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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사

北 퍼주기 논란에 文공약 '프라이카우프' 사라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청와대와

 세종청사를 잇는 첫 영상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사진=조선중앙TV>








[이미지 = iclickart]





北 퍼주기 논란에 文공약 '프라이카우프' 사라졌다





4ㆍ27 남북 정상회담의 의제 중 하나로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를 포함하는 방안을 청와대가 검토하고 있다.
북한 비핵화와 이슈와 함께 이산 상봉 정례화가 쟁점이 될 경우 약 1년 전 나왔다가 사라진 ‘프라이카우프’에 관심이
 쏠릴 가능성이 크다.
 
이 생소한 독일어는 지난해 4월 28일 발간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집에 등장했다.
프라이카우프(Freikauf)는 독일어로 ‘자유를 산다’는 의미다.
 통일 전 서독이 동독에 있던 정치범들을 데려오는 과정에서 현금과 현물을 제공했던 전략을 뜻한다. 
'프라이카우프'가 1년 전 공식 문건에 등장했다가 수면 아래로 사라진 이유는 뭘까. 





10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10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
6만명에 달하는 이산가족(상봉 신청자) 전원의 상봉을 추진한다는 것은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실향민 가족 출신인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해왔다.
지난해 7월 ‘베를린 선언’에서 고향방문단 형식의 상봉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묵묵부답으로 거절했다. 



 
     
10일 오전 경기 수원 이비스앰배서더 호텔에서 열린 경기지역 미 상봉 이산가족 초청행사에서 헤어진 가족을 만나지 못한 이산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스1


10일 오전 경기 수원 이비스앰배서더 호텔에서 열린 경기지역 미 상봉 이산가족 초청행사에서 헤어진 가족을 만나지 못한 이산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스1



 
이산가족 상봉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10월(20차 행사)을 끝으로 3년간 중단됐다.

 현재 등록된 이산가족 신청자는 13만여 명으로 이중 생존자는 6만명이 되지 않는다. 생존자 중 64.5%는 80세 이상의 고령자들이다.  
    




한반도 프라이카우프’ 추진 


지난해 7월 독일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구 베를린 시청 내 베어홀 에서 쾨르버 재단 초청연설을 하고 있다.2017.07.06. 청와대 사진기자단



지난해 7월 독일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구 베를린 시청 내 베어홀 에서 쾨르버 재단 초청연설을 하고 있다.


2017.07.06. 청와대 사진기자단



 


지난해 4월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는 공약집에 이렇게 적었다.  
      “남북 인도주의 문제 해결을 위한 ‘한반도 프라이카우프’를 추진한다. 상봉을 신청한 이산가족 6만명 전원에 대해 전체 상봉을 목표로 북한에 대한 병원 건립 등 인도적 지원과 교환하겠다.”
 
프라이카우프는 1963년 시작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까지 26년간 진행됐다.
서독은 3만 3755명의 정치범과 25만명에 달하는 그들의 가족에 대한 송환 대가로 동독에 34억6400만 마르크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환율로 4조원이 넘는 돈이다. 



 
     
1989년 11월 9일 독일 베를린 장벽이 개방되자 기쁨에 넘친 베를린 시민들이 몰려 들었다. 그들은 베를린 장벽 위에 올라가 환호했다.  [중앙포토]



1989년 11월 9일 독일 베를린 장벽이 개방되자 기쁨에 넘친 베를린 시민들이 몰려 들었다. 그들은 베를린 장벽 위에 올라가 환호했다. 


 [중앙포토]




그러나 동ㆍ서독 정부 차원이 아닌 교회 등 민간이 주도했다. 서독 언론도 사업 과정에 대해 철저한 비밀에 부치는

 데 동의한 상태로 진행됐다.  
    


100대 국정과제에서는 사라져
이 단어는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서는 슬그머니 사라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인수위원회를 만들 겨를도 없이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8월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통해 백서를 겸한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대선 공약을 재정리한 내용이다.




     
2015년 10월 26일 강원 고성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0차 남북이산가족상봉 2차 작별상봉행사에서 먼저 버스에 오른 남측 가족을 향해 북측 가족들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5년 10월 26일 강원 고성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0차 남북이산가족상봉 2차 작별상봉행사에서 먼저 버스에 오른 남측 가족을 향해 북측 가족들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92번째 과제인 ‘북한 인권 개선과 이산가족 등 인도적 문제 해결’ 분야에 문 대통령이 공약했던 ‘한반도 프라이카우프’
라는 표현은 없다.
대신 “국군포로ㆍ납북자 문제는 송환을 포함하여 당사자의 의견을 존중하여 다양한 해결책을 마련한다”는 추상적 표현이 나온다.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주관할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은 지난해 11월 언론 인터뷰에서 “독일에서 프라이카우프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딱 하나였다. 서독의 교회가 헌금을 동독 측에 건넬 때 모든 언론과 교회가 함구했다”며
“실제로 이런 사실(프라이카우프)이 알려진 시기도 통일 이후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프라이카우프)는 굉장히 나이브(순진)한 어프로치(접근)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으며,전문가들은 독일에서 프라이카우프가 가능했던 이유는 동독이 군사력을 증강할 우려가 사실상 없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미국 본토를 직접 타격할 핵무기를 만들고 있던 북한에 이를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다. 




