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공항에서 16일 이 나라에서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문 열린 비행기에 탑승하려고 필사적으로 탑승교에 오르고 있다.
[트위터 캡처]
아프가니스탄의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이 지난 15일 국민을 버리고 우즈베키스탄
으로 도피한 뒤 대통령궁을 접수한 무장 탈레반 대원들이 집무실을 차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조직 탈레반 대원들이 22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인근
거리를 순찰하고 있다. 카불=UPI 연합뉴스
예멘 작가 보시라 알무타와켈이 지난 5월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작품. 탈레반 장악
으로 암흑기를 맞게 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처지를 연상시킨다.
/인스타그램 Bushra Almutawakel
내전 일촉즉발·경제 위기 본격화… '퍼펙트 스톰' 닥친 아프간
탈레반 병력, 저항군 진지 코앞서 대기
카불공항서 신원미상 침입자 총격전도
화폐가치 하락, 인플레로 밀가루·쌀값↑
"경제적 어려움, 탈레반의 가장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무너뜨린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정상 국가’로의 길은 멀기만 하다.
“포용적 정부를 구성하겠다”는 대외적 공언이 무색하게 뒤에서는 기존 정부를 지지하는 반(反)탈레반 세력을 향해 칼을 뽑아 들며 또다시 내전이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곪을 대로 곪았던 경제적 궁핍 상황도 탈레반 집권을 계기로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한층 더 악화할 게 확실시되고 있다.
외국 정부로부터 ‘정통성 인정’을 받는 것뿐 아니라, 정국 안정과 경제 살리기까지 그 어느 것 하나 녹록지 않으면서 탈레반 손아귀에 놓인 아프간에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 위기)’이 닥치는 분위기다.
탈레반, 저항군 진압 위해 병력 투입
22일(현지시간)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탈레반이 새 정부 구성을 앞두고 정상 국가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각종 안정화 조치를 내놓고 있지만 내부는 여전히 극심한 혼돈에 빠져 있다.
당장 정국은 내전 직전의 일촉즉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날 러시아 스푸트니크통신은 탈레반이 북부 판시지르주(州)의 한 계곡에 수백 명의 병력을 투입했다고 전했다.
이곳에 진지를 구축한 반탈레반 저항세력 진압이 목적이다.
정부군과 지역민병대로 구성된 저항군은 탈레반 측에 포괄적 정부 구성을 요구하며 이를 거부할 경우 ‘결사 항전’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아프간 ‘국부’로 불리는 아흐마드 샤 마수드 전 국방장관의 아들이자 저항군 지도자 아흐마드 마수드는 이날 사우디아라비아 국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린 아프간을 지킬 준비가 돼 있고 유혈사태를 경고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탈레반이 짜는 새 판에 기존 정부 목소리를 대변할 인사를 합류시키지 않는다면 전쟁마저 불사하겠다는 으름장이다.
21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대피 작전을 수행 중인
한 미 해병대원이 공항 철조망 너머로 넘겨진 현지인 아기를 돌보고 있다.
카불=EPA 연합뉴스
대규모 무력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탈레반 측 진압군은 반군의 코앞에서 수뇌부의 공격 명령을 기다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은 양측 간 교전으로 번지지 않았지만, 대화가 어그러질 경우 즉각 본격적 내전 상황으로 돌입할 수밖에 없는 불씨도 살아 있다는 얘기다.
탈(脫)아프간 인파가 몰린 수도 카불 국제공항도 일주일째 생지옥이다.
이날 두 살배기 여아가 불어난 인파에 짓밟혀 압사했다.
신원 미상 침입자가 아프간 정부군 및 미군, 독일군과 총격전을 벌이면서 정부군 한 명이 숨지고 세 명이 부상을 입는 사건도 발생했다. 아비규환의 현장인 셈이다.
아프간 남아도 절대 빈곤에 '생존 위협'
고국에 머물러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남은 이들은 이제 국제사회의 원조 중단과 물가상승(인플레이션)에 따른 절대 빈곤으로 생존마저 위협받는 처지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아프간 내 밀가루, 쌀, 기름 등 생필품 가격이 탈레반의 카불 입성(15일) 일주일 만에 20% 올랐다고 전했다.
아프간 정부 몰락으로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공무원 등은 주택 임차료는커녕 식량을 살 돈마저 부족해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한 전직 경찰은 “아내의 반지와 귀고리라도 팔려고 했지만 금은방은 문을 닫았고 사려는 사람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사실 탈레반 점령 전에도 아프간 경제 상황은 처참했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아프간 인구 90%가 하루 2달러(약 2,300원) 이하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현실은 더 악화됐다. 당장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이 탈레반의 ‘자금줄’을 끊었다. 주요 7개국(G7) 정상도 24일 긴급 영상회의를 열고 압박 수단 마련에 나선다.
