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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사

대만 그리고 반한감정


대만 타이페이 전경. 101타워가 우뚝 서있다.

/AFPBBNews=뉴스1





파일:gtzkpBnr.jpg







너무 이기고 싶다".. 한국이 얄미운 나라




[이재은의 그 나라, 대만 그리고 반한감정 ①]


한류 열풍의 중심지 대만엔 뿌리 깊은 반한 감정..

 '고마움을 모르는 나라' '배신의 국가' 이미지





몇 년 전 호주에 있었을 때 대만(臺灣)인 친구들과는 유독 친해지기 쉬웠다.

 아무래도 같은 아시안끼리 공유하는 정서가 유사한 데다,

친구들이 한류 덕택인지 K-Pop가수나 드라마를 많이 알고 있어 말도 잘 통했기 때문이다.


몇몇 친구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기도 했다.

 매일 같이 대만인 친구들과 가라오케(노래방), 한국 음식점, 대만 디저트점 등을 다니며 즐겁게 보냈다.

 이때 친구들과 그래스젤리, 타로 떡 등이 들어간 대만식 바오빙을 자주 먹었는데, 그 매력에 빠져 지금도 가끔 찾아

다니곤 한다.


그런데 웃음 가득한 대화를 나누다가도, 순간순간 친구들이 공격적인 태도를 보일 때가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은 이것이다.

하루는 한국식 분식집을 갔는데, 함께 김밥을 먹다가 "일본에도 김밥과 유사한 음식이 있다" "원조는 어디 것일까"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대만인 친구 세 명이 내게 "너는 어떻게 생각해" 묻기에 내가 "김밥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한 것 같아. 일본 노리마끼에서 유래됐다는 사람들도 있고, 한국 김쌈에서 유래했다는 사람들도 있고…"라고 말하자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심지어 웃으면서 "일본 것이겠지" "역시, 너도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이구나"라는 장난을 치는 친구도 있었다.


대만은 코트라(KOTRA) '2015년 한류의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한류지수 세계 11위로 올라올 정도로 한류 열풍의 중심지다.


하지만 동시에 '반한 감정'도 널리 퍼져있다. 한국 제품과 한국 문화에 대해선 흥미가 높지만 한국 국가와 한국인에

대해서는 부정적 인식이 널리 공유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훗날 일부 대만인 사이에서는 한국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마치 정설처럼 퍼져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2015년 대만 학자 궈추원(郭秋雯)이 대만인의 한국인에 대한 인상을 조사한 결과 강한 민족성, 애국, 승부욕, 적극성, 체면중시 등의 키워드가 나왔다.

2017년 그가 다시금 조사한 결과 술, 체면 중시, 성형, 보수적, 단결, 급한 성격, 배타적, 이기적, 승부욕 등의 대답이

나왔다.


 그는 '한류 열풍'에 휩싸인 대만에서 전반적으로는 한국을 싫어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개인으로서 한류를 좋아하더라도 집단의 흐름에 따라 집단의 반한에 따라야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반한 감정이 심한 세대는 40~50대라고 한다.

그렇다면 대만에 반한 감정이 널리 퍼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복합적 원인이 마구 얽혀 나타난 것으로 보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고마움을 모르는 데 대한 일종의 배신감으로 보인다. 대만인과 대화하다 보면 '1992년 한국-대만 단교'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1949년 중화민국(中華民國)이던 시절 수교해 장기 우방국으로 지냈던 한국이 갑자기 단교를 통보했고, 그 과정이 도의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인들 다수는 "'하나의 중국'(一個中國政策) 원칙에 따라 중국의 압박이 거셌다"거나 "대만과의 단교가

도미노처럼 이뤄지는 판국이었기에 오히려 신의를 오래 지킨 편이다"라고 받아친다.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바탕으로 타 국가들과 우호적 외교관계를 유지하던 대만이었지만, 이전까지 공산주의 국가들과만 교류하던 중국이 1978년 경제현대화를 기치로 개혁개방정책을 시작해 국제사회로 나오면서 급격히 무력해졌다.


많은 국가들은 '중국이냐 대만이냐'를 선택해야만했고, 대다수 국가는 수교와 통상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중국을 택했다. 한국 역시 이 같은 흐름에 따라 대만과 단교하고 '비공식 최고관계'로 전환했다.

