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날 기념식은 초대장 없어도 신분 확인 후 입장이 가능한 열린 기념식으로 개최된다.
아울러 5·18 진상규명 과제 중에서도 행방불명된 사람들 문제가 구체적인 사연과 함께 제기될 예정이다.
행사 관계자들은 무대 세트 점검 등 막바지 기념식 준비에 여념이 없다.
이른 아침에도 불구하고 유가족들과 추모객들의 발길도 하나 둘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두 번째를 맞이한 38주년 기념식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시작된다.

사진=조시영 기자
기념식은 초대장 없어도 신분 확인 후 입장이 가능하다.
기념공연으로 5·18 당시 행방불명된 8살 배기 아들을 38년 동안 찾아다니는 이귀복씨의 사연이 소개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 5·18 진상규명 과제 가운데 하나인 행방불명자를 찾는 암매장 발굴 작업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을 계획이다.
이번 기념식에는 5·18을 해외에 널리 알린 외국인들도 대거 참석해 의미를 더할 예정이다.
한편 지난 17일 '보아라 오월의 진실, 불어라 평화의 바람'이라는 주제로 열린 전야제에는 1만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뜨거운 추모 열기를 반영했다.
[광주CBS 조시영 기자] cla80@naver.com

(광주=연합뉴스) 장덕종 기자
![전두환 회고록[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t1.daumcdn.net/news/201805/03/yonhap/20180503163605481gdid.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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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 규명 범위에 성폭력 포함
9월 진상규명위원회 활동 시작
끝나지 않은 진실찾기 본격화
전두환 등 추가 기소할 수도
1980년 5월19일 당시 여고생이었던 ㅇ씨는 광주에 있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다른 여성 2~3명과 함께 군인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또 그해 9월4일 5·18 관련자로 수사를 받던 김선옥씨는 계엄군합동수사본부 수사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이들 말고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나 수사관에게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한 사례는 여럿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광주항쟁 당시 여성에 대한 성폭력과 고문 등 전체 피해 상황은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최근 <한겨레>의 연속 보도를 통해 당시 광주에서 계엄군과 수사관들로부터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했다는 증언이
잇따라 터져나왔다.
국회에서는 진상규명의 범위에 ‘성폭력’을 포함하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이 제출됐다.
현행법에서는 진상규명 범위에 대해 ‘사망·상해·실종·암매장’이 열거돼 있는데 여기에 ‘성폭력’(최경환 민주평화당
의원 대표발의)을 추가하거나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 규정하는 ‘성폭력 범죄’(손금주 무소속 의원
대표발의)를 추가한 것이다.
집단발포 진실규명과 처벌도 중요한 문제다. 1980년 5월20일 밤 10시30분 광주역에서 계엄군의 첫 발포, 21일 낮
1시 도청 앞에서의 첫 집단 발포는 광주학살의 책임 소재를 가릴 중요한 사건이다.
그러나 1995~1997년 검찰 수사에선 이때 발포 명령자를 기소하지 못했고 재판부 역시 아무에게도 책임을 묻지
못했다.
전두환 등 5명은 5월27일 도청 소탕작전(상무충정작전)에 대해서만 내란목적 살인죄로 유죄판결을 받았을 뿐이다.
오는 9월 ‘5·18 진상규명 특별법’에 따라 진상규명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하면 20여년 전 수사와 재판 때 가리지 못했던 성폭행 가해자, 집단발포 명령자, 헬기사격 책임자 등을 조사하게 된다.
새로운 증거들이 드러나면 전두환 등 가해자를 추가 기소하거나 반인도적 범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의견도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다.
과거 군 보안사와 국방부 등이 구성한 ‘5.11연구위원회’의 광주항쟁에 대한 왜곡·조작의 진실 규명도 조사 범위에 포
함돼 있다. 일각에서 제기했던 북한군 개입 여부와 북한군 침투 조작에 대해서도 진위 여부를 검증한다.
