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스타트에서 은메달을 딴 뒤 관중들 앞에서 사죄의 뜻으로 큰절을 하는 김보름.
[중앙포토]

올림픽 피날레… 덮을 수 없는 연맹·협회 '그림자'
[스포츠월드=강릉 권영준 기자] 굵은 땀방울로 밝은 빛으로 어두운 그림자를 지워야 한다. 한국 동계 스포츠 발전의
흥망성쇠가 여기에 달렸다.
‘2018 평창올림픽’이 17일간의 전력 질주를 마쳤다.
한국 선수단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5개, 은메달 8개, 동메달 4개로 종합 7위에 오르는 성과를 냈다.
결과물에서는 애초 목표에 미치지 못했지만, 의미는 더 큰 가치를 남겼다.
그동안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에 메달을 획득해 온 ‘편중 현상’에서 벗어나 다양한 종목에서 메달이 나왔다.
스켈레톤, 봅슬레이, 스노보드, 컬링 등 썰매와 설상 종목에서 메달을 획득했다.
이 모두 한국 동계 스포츠 사상 최초로 이룬 쾌거이다.
또한 윤성빈(25·스켈레톤) 이상호(24·스노보드) 임효준(22) 최민정(20) 황대현(19·이상 쇼트트랙) 김민석(21) 정재원
(17·이상 스피드스케이팅) 등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까지 신예 선수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4년 뒤 베이징
동계 올림픽 기대감도 커졌다.
4년 동안 피와 땀을 흘리며 준비한 선수단과 코칭스태프의 노력으로 ‘성공 올림픽’의 한 페이지를 채우며 평창올림픽의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그러나 이 피날레 속에 여전히 걷히지 않고 자리 잡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는 올림픽 이후 반드시 지워야 한다.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두드러진 문제점은 바로 종목별 연맹과 협회의 행정력이었다. 업무에 허점을 남기며 논란을
낳았다.
그리고 논란 이후 고위 관계자 및 임원은 뒤로 빠진 채 리더십까지 결여된 모습을 보였다.

우선 대한빙상연맹은 올림픽 직전 ‘규정 오역’으로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의 노선영의 출전 여부 논란을 일으켰고,
곧이어 쇼트트랙 선수 폭행 파문이 일어났다.
대회 중에도 ‘왕따 스캔들’부터 경기 당일 아침 임원 연설 논란이 일어났다.
그러면서 파벌 문제도 수면 위도 드러났다. 이 가운데 연맹 임원은 그 누구도 나서서 이 파장을 잠재우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오로지 선수들의 피와 땀으로 일군 메달로 덮으려는 모습이었다. 그들의 뒷짐은 고스란히 선수가 짊어져야 했다.
대한스키협회 역시 올림픽 출전권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다. 이 논란을 깔끔하게 해결하지 못한 채 올림픽을 시작했다. 피해를 받은 선수는 추운 날씨 길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눈물을 흘렸다.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도 올림픽 4개월을 앞두고 회장 선거로 잡음을 냈고, 공정하지 않은 국가대표선발전으로
잡음을 냈다. 대합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은 국가대표 자동 선발 규정이 있다.
엄연히 말해서 특혜이다. 이전 국가대표 선수는 국가대표선발전에 출전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국가대표에 선발된다는
뜻이다.
국제대회 성적 거두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누가 이 종목 선수로 뛰어들겠는가. 어차피 국가대표는 정해져 있는 데 말이다.
규정 보완이 절실한 시점이다.
‘국민 영미’를 탄생시킨 컬링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대한컬링경기연맹의 올림픽을 앞두고 내분을 일으키며 대한체육회의 관리단체로 지정됐다.
레드카드를 받았다는 뜻이다. 이에 행정 공백이 발생했고, 선수단은 제대로 지원받지 못했다.
연맹의 분열로 선수단만 고스란히 피해를 받았다. 컬링연맹은 올림픽 이후 회장 선거를 치를 예정인데, 이번 여자
대표팀을 지원한 유력 인사가 후보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소문이 올림픽 현장에서도 파다하게 퍼진 상태이다.
사실상 동계 종목 모든 단체가 파벌과 내분, 그리고 부실한 행정력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2016 리우 올림픽에서 찬사를 받은 대한양궁협회는 공정하고 치열한 국가대표 선발전, 출신 학교가 의미 없는 환경,
그리고 적극적인 선수 지원, 협회 내부 시스템 안정화 등 이루며 세계 최고의 선수를 연일 배출하고 있다.
하지만 동계 스포츠에는 본보기가 될 만한 단체가 없어 보인다.
이러한 어두운 그림자는 성공 올림픽이라는 피날레에 묻혀서는 안 된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국 동계 스포츠가 더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young0708@sportsworldi.com / 사진=OSEN
일부 선수 '따로 훈련' 공방도
지난 19일 여자 팀 추월 준준결승에서 김보름, 박지우는 뒤쪽의 노선영과 멀찌감치 떨어진 채 질주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사태는 국민들의 공분을 사 '김보름, 박지우 선수의 자격 박탈과 적폐 빙상연맹의 엄중 처벌을 청원합니다'라는
김보름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고 있지만 빙상연맹의 오랜 파벌주의가 이번 사태의 본질이라는 평가가 많다.
