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프간이 탈레반을 장악하면서 파괴한 것으로 알려진 하자라족 추신 지도자압둘
알리 마자리의 동상. /EPA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에선 지난 4월의 미군 철수 발표와 5월의 탈레반 공세 이후 약 40만 명
의 국내 피란민이 추가 발생했다. [A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무장조직 탈레반 전사들이 2021년 8월 13일(현지시간) 헤라트에
진입한 모습. © AFP=뉴스1 © News1 최서윤 기자
지난 3월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서 히잡을 쓰고 태권도 대련을 하는 현지
여성들. 여성의 활동을 제한했던 이슬람주의 무장단체인 탈레반이 아프간 전역을
장악하면서 앞으로 이런 모습을 보기 어렵게 됐다. A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에서 인도주의 위기, 난민, 아편의 지옥문 열리나
아프가니스탄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인 탈레반이 지난 5월부터 지방 도시들이 차례로 점령하더니 급기야 8월 15일 수도 카불에 입성했다.
미군이 지난 4월 철군을 발표한 지 넉 달 만이다.
아프간의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항공편으로 국외 도피했다.
미군은 떠나고 다시 오지 않는다.
이슬람법(샤리아)에 의한 지배와 중세 이슬람 사회의 규범과 관습을 추구하는 탈레반이 아프간의 사실상 새로운 지배 권력이 됐다.
이런 탈레반이 아프간 전역을 장악하자 서구 세계는 이들이 여성 인권을 제약할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탈레반의 등장으로 사회 분위기가 '세속적'에서 '교조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지만, 아프간은 그 전에도 이슬람법에 의한 통치를 추구하는 '이슬람 공화국'이었다.
가니가 대통령으로 있다가 무너진 나라의 이름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이었다.
탈레반은 과거 통치 시절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에미리트'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에리미트는 이슬람 군주인 에미르가 다스리는 나라다.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인 탈레반 대원들이 15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대통령궁의 집무실을 접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아프간의 진짜 위기는 지배층의 종교적 경향을 넘어 당장 먹고 사는 문제에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미 인도주의 위기와 난민 문제, 그리고 마약 확산의 지옥문이 열릴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미국과 서방 입장에선 철군과 카불 함락은 아무런 가망 없이 20년을 끌어온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끝을 의미한다. 더는 미국의 자원과 인력이 이 나라를 지탱할 일이 없어졌다.
철군을 결정한 미국과 나토 국가들이 아프간의 여성 인권이나 남은 사람들의 운명을 걱정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위선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물론 떠나는 과정에 세련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이슬람주의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재장악하면서 수도 카불의 일부
주민이 탈출하기 위해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 몰려 탑숭교에 올라타고 있다.
[트위터 캡처]
아프간 국민 입장에선 1973년 친소쿠데타로 시작된 내분∙내전과 외세의 침략∙간섭의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순간이다.
아프간의 역사는 79~89년 소련 침공, 89~96년 내전, 96~2001년 탈레반 1차 통치, 2001~202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겪으며 피로 얼룩졌다.
그런 과정을 거쳐 아프간 국민은 싫든 좋든 탈레반의 통치 아래 놓였다.
스스로 미래를 개척할 의지도, 의욕도 없이 부정부패와 무능 속에서 정쟁을 일삼았던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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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인 텔레반이 15일 수도 카불을 사방에서 포위하자 미국 대사관
직원을 피신시키기 위해 출동한 미군 치누크 헬기가 카불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작은사진은 1975년 4월 북베트남의 진격으로 남베트남 수도 사이공이 함락되자 미국
대사관에서 헬기로 탈출하는 미국인들의 모습. AP=연합뉴스
아프간은 오랫동안 너무도 많은 피가 흐른 안타까운 나라다. 미국 브라운대 웟슨연구소에 따르면 2011년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바이든 대통령이 철군을 발표한 지난 4월까지 4만7245명의 민간인, 6만6000~6만9000명의 아프간 군경, 5만1000명 이상의 탈레반 무장대원 사망자를 냈다.
합쳐서 17만1000~17만4000명에 이른다.
질병, 굶주림, 식수문제, 인프라 부족 등으로 숨진 간접 사망자를 포함하면 피해자는 최대 36만 명이 추가될 것으로 왓슨 연구소는 추정했다.
2420명의 희생자를 낸 미국이나 456명의 사망자를 낸 영국과 비교도 되지 않는다
. 전쟁의 가장 큰 희생자는 아프간인이었다.
79~89년 소련의 아프간 침공 때는 소련군 1만4453명과 아프간군 1만8000명이 숨졌다는 것이 미국 측 연구 결과다.
소련군에 맞서 무자헤딘(이슬람 전사) 5만6000명 이상이 숨졌다는 것이 파키스탄 정보당국의 추산이다.
일부 연구에선 15만~18만 명의 무자헤딘이 숨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민간인 피해는 더욱 크다. 연구자에 따라 56만2000명에서 200만까지 숨진 것으로 추정한다.
500만 명의 난민과 200만 명의 국내 이주자들이 발생했다.
분쟁은 언제나 민간인에게 가혹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아프가니스탄은 지난 반세기 가까이 끊임없는 정쟁과 내전, 외세의 침략과 간섭에 시달렸다. 그 피해는 아프간인이 고스란히 짊어졌다.
아프가니스탄의 눈덮힌 힌두쿠시산맥 앞에 방치된 옛 소련제 전차. AP=연합뉴스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에선 이번 사건은 경쟁자이자 글로벌 패권 국가인 미국이 20년간 볼모로 잡혀있던 아프간이라는 덫에서 탈출한다는 의미가 있다.
’남의 불행을 보며 기뻐한다‘는 의미의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가 끝난 셈이다.
족쇄에서 풀린 미국은 전 세계에 걸친 군사력을 새롭게 재배치하고, 자국 이익 추구에 국력을 쏟을 수 있게 됐다.
그 대상은 도전자 격인 중국과 러시아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국제정치적인 계산이나 전망과는 별개로 정작 아프간 국민이 가장 직접적으로 맞닥뜨린 상황은 새로운 인도주의 위기다.
이미 아프간은 난민과 국내 이주민 문제에서 오랫동안 세계의 문제였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해외를 떠도는 아프간 난민은 260만 명(전 세계 11%)에 이른다.
10년 내전을 겪고 있는 시리아(670만)와 국가붕괴 위기에 몰린 베네수엘라(400만)의 다음이다.
