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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사

워킹맘의 한숨 "'이모님' 월급이 내 월급과 똑같아요"







인구보건복지협회 조사에 따르면 육아휴직경험자 중에서 재정적 어려움과 직장동료와 상사의 눈치 때문에 조기복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직해도 일-육아 병행이 어려워 퇴사하는 사람이 66%로 밝혀져 이를 위한 대책마련이 절실한 것으로 조사됐다.








육아해직? 육아휴직 여성 5명중 1명은 복직 못하고 퇴사







워킹맘의 한숨 "'이모님' 월급이 내 월급과 똑같아요"




최저임금 오르자 가사도우미 임금도 함께 올라 맞벌이 부부들 고충
"'이모님' 월급 주고나면 내 월급 100만원도 안 남아"
내년부터 가사도우미 4대보험 적용되면 임금 더 오를 것




아시아경제 심나영 기자] #. 3살 난 딸을 둔 직장인 권모 씨는 이번달 지출할 돈을 생각하면 "차라리 회사를 그만두는게 낫겠다"는 생각부터 든다.

같은 아파트에 살며 용돈벌이로 하루 10시간씩 주 5일 35만원을 받고 아이를 봐주던 '이모님'이 얼마 전 퇴근길 한 말을 떠올리면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최저임금도 올랐는데 주급을 5만원 정도 더 받고싶다"는 게 요구사항이었다.

 권 씨는 "올해 내 월급은 작년보다 3% 올랐는데 이모님 주급은 14%나 상승한 셈"이라며 "중소기업에 다니면서 세금을 제외하면 통장에 찍히는 월급은 250만원인데 이모님 드리고 나면 100만원도 채 남지 않는다"고 말했다.


#. 6살, 4살 된 남매를 키우는 워킹맘 진모씨는 한달 전부터 새 입주 보모를 구하려고 대형 업체에 전화를 돌리고 있다. 어디에든 전화를 해도 "애 둘 이면 조선족 240만~250만원, 한국인은 300만원 이상 생각해야 하는데 최저임금까지 올라 좀 더 협의가 필요하다"는 비슷한 대답이 돌아왔다.


진 씨는 "친척 어르신께서 아이들을 봐 주시다가 건강 문제로 그만 두시겠다고 하는 바람에 입주 도우미를 찾고 있는데 이렇게 돈이 많이 드는 줄 몰랐다"며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지난 1일부터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오르자 곤혹을 겪는 건 기업들 뿐만이 아니다.


일명 '이모님'이라 불리는 보모를 고용한 맞벌이 부부들도 임금 인상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가사도우미는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아 최저임금을 적용 받진 않는나.


그러나 실제 가사도우미 임금은 현장에선 최저 임금에 준해 지급되고 있다. 가사도우미 알선업체 관계자는 "올해 최저임금 인상을 두고 지난해부터 이 업계는 미리 요금을 올렸다"며 "맞벌이 부부는 누구 한 명 그만 두지 않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금액을 올려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가사도우미 월급은 앞으로 더 오를 것으로 보인다.

가사도우미들도 4대 보험에 가입하고, 연차 유급휴가를 받을 수 있도록 법이 제정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달 26일 국무회의에서 가사 서비스 시장을 제도화하고 가사근로자의 권익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가사근로자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제정안이 다음달 임시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1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이르면 2019년부터 시행된다. 정부는 가사도우미가 4대 보험을 적용받게 되면 15% 정도 임금이 인상 될 것이라고 추산한다.


중구에 사는 워킹맘 이모 씨는 "집 대출 금액에 매달 나가는 생활비에 이모님 월급까지 계속 오르고 있어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며 "일을 관두지 않을 거라면 출·퇴근 시간이 늘어나도 외곽으로 이사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오은영, KOREA.COM)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오은영, KOREA.COM)


이주영



내 모성은 왜 이럴까"... 애통령이 선물해준 '여백'





이 책을 읽은 건 소아과 바닥에 널브러져 떼를 쓰는 아이 때문이었다.
아이는 생후 18개월이 되자 '엄마 바나나 먹고 싶어요' 등 기본을 갖춘 문장을 말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온몸으로

자기주장을 관철하려 했다.

마트에서 발견한 바나나를 당장 손에 쥐여 주지 않으면 바닥에 누워 브레이크댄스를 추듯 구르는 식이다.