빙상연맹의 파벌 다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6년 토리노에서는 한국체대와 비 한국체대 출신이 나눠 훈련을
김보름은 24일 여자 매스스타트에서 은메달을 딴 뒤 관중에게 큰절을 했다.
▲ 사진=뉴시스
상처받은 김보름? 노선영?… 도대체 빙상연맹은 어디 숨었나
[스포츠월드=강릉 권영준 기자] 김보름이 피해자일까? 아니며 노선영일까. 이것을 명확하게 나누는 것이 중요할까.
이미 국민 모두가 상처받았는데 말이다. 이런 가운데 대한빙상연맹 고위 관계자 및 임원은 어디로 숨었을까.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간판 김보름(25·강원도청)은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19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올림픽’ 여자 팀추월 준준결승에 노선영(29·콜핑팀)
박지우(20·한체대)와 함께 나섰다.
그런데 이날 경기에서 조직력에 치명적인 허점을 드러내며 7위에 머물렀다.

이날 경기에서 김보름과 박지우는 마지막 주자인 노선영을 떨어트린 채 스퍼트를 시작했고, 결국 노선영만 뒤에
떨어져 홀로 결승선을 통과해야 했다. 특히 김보름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노선영의 부진을 지적하면서 경기력의 부진을 개인의 책임으로 미뤘고, 이 과정에서 활짝 웃어 국민의 공분을 샀다.
이는 ‘왕따 스캔들’로 번지면서 파장은 일파만파 커졌다. 김보름은 비난에 쌓여야 했고, 노선영은 왕따 사건의 피해자가 됐다. 여기에 20일 대한빙상연맹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면서 준준결승전 당일의 상황을 설명했지만, 노선영이 반박
인터뷰를 하면서 논란을 커졌다. 이 과정에서 빙상계의 오랜 관습으로 남아있는 파벌싸움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눈물을 흘렸던 김보름은 사실상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투혼을 발휘해 4년을 준비한
매스스타트에 집중했다.
이번 시즌 체력이 떨어지고, 부상 여파에 따른 컨디션 난조로 힘겨운 싸움을 하면서도 고도의 집중력과 투혼으로
은메달 획득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그리고 고개숙여 사죄했다.
그러면서 김보름에 대한 비난 여론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김보름도 파벌싸움의 피해자라는 것도 새롭게 등장했다.
특히 이날 매스스타트 경기 직후 예비 선수였던 노선영 ‘측’은 경기가 모두 끝난 후 세간에 있었던 논란에 대해 입을
열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나 실제 노선영은 이날 빙상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자, 여기까지 노선영과 김보름 사태의 흐름이다.
아직 정확하게 왕따설이 팩트로 밝혀진 것은 없다.
코칭스태프와 노선영이 어떤 커뮤니케이션을 나누었는지도 모른다.
노선영은 대회가 끝나면 모든 것을 밝힌다고 했다. 기다림이 필요하다.
김보름은 국민에 사죄했으니, 그 인터뷰 매너에 대해서 만큼은 노선영에게 직접 사과해야 한다.
현 시점에서 누가 잘했고, 못했고를 나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김보름과 노선영을 두고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 접근해서도 안 되고, 포커스가 여기에 맞춰져서도 안 된다.
이미 팀 추월 경기는 엉망이 됐고, 이 과정도 지저분했다.
그리고 진짜 책임을 져야 할 대한빙상연맹 고위 관계자 및 임원은 뒤로 쏙 빠졌다.
이 과정에서 진짜 상처를 받은 것은 국민이다. 포커스는 여기에 맞춰야 한다.
우리가 진짜 주시해야 하고, 사과를 받아야 할 대상은 대한빙상연맹의 책임자들이다.
애초 국제빙상연맹의 규정을 오역해 노선영의 올림픽 참가가 무산된 점. 러시아 선수의 불참에 따라 극적으로 출전이 성사 됐으나, 이 과정에서도 나온 잡음. 그리고 코칭스태프의 무리한 목표 설정과 전술 지시. 논란 발생 후 그 누구도
진두지휘하며 전면에 나서지 않은 점까지 모두 책임져야 하고, 국민에 사죄해야 한다.
포커스는 김보름 노선영이 아니다.
대한빙상연맹의 고위 관계자 및 임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young0708@sportsworldi.com / 사진=

‘빙상 대통령’ 전명규 두려워 입 다문 현직 스케이트맘
백철기 스피드스케이팅 감독 “이승훈 밀어주기 없다”
“우리 아들은 ‘탱크’(페이스메이커)였어요. 처음부터 빠르게 달려 나가 다른 선수들 힘을 빼놓는 역할을 했죠.
앞에 서면 공기 저항을 많이 받기 때문에 체력이 금세 떨어져요.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우리 아이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뒤로 처지죠.
그 사이 체력을 비축한 이승훈이 치고 나가는 거예요. 폭발적인 스피드로 금메달을 따죠.
그런데 아직도 그 방식으로 하고 있더라고요.”
지난 24일 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매스스타트 경기를 본 A씨는 씁쓸한 마음에 쉽게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A씨는 전직 ‘스케이트맘’이다. 그의 아들은 스피드스케이팅 유망주였지만 21살 때 스스로 운동을 그만 뒀다.
자정쯤 시작된 A씨와의 통화는 1시 30분이 훌쩍 넘어서야 끝났다.
24일 경기는 이번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마지막 경기였다. 이승훈(30·대한항공), 정재원(17·동북고)이 출전했다.
