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3년 9월30일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대검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채 전 총장은
이날 혼외자 의혹으로 총장 직에서 내려왔다.
ⓒ 연합뉴스
채동욱 전 검찰총장(왼쪽), 박근혜 전 대통령.
[연합뉴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지난 8월29일 한 법무법인에서 변호사 일을 시작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이 주도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을 위해 최근
무료 변론에 나섰다. 간단한 이유였다. “동병상련으로”.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채동욱의 강제퇴임 막전막후
채동욱 전 검찰총장
박근혜 청와대-국정원-법무부-언론 협업
정권의 '외부 힘에 의한 특단 조치' 전막
▶ 문재인 정부 ‘국가정보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가 최근 찾아내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에 이첩한 문서가 있다.
2013년 7월 국정원(남재준 원장)이 작성해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게 보고한 ‘(원세훈) 수사대응 문건’이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지휘하는 채동욱 검찰총장에 대한 국정원과 박근혜 정권의 위기감이 문장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국정원은 “자체의 자정 노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외부의 힘에 의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썼다.
불법 대선개입을 주도한 정보기관이 대선개입의 최대 수혜자인 대통령에게 ‘눈엣가시’를 뽑아낼 모종의 ‘기획’이 필요하다며 ‘재가’를 요청한 것이다.
‘외부의 힘에 의한 특단의 조치’는 9월초부터 청와대-국정원-법무부-언론이 톱니바퀴처럼 물리며 현실화됐다.
채동욱이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난 지 4년3개월이 됐다.
그동안 그가 수사했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채동욱을 임기 첫 검찰총장으로 임명한 뒤 5개월 만에 쫓아낸 박근혜 대통령은 파면돼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대선개입 당시 원세훈의 수장이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의혹의 한가운데로 소환돼 있다.
총장 취임부터 강제퇴임 당시까지 벌어진 ‘막전막후’를 채동욱이 날짜별로 회고했다.
<한겨레>는 지난 11월초부터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서울 도곡동에 위치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그를 인터뷰했다.
인터뷰를 기초로 재구성한 그의 ‘강제퇴임 일지’엔 황교안, 이정현, 곽상도, 홍경식 등 박근혜 정권의 핵심 인사들의
이름이 줄줄이 등장한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수사 방해와 퇴임 과정이 그 이름들과 얽혀 시기별로 생생하게 재현된다.
8월29일 한 법무법인에서 변호사의 삶을 시작한 그는 “무신불립”(無信不立·믿음이 없으면 일어설 수 없다)이란 말로
지난 4년을 요약했다.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국가는 존립하기 어렵다.
국민을 전술적인 대상으로만 바라본 결과 탄핵으로 이어졌다.
그것이 박근혜 정권이 보여준 교훈이다.”

불법 선거운동 의혹을 받고 있는 국가정보원 여직원 김하영씨가
2013년 1월4일 오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수서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다. 김봉규 <한겨레21> 기자 bong9@hani.co.kr
2012년 12월11일 사건 발생 집 거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있었다.
(*뉴스 화면은 서울 강남의 한 오피스텔 방문을 두드리는 민주당 의원과 당직자들, 경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의 모습을 되풀이해서 비추고 있었다.
국가정보원 직원으로 추정되는 여성이 오피스텔 방에서 선거에 영향을 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제보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왜들 저러고 있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방 안에 있는 사람은 왜 나오지 않을까. 상황 자체가 너무 이상했다.
뭔가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
머지않아 그 장면 속으로 얽혀 들어갈 나(당시 서울고등검찰청장)의 운명을 그땐 상상도 하지 못했다.
12월16일 경찰의 면죄부 발표 (*밤 11시께 경찰이 ‘국정원의 대선 개입 댓글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너무 성급한 결론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사흘 뒤 박근혜가 제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총장, 공소시효와의 싸움
2013년 2월초 아내의 농담 식사 자리에서 아내가 장난치듯 물었다.
“당신, 후보에도 못 끼는 거야?” 며칠 전부터 언론에 차기 검찰총장 하마평이 쏟아지고 있었다.
아내의 말을 들으니 괜히 마음이 복잡해졌다.
2월7일 3배수 포함 오후 5시쯤이었던가. 내가 박근혜 정부 첫 검찰총장 후보 3배수에 들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깜짝 놀랐다. (*이날 법무부는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를 열어 차기 총장 후보자로 김진태 대검 차장, 소병철 대구고검장, 채동욱 서울고검장을 확정·발표했다. 추천위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인 2012년 도입돼 2013년 2월 처음 시행됐다.
전날 민주당은 수사 축소·은폐 혐의(직권남용 및 경찰공무원법 위반)로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정작 아내의 반응이 걸작이었다. “총장 후보에 들었으니 자존심은 세웠네. 그래도 진짜 하면 머리만 아프니까 하지 마.” 당시는 사법연수원 동기들로부터 자기네 로펌으로 오란 이야기를 듣던 때였다. 내가 총장이 될 거라곤 그들도 예상하지 않았던 것 같다.
3월7일 혹은 8일 황교안 “좀 만납시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한테서 보자는 연락이 왔다.
약속 장소에 나갔더니 이러더라. “이래저래 채 고검장이 적임자라고 생각해서 제청권자인 내가 당신을 추천하겠다.