 
     
프라이카우프(Freikauf) 제도로 석방된 동독 정치범들이 서독지역으로 건너와 자신들에게 발급된 신분증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평화문제연구소 블로그]



프라이카우프(Freikauf) 제도로 석방된 동독 정치범들이 서독지역으로 건너와 자신들에게 발급된 신분증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평화문제연구소 블로그]








‘퍼주기’ 논란 고려한 듯
지난해 대선 과정에 깊이 관여했던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10일 “초기 공약집에 프라이카우프라는 표현이 포함된 이유를 정확하게 복기하기 어렵다”면서도 “북한이 문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핵과 미사일 개발을 지속하는 상황에서 과거
 불거졌던 ‘퍼주기 논란’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국정과제 선정 과정에 고려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산가족 문제에 시간을 끌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문 대통령이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다”며
 “한미, 북미로 이어지는 두 번의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에 대한 확실한 전제가 이뤄질 경우 이산가족 상봉도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10월 26일 강원 고성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0차 남북이산가족상봉 2차 작별상봉행사가 끝난 뒤 한 할아버지가 북측 가족과 헤어지며 버스에서 북측 가족을 부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5년 10월 26일 강원 고성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0차 남북이산가족상봉 2차 작별상봉행사가 끝난 뒤 한 할아버지가 북측 가족과 헤어지며 버스에서 북측 가족을 부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회의 원로 자문단 21명에 포함된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이날 참석한 한 포럼에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이산가족 상봉과 성묘를 위한 고향방문단 교환은 가능할 것”이라며 “(대가로서의) 경제협력으로 식량이나 비료를 주는 건 옛 방식이다.


북한은 낙후된 의료ㆍ보건 분야의 지원을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분야에서 협력을 합의한다면 북한에도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전 장관은 이어 “북미의 포괄적 합의가 이뤄지면 대북제재가 완화될 것”이라며 “남북은 경제협력에 나서야 한다.

맞춤형 한반도 공동번영 구상을 북한에 제시하고 실시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한반도기를 흔들고 있는 남북 선수단.


<사진출처=평창올림픽사진취재단>





남북교류 비판 보수 세력의 모순점


“보수여, 박정희 7·4선언 정신을 잊였는가?”


호전성 내비치는 보수세력문재인 평화교류 비판 키워가 

남북적십자회담 이은 7·4선언 발표 통일원칙 세운 박정희 

민주 정권 퍼주기 비판수십조 이상 퍼줬던 보수 정권 

위협적인 대결주의 자국 국민으로부터 먼저 외면 받을 것 



 

우리측 문화예술공연단이 봄이 온다를 갖고 평양에서 대대적인 공연을 펼쳤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국무위원장이 직접 참관한 뒤 우리 공연단을 격려하면서 북측 공연단이 서울에서 가을이 왔다로 공연을 갖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남북간에 화사한 봄을 맞이했다는 분위기를 실감있게 감지한다.


민족정서를 공유하고, 동질성을 확인하고, 이해의 폭을 넓혀나가는 이런 교류는 근래 있는 일이 아니다.

수십 년전부터 남과 북을 오가며 행사를 가졌다. 그런데 자난 이명박근혜 보수정권 10년 동안 남북교류가 무 자르듯이 일시에 중단되자, 그런 일들이 언제 있었나 할 정도로 망각했을 뿐이다.

   

남북교류 조롱세력 

 

근래 10년동안 상호 비방과 위협, 전쟁 일보전까지 갔으니 갈 데까지 간 셈이다.

그동안 보수세력은 김정은 참수작전에 갈채를 보내고, 트럼프가 대신 북을 쳐주기를 은근히 바라는 호전성을 내비쳤던 것도 사실이다.  

 평화체제를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를 향해서 이들은 지금도 여전히 비난을 퍼붓고 있다. 그 사례를 몇가지 살펴보자 

 

이런 위장평화 공세는 이미 수 차례 경험했지엥요. 근데 결과가 뭐였소 동무?


박정희 대통령에게는 개거품 무는 문제인 유시민 임종석 등등 좌파들이 왜 김일성 김정은이에게는 머리를 조아리는지 모르겠습니다  

호들갑 떨지마라 우린 이미 김대중.노무현때 겪어보았던 일 아니더냐, 금방 통일이나 되는것처럼 떠들며 뒷구멍으로 핵개발 자금이나 대주고...지금도 무엇이 다르더냐.


한국 진보라는 자들은 오로지 종북, 친북일 뿐이다. 진정한 진보와 거리가 멀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전복이 진보가 아니다.  

거짓선동 불법탄핵으로 탄생한 정권이 문재인 반역정권이다.

문재인식 독재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이 문재인 개헌이다. 공산주의 개헌반대!  

 

사실과 다른 음해와 모략이 주를 이루지만 꾸준히 보수매체에 이런 댓글들을 올리고 있다. ‘봄이 온다평양공연에 대한 댓글이 이렇게 대결적이고 분열적이며 조롱과 야유를 담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과거의 모습들 


남북교류는 박정희 정권시절 시작되었다. 1971년 남북적십자회담에 이어 1972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때 금방 통일될 것처럼 모든 신문이 흥분했다.

오늘의 보수신문인 조중동이 더 달아올라 있었으며, 그때 필자는 현역기자로서 현장에서 지켜보았다.  

 

7.4성명은 통일의 원칙으로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하여야 한다.

 사상과 이념 및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이밖에도 상호 중상·비방·무력도발 금지, 남북한간 제반 교류의 실시, 남북 직통전화 개설, 남북조절위원회의 구성과

운영, 합의사항의 성실한 이행을 실시하기로 했다. 남북한이 분단 27년 만에 처음으로 합의한 당시의 3대 원칙은

 이후 남북한간에 이뤄진 모든 접촉과 대화의 기본지침이 되었다.

 

문재인 정권이 남북 화해 협력을 내세운 것도 박정희 7.4성명에 기초한 것이다.

그런데 현재 보수세력은 민족자주는 북한식 용어라며 종북이라고 비난한다.

그들이 신주단지 모시듯했던 박정희의 7.4성명을 부정하는 셈이다.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만 이루어진 것으로 몰아붙이는데 실제로는 그것도 아니다.

