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년 토굴 생활'서 '시황제'로.. 시진핑이 불안한 이유는
명문가 자제서 반역자 아들로" 7년간 토굴 생활
푸젠성·허베이성 등 지방 돌며 친위대 '시좌쥔' 구축
'돌싱남'임에도 국민가수 펑리위안과 결혼에 골인
공청단-상하이방 계파 싸움 어부지리로 국가주석직
보시라이·저우융캉 등 정적 쳐내며 이빨 드러내
개헌 통해 집단지도체제 해체하고 장기집권 노려
[서울경제] ‘국부’인 마오쩌둥과 ‘개혁개방의 아버지’ 덩샤오핑 이후 중국의 최고 권력자가 된 시진핑 국가주석.
그의 이름은 베이징의 옛 이름 ‘베이핑(北平)’에서 태어난 아이라는 뜻이다.
중국에서 ‘베이징에서 태어났다’는 건 할아버지의 재력과 아버지의 명예를 모두 갖췄다는 ‘슈퍼 금수저’를 말한다.
시 주석의 아버지 시중쉰은 13세 때부터 중국 혁명에 뛰어들어 22세 때에는 마오쩌둥의 대장정이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도록 최후의 근거지를 제공했던 인물로 중국 근현대사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시중쉰 전 중국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오른쪽)의 첫 아들로
태어난 시진핑
(왼쪽)/사진제공=위키피디아
정치 명문가의 자제로 꽃길만 걸을 줄 알았지만 한치 앞을 모르는 게 사람 일이다.
시진핑은 아버지가 1962년 ‘류즈단 사건’을 겪으면서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시중쉰이 모셨던 옛 상사 류즈단의 삶을 소설로 묶는 과정에서 한때 반역죄로 몰렸던 가오캉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 소설에 등장했다.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시중쉰은 명예를 회복시키려 했다는 혐의를 받고 마오쩌둥에게 공개적으로 비판을 받게 된다.
아버지가 사건에 휘말렸을 때 시진핑의 나이 9살 때였다.
남부러울 것 없던 시진핑의 삶은 하루아침에 곤두박질치게 됐죠. 비판대에 오른 아버지를 직접 공격해야 할 정도였다.

젊은 날의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 주석이 동기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위키피디아
1966년부터 1976년까지 문화대혁명이 중국 대륙을 휘감으면서 부자의 삶은 더욱 어려워진다.
시진핑은 홍위병들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15살 때부터 7년간 ‘하방(下放)’을 택한다.
하방은 지식인을 사상개조를 위해 농촌으로 보낸다는 뜻이지만 어린 시진핑의 생활은 강제 노역자와 다름없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고등학생 나이인 시진핑이 산시(陝西)성 옌촨현 량자허(梁家河)촌의 세 평 남짓한 토굴에서 살면서
하루에 50㎏씩 밀을 나르며 10리를 움직여야 했다.
태자당이면서 10번이나 입당지원서를 냈지만 번번이 공산당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도 어린 시진핑에게는 큰 시련이었다.
하지만 시진핑은 “나는 황토의 아들”이라고 할 정도로 하방 생활이 자신을 키웠다고 말하곤 한다.
최고권력자로 자리잡은 뒤 2015년 어릴 때 살았던 토굴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그가 하방 생활에 애정을 갖고 있는 건 얻는 건 어려워도 잃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권력의 속성을 이때 깨우쳤기
때문이 아닐까?

