 단계적으로 평가가 확대될 예정이었다”며 “이미 예산도 요청해놓은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가연성 외장 마감재인 ‘드라이비트’는 제천 사고 현장에도 적용된 것으로 조사 결과 드러났다.
불이 잘 붙는 스티로폼에 시멘트를 바른 단열 외장 마감재인 드라이비트는 화재에 취약해 순식간에 불을 키우는 것
으로 알려져, 외국에서는 안전상의 이유로 사용이 금지된 곳도 있다.
특히 드라이비트 공법을 이용해 외장 마감을 하는 경우에는 빈 공간 사이로 불길이 빠르게 번지는 이른바 ‘굴둑 효과’도 있어 정부는 지난 2015년부터 6층 이상의 건물에 드라이비트 사용을 금지했다.
그러나 해당 건물은 건축법 내 외장재 관련 조항이 시행된 2010년 12월 이전에 건축허가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이미 법 조항이 개정된 이후에 가연성 마감재를 사용하면서 안전 문제를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로 일선 공사 현장에서는 오히려 건물주가 드라이비트 공법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가격이 다른 마감재의 3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한데다 시간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화재가 난 건물은 현행법상 ‘방화 지구’에 속해 화재 예방 시설이 필수적으로 설치돼 있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방화 지구’는 건축물이 좁은 골목에 밀집해 대형 화재 가능성이 큰 지역으로 현행법상 방화 지구에 속한 건물은 화재
확산을 막는 방화유리와 창호 등의 안전장치를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해당 건물은 1층에서 발생한 불이 20분 만에 건물 꼭대기까지 올라갈 정도로 급하게 번지는 등 안전장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경찰도 순식간에 번진 화재에 대해 불법 구조변경이나 법 위반 사항이 있는지에 대해 수사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화재보험협회에 따르면 제천 스포츠센터처럼 가연성 외장 마감재를 사용한 30층 이상 건물은 전체의 6.4%에 해당하는 135동에 달한다.
이중 공동주택이 97동으로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제천 사고 현장과 같은 업무시설도 34동에 달하는것으로 조사됐다.

21일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건물 화재 당시 5층 헬스클럽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운동을 하다 탈출한 이재혁 군(15)은 헬스클럽 관장 이호영 씨(42)가 생명의 은인이라고 강조했다.
이 군은 “관장님 덕분에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던 20여 명 중 혼자 위층으로 올라간 여자 분 한 명 빼고 모두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원 원주시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이 씨는 22일 오후 링거를 꽂은 채 병상에 누워 있었다.
연기를 많이 들이마셔 폐가 좋지 않은 상태였다.
목소리엔 힘이 없었고 눈은 반쯤 풀려 있었다.
이 씨가 불이 난 사실을 안 것은 21일 오후 4시 5분경. 화재 발생 후 15분가량 지난 시점이었다.
당시 이 씨는 4층 헬스클럽에서 개인 교습 중이었다.
창문 밖으로 까만 연기가 솟아오르는 게 보였다.
평소 아래층 사우나에서 올라오는 수증기가 아니었다. ‘불이 났구나’ 직감했다.
그때까지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불이 났는지 모르고 있었다. 이 씨는 “불이 났다”고 큰 소리로
외쳤다.
4층과 5층 헬스클럽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화재 발생 사실을 알렸다. 비상구 위치도 알려줬다.
혹시 남은 사람이 있을까봐 남녀 샤워실과 탈의실, 화장실까지 샅샅이 뒤졌다.
트레드밀(러닝머신) 위의 일부는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설마 불이 났겠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 씨는 기계의 전원을 꺼버렸다. “불났으니까 빨리 대피하세요”라고 소리쳤다. 20여 명을 헬스클럽에서 나가게 하는 데 5분이 넘게 걸렸다. 이 씨는 사람들을 아래층으로 이동시켰다.
대부분 2층과 1층 사이 계단 옆 유리창을 통해 건물 밖으로 빠져 나갔다.
이 씨는 마지막으로 헬스클럽 비상구 문을 열고 나와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다 포기했다.