그날 소아과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급한 일정이 있어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가야 하는데, 정수기에서 물 떠 마시기에 재미가 들린 아이는 돌아가기 싫다고 뻗댔다. 내가 납치하는 양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우는 것으로 모자라, 엉덩이를 뒤로 빼고 상체를 뒤로 젖히며 유모차에 안 타려고 기를 썼다.


 반값등록금 시위를 하다 경찰에 연행되는 대학생들이 부당한 처사에 저항하는 듯이.
나는 집에 가야 했다. 협조하지 않는 아이에게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만해!"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숱한 육아서적과 기사, 방송에서 들은 게 있었다.

'아이에게 욱하거나 때리면 정서적으로 상처를 줄 수 있다.'
'말로 화를 설명해라. 소리를 지르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건 비교육적이다.'

스스로 해결해야 할 감정을 아이에게 푸는 부모만큼은 되고 싶지 않았다.

이미 목젖까지 차오른 화를 이 악물고 참았다. 남아 있는 체력을 바닥까지 긁어 힘으로 아이를 유모차에 앉힌 후 재빨리 병원 건물에서 벗어났다.

집에 가자마자 남편에게 애를 안겨주고 침대에 누웠다. '잘 참았어' 하고 나 자신을 다독이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자아가 마구 크는 아이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흔들리는 모습이 한심했다.
아이만 낳으면 신사임당 되는 줄 알았는데...

아이와 서점에 놀러 간 어느 날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육아·교육 분야 진열대를 둘러봤다.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가 눈에 들어왔다. 이전에도 서점 갈 때마다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봤던 책이지만 흘깃 째려만 보고 사진 않았다.

일부 육아 서적들처럼 저마다의 사정이나 삶의 맥락은 고려하지 않은 채 '이렇게 해'라고 훈계하는 책일까 봐 두려웠다. 그런 책들은 괜히 읽으면 아이를 향한 죄책감만 커질 뿐이었다.
이날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이거라도 읽어봐야 싶었다. 육아가 뜻대로 안 되는 부모 앞에 나타나 자상하면서도

엄격한 눈빛으로 솔루션을 제시하는 '애통령' 오은영 박사의 책 아니던가. 그에게는 왠지 답이 있을 것 같았다.
  
책에는 원하던 정보가 있었다.

 연령대별 훈육법과 아이가 못 참고 떼쓸 때의 대응법이 구체적으로 제시돼 도움을 얻었다.
육아 정보가 담긴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꿀팁'에 감동한 게 아니었다.

엉뚱한 대목에서 얻은 뜻밖의 조언이 마음의 족쇄를 풀어줬기 때문이다.

오은영 박사는 부모의 육아가 힘든 이유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하나는 연습이 없어서, 또 하나는 끊임없이 나를 내주어야 하는 과정이어서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를 내준다는 것은 더 사랑해 주고, 더 이해해 주고, 더 참아주는 것이다.

나의 시간을 아이에게 내주고, 나의 체력을 아이에게 내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렵고 잘 안 되는 사람이 있다."





 
한 아파트 놀이터에서 어린이와 부모들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중앙포토]


한 아파트 놀이터에서 어린이와 부모들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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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울고 반성하고 되돌아보며 훈련으로 능력을 쌓고 정으로 사랑을 키워가는 일. 개인의 욕심과 엄마의 책임감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하는 마음. 그게 나의 모성이었다.



 매일 울고 반성하고 되돌아보며 훈련으로 능력을 쌓고 정으로 사랑을 키워가는 일.

개인의 욕심과 엄마의 책임감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하는 마음. 그게 나의 모성이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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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였다. 가끔 마음 어딘가에서 '나를 빼앗기고 있다'는 생각이 튀어나와 흠칫 놀라곤 했다. 유독 체력과 시간이 부족할 때 그랬다.

육아 때문에 잠도 편하게 못 자고, 운동도 편하게 못 하고, 여행도 못 가고, 영화관 나갈 여유도 없고….

아이 때문에 못 하게 된 것만 자꾸 떠올랐다.

부모가 되면 자연스럽게 희생이란 게 되는 줄 알았다.

친정엄마에게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그렇게 배우고 들어오며 자랐다.