중국의 퍼스트 레이디 펑리위안의 가수 활동 시절. 시진핑과 결혼할
당시 20대 초반이던 펑 여사는 인민해방군 가무단 소속 민족성악
가수이자 국민가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EPA연합뉴스
◇측근과 사랑, 권력의 발판을 얻다
시진핑은 그를 눈여겨본 량자허현 서기의 추천으로 마침내 1974년 공산당에 입당하게 된다.
1975년에는 어렵사리 중국 최고 명문대학인 칭화대학에 입학했다.
시진핑은 한 회고문에서 “‘붙여주면 들어가고 아니면 그만두지’라는 생각으로 1, 2, 3지망을 모두 칭화대로 썼다”는
말을 했다.
1978년에는 문화대혁명이 끝나면서 아버지 시중쉰도 정치적으로 복권됐다.
16년 만에 시진핑의 앞날에 빛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대학 졸업 후 지방근무를 자청한 시진핑은 푸젠성, 허베이성, 저장성 등 중국 전역을 돌았다.
그는 지방 경험을 통해 중앙 무대에서 정치엘리트 계파들과 대항할 수 있는 측근들을 만드는 기회를 잡았다.
이는 ‘시자쥔’이라고 불리는 친위대다.
당당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인기가 높은 퍼스트레이디이자 ‘정치적 동반자’ 펑리위안과의 만남도 이때 이뤄쥔다.
펑리위안과 처음 만난 1986년. 시진핑은 3년간의 짧은 결혼생활 후 이혼의 아픔을 맛본 ‘돌싱남’이었다.
주영 중국대사를 지닌 외교관의 딸로 외국생활에 익숙했던 첫 부인 커링링은 지방에서의 생활을 무척 따분해했고 이런 이유로 두 사람 사이에 다툼도 잦았다고 알려져 있다.
결국 시진핑은 허베이성 정딩현으로, 커링링은 영국 유학을 떠나며 헤어졌다.

함께 해외 순방 중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부인 펑리위안 여사
/EPA연합뉴스
이때 펑리위안은 18세부터 인민해방군 가무단 소속으로 활약하며 이미 ‘국민가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재희망적전야상(在希望的田野上·희망의 들판에 서서)’을 부를 때마다 전국의 남성들이 눈시울을 붉힐 정도였다.
시진핑은 화려한 국민가수 펑리위안의 마음을 어떻게 얻을 수 있었을까?
첫 만남에서 펑리위안은 시진핑이 외모를 중시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군복 바지 차림으로 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시진핑 역시 꾸미지 않은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이 자리에서 시진핑은 펑리위안에게 창법에 대해 질문했다고 한다.
속물적 질문이 아닌 음악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보는 태도에 펑리위안의 마음은 움직였고, 시진핑은 초혼인 펑리위안과 결혼에 골인한다.

지방근무를 하던 시절의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사진제공=CNN
◇변방에서 권력의 중심으로
중앙 정계에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도광양회(韜光養晦·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하던 시진핑에게 기회가 찾아온 건 2007년으로 볼 수 있다.
상하이방의 황태자로 불리던 천량위가 비리로 상하이 서기직에서 낙마하자 그가 후임으로 발탁됐다.
중국 경제도시 상하이를 책임지는 자리에 오른 그는 기회를 살려 단박에 스타 정치인으로 올라섰다.
10개월 뒤에는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 임명되며 권력의 중심으로 도약했다.
비록 중앙무대로 복귀하긴 했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시진핑이 ‘시황제’의 자리에 오르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당시 시진핑이 속한 태자당 세력은 전 국가주석인 장쩌민이 이끄는 상하이방과 당시 국가주석인 후진타오가 이끄는
공청단에 비해 상대적인 파워가 적었다.
하지만 상하이방과 공청단이 후계자를 자리를 놓고 벌이는 치열한 암투 속에서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두 세력에 속하지 않으면서 적이 없었던 시진핑을 국가주석 후계자로 삼기로 공청단과 상하이방의 합의가 이뤄진 것. 그는 2008년 부주석에 오르며 국가주석 자리를 예약했다.