짙은 연기 때문에 계단을 내려가는 게 불가능했다.
이 씨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연기가 저승사자 같았다”고 회상했다.
방향을 바꿔 건물주 이모 씨, 그리고 다른 노인과 함께 위로 올라갔다.
연기를 피할 곳은 8층 레스토랑 베란다 난간밖에 없었다.
세 사람은 그곳에서 구조를 기다렸다. 1시간 가까이 사투가 이어졌다.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엄습했다.
바로 그때 베란다 난간 한쪽에서 갑자기 사다리가 나타났다.
사설 사다리차 업체 ‘제천스카이카고’ 이양섭 대표(54)와 아들 기현 씨(28)가 구조에 나선 것이다.
세 사람은 이 사다리에 올라타 안전하게 내려왔다.
이 씨는 “내려오면서 유리벽에 막혀 뛰어 내리지 못하고 갇혀 있는 사람들을 봤다.
그 모습이 자꾸 생각난다“며 눈물을 흘렸다.
또 이날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마치고 계단을 내려오던 양석재 씨(27)는 2층 바닥에 쓰러진 여성 2명을 구조했다.
학창 시절 씨름을 했던 그는 여성 1명을 어깨에 메고 다른 여성은 팔로 안은 채 건물을 빠져 나왔다.
그중 1명은 곧 의식이 돌아왔다. 양 씨는 의식을 찾지 못하는 여성에게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했다.
의식을 되찾은 여성은 병원으로 이송됐다.
양 씨는 “5년 전 군대에서 배운 기억을 떠올려 심폐소생술을 했다”고 말했다.
제천·원주=구특교 kootg@donga.com·윤솔·전채은 기자
29명이 사망한 충북 제천시 노블휘트니스앤스파 화재 사고 현장이 22일 처참한
외형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 사고는 2008년 사망자 40명이 발생한 경기 이천시
냉동창고 화재 이후 최악의 참사로 기록됐다.
연합뉴스
제천 화재 참사]또 타버린 ‘안전’
ㆍ화재경보기는 울리지 않고 스프링클러는 잠겼다.
불법주차는 소방차를 막았다.
ㆍ유족은 물었다. 세월호 이후 뭐가 나아졌냐고.
인구 13만 소도시의 랜드마크이자 주민들의 휴식 공간이었던 충북 제천시 노블휘트니스앤스파 건물이 하루 새 흉물로 변해 폭탄처럼 박혀 있다. ‘안전불감’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지난 21일 발생한 화재로 이곳에서 총 29명이 목숨을 잃고 35명이 부상을 입었다.
생존자와 목격자들에 따르면 불이 났지만 화재경보기는 울리지 않았고 스프링클러는 물을 뿌리지 못했다.
불법 주차된 차량은 소방차의 진입을 방해했고 사다리차는 중요한 순간에 펴지지 않았다.
수능 시험을 마치고 꿈에 부풀어 있던 여고생은 숨이 막혔다. 화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문이 닳도록 밀고 두드렸지만 유리문은 열리지 않았다.
40대 남성은 “살려 달라”는 장모의 전화를 받고도 속수무책이던 자신을 자책했다.
22일 사고 현장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희생자 유족은 물었다.
“세월호 이후 좀 나아지는가 했는데 나아진 게 무엇인가.”
불은 1층 주차장 천장의 배관 열선 설치 작업을 하다 불똥이 1㎝ 두께의 스티로폼에 옮겨붙어 아래로 떨어지면서
시작된 것으로 소방당국은 추정했다.
불길은 차량 16대를 태우고 가연성 외장재와 건물 내부로 확산되면서 순식간에 꼭대기까지 번져 나갔다.
20명이 숨진 2층 여성 사우나에서는 출입문이 작동하지 않고 비상계단으로 통하는 길목은 막혀 있었다.
당국은 만 하루가 지나서야 이 건물이 8층이 아닌 9층이라고 정정했다.