전투를 피해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에서 탈출하는 주민들. EPA=연합뉴스
아프간의 동쪽 국경 너머에 있는 이웃 파키스탄이 아프간 난민 140만 명을 수용하고 있다.
사실상 포화상태다.
시리아 난민이 몰려있는 터키(370만)와 베네수엘라 난민 등이 넘치는 콜롬비아(170만) 다음으로 많다.
인구 2억2500만 명의 파키스탄은 1인당 국내총생산이 2021년 국제통화기구(IMF) 추산으로 1260달러로 사정이 넉넉하지 않다.
오랜 내전과 외세 침탈로 인한 피해가 아프간뿐 아니라 이웃의 핵보유국인 파키스탄까지 미치고 있다.
탈레반을 피해 피난온 아프간 여성과 자녀들. 국내 피란민인 이들은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주목할 문제는 다량의 국내 피란민(또는 실향민)이다.
아프간에선 내부 불안과 갈등, 탈레반과 정부군의 분쟁 등으로 다량의 국내 피란민이 발생해왔다. UNHCR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까지 290만 명이 살던 곳을 떠나 정부군이 장악한 대도시로 피란했다. 최근 지방 도시들이 탈레반에 넘어가면서 수도 카불에 피란민이 몰렸다.
4월의 미군 철수 발표와 5월의 탈레반 공세 강화 이후 40만 명의 국내 피란민이 추가로 발생했다.
카불은 거리에 피란민 텐트가 들어서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다.
국내 피란민은 국경을 맞댄 파키스탄∙이란∙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으로 흘러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미 의회 조사국의 90년 조사에 따르면 아프간은 파슈툰(42%)∙타지크(27%)∙하자라(9%)∙우즈베크(9%)∙아이막(4%)∙투르크멘(3%) 등으로 이뤄진 다민족 사회다.
이들은 대부분 주변 국가와 민족∙언어∙문화로 연결된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팩트북에 따르면 탈레반의 주축인 파슈툰족은 아프가니스탄(1500만 명)보다 파키스탄(4300만 명)에 더 많이 거주한다.
국적과 관계없이 파슈툰족은 로야 지르가라는 종족 모임을 열고 주요 내부 문제를 논의한다.
타지크어와 아이막어는 이란어(파르시로 부른다)와 상호 이해가 가능하다.
이를 넘어 아프간인의 78%는 종족과 무관하게 다리어로 불리는 아프간 이란어로 서로 다른 종족끼리 소통한다.
아프간에선 인구가 최대인 파슈툰족이 쓰는 파슈툰어가 아니라 거대한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링구아 프랑카(공용어)‘로 사용돼온 다리어를 소통언어로 사용하는 셈이다.
파슈툰어도 이란계 언어지만 이란어와 상호 이해되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은 파슈툰어와 다리어의 두 가지를 공식 언어로 삼고 있다.
탈레반 무장대원들이 15일 동부 도시 잘랄라바드에 들어서고 있다. 이 도시는 파키스탄
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중간에 위치한다. 탈레반은 이 도시를 점령하면서 카불
포위를 완료했다. 카불의 주민과 외국인은 항공로 외에 탈출로가 모두 막혔다.
AFP=연합뉴스
상황이 이러니만큼 아프간 국민이 거대한 파슈툰 공동체가 있는 파키스탄이나 이란어를 쓰는 이란∙타지키스탄으로 흘러가기가 어렵지 않다.
다만 이슬람 종파가 문제가 될 수 있다.
퓨리서치 연구에 따르면 아프간은 인구의 90%가 이슬람 수니파이고 9.7%가 시아파다.
시아파 국가인 이란으로 피란하거나 이주할 가능성이 그만큼 제한된다.
다만 타지키스탄은 이슬람 인구의 95%가 수니파라 사정이 다르다.
탈레반의 수하일 샤힌 대변인. AP=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게릴라 투쟁으로 20년 만에 정권을 되찾은 탈레반 세력은 아무래도 종교∙군사가 중심이다.
인도주의 문제와 국내 피란민의 재정착, 해외 난민의 귀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최대 도전 과제는 경제다.
아프간은 국제통화기금(IMF) 명목 금액 기준 2021년 전망치로 일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92달러 수준이다.
세계 204위로 최빈국으로 분류된다.
인구 3289만 명에 GDP가 199억 달러로 119위다.
하루 1.9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빈곤층이 인구의 54.5%에 이른다.
아프간은 경제적 자립 능력이 낮다.
과일과 말린 과일, 보석이 주요 수출품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프가니스탄의 국내 피란민이 기댈 곳이라곤 국제인도주의 기구뿐이다.
이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계속 활동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국제적십자사(ICRC) 로고. [사진 ICRC 홈페이지]
국제인도주의 기구인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의 엘루아 피용 아프가니스탄 사무소장은 17일 이런 트윗에서 이렇게 의지를 다졌다.
“현재 카불에는 전투가 없다.
하지만 칸다하르∙헤라트∙라슈카르가흐 등 여러 도시에서 몇 주에 걸쳐 전투가 벌어진 결과 인도주의적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수천 명이 부상했으며, 주택과 병원, 인프라가 파괴되거나 손상을 입었다.
ICRC는 현재 이런 수요에 부응하는 게 임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인력과 활동을 줄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 나라에서 30년간 활동해왔으며 지금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앞서 16일 ICRC는 16일 보도자료를 내고 “지난 30년간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면서 그랬던 것처럼 지금과 같은 특별한 시기에도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위해 (탈레반이 점령한) 헤라트에서 계속 활동 중”이라고 밝혔다.
ICRC는 헤라트와 마자르이샤리프, 파이자바드의 정형외과 센터도 계속 정상 가동 중“이라고 소개했다.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급박해도 구호와 의료 등 지원은 멈출 수 없다는 의지를 밝힌 세이다.
피용 소장은 앞서 15일에는 트윗에 현지 인도주의 위기 상황을 자세히 전했다.
"현재 집들이 파괴되고 의료 스태프들과 환자들이 엄청난 위험에 처해있으며, 병원과 전기, 수도 인프라는 손상됐다.
도시에서 폭발성 무기를 사용하면서 목표물의 뒤에 있는 민간인 인구에 대한 극심하고 무차별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많은 가족이 떠나는 것 외에 아무런 대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남부 칸다하르의 ICRC 지역사무소장인 이냐시오 카자레스도 트윗을 올렸다.