아이만 낳으면 저절로 신사임당이 될 거라고, 출산의 순간 모성이 100% 이상 발휘돼 아이에게 한없이 배려하고

자애로운 엄마가 돼줄 거라고 믿었다.

모성은 본능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아이는 부모의 체력과 시간으로 자란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생각보다 나는 나를 잘 포기하지 못했다.

편하게 먹고, 푹 자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나를 유보하는 게 쉽지 않았다. 불완전한 생명체를 지켜야 한다는 두려움, 수면 부족에 따른 피곤함과 짜증이 밀려올 때면 책임감을 쥐어짜 내 극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매일 울고 반성하고 되돌아보며 훈련으로 능력을 쌓고 정으로 사랑을 키워가는 일. 개인의 욕심과 엄마의 책임감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 하는 마음. 그게 나의 모성이었다.

엄마로서 내어주는 일 역시 숙련 노동과 비슷해서 초보인 시절에는 늘 한계에 부딪히는 게 당연했다.

내어줄 수 있는 만큼만 내어주기

오은영 박사는 나를 내어주는 일이 힘들면 감정조절이 잘 안 되고, 위태로운 감정이 계속되면 순간적으로 욱할 확률이 높다고 지적한다.


그런 부모를 위한 해법 중 하나로 '언제나 아이를 최우선으로 대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아이에게 내어줄 수 있는 만큼만 내어주라는 뜻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을 넘어 아이를 완벽하게 키우려고 애를 쓰면 반드시 탈이 나게 돼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욱하고 후회하는 엄마들을 보면 평소에는 아이에게 과도하게 잘한다. 아이가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하면 원하는 대로 계속 읽어준다. 다섯 권만 읽어 줘도 될 것을 열 권 넘게 읽어 준다. 입에서 단내가 나고 목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다 별안간 '벌써 몇 번째야? 좀 그만해. 두 권만 읽기로 했잖아' 하면서 버럭 화를 내 버린다.


 이러면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 효과가 없다. 오늘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 전해진 긍정적인 영향이 자기 전에 책을 읽어

주면서 뱉은 욱으로 마이너스가 돼 버린다.
유기농 재료만 골라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서 먹이고, 공부도 가르쳐주고, 그림책도 재밌게 읽어 주고, 좋다는 체험

 학습도 데리고 다닌다.


뮤지컬도 관람시켜 주고, 박물관도 데리고 간다.

그러다가 한번 욱하거나 아이를 때리거나 하면 아이에게는 결국 마이너스다."


돌이켜보면 워킹맘이 되고서부터 내 육아는 무리의 연속이었다.

 부모로서 낮 동안 함께해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아이와 있을 때는 100% 이상으로 최선을 다하려 했다.

퇴근 후 체력이 바닥 나 입에서 단내가 나는데도 방긋 웃으며 인형극놀이를 무한 반복하고, 회사가 멀어 동이 트기 전에 출근해야 하는데도 새벽까지 아이를 위해 반찬을 만들었다.


 주말에는 평일에 못 놀아준 만큼 함께 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피곤함을 무릅쓰고 온종일 박물관으로, 놀이동산으로

 종횡무진 움직였다.

나의 갸륵한 노력을 아이는 당연히 알아주지 않았다.

 반쯤 감기는 눈을 부릅뜨고 자정까지 놀아줬는데도 안 잔다고 소리 지르고, 새벽에 잠 안 자고 반찬을 만들어줬는데도 '밥 먹기 싫다'며 뱉어버리고, 즐겁게 놀자고 놀이동산에 데려갔더니 뜻대로 안 된다고 바닥에서 김밥 말 듯 구르고…. 그럴 때면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 억울, 허무, 실망 등의 감정이 욱하고 치민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너는 도대체 왜 그래?'


오은영 박사는 "최선을 다하는 것은 좋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육아는 장기전이기 때문에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라는 뜻이다. 그는 단 한 권이라도 체력이 허락하는 만큼만

기분 좋게 읽어 주는 육아법이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훨씬 좋다고 본다.

"스무 번 중에 열아홉 번은 친절한 엄마인데 한 번은 광분한다면, 차라리 그 열아홉 번을 너무 애쓰지 않는 것이 낫다. 그리고 그 한 번을 안 하는 것이 낫다. 그게 아이한테는 훨씬 더 이롭다.