그것도 살펴보기로 하자. 

 

1982122일 전두환의 민족화합 민주통일방안에 이어 1989년 노태우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887.7선언

(자주·평화·민주의 3대 원칙 아래 공존공영-남북연합-단일민족국가라는 3단계를 거쳐 통일을 실현하자는 선언)

 있었다. 뒤이어 1994년 김영삼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나왔다.

 모두 현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민자당, 신한국당 시절의 평화통일 방안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북한 접근을 위한 북방정책의 일환으로 구소련에 30억달러(33000억원)를 제공했다.

김영삼 정권은 36억달러(4조원)를 지원했다.

 1994년 당시 북한이 핵개발을 하려 들자 국제사회가 나서서 핵개발하지 않으면 경수로를 지어준다면서 한반도 에너지개발기구(KEDO)를 통해 우리가 가장 많은 분담금을 냈다. 36억달러가 그 돈이다.  

 

그러나 경수로를 짓는 중 미국 대통령이 부시로 바뀌고, 부시의 대결정책으로 이는 없는 일로 되었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거부한 것이 아니다.

이후 김대중은 134500만달러(15500억원), 노무현 141000만달러(16200억원), 이명박 168000만달러

(19200억원)가 들어갔다(한나라당 윤상현 의원 발표. 2010.10.5. kbs 및 조선일보. 2013.1.7 서울신문 보도).  





 


▲ 과거 박정희 정권 당시 7.4남북공동성명으로 평화적인 통일 계획을 세웠다.



   

 

 

거짓된 프레임 

 

그런데도 김대중 노무현이 퍼주기했다고 공격한다.

보수정권 대통령들이 더많이 북에 지원하고도 김대중 노무현이 퍼주기했다고 공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수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등 실효를 거두지 못한 반면, ·노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갖고 남북화해 협력이 가시화

되자 그것이 돋보여서 오해를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알고 싶은 것만 알고 싶은 자의적 색맹이 되다 보니 이런 편견과 무지를 초래했다.

정치경제적 이익이 담보된다면 어떤 색맹도, 어떤 여론조작도 감수한다는 오만이 작동한 결과라고 본다.  

 어쨌든 2000년 김대중의 6·15선언과 2007년 노무현의 10·4 정상회담 선언이 나왔다.


6.15선언과 10.4 성명도 앞의 대통령들의 선언의 기초 위에서 마련되었음은 물론이다.

 이로써 역대정권 모두 남북이 서로의 존재(체제)를 인정하고 교류·협력을 통해 느슨한 연합·연방제를 거쳐 완전한 통일을 이룬다는 평화통일 원칙이 천명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명박근혜 시절, 무력·흡수통일을 공공연히 주장하면서 평화통일을 말하면 종북, 빨갱이로 몰아붙였다.

 박정희, 노태우, 김영삼이 주장한 평화통일은 괜찮고, 김대중 노무현이 이를 반복하면 빨갱이가 되어버리는 모순.

이래서 몰상식하고 안하무인이며, 무지하다는 말을 듣는다.

 

한국 수구보수의 가장 큰 죄악은 남북대결과 지역분열과 좌파 색깔론이다.

대선에서 이기고, 패권을 유지하는 기제로 활용했지만, 국민을 분열시키고 파편화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이 비용이 적게 들고, 권력과 그 권력에 기생한 자본시장을 독점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하더라도 반역사적

이고, 반국민적 퇴행이란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구세력이 북의 위협과 호전성을 과도하게 포장해 유포시킨 왜곡된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국민이 세뇌되니 일정 부분

성공했다고 볼 지도 모른다.

 그 지원세력이 지역적으로 인구 수가 많은 영남이 뒤에 버티고 있으니 과신했는지도 모른다. 여러 가지 혜택으로 그들이 그것을 신념화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북의 핵개발이 반북 대결의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이익 때문에 일면의 진실에만 가닿고, 다른 눈은 배제하지 않았나,

냉정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북의 핵개발이 옳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생존방식이 그것 이외 다른 길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다른 출구도 모색할만한데도 주구장창 대결과 척결을 강조한 나머지 미국의 군산복합체만 살판나게 만들지 않았나도 살펴보아야 한다.

 

최근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중앙일보 인터뷰를 관심있게 보았다.

그는 인터뷰에서 “(보수가)성장 만능주의와 냉전 반공주의를 고집하고, 관료-재벌-영남으로 연결된 구체제의 복원을

 꾀한다면 정치적 소멸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러면서 한국의 보수는 1960~70년대 산업화를 주도한 국가 관료엘리트와 기업엘리트, 권력과 성장의 과실을 편중해온 경북(TK) 지역이라는 3자 관계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이들은 80년대 말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야당과 개혁적 사회세력의 도전을 제압할 수 있을 만큼 패권적 기반이 강했다. 이런 기반이 있었기에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거친 후 손쉽게 재집권에 성공했다.

압도적인 권력자원과 이를 통한 쉬운 집권은 보수가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의 부재, 도덕적 리더십의 부재로 이어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지난 19대 대선은 이런 한국 보수의 기나긴 퇴행 과정의 절정에 이른 결과로 이해된다

분석했다 


 한반도 안보 정세가 요동치고 있는데, 보수의 안보관에도 변화가 불가피해 보이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민주주의 하에서도 한국의 보수는 탈냉전 세력이 정치권에 진입하는 것을 가로막기 위해 노력해 왔다.

진보·개혁 세력 등 뭐라고 부르든, 이들을 용공·친북·좌경으로 호명함으로써 그들을 손쉽게 다스리려고 했다 

 

한국정치에서 숱한 색깔논쟁은 이런 상황을 잘 보여 준다.