“지난 주말 칸다하르에서 벌어진 사건(탈레반의 점령)에도 우리 팀은 미르와이스 지역병원에 대한 지원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분쟁에 휘말린 사람들을 돕는 일은 우리의 최우선 업무다.”
굳은 의지에도 이들은 감정적으론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현지의 국제인도주의 기관 요원은 '(탈레반이 공세를 시작한) 지난 5월 이후 최소 39만명의 국내 피란민이 발생했다'는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의 트윗을 리트윗하며 “어떤 말로도 이 나라의 상황과 분쟁이
사람들에게 안긴 상처에 대한 제 느낌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불안 속에서도 용기를 내고 있다.
국제인도주의 기관 요원의 모습이다.
15일 아프가니스탄 동부도시 잘랄라바드를 점령한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의 국기를 끌어내리고 있다. 탈레반은 과거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에미리트'
라는 국호를 사용했다. EPA=연합뉴스
더욱 큰 문제는 마약이다.
유엔마약범죄국(UNODC)과 미국 마약단속국(DEA)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은 양귀비에서 추출한 불법 마약인 헤로인의 최대 90%를 전 세계에 공급해왔다.
국경을 맞댄 파키스탄이나 이란을 통해 유럽 등 전 세계로 헤로인을 공급하는 ‘황금 초승달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태국∙미얀마 등 동남아의 ‘황금 삼각지대’와 더불어 전 세계 헤로인 공급의 엔진이다.
탈레반 1차 통치 시절인 2000년 이를 금지하면서 양귀비 재배 면적이 일시 축소됐지만, 2001년 탈레반이 사라진 뒤 가난한 농민들이 다시 재배를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과 나토의 국제안보지원군(ISAF)이 이를 단속했으나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양귀비 줄기에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프리랜서 김성태]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이 인도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가난한 농민들이 양귀비 재배에 매달릴 가능성이 크다.
탈레반은 부패하고 무능했던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의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과 차별화를 시도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아프간의 인도주의 문제 해결이 주요 과제로 떠오를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국내 피란민이 국경 너머 난민으로 유출될 수밖에 없다.
가난한 농민들이 양귀비 재배를 늘리고 이를 원료로 만든 헤로인 등 마약을 해외에 밀수출하게 되면 탈레반의 아프간은 전 세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탈레반도 전투적 이슬람주의의 대외 수출보다 국내 이슬람화와 권력 안정화에 주력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난민과 아편, 두 문제에서 국제사회는 탈레반과 대화하고 협력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미래를 만들 때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채인택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AP/뉴시스] 탈레반이 아프간 수도 카불 도심에 무혈 입성한 15일 밤 민항기 운항이
중단된 카불 하미드카르자이 국제공항에 탈레반 치하의 아프간을 탈주하려는
사람들이 이 수용한도를 넘어서는 640명에 달했다.미공군 제공 사진. 2021. 8. 18.
한국은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다
이번 주 창넘어 북한의 주제는 아프가니스탄과 한국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아프간에서 벌어진 일이 한국에서도 벌어질 것인가, 또 북한은 이번 일을 어떻게 평가하고 대응할 것인가를 따져 보겠다.
너무 뻔한 주제라 창넘어 북한에서 굳이 다뤄야 할지를 두고 잠시 고민하다가 지금처럼 핫하게 진행 중인 이슈를 외면하는 것이 되려 이상할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다.
신문칼럼 읽는 기분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다.
미군 철수 결정이 촉발한 혼란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야만적인 주민 학살을 일삼던 탈레반 세력이 아프간을 장악함에 따라 다시 한번 인도적 참상이 벌어질 것인지를 전 세계가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떻게 미국이 이런 상황을 야기했는지 도무지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 일차적이다.
또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워싱턴=AP/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아프가니스탄 상황에 관해 연설하고 있다. 2021.08.17.
한편으로 국제사회의 관심은 미군의 갑작스런 철수 결정이 미국의 주요 동맹, 즉 우리와 일본, 유럽과 중동의 여러나라, 특히 미국과 중국 사이에 최근 첨예한 갈등의 현장인 대만의 안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도 집중되고 있다.
아프간 사태가 미국이 자국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언제든 손을 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중국의 환구시보가 대만을 향해 '봤지, 미국 믿다간 큰코다친다'는 식으로 한껏 조롱하는 논평을 내놓은 것이 그런 의구심을 한층 자극했다.
미국이 동맹국이나 우호국들을 지켜주려는 의지가 있다고 믿어야 할지, 나아가 미국이 그럴만한 충분한 능력이 있는지를 두고 논란이 진행되고 있다.
아프간 철수 결정을 밀어붙인 바이든 미 대통령은 위기에 빠졌다.
지지율이 급락하고 민주당과 공화당의 지도자들이 한목소리로 바이든 대통령을 비난하고 있다.
유력 언론들도 매일같이 비판적 의견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자 바이든 대통령과 백악관, 국무부가 매일같이 '아프간과 한국, 일본, 유럽, 대만은 다르다'면서 상호방위조약에 따른 방위 의무를 다할 것을 강조함으로써 수습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평택=뉴시스】이영환 기자 =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이
오후 경기 평택시 주한미군 오산 공군기지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2019.06.30.
20hwan@newsis.com
국내에서도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몇 배 올리지 않으면 미군을 빼겠다'고 공언했던 게 1년도 채 안 된 일이다.
트럼프는 우리에게 '70년 동맹 미국이 이럴 수가 있나'라는 트라우마를 안겼다.
바이든 대통령이 'America is back'이라면서 불안감을 가라앉혔지만 아프간 상황은 트럼프가 남긴 트라우마를 새롭게 자극했다.
어느 나라든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동맹이든 우호국이든 저버릴 수 있다는 것이 국제 질서의 냉엄한 현실이다.
한미관계에서도 그런 일이 몇 차례 있었다.
해방 직후 미국이 이른바 애치슨 라인을 선언해 한국을 미국의 극동방어선에서 제외하면서 김일성의 6.25 남침을 촉발했던 아픈 경험이 있다.
또 1970년대 박정희 유신체제를 무너트리겠다며 주한미군 감축을 단행한 카터 대통령 정부도 기억난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한미행정협정(SOFA) 개정을 추진하자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한국민이 원하면 언제든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발언한 일도 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모든 일을 염두에 두더라도 주한미군이 철수함으로써 한반도에서 아프간과 같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거의 모든 전문가의 의견이니까.
역시 이런 걱정은 '쓸데없는 기우'라는 생각이다.