5·18 피해자들을 위한 법과 제도 정비도 준비 중이다. 지난 16일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18 민주화운동 관련
특별재심 청구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의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현행법은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행위나 1979년 12·12 군사반란과 1980년 5월18일을 전후해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 범죄 행위’를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로 유죄 확정 판결을 선고받은 경우에만 특별재심을 신청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노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은 특별재심 대상 범위를 확대해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일반 형사 사건을 추가하고, 다른 범죄와 경합돼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경우에도 특별재심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5·18 민주화운동에 실제로 기여하고도 다른 범죄가 추가돼 특별재심을 청구하지 못한 경우를 구제하기 위함이다.
이밖에 암매장 추정지의 조사·발굴, 왜곡과 폄훼를 막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건의가 계속됐지만 아직 성과를 내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했던 민주인권기념파크 조성과 국가트라우마치유센터 건립 등 광주 치유를 위한 사업 속도도
더딘 편이다.
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는 “5월 해결의 과제가 워낙 다양해 국가와 시민이 할 일이 따로 존재한다.
정부는 앞으로 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시민은 5월 정신이 인권과 평화로 꽃필 수 있도록 사회 분위기를 바꿔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안관옥 김규남 기자 okahn@hani.co.kr

1988년 양심선언 후 30년 만에 침묵 깬 허장환씨
전두환 다녀간 날 밤 발포명령 내려져..실탄 무장 지시받아"
광주 보안부대 수사관 허장환씨 30년 만에 다시 증언
"모든 문제는 전두환 사령관이 책임진다는 말도 들었다"
"북한군 개입설은 공신 책봉 눈먼 자들 조작 시나리오"
(화천=연합뉴스) 이재현 기자 = "1980년 '광주사태'(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나는 광주 505보안부대의 핵심 수사관
이었다.
그 한복판에서 내가 바라본 광주는 공신 책봉에 눈먼 현지 지휘라인이 짠 시나리오대로 진행된 조작극이었다."
1980년 5·18 당시 광주 505보안부대 수사관으로 '전남·북 계엄분소 합동수사단 광주사태 처리수사국 국보위 특명단장'이었던 허장환(70)씨는 5·18 민주화 운동 38주년을 나흘여 앞둔 지난 15일 무거운 입을 떼며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1988년 12월 6일 서울 여의도 옛 평화민주당사에서 광주사태의 사전 조작 및 발포 책임자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라는 양심선언을 한 인물이다.
양심선언 후 그는 이른바 '보안사 5·11 분석반'의 온갖 회유와 협박 등에 못 이겨 쫓기다시피 강원도 화천에서 30년째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허씨는 "정치군인들의 강압 때문에 군에서 쫓겨나 숨죽여 살아왔지만 이제는 역사 앞에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실을
알려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며 "양심선언 당시 제기한 조작 의혹 중 일부 사건은 아직도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점 등에 의구심을 품어 오다가 더는 침묵할 수 없다고 판단해 세상에 나섰다"고 강조했다.
당시 505보안부대에서 대공 간첩 업무를 담당한 허씨는 5·18 당시 폭도로 검거된 시민군들의 분류 심사는 물론 특수
임무 수행 등으로 '광주사태'의 한복판에서 있었다고 밝혔다.
허씨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광주를 다녀간 뒤 그날 밤 자위력 구사라는 미명 하에 발포명령이 내려졌다는 말을 상관인 S 중령에게 직접 전해 듣고 실탄 무장 지시를 받았고 실제 실탄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특히 그는 "자위권 구사가 최종 결정됐다는 말과 실탄 지급은 공식적인 발포명령을 의미하며, '우리가 먼저 한 것으로 해서는 안 돼'라는 말도 이어졌다"며 "모든 문제는 (전두환) 사령관이 책임진다는 말도 S 중령에게서 나왔다"고
덧붙였다.
이뿐만 아니라 광주사태 기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505보안부대 내에서 벌어졌고, 석연치 않은 수사 종료 지시를 상급자에게서 받았다고 증언했다.