지난 대선 때도 극보수를 대표하는 자유한국당 대선후보가 문재인 정부를 종북정권이라고 호명하지 않았나.


하지만 그런 호명은 진보세력과 진보적 정부에 위해를 가하기보다는 오히려 보수의 건강한 재건을 논의하고 탐색하지 못하게 하는 큰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 보수 자신을 정신적·지적 유아로 만드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진단했다.

 

그렇다면 보수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나하는 질문에 그는 남북 관계에서 보수는 좀더 평화지향적이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는 핵무장한 북한을 남북한의 안정적인 평화공존의 틀 속으로 어떻게 끌어들이느냐 하는 절박한 과제를 안고 있다. 이 과정에서 보수가 진보에 뒤져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북한 핵·미사일 개발이 가공할 수준에 이르렀고 잘못 대응하면 엄청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반북이냐, 친북이냐는 이분법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이 분명해졌다.

지금까지의 남북 관계와는 질적으로 다른 대북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보수에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필자가 최 교수의 인터뷰를 상세하게 인용한 것은 필자가 말하고자 한 내용이 그대로 함축되어있기 때문이다.

 다만좀더 보완한다면, 70년 체제동안 냉전 반북 대결주의로 이익을 취한 세력이 너무나 많다는 점이다.

바로 관료엘리트, 그들과 카르텔을 형성한 기업과 보수언론, 그리고 지역적으로 영남세력이며, 벌써 2, 3대 세습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통치 프레임으로 내놓은 냉전적 프로파간다에 국민이 세뇌된 데다 그들의 후손들마저 그것을 신념화 이념화

하고 있는 것이다.

   

위협적 대결주의 

 

그러나 시대정신은 그것이 아니다.

세계적 흐름은 대결이 아니라 우호와 협력으로 먹고 살고, 분열과 갈등을 봉합해 더불어 살아가는 가치를 상위에

 두고 있다.


유럽연합이 그렇고,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이 그렇고, 동북아 질서 재편 흐름도 그렇다.

작은 이익을 얻기 위해 큰 흐름을 그르치면 종국에는 무너진다.

변화하지 않고 여전히 대결해서 이익을 취한다면 종국에는 소멸하게 되어있다.


특히 위선의 위협적 대결주의는 자국 국민으로부터 먼저 외면받을 것이다. 대전환의 시기가 더많은 이익이 창출된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된다 




이계홍 주필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이 6일 서울 마포구 민화협 사무실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남북정상회담 후 진행될 남북민간교류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 있다.

/윤희훈 기자



김홍걸 "김정은 주변 젊은 엘리트들이 그를 바꿨다…대북퍼주기는 잘못된 표현"



北 확실히 달라졌다…

북한 예술단 서울 공연서도 달라진 분위기 느껴져”


“북에 또 속으면 안된다고?

무능한 사람들의 패배주의적 사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인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은 6일 “김정은이 굉장히 실용적인 사고 방식을 갖고 있다”면서 “(김정은의) 그런 사고 방식은 젊고 국제감각 있는 엘리트 그룹의 보좌 때문”이라고 했다.

 

김홍걸 의장은 2011년 1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때 조문을 위해 이희호 여사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을
한 차례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 200여 개 정당, 종교, 시민사회단체의 남북 통일 관련 협의체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서울 마포 민화협 사무실에서 가진 본지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고 “북한은 2000년 이후 젊은 엘리트들을 대거
 해외로 유학을 보냈다”며 “그때 공부하고 돌아온 세대가 김정은을 보좌하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의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 ‘대북 퍼주기’ 논란에 대해선 “북한에 지원한 액수가 다른 정부에 비해 많은 것도 아니다.
정부가 북한에 현금을 준 것은 얼마 안된다”며 “퍼주기는 틀린 표현”이라고 했다. 
 그는 “앞으로 핵문제가 풀리면 대북 투자에 적극 나서야 하는데 퍼주기 비난에 막혀 중·일 등에 기회를 뺏길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김 의장은 남북정상회담 후 과거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규모가 큰 남북 교류와 경제협력이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일단 유엔 대북제재가 풀려야 하겠지만, 북쪽에선 경협의 규모나 수준을 크게 생각하고 있다”며 “대도시엔 첨단산업기지를 세우고, 농촌을 현대화하는 플랜이 있다고 들었다”고 했다.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윤희훈 기자




다음은 김 의장과의 인터뷰 전문.

-5일 진행된 우리 예술단의 평양 공연은 어떻게 봤나?

“북측 예술단의 서울 공연에서부터 북쪽의 달라진 태도와 변화된 상황을 느낄 수 있었다.
 어제 공연장의 북한 관객들을 봤을 때 옛날과 달리 굉장히 편하고 개방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북쪽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때 오고 예술단이 방남하고, 또 우리가 갔을 때 맞이하는 북측 관계자들의 태도를 보면
확실히 달라졌다.

과거 강경파로 알려졌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도 우리에게 친절한 태도로 나오고, 특히 첫 공연날 발생한 취재 문제에 대해서 이례적으로 사과까지 했다.
그것은 결국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밝힌대로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확고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자신이 부하들에게 확실하게 주지시켰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 아닌가.”

-북한이 달라졌다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북한 태도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북한에 속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를 하는 것 자체가 무능하고 무책임한 사람들이 하는 패배주의적이고 비관주의적인
사고다.
북한이 대화를 하러 나오면서 부드럽게 나오는 것을 두고 위장평화 전술이라고 하는데, 그런 주장을 하는 분들은 북한이 당장 전쟁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서울 불바다’를 말하고, 미사일을 쏴대는 것이 좋다는 말인가?