불과 몇 달 전인 지난 5~6월에도 도미니카, 파나마 등이 연달아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했다.


이제 대만과 공식 외교관계를 맺은 나라는 20여개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과정 한국에게 특히 섭섭한 감정을 느끼는 건 그전까지의 우호감이 상당히 컸고, 정치적 동맹이 굳세었기 때문이다.





도미니카공화국이 지난 5월30일 대만과의 단교를 선언하고 중국과 국교를 맺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2016년 5월 '독립노선'을 견지하는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 취임 이후 중국의 고립화 전략에 따라 아프리카의 상투메프린시페와 파나마, 그리고 이번 도미니카공화국까지 모두 3개 나라가 대만과의 국교를 끊고 중국과 수교했다./사진=뉴스1



도미니카공화국이 지난 5월30일 대만과의 단교를 선언하고 중국과 국교를 맺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2016년 5월 '독립노선'을 견지하는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 취임 이후

 중국의 고립화 전략에 따라 아프리카의 상투메프린시페와 파나마, 그리고 이번 도미니카

공화국까지 모두 3개 나라가 대만과의 국교를 끊고 중국과 수교했다.


/사진=뉴스1          




많은 한국인들이 알지 못하지만, 대만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당시 조선처럼 일본 제국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던 대만은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상해 훙커우 공원 의거(4·29의거)에 대해 깊이 감명 받고 본격적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통한 항일독립운동 지원에 나섰다.


대만의 초대 총통 장제스는 의거에 대해 "중국 100만 대군도 못할 일을 조선 청년이 해냈다"고 찬사했다.

 하지만 타국의 망명정부 지원은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국제 사회 눈을 피해 '중국국민당'이나 장제스 개인의 명의,

혹은 그의 부인 쑹메이링 여사의 명의로 지원금을 지급했다.


백범 김구 선생의 비서실장을 지낸 민필호 선생은 "우리의 대중국 외교는 '구흘적 외교'(求吃的外交·얻어 먹는 외교)다"라면서 가족을 꾸릴 생활비나 사무실 유지비용 등을 모두 대만의 지원에 의지했다고 밝힌 바 있다.

양측 독립 이후에도 한국과 대만은 모두 공산 진영과의 싸움에 돌입하는 처지에 처했다.

 중국에서는 1946년 중화민국 정부를 이끄는 중국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의 내전이 펼쳐졌다.


결국 공산당이 승리해 국민당이 1949년 대만으로 패주,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했다.

한국 역시 한국전쟁을 겪고 남북이 쪼개져 남측 만의 정부를 수립해야만했다.

 중화민국은 '반공' 차원에서 비슷한 상황에 놓인 한국을 1949년 1월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국가로 승인하고

서둘러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위 같은 과정을 겪으며 대만은 항일·반공 동맹으로 엮인 두 나라의 관계가 바뀔 수 없는 공고한 무엇이라고 인지하게 됐으며, 이것이 유난히 한국과의 단교를 섭섭하게 생각한 원인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이 같은 '고마움을 모르는 나라, 한국'이라는 이미지가 공고해진 데는 일제 식민지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도

기여한 것 같다. 대만의 역사 교과서와 중국·한국의 교과서 사이에는 일제 식민지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크다.


 세 곳의 역사 교과서 모두 일본 식민지 기간 수탈과 억압이 있었고, 이에 따라 저항이 거셌다고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대만은 일제가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서술한다.


실제로 대만의 다수(80~85%)를 차지하는 내성인(內省人·중국 명·청시기 이주한 한족이나 원주민 등 대만 토박이) 중에는 일제 식민지 때 보다는 이후 외성인(外省人·1949년 국민당이 본토에서 패주하자 국민당 정부와 함께 이주한 대륙인)들이 대만에 들어와 내성인을 핍박했다고 생각해 이 시기를 더욱 고통스럽게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외에도 '한국에 대한 열등감'도 대만 반한 감정의 원인으로 꼽힌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대만과 한국의 경제적 발전 양상은 유사했는데,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대만은 국제적 힘이 강했고 경제적으로도 '아시아의 4마리 용' 중 으뜸으로 꼽혔다.


