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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아침 '연락두절' 박근혜, 침실 방문 두드리자 '빼꼼'
2014년 4월16일 탑승객 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침몰하던 그 시각, 국가위기 상황을 최종 책임져야 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은 그 누구와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최초 신고가 이뤄진 오전 8시54분부터 배가 좌현으로 108도 기울어져 더는 구조가 불가능해진 오전 10시17분
(골든타임)까지, 박 대통령은 세월호 침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도대체 대통령은 뭘 하고 있었던 걸까. 28일 검찰이 4년 동안 이어진 이 질문에 한층 진전된 답을 내놓았다.
‘7시간의 봉인’이 마침내 풀린 셈이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등 청와대 수뇌부는 오전 9시19분 텔레비전 자막을 통해 사고 소식을 처음 접했다.
이후 국가안보실 산하 위기관리센터가 선박의 명칭, 승선 인원, 출항시간 등을 담은 상황보고서 1보(초안)을 10시쯤
작성했다.
금쪽같은 ‘41분’이 ‘보고서 작성’으로 속절없이 흐른 것이다.
이 시각 세월호는 점점 더 기울어져 복원력을 상실(9시34분)했고, 이어 3층 갑판(47분), 4층 갑판(50분), 5층 출입문
(57분)이 침수됐다.
초안을 보고받은 김 실장이 대통령 휴대전화로 두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대통령은 두 번 모두 받지 않았다.
다급해진 김 실장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보고서 1보가 관저로 올라갈 예정이니 보고될 수 있게 조치해 달라”고 부탁했고, 10시12분~13분께 상황병을 통해 대통령이 그때까지 머물고 있던 관저로 ‘1보’를 전달하도록 했다.

뉴스데스크 / 사진=MBC 방송화면 캡처
김장수, 1보 전달받고 두 번 전화했지만 안 받아
관저선 급박한 상황보고, 침실 앞 탁자 위에
실시간이라던 상황보고 11회도
오후·저녁 두 차례 합쳐서 전달
오후 ‘A급 보안손님’ 최순실 관저 방문
박근혜-최순실-3인방 ‘5인 회의’ 개최
회의에서 중대본 방문 결정
급박한 상황 불구 ‘올림머리’ 미용사 호출
중대본 간 박근혜 “구명조끼 입었는데 발견 힘듭니까?”
상황병은 1보를 들고 7분 만에 관저 인수문까지 뛰어가 경호관에게 전달했다. 이 문서는 관저 내실 근무자 김아무개씨에게 전달됐고, 김씨는 평소처럼 아무 말 없이 대통령에게 침실 앞 탁자 위에 올려뒀다. 보고서가 탁자에 오른 시각은
10시19분~20분 사이로, 골든타임이 막 지나 더는 손 쓸 수 없는 상태가 된 뒤였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진도 앞바다는 탑승객 일부가 필사의 탈출을 시도하고 있던 ‘전시’였으나, 대통령이 있는 관저는
언성을 높일 일 없는 평화로운 ‘평시’였다.
청와대가 침몰 사고 인지 이후 우여곡절 끝에 1시간이 걸려 도착한 보고서를 박 전 대통령이 읽었는지는 현재 서울
구치소에 수감된 박 전 대통령의 조사 거부로 확인할 수 없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김 실장의 전화를 받고 관저로 뛰어간 안 비서관이 대통령 침실 앞에서 “대통령님”하고 수 차례 부른 게 10시20분.
침실에 머물렀던 박 전 대통령이 드디어 문밖으로 나왔다.
“안보실장이 급한 통화를 원합니다”라는 말을 들은 박 전 대통령은 다시 침실로 들어가 김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10시 25분 국가안보실이 관계부처에 ‘대통령 지시사항’을 전파하지만, 세월호는 5분 뒤 완전히 침몰했다.