그러나 임명권자는 대통령님이시니 보안 유지해 달라. 대통령이 반려할 수도 있다.
” 특별한 이야기나 주문은 없었다. 아내가 농담했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복잡해졌다.
(*당시 언론들은 대체로 김진태 대검 차장이 유력하다는 보도를 내놓고 있었다.
채동욱과 사시 24회 동기인 그는 7살 연상인데다 경남 사천 출신이었다. 결과적으로 김진태는 채동욱이 강제퇴진
당한 뒤 후임 총장이 된다.)

2013년 6월7일 법무부로부터 ‘(원세훈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하라’는 연락이 검찰에
전달됐다. “모두 ‘만세’를 불렀다. 총장 옷 벗고 난리가 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파국은
막은 셈이었다. 불구속 기소 처리 전략이 위(청와대)에 먹혔나 보나 생각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나는 참 순진했다”고 말했다. 채 전 총장이 지난 7일
서울 강남의 한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o.co.kr
3월15일 곽상도 전화 오전에 곽상도(사시 25회) 청와대 민정수석이 전화를 걸어왔다. “형님 고향이 서울이야?
전북이야?” 맥락 없는 질문에 뜨악했다. “무슨 소리야? 아버지는 군산, 어머니는 익산, 나는 종로5가 태생인데.
” 곽상도가 다시 물었다. “전북 연고? 그럼 성묘는? 성묘는 다니지?” “당연히 다니지.” “좋아, 그럼 고향을 전북으로
내보내도 되겠지?” “….” 오후 1시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이 “채동욱 총장 내정”을 발표했다.
3월17일 혹은 18일 곽상도 다시 전화 곽상도가 차분하게 말했다. “대통령 말씀을 전한다”고 했다.
첫마디가 “원세훈 사건을 원칙대로 처리해 달라”였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말 그대로”란 답이 돌아왔다.
다시 물었다. “정말 그래도 되나.” 박 대통령이 문제의 사건과 무관한 것인지 조심스레 물어본 것이다.
곽 수석이 다시 말했다. “워딩 그대로 전달하는 겁니다.” 속으로 생각했다. ‘아, 박 대통령이 이 사건에 약점 잡힌 건
없는 모양이구나. 법과 원칙대로 수사하면 되겠군.’ (*3월17일 여야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국정조사를 합의했다.)
4월초 황교안과 윤석열 인사 논의 검찰 중간간부 인사를 협의하기 위해 황 장관과 만났다.
그 자리에서 장관에게 내 의견을 전했다. “국정원 댓글사건을 담당할 팀장부터 확정하는 게 어떨까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이 적합하니 이의 없으시면 그를 서울 가까운 지청장으로 발령 냈으면 하는데요.”
수사팀 파견이 용이하도록 수도권 발령을 부탁했다.
“여주가 어떨까요? 왔다 갔다 편하게.” 내 말에 장관은 별다른 이의를 달지 않았다.
4월4일 제39대 검찰총장 취임 (*사흘 전 민주당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국정원 대선 사건의 공소시효 만료일(6월19일)까지 두 달 보름밖에 남지 않았다. 시간이 없었다.)
원세훈 수사, 아킬레스건 겨누다
4월18일 특별수사팀 첫날 윤석열 등 수사팀을 총장 방으로 불렀다.
차 한 잔씩 주며 딱 한마디 했다. “흑은 흑이고 백은 백이다.
우리한테는 그게 유일한 기준이다.” (*4월19일 권은희, 경찰 수뇌부의 사건 축소·은폐 의혹 제기→ 4월22일 검찰,
김용판 수사 착수→ 4월29일 검찰, 원세훈 1차 소환조사.)
4월30일 국정원 압수수색 검찰 직원 70~80명이 나갔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압수수색(전산센터)은 절대 응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국가안보에 우려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를 댔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압수수색이 12시간이 넘도록 진척이 없었다.
밤 10시에 내가 곽상도에게 연락해서 요구했다. “청와대가 국정원에 협조 지시해달라.” 곽상도는 “노력해보겠지만
잘 안 된다”고만 했다. 청와대는 하루 종일 움직이지 않았다. 이상했다.
“원칙대로 처리하라”던 대통령의 말과 달랐다.
핵심 자료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2013년 4월30일 밤, 국정원을 압수수색한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을 태운 버스가 서울
내곡동 국정원을 빠져나오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5월 중순 수사팀 첫 보고 구성 한 달 무렵 수사팀의 첫 보고를 받았다.
김용판의 공직선거법 위반 적용과 구속이 불가피하다는 내용이었다.
여러 차례 장시간 토론을 벌였다.
공안 쪽에서 ‘기소가 힘들다’는 의견이 일부 있었으나 ‘가능하다’는 것이 중앙지검과 대검의 중론이자 결론이었다.
파장이 큰 중대 사건인 만큼 수사팀, 중앙지검장, 대검 차장과 공안부장 등 검찰 수뇌부 회의를 통해 내린 결론이었다. “좋다, 그렇게 법무부에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이튿날 황교안 전화 황 장관이 연락해 “나는 견해가 다르다”고 했다. “선거법 위반 적용은 어렵고 구속도 말이
안 된다”는 얘기였다.
법리 적용을 두고 한참 이야기했다.
나는 이미 보고한 사안이므로 30~40분 동안 듣다가 머리를 짜냈다.