결국 북한에게 속을 게 뻔하니 아무 것도 하지 말자는 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북한이 만약 위장평화 공세로 나오더라도 대화를 하면서 자기들이 한 말을 지킬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게 외교이고,
 능동적인 전략이다.

북한은 어차피 믿을 수 없으니까 외면하면 된다는 식으로는 한반도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없다.
 북한을 맨날 ‘깡패국가’ ‘불량국가’ 식으로 표현하는데 그렇다고 북한을 고립시키고 외면하는 것으로 상황을 개선할 수 없다. 북한을 정상국가로 만들려면 교류하면서 개방하도록 해야 한다. 저 사람들은 원래 저런 사람들이니까 대화하지 말자는 건 너무 무책임하다.”

-김영철이 취재 문제는 사과했지만 천안함은 그냥 넘겼다. 오히려 ‘남측에서 천안함 주범이라고 하는 사람’ 운운하면서 논란을 야기했다.

“그 발언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순 없다.
천안함 관련 발언은 자신은 관련이 없다는 자신감에서 한 말일수도 있다.
런데 그것을 마치 천안함 유족들이나 우리 국민을 조롱하려고 했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건 옳지 않다고 본다.

나는 김영철 발언을 ‘나는 남쪽과 잘 지내려고 하는데 왜 나를 악마처럼 취급하느냐’는 항변이 섞인 말일 수도 있다고
본다.”




                


3일 오후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남북합동공연 '우리는 하나'에서 남북
 예술단이 공연을 마친 뒤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과거 김정은을 직접 만난 적이 있다. 김정은 체제가 정말 달라졌다면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나?

“저는 이게 갑작스런 변화라고 보지 않는다. 물론 북한이 핵을 얼마나 쉽게 포기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제가 본 김정은은 굉장히 실용적인 사고 방식을 갖고 있다.
그런 사고 방식은 젊고 국제감각 있는 엘리트 그룹이 보좌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3년전부터 중국 소식통을 통해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이 어느정도 완성 단계에 이르기 전까지는 대화에 쉽게
 안나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북한은 박근혜 정부와 오바마 행정부를 신뢰하기 힘들고, 자신들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핵이 어느 수준까지 오르지 않으면 자기들을 대화 상대로 제대로 인정을 안할테니, 확실한 흥정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핵 무력 개발이 어느 정도 단계에 들어서면 그때부터 180도 태도를 바꿔서 대화와 협상을 하자고 나올 것이다’고 했다. 들은 이야기 그대로 됐다.
 북한은 예전부터 그런 계획을 갖고 있었다.

 거기에 마침 올림픽이 있었고, 또 우리 측에서 올림픽 기간 한미군사훈련을 연기하겠다고 치고 나간 게 도움이 됐다. 북쪽도 남측 정부와 한번 대화 해볼만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김정은이 신년사로 화답했다.
 갑작스러운 변화는 아니다.”

-문 대통령의 한미군사훈련 연기 의사가 북한을 움직였다?

“문 대통령이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훈련 연기 의사를 밝혔다.
 아직 미국과 합의 되진 않았지만 미국도 수긍할 것이란 생각에 먼저 치고 나갔다.
이걸 보고 북측에선 남측 정부도 상당히 적극성을 갖고 있다고 판단하게 됐다.”

-앞서 김정은의 젊은 엘리트 보좌진을 언급했다. 어떤 조직인지 실체를 알고 있는게 있나?

“그 정체는 아무도 모른다. 중국과 일본의 정보통들에게 물어보면 ‘분명히 있는데 정체가 안드러난다’고 한다.
북한은 2000년대 6·15 공동선언 이후 젊은 엘리트들을 대거 해외로 유학을 보낸 적이 있다. 해외 곳곳으로, 미국으로
까지 보냈다.
개인적으론 그때 공부하고 돌아온 세대가 아닐까 추정한다.”

-북한이 핵무력을 완성했다고 보나?

“100퍼센트 완성이라고 보이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 큰소리 칠 수 있는 수준까지는 됐다고 본다.”

-북한이 포기를 염두에 두고 핵개발에 나섰다는 말이 된다.

“포기하더라도 값을 비싸게 받을 수 있다면 가치가 있다. 당장 포기하고 항복한다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태도와 주변국의 보상에 따라서 핵포기가 빨라질 수도, 늦어질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흥정을 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이 정도 능력이 돼야 상대가 존중한다는 마인드가 있었다.”

-수단에 불과한다면 정말 폐기할 것이라고 보나?

“물론 이게 하루아침에 다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가격만 맞는다면. 가격은 경제적인 것만 말하는게 아니다.
평화협정이나 북미수교와 같은 불가역적인 안전보장이 필요하다.

 미국은 불가역적인 핵폐기만 말하는데, 북한에서는 자기네들의 안전보장도 불가역적으로 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핵을 깨끗이 포기했는데 갑자기 미국이 태도를 바꾸면 북한으로선 당하게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겠나.
핵포기가 북한으로서 쉬운 일은 아니다.
핵을 그동안 종교처럼 주민들에게 강조해왔다.

김정은 입장에선 핵포기의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안전보장을 받는다면 ‘우리의 힘이 커져서 미국도 우리를 함부로
못하게 됐다’는 식으로 정치적으로 선전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외부에서 경제적으로 지원이 들어와서 국민 삶이 향상된다면, 상층부부터 서민들까지 경제적 혜택을 누리게 된다면 핵포기를 합리화할 수 있다.”

-불가역적인 안전보장을 말했는데, 북한이 원하는 안전보장 수준은 어느정도라고 보나?

“내가 북한과 직접 협상을 한 건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 그들의 생각을 다 알순 없다.
전 그런 부분 때문에라도 북한과의 대화가 중요하다고 주장을 해왔다.
대화를 해야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다.