광주 시민군을 폭도와 용공으로 몰아 상황을 극도로 악화시켜 무력 진압을 정당화하려는 조작 시나리오가 있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헬기 타고 전남도청 찾은 5·18 군 지휘부 [연합뉴스 자료 사진] (광주=연합뉴스) 9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1980년 5월 기록한 광주항쟁 영상을 공개했다. 기록관이 익명의 수집가로부터 입수한 영상은 1980년 5월 20일부터 6월 1일까지 국군통합병원과 적십자병원 환자 치료 상황, 전남도청 기자회견 등 광주 일대와 근교를 촬영했다.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이 영상은 이달 10일부터 30일까지 기록관 3층에서 상영한다. 사진은 1980년 당시 헬기를 타고 전남도청을 찾은 군 지휘부. 2018.5.9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제공 영상 캡처=연합뉴스] hs@yna.co.kr](https://t1.daumcdn.net/news/201805/16/yonhap/20180516175352635kgqb.jpg)
헬기 타고 전남도청 찾은 5·18 군 지휘부 [연합뉴스 자료 사진] (광주=연합뉴스)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이 영상은 이달 10일부터 30일까지 기록관 3층에서 상영한다.
사진은 1980년 당시 헬기를 타고 전남도청을 찾은 군 지휘부. 2018.5.9 [5·18민주화운동
기록관 제공 영상 캡처=연합뉴스] hs@yna.co.kr
대표적으로는 광주 민주화 운동의 의혹 중 하나인 아시아자동차 차량 탈취 사건과 최초 무기고 탈취로 기록된 나주
반남지서 사건, 녹두서점 북한 찬양 유인물 사건, 전남도청 독침 사건, 도청 옥상 북한인공기 펼침 사건 등을 나열했다.
허씨는 "방산업체인 아시아자동차 차량이 탈취당하고 반남지서 무기고가 최초로 털렸는데도 이를 중점 수사하라는 지시는 전혀 없었다"며 "일반 시민이 무기고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무기고가 탈취됐는데 책임지는 사람도 없이 수사는 이상하리만큼 흐지부지된 점에서 조작을 의심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전남도청 옥상에 인공기가 펼쳐졌다는 첩보와 녹두서점 불온 유인물 첩보는 당시만 해도 당연히 대공수사를 전담하는 우리 부대가 파헤쳐야 할 사안인데도 상부에서는 오히려 수사하지 못하게 했다"며 "이는 '광주사태'를 북한군 침투와 연계시키려는 조작 시나리오라고 생각을 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5·18 관련 재판 과정에서 광주 피해자들이 조작이라고 증언한 '장○○ 독침 사건 조작'에 대해 허씨는 "전남도청 시민군 지휘본부 화장실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독침 사용이라는 점에서 '북한 간첩 침투'라는 인식을 주기 때문에 당시 수사관들 모두 깜짝 놀랐다"며 "그러나 이상하게도 상부에서는 이 사건의 수사를 제지하고 오히려 주범들의 신병
보호를 은밀히 지시했다"고 회상했다.
허씨는 광주 상황을 격화시킨 주요 사건의 조작 당사자로 '녹화사업'의 입안자인 505보안부대 S 중령을 지목했다.
그는 "공신 책봉에 눈먼 현지 보안부대 지휘라인이 모든 시나리오를 짜 '작전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보고하면 광주와
관련된 주요 결정이 보안사령부를 통해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증언했다.
1980년 5월 당시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 보고계통은 공수여단 등 일선 부대→전남 계엄분소(31사단)→전남북 계엄분소(전투교육사령부)→2군사령부→육군본부→계엄사령부로 올라가 지휘는 그 역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이는 허울뿐인 지휘계통이고 실제는 공수여단, 광주 505보안부대, 보안사를 거쳐 신군부 핵심으로 이어지는
비공식 지휘체계가 있었다는 게 허씨의 증언이다.
그는 "당시 현지의 사정을 잘 아는 S 중령이 짠 시나리오, 즉 작전 조언을 토대로 '광주사태'의 주요 결정이 내려졌지만, S 중령을 비롯한 현지 책임자들은 제대로 된 조사 한 번 받지를 않았다"고 밝혔다.