이 자리에서 의장국인 영국이 경제 제재와 지원 중단 검토를 제안할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은 내다봤다. 여기에다 금융기관뿐 아니라 웨스턴유니온 같은 해외송금 업체마저 문을 닫으면서 돈 가뭄은 한층 심화했다.
지난해 해외 거주 아프간인들이 송금한 돈이 국내총생산(GDP)의 4%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돈줄을 죄는 일련의 행위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한테 돌아가는 셈이다.
10일 아프가니스탄 남부 최대 도시 칸다하르 중심가의 한 시장이 탈레반의 점령으로
텅 비어 있다. 칸다하르=EPA 연합뉴스
화폐 가치 하락, 물가 상승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카불 함락 직전 1달러에 80아프가니 수준이었던 환율은 현재 달러당 86아프가니까지 올랐다.
화폐 가치가 일주일 만에 7.5%나 떨어진 셈이다.
이미 경제적으로 피폐한 아프간에 초인플레이션까지 닥칠 것이란 경고마저 나온다.
아즈말 아마디 전 아프간 중앙은행 총재는 블룸버그통신에 “통화 약세가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고, 그래미 스미스 해외개발연구소(ODI) 연구원은 “빨리 현금을 투입하지 않으면, 이제 일반인들은 길에서 빵을 사 먹기도 힘들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날로 악화하는 경제는 정권을 손에 넣은 탈레반에도 상당한 부담이 될 전망이다.
인도 일간 타임스오브인디아는 “(자금난이 이어지면) 폭력과 혼돈 상황은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경제적 어려움은 탈레반의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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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화폐 '아프가니' /사진=AFP
텅 빈 ATM기, 공무원 월급도 중단…"아프간 초인플레 닥친다
화폐 가치 떨어지고 생필품 가격 급등
"다른 나라 도움받기도 쉽지 않을 것"…
피치 솔루션 "아프간 GDP 20% 감소"
중앙은행 자금동결 및 달러송금 금지 조치 이후 경제적으로 피폐한 아프가니스탄에 초인플레이션까지 닥칠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경제 규모가 크게 줄어든다는 전망도 이어진다.
아프가니스탄 중앙은행 아즈말 아흐마디 총재는 탈레반이 재장악한 아프간이 앞으로 통화 약세, 인플레이션, 자본통제로 '아주 어려운 상황'에 놓일 것이라고 전했다.
아흐마디 총재는 22일(이하 현지시간) 공개된 미국 블룸버그통신과 인터뷰에서 "미국이 90억달러 이상의 자산을 동결시킨 가운데 코로나19도 겹쳐 아주 어려운 상황을 예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탈레반을 피해 국외 망명 중인 상태에서 블룸버그와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아프간은 중앙은행의 90억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고가 미국에 묶여 있고, 아프간 정부가 무너지면서 달러 송금도 막힌 상태다.
그 결과 아프간 화폐(아프가니, Afghani) 가치가 떨어지면서 생필품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아흐마디 총재는 "아프가니 가치가 지난주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는데 더 떨어질 것"이라면서 "수입품 가격이 더 올라가고 소비자 물가상승 속도가 가팔라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밖에 그는 "새 탈레반 정부가 미국 외에 중국, 파키스탄 등 다른 나라에서 자금원을 찾으려 하겠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탈레반 점령 이후 아프간은 달러 부족과 금융권 마비로 경제난이 심각해지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아프간에 있는 현금인출기는 이미 비었고, 수도 카불에 있는 은행도 폐쇄돼 경제적 충격에 휩싸였다고 이날 보도했다.
미국의 지원을 받던 기존 정부가 전복된 후 공무원의 임금 지급도 중단됐다.
해외개발연구소(ODI)의 그래미 스미스 연구원은 "아프간 경제는 미국이 정기적으로 실어 나르는 달러에 의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이게 끊기면서 일반인들은 길에서 빵 사 먹기도 힘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달러 환전이 막히면 아프간 화폐의 평가 절하가 가속화하고, 대신 물건을 사려 하기 때문에 가격은 더욱 올라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프간 통화는 국제무역 거래에서 통화로 인정되지 않아 그동안 국제거래는 미국 달러 및 '하왈라'라고 알려진 비공식 송금 시스템에 의존해왔다.
또 송금결제 네트워크 기업인 웨스턴유니언(Western Union)과 머니그램(MoneyGram)이 지난주 서비스를 중단한 것도 파장이 클 전망이다.
외국에서 일하는 아프간인이 본국으로 송금하는 경제 규모가 연간 아프간 국내총생산(GDP)의 4%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아프간 정부가 전복되기 이전에도 코로나19 영향으로 생필품 가격이 오른 상태다.