[서울=뉴시스] 사진은 지난달 11일 한국 특수전사령부와 주한미군이 전북 군산시
군산공군기지에서 근접 전투 훈련을 하는 모습. (사진=미국 국방부 홈페이지 캡처)
2019.12.23.photo@newsis.com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로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다만 딱 한 가지를 꼽으라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겠다.
적어도 한 세대, 즉 30년 안에는 우리도 미국도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아 적극적으로 내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으로 확신할 수 있다고 말이다.
애치슨 라인으로 한국전쟁이 촉발됐지만 미국은 즉각적인 참전으로 북한을 물리쳤다.
카터가 주한미군 철수를 위협했지만 감축에 그쳤을 뿐 완전 철수는 애당초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럼즈펠드의 주한미군 철수 발언도 노무현 대통령의 기선을 제압하려는 협상전술에 불과했다.
한국은 미국이 주도한 국제질서에서 꽤 큰 역할을 담당했다.
냉전 시기 남북한은 동서 진영의 첨병이었다.
그 자체가 분단을 영구화하는 질곡이기도 했지만 그런 한계 속에서도 우리는 세계 최빈국에서 당당히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동맹국으로서 월남은 물론 바로 아프간에도 파병했던 나라가 우리고, 미국이 주도한 국제질서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나라가 바로 우리다.
서울=뉴시스】박미소 수습기자 = 사진은 지난 지난 2017년 11월 세종대왕함(오른쪽)
이 한미해군의 연합훈련에 참가해 지휘능력을 선보이는 모습.
2018.12.23. (사진=해군본부 제공) photo@newsis.com
지금 우리는 미국에게 중국을 견제하는 첨병 국가다.
비록 우리가 그런 역할을 흔쾌히 자임하지는 않는 분위기지만 그렇다고 미국과 동맹관계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국민이나 정치인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주한미군이 완전히 철수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장담하는 건 섣부른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한국은 아프간과는 다르다.
우리 국민 가운데 미군이 철수하는 걸 계기로 북한이 오판해 공격해오면 우리가 아프간 정부나 군대처럼 한순간에 무너질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일 것이다.
애치슨 라인이 그어졌을 때 김일성이 그랬던 것처럼 김정은도 아프간 사태를 계기로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김일성 시기의 남북한 상황과 현재의 남북한 상황은 정반대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핵무장을 한 북한이지만 그것만으로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는 건 6.25 남침 이상으로 '큰코다칠 일'이 된다는 걸 김정은도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북한에선 지금 김정은 여동생 김여정이 김영철 통일전선부장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등과 머리를 맞대고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따져보고 있을 것이다.
안 그래도 한미합동군사연습을 걸어 '엄청난 안보위기를 시시각각으로 느끼게 해줄 것'이라고 공언한 마당이니까.
왼쪽부터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그렇지만 아프간 사태를 빌미 삼아 저들이 도모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미사일 발사나 한반도 국지도발은 아프간 사태가 아니라도 벌였던 일이니 말이다.,
벤저민 영이라는 미국의 한 북한 연구자가 NK News라는 북한 전문 사이트에 쓴 칼럼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겠다.
"북한이 한반도에서 (무력통일이라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힘든 것만큼이나 탈레반이 며칠 만에 아무런 저항에도 맞닥트리지 않고 카불을 장악해 샤리아법 통치를 되돌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미국사람은 없었다.
(이렇듯) 상황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당신한테 시계가 있다면 우리에겐 시간이 있다'고 말하는 아프간 사람들을 보고 북한도 같은 생각을 할지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은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다."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로훌라 니크파이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태권도 경기에서 동메달을 딴 뒤 국기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이었다. /아프간 정부 시민감사
위원회 홈페이지
태권 영웅’ 배출한 아프가니스탄 소수민족의 수난
앰네스티 “탈레반, 소수민족 하자라족 살해…탄압 거세질 우려”
몽골계 외모에 시아파 믿는 소수민족…예전부터 수난
하자라 출신 태권도 선수 니크파이 조국에 첫 올림픽 메달 선사하며 국민영웅 돼
지난달 초 아프가니스탄 동부 가즈니주에서 정부군과 탈레반간 교전이 벌어지자 이들은 산으로 피신했다
이중 일부가 먹을 음식을 구하기 위해 마을로 돌아왔다가 탈레반 대원들과 맞닥끄렸다
탈레반의총격에 6명이 숨졌고 다른 3명은 가혹한 고문 끝에 목숨을 잃었다
국제 인권단체인 앰네스티인터내셔널이 발표한 아프간의 소수민족 학살 사례 보고서 의 내용이다
여기서 언급된 민족은 아프가니스탄 전체인구의 9% 가량을 차지해 파슈툰족 (42%)과 타지크족( 26%)에 이어 3위인 하자라족을 말한다
아그네스 칼라마드 ‘앰네스티인터내셔널’ 사무총장은 영국 ‘BBC’ 방송에 “탈레반 치하 아프가니스탄에서 특히 소수민족과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이 위험에 처해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고 미국의소리(VOA)는 보도했다.
앰네스티인터내셔널은 유엔에 이번 사건에 대한 조사와 소수민족에 대한 보호를 촉구했다.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간 정부를 전복하고 20년만에 다시 나라를 손아귀에 넣으면서 여성 뿐 아니라 종교·인종적 소수자에 대한 가혹한 탄압이 부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앰네스티 보고서가 지적하듯 하자라족이 우선적인 타깃이 될 수 있다.
미군·나토군 주둔기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있었던 부족간 갈등이 다시 떠오를 가능성도 점쳐진다.
하자라족은 고난과 시련의 아프간 역사 속에서도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던 종족으로 종종 언급된다. 그건 이들이 어느 모로 봐서도 소수 진영에 속하기 때문이다.
우선 인종적으로 이들은 서양인인이나 남아시아인처럼 이목구비가 뚜렷한 파슈툰족이나 타지크족과 확연히 구분된다.
구릿빛 얼굴에 동양인의 모습을 하고 있고, 더러는 한국인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건 이들이 몽골계 혈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적으로도 아프가니스탄 무슬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수니파와 달리 시아파다.
따라서 시아파의 종주국인 이란과 역사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부족·종교·이념 문제로 뒤엉키며 수십년 가까이 내전과 테러의 굴레를 벗어나고 있지 못한 아프가니스탄이지만, 하자라족의 위치는 더욱 복잡하고 곤란한 측면이 있다.