이후 대통령 비서실도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이메일로 총 11차례 상황보고를 전했지만, 정 비서관은 이를 일괄 출력해 오후와 저녁 두 차례에 나눠 전달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이 실시간으로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날 비서실장도 국가안보실장도 대통령 대면보고를 못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관련자들을 조사해 보니 ‘대통령 보고가 통상 그래 왔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막상 대통령을 움직이게 한 건 청와대 참모들이 아닌 ‘40년 지기’ 최순실씨였다.
비서실장조차 쉽게 드나들 수 없을 만큼 문턱이 높았던 관저에 최씨는 검색 절차로 없이 발을 들였다.
오후 2시15분이었다.
박 전 대통령 재직 때 경호실에 출입기록이 남지 않는 이른바 ‘보안손님’은 에이(A)급과 비(B)급으로 구분됐는데,
에이(A)급은 최씨를 비롯해 김영재 원장과 그의 부인 박채윤씨 등 딱 3명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관저 앞마당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비(B)급은 검색절차 없이 관저 정문인 인수문까지만
차량을 타고 들어올 수 있는 이들로서, 기치료사와 왕십리원장 등 비선진료인들이었다고 한다.
관저에 도착한 최씨는 곧바로 박 전 대통령과 대기하고 있던 이재만 총무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과 함께 세월호 참사
관련 ‘5인 회의’를 열었다.
대통령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방문이 결정된 것은 ‘수석비서관 회의’ 등 공식기구가 아닌 이 ‘5인 회의’였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은 참모들을 불러 상황 파악을 하지 않고 ‘올림머리’ 단장을 위해 미용사인 정송주·정매주씨를
불렀다.
윤전추 청와대 행정관이 오후 2시53분 정매주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는 “출발하시면 전화부탁드립니다.
많이 급하십니다”라고 적혀 있어 당시 급박함이 묻어난다.
정작 급한 건 따로 있었지만, 박 전 대통령은 올림머리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머리 손질을 끝낸 박 전 대통령은 오후 4시33분 이날 처음으로 관저밖으로 나왔다.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그는 5시15분 중대본에 도착해 처음으로 이렇게 물었다. 당시엔 어떻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까 의아했지만, 이날
박 전 대통령의 행적을 보면 이런 의문은 쉽게 해소된다.
저녁 6시 청와대 관저로 복귀한 박 전 대통령은 평소처럼 계속 그곳에 머물렀다.
이후 청와대는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된 시각을 ‘골든타임’ 이전을 꾸미려고 오전 10시17분으로 당기고, 청와대 책임을 일선 부처로 미루려고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을 바꾸는 등 또다시 페이퍼 워크에 매달렸다는 게 검찰 수사결과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묻힐 뻔했던 '朴 7시간 행적'..문고리 3인방이 다 불었다
최순실 참석 5인 회의 등 '문고리 3인' 통해 확인
朴 침실에 있었던 것도, 실시간 보고 안됐던 것도
"청와대 현장 검증 등 물증 확보 후 추궁한 결과"
"3인방, 최씨 당일 관저 방문 드러날까 전전긍긍"
【서울=뉴시스】오제일 기자 = 4년간 물음표로 남아있던 '세월호 7시간'의 비밀은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 최측근인
'문고리 3인방'의 입을 통해 확인됐다.
별개의 혐의로 구속된 이들이 그간 전전긍긍 감춰오던 진실을 검찰에 털어놓은 모양새다.
29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신자용)에 따르면 이 사건과 관련해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는 검찰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다만 국정농단 등 혐의로 구속된 정호성·안봉근·이재만 전 비서관 등이 검찰 조사에서 2014년 4월16일을 이야기했다.
먼저 최초 보고 시간과 관련해서는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과 안 전 비서관 진술이 도움이 됐다.
이 전 행정관이 운전하는 차에 안 전 비서관이 올라탄 시간이 10시12분이고, 이 차를 타고 관저에 도착한 시간이
10시20분께라는 진술이다.
당시 구체적인 상황도 안 전 비서관 진술을 통해 파악된 것으로 보인다.
관저 내 침실 앞에서 수차례 박 전 대통령을 불러 침실 밖으로 나오게 한 뒤 "국가안보실장이 급한 통화를 원한다"고
말을 했다는 것이다.