2011년 중국 국가주석의 자리에 오르기 전 중국 국가 부주석으로 태국 방문에 나선
시진핑이 차에 오르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사람 좋은 줄만 알았던 시진핑은 권력의 중앙에 들어서자 이빨을 드러냈다.
수면 위로 드러난 계기는 중국은 물론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른바 ‘보시라이 사건’이다.
보시라이 당시 충칭시 서기는 시진핑과 같은 계파인 태자당 내에서 최대 정적이었다.
그는 조직범죄를 소탕하고 ‘마오쩌둥 따라 하기’ 등 극좌적 행태로 빈부격차에 불만을 가진 대중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2011년 말 보시라이 아내의 사주로 영국인 사업가 닐 헤이우드가 독살당한 일이 발생하고 이듬해 사건에 연루돼 신변의 위협을 느낀 보시라이의 최측근 왕리쥔이 미국 영사관으로 도망가는 일이 생겼다.
그러자 시진핑은 후진타오 당시 국가주석과 손잡고 이를 구실로 보시라이를 해임하고 사법처리를 주도했다.
보시라이는 시진핑이 국가주석이 된 해인 2013년 진행된 1, 2심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완전히 몰락해버렸다.
또 중국 권력의 정점에 있는 상무위원은 처벌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규칙을 깨고 보시라이의 정치적 후원자이자 저우융캉 정치국 상무위원도 낙마시켰다.
‘부패 호랑이’라고 불렸던 저우융캉의 죄목도 아이러니하게 뇌물수수, 직권남용, 국가기밀 고의누설이었다.
이어 쑨정차이, 링지화 등 자신의 앞날인 걸림돌이 될 고위 관료들도 차례로 같은 방법으로 날려버렸다.
◇‘종신 국가주석’을 향한 질주
2기 임기가 시작된 지난해부터는 장기집권을 향한 길을 닦기 시작했다.
정치 엘리트인 상하이방과 공청단을 견제하면서 친위대인 시자쥔들을 주요직에 배치했다.
그리고 ‘시진핑 사상’을 당헌에 올렸다.
지금까지 여기에 이름이 오른 중국 지도자는 국부인 마오쩌둥과 개혁개방의 아버지 덩샤오핑밖에 없었다.
장기집권을 위한 마지막 작업으로 시진핑은 ‘덩샤오핑의 유산’이라고 불리는 집단지도체제를 3일부터 열리고 있는 중국 최대 정치이벤트 양화(전인대와 정협)에서 깨뜨리려 하고 있다.
1982년 이후 중국 사회의 근간이 됐던 권력독점과 독재자의 출현을 막기 위해 덩샤오핑은 만든 헌법에서 ‘국가 주석은
2번 이상 연임할 수 없다’는 문구를 삭제하면, 그의 3연임을 막을 수 있는 근거가 사라진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얼굴이 들어간 기념품이 ‘국부’ 마오쩌둥 기념품과 나란히
베이징의 한 가게에 걸려있다.
/EPA연합뉴스
이는 단순히 ‘종신 국가주석’의 길을 열었다는데 그치지 않는다.
‘3연임 제한’ 규정과 집단지도체제는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 가운데 하나로 무려 2,000만명이 숙청, 기아 등으로 사망한 문화대혁명의 결과물이다.
덩샤오핑 등 중국 지도부는 1인 독재는 반드시 국가적 재앙으로 끝난다는 교훈을 얻었고 개인이 아닌 시스템이 지배
하는 권력 구조를 만들었다.
‘3연임 제한’ 규정 삭제가 지난 40년 개혁개방의 성과를 철저하게 부정하는 역사적 퇴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문화혁명의 희생자였던 시진핑이 그 때 당시로 국가 시스템을 후퇴시킨 셈이다.
집단지도체제는 권력을 나누며 정치적 책임도 여러 계파가 나누어 가졌는데, 이제는 시진핑 홀로 실패의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그나마 문화혁명 때는 최고 지도자의 판단 오류에 따른 파장이나 비극이 중국 내부로 한정됐다.
반면 현재 중국은 ‘중국몽’ ‘대국굴기’ ‘군사굴기’ 등을 내세우며 제국주의적 행태를 노골화하고 있다.
시진핑이 정책적 오류나 판단 잘못을 저지를 경우 전 세계가 후폭풍에 휩싸이게 된 셈이다.
특히 한국, 동남아 등 주변부 국가들이 어떤 유탄을 맞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동시에 중국 내부를 보더라도 빈부격차, 도농간 격차, 환경오염, 소수민족의 저항, 공산당 독재의 비효율성, 한계에
이른 양적성장, 다른 정치 계파의 반발 등 지뢰밭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물론 지금 시진핑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다지고 있고 ‘시황제’에 도전하는 세력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시진핑의 ‘중국몽’ 구상에 미국 등 서방의 반발이 커지고 중국 내부의 모순이 격화된 가운데 다른 정치세력의
반격이 시작될 경우 그 파장은 예측조차 힘들다.
자정 기능이나 견제 능력을 잃은 1인 독재란 항상 파국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전세계가 시진핑의 장기 집권 프로젝트를 불안하게 지켜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연유진·정혜진기자 economicu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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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황채원기자] 제13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제1차 전체회의는
5~20일로 기간이 16일로 이례적으로 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개막식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전인대 개막, 시진핑 장기집권 레드카펫 깔렸다
연임제한 철폐·시자쥔 중용·사정기능 강화 예고
"習 집권 후 경제발전, 민족 자긍심 제고" 찬양
전인대 보름 일정, 習 권력강화 포석 마련 주력
연임 제한 철폐와 시 주석 측근 중심의 주요 보직 인선, 권력 강화 수단으로 평가받는 거대 사정기구 출범이 전인대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막한 전인대는 향후 15일 동안 시 주석의 장기 집권을 위한 포석 마련에 집중한다.
2시간 가까이 이어진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업무보고는 시 주석에 대한 찬양 일색이었다.
이날 발표된 헌법개정안 초안도 마찬가지였다. 헌법 서문에는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毛澤東) 사상, 덩샤오핑
헌법 3장 제79조 3항은 '주석과 부주석의 매회 임기는 전인대 임기와 같고 두 번 연속 초과하지 못한다'는 문구에서
개헌안이 통과되면 시 주석은 두번째 임기가 끝나는 2023년 이후에도 다시 집권할 수 있다.