특히 하자라족은 아프가니스탄의 시아파 민병대 세력인 파테미욘 사단의 주축을 이루고, 이란의 지휘를 받으며 시리아와 예멘에서 이란을 대신해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하자라족을 이슬람의 다수를 차지하는 수니파 세력이 곱게 볼리가 없다.
특히 탈레반은 물론이거니와 아프가니스탄에 세력을 확보하고 있는 알카에다,
이슬람국가 추종세력 모두 극단적 수니파 신봉자들로 시아파를 처단해야 할 이단으로 여긴다.
하자라족에 대한 공격이 지속될 조짐은 또 있다.
지난 18일 중부 바미안주에 있던 하자라족 지도자 압둘 알리 마자리의 석상이 탈레반에 의해 파괴됐다.
마자리는 과거 탈레반에 맞서 싸우다 목숨을 잃은 인물이다.
이처럼 소수자라는 것과 복잡한 정세 때문에 하자라족은 오래전부터 과격 세력의 타깃으로 숱한 공격을 받으며 수난을 겪었다.
아프가니스탄 사회 내부적으로도 외모와 종교가 다른 이들을 천대하는 시선이 없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20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을 경비하는
미국 해병대원이 한 아프간 어린이에게 물을 먹이고 있다. /미 중부 사령부. 연합뉴스
그러나 하자라족은 21세기 들어 아프가니스탄의 단결과 화합을 이끄는데 맹활약을 했다.
아프가니스탄인들을 열광케했던 스포츠 영웅이 바로 하자라족 출신이기 때문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로훌라 니크파이(33)이다.
그가 딴 두 개의 메달은 아프가니스탄이 지금까지 올림픽에서 획득한 메달의 전부다.
2008년 그가 조국에 역사상 첫 메달을 선사했을 때 아프가니스탄 전국이 열광의 도가니가 됐다.
테러와 전쟁에 찌들어있던 아프간인들은 TV화면이 보이는 곳이면 모여들어 그의 경기를 지켜봤고, 니크파이가 세계선수권자 출신의 스페인 선수를 이기고 동메달을 확정짓는 순간 전국민이 거리로 몰려나와 환호했다.
하미드 카르자이 당시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서 축하를 건넸고, 그를 국가의 영웅으로 부르며 주택을 선물했다.
닉파이는 어린 시절 이란의 난민캠프에서 태권도를 접한 뒤 고국으로 돌아와 선수가 된 인간승리의 주인공이다.
그의 메달은 부족 갈등을 걷어내고 아프간인들이 하나로 뭉치는 역할도 톡톡히 했다.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군 공항에서 19일
(현지시간) 국외로 탈출하려는 아프간인들이 미군의 수송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4년 뒤 런던 올림픽에서도 동메달을 거머쥐며 고국에 기쁨을 선사했다.
그런데 이 때 승리한 상대가 파키스탄 선수였다.
영국 일간 더 가디언은 당시 이 소식을 전하면서 “아마도 탈레반은 니크파이의 메달 획득 소식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파슈툰이라는 인종적 동질성을 배경으로 탈레반이 파키스탄의 은밀한 지원을 받고 있을 것이라는 점을 슬쩍 꼬집은 것이다.
니크파이는 이후에는 유엔 친선대사와 아프간 올림픽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줬다.
아프간 정부 시민개혁위원회는 청사 일부 구역을 그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그에게 주택을 선물하고 국가 영웅의 칭호를 수여했던 초대 대통령 카르자이는 지금 탈레반 측과 과도정부 구성 협상을 벌이고 있다.
아프간 정부 붕괴후 니크파이에 관련한 외신은 아직 나온게 없다.
다만 니크파이의 활약상을 보고 태권도를 시작한 여성 장애인 태권도 선수 자키아 쿠다다디(23)가 24일 개막하는 도쿄 패럴림픽에 아프가니스탄 여성선수로는 최초로 패럴림픽에 참가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아프간 정부가 붕괴되고 공항의 정상운영이 중단되면서 그의 꿈은 좌절될 가능성이 커진 상태다.
정지섭기자
▲아프카니스탄과 주변 국가들 지도[이미지=utoimage]
카불 장악 임박한 탈레반. ⓒ [AFP=연합뉴스]
PT체조도 못하는 초3수준..美철군 뒤엔 오합지졸 아프간
미국은 지난 20년행진 때 장병마다 팔다리 제각각
제식훈련, 유격 체조도 쉽지 않아
신병 95% 초등 3학년 미만 독해력
지난 15일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점령했다.
아프간 정부군은 별다른 저항도 없이 무기를 내려놨다.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국외로 도망쳤다.
미국은 ‘20년 전쟁’을 끝냈지만, 또 다른 베트남 전쟁이라는 패전의 멍에를 쓰게 됐다.동안 2조 330억 달러(약 2650조원)를 투입해 아프간 정부를 세우고 군대를 키웠다.
이런 노력도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미군의 압도적인 지원을 받는 30만여명의 아프간 군대는 이보다 적은 7만여명의 탈레반을 왜 막아내지 못했을까.
아프간 정부군(ANSF)은 육군(ANA)이 대부분인 군인 18만여명과 경찰(ANP) 15만여명으로 꾸려졌다. 미국은 2013년 6월 아프간 정부에 치안 책임을 넘긴 뒤 11~18명인 군경자문팀 총 454개를 투입해 교육ㆍ훈련을 지원했다.
하지만 아프간 군대는 정규군이라고 말하기 창피한 수준이다.
능력ㆍ의지ㆍ희망이 없는 ‘오합지졸’ 집단으로 ‘지리멸렬’ 무너진 게 패인이다.
지난해 9월 아프가니스탄 육군 병사가 훈련을 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신병 95% 초등 3학년보다 자질 부족
아프간 군대에 입대한 신병은 기초적인 제식 훈련이나 유격 체조(PT 체조) 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발맞춰 행진하는 것도 어려운 수준이다.
초등학생보다 못한 움직임을 보인 배경은 교육수준에 있다.
아프간 인구 중 43%만 읽고 쓸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신병 가운데 불과 5%에 해당하는 경우만 초등학교 3학년 수준 이상의 독해력을 갖는다.
가족이 몇 명인지 숫자로 말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2013년 5월 훈련 중인 아프간 군 교육생의 방탄모를 조교가 바로 고쳐주고 있다.
AP=연합뉴스
아프간 군대는 말이 안 통한다. 아프간에서는 공용어인 파슈툰어ㆍ다리어뿐 아니라 다양한 기타 언어도 사용한다.