아프간의 화폐 가치는 급격히 떨어져 수도 카불이 함락되기 전 1달러당 80아프가니였지만, 현재는 86아프가니로 올랐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의 자회사인 피치 솔루션의 20일 전망으로는 아프간 GDP가 20% 줄어들고, 화폐 가치도 더욱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프간과 유사한 내정 위기를 겪은 미얀마와 시리아 역시 GDP가 10∼20% 떨어졌다.
미 의회조사국(CRS)은 아프간 인구의 90%가 하루 2달러 이하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의 원조가 끊기면서 전 세계에서 경제 규모가 가장 작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이 탈레반에게 함락된지 일주일만에 아프간 화폐 가치가
7.5% 하락했다. 사진은 아프간 남자가 아프가니 지폐를 들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달러 바닥나고 최악 인플레…"아프간, 빵 사기도 어려워질 것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의 경제가 파탄 위기에 직면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미국 달러 고갈, 아프간 화폐(아프가니) 가치 하락, 초(超) 인플레이션이 겹쳐 최악의 금융위기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다.
22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미 빈곤한 아프간이 더 큰 경제적 어려움에 들어섰다"면서 "재앙적인 ‘퍼펙트 스톰’(동시에 발생한 크고 작은 악재로 인한 초대형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보도했다.
해당 매체는 "탈레반이 시중에 현금을 투입하지 않으면 곧 일반 시민들은 물가 폭등으로 카불 거리에서 빵조차 사먹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해외원조·송금 멈추고 국제사회 돈줄 막아
아프간에 현금이 고갈된 것은 해외 원조와 송금을 통한 달러 유입이 멈췄기 때문이다.
미국 아프간재건감사관실(SIGAR)에 따르면 아프간 예산 중 미국 등의 지원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80%에 달했다.
해외원조가 국민총소득(GNI)의 22%에 달할 정도로 원조 의존적인 국가다.
지난해 해외 거주자들이 아프간으로 송금한 액수는 연간 8억 달러(약 9400억원)로 국내총생산(GDP)의 4%에 이른다.
국제사회도 서둘러 탈레반 돈줄 죄기에 들어갔다.
미국 정부는 아프간 정부가 미국에 보유하고 있는 중앙은행 자산 90억 달러(약 10조5700억원)에 대한 탈레반의 접근을 차단했다.
이와 별개로 국제통화기금(IMF)은 "탈레반 치하 아프간이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인지되는지 명확하지 않다"며 아프간에 배정될 예정이던 4억5000만 달러(약 5287억원)의 특별인출권(SDR) 배정을 중단했다. SDR은 IMF 회원국이 위기 시에 미국 달러, 유로화, 일본 엔화, 중국 위안화, 영국 파운드화 등으로 교환해 외화 부족에 대비하도록 부여한 권리다.
은행 ATM가 앞에 줄을 선 아프간 사람들. 연합뉴스
전 중앙은행 총재 "두자릿수 인플레 이어질 것"
해외로 도피한 아프간 전 중앙은행 총재 아즈말 아흐마디는 지난 20일 미국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탈레반은 현재 아프간의 경제적 상황에 대해 정확한 분석과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며 "탈레반이 아프간을 통치하는 데 경제 문제가 가장 큰 난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앞서 자신의 트위터에 "아프간의 외환 보유액은 총 90억 달러이며, 이중 70억 달러(8조2250억원)는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보유하고 있다.
탈레반이 이용할 수 있는 자금은 전체 외환의 0.1~0.2%"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는 또 "아프간의 모든 달러가 동결된 국제 계좌에 있어 현재 아프간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달러를 지급하지 못한다.
고객은 달러를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다"고도 전했다.
시중에 달러가 마르자 아프간 화폐 가치는 급격히 하락했다.
금융정보회사 레피니티프에 따르면 카불 함락 직전 1달러에 80아프가니 수준이던 환율이 현재 86아프가니에 거래되고 있다.
일주일만에 아프가니 가치가 7.5%나 떨어진 셈이다.
인플레 압력도 높아졌다. 카불의 유엔세계식량계획 관계자는 "전쟁에 가뭄까지 겹쳐 밀 가격이 지난 5년 평균가보다 24% 올랐다"고 말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은 19일 보고서에서 "밀·쌀·설탕 등 식품 가격에 지난해 초 대비 50% 이상 올랐다"고 분석했다.
아흐말디 전 아프간 중앙은행 총재는 "두 자릿수 이상의 초(超) 인플레이션이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아흐마디는 미국 하버드대 출신의 경제학자다.
부르카를 입은 아프간 여성들이 시장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탈레반, 중앙은행 총재 대행 임명
일각에서는 탈레반이 아프간에 매장된 막대한 양의 희귀 광물을 활용해 국부를 키울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2010년 미국 지질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아프간에는 1조 달러(약 1175조원) 상당의 철·금·구리·희토류 및 리튬 등의 광물이 매장돼 있다.