정재원이 체력을 소진해가며 앞에서 달린 덕에 이승훈은 금메달을 땄다.
이른바 ‘페이스메이커’ 작전이었다.
정재원은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희생이라는 단어보다는 팀 플레이였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관련기사 클릭: ‘금빛 조력’ 막내 정재원… “희생요? 팀플레이였죠”)A씨는 “정재원도 4년 뒤에 어찌될 지 몰라요.
그때 가봐야 아는 일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A씨의 아들은 초등학교 저학년때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주니어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고등학생이 되자 빙상계의 두 산맥인 한국체대와 단국대
코치들이 지방에 있는 A씨를 찾아와 입학을 권유했다.
“서로 우리 아들 보내달라고 제안했어요. 아무래도 국가 지원 받쳐주고 스케이트 잘 타는 애들이 가던 한체대에 보내
기로 했어요. 그때 권모 코치가 뭐라 했는지 아세요?
‘우리 아들 데려가서 영광이라고, 훌륭한 선수 만들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랬던 녀석이 1년도 안 돼 ‘엄마, 나 못하겠어. 빙상장은 쳐다보기도 싫어’라고 하는 거예요.
피가 거꾸로 솟지, 안 솟아요?”

남자 팀 추월 대표팀 -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팀추월 준결승
경기를 하루 앞둔 20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이승훈, 정재원,
김민석, 주형준 선수가 훈련을 하고 있다.
2018.2.20 연합뉴스
A씨는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가 몰려있는 시즌인 겨울이 되면 초등학생 아들을 서울에 올려 보냈다.
훈련비용, 장비 값, 체력 보충에 좋다는 약도 지어 먹이다보니 돈이 만만치 않게 들어갔다.
시합이라도 있는 날이면 아들 경기를 보려고 꼭두새벽같이 집을 출발해 자정이 넘어 집에 돌아오는 일이 잦았다.
다른 식구들에게 신경 써주지 못한 게 평생 마음의 빚이다. 그래도 평창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겠다는 목표로 얼음판을 지치던 아들을 말릴 수는 없었다. 그랬던 아이가 갑자기 운동을 그만 두겠다고 통보했다.
“이모 코치 등 코치진의 잘못된 지도로 아이가 완전히 망가졌어요.
잘 하는 선수들과 함께 훈련한다고 했을 때 처음엔 그만큼 실력이 늘겠지 기대했어요.
그런데 6개월 동안 애 몸 상태는 보지도 않고 죽어라 훈련을 시킨 거예요. 힘들면 좀 쉬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는
분위기였대요. 몸이 과부하가 걸리는 걸 알면서도 시키는 대로 해야 했던 거예요.”
한체대 입학 전, 국제 대회에 나간 A씨의 아들은 이승훈의 탱크가 돼야 했다.
“작전은 단순했어요. ‘이승훈 4관왕 만들기’ 아들에게 주어진 미션이었죠. 매스스타트가 국제경기 종목으로 채택된 지 얼마 안 됐던 때였어요.
앞에서 치고 나가는 선수가 한두 명 있는데, 그 간격이 너무 벌어지면 뒤에서 체력 아끼고 있던 이승훈도 나중에
따라잡기 힘들어져요.
2위권 그룹에서 1위와의 격차를 따라붙어주는 역할이 필요했던 거예요. 우리 아들은 그걸 몸이 부서져라 했어요.”
A씨는 그동안 쏟아 부은 노력과 투자가 너무 아까워 아들의 마음을 돌이키려 애썼다.
하지만 결국 한체대 2학년을 마친 뒤 그만뒀다.
한체대 교수는 “스피드스케이팅이 하기 싫으면 쇼트트랙으로 전향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코너 연습을 위한 쇼트트랙도 곧잘 타던 아들이었다. 그러나 A씨는 아들의 한 마디에 깨끗이 마음을 접었다.
“엄마, 내가 쇼트트랙 가면 거기 애들 끌어주는 거밖에 더 하겠어?”

막판 질주 - 23일 일본 홋카이도현 오비히로 오벌에서 열린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매스 스타트에서 이승훈(맨 왼쪽)이 피니시라인을 향해 전력
질주하고 있다. 이승훈은 이 대회 4관왕을 차지했다.
2017.2.23 연합뉴스
●2011년부터 이승훈 위한 ‘탱크’ 작전 시작
탱크로 사용된 선수는 한둘이 아니다. 쇼트트랙의 경기 방식을 차용한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인 매스스타트는 2011년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게임에 처음 등장했다. 상위권 입상을 위해선 희생조가 필요하다는 게 빙상연맹과 코치진의 생각이었다.
2011년 대회에서는 박석민(26)과 고태훈(26)이 이승훈의 체력 안배를 위해 ‘총알받이’로 나섰다.
16바퀴를 도는 경기에서 박석민과 고태훈은 중후반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레이스를 끌었다.
당시 경기 영상을 보면 “어린 선수들이 얼마나 끌어주느냐에 이승훈의 메달 색이 결정된다”는 해설이 나온다.
이승훈은 두 선수의 도움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효과가 입증된 ‘금메달 제조 작전’은 최근까지도 적용됐다. 지난해 2월 열린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는 이진영
(25·강원도청)이 탱크였다.
이진영은 12번째 바퀴까지 2위 그룹을 이끌며 1위와 간격을 좁혔다.