하지만 지금까지 삼성, LG 등을 필두로 세계 경제시장을 선두하는 한국과 달리 대만은 한국과 경쟁하는 반도체·전기 등의 산업에서 점차 밀렸다.

 2004년에는 평균 국민 소득도 한국이 대만을 앞질렀다.

 이제 경제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한국은 대만을 앞선 현실이다.


대만인들은 역사적으로 내내, 그리고 불과 몇 십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인 보다 훨씬 월등하다고 생각해왔다.

대만 지리·역사 교과서는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 지방 변방 정권 중 하나로 해석하면서 중국 중심적 사고를 보여준다.


또 중국의 선진문화가 지리적으로 근접한 국가들에게 문화적·정치적·군사적으로 영향을 줘 실질적으로 번속 관계

(藩屬·속국)를 형성했다고 설명하면서 한민족에 대해 은연중에 우위적으로 생각하는 데 기여했다.

이 같은 생각 때문에 패배감이 더욱 컸다.


또 1990년대 말부터 하한(哈韓·한국 열기)이나 한류(韓流) 열풍이 생겼고, 2000년대 이르러 한류 열풍이 거세지면서

일종의 한류 백래시(backlash·사회 변화 등에 대한 대중의 반발)도 일었다.

한국의 대만에 대한 일방적 문화 진출이 불편하다는 여론이 생긴 것이다.


 한류는 2004년 항공기 직항로 개설 등 민간 교류를 확대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지만, 동시에 대만인들로 하여금

 '우리의 고유 문화는 모두 사라지는 게 아니냐'는 두려움도 일게 만들었다.






2010년 11월17일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태권도 선수 양수쥔(楊淑君·오른쪽)이 실격패 판정을 받자 대만인들은 판정시비를 제기하며 태극기를 불태우고 한국제품 불매운동에 나서는 등 반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사진=뉴시스



2010년 11월17일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태권도 선수 양수쥔(楊淑君·오른쪽)이

실격패 판정을 받자 대만인들은 판정시비를 제기하며 태극기를 불태우고

한국제품 불매운동에 나서는 등 반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사진=뉴시스       


   


대만인들이 한국에 대해 여러 복잡한 감정을 가진 사이 정치권과 언론에선 이를 이용했다.

 한국에 대한 반감이 워낙 크니 선거에서 "한국을 이기겠다"고 공언하면 당선에 유리하고, 언론에서도 한국을 비방·폄훼한 기사를 쓰면 잘 읽히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대만 태권도 선수 양수쥔(楊淑君)이 규정 위반을 이유로 실격패 당했는데, 심판이

한국계 필리핀이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한국이 악의적으로 대만을 지게 만들었다'는 여론이 생겼다.

 대만 언론들은 선정적으로 이 같은 반한 감정을 부추겼고, 5개 직할시 시장과 시의원 선거를 맞이한 각 정당과 정치인들도 "한국을 꼭 이기겠다"며 선거에 악용했다.


이후 양수쥔 선수가 직접 나서 "내 실격은 한국과 전혀 관계없다"며 자제해달라고 인터뷰했으나 이미 달아오른 감정은 쉬이 식지 않았다.


 '양수쥔 사건'은 대만 사회 기저에 깔린 반한 감정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는데, 이에 대해 당시 코트라 관계자는 "양수쥔 사건 이후 대만 방송에 나온 패널들이 '연평해전'(한국의 해병 2명, 민간인 2명이 사망)에 대해

'기쁘다'는 표현까지 하는 데 대해 당황스러웠다"고 밝힌 바 있다.

 대만 시민들은 총통 청사 앞에서 태극기를 찢고 불태웠고, 한국산 컵라면을 밟아 부수고 불매 운동을 벌였다.


대만 경찰이 대사관과 한국 학교에 대한 경비를 강화해야했을 정도로 반한 감정이 고조됐다.

이후에도 대만 언론은 틈만 나면 '한국을 너무 이기고 싶다(好想贏韓國)'거나 '한국을 이기면 통쾌할 것이다

(打贏韓國就是爽)'와 같은 문구를 빈번히 사용하며 반한 감정을 북돋았다.


 대만 정치인들도 대내적 문제를 대외로 돌리고, 국민을 단결하기 위해 희생양이 필요할 때마다 한국을 정조준했다.