하지만 아흐마디는 "탈레반이 갑자기 이것을 캐낼 수 있다고 기대하기는 정말 어렵고, 중국이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어 아프간의 광산 프로젝트에 참여할 이유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편 탈레반은 아프간 경제 질서 회복을 위해 23일 중앙은행 총재 대행으로 하지 모함마드 이드리스를 임명했다.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탈레반은 이드리스 중앙은행 총재 대행이 아프간 국민이 직면한 경제 위기를 빠르게 해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드리스는 북부 자우즈잔주 출신으로, 2016년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사망한 탈레반의 2대 최고지도자 아흐타르 만수르 밑에서 장기간 재무를 담당하며 수완을 인정받았다. 금융·경제에 대해 고등교육을 받은 경험은 없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제빵사 3명이 22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의 한 빵집에서 빵 반죽을 만들고 있다.
최근 아프간 내 인플레이션이 심화되자 시민은 생계의 위협을 받고 있다. [AP]
은행 닫고 물가 치솟아…아프간 ‘하이퍼인플레이션’ 우려
아프간 통화 폭락…물가 대폭 상승
달러 유입 완전 차단…국제지원·개인송금 막혀
피치 솔루션 “아프간 GDP 20%까지 급감할 수도”
[헤럴드경제=유혜정 기자] 탈레반 점령 이후 아프가니스탄 내 달러 유입이 완전히 차단된 가운데 물가가 오르자 물가가 통제 불가능한 상태까지 치솟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22일(현지시간) “당분간 아프간은 경제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며 “이미 물가가 상승해 인플레이션에 진입했으며 은행까지 문을 닫아 민간이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15일 미국이 수조원대에 달하는 아프간 자산을 동결해 아프간 내 달러 유입은 막힌 상태다.
도시 곳곳의 현금자동인출기(ATM)는 먹통이 됐고 은행은 모두 문을 닫아 개인 간 송금도 차단됐다.
해외 지원을 통한 달러 유입도 마찬가지로 멈췄다.
한 시민이 22일(현지시간) 아프간 카불 공항 근처에서 음식이 담긴 접시를 들고
판매하고 있다. [로이터]
아프간 통화 아프가니가 폭락하면서 식자재와 생필품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한 아프간 시민은 트위터를 통해 “3명의 아이가 먹을 음식이 필요하다”며 “오늘은 빵과 차로 버텼다. 카불 식료품 매장에 아무것도 없다.
삶이 두려워졌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레이엄 스미스 해외개발연구소(ODI) 연구원은 “탈레반이 아프가니 폭락을 방어하기 위해 현금을 빨리 투입하지 않으면 카불 거리에서 빵 조차 사기 어렵게 만드는 위험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에드 돌란 워싱턴 싱크탱크 니스카넨센터 연구원은 “현재 아프가니를 무리해서 저축하는 아프간 시민은 훗날 달러로 교환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라며 “만약 달러 유입이 계속 차단돼 달러를 구할 수 없게 된다면 사람들은 아프가니와 물품 교환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프가니·달러 환율은 지난 19일 1달러 당 86.14가니로 거래되며 사상 최고 환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현재는 달러 당 86.02로 거래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의 자회사 피치 솔루션은 “아프가니는 점점 더 저평가되고 아프간의 국내총생산(GDP)이 10~20%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yoohj@heraldcorp.com
아프간 카불의 은행 앞에 줄 서 있는 시민. [AP=연합뉴스]
탈레반 장악 아프간, 은행 문 다시 열었지만 현금 부족 '발동동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지난 15일 수도 카불을 장악한 후 문을 닫았던 현지 은행이 다시 영업을 시작했지만, 현금 부족으로 혼란은 여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26일 알자지라, BBC방송 등에 따르면 전날 카불 등에서는 그간 닫혔던 은행이 다시 문을 열기 시작했다.
약 열흘 만에 은행이 문을 열자 은행마다 현금을 찾으려는 시민 수백 명으로 장사진을 이뤘다.
하지만 각 은행에는 현금이 넉넉하지 않아 큰 금액은 인출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은행은 아예 현금 인출 서비스를 중단한 상태다.
은행들은 애초 탈레반의 도시 장악에 대한 공포로 문을 닫았지만, 이후에는 현금 부족으로 정상 가동이 늦어졌다.
미국이 아프간 중앙은행 자산을 모두 동결해 탈레반의 접근을 막은 데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아프간에 예정된 특별인출권(SDR) 배정을 보류하고 다른 금융지원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아프간 중앙은행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국제결제은행(BIS), 세계은행(WB) 등에 총 90억 달러(약 10조5천억원)의 자산을 보유 중이었다.