당시 경기 영상을 보면 1위와 간격을 더 벌리지 말라며 코치진들이 이진영을 향해 “대줘야 해”라고 소리를 지른다.
2~3바퀴를 남기고 체력이 떨어진 이진영을 대신해 김민석(19·평촌고)이 2위권을 이끈다.
마지막 바퀴가 돼서야 후미에 있던 이승훈이 치고 나와 폭발적인 스피드로 1위를 차지한다.
결승선에 들어온 이승훈은 김민석의 등을 두드리며 “고마워. 고생했다”라고 말한다.
이후 2017~2018년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 스케이팅 월드컵 시즌에서는 정재원이 탱크 역할을 맡았다.
지난해 11월 네덜란드 헤렌벤에서 열린 1차 대회와 12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4차 대회에서 이승훈과 정재원은
매스스타트 결승에 나란히 진출했다.

- 23일 일본 홋카이도현 오비히로 오벌에서 열린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매스 스타트에서 이승훈
(오른쪽)이 1위로 골인해 3위로 들어온 김민석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인사하고 있다.
2017.2.23 연합뉴스
헤렌벤 대회에서는 이승훈이 1위, 정재원이 3위로 들어왔고, 솔트레이크 대회에서는 이승훈이 1위, 정재원이 10명
가운데 9위로 들어왔다.
헤렌벤 경기에서 정재원의 스케이팅이 시원치 않자 코치진은 정재원을 향해 “재원이 가. 호흡하라고 호흡”이라며
소리를 지른다.
작전이 생각대로 되지 않자 이승훈은 5바퀴 남긴 시점부터 일찌감치 2~4위권으로 나오는 작전을 편다.
●‘탱크’ 거부하면 국가대표 선발 등에 불이익
탱크를 하기 싫으면 거부하면 되지 않을까. 또 다른 스케이트맘 B씨는 “탱크를 안 하겠다고 하는 순간 찍혀요.
선수는 감히 코치진의 지시를 거부할 수 없어요”고 말했다.
선수 부모들은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팀 추월 후보였던 주형준(27·동두천시청)이 단 한 경기도
나가지 못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B씨는 “한 국제대회 매스스타트 경기를 앞두고 주형준이 이승훈의 탱크가 되는 것을 거부해 전명규 교수 눈 밖에
났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이번 팀 추월에 나가지 못한 것도 괘씸죄일거예요”라고 전했다.
B씨도 “팀 추월 유력한 우승후보였던 네덜란드가 준결승전에서 떨어졌어요.
노르웨이가 올림픽 신기록으로 네덜란드를 이겼고요. 이미 결승에 진출했던 우리 팀은 지더라도 은메달이 확보된 상황이었잖아요. 준준결승부터 한 번도 쉬지 않은 이승훈, 김민석, 정재원 중에 특히 정재원의 체력은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었어요. 대신 주형준을 투입했더라면 금메달을 땄을지도 몰라요.
빙상판 아는 사람들한테 물어보세요. 다들 이상하다고 하죠”고 말했다.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에서도 ‘김보름(25·강원도청) 밀어주기’ 작전을 거부한 선수들이 피해를 봤다는 의혹이 나온다.
삿포로 아시안게임 여자 매스스타트에는 김보름, 박도영(25), 박지우(20·의정부여고) 등 3명이 출전했다.
박도영과 박지우는 김보름 밀어주기에 협조하지 않았다.

- 23일 일본 홋카이도현 오비히로 오벌에서 열린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매스 스타트에서 김보름(8번)이 힘차게 질주하고 있다.
2017.2.23 연합뉴스
일본 선수 2명이 치고 나가 2위 그룹과 격차를 거의 한 바퀴 가까이 벌렸는데도 박도영과 박지우는 둘 다 나서지
않았다.
당시 중계영상과 해설을 보면 “저렇게 되면 김보름이 나중에 따라잡기가 불가능하다.
간격을 좁혀주려면 누가 따라 붙어야 하는 데 아무도 그 역할을 안 해주고 있다.
빨리 대줘야 한다”며 채근하기도 한다.
B씨는 “이 일로 박도영이 연맹의 눈 밖에 났다는 소문이 파다했어요.
그래도 김보름의 탱크는 누군가 해줘야 하니 박지우를 달래 김보름과 함께 훈련시킨 것이라는 말도 있었고요.
박지우가 이번 올림픽 매스스타트 결승에 올라가지 않아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엄마들도 많아요”라고 말했다.
스케이트맘 C씨는 “이런 식이면 누가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겠어요. 아무도 탱크 안 하려고 해요.
그나마 힘 없는 어린 선수한테 ‘다음에는 널 밀어주겠다’는 미끼를 주고 희생양이 되기를 강요하고 있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금메달리스트 스벤 크라머는 동료 위해 페이스메이커로 나섰는데…
A씨는 “일생에 한 번일지도 모르는 올림픽인데 왜 어린 선수들이 그런 희생을 해야 하나요? 선수마다 전성기는
다 달라요.