당시 505보안부대 수사관이던 자신이 1988년 양심선언까지 할 정도로 광주에서 벌어진 군 내부의 일을 비교적 상세히 알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허씨는 "신군부의 실세인 이학봉씨를 비롯해 허화평·허삼수씨 등과 친분이 있고 신임도 얻어 중요 임무를 수행한 바 있었기 때문에 고급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조작된 '전남도경 상황일지' 속 무기고 탈취 기록 (무안=연합뉴스) 전남지방경찰청은 11일 5·18 당시 계엄군의 집단 발포 이전에 시민들의 무기고 탈취가 있었다는 기록물이 조작된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조작된 것으로 판단되는 '전남도경 상황일지'로, 집단 발포(1980년 5월 21일 낮 12시 59분) 전인 20일 오전 8시 나주경찰서 반남지서에서 시민군이 총기를 탈취했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조사 결과 반남지서에서는 총기 탈취가 없었고 집단 발포 후인 21일 오후 1시 30분 나주 남평지서에서 처음으로 발생했다. 2017.10.11 [전남지방경찰청 제공=연합뉴스] areum@yna.co.kr](https://t1.daumcdn.net/news/201805/16/yonhap/20180516175352757syfl.jpg)
사진은 조작된 것으로 판단되는 '전남도경 상황일지'로, 집단 발포
(1980년 5월 21일 낮 12시 59분) 전인 20일 오전 8시 나주경찰서 반남지서에서
시민군이 총기를 탈취했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조사 결과 반남지서에서는
총기 탈취가 없었고 집단 발포 후인 21일 오후 1시 30분 나주 남평지서에서
처음으로 발생했다.
2017.10.11 [전남지방경찰청 제공=연합뉴스] areum@yna.co.kr
그런 그에게도 시련은 닥쳐왔다.
허씨는 "광주민주화운동의 거목인 홍남순 변호사가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에서 재야 수괴로 넘겨졌는데, 행적을
조작해 재수사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거부했다가 항명 행위라는 이유로 그해 9월 강제 전역당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허씨는 자신의 강제 전역의 이면에는 '많은 사람을 희생하면서까지 정권을 찬탈해야 하는가'라고 한 말이
감찰을 통해 신군부 흘러들어 갔기 때문으로 믿고 있다.
게다가 그가 틈나는 대로 당시 광주의 실상을 자필로 기록한 문서가 중앙정보부에 흘러들어 간 것도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증언했다.
이 일로 그는 보안사 수사분실, 이른바 '서빙고호텔'에 끌려가 18일간 모든 고문을 당했다고 전했다.
당시 악명 높았든 보안사 수사관이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홍남순 변호사 행적 조작에 대한 항명, 강제 전역, 1988년
양심선언 등으로 2013년 10월 '민주화 운동 유공자'로 인정됐다.
허씨는 "지금이라도 신군부의 공신 책봉에 눈이 멀어 왜곡·조작한 현지 지휘라인 등을 조사해야 한다"며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광주의 역사를 올바른 선반에 올려놓기 위한 유일한 길은 전두환 전 보안사령관을 유엔 인권위원회에
제소해 국제적으로 학살범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홍남순 변호사 기념사업회와 함께 1천만인 서명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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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전남도청 지하실서 475구의 사체를 봤다"
일본에서 간행된 한 잡지에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 지하실에서 475명의 방치된 시체를 목격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는 현재까지 5·18 관련 단체와 광주시가 공식 집계한 사망자 수 165명의 3배에 가까운 규모다.
이는 16일 일본 ′한국문제 그리스도인 긴급회의′가 1980년 7월10일 발행한 ′한국통신′ 잡지에서 드러났다.
일본 동경에 소재한 그리스도인 긴급회의는 일본어와 영어로 ′한국통신 임시증간 광주사건′을 발행했다.
′광주사건′을 다루려고 임시 제작했다. 임시증간호에는 18쪽 분량의 ′광주사건′이 광주항쟁의 경과와 의미, 삭제된
기사, 증언, 광주사건 일지 순으로 특집 게재됐다. 긴급회의는 일본에서 활동하는 미국인 선교사로 구성된 단체로
한국에서 들어온 5·18 자료를 정리해 미국과 캐나다로 보내는 역할을 했다.