“김용판과 원세훈 관련 사건이니까 원세훈 수사를 끝낸 뒤 한꺼번에 결론 내리시죠.” 황 장관도 동의했다. (*5월20일 서울지방경찰청을 압수수색했고 다음날 김용판을 1차 소환했다.)
5월27일 선거법 위반 구속기소 결론 ‘김용판과 원세훈 일괄 처리’ 방침으로 김용판 구속이 늦어지면서 수사팀 내부에서도 외압 때문 아니냐는 불만이 일었다.
여러 채널을 통해 압박이 들어올 때였다.
청와대 민정수석은 물론이고 법무부와 여당 쪽으로부터 선거법 위반 적용과 구속 중 어느 것도 안 된다는 메시지가
전달됐다. 이날 한 검사가 항의성 사표를 내고 사라졌다.
외압 의혹을 제기하며 검사가 사표를 쓴 사실이 알려지면 수사팀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윤석열이 나한테 막아달라고 했다.
나를 만난 젊은 검사는 “외압이 있다면 검사직을 던져서라도 검찰 수사에 힘을 보태겠다”고 했다.
“그런 일 없다”며 “나를 믿으라”고 했다.
“즉각 복귀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검찰 수사에 도움이 된다”고 했을 때에야 나를 믿어줬다.
공소시효가 3주쯤 남은 시점이었다.
며칠 전 수사팀 박형철 부장검사에게 “당신이 공직선거법 1인자니까 무혐의를 전제로 써보라”고 했다.
법리적으로 정말 무혐의가 가능한지 논리를 전개해보자는 취지였다.
끙끙 앓던 박 부장이 “무혐의 자체가 말이안 되므로 도저히 못 쓰겠다”며 포기했다.
그렇게 수사팀이 만장일치를 봤다. 원세훈과 김용판 모두 선거법 위반에 구속 기소! 이날은 원세훈 2차 소환일이었다.

2013년 10월1일 황교안 법무부 장관(아래)이 긴급현안질의를 위해 열린 국회 본회의에
출석해 채동욱 검찰총장 사퇴 압박에 대한 야당 의원의 질의에 답하는 모습.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다음 날 황교안 전화 “불가” 수사 결론을 법무부에 보고했다. 보고받은 황 장관이 전화했다.
선거법 위반 적용은 말이 안 되고 구속은 더더욱 안 된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평생 공안 분야만 했고 선거법 전문가여서 자신이 잘 안다고 했다.
전화를 끊은 뒤 장시간 동안 정말 많이 고민했다.
선택에 따라 검찰이 법무부 및 청와대와 충돌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최종 결정은 내가 해야 했다.
부장·차장들을 불러 설명했다.
“이미 검찰이 결론 내린 선거법 위반 적용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선이고, 흑백을 바꿀 수는 없으니 그 선을 지켜내는 게 총장의 역할이다. 그러니 신병 구속은 양보하자.” 수사팀 회의를 소집해 다시 설명했다. 다들 조용했다.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에게 의견을 물었다. “따르겠다”고 했다. 윤석열·박형철 부장도 동의했다.
최종보고서(선거법 위반·불구속)를 법무부에 제출했다.
6월초 법무부의 침묵공소장 작성 등에 돌입할 준비를 하고 기다렸으나 며칠이 지나도록 법무부로부터 답이 없었다.
공소시효가 10여일밖에 남지 않았다.
보고하자마자 ‘오케이’가 나도 시간이 부족한 시점이었다.
‘이 정권이 선거법 위반을 아주 중요한 아킬레스건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그 침묵 속에서 읽을 수 있었다.
황교안 장관의 ‘지휘권 발동’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사퇴문을 미리 준비했다. ‘만약 지휘권을 발동하면 나는 즉시 사퇴할 것’이란 시그널을 법무부와 청와대에 보냈다.
나의 동향이 일일이 전달되고 있을 것이라고 봤다.
취임 두 달 된 총장이 정권에 불리한 사안을 수사하다가 낙마한다면 국가적 혼란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니 그런
최악의 사태를 초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말의 기대를 품었다.
6월7일 순진했다 법무부로부터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하라’는 연락이 왔다.
모두 ‘만세’를 불렀다. 총장 옷 벗고 난리가 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파국은 막은 셈이었다.
불구속 기소 처리 전략이 위(청와대)에 먹혔나 보나 생각했다.
나는 참 순진했다.
정권의 소리 없는 반격
6월14일 공소장 통째 유출 (*검찰이 원세훈을 기소한 날 아침이었다. 수사팀의 공소장 내용이 <조선일보>에 통째로
유출돼 실리는 일이 벌어졌다.
중대 사건의 검찰 공소장이 수사 결과 발표 전 특정 언론을 통해 공개된 일은 검찰 역사상 초유였다.
공소장 주요 내용이 5개 면에 걸쳐 난도질돼 있었다. 검찰 수뇌부가 내부의 이견을 묵살하고 무리한 기소로 몰아붙였다는 뉘앙스였다.
이 무렵부터 청와대와 여권 핵심 주변에선 ‘채동욱 교체론’이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이듬해(2014년) 6월로 예정된 지방선거를 1년 앞둔 시점에서 선거 승리를 위해선 채동욱을 교체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두 달 뒤 한 통의 전화가 채동욱에게 걸려왔다.)