몸 상태에 따라 20대 초반에 전성기가 올 수도 있고 이승훈 같은 경우에는 30대이지만 앞으로도 계속 잘 탈 수 있는
거예요. 어린 선수에게 일방적으로 팀을 위한 희생을 강요하는 건 더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 23일 일본 홋카이도현 오비히로 오벌에서 열린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매스 스타트에서 김보름(맨 오른쪽)이 동메달을 목에 걸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왼쪽부터 은메달리스트 사토 아야노, 금메달리스트 타카기 미호)
2017.2.23 연합뉴스
B씨는 “매스스타트는 분명히 개인 종목이예요. 팀플레이가 필요하다면 왜 어린 선수들만 탱크 역할을 해야 하나요?
이승훈은 혼자서도 충분히 메달을 딸 수 있는 실력 있는 선수예요.
후배들을 위해서 16바퀴 중에 2~3바퀴를 앞에서 끌어줄 수 있다고요.
그러면 후배도 같이 메달 딸 수 있는 거잖아요.
이번 매스스타트에서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한 네덜란드 스벤 크라머처럼요.
어떻게 한 사람을 위해 나머지가 희생하는 전략이 팀을 위한 거라고 할 수 있나요?
금메달은 나눠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라고 말했다.
C씨의 아들은 팀 추월에서 활약했던 전직 국가대표다.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해 3위 안에 들어 태극마크를 달았다.
하지만 갑자기 다른 선수가 감독 추천을 통해 후보 엔트리에 들어왔다.
C씨의 아들은 갑자기 올림픽 훈련에서 제외됐다.
C씨는 “팀 추월은 3명이 함께 자리를 바꿔가며 한 호흡으로 뛰어야 하는 경기예요.
그만큼 팀 훈련이 중요해요. 그런데 올림픽 직전 사전 준비대회인 월드컵에서 우리 아들 대신 후보 선수를 넣어
연습했더라고요.
국대 선발전을 통해 공식 선발된 선수를 빼고요. 호흡을 맞춰 훈련해 볼 기회조차 없었던 거죠”라고 말했다.
제대로 된 훈련 없이 올림픽에 출전한 C씨의 아들은 메달 획득에 결국 실패했다.
●빙상연맹 경기력향상위원회의 ‘밀실 운영’
도마에선수 부모들은 국가대표 선발을 심의하는 빙상연맹 경기력향상위원회의 밀실 운영이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특정 선수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선발 조항이 갑자기 생기는 경우가 흔했다는 것이다.
C씨는 “연 1회 이상 정기적으로 국가대표를 선발하도록 돼 있지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위를 하면 국가대표 자격을
2년간 유지할 수 있는 조항도 있었어요.
1년 후 국가대표를 미리 뽑아 놓는 꼴이에요.
논란 끝에 지금은 없어졌지만요. 국가대표 선발 전 모든 조항을 공개하라고 연맹에 요구했지만 그때마다 유야무야
됐어요”라고 지적했다.
![[올림픽] 아직은 어색한 사이 - 21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팀추월 경기에 출전하는 한국 대표팀 노선영(왼쪽)과 김보름, 박지우가 트랙을 돌며 몸을 풀고 있다. 2018.2.21연합뉴스 [올림픽] 아직은 어색한 사이 - 21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팀추월 경기에 출전하는 한국 대표팀 노선영(왼쪽)과 김보름, 박지우가 트랙을 돌며 몸을 풀고 있다. 2018.2.21연합뉴스](https://t1.daumcdn.net/news/201802/26/seoul/20180226173604996bfxi.jpg)
[올림픽] 아직은 어색한 사이 - 21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팀추월 경기에 출전하는 한국 대표팀 노선영(왼쪽)과 김보름,
박지우가 트랙을 돌며 몸을 풀고 있다.
2018.2.21연합뉴스
●특정 선수 위한 특별훈련···상대적 박탈감 불러
훈련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국가대표인 노선영(29·콜핑팀)은 지난달
인터뷰에서 이승훈, 김보름, 정재원이 한체대에서 별도로 특별훈련을 받는 등 차별이 심하다고 폭로한 바 있다.
C씨는 “2010년만 해도 선수촌을 이탈해 별도 훈련을 받는 것이 불가능했어요.
기량 향상을 위해서 별도로 육상 레슨을 받게 하고 싶었는데 거절당했거든요.
지금 개인훈련 관련 조항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것 역시 특정 선수에게 특혜를 주기 위한 꼼수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개인 특별훈련을 받지 못한 선수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심하다고 선수 부모들은 전했다.
B씨는 “별도 훈련을 받던 이승훈이 선수촌에 복귀하는 걸 다른 선수들이 무척 싫어해요.
이승훈이 오는 순간 기존 훈련은 모두 없던 게 되고 이승훈 맞춤형 훈련이 다시 시작된다는 거예요.
스피드 스케이트는 굉장히 예민한 운동이에요. 운동 루틴에 몸이 길들어 있는데 확 바뀐 훈련 프로그램을 하게 되면
몸에 무리도 되고 실력이 도리어 깎일 수 있거든요”라고 말했다.
선수 부모들은 특정 선수를 위한 대다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작전, 이를 따르지 않는 선수를 배제하는 관행 등의 이면에 전명규 교수가 있다고 지목한다.

전명규 빙상연맹 부회장 - 전명규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이 17일 러시아 소치
해안클러스터의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훈련하는 스피드스케이팅 이승훈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2014.2.17 연합뉴스
빙상판을 좌지우지한다는 전명규 교수의 존재감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다.
B씨는 “그 사람 눈에 들면 모든 것이 해결돼요. 국가대표 선발, 특별 훈련, 금메달, 실업팀, 스폰서까지 풀 패키지로
제공된다는 거예요.