이 영상은 1980년 5월 20일부터 6월 1일까지 국군통합병원과 적십자병원 환자 치료 상황,
시민군과 계엄군 대치상황 등 광주 일대와 근교를 촬영한 기록물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38주년을 맞고 있지만 정부의 공식 사망자 수는 발표되지 않고 있다. 5·18에 관한 국가보고서가 작성되지 않았다.
광주시는 사망자 수를 165명으로 추정한다. 광주시가 사망 보상금으로 지급한 155명과 구묘역에 안치된 행방불명자
6명, 국립 5·18민주묘지에 안장된 무명의 묘 5기 등을 포함해 추정한 수치다.
5·18 당시 광주를 찾은 미국인 선교사들도 200∼300명의 시체를 봤다고 증언한 바 있다.
광주시에 400여명이 5·18 행불자 등록을 신청했지만 81명만 인정됐다.
′한국통신′에 실린 사망자 475명 증언이 어떤 과정으로 입수돼 실렸는지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광주사건 잡지의 증언에는 자신의 집에서 계엄군의 만행을 목격한 장면도 생생하게 그렸다.
한 목격자는 “다리의 총을 맞아 움직일 수 없는 여성 노인에게 공수부대원이 다가가 관자놀이에 총을 쐈다”고 했다.
다른 목격자는 “어린이를 껴안은 엄마를 향해서 발포한 것과 눈앞에서 십수명의 시민이 총에 맞아 죽는 모습을 봤다”고 전했다. 일부 목격자들은 “계엄군이 빌딩이나 상가로 도망가는 시위대를 쫓아가 총검으로 찔러죽였다”고 전했다.
최용주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은 “5·18 당시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광주의 참상 소식은 일본의 선교사들을 통해
북미 지역으로 전달됐다”며 “5·18 희생자 수는 진상 규명돼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광주=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광주 외곽 통제하는 5·18 계엄군 (광주=연합뉴스) 9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1980년 5월 기록한 광주항쟁 영상을 공개했다. 기록관이 익명의 수집가로부터 입수한 영상은 1980년 5월 20일부터 6월 1일까지 국군통합병원과 적십자병원 환자 치료 상황, 전남도청 기자회견 등 광주 일대와 근교를 촬영했다.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이 영상은 이달 10일부터 30일까지 기록관 3층에서 상영한다. 사진은 당시 광주 외곽을 통제하는 계엄군의 모습. 2018.5.9 [5·18민주화운동기록관 공개 영상 캡처=연합뉴스] hs@yna.co.kr](https://t1.daumcdn.net/news/201805/18/yonhap/20180518050111104zxub.jpg)
![1980년 광주.민주주의는 없었다 (서울=연합뉴스) 신군부의 집권음모를 규탄하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일어선 광주민주화운동이 38주년을 맞이하게 됐다. 1980년 당시 전남매일 사진기자로 활동했던 나경택 전 연합뉴스 광주전남취재본부장이 취재한 당시 계엄군에 구타 당하는 시민. 2018.5.17 [5.18 기념재단.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https://t1.daumcdn.net/news/201805/18/yonhap/20180518050111209igtq.jpg)
1980년 광주.민주주의는 없었다 (서울=연합뉴스) 신군부의 집권음모를 규탄하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일어선 광주민주화운동이 38주년을 맞이하게 됐다. 1980년 당시 전남매일
사진기자로 활동했던 나경택 전 연합뉴스 광주전남취재본부장이 취재한 당시 계엄군에 구타
당하는 시민.
2018.5.17 [5.18 기념재단.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그날 처참했던 '화려한 휴가'..너릿재 양민학살 軍문건서 확인
"할머니 눈에 총상", "여고생만 생존", "시체는 가매장" 증언 인용
국방부, 30년 전 이미 "'시위대 17명 사망' 군 공식 기록과 부합" 판단
손금주 "軍, 사건 알고도 부인해 충격..진실규명에 뜻 모아야"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공수부대가 시민이 탄 버스에 무차별 총격을 가한 이른바
'주남마을 미니버스 사건'이 군 내부 문건을 통해 처음 확인됐다.