8월초 이정현의 전화 아침에 간부 회의를 하고 있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이정현 홍보수석이었다.
그의 전화는 총장 취임 후 처음이었다. “채 총장, 잘 계셨나요? 좀 전에 제가 휴가 중인 대통령한테서 전화를
받았어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의 별장이 있던 경남 거제 저도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던 중이었다.
7월31일 페이스북을 통해 ‘저도의 추억’이라는 제목의 사진을 올려 화제가 됐다.) 이정현이 계속 말했다.
“대장님(박근혜)이 제게 물으시더라구요.
채 총장을 이 정부가 임명 안 했다고 얘기한 적 있냐고요.
우리가 임명한 검찰총장이고 일 잘하고 계신데 왜 그렇게 말했냐고 배 터지게 혼났어요.
저는 혼났지만 채 총장님한테는 참 도움이 되는 말씀인 것 같아서 전해 드리려고 전화한 겁니다.
” 그 자리에 있던 간부들은 “어찌 됐건 간에 총장님한텐 좋은 전화인 거 같다”는 반응이었다.
(*잠시 6월7일로 돌아간다. 이날 청와대를 항의 방문한 ‘민주당 대선개입 사건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이정현 정무수석은 “채동욱은 이명박 정부가 지명한 검찰총장”이라고 말했다.
이정현 발언의 배경은 이랬다.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채동욱을 포함한 3인을 후보자로 확정한 시점(2013년 2월
7일)은 박근혜가 대통령 취임(2월25일) 전 당선인 신분일 때였다.
‘형식상으로는’ 이명박 정부 막바지였다.
원세훈 ‘구속 기소’(6월14일)로 치닫던 검찰을 향해 마치 ‘채동욱은 우리 사람이 아니’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셈이다.
이 장면을 두고 채동욱을 말했다. “6월7일 이정현 발언을 보도로 접한 뒤 여러 생각이 들었다.
첫째, 나를 임명한 것은 박근혜 정권인데 왜 저런 소리를 할까. 둘째, 나에게 쌓인 ‘불신임’을 이렇게 대외적으로
드러내는구나. 셋째, 자신들이 밀던 후보가 추천 단계에서 아예 탈락했구나.
그러니까 저런 말을 하지.” 여름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박근혜 대통령은 8월5일 허태열 비서실장을 경질하고 후임에
김기춘을 전격 발탁했다. ‘저도 구상’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당시 73살의 김기춘은 1960년 12회 고등고시에 합격했다.
1982년 사시 24회 출신의 채동욱에겐 까마득한 선배였다.)

2013년 3월15일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채동욱 서울고검장(당시)이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 청사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8월 중순 “종북좌파 총장 물러나라” 대검찰청 앞에 느닷없이 수십명이 몰려왔다.
시끄러운 구호소리가 하루 종일 요란했다.
“종북좌파 총장 채동욱은 물러나라.” 원세훈을 기소한 지 50여일 지난 시점에 이제 와서? 대충 감이 왔다.
‘김기춘 카드’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아, 정권이 날 쫓아내려고 하는구나. 매일 계속되던 그 시위가 중단된 건 ‘9월6일 그날’ 무렵이었다.
(*문재인 정부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는 최근 남재준 원장 시절 국정원이 작성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보고한 ‘(원세훈) 수사 대응 문건’을 추가로 찾아내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에 이첩했다.
문서들 중엔 2013년 7월 박근혜에게 보고한 채동욱 건도 포함돼 있었다.
국정원은 “채 총장의 검찰 조직 운영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며 “자체의 자정 노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외부의 힘에 의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보고했다. ‘외부의 힘에 의한 특단의 조치’의 실체는 9월이 되면서 얼굴을 드러냈다.)
9월6일 ‘그날’
9월5일 “윤전기 돌아간다” 밤 11시. 검찰 직원들이 “총장님 개인 신상 관련 보도가 내일 나간다”고 했다.
1시(6일)에 돌이킬 수 없음을 알았다. “(‘혼외자’ 보도를 담은 조선일보) 윤전기가 돌아간다”고 했다.
검찰 직원들이 죄다 밤을 새웠다. 아내는 마침 친구들과 제주도에 놀러가 있었다.
9월6일 새벽 황교안의 전화 새벽 5시30분~6시쯤이었다. 황교안 장관한테서 계속 전화가 왔으나 받지 않았다.
그랬더니 아내한테 전화를 걸어 내게 전했다. “전화 좀 해달라.” 콜백은 하지 않았다.
9월6일 아침 7시 ‘퇴임의 변’과 유보 결국 터졌다. 아침 7시에 대검 기조부장을 불러서 두 문장짜리 퇴임의 변을
불러줬다.
“법과 원칙에 따라 검찰을 운영하려 했습니다. 검찰총장직을 지키지 못하고 일신상 사유로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서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보도 전 2주 동안 밑에서 차마 내게 올리지 못한 첩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좀 이상한 대목이 있었다. 나를 사찰해서 그 정보를 <조선일보>에 줬다는 이야기였다. (*8월 중순 곽상도 민정수석이 강효상 당시 <조선일보> 편집국장(현 자유한국당 의원)을 만나 채동욱의 개인정보를 넘겼다는 의혹을 신경민 민주당 의원도 제기(2013년 10월1일)했다. 둘은 대구 대건고 선후배 사이였다.