중국은 건드릴 수 없고 일본과는 친밀하니 한국이 적절한 제물이었던 셈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일종의 계기만 생기면 반한 감정이 다시금 불붙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2010년 EU가 한국의 LG디스플레이, 삼성전자를 비롯 대만 치메이(奇美) 등의 5개사에 LCD 가격담합 과징금을 부여

했는데, 삼성전자가 이 같은 사실을 자진신고해 리니언시 제도(담합 자진신고자 감면제)로 과징금을 면제받은 일이

 있었다.


그저 그런 기업 이슈 중 하나로 끝날 사안처럼 느껴지지만, 치메이를 합병인수한 세계 최대 EMS 업체 혼하이(鴻海)그룹의 궈타이밍(郭台銘) 회장이 "경쟁자 등 뒤에 칼을 꽂는 소인배"라며 삼성전자를 비난했고, 스옌샹(施顔祥) 대만


경제부장이 "기업은 상거래 도의가 있어야 하고 일반적 상업 관습을 완전히 저버리고 '밀고'하는 행위는 상도덕에 부합하지 않는 행위다"라고 공개 비난하면서 다시금 반한 감정에 불이 붙었다.

태극기가 찢어지고 불태워지는 장면이 대만 뉴스에 다시금 등장한 건 물론이다.


문제는 이 같은 반한 감정과 또 반한으로 인해 생겨나는 대만에 대한 반감 모두 장기적 관점에서 양국에 이득되는 게

없다는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대만에 퍼진 한국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알아보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본다.




이재은 기자 jennylee11@mt.co.kr






CNN “北, 2차 북미 정상회담 열릴 거라고 강력히 믿어”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싱가포르=AP연합뉴스





아시아의 아마존의 불리는 대만 타이난 스차오 그린터널









북·미 화해 이후의 대만




미국과 북한의 관계개선 움직임을 바라보면서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의 미래 정세를 생각하게 된다.

6·25전란 당시의 미군 전사자 유해를 송환한 북한의 이번 조치가 단순히 양국 사이의 화해 차원에서 파급효과가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북이 포함되는 종전선언이 이미 기정사실화되고 있으며 결국에는 양국 수교를 전제로 하는 평화협정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거론되는 상황이다. 동북아 역내 질서의 일대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에도 미군 유해가 송환되긴 했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또 다르다. 미군 수송기가 북한 지역까지 직접 들어가 유해를 반환받았다는 사실부터가 그러하다.


 미국이 암묵적으로나마 북한 정권의 실체를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을 지켜준 김정은 위원장에게 감사한다”고 언급한 데서도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이어지는 서로의 유대감을 확인하게 된다.


아직 북한의 핵폐기 절차가 남아 있고 경제 제재도 당장 풀리지는 않겠지만 일단 양국 신뢰관계의 첫걸음이 시작된 것만은 틀림없다.

문제는 오히려 그 다음부터다.

일찌감치 논란을 빚었듯이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 문제가 본격 거론될 소지가 적지 않다.

어떤 경우가 됐든 주한미군의 역할이 줄어드는 결과만큼은 불가피하다.

북한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이 해소된다면주한미군을 유지할 수 있는 명분도 약해지기 마련이다.


이미 연례적인 한·미 군사훈련이 취소됐고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 병력에 대한 철수 방안도 거론되는 상황이다.

주한미군의 역할만 놓고 본다면 과거 닉슨독트린 당시로 회귀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북핵 해결을 원했던 우리의 당초 의도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모습이다.

이런 맥락에서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같은 동북아에 위치한 대만의 위상과 역할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 것이냐 하는

 점이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정상국가로 인정하고 기꺼이 화해를 이루는 상황에서도 대만을 지금처럼 미적지근한 관계로 놓아두겠느냐 하는 것이 관심의 초점이다.


설사 북한에서 핵무기가 제거되더라도 강압체제는 그대로 유지될 테고 인권문제 또한 금방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격상시키면서도 민주 체제인 대만과는 미수교 상태를 유지하겠느냐는 형평성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다. 미국이 과거 적대국으로서 교전 상대였던 베트남이나 쿠바와 국교를 체결했다고 해서 대만과의 수교 명분이 쌓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이 과거 중국과 수교하면서 약속했던 ‘하나의 중국’ 원칙을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있겠느냐는 견해들이 미국 내에서 간헐적으로 이어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 대세로 간주하기는 어렵다. 무역 및 환율 분야에서 극심한 갈등을 겪으면서도 아직은 중국을 정식 대화 상대로 끌어안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대만의 입장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더욱이 중국이 대만의 수교국을 빼앗아가는 등 국제무대에서의 활동을 극구 제약하는 가운데서도 미국은 대만을 지원

한다는 약속만 내세울 뿐 실질적으로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형편이다.