깃발 꽂은 차량 타고 카불 시내 순찰하는 탈레반. [AFP=연합뉴스]
거래 대부분이 현금으로 이뤄지는 아프간에서 현금이 씨가 마르자 실물 경제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카불의 한 은행에서 4시간을 기다렸지만, 은행 안으로 들어서지 못한 한 시민은 알자지라에 "은행에 2만 아프가니(약 27만원)가 있는데 이를 찾으려면 며칠 더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수없이 포위당했고 물과 음식 없이도 싸웠다"며 "하지만 지금은 정부가 항복하면서 현금에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덧붙였다.
관공서와 민간 사업장 등도 문을 닫으면서 사실상 실업 상태에 놓인 이도 급증했다.
탈레반은 최근 재무부가 공무원 월급을 지급할 것이라고 했지만 시민들은 이 약속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탈레반은 지난 23일 하지 모하마드 이드리스를 중앙은행 총재 권한 대행으로 임명하며 경제 혼란 수습에 나선 상태다.
달러의 해외 송금도 막았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성명에서 총재 권한 대행이 기관들을 조직하고 국민들이 직면한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밑바닥 경제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밀가루, 식용유 등 생필품 가격은 최대 50% 올랐다.
한 건설업체 재무 담당자로 일했던 바히르씨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현금을 볼 수 없다 보니 카불의 사업체들은 운영을 멈췄다"고 말했다.
cool@yna.co.kr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이 22일(현지시간) 카불 공항에서 미국 해병대원이 비디오
카메라를 보여주자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이를 살펴보고 있다.
유 로이터연합뉴스
아프간 식량위기… “어린이 100만명 영양실조 사망할 수도”
WFP “내달부터 식량 바닥” 경고
전체 인구 절반가량 구호식량 의존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이 심각한 식량 위기에 처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프간의 경제는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2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세계식량계획(WFP)은 다음 달부터 아프간에 식량이 바닥나기 시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앤드루 패터슨 WFP 아프간 지부 부소장은 “우리는 현재 아프간에 2만t의 식량을 보유하고 있고 7000t을 수송 중”이라며 “12월 말까지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선 추가로 5만4000t이 필요하다.
9월이면 식량이 고갈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아프간은 올해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농작물의 약 40%가 유실되는 큰 피해를 입은 데다 전체 인구의 절반가량인 1850만여명이 구호 식량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구호 물품 조달은 제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수술장비와 소아 폐렴 치료제, 영양실조 지원품 등 500t 이상의 의료구호품이 이번 주 아프간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고착상태에 빠졌다”고 밝혔다.
식량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아프간에 위기가 닥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는 아프간 전역에서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아동이 1000만명에 이르며 이중 100만명은 심각한 영양실조로 인해 치료하지 않을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성명을 내놨다.
설상가상으로 아프간의 경제 붕괴도 가속화하고 있다.
가디언 등 외신은 아프간에 있는 현금인출기(ATM)에 현금이 사라지고 수도 카불에 있는 은행이 폐쇄되는 등 경제적 충격에 휩싸였다고 보도했다.
한 건설업체 재무 담당자로 일했던 바히르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돈을 가지고 있지만 은행에 묶여 있다. 아무도 돈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라며 “현금이 없다 보니 카불의 사업체들은 운영을 멈췄다”고 전했다.
이로 인해 아프간 화폐 가치가 떨어지면서 생필품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아프간 화폐 가치는 수도 카불이 함락되기 전에 1달러에 80아프가니였지만, 현재 86아프가니를 돌파했다.
밀가루, 식용유 등 생필품 가격은 약 1주일 만에 50%까지 올랐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의 자회사인 피치 솔루션은 20일 아프간 국내총생산(GDP)이 20%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 의회조사국(CRS)도 아프간 인구의 90%가 하루 2달러(2300원) 이하로 생활하고 있으며, 미국의 원조가 끊기면 전 세계에서 경제 규모가 가장 작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23일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탈레반들이 차량을 타고 카불 시내를 순찰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이대로면 아프간 경제 붕괴"…궁지 몰린 탈레반, 권력 나누나
주요국 정권 인정 안해…
IMF 자금 지원 중단·통화 약세 물가 급등 '최악'
아프가니스탄 경제가 붕괴 직전으로 몰리고 있어 탈레반이 다른 정파와 권력을 나눌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탈레반이 지난 15일 수도 카불을 장악하자마자 세계통화기금(IMF)이 자금 지원을 끊어 아프간은 심각한 달러 부족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대부분 은행이 개점휴업 상태다.
1일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뒤 카불의 은행 ATM 앞에 주민들이 돈을
찾기 위해 줄을 서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이뿐 아니라 아프간 통화인 '아프가니'도 연일 급락하고 있다. 탈레반 집권이후 아프가니의 가치는 약 10% 급락했다. 통화가 약세를 보이자 인플레이션 현상이 나오고 있다.