6월부터 국정원이 채동욱의 혼외자식 정보를 캤다는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었다.) 그 첩보를 접한 뒤 생각이
바뀌었다.
나갈 때 나가더라도 최소한 이 정황을 밝히고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를 흔드는 이유가 대선 개입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는 검찰 수사를 좌초시키기 위함이란 확신이 들었다.
바로 사표 쓰고 나가면 그들의 의도대로 놀아난 꼴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건 검찰에 대한 도리도 아니었다. 기조부장을 다시 불렀다. 퇴임의 변 ‘유보’.
9월7일 황교안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토요일이었다. 아내와 차를 몰아 딸이 다니는 강원도의 고등학교 기숙사로
찾아갔다.
<조선일보> 보도로 인터넷이 난리였다.
놀랐을 아이가 걱정됐다. 강원도로 가는 차 안 분위기는 침묵으로 꽁꽁 언 살얼음판이었다.
학교 기숙사 앞에 차를 세우고 아이를 불렀다. 아내는 운전석에 앉고 나와 딸이 뒷좌석에서 이야기했다.
“혼외자가 뭔지 아니?” 아이는 “안다”고 했다.
“친구들이 보지 말라고 해서 인터넷도 안 본다”며 아이는 담담하게 말했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4시30분쯤 되었을까. 핸드폰이 울렸다.
황 장관이었다. 받지 않았더니 계속 울려댔다. “장관님, 무슨 일이십니까?”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 황 장관은 “오늘 저녁 당장 보자”고 했다. “지금 딸한테 와 있어 오늘은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아, 그래요. 그럼 내일 뵙죠.”

2013년 9월30일 채동욱 검찰총장이 퇴임식을 마치고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떠나는 모습.
김봉규
<한겨레21> 기자 bong9@hani.co.kr
9월8일 황교안 “변호사가 돈벌이는 됩니다” 점심 무렵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포도주 한 병을 시켜놓고 그가 웃었다.
황 장관은 점잖게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요, 태평양(로펌) 가서 있었는데, 변호사가 먹고살 만큼 돈벌이는 됩니다.” 속이 빤히 보이는 말이었다.
10분 동안 이야기를 듣다가 내가 말했다. “장관님,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는 ‘사표 내겠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을 것이다. “그만하시지요. 가보겠습니다.” 방을 나와 차를 타고 가는데 휴대폰이 또 울렸다.
홍경식 민정수석이었다. 역시 안 받았더니 계속 걸어댔다.
“수석님 무슨 일이십니까?” 이번엔 홍 수석이 “오늘 저녁에 시간 좀 내줄 수 있냐”고 했다.
황 장관이 나와의 만남을 보고한 것이라 생각했다. 저녁 6시쯤 일식집에서 둘이 만났다.
그는 “맞습니까?”라며 “<조선일보>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면 아닌 부분을 밝히라”고 했다.
나도 내심 화가 났다. “왜들 이러시는 겁니까? 왜 사적인 문제를 가지고 장관과 수석까지 나서서 이러십니까?”
(당시 나는 <조선일보> 보도를 부인하고 있을 때였다.
혼외자 여부를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고 사실이라하더라도 그것은 사생활이라고 판단했다.
정권의 사생활 사찰로 강제퇴진 당할 순 없어 보도 당일 언론에 “보도의 저의와 상황을 파악 중”이라고 검찰 입장을
밝히도록 했다.) 홍 수석은 6년 선배(사시 18회)인데 내가 여주지청에서 근무할 때 지청장으로 모신 적이 있었다.
부부 동반으로 여러 번 따로 만나기도 한 사이였다.
9월10일 황교안 “이렇게 하시죠” 오전 황 장관이 다시 전화했다. “이렇게 좀 하시죠?” “뭘 말입니까?” “대검 감찰본부에 셀프 감찰을 의뢰해 보시죠.” 내가 화를 참으며 말했다.
“어떻게 현직 검찰총장이 자신의 혼외자 여부를 부하인 감찰본부장한테 감찰을 지시하라고 하십니까.”
황 장관이 다시 말했다. “아, 그런 방법도 있잖아요. 특임검사 임명하듯이. 감찰본부장한테 보고도 안 받겠다고
선언하시고.” 나는 거부했다.
9월11일 홍경식 “미국 대통령도 받는데…” 점심 무렵 홍경식 수석이 전화해 전날 황 장관과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했더니 홍 수석은 ‘모니카 르윈스키 사건’으로 특검조사를 받은 빌 클린턴 이야기를 꺼냈다. “미국 대통령도 받았는데 검찰총장이 못 받을 게 뭐가 있냐.” 이날은 대통령이 7박8일간 일정으로 러시아와 베트남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날이었다.
대통령 귀국(오후 5시) 전에 모든 ‘작업’을 끝내려던 계획이 차질을 빚자 그들은초조해했다. 내가 홍 수석에게 말했다. “대통령한테 보고할 때 이 이야기 하나만 붙여 주십시오. 감찰 조사 지시하면 나는 나갈 거다.
앉아서 감찰당하고 있지 않을 거다.” 홍경식이 답했다. “그건 해드린다.”
9월13일 사표 제출 금요일이었다. 오후 1시쯤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황 장관이었다.