열아홉 번 애쓴 것이 다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애를 쓰는 것보다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는 한 번을 안 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아이를 키울 때도 상위레벨이 있다. 아이에게 절대 욱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육아의 가장 상위 레벨의 가치다.

아무리 시간과 돈, 체력을 들여서 최선을 다해도, 부모가 자주 욱하면 그 모든 것이 의미가 없다. 좋은 것을 먹여 주고 보여주는 것보다, 욱하지 않는 것이 아이에게는 백배 더 유익하다."


지금의 나는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아이를 위해 체력과 시간을 쓴다.

반찬을 만들기 힘들 때는 유아식 배달을 신청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아이와 일찍 잠들려 한다(아이가 협조를 안 하는 게 문제지만...).

무리하는 육아에서 벗어나자 감정조절도 한결 수월해졌다. 여전히 아이는 자기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울며 떼를 쓴다. 그럴 때면 아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미안하지만 이만큼만 해줄 수 있어' 하고 양해를 구한다.

 아이에게 모든 걸 완벽하게 해주겠다는 목표치도 내려놨다. 때로는 좌절도 겪고 안 되는 것도 있다는 현실을 아는 게 아이의 교육에도 좋다는 생각이다.

몸이 덜 힘들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아이가 악을 쓰며 울고 사람 많은 데서 데굴데굴 굴러도 비교적 침착하게 대응

할 수 있게 됐다.


그런 상황에선 여전히 머리가 새하얘지긴 하지만 '아직 모르는 아이니까 하나씩 가르쳐줘야지'라며 기다려주는 게

가능해졌다.
내려놓아야 내어줄 수 있는 것. 내가 생각하는 육아다.










 사표를 고민하기전에 따져봐야 할 것들


ⓒ ⓒ jadlimcaco, 출처 Unsplash




 사표를 고민하기전에 따져봐야 할 것들






 




일도 너무 하기 싫고, 출근하기도 싫고, 아이까지 아프고, 사표가 유난히 눈앞에 어른거리는 오늘. 마침,

네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어. '사표'쓰고 싶다고. 피식, 웃음이 났지. '사실은 나도'라는 말이 올라왔지만, 같이 사표

쓰러 가자고 할 수는 없었어. 알고 있을 거야. 쉽게 쓸 수 없다는 것을.

사표는 사실 직장인의 로망이지. 퇴

사 버튼을 누르는 마지막 순간까지 다른 이에게 보이지 말아야 할 '히든카드'이기도 하고….

'사표 낼까요? 말까요?'라고 누군가에게 질문하면 '사표 내세요'라고 말해주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점쟁이한테 가도 마찬가지야. '사표' 내지 말고 최대한 버티는 것. 누구나 그렇다는 것이 뻔한 결론이지.

좀 힘 빠지는 이야기인데, 오늘은 그 힘 빠지는 이야기를 좀 다르게 이야기해보려 해.




워킹맘이 진짜 사표를 쓰고 싶을 때

한번 생각해보자. 워킹맘이 가슴속에 품었던 사표를 진짜 꺼내고 싶은 때는 언제일까?

아이가 아플 때? 아이 학교 행사 때? 아이 봐줄 사람이 없을 때?

글쎄. 나의 경우는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할 때였어. 승진에서 누락되거나, 내가 일한 것만큼 평가를 받지 못할 때….

내가 이 조직과 맞지 않는 것은 아닐까?

혹시 나도 월급도둑인 건가? 뭐 그런 비루한 생각이 들 때 정말로 사표를 내고 싶더라.

사실, 아이가 아플 때도 사표가 생각나긴 하는데,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할 때만큼 간절하지는 않았더라고.

평가가 좋지 않으면 옆 사람과 비교를 하게 돼. '쟤는 나보다 평가가 좋네?',

 '쟤는 운이 좋아서 평가가 좋았나?' 뭐 그런 생각을 하는 거지.

내가 일을 못해서가 아니라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때 사표 생각이 나더라.

내가 진짜로 평가를 낮게 받아야 했던 이유를 되돌아볼 여유는 나지 않아. 왜 그런 거 있잖아.