주민들은 탈레반 집권 이후 물가가 50% 이상 올랐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경제가 붕괴직전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탈레반 정부는 다른 정치세력과 타협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WSJ은 예상했다.
탈레반은 지난 1996년 라바니 정권을 무너트리고 집권에 성공했다. 탈레반의 최초 집권이었다.
당시 탈레반은 환영을 받았다. 오랜 내전을 종식했기 때문이다.
군벌 간의 싸움이 끝나고 경제가 재개됨에 따라 경제가 활성화됐다.
이에 따라 당시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이웃 국가들은 탈레반을 곧바로 승인하고,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국내외적으로 안정이 되자 경제는 날개를 달았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국가도 탈레반을 정식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는 탈레반이 경쟁적인 정치 세력을 포함하는 등 보다 포괄적이고 온건한 정부를 구성하도록 압박하기 위해서다.
특히 이웃 국가들은 보다 온건한 세력이 정권을 잡을 수 있도록 탈레반 정권의 승인을 미루고 있다.
탈레반과의 권력 분담을 위해 이번 주 카불로 돌아온 전 재무장관 오마르 자킬왈은 "정치적 타협을 빨리 할수록 심각한 경제적 위험으로부터 아프간을 더 빨리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탈레반이 경제 붕괴를 원치 않는다면 다른 정치세력과 권력을 분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sinopark@news1.kr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 제공= EPA연합뉴스]
탈레반 돈줄 조이는 美…약 11조원 자금 동결
아프간 중앙은행 외환보유고 90억달러 대부분 해외에 있어
美, IMF에 코로나 대응 SDR 아프간 몫 배분 중지 요구할듯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미국이 탈레반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는 달러 자금줄을 전방위적으로 차단하면서 탈레반 압박에 나섰다.
1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날 미국 정부 관계자는 탈레반의 달러 자금 확보를 차단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중앙은행과 연계된 약 95억달러(약 11조1986억원) 자금을 동결했다고 밝혔다.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와 시중 은행이 모두 아프간 정부 계좌를 동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간 중앙은행 아즈말 아흐매디 총재는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아프간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가 90억달러 정도지만 대부분 해외에 있다"며 "미국이 계좌를 동결했기 때문에 탈레반이 확보할 수 있는 외환보유고는 0.1% 정도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미국은 또 탈레반이 아프간 수도 카불을 향해 접근하던 지난 주말 아프간에 보내기로 한 달러 자금을 보내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국은 아프간군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아프간 정부에 매년 약 30억달러를 지원했다.
미국은 아울러 국제통화기금(IMF)에 신규 특별인출권(SDR) 중 아프간 몫을 배분하지 말 것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IMF는 지난 2일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인 6500억달러 규모의 SDR 발행안을 승인했다. SDR는 회원국 출자 비율에 따라 오는 23일 배분될 예정이다.
아프간 정부는 약 5억달러 규모의 SDR를 배분받을 예정이다. 이와 관련, 미국 공화당 의원 18명이 재닛 옐런 재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IMF가 아프간 정부 몫의 SDR를 배분하지 않도록 옐런 장관이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WP는 아프간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해외 원조에 많이 의존한다며 달러 자금이 차단되면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블룸버그는 17일 외환시장에서 아프가니화가 사상 최저치로 추락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는 아프가니화가 4일 연속 하락 중이라며 이날 한때 4.6% 급락한 달러당 86.0625아프가니에 거래됐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아프간 중앙은행은 아프가니화가 달러당 100아프가니까지 떨어졌다가 86아프가니로 회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쿠바 미사일 위기.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아프간뿐 아니다..탐나지만 먹으면 탈나는 '강대국의 무덤들'
■ 탐나지만 먹었다간 체하는 전략 요충지
- 쿠바·베트남·크림반도·시리아
「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철수와 탈레반의 정권 장악으로 국제정세가 긴박한 가운데, 열강이 발을 들였던 전략적 요충지가 조명받고 있다.
특히 탈냉전 이후 'G2'를 형성한 미·중의 경쟁이 군사·안보 전략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면서 지정학적 거점 확보는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세계 주요 전략 요충지인 아프간, 쿠바, 베트남, 크림반도, 시리아 등 5곳을 상,하편으로 나누어 되짚어 본다.
국제정치에서 지리는 항상 제일의 상수다.
정권과 지배층은 바뀌어도 지정학은 그대로 유지된다. 지정학적 요충지는 그 자체로 강대국을 끌어모은다.
지도를 보는 순간 패권 대결의 요충지 임을 알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쿠바, 베트남, 크림반도, 시리아의 사례를 살펴본다.
①미국 턱밑의 저격수 쿠바
쿠바는 모히토 칵테일과 살사댄스의 본고장, 아마 야구 강국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대표적인 전략 거점이다.