'너릿재 양민학살 사건'으로도 불리는 이 사건은 5·18을 주제로 한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상세하게 묘사돼 계엄군의 비밀 작전명으로 알려진 '화려한 휴가'의 상징처럼 회자돼 왔다.
우리 군은 그동안 이 사건을 공식 부인해왔지만, 무소속 손금주 의원(전남 나주·화순)이 18일 연합뉴스에 제공한 국방부 대외비 문건을 보면 이미 30년 전부터 그 실체를 알고 있었다.
이번에 공개된 대외비 문건은 국방부가 국회 광주특위 청문회를 앞둔 지난 1988년 5월 '5·23 무장시위대와 교전 후
부상자 처리 결과'라는 제목으로 작성한 것이다.
국방부는 이 문건에서 "1980년 5월 23일 오후 4시 30분께 공수부대 11여단 62대대 관할 지역에서 계엄군과 시위대
사이에 교전이 벌어져 군인 1명이 부상을 당하고, 시위대 17명이 사망, 2명이 부상했다"는 1980년 당시 군 공식 기록을 인용했다.
국방부는 그러면서 계엄군과 시민 사이에 벌어진 교전을 목격한 다수 군인의 증언과 이 기록이 같은 사건을 가리키는 것으로 판단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군인들의 증언은 대동소이한 것으로 보인다. 대외비 문건 담긴 군인들의 증언은 저서나 각종 매체 인터뷰 등을 인용한 것이다.
한 11여단 부대원은 언론인 윤재걸 씨가 펴낸 '작전명령 화려한 휴가'라는 제목의 책에 실린 수기에서 "군인들이 일제 사격을 개시, 버스에 탄 18명 중 13명이 사망했다"며 "여고생 1명은 오른손에 총상을 입었다"고 썼다.
11여단 소속 다른 부대원이었던 경기만 씨는 "생존자를 끌어내 내가 있던 곳까지 데려온 것을 보았다"며 "리어카에는
청년 2명과 여고생, 부상한 할머니가 있었는데, 할머니는 눈에 총상을 입었다"고 증언했다.

영화 '화려한 휴가' 영화 '화려한 휴가'
2007.6.15 / 제공 <저작권자 ⓒ 2007 연 합 뉴 스.
또 11여단 참모장을 지낸 양대인 씨는 "(계엄군이) 매복해서 길목을 지키는데 버스가 검문에 응하지 않고 계속 달리면서 총격을 가해 응사해 버스에 탄 10명가량이 죽었다는 보고를 받은 적이 있다"면서 "유일한 생존자인 여고생은
후송됐다"고 기억했다.
양 씨는 "피격된 사람의 시체는 가매장했다가 광주 탈환 뒤 그 지역대장이 확인, 발굴해준 것으로 안다"고도 언급,
너릿재 주변의 '암매장'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했다.
국방부는 문건에서 이런 증언과 기록을 열거하면서 "사건의 정확한 장소와 시간은 명시하지 않았지만, 23일 발생한
사건으로 추정된다"며 "특히 부상자 중 '여고생 1명' 포함이 동일하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어 "국가안전기획부 비공식 자료의 환자 기록은 양 안구(두 눈) 결손 환자 1명으로, 경 씨 주장과 일치한다"며 "23일 52세 여성인 양 안구 결손 환자의 입원 기록으로 미루어 당시 후송됐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결국 국방부가 5·18 당시 계엄군이 부녀자와 학생 등이 탄 버스에 총을 쏴 10여 명이 사망한 사실을 30년 전 이미 파악하고도 그동안 이를 공식 부인해왔다는 얘기다.
손 의원은 "군이 무장하지 않은 부녀자를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이를 인지했으면서도 부인한 사실이 매우 충격적"이라며 "군이 5·18의 진실 은폐에 골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9월 출범하는 진상조사위원회의 권한을 확대해 군이 은폐했던 모든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국회와 국민의 뜻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 의원은 앞서 지난 11일 계엄군의 성범죄 규명을 조사 범위에 추가하는 내용의 5·18 특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무소속 손금주 의원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t1.daumcdn.net/news/201805/18/yonhap/20180518050111471qbvk.jpg)
무소속 손금주 의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hanjh@yna.co.kr
[오마이뉴스 최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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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욱준씨는 아직도 5월만 되면 그날의 기억에 트라우마를 겪는다고 한다.