‘전명규 라인’에 일단 들면 아무 걱정이 없는 거죠. 그러려면 실력도 좋아야 하지만 전 교수 말을 절대 거역해선
안돼요”라고 말했다.
빙상 실업팀 대부분도 전 교수의 “손아귀”에 있다는 게 선수 부모들의 주장이다.
B씨는 “한체대와 빙상 파벌 한 축을 이룬 단국대 계열 코치가 있는 실업팀에 가면 전 교수와 완전 원수지간이 되는
거예요.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한체대 안 보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C씨는 “파벌의 문제를 떠나서 비인기 엘리트 종목이 이런 식으로 키워진 게 문제라는 인식이 공유돼야 해요.
전 교수가 800개의 메달을 만든 제조기라고요? 그 맡에 쓰러져간 개인의 희생은요? 누가 기억이나 할까요?”라고
되물었다.
기자는 현직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2명의 어머니에게 추가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우리 아이는 계속 빙상판에서 운동하고 실업팀도 가야 한다.
행여 피해가 갈까 두렵다”, “우리 아이는 2022 베이징올림픽에 나가야 한다”는 이유였다.
![[올림픽] 기자회견장 앉은 김보름-백철기 감독 - 2018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 추월 경기에서 팀워크 논란이 제기받은 한국 김보름 선수와 백철기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감독이 20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서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2018.2.20 연합뉴스 [올림픽] 기자회견장 앉은 김보름-백철기 감독 - 2018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 추월 경기에서 팀워크 논란이 제기받은 한국 김보름 선수와 백철기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감독이 20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서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2018.2.20 연합뉴스](https://t1.daumcdn.net/news/201802/26/seoul/20180226173605328fzkx.jpg)
[올림픽] 기자회견장 앉은 김보름-백철기 감독 - 2018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 추월 경기에서 팀워크 논란이 제기받은 한국 김보름 선수와
백철기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감독이 20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서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2018.2.20 연합뉴스
B씨는 “그 엄마들도 전 교수와 이승훈 때문에 피해를 봤다는 소릴 입에 달고 살던 엄마들이에요.
빙상연맹과 전 교수의 전횡을 고발하면 자기 아이 다칠까 걱정해서 전면에 나서려 하지 않는 거예요.
왜 그렇겠어요? 국가대표 코치진, 실업팀 코치진까지 다 전 교수의 ‘아바타’일 뿐이에요.
폭로해봤자 전 교수가 꽉 잡고 있는 빙상판 권력을 깰 수 없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못 나서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한국체대·빙상연맹 특별감사 필요” 지적
선수 부모들은 빙상연맹과 한국체대의 개혁을 위해서는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A씨는 “국가대표 선발과 훈련이 특정 개인의 힘으로 좌우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라고
말했다.
스케이트맘이 모인 단체 메신저에서는 이런 우스갯소리도 나온다고 한다.
‘그 나물에 그 밥’인 연맹 인사들 다 쳐내고 밥 데용 코치를 회장으로 앉히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했던 것처럼 아예 외국인이 개혁의 칼자루를 쥐게 하자는 얘기다.
B씨는 “전 교수가 무서워 피해 사실을 얘기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 빙상계에서 ‘#미투’가 일어나려면 정부 당국에서 선수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개별적으로, 아무도 모르게 불러서 일대일로 조사해야 해요.
피해 사례 수집하고 빙상연맹 감사도 해야 하고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신문은 전명규 교수의 반론은 듣고자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아 입장을 들을 수 없었다.
빙상연맹은 백철기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팀 감독과의 통화를 권유했다.
백 감독은 서울신문과 통화에서 “이승훈 밀어주기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관련기사 클릭: [단독] 백철기 감독 “이승훈 밀어주기는 없다”) 백 감독은 “작전은 감독이 짜는 것이고 선수가 동의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백 감독은 일부 선수가 특별훈련을 받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개인 종목 경기력 향상을 위해 감독인 내가 직접
빙상연맹에 요청한 것으로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26일 강원 강릉 올림픽선수촌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대한민국 국가대표선수단
해단식에서 선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올림픽 강국 대한민국, 이젠 ‘체육’ 아닌 ‘스포츠’를
2월19일 이후,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동계 스포츠 종목은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이 됐다.
김보름과 박지우의 국가대표 박탈과 빙상연맹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은 3일 만에 56만 명을
돌파했다.
이처럼 팀추월 선수들과 연맹이 여론의 공분을 산 데는 이유가 있다.
여자 팀추월 예선 경기 막판에 김보름과 박지우는 팀 동료인 노선영을 남겨두고 결승점을 향해 치고 나갔다.
즉, 팀 경기에서 팀워크를 전혀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경기 후 공식 인터뷰에서 ‘7위라는 나쁜 결과가 나온 것은 노선영의 잘못’이라는 투로 말하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
이에 여론은 ‘왕따’와 ‘파벌’이 이 같은 결과의 이면에 있다고 여겨 분노하고 있다.
운동선수와 관련한 인성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도, 또한 빙상계만의 문제도 아니다.
야구계만 해도 지난해 11월 넥센 신인 투수인 안우진이 휘문고 시절 후배를 폭행해 3년간 국가대표 자격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또 한화 출신의 김원석은 소셜미디어(SNS)에서 팬과 대화를 나누며, 구단 치어리더와 이상군 전 감독대행을 비난하고 조롱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에 한화 구단은 김원석을 방출하며 그 책임을 물었다.