최씨가 참사 당일 관저를 찾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 계획 등을 논의했다는 '5인 회의' 사실도 이들 3인방의 진술로 확인됐다.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를 제외하고 이 회의에 참석한 3인방 진술이 일치한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퍼즐을 맞추는 데는 검찰이 광범위하게 수집한 물증도 역할을 했다.
당일 이 전 행정관 카드 내역을 확인한 결과 남산터널을 두 번 통과한 내역이 나왔고, 이를 바탕으로 추궁해 최씨의
관저 방문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들 진술 등을 종합할 때 박 전 대통령이 사고 당일 중대본 이외 외부 일정은 없었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실시간 보고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도 해당 업무를 담당한 정 전 비서관 입을 통해 확인됐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오후와 저녁 각 1회씩 그때까지 모인 보고서들이 한꺼번에 출력돼 보고됐다는 구체적인 사실을
파악했다.
검찰은 이들 진술뿐만 아니라 지난 7일 청와대를 방문하는 등 현장 검증도 거쳤다. 청와대 본관에서 관저까지 이동
소요 시간 및 거리를 측정하는 등 세월호 사고 당일 상황을 재연함으로써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갰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을 압수수색해 청와대 출입 로그기록 등 유의미한 자료 다수를 확보하는가 하면 국가
안보실 위기관리센터에서 세월호 사고 관련 상황보고서 등도 찾아냈다.
이와 관련 검찰 관계자는 "전 비서관들 신병이 다 확보된 상태"라며 "여러 상황을 설득해서 수사 협조가 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은 그동안 최씨가 세월호 참사 당일 관저를 방문한 사실이 드러날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며 "우리가 정확한 사실관계를 말하니 털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전남 진도군 관매도 부근 해상에서 침몰한 사고가 발생한 6,852톤급 세월호.
(사진 = 해양경찰청 제공)

박근혜 세월호 7시간이 각종 의혹 속에 묻히면서 박근혜 7시간은 ‘정윤회 밀회설’부터 프로포폴 투약과 굿판 루머,
청와대에서 구입한 성기능촉진제 등의 의혹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회자됐다.

▲ 눈 하나 깜빡 않고 거짓말, 박근혜 7시간에 대해 청와대 인사들은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서까지 이구동성으로 위증을 일삼았다. 윤전추 조여옥 이슬비 등
박근혜 청와대 인사들에 대한 처벌 요구의 목소리가 나오는 대목이다. 검찰은 28일
박근혜 7시간 관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태가 이쯤되자 민심은 들끓기 시작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오히려 지난 2014년 5월 1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 발표 연설 말미 ‘의로운’ 희생자 이름을 거명하며 눈물을 흘리는 퍼포먼스를 펼쳤지만,
결국 박근혜 7시간은 침실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는 거다.
결국 지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발생 이후 4년 가까이 풀리지 않았던 박근혜(66) ‘7시간 행적’이 검찰 수사로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
28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신자용)에 따르면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관저 침실에서 휴대전화도
받지 않고 있다 승객 구조의 골든타임이 지난 뒤에야 첫 상황 보고를 받았다.
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바다로 침몰하던 때 국민 생명보호 책임의 정점에 있던 국가원수가 관저 침실에서 시간만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날 오후에서야 최순실이 청와대에서 박근혜 안봉근 정호성 이재만 등과 5인 대책회의를 열고 2014년 4월 16일 사고 당일 오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방문하도록 결정을 내렸다.
이날 오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방문한 박근혜는 눈이 풀린채로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고 황당무계한 발언을 쏟아내 “대체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사고에 대해 아는 게 뭐냐?”는 박근혜 7시간에 대한 의혹과 분노를 폭발케했다.