ⓒ최현웅
5·18 38주기를 앞두고 38년 전 항쟁 당시 도청 사수를 호소하며 항쟁 마지막 날 새벽에 가두방송을 펼쳤던 김선옥 씨가 당시 계엄군 수사관에게 모진 고문을 당한 후 성폭행을 당했다는 폭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지역
장성에서도 광주의 아픔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5월 희생자가 있어 찾아갔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박정희의 유신 장기집권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이 믿었던 측근의 단 2발의 총탄에 의해 종말을 고하고 80년은 찬란(?)한 '민주화의 봄'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했던가? 아님 우리 국민에게 민주화란 결코 앉아서 맞이하는 것이 아님을 상기시키려 함이었나?
신군부는 감춰두었던 발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른바 작전명 '화려한 휴가' 그리고 그 재물이 된 것은 바로 광주였다.
80년 당시 광주의 작은집에 기거하며 재수학원에 다녔던 차욱준(당시 20살. 장성읍 상오리)씨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도 정의감이 투철하고 민주에 대한 의식을 키워왔다고 한다.
봇물처럼 들끓었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청년 욱준 씨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한다.
5월 초부터 산발적으로 이어져오던 청년들의 시위는 5월 중순으로 접어들자 점차 늘어나고 격해지기 시작했다.
욱준 씨 역시 80년 5월 16일부터 광주공원에서 집결해 시위대열을 정비하고 도청 등 시내로 향하는 시위대에 합류했다 한다. 그러다 17일 새벽을 기해 계엄령이 선포되고 광주는 고립되기 시작했다.
욱준 씨가 계엄군을 처음 본건 19일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주둔하자마자 닥치는 대로 시민들을 연행하고 무차별 폭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광경을 눈앞에 보면서도 욱준 씨는 피 끓는 청춘의 양심으로 도저히 묵인할 수 없어 거리로 나왔다가 결국 21일
계엄군에게 끌려가게 된다.
무차별 연행 그리고 구타와 고문
"곤봉과 개머리판으로 얼마나 맞았는지 몰라요. 그들은 그야말로 개 때려잡듯 휘둘렀으니까요.
나중에 풀려나고 나서야 두개골이 함몰되고 갈비뼈가 부러졌다는걸 알게 됐지만 당시엔 그걸 느낄 수조차 없었어요. 한 대라도 덜 맞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 외엔 없었던 것 같아요."
욱진 씨는 당시 계엄군들은 마치 사냥감을 쫓아다니는 사냥꾼처럼 시민들을 '인간사냥' 했다고 한다.
"대인파출소에서 연행되자마자 트럭에 실려 갔어요. 아마 2.5톤 군용 트럭이었던 것 같아요. 스무 명 정도 되는 인원을 싣고 처음엔 조선대 운동장으로 갔었는데 그곳에도 끌려온 시민들로 대만원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바리캉으로 머리를 삭발 당하고 원산폭격과 얼차려 등의 기합을 받다가 해질 무렵에서야 당시 광주경찰서
(현재 동부경찰서)로 이송돼 왔는데 경찰을 보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경찰이 준 음식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욱준 씨는 이 날 먹었던 빵이며 김밥 등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이후 잡혀왔던 시민군들은 광주의 여러 곳으로 분산 수용됐다고 한다. 그중 일부는 광주교도소로 가고 욱준 씨는
31사단으로 끌려갔다가 다시 상무대 지하 영창에 수용됐다.
"상무대로 온 뒤부터는 마치 굴비 엮듯 한 줄로 나란히 줄 세워져 고개를 숙이고 움츠린 채로 오로지 앞사람의 허리만 잡고 굼벵이처럼 웅크린 자세로 지냈습니다.
화장실을 갈 때도 정해진 시간에 줄줄이 한꺼번에 가고 음식을 먹을 때로 바로 그 자세를 취한 채 먹었습니다.