또 대화를 해야 무엇보다 중요한 신뢰 구축이 가능하다.
상호 신뢰가 구축되면 사소한 것 하나하나를 따지다가 협상이 깨지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신뢰만 구축되면 어렵다고 생각하던 일도 쉽게 합의가 된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연합훈련 축소,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연합사 해체, 주한미군 철수까지 요구할 것이라고 한다.

“저는 앞의 세가지는 받아들일 수 있는 주장이지만, 주한미군의 무조건적인 철수는 우리 입장에서 무조건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북한이 그걸 요구할 정도로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은 자신들의 안전만 보장하면, 주한미군이 있어도 개의치 않는다는 이야기를 이미 김일성 주석 때부터 해왔다.
김정일 위원장 때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쉽게 북미정상회담에 응한 것은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판단했고, 또 지금 얘기한 것처럼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5월에 열릴 북미정상회담이 잘못되면 되려 미국이 군사적 옵션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의견도 있다.

“북한이 회담에서 백기투항할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이 착각하면 안된다.
 전쟁에서 패배한 패전국도 아닌 북한이 그럴 이유가 없다. 요즘 자주 거론되는 리비아식 해법도 3년 걸렸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김정은이나 한국이나, 정상회담에 응한 것은 일종의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격이다.

여기서 무리하게 내리려고 하면 큰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쉽게 유턴을 못한다.
트럼프 입장에선 그동안 악마로 여겨왔던 북한과의 대화를 성급하게 OK 한건데, 갑자기 태도를 바꾸면 국내 정치적
으로 타격이 크다.

 김정은이 베이징을 방문한 것은 미국이 협상 결렬됐다고 해서 군사적 옵션을 선택하는 행위를 쉽게 하지 못하도록
 안전 장치를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양측 다 쉽게 판을 깰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북한에게 중국이 안전장치라면, 미국은 국내 정치 상황이 안전장치라는 말인가?

“그렇다. 지금 이게 흐지부지되거나, ‘협상했는데 실패다’ 이렇게 되면, ‘뭐하러 거기 나갔느냐’는 비난이 트럼프에게
쇄도할 것이다.
안그래도 지금 정치적 입지가 안좋은 상황에 집중 포화를 받을 수 있다.

트럼프가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직접 나서서 큰 가닥은 합의를 보고, 그 공을 자기가 차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강하게 밀어붙였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2월 메릴랜드주 옥슨힐에서 열린 보수정치행동위원회(CPAC) 연례총회에서
연설하는 볼턴 NSC 보좌관 내정자.

 /연합뉴스




-리비아식 해법을 언급했는데, 리비아식 해법을 북핵 해결에 적용할 수 있다고 보나?

“리비아도 하루아침에 다 포기한 것은 아니다.
 미국의 대표적 강경파인 존 볼턴이 주장하는 북핵 해결 방안은 세계 역사상 한번도 없는 해결방식이다.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북미정상회담이 비핵화를 위한 대화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핵무기 프로그램들을 폐기할 것인지 방법부터 논의하자고 요구할 것이라며, 북한이 비핵화를 한다고 해서
미국이 경제적 지원을 제공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볼턴의 구상은 불가능한 이야기다. 리비아도 비핵화까지 2~3년
이 걸렸다.

리비아는 북한처럼 핵개발이 고도화되지 않은 상태였다.
 북한만 압박할 게 아니라 당근도 보여주면서 ‘너희가 빨리하면 빨리 할수록 이 당근을 가져갈 수 있다’ 이런 당근과
채찍 양면을 다쓰는 전략이 필요하다.”

-북미 협상을 앞두고 우리 정부가 ‘중재자’라고 역할을 표현했는데.

“중재자 또는 조정자.”

-보수 진영에선 ‘우리가 핵·미사일의 피해 당사자인데 어떻게 중재자가 되냐’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의 이해 관계와 우리의 이해관계가 100퍼센트 일치하진 않는다.
미국 강경파 중에는 한국에 죽는 사람이생기더라도 그냥 전쟁을 해서 북한을 공격하자는 사람도 있다.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미국엔 자기 나라에만 미사일이 안오면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그런 이야길 할 순 없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전쟁이 나면 일본에도 불똥이 튄다.
주변국과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의 입장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중재자가 의미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벌써 북미회담이 성사된다고 하니까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에서 따돌림
(패싱)을 당할까봐 일본과 중국이 안달한다.

우리를 대하는 태도도 옛날보다 훨씬 부드러워지고, 우리에게 구애하는 상황이 됐다.
저는 전부터 ‘우리가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과거 6·15 회담 이후에 했던 것처럼, 중간에서 상황을 잘 조정해서 평화를 이끌어내는 역할만 어느 정도 한다면 대한민국의 국격이 높아지고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는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 그렇게 돼가고 있지 않나.

‘북핵 문제는 우리가 당사자인데 왜 중재자냐’고 하는데, 북핵 문제는 근본적으로 북미간의 갈등 때문에 생긴 것으로,
우리가 모든 걸 결정할 수 없다. 미국도 그걸 받아들이지 않고, 북한도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다.

 과거 북한은 우리와 핵문제 자체를 논의조차 안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특사단에게도 비핵화는 김일성의 유훈이라고
 이야기했다. 이것만도 긍정적인 변화다.
 우리에게 외교적으로 유리한 상황이 왔다고 본다.”