역시 시 주석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웨이펑허(魏鳳和) 상장(대장)과 왕샤오훙(王小洪) 공안부 부부장(차관)은 오는
시 주석의 '경제 브레인' 류허(劉鶴) 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은 경제담당 부총리 겸 인민은행장으로 기용된다.
장기 집권을 노리는 시 주석의 새로운 칼이 될 국가감찰위원회 설립도 전인대 표결을 거쳐 확정된다.
설립 후에는 최고위층부터 일선의 교사, 의사, 국유기업 임직원까지 정부부처와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수천만명에 대한 전방위 감찰이 가능해진다.
리커창 총리는 이날 정부업무보고를 통해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6.5% 정도로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리커창 총리(오른쪽)가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개막식에 참석해 있다. 뒤편으론 왕치산 전 정치국 상무위원이 지나가고 있다.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전인대 개막…덩샤오핑 시대와 결별
주석임기, 감찰위설립, 헌법선서 등 개헌안 제출
현직 없는 왕치산이 최고지도부와 함께 앉아 ‘관심’
성장률 6.5%, 국방예산 8.1% 늘어…미국 이어 두번째
다자회의 주최 ‘홈그라운드 외교’ 용어 쓰며 ‘세 과시’

헌법 개정 초안 설명으로 개막식 예년보다 1시간 길어져
(베이징=연합뉴스) 김진방 특파원 =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5일 막을 올린 가운데 전인대가 개최된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 주변과 개막식장은 분위기가 삼엄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2기가 시작된 뒤 처음으로 열리는 올해 전인대에서는 국가주석 3연임 이상 제한 규정
폐지와 '시진핑 사상' 헌법 삽입 등을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비롯해 국가 감찰위원회 설립 등 예년보다 무거운 주제의 안건이 논의된다.
중국 안팎의 관심이 뜨거운 것을 반영하듯 개막식이 열리는 인민대회당 주변에는 이른 새벽부터 내외신 기자들로
장사진을 쳤다.
전국에서 선출된 각계각층의 대표 2천900여 명은 현지시간으로 이날 오전 9시 개막식 시작 1시간여 전부터 인민대회당 동쪽 출입구를 통해 입장을 시작했다.