검찰의 발표에 의하면 박근혜는 오전 10시 사건 상황보고서 1보 초안을 전달 받은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은 곧바로
박근혜에게 휴대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박근혜는 10시20분쯤 김장수 전 실장의 연락을 받고 달려온 안봉근 전 청와대 재2부속비서관이 침실 앞에서 수차례
부른 뒤에야 침실 밖으로 나왔다. 검찰 관계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전날 인후염 진료를 받고 컨디션이 안 좋았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안봉근 전 비서관으로부터 “국가안보실장이 급한 통화를 원한다”는 말을 들은 박근혜는 다시 침실로 들어가 김장수
전 실장에게 전화해 인명구조 지시를 내렸다.
이 시각이 10시22분. 세월호는 5분 전인 17분쯤 108도로 뒤집어졌고 이후 선내에서 구조된 이들은 없었다.
박근혜가 아무런 조치를 않고 골든타임 7시간을 보내면서 희생자는 수백명에 달하게 됐다.
박근혜는 사고 당일 오후 5시15분쯤 중대본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때문에 당일 행적을 놓고 갖은 의혹이 제기돼 왔지만 검찰 조사 결과 박근혜는 관저 침실을 벗어나지 않았다.
지난 4년 동안 ‘정윤회씨와 함께 있었다’는 루머부터 ‘강남 차병원에서 마사지를 받았다’ ‘최순실과 굿판을 벌였다’는 말까지 이런저런 추측만 난무했다.
박근혜 세월호 7시간 의혹은 2014년 7월 7일 국회 운영위원회 회의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가 집무실에
있었느냐’는 박영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의 질의에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그 위치에 대해선 알지
못합니다”라고 답하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박근혜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위치조차 몰랐다는 답변에 정치권과 증권가를 중심으로 빠르게 루머가 퍼졌다.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서울지국장은 이런 상황을 정리해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 불명…
누구와 만났을까’라는 칼럼을 게재했는데, 당시 세월호 7시간 의혹의 중심은 정윤회씨였다.
이에 대해 박근혜 청와대는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것을 기사로 썼다”며 반발했다.
보수단체는 가토 지국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지국장에 대해 법원은 “‘박근혜와 정윤회가 긴밀한 남녀관계였다’라는 건 허위사실”
이라며 “정윤회씨 휴대전화 발신지 추적 결과 등을 봐도 박근혜와 정윤회 두 사람이 당시 함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가토 지국장에겐 “박근혜 대통령이란 ‘공적 사안’에 대해서는 언론 자유가 인정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박근혜 밀회설은 처벌받는 이 없이 유야무야 넘어갔다.
2017년 하반기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드러나면서 박근혜 7시간 의혹이 재부상했다.
최순실이 박근혜 국정 운영에 개입한 사실이 밝혀지자 박근혜가 청와대 안에서 이른바 ‘야매 기 치료’를 받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꾸려진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부터 속칭 ‘주사 아줌마’까지 박근혜 관련자들을 집중 조사했다.
헌법재판소도 박근혜 탄핵심판 대리인 측에게 ‘박근혜 7시간 행적을 밝히라’고 주문했지만 특검팀은 박근혜 청와대의 압수수색 거부 등 장애물에 막혀 수사를 끝내지 못했다.
헌재도 박근혜 측의 부실한 자료 제출로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검찰이 28일 박근혜와 최순실이 세월호 참사 당일 만났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박근혜 행적을 가리던 장막이 일부 걷히고 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박근혜의 세월호 참사 늑장 부실 대응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불법도 불사했고 거짓말로 국회 위증까지 일삼았다. 흡사 ‘필사적’으로 박근혜 7시간을 방어하는 모양새였다.
[한인협 = 박귀성 기자]
박귀성 기자 skanskdl01@hanmail.net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신장용)는 28일 박 전 대통령이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첫 보고를 받은 시각과 첫 지시를 내린 시각이 모두 나중에 조작됐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진상조사위원회’는 박근혜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당시 청와대가 여당(현 자유한국당)과

고용노동부 장관 자문기구인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도 이날 김현숙 전 청와대 고용복지수석과 이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 대한 수사의뢰를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배민영·남혜정·김준영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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