잘 때도 그렇게 웅크린 채 잤습니다. 자세가 조금이라도 흐트러지거나 지시대로 따르지 않으면 가차 없이 곤봉을
맞곤 했으니까요. 아니 지시대로 따르더라도 일단 때리고 시작했습니다."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버텨
그렇게 끌려온 시민들은 하나둘씩 불려 나가 취조를 받았는데 군인들은 한결같이 주동자가 누군지 또 누구의 지시를
받았는지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한다. 욱준 씨는 "친구들이랑 어울리면서 휩쓸리게 됐을 뿐 배후도 조직도 없다고
일관되게 진술했지만 당시 구타에 못 이겨 허위진술했던 분들도 꽤 있었을 것"이라면서 그 때문에 그분들은 더욱 고초를 겪었을 것이라고 한다.
욱준씨의 일관된 진술 때문이었을까?
훈방으로 풀려난 욱준씨는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마을 주변 주민의 도움을 받아 상무대 인근 군인들 초소에 담배 한 보루를 상납하고 나서야 겨우겨우 집으로 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이때도 일그러진 모습의 욱진 씨를 위해 시민들이 내주었던 우유며 딸기 맛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장성 집에 돌아온 욱진 씨가 다친 몸이나마 이끌고 무사히 돌아왔노라며 부모님이 돼지 한 마리를 잡아 마을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지금도 여전히 온몸에 남은 당시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욱준 씨지만 육체적 아픔보다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그는 "5·18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이며 이 시대, 아니 다음 세대 역시 잊지 말아야 할 아프고 소중한 역사"임을 강조
하고 "이런 비극이 이 땅에서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 목소리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쳐대도 부족할 판에 정치인들뿐 아니라 5월 단체들 마저도 5월을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는데 이용하려 하는 모습을
보면 개탄스러울 뿐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전두환 회고록[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t1.daumcdn.net/news/201805/15/yonhap/20180515111150013noqa.jpg)

'전두환 회고록' 허위사실 삭제 없이 판매 못 해..재출간도 제동
광주지법, 5·18단체가 전두환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 인용
(광주=연합뉴스) 장덕종 기자 = 재출간한 '전두환 회고록'에 대해 허위사실을 삭제하지 않고서는 출판과 배포를 할 수 없다는 법원의 결정이 나왔다.
광주지법 민사23부(김승휘 부장판사)는 5·18기념재단과 5월 3단체가 전두환 전 대통령을 상대로 낸 전두환 회고록 출판 및 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고 15일 밝혔다.
재판부는 전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허위사실을 적시, 5·18 관련자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허위사실을 삭제하지 않고는 출판·배포를 할 수 없고, 이를 어기면 1회당 500만원을 내도록 했다.
재판부는 5·18 관련 단체가 회고록에서 삭제를 요구한 암매장, 광주교도소 습격, 전 전 대통령의 5·18 책임, 김대중
전 대통령 민중혁명 기도 등 관련 표현 40개 가운데 36개를 허위사실로 봤다.
이 가운데 공수부대 훈련 상태 등 관련 일부 표현은 허위사실로 볼만한 소명자료가 없고 추상적인 개념을 설명한 것이라며 삭제 대상에서 제외했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자신을 '광주사태 치유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라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5·18 관련 단체가 출판·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같은 해 8월 이를 받아들였다.
전 전 대통령은 이후 문제가 된 부분을 삭제하고 지난해 10월 회고록을 재출간했다.
5·18 관련 단체는 지난해 12월 재출간한 회고록에 대해서도 출판·배포하지 못하도록 가처분 신청을 냈다.
전두환 회고록 관련 5·18단체 법률대리인 김정호 변호사는 "5·18 역사 왜곡 주장을 집대성한 회고록으로 인해 전두환이 사자명예훼손죄로 기소됐고, 두 차례 출판 및 배포 금지 가처분도 모두 인용돼 사법적 판단이 내려졌다"며 "전두환
스스로 역사를 왜곡한 회고록을 폐기하고 참회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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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리는 5·18 기념식에 이어 6·15 남북공동선언 기념식에 참석,
축사할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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