미국을 턱밑에서 겨냥할 수 있는 곳이 쿠바다. 반세기 넘는 미국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쿠바에 1959년 혁명정부가 들어섰다.
1961년 4월 혁명정부가 사회주의를 선택하면서 미·소 대결은 심화됐다.
1962년 10월 22일부터 11월 2일. 전 세계가 핵전쟁에 가장 근접했던 기간이다.
11일간 세계의 이목은 쿠바로 쏠렸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핵전쟁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을 체감시켰던 사건이다.
사건은 미국 첩보기가 쿠바에 건설 중이던 미사일 기지를 발견하며 시작됐다.
이를 보고받은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제3차 세계대전도 불사하겠다”며 단호히 대응했다.
10월 22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소련의 쿠바 미사일 배치 사실을 공개하며 쿠바 해상을 봉쇄했다.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해상봉쇄 명령에 서명하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JFK도서관]
미사일을 실은 소련 화물선이 미군의 해상 봉쇄를 돌파하려 든다면 핵전쟁으로 번질 수 있는 위기 상황이 이어졌다. 결국 힘과 힘의 충돌에서 소련 화물선이 경로를 돌리면서 위기를 겨우 넘겼다.
미국 역시 터키·이탈리아에 배치한 미사일을 철수하고 쿠바 불가침을 약속하는 조건으로 소련은 쿠바 미사일 기지를 철거하는 데 합의했다.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면 소련은 미전역을 사정권에 둘 수 있었다. 미국보다 열세를 보였던 핵전력에도 소련이 단숨에 형세를 역전시킬 기회였다.
미국에게 쿠바는 본토 바로 앞에 위치한 사회주의 세력의 위협이었고, 소련에게도 쿠바는 미국을 견제하기 유리한 환경을 가진 거점이었다.
②인도차이나 반도의 키 베트남
베트남 전쟁.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베트남 전쟁은 미국이 유일하게 패배한 전쟁으로 불렸다.
16년간 지속한 전쟁으로 양국은 오랜 기간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베트남이 위치한 인도차이나 반도는 인도와 중국 문명이 교차하는 땅이다. 풍부한 자원과 비옥한 토지를 가지고 있어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을 당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을 선언한 베트남은 1945년 호찌민을 대통령으로 하는 베트남민주공화국을 세웠다. 하지만 프랑스는 베트남을 다시 식민지로 삼고자 1946년 전쟁을 일으켰다. 8년간의 전쟁 끝에 1954년 휴전 조약인 제네바 협정을 체결했다.
협정 결과 북위 17도 선을 기준으로 베트남공화국과 베트남민주공화국이 수립됐다.
이 시기 아시아 지역의 공산화를 우려한 미국은 프랑스 대신 남베트남에 강하게 개입했다.
1960년 남베트남 정권에 반대하는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이 조직되면서 내전은 시작됐다.
남베트남 정권이 약화하자 미국은 1965년 북베트남에 대한 공습을 시작했다.
북베트남은 중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으며 게릴라전을 펼쳤다.
미군은 게릴라전에 고전했고, 베트남 전쟁은 수렁에 빠졌다.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포위한 8월 15일(현지시간)
미 대사관 직원 탈출을 위해 출동한 미군 치누크 헬기가 카불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1975년 4월 북베트남의 침공으로 남베트남 사이공이 함락되자 대사관
에서 헬기로 탈출하는 미국인들의 모습. [AP=연합뉴스]
국내외적으로 반전 여론이 들끓으면서 미국은 출구전략 마련을 위한 고민에 빠졌다.
그러던 중 국경 분쟁으로 중국과 소련의 연대에 균열이 발생한 틈을 노려 1968년 평화 교섭을 시작했다.
1973년 파리회담에서 평화 협정을 체결하며 휴전이 성립됐고 미국은 베트남에서 철수했다.
이후 1975년 4월 30일 사이공(베트남 호찌민)이 함락되면서 베트남 내전은 종결됐다.
이듬해 남북을 통일한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 수립됐으며 캄보디아와 라오스도 각각 사회주의 국가로 독립했다.
미국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인도차이나 반도의 절반이 공산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도이모이(doimoi). 1986년에 시작한 개혁개방을 상징하는 용어다. 1995년 미국과 수교한 베트남의 경제는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에도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2.9%)을 기록했다
. 아이러니하게도 자유를 찾아 고국을 탈출한 보트피플이 퍼트린 쌀국수도 이제는 미국에서 자리를 잡은 뒤 세계인의 음식이 됐다.
③흑해 지배 부동항 크림 반도
크림반도 영토분쟁.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크림반도 병합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처음으로 영토 변경이 이루어진 사례다.
냉전체제 종식 후 러시아의 영향력은 크게 후퇴했다.