‘발화 추정’ 1층 주차장 천장 조사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경찰 등 합동감식반이 22일 충북 제천시 노블휘트니스앤스파 1층 주차장에서 전날 발생한 화재의
발화 지점을 조사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충북 제천시 ‘노블휘트니스앤스파’ 화재는 불에 취약한 건물 구조와 업체의 안전 불감증이 부른 참사였다.
화재가 난 건물은 발화 지점인 1층 주차장이 필로티 구조인 데다 외벽도 불길이 번지기 쉬운 드라이비트로 시공돼
있었다.
소방점검 결과 자동화재탐지설비에 문제가 있었다.
22일 건축법과 국토교통부의 ‘건축물의 피난·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 등을 보면 6층 이상 또는 높이 22m 이상인 건축물의 외벽에는 불연재료나 준불연재료를 마감재로 사용해야 한다.
이는 2015년 1월 130명(사망 4명·부상 126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기 의정부시 도시형생활주택 화재 이후 만들어진
규정이다.
당시 화재 확산 원인으로 가연성 외장재인 드라이비트가 지목되면서 정부가 법까지 바꿔가며 마련한 대책이다.
그러나 29명이 사망한 이번 제천 화재 참사 역시 똑같은 문제가 반복됐다.
불이 난 노블휘트니스앤스파 건물은 외벽이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시공됐다.
현행 규정대로라면 이 건물은 건축법 위반이다. 하지만 이 건물은 2010년에 지어져 2015년 개정된 현행법을 적용받지 않았다. 의정부 화재 참사 이후 대책을 마련했지만 그 이전에 세워진 건물의 화재 방비에는 무용지물인 셈이다.
한국 고층 건물 상당수는 2015년 이전에 지어졌다.
화재 발생 지점인 1층 주차장의 필로티 구조도 불길과 연기가 빠르게 확산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필로티 건물은 최근
포항 지진 당시 지진에 취약한 구조로 논란이 됐다.
이런 건물 구조는 지진뿐만 아니라 화재 발생 시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필로티 구조는 불이 나면 외부 공기가 많이 유입돼 연소가 빨라지는 결과를 낳는다.
이재오 대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필로티에는 벽이 없어 불이 나면 방화벽 역할을 할 것이 없다”며 “출입을 필로티를 통해 할 수밖에 없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이번 화재를 보면 건물 외부보다 내부에서 불길이 많이 돌출된 것 같다”며 “드라이비트보다 필로티가
더 문제였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인명 피해가 가장 많았던 2층 여성 사우나의 꽉 막힌 통유리 구조도 문제였다.
소방당국은 화재 당일 “사우나 시설 외부가 통유리로 막혀 있어 유독가스가 많이 찼고 안에 있던 분들의 대피가 어려
웠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건물 내부 소방시설의 문제도 드러났다.
지난달 30일 소방시설관리업체가 해당 건물의 소방안전시설을 점검한 결과 자동화재탐지설비에 일부 불량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자동화재탐지설비는 건물 안에서 열이나 연기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감지해 비상벨 등으로 화재 발생 상황을 알리는
기능을 한다.
이 설비에 문제가 생기면 비상벨이 늦게 작동해 화재 대피가 지연될 수 있다.
건물 내 스프링클러도 밸브가 막혀 작동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자유한국당 홍철호 의원은 “소방청 자료를 보면 화재 당시 1층 로비에 설치된 스프링클러 설비의 알람 밸브가 폐쇄돼 스프링클러가 건물 전 층에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홍 의원은 “화재 건물은 지난해 10월31일 제천소방서에서 소방특별조사를 받았는데 당시에는 스프링클러가 정상 작동된 것으로 나타났다”며 “올해는 소방특별조사를 한 차례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에는 소방시설관리업체를 통한 자체 소방점검이 진행됐지만 일부 시설의 문제가 확인되면서 30일 이내에 관할 소방서에 제출돼야 할 보고서가 화재 당시까지 제출되지 않은 상태였다.