우는 아이 떼어놓고 나와서 하는 일인데, 결국 회사에서까지 인정받지 못하면 '나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지?'

그런 생각이 들어.

평가가 낮게 나오던 날, 갑자기 아이들 얼굴이 떠오르더라. 야근했던 순간들, 주말에도 일하러 나왔던 순간들,

 열이 펄펄 나서 엄마를 찾는데도 그냥 출근길에 올랐던 순간들,

 그리고 나서 저녁에 퇴근하면 웃어주던 아이들 얼굴 말이야.

그날, 아이들이 생각나서 울면서 퇴근을 했어. 그 눈물의 의미를 무엇인지 잘 설명을 못하겠더라. 그냥 서러웠어.

누군가는 평가라는 것이 돌고도는 것이니 괜찮다 라든가, 언젠간 너를 알아줄 거야 라고 위로하지만, 잘 위로가 안돼. 나를 알아주는 곳으로 가고픈 생각이 굴뚝같은 그런 순간이 오더라.

나를 알아주는 곳이 다른 회사면 오히려 나을지도 몰라. 사실 순간적인 감정으로 이직을 알아보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자리를 찾기는 어려워. 이직이라는 것이 철저하게 준비도 해야 하고, 더 나은 자리가 지금보다 워킹맘을 배려해주리라는 보장은 없거든. 또 새로운 조직에 적응하려면 어느 정도는 올인 해야 하는 각오도 필요하고.

내가 아는 한 동료는 욱하는 감정으로 다른 회사 면접을 봤는데, 면접관이 이런 질문을 했대.

"아이는 누가 돌봐주나요?". 아, 나름 경력 10년이 넘은 IT 전문가인데, 면접 질문이 '아이는 누가 돌봐주나요?'라니… 남자라면 그런 질문을 했겠어? 또 순간 욱했다더라구.

결국, 그 동료는 이직을 포기했는데, 이직포기의 결정적 사유가 그 면접질문 때문은 아니었어.

그 회사가 야근이 많기 때문이었어. 야근도 싫고, 거기에 아이 키우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도 힘들 것 같다는 것도 이유였지. 참 쉽지 않아.


그 다음으로 생각나는 곳이 바로 '집'이야. 이 기회에 '집에서 차라리 애나 볼까?'하는 거지. '집에서 차라리 애나 볼까' 하는 생각은 애 보기가 쉬워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야. 알잖아.

애 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육아만 한다고 해서 기똥차게 잘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아.

다만, 워킹맘으로 살면서 아이와 일, 두 가지 다 챙기지 못했으니 하나에라도 집중하면 좀 낫지 않을까 하는 거지.

일과 육아, 두 가지를 하면서 동동거리는 것보다 '여유'라는 게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돼. 여유와 사표를 맞바꾸고 싶은 시점에 아이가 있더라고.

생각했지. 지금 사표를 써야 하는가, 고민을 말이야. 사표…

쓰고는 싶지만, 쉽게 쓸 수는 없어. 당장 아파트 대출금도 갚아야 하고, 아이들 학원비며, 보험금이며, 양가 용돈이며.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만 계산해도 사표는 쑥 들어가 버려. 그러면서 갑자기 서글퍼져.

 다음날 다시 출근을 해야 하는 일상인 거야. 이렇게 일상을 버텨내야 하는데,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나는 사표를 쓰고 싶을 때마다 이렇게 생각해. 지금부터 딱 100일만 버텨보자



 나는 사표를 쓰고 싶을 때마다 이렇게 생각해. 지금부터 딱 100일만 버텨보자



ⓒ unsplash 






 사표를 고민하기전에 따져봐야 할 것들






힘든 순간을 버텨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멀리 보지 않는 거야. 멀리 보면 지루해. 당장 숨이 턱까지 차서 힘든 사람에게 산 정상이 저기라고 말해봤자 먹히지 않아. 그 사람에게 필요한 건 당장 되돌아갈 수도 있는 전환점이 필요한 거야. 너무 크고 멀리 있는 목표가 아니라, 한 걸음만 더 가면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건 큰 위로가 되는 법이거든.

 그럼 조금은 힘을 낼 수도 있어.

나는 사표를 쓰고 싶을 때마다 이렇게 생각해. 지금부터 딱 100일만 버텨보자.