-김정은이 시진핑 주석을 만났을 때, ‘선대의 유훈은 비핵화’라고 했다. 그런데 이걸 두고 ‘북한의 선대 유훈은 핵무장 아니었나’는 말도 나온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 때부터 자기들은 한반도에 핵이 하나도 없는 상황을 원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그 당시에 남쪽엔 미국의 전술핵이 있었고, 걸핏하면 미군의 핵항공모함 등 전략자산이 왔다.
그러자 북측에선 ‘우리를 핵으로 위협하니, 우리도 핵을 가져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북한은 궁극적으로는 양쪽에 핵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 가장 바람직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후로 핵개발을 하면서 김일성 유훈 이야기는 쑥 들어갔다.
갑자기 이를 꺼낸 것은 비핵화를 진지하게 논의할 준비가 돼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의 말은 곧 법이기 때문에 이걸 180도 뒤집지는 못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이어질텐데, 민화협으로서의 역할이 있다면? 구상한 민간교류 방안이 있나?

“아직은 관망하고 있다.
정상회담 전까지는 아무래도 정부 대 정부 간의 여러 가지 논의할 문제가 많으니, 민간은 그 후에 나서는게 옳다고
 본다. 정상회담 후에 방북해 민간 교류를 어떻게 활성화할 수 있을지 논의하려고 한다.”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윤희훈 기자

                  


-방북해 논의하게 되면 교류 방안은 문화교류를 중점적으로?

“지금 상황에 단정적으로 뭐는 할수 있다, 뭐는 할 수 없다고 하기 어렵다.
지난 두어달간 북쪽과 접촉해보고 느낀 점인데, 북한 사회가 상당히 많이 변했다는 것이다.
 김정일 정권과 김정은 정권은 많이 다르다.
북쪽에서 지금 생각하는 남북 교류는 과거보다는 훨씬 개방적이고 좀더 규모가 크다.

가서 그들의 생각을 직접 들어보기 전까지는 우리가 옛날 경험을 갖고 ‘이런 걸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건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향후 남북 경제협력도 파격적으로?

“일단 유엔 대북제재가 풀려야 하겠지만, 그쪽에선 큰 규모와 수준의 경협을 생각하고 있다. 개성공단의 경우, 솔직히 싼 임금을 우리가 활용한 것 아닌가.
듣기론 북한에서 앞으로 생각하는 경제개발 플랜은 대도시엔 첨단산업기지를 세우고, 농촌을 현대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쪽에서 품종개량한 종자를 받는다든지. 또 동해안의 나진선봉에서 금강산까지 신도시와 관광특구를
 개발하겠다는 플랜이 있다고 들었다.”

-북한은 ‘모기장식 개방’(범죄, 부정 부패 등은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경제적으로 필요한 것만 받아들이는 점진적·
선별적 경제 개방 방식)을 추진하려고 하는데, 저런 구상이라면 너무 빠른 것 아닌가?

“중국도 특정 지역만 개방하면서 서서히 개방 범위를 늘려갔다.
 북한의 개방은 중국보다 속도가 더 빠를 수도 있다.”

-개방이 너무 빨리 전개되면 체제 안전성을 위협하는 것 아닌가?

“북한은 중국이나 베트남 등을 보면서 일당 지배를 계속 하면서도 개혁개방을 하는 모델을 계속 연구하고 있다.
최근 보도를 보면 중동의 왕국이나 심지어 싱가폴도 연구 대상으로 본다.
우리는 싱가폴을 완전한 자본주의 국가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2대 세습을 했고, 사실상 1당이 지배하는 나라다.

하지만 경제는 엄청 발전했다.
 이 또한 북한이 고려할 수 있는 모델이다. 꿈 같은 이야기지만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자신 이후론 권력이 세습되지 않더라도 경제개발에 나설 수 있다고 보나?

“김일성과 김정일, 두 선대 지도자는 과거를 기반으로 권력을 유지했다. 항일투쟁과 최강대국인 미국과 싸워 이겨냈다는 것을 정권 존립 근거로 삼았다. 김정은은 경제를 발전시켜 다들 잘먹고 잘사는 나라로, 쉽게 말해서 그걸 만든
지도자라는 점을 내세워 자신의 집권 정당성을 찾을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박정희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그들에게 박정희의 인권 탄압과 민주주의 말살을 이야기하면 ‘박정희 덕분에 먹고 살게 됐다’며 정당화하지 않나.”

-중국 정보통을 많이 만난다고 했는데, 현재 북한의 움직임을 중국에선 어떻게 보고 있나?

“우리 쪽에선 지금 과거 생각만 하면서 ‘북한을 믿을 수 있느냐, 북한이 진짜 비핵화하겠느냐, 저러다 금방 태도 바꾸는 것 아니냐’고 염려한다. 반면 중국에선 북한이 순식간에 친미·친서방으로 갈까봐 두려워한다.
 중국 당국과 잘 통하는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남북미가 협상을 하는 3자 구도에서 중국이 따돌림 당하지 않을까 굉장히 걱정을 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 합의를 했는데, 핵 사찰을 IAEA가 아니라 미군이 직접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걱정까지
하더라. 우리로선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날까 하는데, 그 쪽에선 벌써 북쪽 땅에 미군이 발을 닿는 걸 생각하면서 공포를 느낀다. 이런 걱정 때문에 부랴부랴 요구조건을 다 들어주면서 김정은을 베이징으로 초대한 것이다.”

-중국이 김정은을 베이징으로 부른 게 ‘차이나 패싱’을 막기 위해서인가?