시 주석을 필두로 리 총리와 신임, 전임 상무위원단이 뒤를 따라 입장하고, 상무위원단 좌석 뒤쪽 주석단에도 196명의 대표가 빼곡히 자리를 채웠다.
차기 전인대 상무위원장으로 내정된 리잔수(栗戰書) 상무위원은 주석단 맨 앞줄에 서서 개막을 선언하며 전인대에 데뷔했다.
이번 전인대를 통해 국가 부주석으로 복귀할 것이란 설이 도는 왕치산(王岐山) 전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는 이날
개막식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왕 전 서기는 시 주석과 신임 상무위원들 바로 옆에 앉아 건재를 과시했다.

개막 선언 뒤 곧바로 리 총리의 정부 업무보고가 시작됐고, 중국의 정치·경제적 성과를 소개하는 내용이 나올 때 이따금 짧게 박수 소리가 나오는 것 외에 전체적으로 무거운 분위기 속에 개막식이 진행됐다.
이번 전인대에 상정된 개헌안으로 장기집권 가능성이 거론되는 시 주석은 3시간 가까이 진행된 개막식에서 특유의
무표정을 유지했다.
시 주석은 개막 선언과 업무보고 초반에 잠시 박수를 쳤을 뿐 개막식 내내 정면을 응시한 채 미동하지 않았다.
업무보고가 시작되고 1시간여가 흘렀을 때 옆자리에 앉은 장더장(張德江) 전인대 상무위원장과 잠시 대화를 나눈 것 외에는 시 주석은 시종 같은 표정과 자세를 유지했다.
올해 개막식은 리 총리의 업무보고를 끝으로 마무리됐던 예년과 달리 헌법 개정 초안 설명 순서가 추가돼 과거보다
길어졌다.
리 총리에 이어 연단에 오른 왕천(王晨) 전인대 상무위원회 부위원장 겸 비서장은 개막식 전 배포된 '헌법 개정 초안
심의에 관한 안건'을 바탕으로 1시간가량 전인대 대표단에 개헌안의 주요 내용을 설명했다.
유일하게 왕 전 서기가 업무보고 중간에 5분 정도 자리를 비운 것 외에는 주석단에 앉은 230여 명의 대표들도 개막식이 끝날 때까지 3시간 동안 자리를 지켰다.

개막식장 밖도 무거운 분위기가 흐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인민대회당 주변에는 무경과 공안, 보안요원들이 곳곳에서 경계를 섰고, 인민대회당 인근 지하철역과 호텔에도 보안
검사대가 설치됐다.
행사장인 인민대회당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출입증이 있는 사람들도 보안 검사와 안면인식 장치 등 이중 삼중의 보안
장치를 통과해야 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대회장 내에서는 '셀카봉' 휴대가 금지됐으며, 취재진 역시 카메라 기자와 취재 기자의 취재 공간이 엄격히 구분돼 취재 기자의 전문가용 카메라와 삼각대 사용이 금지됐다.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도 취재 열기만큼은 후끈 달아올랐다.
인민대회당 2층과 3층에 마련된 기자석은 개막식 시작 전부터 만석이 됐고, 일부 취재진은 일반 방청석에 자리를
잡아야 했다.
또 개막식 시작 1시간 전 업무보고 자료를 배포하는 2층 배부처에는 한꺼번에 기자들이 몰리면서 혼란을 빚기도 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주석 임기 제한을 폐기해 장기 집권을 추진하고 있다.
시 주석이 마오쩌둥 전 주석과 같은 반열에 올라설 것이란 분석이 따른다.
© AFP=뉴스1