100일 후에도 정말 죽을 것 같이 힘들고, 지금처럼 사표 내는 것에 변함이 없다면, 그때는 사표를 내는 거야.

그리고 100일이 다가와. 그런데 그때도 힘들지만 사표를 낼 용기는 여전히 없어. 그럼 다시 100일을 연장하는 거야.

'100일만 다시 생각해보자. 그때도 죽을 것 같이 힘들면 정말 사표 내는 거야!'.

그런데 마음이란 게 말이야. 물처럼 흘러가버려. 공기처럼 흩어져. 시간이 지나고 흘러가다 보면 마음에 내성이 생기기도 하고, 상황이 변하기도 해서 그냥 또 다니게 되더라고. 그렇게 1년을 버티고 났는데도 사표에 대한 생각이 간절하다면, 그땐 정말 사표를 써도 된다고 생각해. 12개월 내내 그 생각만 했다는 것은 무언가 절실히 하고 싶은 것이 있거나, 지금의 조직에서 희망을 발견하지 못했을 확률이 크거든.

내가 아는 동료는 그렇게 2년을 버텼어. 그 2년 동안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는지 옆에서 지켜봤었지.

사실, 난 그 동료가 계속 버텨주길 바랐어. 하지만, 2년이 지난 시점에 그녀는 사표를 썼어. 그리고 말했어.

"정말 시원해.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려왔는지 몰라."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기 위해서 심사숙고했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사표를 쓰고 싶을 때마다 그녀 생각이 나. 지금 그녀는 둘째를 낳고 육아에 전념하고 있지.


그리고 만족하고 있어. 그녀처럼 '사표를 쓴 시원한 맛'은 아직 느끼지 못했지만, 아직 너와 나에겐 시원한 맛을 느끼게 해 줄 시간적인 숙성이 필요할 것 같아.

사표도 준비가 필요해

전환점을 이야기했지? 고지를 앞에 두고, '이 길이 아닌가 봐'하고 뒤돌아설 수 있는 확신이 들려면, 사표를 내 커리어의 끝이 아닌 전환점이 되도록 준비를 해야 해. 준비 없는 사표는 독이 될 뿐이야.

사표를 쓰는 시점에 이직을 하게 되든, 창업을 하게 되든, 혹은 전업맘이 되든 고민의 결과가 나에게 전환점이 된다면 과감해져도 되지. 그러기 위해서는 100일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버티는 동안 준비를 해야 해.

준비의 시작은 일단 실행이야. 책을 읽고, 생각하고, 강의도 들어보고, 정보도 수집하고… 육아하고 일하면서 어떻게

이런 걸 준비하냐고?


천천히 하면 돼. 빨리해야 할 필요가 없잖아. 나에겐 지금 매달 월급을 주는 직장이 있는데, 급하게 서두를 필요가

뭐 있어. 다만, 너무 천천히 준비하다가 페이스를 잃고, 다시 준비 없는 사표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할 뿐, 천천히

가도 괜찮아.

지금의 커리어가 생계를 위한 것이 더 크다면, 플랜 B는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둔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흐뭇한 일이야. 플랜 B가 있다면, 지금의 직장생활에 너무 많은 가중치를 두지 않아도 돼.
회사에서 알면 싫어한다고?


 뭐 어때. 회사는 우리를 언제든지 밀어낼 수 있는 권력자인데, 나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는 거잖아.

관계란 서로 동등한 관계가 되었을 때 오히려 건강해지는 법이야. 회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

그러니 지금 회사는 내가 플랜 B를 설계하는 동안 경제적인 지원을 해줄 든든한 지원군쯤으로 생각하자.

그러니까 우리, 일단 사표는 집에서만 쓰자. 시간이라는 숙성을 거쳐서 사표가 나에게 또 다른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거야. 실패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인생을 멋있게 만들어 줄 전환점 말이야.


회사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속상해할 것도 없고, 순간적으로 욱하는 감정에 휘둘릴 필요도 없어.

위기가 기회라고 하지? 지금 사표가 생각이 난다면, 인생의 플랜 B를 설계할 때가 왔구나, 이런 생각을 하자.
오늘 사표를 쓰고 싶다고 했지? 오늘부터 딱 100일 동안만 버텨보자. 그대의 100일을 응원할게. 그대의 플랜 B도.