“2015년 12월 북한의 모란봉악단이 베이징을 갔다가 취소하고 돌아간 적이 있다.
중국에선 북한의 추가 핵실험 정보를 파악하고, 모란봉악단 공연으로 분위기를 푼 다음에 김정은을 초대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일이 깨지는 바람에 오히려 북한이 핵실험을 앞당긴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북중정상회담이 쉽게 이뤄지지 않은 이유가 북쪽의 전제조건, 특히 의전과 경호를 김정일 수준으로 해달라는 요구를 중국쪽에서 쉽게 받아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제가 파악한 바로는 연초부터 중국이 북한 최고지도자의 방문을 성사시키려했는데 북쪽에서 답을 안주면서 애를
태웠다.
그러면서 북한이 ‘우리가 이때 가려고 하는데, 추가로 두세가지 조건을 다들어주면 갈 수 있다’고 했다.
급한 입장인 중국이 체면 불구하고 다 들어줄테니 오라고 한 것이다.”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오른쪽 두 번째)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왼쪽 네 번째)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중 혈맹은 사실상 균열됐다고 보나?

“균열은 예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서로 필요한 부분이 있다.
 지금은 중국이 더 아쉬운 입장이 됐다. 남북미 3자회담 이야기가 나오는데다, 김정은이 평양에 돌아간 다음에 ‘한국과 미국이 선의를 보인다면 비핵화 해결 가능하다’는 말이 나왔다.

이 이야기는 비핵화 프로세스를 3자가 다 할 수 있다. 중국은 안끼워줄 수 있다는 말이다.
 중국이 김정은을 융숭하게 대접했는데, 14억을 호령하는 황제 지위에 오른 시진핑 입장에선 체면이 깎였을 수 있다.
중국 국민 중 북한의 전략적·지정학적 역할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왜 북한한테 저래야 돼’라며 불만을 토로할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이 미국과 가까워지고 중국과 멀어지면, 중국으로선 악몽같은 시나리오다. 중국은 그런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

-최근 ‘북중정상회담 이후 북중 국경 지역에 대한 제재를 풀었다’는 보도가 나온다.

“제재는 어느정도 완화할 것이다. 미국도 북미협상이 어떻게 되든간에 제재를 강화하자는 주장은 먹히지 않을 것이다. 국제사회는 유엔제재가 북한을 고사시키기 위한 것이 아닌, 북한을 평화적 해결을 위한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명시했다. 어쨌거나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나왔다.

-이번 대화 국면을 계기로 대북 제재는 완화된다?

“저는 단계적으로 북한이 양보를 하면 미국도 단계적으로 양보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협상하면서 당근과 채찍을 다 써야지, 자꾸 채찍만 쓰려고 하면 누가 협상을 하겠느냐. 과거 저희 아버지(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6·15 회담을 하고 온 후 남북교류가 활성화됐을 때, 보수세력이나 야당인 한나라당에선 상호주의를
 강조하면서 ‘우리가 하나 주면 저쪽에서도 하나 받아야지, 왜 주기만 하느냐’고 비판했다.

상호주의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미국과 북한의 협상도 상호주의 원칙이 적용돼야 하지 않나. 주고 받는 게 결코 나쁜
 게 아니다. 제재 완화는 상대 태도가 나빠지면 다시 강화하면 된다. 제재를 완화하는 게 돌이킬 수 없는 뭔가를 주는 건 아니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인 ‘햇볕정책’에 대해 당시 야당에선 ‘퍼주기’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나?

“인터넷에 보면 과거 자료가 다 나와 있다. 김대중 정부가 북한에 지원한 액수가 다른 정부에 비해 많은 것도 아니다.
또 현금을 지원한 게 아니고 식량이나 비료 등을 지원했다.
 현대에서 송금한 것은 민간 기업 차원에서 북한의 금강산 등의 사업권을 따내기 위한 비즈니스 성격의 거래다.
정부가 북한에 현금을 준 것은 얼마 안된다. 퍼주기라는 건 틀린 표현이다.

앞으로 핵문제가 풀리고 남북관계가 풀려 제재나 걸림돌이 사라지면 바로 북으로 진출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 시점에 북한 투자를 퍼주기라고 비난하며 반대할까봐 걱정된다.
북한 경제가 개방되면 북한이 한민족이라고 우리에게 우선권을 주며 우리를 기다릴 것이라고 기대해선 안된다.

 김정은이 경제 발전을 중시하고 실용주의적 사고를 갖고 있다면 누구든 먼저 돈을 갖고 오고, 또 더 많은 돈을 갖고
온 쪽과 파트너십을 맺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북방경제를 개척할 기회를 중국이나 일본에 뺏길 수도 있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북한에 진출할 길이 뚫린다면 이것은 국운 상승의 절호의 기회다.

우리가 대륙으로 진출하고 동북아에서 정말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다는 뜻이다.
절대 이를 놓쳐선 안된다.”

-시간끌기가 안되려면 비핵화 타임테이블을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아까부터 상호주의를 이야기했다.
 북한에게만 언제까지 동결하고 폐기하라고 요구할 게 아니다.
한국과 미국도 어떤 식으로 북한 체제의 항구적인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는지, 또 북미수교를 해줄 수 있는지 제시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백기투항하라고 하면 안된다. 서로 주고 받는 식으로 해야 한다.”

-언제까지 비핵화를 완료하겠다고 명시해야 하지 않나? 어느 정도의 시간이면 가능하다고 보나?

“회담을 하기 전인데, 그걸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다. 난 빠르면 2~3년내에 가능하다고 본다.
특히 북쪽에서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먼저 나오면 우리도 안심하고 여유를 갖고 (비핵화 프로세스를)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삼남으로
, 김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사이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객원교수로 일하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해 민주당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12월 민화협 대표 상임의장으로 취임했다. 고려대 불어불문학과를 나와,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교 대학원
국제정치학 석사를 수료했다.
미국 포모나대학교 태평양연구소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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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전신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 본관 집현실에서 안드레이 키스카 슬로바키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2018.04.10.   photo1006@newsis.com



【서울=뉴시스】전신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 본관 집현실에서

 안드레이 키스카 슬로바키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2018.04.10. photo1006@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