제천소방서 관계자는 “업체로부터 보고서가 제출되지 않았고 ‘점검 시 지적사항이 많아 제출하지 못했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화재 발생 이후 보고서를 받아본 결과 자동화재탐지설비와 대피유도등, 소화기에 일부 문제가 있었던 것
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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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화재 현장. 사진제공=연합뉴스
반복되는 사고는 인재를 넘어섰다
시선뉴스 이호]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어떤 특이한 장소가 아니다.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서 들렀던 스포츠센터였다.
1층에 세워져 있던 자동차에서 난 불은 삽시간에 건물에 옮겨 붙었고 순식간에 번지며 2~3층의 사우나와 4~8층
헬스장과 레스토랑에 있던 사람들에게 피해를 줬다.
특히 지상에서 가장 가까웠던 2층의 여성 사우나에서 피해자가 집중되었다.
29명의 사망자 가운데 20명이 이곳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여성사우나가 발화지점이었던 1층과 가까울뿐더러 여성 사우나 출입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출입구를 통해 1층 차량에서 발생한 연기와 유독가스가 유입되어 참사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 스포츠센터 건물 시공 방식이 드라이비트 공법이라는 것도 이번 화재를 참사로 만드는 데 큰 원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2015년 발생해 5명의 사망자와 129명의 부상자를 낸 의정부 아파트 화재 역시 이번 제천 참사처럼 건물이 필로티 구조(1층을 기둥으로 비워두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드라이비트 공법을 적용하였다.
여기서 드라이비트 공법이란 스티로폼에 시멘트를 바른 단열재를 사용한 것으로 저렴한 공사비에 비해 단열효과가
좋아 자주 사용되는 공법 중 하나다.
그러나 가격이 저렴한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
이 공법은 스티로폼을 사용했기 때문에 화재가 발생하면 매우 취약하다는 약점이 있다.
제천 스포츠센터가 화마에 순식간에 휩싸이게 된 이유도 드라이비트 공법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결국 우리는 2015년에 의정부 아파트 화재 사건을 이미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또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도대체 우리나라 건축물들은 화재에 얼마나 취약한 것일까?
국토교통위원회 윤영일의원(국민의당, 해남·완도·진도)이 15년 의정부에서 발생한 도시형 생활주택 화재사고 발생 이후 국토교통부가 실시한 도시형생활주택 안전실태 결과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15년 기준, 전국적으로 준공된 도시형생활
주택 13,993단지 중 외벽 마감재료 화재 취약자재(드라이비트, 압출 보온판 위 스톤코트 등 외단열 공법)가 사용된 단지가 4,205단지로 약 30%를 차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다른 공법에 비해 공사기간이 단축, 저렴한 시공비, 우수한 단열효과 등으로 선호되고 있는데 화재 발생 시
수직으로 확산되는 화염과 인접 건축물에 불이 옮겨붙는 것을 차단하지 못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또 제천 화재는 그나마 옥상 출입구가 개방되어 일부 시민들을 옥상을 통해 구조할 수 있었지만 도시형생활주택
3,327단지(약 24%)는 옥상이 폐쇄된 상태로 조사되어 화재 발생 시 대피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발생할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수많은 주택들이 화재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또한 불법 주차로 소방대원이나 소방차들이 화재 현장에 신속하게 도착할 수 없었던 점, 화재설비가 미비하거나 비상계단 등이 자재 및 장애물로 막혀 있는 등 소방점검에 미흡했던 점들이 하나같이 연쇄작용을 일으켜 엄청난 참사로 이어졌다.
사고가 난 후에 인재였다며 반성을 하자고 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고통에 시달리고 후유증을 얻었다.
안전에 드는 비용은 더 안전해 질수록 비싸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반복되는 참사급의 사고가 발생을 하는데도 그 비용을 아까워한다면 이는 화재가 발생해 사람들이 희생당해도 어쩔 수 없다는 미필적 고의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이제 ‘인재(人災)’라는 말도 모호하다고 할 수 있다.
반드시 이런 사고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와 소방당국, 관련 기관들은 철저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이호 기자 dlghcap@sisunnews.co.kr
제천 화재 사고 현장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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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이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현장을 방문해 소방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들으며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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