세계 주요 항공사들을 겨냥해 "대만을 중국 영토로 표시하라"는 중국의 최근 압력과 관련해서도 미국은 ‘전체주의

 방식’이라고 비난하는 데 그칠 뿐 정작 아메리칸 에어라인, 델타항공,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등 자국의 대표적인 항공사들이 굴복하는 데 대해서조차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처지다.

그러나 군사적 측면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갈수록 노골화하는 중국 패권주의에 맞서기 위해서도 대만에 대한 미국의 군사 지원은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대만의 지정학적인 측면 때문이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주변국들과 마찰을 빚는 상황에서 바로 코밑에서 견제할 수 있는 전략적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오키나와에 주둔한 미군 병력을 대만에 이동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도 없지 않다. 최근 미국 해군의 이지스 구축함 2대가 대만해협 통과작전을 펼친 것도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미국과 북한의 관계 개선으로 주한미군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과는 별개로 대만의 전략적 위상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얘기다.

트럼프 행정부가 안보 측면보다 병력유지 비용을 줄이는 데 더 신경을 쓴다는 점에서도 주한미군의 역할은 축소될

소지가 커졌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해서조차 서슴없이 불만을 드러내는 트럼프의 개인적 성향에 미뤄서도 충분히 전망이

 가능하다.


이렇게 초래된 안보 공백을 다자간 안보체제로 해결해야 한다는 구상도 벌써부터 논의 중이다.

 결국 동북아 일대에서 중국의 군사적 영향력이 강화되는 결과만 초래될 뿐이다.

반면 부분적이나마 대만의 견제 역할이 커지게 되면서 동북아에서의 군사적 대치점이 한반도에서 대만해협으로 옮겨질 가능성이 증대될 것이다.



#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허영섭(gracias1234@edaily.co.kr)







파일:iRqsJsP.jpg



대만



동아시아 타이완 섬에 정부를 두고 있는 나라.[7] 정식 명칭은 중화민국으로 아시아에서 현존하는 공화국 중 가장

오래된 공화국이다.


한국에서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의해 1992년 이전까지는 이 나라만을 승인하고 수교했지만, 1992년 이후부터는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수교를 위해 이 나라와 단교하고 국가로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다른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비슷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1949년부터 사실상 수도는
타이완 섬 북부에 있는 타이베이이다. 법적 수도는 공산화된 중국 본토에 남아있는 도시

 난징이지만 2005년부터는 자국의 수도가 난징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지 않다.

이웃한 동네로는 좁게는 필리핀, 넓게는 한국, 일본,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을 두고 있으며 타이완 해협을 사이에 두고중화인민공화국과 정치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다.


1960년대 ~ 1980년대의 빠른 경제 성장으로 한국, 홍콩, 싱가포르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칭해지기도 했다.


1912년 난징에서 건국을 선포한 이후 2018년 기준으로 100년이 넘는 장수 공화국이 되었으며, 1927년 장제스의

 북벌 이후 중국 대륙을 통일하여1949년까지 중국 대륙을 지배했으나 국공내전에서 중국 공산당에 의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기에 이르자 타이베이로 정부 소재지를 옮긴(천도가 아니라 정부만 옮겨감) 이후에도

중국대륙에선 도미노처럼 설 자리를 잃게 되었고 타이완 섬진먼, 마쭈, 남사군도 등만을 실효 지배하고 있으나 현재에도 중국 대륙에 대한 영유권을 공식적으로 포기하지는 않았다.

한때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5개 주요 연합국 중 하나로, 유엔의 창립 회원국이자 프랑스, 소련, 영국, 미국

더불어 유일한 아시아 국가 대표로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5대 상임이사국의 위치로 근현대사의 한 획을

그었지만, 중국 공산당에 중국 대륙을 내준 이후로 경쟁력이 심각하게 저하되었고, 종래에는 UN마저 중화인민

공화국에 내어주고 탈퇴하고 말았다.