참모들이랑 다 함께 있는 자리였다. 장관이 말했다. “감찰 조사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짧게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참모들을 데리고 총장실로 올라갔다. “감찰 조사 하라는 청와대 방침이 섰다”고 알려주니 참모들
얼굴이 하얘지더라. 참모들에게 말했다. “나는 수용할 수 없다. 사표를 내겠다.” 감찰 본부장이 그때 같이 있었다.
그가 “차라리 감찰을 받으시라, 검찰은 어떡하라고 그냥 나가시냐”고 했다. 참모들 앞에서 장관에게 전화했다.
“장관님, 사표 보내겠습니다. 바로 청와대로 보내시죠.” 황 장관이 말했다. “알았습니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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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직속 수장 이명박 아니었나?”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불법적인 정치공작을 지휘한 의혹을 받고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난 9월26일 오후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소환돼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지 4년이 흘렀다. 그동안 채동욱은 ‘그들’이 ‘그날’을 왜 하필 9월6일로 잡았을까 자주 생각해봤다. 채동욱은 ‘전두환 미납추징금 환수’와 연관지어 판단했다.
혼외자 보도가 터지고 나흘 뒤인 2013년 9월10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맏아들 전재국은 가족 대표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미납추징금 전액을 납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채동욱은 취임한 지 한 달 반쯤 뒤인 2013년 5월24일 서울중앙지검에 전두환 일가 미납 추징금 특별환수팀을 구성하며 추징금 환수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당시까지 전두환 일가는 전체 추징금 2205억원 중 533억원만 낸 상태였다. “작업이 착착 진행돼서 전두환 쪽이 추징금 전액 납부에 협조하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총장으로서 그 기회를 안 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지난 12월18일 원세훈은 다시 법정(서울중앙지법)에 섰다. ‘사이버 외곽팀에 63억여원의
국고를 불법지원한 혐의 등으로 새로운 재판이 시작됐다.
그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으로 지난 8월 징역 4년형을 받고 법정구속 된 상태다. 국정원 대선개입의 최대 수혜자이자 채동욱의 임명권자이면서 그를 쫓아낸 박근혜도 대통령에서 파면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제 또 다른 이름이 잇따라
호출되고 있다. 이명박.
―총장 시절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연관성도 수사했나?
“원세훈도 관련성을 부인하고 있을 때였다. 이명박에 대한 수사는 진척이 잘 안 됐다. 하지만 정부가 바뀐 뒤로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지 않나.”
―수사가 결국 이 전 대통령에게 이를 수밖에 없을 거라 보나?
“원세훈의 직속 수장이 누구였나. 이명박이었다. 현재 돌아가는 상황이 그에게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다.”
총장 사퇴 이후 채동욱은 강원도 산골짜기에 한동안 은둔했다.
“‘부관참시’ 당했다는 분노로 한때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 무렵 대학 동문인 대성 스님을 만났다. 사법연수원 동기이기도 한 그는 군 제대 후 홀연히 스님의 길을 택했다.
그는 대만의 성엄 선사(1930~2009)의 책을 보내줬다.
“누군가가 예리한 칼을 들고 자신을 죽이려고 등 뒤에서 다가오더라도 제대로 수행한 자는 절대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죽임을 당할 자아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그 문장을 수십 번 읽으며 “현상계의 무상함과 공(空)함을 깨닫고 다지면서 화로 얼룩진 마음”을 다스렸다.
채동욱은 지난 8월29일 한 법무법인에서 변호사 일을 시작했다. “특별한 계획보다는 변호사로서 열심히 일하겠다”고
만 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이 주도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을 위해 최근 무료 변론에 나섰다.
간단한 이유였다.
“동병상련으로.”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
채동욱 전 검찰총장. 한겨레DB
이명박근혜 국정농단 방치한 보수언론 문제점 |
| 오묘한 상관관계 빠진…“문제는 언론이다!” |
[글=이계홍 주필] 박근혜 대통령 집권 초기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 사건보도가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2013년 4월 서울지검 특별수사팀은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의 정치개입에 대해 수사한 결과, 원 원장을 정치적 여론조작 활동과 제18대 대통령 선거 후보 중 박근혜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야권 후보를 비방한 사실, 김용판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대통령 선거 직전 수사에 외압을 넣고 허위의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한 사실을 확인하여 두 사람을 공무원으로서 부당한 직무를 행사한 죄와, 불법 선거운동을 한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공무원의 선거운동 행위로 기소했다.
권력과 언론 카르텔 이같이 대통령선거 불법성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조선일보가 채 총장의 ‘혼외자’ 사실을 폭로해 그는 부도덕한 사람으로 몰려, 결국 검찰총장 직에서 물러났다. 그와 함께 불법선거 수사는 유야무야 됐다.