프로야구계에서 SNS 논란은 이 건이 처음은 아니다.
이전에도 KT 장성우 등이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
2월19일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준준결승전이 열린 가운데
한국의 김보름, 박지우, 노선영(왼쪽부터)이 경기를 펼치고 있다.
© 2018평창사진공동취재단
스포츠와 체육은 다른 말
이것은 선수뿐만이 아니다. 특히 아마추어 지도자와 관련한 추문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대학과 고교 감독이 선수를 폭행해 각각 자격정지 10년과 무기한 자격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이처럼 정정당당함과 공정함이라는 페어플레이가 요구되는 스포츠계에서 인성 논란과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스포츠가 아닌 체육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스포츠와 체육을 동의어로 쓰고 있다.
하지만 그 근원 등을 살펴보면 의미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스포츠의 어원은 라틴어 데포라타레(deporatare)로, 생계를 위한 노동에서 벗어난 여가나 놀이를 뜻한다.
반면 체육은 일본 메이지 시대에 만든 말로 몸을 기른다,
즉 몸을 단련하는 것을 뜻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숱하게 들어온 말 중에 ‘지·덕·체’가 있다.
이것은 지육과 덕육 그리고 체육을 뜻하며, 청소년 교육에 있어 그 본질이라고 한다.
지육은 글자 그대로 지식을 기르는 것이며, 덕육은 도덕을 기르는 것이다.
지육과 덕육이 따로 있는 것은 체육에서는 지식과 도덕(윤리)이 분리된 것을 뜻한다.
체육에서 중요한 것은 몸을 단련하는 것일 뿐이다. 지적 능력의 향상과 습득, 윤리는 따로 배워야 한다.
이와 달리 스포츠는 그 자체로 도덕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공명정대하게 경기에 임하며, 규칙을 지키고, 상대를 존중하는 가운데 즐겁게 경기를 즐기는 것이다.
이른바 스포츠맨십이라는 도덕적 요소가 강조된다.
현실에서 ‘지·덕·체’는 공허한 외침에 그친다. 지육과 덕육은 내팽개치고 오로지 체육만 강조한다.
우리나라에서 운동선수가 된다는 것은 학교 교육과는 담을 쌓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종목이나 연습량이 너무 많다.
여기에 지도자나 부모는 한 가지만 잘하기도 어렵다고 생각해 시쳇말로 운동에 ‘올인’한다.
심신의 균형 있는 성장이 아닌 머리와 마음은 빈약한데 몸만 커진다. 그 결과, 운동선수와 인성 논란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고 있다.
또 스포츠는 그 자체에 도덕적 요소가 있다고 해도 여가 활동이다.
그런 만큼 학생의 자발적인 참여로 실행된다.
그래서 미국이나 유럽에서 대부분 스포츠가 학교를 벗어나 클럽팀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와 달리 체육은 교육의 일종이다.
교육이므로, 지도자는 선수에게 시키는 것이며, 선수는 해야만 하는 게 된다.
그 결과, 자발성보다 책임과 성실성이 요구된다. 책임과 성실함은 인내력과 예의의 중시로 이어진다.
지도자와 학생 간은 물론이고 학생과 학생(선배와 후배) 간에도 복종을 최우선 덕목으로 삼는다.
그것이 운동부 내 폭력과 폭언 등이 끊이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앞에서 언급한 안우진 사건이 그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자기 기분에 들지 않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폭력을 행사한다.
피해자는 참을 수밖에 없다. 그 종목의 세계는 매우 좁아, 반항하거나 불복종했을 때 어떤 피해가 돌아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그런 폭력을 인내하는 것을 운동선수에게 필요한 덕목으로 여기는 경향도 있다.
어느 야구 관계자는 “운동선수에게 인성은 인내하는 성격의 줄임말”이라고 말한다.
신인 선수를 스카우트할 때, 팀 관계자는 그 선수의 인성이 좋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여기서 인성은 “성품이 좋다”는 게 아니라 “잘 참으며 상급자의 지시를 잘 따른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이해하기
쉽다.
한국에서 프로든 아마추어든 스포츠가 아니라 체육을 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 ‘동업자 정신’이다.
예를 들면 2루에서 수비수를 향한 거친 슬라이딩처럼 위험한 플레이가 나왔을 때, 언론매체나 야구 관계자는
“동업자 정신의 실종”을 개탄한다.
동업자의 사전적 의미는 ‘같이 사업을 하는 사람’ 혹은 ‘같은 종류의 영업을 하는 사람’이다.
야구계를 비롯한 체육계에서 쓰는 동업자는 후자에 해당한다.
결국 동업자 정신은 같은 종류의 영업을 하는 사람끼리 지켜야 하는 정신이 된다.
야구선수끼리 지키는 정신이라는 특수성이 강조된 말이다. 반면 스포츠맨십은 보편적이다.
정정당당함과 상대의 존중, 규칙 준수 등은 스포츠만이 아니라 어느 사회나 분야에 적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체육이 교육의 일종이라면, 스포츠는 스포츠맨십을 통해 사회화를 경험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과 관련해서도 특정 선수의 인성을 언급한다.