단체로 모여진 군대를 움직일 때 한가지 말로 명령이 안된다.
아프간은 하나로 뭉치지 못했다.
7개의 주요 민족과 혈연중심의 지역 거점 부족 및 군벌로 파편화된 사회적 배경 때문이다.
다양한 이해 집단이 느슨하게 연결돼 동상이몽처럼 움직였다.
외침을 받아온 아프간 주민은 생존을 위해서라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순식간에 정부군에서 탈레반 반군으로 군복을 바꿔 입었다.
신병을 모집해도 빈번하게 탈영해 제대로 된 군대를 꾸려나갈 수 없었다.
그나마 아프간 특수부대는 탈레반도 두려워하는 정예부대로 활약했으나 워낙 규모가 작아 패전의 흐름을 바꿀 수 없었다.
지난 1월 석달 동안 교육을 마친 아프간 육군 장병이 수료 기념 열병식에서
행진하고 있다. 행진하는 장병 마다 팔과 다리가 재각각 따로 움직인다.
AP=연합뉴스
이런 상황인데 오바마 행정부는 정부군 규모를 늘리는 데 힘을 쏟았다.
2008년 14만 8000여명에서 2011년 30만여명을 넘어섰다.
양적 성장에 치중해 질적 발전이 뒤로 밀리면서 예고된 재앙이 싹을 틔웠다.
‘유령 군인’ 한가득…탈영병 속출
뉴욕타임스는 아프간 정부군 규모는 밖으로 알려진 30만명보다 적은 5만여명이라고 추정했다.
BBC는 30만명 중 상당수는 장부에만 존재하는 ‘유령 군인’이라고 보도했다.
미 정부도 아프간 재건 특별감사관실(SIGAR)이 펴낸 보고서에서 “아프간 병력에 대한 데이터의 정확성이 의심스럽다”며 시인했다.
부패한 아프간 관료는 군인 숫자를 부풀려 지원비를 가로채거나 급여를 챙긴다.
군대와 경찰에 이름만 올려놓고 월급을 받아가는 가짜도 태반이다.
생체검증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정확한 병력 규모를 알 방법도 없고 얼마나 많은 병력이 실제 출근을 하는지도 파악이 안 됐다.
2012년 12월 아프간 여성 경찰관이 교육을 받고 있다. 경찰은 아프간 보안군 또는
치안군으로도 불리는 정규군에 포함된다. 로이터=연합뉴스
오히려 실제 복무하는 군인과 경찰은 몇달 동안 급여를 받지 못해 외상으로 식료품을 구매하다가 탈영하는 경우가 속출했다.
이들 대부분이 급여 200달러(약 23만원)로 살아가는 빈민층 출신이라 생계 곤란을 견뎌내기 어려웠다.
이런 처우 때문에 지난해 병력 중 25% 정도가 교체될 정도로 이직률이 높았다. 전문적인 군인과 경찰을 길러낼 틈이 없다.
탈레반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전투태세를 갖추기 어려웠던 배경이다.
아프간에는 제대로 된 군 지휘관도 없었다.
아프간 훈련단장을 맡았던 윌리엄 콜드웰 미 육군 중장은 “병사를 만들고 무장하는 건 빠르게 가능하지만, 지휘관을 길러내는 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교육을 마친 아프간 육군 여성 신병이 수료식에서 행진하고 있다.
행진하며 줄 맞춤도 깨졌고 팔과 다리도 재각각 따로 움직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뿌리 깊은 부패, 2650조원 투입 물거품
미국이 20년간 직접 전쟁하는데 약 957조원, 아프간 군대 훈련과 장비 구축 및 급여 지급에 약 100조원을 투입했다.
지난 14일 뉴욕타임스는 “아프간 정부의 부패가 지속하자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아프간 정부와 군대를 영구적으로 지원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강화됐다”고 전했다.
아프간 정부의 뿌리 깊은 부패가 미군의 철군을 결정한 근본적 배경이라는 뜻이다.
지난 6월 아프가니스탄 헬만드주 미군기지에서 성조기가 내려지고 있다. AP=연합뉴스
아프간 정부군 고위 지휘관은 탈레반과 항복을 두고 거래를 했다.
탈레반 지도자는 정부군에 금전ㆍ협박ㆍ관대한 처분 등을 약속하며 무장 해제를 설득했다.
미군이 탈레반과 싸우라고 돈과 무기를 줬던 노력은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 정도면 아프간을 ‘손절’한 미국 탓만 할 수 없다.
지난 14일 바이든 미 대통령이 “미군이 1년 또는 5년을 더 주둔해도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던 배경이다.
아프간 군대가 쓰던 항공기를 비롯한 헬기ㆍ드론ㆍ전차 등 미국산 무기는 탈레반 수중에 들어갔다.
탈레반 반군은 이제 미국제 M16ㆍM4 소총을 들고 거리를 활보한다.
18일(현지시간) 미제 M4 소총 등으로 무장한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순찰을 하고 있다. 시내 전역에 검문소를 설치해 행인의 휴대전화와 몸을 수색하고
때론 폭행을 가하는 등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 국방부도 아프간 정부군에 제공한 무기와 장비가 탈레반 손에 넘어갔다고 확인했다.
아프간 재건에 쓴 돈은 칼이 돼 돌아왔다.
아프간 ‘대리전쟁’ vs 탈레반 ‘성전’
아프간 군대는 미군이 철군을 시작한 지 불과 3개월여 만에 무너졌다.
전쟁하면서도 동기가 없었다.
부패한 정권은 미국이 만들어준 밥상도 엎었다.
아프간은 사실상 탈레반과 싸우는 미국의 ‘대리전쟁’에 머물렀다.
지난 4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를 돌아보고 있다.
바이든은 이날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약 2500명을 9·11테러 20주년인 9월 11일
까지 모두 철수하는 계획을 발표한 뒤 이곳을 찾았다. AP=연합뉴스
지난 16일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그들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도록 모든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그런 미래를 위해 싸울 의지까지는 줄 수 없었다”고 했다.
싸우기도 전에 승패는 결정됐다.
탈레반은 수니파 극단주의 정치조직으로 이념적 결속이 강하다.
왜 싸워야 하는지 동기가 분명하다.
미국과의 ‘성전’에서 대등하게 싸운다며 사기도 높다.
아프간 주민은 역사적으로 외세 개입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다.
먼저 들어왔던 구소련도 10년 전쟁 끝에 물러났다.