시진핑 주석©
AFP=뉴스1
유럽은 트럼프 이어 시진핑에게도 기대 접었다
자칭 '국제질서 옹호자' 울타리 아닌 위협"
NYT "종신집권으로 희망 꺾고 일대일로로 분열 조장"
(서울=연합뉴스) 한상용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유럽에서는 막연한 가능성이 공포로 돌변했다.
유럽 동맹국들과의 안보 공조를 비웃고 무역적자를 문제 삼아 보복하겠다던 국수주의 후보가 대권을 거머쥐면서 당혹
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그 미국 우선주의는 실제로 기존 국제합의를 깨는 쪽으로 나타나 유럽에서는 원성이
터져 나왔다.
그 혼란을 틈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이 더는 국제질서의 옹호자 역할을 못 한다면 중국이 하겠다'고 다짐하며 호기롭게 등장했다.
유럽 정부 관리들과 최고 경영자들은 시진핑 주석의 등장과 그의 국제 수호자 역할 가능성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시 주석이 국제질서의 '위대한 수호자'가 아닌 '국제질서의 위협'이 될 수 있다는 현실에 유럽이 직면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4일 보도했다.
중국 국가주석의 '2연임 철폐' 추진은 국제질서에서 '책임 있는 이해 당사국'이 될 것이라는 서방의 희망을 꺾어 버렸고 시 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정책 추진은 '유럽을 분열시킨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당장 다수의 유럽 국가 지도자들은 중국이 EU를 갈라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 지도자는 또 중국이 독일을 포함한 유럽 내 해외 투자 전략과 함께 군사적 측면에서 더욱 공격적으로 변모하는
점을 우려했다.
비영리기구 아시아소사이어티의 중국 전문가인 오빌 셸은 "우리는 지금 변곡점에 와 있다"며 "서방 세계는 이제 우리가 과거에 했던 것보다 더욱 진지하게 중국의 압력을 세계로 가지고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 정치 지도자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정책 리더십 공백 상황에서 중국의 유럽 투자 의도와 영향력에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실제 지그마어 가브리엘 독일 외무장관은 지난달 중국이 세계 질서에서 그 자신의 자체 모델을 추진하고 있으며
"세계에 중국 도장을 찍고 중국 시스템을 부과하려 시도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의 이러한 시도는 인권과 개인의 자유를 기반으로 하는 유럽의 시스템과는 다르다고 가브리엘 장관은 부연했다.
특히, 가브리엘 장관은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을 비판하면서 "우리가 중국을 겨냥한 단일 전략을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중국은 유럽을 분할시키는 데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그의 발언이 불필요한 우려를 자아낸다는 시각이 있지만, 독일은 이미 중국의 최대 교역 파트너로서 지난해 양국 간 교역 규모는 2천300억 달러에 달한다고 NYT는 전했다.
중국 회사들은 2016년 독일의 핵심 로봇기업 쿠카를 이미 사들였고 이후 독일 반도체 칩 제조사인 아익스트론를 인수하려다 미국 당국의 반대로 무산된 일도 있다.

유럽외교관계이사회의 아시아 전문가 안젤라 슈탄첼은 이런 분위기 속에 "독일 내 중국의 영향력에 대한 공개 토론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일대일로' 정책을 두고는 "주된 우려 사항은 중국의 분할 통치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이 '일대일로' 투자를 빌미 삼아 유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과 프랑스 정부는 외국 기업의 인수·합병과 기술 유출 등에 관한 규제를 강화하기도 했다.
클레어몬트 매케나 컬리지의 중국 학자 민신 페이는 유럽 내 중국의 활동은 남중국해에서처럼 "어느 곳이 약한지
어느 곳이 저항하는지 테스트하는 일종의 특성 조사"라고 진단했다.
NYT는 시 주석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울타리'로 간주하지 않는 지금 유럽 지도자들이 오히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러시아를 대하는 데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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