채 전 총장을 낙마시킨 이 사건은 1심에서 국정원 직원 송 모씨 등 몇몇 공무원의 일탈에서 빚어진 사건으로 드러나 법의 심판대에 올랐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부는 송 모씨의 행위에 대한 처벌과 별개로 국정원 윗선 등의 음모를 의심하며 송씨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건 부당하다고 판시했다. 고법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당시 사건은 결국 채 전 총장의 혼외자 의혹을 검증하고, 이를 구실로 삼아 검찰의 (선거부정에 대한)적극적 수사를 방해하고자 하는 모종의 음모에 따라 국정원의 상부 내지는 그 배후 세력 등의 지시로 저질러졌음이 능히 짐작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이같은 불순한 의도를 갖고 아동의 개인정보 조회 및 수집을 지시한 국정원 상부 내지는 그 배후 세력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처벌을 하지 않은 채, 이에 대한 책임을 이들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 송씨 개인에게만 모두 돌리는 것은 형사법의 원칙인 책임주의에 반하고, 책임의 형평성에도 크게 어긋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의 이같은 논리에 따라 송 모씨는 1심에 비해 다소 가벼운 형을 받았으며,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중이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 TF도 해당 사건이 국정원 직원 송 모씨의 단독행위가 아닐 개연성이 높다고 보고 검찰에 수사를 권고했다.
필자는 이런 법적 진행 과정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고법 재판부의 판시가 일반 국민의 정서법과 일치한다고 보기 때문에 인용했을 뿐이다. 이 사건으로 권력은 당시 선거부정 혐의를 수사하고 있는 윤석열 검사를 지방으로 쫓고, 채 검찰총장은 도덕성에 타격을 주어 쫓아냈다고 국민들은 본 것이다. 공직자의 도덕성을 겨냥해 검찰총수를 내친 권력의 비정성은 사건의 본질을 완전히 가려버렸다. 보수언론이 그 역을 담당했다. 결과적으로 부정선거 혐의 수사를 막는 보호막 역할을 해준 것이다. 지켜본 국민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는 수구보수 집단의 세월호 유족들의 단식장에서의 폭식잔치다. 이건 새삼 팩트를 인용할 것도 없다. 당시 미국의 CNN방송이 보도한 것을 인용하는 것으로도 족하리라 본다.
CNN은 2014년 9월9일자 보도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이들의 지지자들은 특별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성역없이 조사하고, 혐의가 있는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에 들어갔다”며 유가족과 시민들이 가담해 광화문에서 단식투쟁을 하게 된 연유를 설명했다.
그런데 극우 성향 일베 이용자들과 단식 항의 극우주의자들이 “유가족들의 텐트 앞에서 유가족과 유가족을 지지하는 시민들을 조롱하기 위해 많은 양의 치킨과 피자를 (게걸스럽게)먹어댔다”며 일베와 극우성향의 자유대학생연맹의 폭식투쟁을 보도했다. 그중 한 50대 남성은 “일베들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시하기 위해 피자 100판을 배달시켰다”고 CNN은 소개했다.
CNN은 “그러나 대중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며, 어느 누구도 고통받는 사람에 대해 비인간적이고 비정하게 대해서는 안된다”며 폭식투쟁에 대한 비판 여론을 전했다. 폭식잔치 헤프닝으로 유가족을 야유하고 조롱한 이같은 비인간적인 행동에 국민적 분노가 들끓었음은 물론이다.
정치적이든 아니든 굶고 있는 사람 앞에서 치킨과 피자와 햄버거를 한 입 입에 물고 히히덕거리는 모습을 보고, 과연 이 사람들이 이성사회를 살 자격이 있는지를 의심케 했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들의 행위에 대해 국민들은 본인이 모욕을 당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배후에 보수권력이 또아리를 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인간이길 포기한 이런 패륜과 사회적 약자를 벌레처럼 취급하는 수구 보수세력의 광기를 보고 국민들은 좌절하고 말았다. 정권의 타락과 오만과 폭력의 말기현상을 적나라하게 본 것이다.
세 번째는 백남기씨 사망 진단이다. 백씨는 TV에도 여러차례 방영되었다시피 경찰의 과잉진압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뇌사상태로 병원에 실려가 깨어나지 못하고 끝내 사망했다. 그런데 명색이 한국 최고의 병원이라는 서울대학병원 의사가 급성신부전증으로 사망했다고 진단했다. 여러 전문 의료용어를 써가며 사인을 말하는데, 복잡하게 설명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사술이다. 교통사고로 뇌사상태로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회복하지 못하고 몇 개월 후, 혹은 몇 년 후 숨져도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이지 심장병, 호흡기질환 따위로 숨졌다고 보지 않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물대포를 맞고 뇌사상태로 숨진 것이 아니라 다른 병변으로 사망했다니, 국민들은 그렇게 진단을 내린 의사를 탓하기보다 정권이 또 한 의사를 저렇게 이용해 인격과 양심을 파탄내구나 하는 절망감을 느꼈다. 아니 집단 허무주의에 빠지고 말았다. 성실하게 의료활동을 하는 의사마저 가만두지 못하는 시대에 사는 아픔에 넌더리를 쳤던 것이다. 많은 국민들은 이런 권력의 타락을 통해 두말없이 말기현상을 보았다.
정략적인 보도들
네 번째는 이런 사안들을 보고도 진실 대신 정략적으로 사실을 보도하거나 회피하고, 왜곡보도하는 유력매체들의 보도태도다. 이른바 의례적이고 기계적인 보도태도이자 발표문 보도다. 권력이 불러주는대로 받아적는 인쇄물. 진실을 추구하는 취재를 포기하고 발표문으로 신문을 대체한다면 왜 굳이 일류대학을 나온 엘리트들을 기자로 뽑는가. 그런 정도의 보도라면 중졸로도 가능하다. 실제로 대만이 한때 그랬다. 물론 사회주의 국가도 마찬가지다.