미국도 ‘타인’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전쟁을 시작한 2001년 10월부터 지난 4월까지 군인과 민간인 17만여명이 죽거나 다쳤다.
희생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박용한기자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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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남서쪽 난민촌 여성 해방은커녕 수백만 명의 삶을 파괴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출처 가이 스몰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여성 인권에 관심 없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서방이 패하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여성 인권에 관심 없다
칼레반-- 미국이 만든 공포
2001년 미국·영국은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인도적 개입”을 위한 전쟁이라고 정당화했다.
실제로 이들이 원한 것은 중동과 그밖의 지역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을 재확립하는 것이었다.
지배자들은 어디서도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키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의 관심사는 지배·시장·통제뿐이다.
그들이 민간인을 조금치라도 신경썼다면, 그것을 민간인 폭격이라는 방식으로 보여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방은 이 전쟁이 탈레반으로부터 민주주의와 인권, 특히 여성 인권을 지키는 전쟁이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했다.
하지만 서방은 사우디아라비아처럼 여성의 삶을 체계적으로 망가뜨리는 정권과 동맹을 맺는다.
지금은 아프가니스탄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위태로운 상황인 듯하다.
서방이 20년 전쟁으로 개입한 결과,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삶은 훨씬 악화됐다.
외세 개입과 서방 군대의 거듭된 민간인 살해 때문에 탈레반은 오히려 성장했다.
탈레반 치하에서 여성의 삶은 실로 억압적이고 힘겨웠다.
[탈레반이 세울] 새 정권은 인권을 짓밟는 정권일 것이다.
하지만 군사 개입은 해법이 아니다.
해방은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양도되거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러 해에 걸친 폭격·전쟁·유혈로 부여되는 것도 결코 아니다.
억압받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해방시킬 방법은 오직 자체 행동과 자력 해방이다.
미국·영국은 여성의 권리에 관심이 없다.
이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도망치려는 수많은 난민들에게 국경을 개방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자국 내에서 차별받는 사람들을 어떻게 취급하는지를 보라.
진정한 해방을 이루는 방법은 아래로부터 투쟁으로 쟁취하는 것밖에 없다.
해방을 빌미로 전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
이사벨 링로즈번역 김준효
▲ KBS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등 방송들은 탈레반이 20년 만에 정권을 잡은
아프가니스탄 현지 상황을 살펴본다. KBS 제공
준비 안된 철군, 탈레반 장악…아프가니스탄 미래는
방송들, 아프간 사태 분석·전망
“미국, 준비 없이 철군 강행”
무장 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후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하는 등 사망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전문가들과 현지 상황을 분석하고 앞날을 예상하는 방송들이 마련된다.
21일 오후 4시 아리랑TV ‘더 포인트’는 미국 및 국내 중동 전문가들과 아프가니스탄 사태의 원인을 짚는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에 있긴 했지만 카불만을 통제하고 있었고 나머지 지역은 지역군과 협업하는 관계를 맺었다”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미군이 전체 아프가니스탄을 완벽하게 제어하기엔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는 “미국이 지원한 아프간 정부는 매우 비효율적이고 부패했다”며 “지원한 돈을 제대로 투자하지 않았고 국경을 지키던 군인들과 경찰들은 탈레반과 싸우기도 전에 돈을 받고 전향했다”고 지적한다.
화상으로 연결된 후안 콜 미국 미시간대학교 교수도 “미국은 많은 군인의 생명과 2조 달러가 넘는 금액을 잃게 됐다”고 꼬집는다.
▲ 아리랑TV ‘더 포인트’ 156회에 출연하는 중동 전문가 후안 콜 미국 미시간대학교
역사학 교수. 아리랑TV 제공
앞날이 밝지 않다는 전망도 내놓는다.
미국은 군을 철수하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지 않았고, 개방적 정부를 구성하겠다는 탈레반의 말을 믿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마약, 인권, 여성 탄압 등을 면밀히 지켜봐야 하며, 국제사회가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공식 정권으로 인정할지도 합의할 문제라고 지적한다.
KBS 1TV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은 같은날 밤 9시 40분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상황을 전한다.
지난 17일 탈레반 대변인이 이례적인 공개 기자회견을 열고 20년 전의 통치 방식에서 벗어나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겠다고 밝혔지만, 당일 부르카를 입지 않고 외출한 여성이 탈레반의 총에 맞아 숨졌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그 약속이 빈말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수많은 우려에도 철군을 강행한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미국 내 여론과 국제사회의 반응은 싸늘하다. 방송은 아프가니스탄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살펴보고 기나긴 아프간전 종식이 국제사회에 미칠 영향을 워싱턴 특파원 및 전문가들과 논의한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조 바이든
한국과 아프간과 차이, 침략당하면 미국 대응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한국과 일본·대만, 그리고 유럽의 동맹국들이 침략을 당할 경우 미국은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가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동맹도 버릴 수 있다는 ‘손절 외교’로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지자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선을 긋고 나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국·대만·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아프간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며 “이들 국가는 내전 상태가 아니라 통합된 정부를 가진 나라로, 우리는 상호 협정을 맺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협정은 악당들(bad guys)이 나쁜 짓을 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한 것”이라며 “우리는 그동안 동맹국들과의 모든 약속을 성실히 지켜왔다”고 덧붙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어 ‘한 회원국에 대한 공격은 모두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자동으로 개입해 공동 방어를 한다’는 나토 조약 제5조를 거론하며 “미국은 5조 조항에 대해 신성한 서약을 했다”며 “이는 한국과 일본·대만도 마찬가지로 아프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는 제3조에 이 같은 내용이 적시돼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을 봐라. 미국은 믿을 수 없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지적에도 “누가 그렇게 말하느냐”며 “나는 이 결정을 내리기 전에 유럽의 동맹국들과 만났고, 그들도 우리가 아프간에서 나와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이 독단적으로 아프간에서 빠져나가려 했다’는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아프간에 파병한 나토 동맹국들과도 사전에 긴밀히 협의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아프간 사태가 미국에 대한 동맹의 신뢰에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지적에 “우리는 늘 동맹과의 파트너십을 우선시해 왔다. 아프간 철군 결정도 나토 동맹국들과 긴밀히 조율해 이뤄진 것”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을 재확인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전략적 경쟁자들은 미국이 아프간에서 2년, 4년, 심지어 20년 더 갈등에 빠져 꼼짝도 못 하는 걸 가장 반길 것”이라며 미국·EU와 달리 탈레반에 우호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했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이 ‘대만이 침공당할 경우 군사적 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데 대해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0일 브리핑에서 “하나의 중국이란 원칙은 어떤 국가도 넘을 수 없는 레드라인”이라며 “어느 누구도 국가 주권과 영토를 보전하려는 중국의 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김홍범 기자 park.hyunyoung@joongang.co.kr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
전 중앙공무원교육원장·경영학박사
아프가니스탄 사태가 알려주는 교훈
엄청난 굉음을 내며 이륙하던 군용기 바퀴에 매달려 있다가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전날 아프가니스탄 카블공항을 이륙하는 미군수송기에서 떨어지는 사람의 모습을 뉴스로 본 탓이다. 미군이 마지막으로 아프가니스탄을 떠나는 날 카블공항은 한마디로 지옥같은 상황이었다.