ⓒ 고정미








지난 3월 한 제약회사 안과사업실 마케팅 이사로 재취업한 김재중씨(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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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가 희망이다]19세 고졸·40세 경단녀…별다방선 평등해요



일자리 창출 기업① 스타벅스 1만2700명 채용 비결 
나이도 사연도 제각각…스타벅스 매장관리직원 8인 인터뷰
스물셋 고졸 출신 점장에 바리스타로 정년퇴임 꿈꾸는 워킹맘
'챔피언' 된 장애인 바리스타도…차별 없는 스타벅스서 같은 꿈 꿔




[이데일리 송주오·성세희 기자]“스타벅스 직원은 연어 같은 속성을 지녔다.

힘들어 떠났어도 그리워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스타벅스 전국 매장수는 1100여개. 이곳에서 1만3000여명에 달하는 직원들이 커피를 내리고 매장을 관리한다.

 그들이 응대하는 고객 수는 하루 50만 명.

 매일 전쟁 같은 하루가 반복되지만 그들은 항상 웃는 얼굴로 고객을 대한다.  

지난 11일 서울 중구 소공로 스타벅스커피 코리아(이하 스타벅스) 본사에특이한 이력의 매장 관리 직원 8명을 만났다. 스타벅스에서 꿈을 이룬 사람들이다.

그들 가운데는 몸이 불편한 장애인도, 한때 ‘경단녀(경력단절여성)’로 불린 여성도 있었다.


쉰이 넘은 나이에 직급체계가 가장 낮은 바리스타로 근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23세 어린 나이에 열 명 남짓한 점원들을 관리·감독하는 앳된 점장도 보였다. 


그들은 일은 힘들지만 떠나면 그리운 곳이 바로 스타벅스라고 말한다.

그만큼 매력적인 근무지라는 것이다.

그들에게선 ‘나는 스벅인이다’라는 자부심도 느껴졌다.  

김하진(30) 신세계백화점 본점 점장이 대표적인 ‘연어’다.

 그는 2007년 대학 새내기 때 스타벅스와 처음 연을 맺었다.

아르바이트 삼아 시작한 일을 3년이나 했다. 당시 그의 꿈은 교사였다.


김 점장은 “학생들 가르치는 게 좋기도 했지만 임용고시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그만둔 적이 있다”며 “하지만 스타벅스 매장에서 커피를 만들고 고객을 만나면서 즐거웠던 기억이 잊히지 않아 결국 임용고시를 포기하고 2010년

 재입사를 하게 됐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김 점장은 스타벅스에 복귀해 평생의 인연을 만나기도 했다. 첫 매장에서 바리스타와 부 점장으로 만난 박진서(37)

 더 종로점 점장과 2015년 연인 관계로 발전해 이듬해인 2016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스타벅스는 김 점장과 같은 연어의 복귀를 지원하기 위해 2013년부터 ‘리턴맘’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리턴맘 제도는 출산이나 육아 등의 이유로 퇴사했던 점장 및 부점장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재고용 프로그램이다.

지금까지 113명이 리턴맘 제도를 통해 재입사 했다.

리턴맘으로 복귀한 직원은 하루 4시간 근무를 기본으로 하며 원하면 언제든지 풀 근무(1일 8시간)로 변경할 수 있다.

지난해 100번째 리턴맘으로 매장에 복귀한 박선화(40) 일산 탄현점 부점장은 “다시 일을 시작하고 주변의 부러움을

많이 샀다”며 “주말이면 남편이 딸아이 손을 잡고 매장에 오는데, 아이에게 일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뿌듯하다”고 했다. 그는 2007년 임신으로 퇴사를 했다.

 10년 만에 다니던 회사에 복귀한 것으로, 그 자신도 재입사가 가능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늦은 나이에 가정주부에서 바리스타로 제2의 인생을 사는 직원도 있다.

배연주(52) 하남미시점 바리스타는 지난 2005년 스타벅스에 입사했다. 당시 그의 나이 서른아홉 살이었다.


배 바리스타는 “당시 매장에 붙어 있던 모집공고를 보고 점장에게 ‘나이 많은 사람도 뽑느냐’고 물어보니 ‘상관없다’고 해서 지원하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배 바리스타는 자신을 뽑아준 점장에게 아직도 고마움을 느낀다고 했다. 