팩트 이면에 숨은 진실을 캐내는 작업이 언론인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의문과 질문과 추적과 탐사를 통한 진실추구. 이런 것도 없이 권력이 제공하는 브리핑에 의존하는 보도는 죽은 언론이며, 권력에 이용당할 수밖에 없는 언론이다. 빤히 알면서 수용했다면 동업자 언론이며, 편파와 왜곡을 해주면서 이익을 챙겼다면 더러운 장사꾼언론이다. 그들 입맛에 맞는 보도를 해줌으로써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영혼없는 위안부 언론이다. 이런 사실을 대댜수 국민들은 알고 종이신문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표출했다.
2010년 도요타자동차가 수백 만대의 리콜 사태를 맞았다. 급가속 문제로 대규모 리콜을 실시했던 도요타는 이로 인해 2009년 미국 시장점유율 17%에서 2011년 12.9%까지 떨어졌다. 수백 만대의 리콜 사태로 회사가 휘청거렸다. 지금도 그 후유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도요타는 당시 집단소송 손해배상 등 재무적인 문제보다 브랜드 신뢰도 하락이 판매에 영향을 준다고 보고 언론 관리에 들어갔다. 그러나 도요타의 간부는 얼마 후 “우리는 브랜드 신뢰도에 악영향을 줄까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언론을 여러 각도로 접근했다. 언론은 우리의 요구에 협조해주었다. 그중 하나라도 의구심을 보이며 비판했다면 이런 재앙은 월씬 전에 예방되었을 것”이라고 뒤늦게 아쉬워했다.
이명박근혜 정권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실정(失政)과 불법과 반칙과 유신회귀의 군림을 유력언론의 비호 아래 손쉽게 덮었다. 그때 언론이 제대로 작동했더라면 박근혜는 이렇게 비참하게 몰락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이익을 함께한다는 이유로 권력이 부도덕하고 병들고 썩어도 눈감아주고 응원하면서, 이를 비판하는 세력을 색깔론으로까지 몰아 밟았다. 그 결과 유력 보수언론은 박근혜 권력의 자멸을 자초한 일등공신이 돼버렸다.
한때 일부 유력언론은 군부독재에 맞서 숨죽이며 한숨짓는 국민과 함께 민주화의 힘겨운 수레를 끌었다. 정론의 가치와 계몽주의적 소명의식으로 정의와 양심의 길을 이끌었다. 그런데 언론사끼리 경쟁이 심화하고, 사세를 확장한한다는 미명 아래 천민자본주의와 동맹을 맺더니 지면은 자본가 위주, 몰상식한 권력의 주변부로 전락하면서 끝내 국민의 집단지성에 용도폐기될 운명에 처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구름의 층위에서 호령하고 훈계하고 지시하려 한다. 그러기엔 너무 늙고 타락했다. 제작 의제라고 해봐야 갈라파고스의 동물처럼 진화를 모른 채 남북대결, 지역분열, 세대갈등, 상호 이간질과 파편화의 틀 속에 국민을 가두는 수구 프레임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박근혜가 정권을 몰락시킨 주범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것을 금과옥조처럼 지키며 어른행세하고 있다.
세상은 변화하고 다매체 시대에 여론시장 역시 변화하고 있다. 보수매체들의 시장 영향력은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그 이유는 경쟁력을 엉뚱한 데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 수수자에 대한 배려와, 나쁜 권력에 대한 감시와, 바른 길을 가는 권력에 대해선 격려하는 본래의 기능을 정당하게 행사한다면 독자와 국민이 떨어져 나갈 이유가 없다.
현재의 문재인 정부도 잘못한 것에 대해선 가차없는 비판이 요구된다. 그러나 진영논리에 빠져서 굴욕외교니, 혼밥방문이라느니, 극히 지엽적인 것으로 비싼 지면을 낭비하는 양상이다. 정파적 이해로 보수정권을 맹목적으로 엄호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들 이익과는 멀다는 이유로 맹목적으로 두둘겨 패면 독자와 시민이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뉴스의 ‘음험한 공작’을 식별해내는 국민지성이 그들 앞에 있는 것이다.
독자가 계몽의 대상이 될만큼 후진적이고, 어수룩하지 않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보호해주어야 할 권력과 버려야 할 권력을 시장에서 먼저 안다는 것이다. 편파와 왜곡, 대중조작적 보도태도는 독자와 시민이 먼저 가려볼 줄 안다. 그것을 외면하고 멋모르고 시민을 가르치려 한다면 더 빨리 도태되고 말 것이다.
문제는 언론이다
그래서 문제는 다시 언론이다. 요즘 심각하게 떠오르는 언론보도의 문제는 본질이 아니라 지엽적인 것에 지나치게 천착한다는 점이다. 디테일이 담론을 먹어치우고 있다. 지엽적인 것을 시시콜콜 내세움으로써 핵심과 본질을 외면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런 것이 정파적 이해의 소구력으로 악용되고 있다. 디테일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독자의 비판력을 흐리는 잔재주로 이용된다면 그것 역시 사술이며, 왜곡이 될 것이다.
언론이 정도를 가면 정치도 바른 길로 갈 수밖에 없다. 민주국가에서 정치는 언론에 비하면 한줌의 힘도 안된다. 그만큼 바른 언론은 세상을 끌어가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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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욱 전 검찰총장. 2017.8.29/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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