하지만 나라로서의 기본 요소는 모두 갖추고 있다.

세계 2차대전 직후 동아시아에서 일본, 영국령 홍콩에 이어 3번째로 1인당 GDP가 높았던 국가. 그 뒤 국민당이

중국 본토에서 긁어모은 금은보화들을 엄청나게 가져오고, 부유층들도 공산당을 피해 같이 이주했기에 경제적

성장의 기반이 되는 자본금은 충분한 상황이었다.


 1955년 유엔 아시아극동위원회가 발간한 '아시아 극동 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타이완은 1948~1954년 연평균 12%의경제성장률로 당시 아시아 지역에서 필리핀에 이어서 2위였을 정도. 1970~1980년대 당시 유례없는 경제성장

으로결국 1980년 칠레를 1인당 GDP에서 추월하는 성과를 올리기까지 하였으며, 전후 역사상 상대적 정점이던

1989년도에는 그리스를 최초로 돌파하였다.

IMF를 기준으로 볼 때 대만이 선진국으로 분류된 것은 1983년이다.
[8]개발도상국(Emerging Country)이 중진국 함정에빠지지 않고 선진국(Advanced Country)으로 넘어간 최초의 사례이다.

그 뒤 1993년 ~ 2002년까지 그리스보다 1인당 GDP가 높은 상태를 유지하였다.


이 경제성장의 결과로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화폐가치 하락으로 말미암아 결국 2003년 미국 달러 기준 1인당 GDP를 한국에 추월당했다.
그러나 PPP로 환산한 1인당 GDP는 한국과 일본보다 높은 수준. 명목 환율로 환산했을 때의 GDP와 두 배 넘게

 차이나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드문 현상이다.


특히 1인당 명목 GDP 2만 달러 이상 국가 중에는 유일하다. 이는 대만의 국제정치적 지위가 위태로워 대만 달러가 실제 구매력에 비해서 굉장히 저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며, 대만 사람들의 실제 생활 수준이 명목 GDP가 말해주는 것보다 높음을 의미한다.


1인당 GDP(PPP)의 동아시아 국가별 통계를 보면, 2016년 미국 CIA 자료에 따르면 한국 일본 대만이 37900달러

 38900달러 49800달러이다.

한국이나 일본은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의 겨우 2~3%격차로 거의 같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면 되며,

대만의경우 명목 환율은 낮지만 물가를 감안한 생활 수준은 상당히 높다고 할 수 있다.


거의 5만 달러에 달해 서유럽 선진국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저평가된 환율은 자국민이 해외 물품을 살 때나, 해외여행을 할 때 불리하게 작용한다.
또 반대로 외국인들이 관광하기에 굉장히 좋다는 뜻도 된다.


대만의 물가는 대만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고만고만한 수준이겠지만, 외국인들이 자기네 통화로 환산했을 경우에는

무척이나 저렴해진다.

예를 들어, 대형 마트에서 코카콜라 1.8L 1개가 40 대만 달러(약 1,500원)로 거래된다.

한국에서는 같은 제품이 2,980원이다. 이는 중동의 레바논 비슷한 수준의 물가이다.


 사실 너무 저평가가 되어 있기 때문에 중국 본토의 눈치만 없다면 무역업에서 꽤나 차익을 남길 수 있는 상품들이 많다.
이런 대만 환율의 특징은 자국 기업들의 보호막이 되어주며 또한 경상수지의 이득을 가져온다.


외국인이 느끼기에 대만 제품은 굉장히 싸며, 또한 홍콩제나 일본제 정도의 신뢰도를 갖고 있다.

이는 수출 위주의 대만경제의 유리한 점이기도 하지만 후술된 문제들의 원인이 되기도한다.


예를 들어 컴퓨터의 RAM을 산다고 할 때 8GB 규모의 RAM을 사려면 2017년 8월 기준으로 한국 기업인 삼성전자 제품은60$ 정도를 내야 하나, 대만 기업인 ASUS 제품은 30$ 정도면 살 수 있다.

특히 PC 부품 관련해서는 대만이 상당한 인지도를 갖고 있으며, 실제로 전세계에 엄청난 PC 부품을 수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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