한 경기에서 나타나는 짧은 순간을 보고 어느 선수의 인성을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궁예처럼 ‘관심법의 대가’가 아닌 이상, 작은 행동을 확대해석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도 인성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쉽게 볼 수 있다. 스포츠맨십이라는 좋은 말이 있는데도, 동업자 정신이나 인성을 거론한다.
그것은 스포츠가 아니라 체육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체육에서 인내를 중시하는 것은 근성론으로 이어지기 쉽다. 근성론이란 곤란에도 좌절하지 않는 정신(근성)이 있으면 어떤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으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를테면 노력 만능주의다. 죽기 살기로 노력하면 무슨 일이든 이룰 수 있다.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며,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
그런데 야구든 사업이든 그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것은 노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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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름과 박지우의 국가대표 박탈과 빙상연맹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이 3일 만에 56만 명을 돌파했다.
© 사진=연합뉴스·청와대 청원 홈페이지
인내와 올인, 그 위험성
넥센 서건창은 육성선수의 신화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육성선수로 프로에 뛰어들어, 방출의 아픔을 이겨내며 KBO리그 최고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2014년 KBO리그에서 유일하게 한 시즌 200안타를 때려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인터넷매체 OSEN과의 인터뷰에서
육성선수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남겼다.
“열심히 준비하고 끝까지 버텨야 한다. 책에서 본 문구인데, ‘저 모퉁이만 돌면 희망이 있을 것이다’는 말을 해 주고
싶다. ‘언젠가 되겠지’의 그 ‘언젠가’가 당장 내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마냥 장밋빛 이야기 같다.
열심히 해라? 다 열심히 한다. 그런데도 기회가 안 오는 선수들도 있다. 운이 크다. 나 역시 운의 도움을 받았다.
내가 남의 인생에 대해 무조건 버티라고 이야기하는 자체가 가혹하다.”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보다 운이라는 것은 서건창 개인의 생각일까. 그렇지 않다.
로버트 H 프랭크 미국 코넬대 경제학 교수는 저서 《성공과 운》에서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을 가르는
요소는 재능과 노력이 아닌 운”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운은 태어난 환경 등을 포함한 의미다. 스포츠계에서 성공한 이들에게는 뛰어난 능력과 끊임없는 노력이 있다는 신화는 뿌리 깊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스타 플레이어의 발이나 손 사진만 해도 그렇다.
최근에도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선수인 이상화의 발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스케이트와 발을 최대한 일체화하기 위해 양말을 신지 않고 맨발로 스케이트를 신고 연습과 경기를 소화한다.
그 결과, 이상화의 맨발은 온통 굳은살이 가득하다.
또 FA(자유계약선수) 대박을 터뜨린 LG 김현수의 손바닥도 그렇다.
물집과 상처 등으로 울퉁불퉁하다.
이들이 엄청나게 노력한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스케이팅 선수나 야구선수도 다르지 않다.
그들의 발과 손도 상처투성이다.
퓨처스에서 뛰는 선수보다 1군에서 활약하는 선수가 더 노력한다는 것은 선입견에 불과하다.
연습 시간만 본다면, 오히려 퓨처스가 더 길다. 왜냐하면, 1군 선수는 몸 상태 등을 경기에 맞추므로 연습량 자체가
많지 않다.
퓨처스에서는 경기보다 연습에 중점을 둔다. 1군 선수와 퓨처스 선수를 가르는 요소는 서건창과 프랭크 교수의 말처럼 재능이나 노력이 아닌 운이다.
예를 들면, 올해 롯데와 NC는 포수 자리에 공백이 생겼다.
지난해까지 주전으로 뛴 롯데 강민호는 삼성으로 이적했고, NC 김태군은 경찰청에 입대했다.
주전 선수의 부재는 후보 선수에게는 기회다.
다른 팀에서 후보로 뛰는 포수들은 롯데와 NC에 있는 포수들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다.
기회라는 운을 얻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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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논란이 있었던 한화 출신 김원석(왼쪽 사진)과 폭행 사건에 연루된 넥센 신인 투수 안우진
© 연합뉴스·넥센 제공
야구는 물론이고, 성공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운을 내 편으로 할 기회를 얼마만큼 많이 가지느냐가 중요하다.
기회가 많은 만큼 운이 따를 확률도 높아진다. 한 번 운이 따르지 않아도 다음이 있다.
그런 점에서 야구를 비롯한 운동에 ‘올인’하는 것은 기회를 줄이는 것과 같다.
어릴 때 야구를 시작해 고교나 대학까지 오로지 야구만 한 선수가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설령 프로 지명을 받았다고 해도 2~3년 만에 방출당하면 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로지 야구만 했으므로 사회에서 무엇인가를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야구나 운동만 할 것이 아니라 학업과
병행할 필요가 있다.
또 유소년기에는 친구를 사귀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다양한 활동을 했을 때, 심신이 균형 잡힌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인성 논란도 줄어들 것이다. 지금이라도 체육이 아닌 스포츠가 필요한 때다.
야구의 시작을 알리며 주심은 플레이볼을 외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워크볼(Work Ball)로 들리는 것은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다음 사설에서

▲25일 오후 강원도 평창동계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기수단이 입장하고 있다.
ⓒ 이희훈
▲ 스피드스케이팅 노선영이 지난 19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팀추월 준준결승에서 레이스를 마친 뒤
고개를 떨군 채 아쉬워하고 있다
[출처: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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