이륙하는 군용기에 서로 매달리려고 뛰고 달리는 군중의 모습은 금세기 최악의 비극적 모습이다.
이 비행기를 타면 목숨을 건지지만 타지못하면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이 와중에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헬리콥터를 타고 국외로 탈출하였다.
6.25전쟁중 태어난 나는 평생 미국을 좋아하고 미국이 우리나라의 동맹인 것을 감사하게 여기며 살았다.
전쟁중 안죽고 태어난 것도 미국 덕분이고 전후 어린시절 굶어죽지않은 것도 미국의 원조물자 덕분이었다.
그러나 내가 평생동안 미국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인간을 존중하는 자유민주주의 선도국가이기 때문이다.
세계최강의 군사력을 지닌 자유민주주의 국가 미국이 있는한 인류도 대한민국도 안전할 거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허겁지겁 철수하는 모습을 보니 마치 평생꾸어온 꿈이 산산조각 깨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말이 철수이지 명백한 패퇴의 모습이다.
우선 두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하나는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세계최강 미군은 왜 패배했을까였고 또하나는 미국의 인도주의 가치관은 어디로 갔을까였다.
아프가니스탄 패배를 철수라고 장하는 미국의 변명은 스스로 지킬 수 없는 나라를 위해 미군이 주둔하고 싸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엄청난 변명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갑자기 바뀐 것은 없다.
그들 정부는 오래전부터 부패했고 무능했고 군은 허약했다.
탈레반은 여전히 질겼고 지독했다.
어느 나라 보다도 정보력이 뛰어난 미국이 이걸 모르고 장기간 군을 주둔시킨건 아니었을 겄이다.
미국이 패한 결정적 이유는 국내정치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 미군주둔을 반대하는 여론이 높아졌고 이게 정치권의 발목을 잡았다.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반드시 적을 격퇴시키라는 여론이 없는한 첨단무기 사용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미국의 이런 상황은 아프가니스탄 정부도 탈레반도 꿰뚫고 있었다.
패배의 주원인은 미국이 열심히 싸울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패퇴한 뒤에 나온 변명이 바로 이것이다.
너희들이 열심히 싸우지않으니 우리도 제대로 싸우지않았다는 것이다.
두번째 의문은 미국의 인도주의정신은 어디로갔는가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가치는 인도주의다.
모든 제도와 정책이 생명과 인권을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시작한다.
인도주의는 인류가 유지해가야할 가장 소중한 가치다
. 미국은 인권을 무시하고 파괴하는 파시스트국가들과 싸웠고 대부분 승리했다.
독재와 인권탄압을 피해 자기나라를 탈출한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택한 곳도 미국이다.
국제무대에서 인권과 자유를 옹호하고 앞장서서 이끌어온 것도 미국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선망하고 지지한 것은 바로 미국의 인간존중 가치때문이었다.
이번에 미국은 인본주의를 내던졌다.
아프가니스탄 국민의 인권도 내던졌지만 그동안 미국을 돕던 수만명에 이르는 공무원, 군인, 언론인, 적극협력자를 헌신짝처럼 버렸다.
이들의 안전과 목숨을 생각했다면 먼저 이들을 탈출시키고 철군을 해야했다.
이제 이들 협력자들은 탈레반 치하에서 대부분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미국을 믿고 지지하는 것은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보다 미국의 인도주의 가치관때문이었는데 이제 이 가치관은 더이상 믿기 어렵게 되었다.
이런 비난을 감수하고도 냉정하게 미군을 철수시킨것 또한 미국의 국내정치 때문이다.
한명이라도 미군의 희생을 줄이고 빨리 철수시키라는 유권자들의 요구에 정치인들이 부응한 것이다.
마크 밀리 합참의장등 군부에서는 미군을 일시 증강시켜 탈레반의 공세를 막고 미군협력자들을 안전하게 탈출시키자는 건의를 했지만 무산되었다.
마크 밀리는 2000년도 초에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했었고 장군진급 후에도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사단을 지휘한 이 분야의 최고 군사전문가지만 정치인들의 장벽을 뚫을 수는 없었다.
이제는 전쟁의 승패도 가치관의 존폐도 모두 정치권에 달렸다. 정치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정치만능의 시대가 되고 말았다.
예전에는 정치인이 대의명분을 세우고 국민을 설득했다.
지금은 모든 정치인들이 유권자에게 타협하고 굴복한다.
유권자의 뜻이 국민의 뜻이라고 하고 다수가 민의라고 한다.
과연 유권자가 국민전체를 대표하는가.
다수결은 합리적인가.
미국이 수많은 협력자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갑자기 철군하는걸 본 전세계인이 앞으로 미국이 국제무대에서 주장하는 인권과 자유의 가치를 의심없이 지지할 것인가.
인류의 지속가능을 생각하는 사람, 국가의 안전과 번영을 생각하는 사람, 우리지역의 이해타산을 먼저 따지는 사람, 나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섞여있는게 유권자집단이다.
자유민주주의의 본산 미국이 정치에 흔들리고 있다.
정치가 모든걸 지배하는 세상이다.
군사 외교 경제 문화 언론 종교도 정치가 쥐고 흔든다.
주한미군의 주둔과 철수도 미국과 대한민국의 정치인에 달려있다.
우리나라는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이번에 뽑힌 대통령과 그 세력이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정말 잘 뽑아야 한다.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전 중앙공무원교육원장·경영학박사
▲난민수용소에서 만난 아프간 모녀. 오랜 전쟁에 지친 모습이 묻어난다 Ⓒ김재명
아프간 전통 빵인 '넌'을 든 소년들. 이들의 얼굴에서 전쟁의 그늘이 말끔히 걷히는 날
은 언제쯤일까Ⓒ김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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