스타벅스 바리스타 가운데 최고령인 그는 가정생활과 병행을 위해 바리스타를 고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리스타는 하루 5시간만 근무하기 때문이다.


 배 바리스타는 “중요한 수술을 끝내고 일이 하고 싶어서 일주일 만에 매장에 출근한 적도 있다”며 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최근 목표가 하나 생겼다.

바리스타로 정년퇴직하는 것이다.  








스타벅스는 열린채용을 바탕으로 다양한 배경의 사람을 채용하고 있다. 최고령 바리스타로

 정년 퇴임을 꿈꾸는 워킹맘, 최연소 지역 매니저를 꿈꾸는 고졸 점장 등이 나올 수 있는 이유다.

 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전은지 바리스타, 박진서 점장, 김하진 점장, 가도희 점장,

배연주 바리스타, 박선화 부점장, 정현정 수퍼바이저, 최예나 수퍼바이저.


(사진=노진환 기자)




스타벅스에서 근무하며 꿈이 바뀐 예도 있다.

최연소 점장인 가도희(23) 주얼리시티점 점장과 정현정(19) 동대구DT점 수퍼바이저는 한때 각각 유치원 교사와 여군을 꿈꿨다.

 가 점장은 스타벅스에서 근무하기 위해 다니던 학교도 그만뒀다.


가 점장은 “선생님이 꿈이었는데 수퍼바이저가 된 후 바리스타를 교육할 기회가 생기면서 교육 자료를 만드는 재미에 빠져 학교를 그만뒀다”며 “친구들에게 스타벅스 입사 제안을 자주 하는 편”이라며 웃었다.

 친구 6명은 실제로 스타벅스에 지원해 일부가 현재도 근무하고 있다. 가 점장은 고객에게 감동 받은 일화도 전했다.


“매장을 옮겨 근무하는 데 같은 날 두 명의 고객이 자신을 알아봤다”며 “고객에게 감동을 줘야 하는 서비스직이지만

그날만큼은 반대의 경험을 했다”고 했다. 이날의 기억으로 그는 또 다른 꿈을 꾸게 됐다.

최연소 점장 타이틀에 이어 지역의 점장들을 관리하는 ‘지역 매니저’가 되는 것이다.  

정 수퍼바이저는 특성화고를 다니다 스타벅스의 진로교육 재능기부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스타벅스 입사를 결정했다.

 체험 위주의 교육 내용에 깊은 감명을 받아 바리스타로 시작해 수퍼바이저, 점장을 목표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 정 수퍼바이저는 “가능한 한 오래 다니고 싶은 직장”이라며 스타벅스에 대한 애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스타벅스는 장애인들의 사회 진출 통로 역할도 한다.

 전담직원까지 두며 장애인 고용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그들이 편하게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회사의 배려다.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최예나 수퍼바이저(26, 건대스타시티점)는 지난해 스타벅스가 진행한 ‘장애인 바리스타 챔피언십’에서 1위를 차지했다.

최 수퍼바이저가 스타벅스와 연을 맺은 과정은 특이하다.


개인 커피숍에서 일을 하다가 사장이 스타벅스에서 잠시 일을 배우고 오라고 해서 지원한 게 계기가 됐다.

 그는 “당초 6개월만 일을 하려고 했는데 어느덧 3년째 근무하고 있다”며 웃었다.

아울러 전은지 바리스타(30, 광주쌍암점)는 전체 직원 가운데 10명가량만 선발하는 인센티브 트립에 선정돼 스타벅스

1호점이 위치한 시애틀 본사를 다녀오기도 했다.

인센티브 트립은 매장 직원 가운데 실적 상위 0.1% 안에 들어야 선정될 수 있다.


전 바리스타의 다음 목표는 한 단계 직급이 높은 수퍼바이저다. 듣는 것과 말하는 것이 불편한 그는 수화로 “요즘은

쉬는 날마다 수퍼바이저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8명의 직원들은 주변에 스타벅스 입사 추천을 자주 한다고 했다.


 자신의 일은 물론 직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회사 관계자는 “스타벅스 직원 중에는 형제, 자매, 사촌, 친구 등

관계가 특히 많다”며 “가족적인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이유 중의 하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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