소비에트 연방 일원이었던 동구권 국가들은 서구식 민주주의 체제로 급속히 편입됐다.
2014년 크림반도 위기에는 서유럽 진영에 대한 러시아의 위기감이 기저에 깔려있었다.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는 서유럽의 영향력 차단에 필요한 지정학적 완충국이다.
이 때문에 친러시아 세력을 지원해왔다.
우크라이나도 경제적·지리적 영향력 때문에 러시아를 단호하게 뿌리칠 수 없었다.
이런 가운데 2014년 초 우크라이나에 친서방 성향 임시 정권이 수립됐다.
러시아는 무력으로 대응했다. 서유럽의 영향력을 저지하는 완충 지대가 없어질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를 붕괴시킬 수는 없었다. 그래서 러시아가 선택한 차선책이 크림자치공화국 병합이다.
2018년 3월 크림반도 세바스토폴에서 열린 크림반도 합병 4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지지자들.[EPA=연합뉴스]
크림반도의 200만 주민은 러시아인이 58%, 우크라이나인 24%, 크림 타타르인 12%로 이뤄졌다.
1954년 우크라이나에 편입되기 전까지 러시아에 귀속된 땅이었다.
마침 크림반도에서 우크라이나로부터 분리 독립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러시아는 이 기회를 틈타 러시아인 보호를 명분으로 군을 파견했다.
크림자치공화국 의회는 2014년 3월 11일 크림공화국(Republic of Crimea) 성립을 선포한다. 이후 닷새 만인 16일에는 주민투표를 통해 크림반도와 러시아의 병합을 결정했다.
열흘 뒤 푸틴 대통령이 합병 문서에 서명하면서 크림공화국은 러시아에 귀속됐다.
이렇게 해서 러시아는 과거 흑해 함대가 기항하는 부동항이 있던 크림 반도를 다시 장악했다.
크림 반도는 향후 러시아의 지중해 진출을 위한 베이스 캠프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투표에 러시아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이유로 이들의 합병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러시아와 크림반도에 대한 서방의 제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④지중해·메소포타미아 패권의 복합 충돌 시리아
시리아 내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시리아는 토질이 비옥한 데다 서쪽으로 지중해와 접해있고 동쪽으로 중동 국가들과 이어진 요충지에 위치해 외세의 끊임없는 침략을 받았던 국가다.
지중해 패권을 가지려는 강대국들은 시리아를 세력권에 넣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곤 했다.
시리아 내전은 2011년 1월 '아랍의 봄'의 여파로 발생한 반정부 시위가 3월 들어 급속히 확대되면서 발생했다.
초기에는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 체제를 수호하려는 정부군과 민주화를 주장하는 반군 사이에서 벌어진 내전이었다. 이후 역내 갈등을 넘어 국제적인 분쟁으로 이어졌다.
이 지역에서는 분리독립을 원하는 쿠르드족과 이를 막으려는 터키의 군사적 대응, 러시아의 중동 영향력 강화, 유럽의 중동 난민 유입 문제, 신정국가 건설을 추구하는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등 다양한 세력의 지정학적 경쟁과 협력이 다층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2015년 3월 25일 내전으로 폐허가 된 시리아 북부 코바네의 거리를 한 여성이 아기를
데리고 걷고 있다. [AFP=연합뉴스]
정부군은 이란과 레바논 등 이슬람 시아파 세력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았고 반군은 사우디·카타르·터키 등 수니파 국가의 지원을 받았다.
사실상 이슬람의 시아파와 수니파, 러시아와 서방의 대리전 양상으로 확대됐다.
미국 주도의 연합군은 2014년부터 IS 격퇴 작전을 벌이며 시리아에 발을 들였고, 2017~2018년 시리아군에 대해 간헐적이고 제한적인 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러시아도 2015년 아사드 정부의 요청에 따라 시리아에서 군사작전을 개시했다.
2018년 9월 러시아와 터키는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 경계에 완충지대 설치를 합의하면서 휴전에 합의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같은 해 12월 시리아 철군을 결정했는데, 미군이 떠나면서 러시아와 터키가 시리아 내전의 향방을 규정하는 핵심 세력으로 떠올랐다.
시리아 내전은 반군의 마지막 거점인 북동부 이들리브(Idlib) 지역에서 공방이 계속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지난해 3월 러시아와 터키의 중재로 두 번째 휴전이 성립됐으나, 이들의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상충하고 있어 군사적 긴장을 이어가고 있다.
전략적 요충지들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역사적 사건의 배경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미·중 경쟁시대 전략 거점을 둘러싼 갈등의 향배는 어떻게 흐를까.
지정학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 최대 전략 요충지 남중국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지역.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전통의 지정학적 요충지 외에 지금 새롭게 떠오르는 화약고도 있다.
남중국해다.
중국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사이에 위치한 남중국해 주변을 따라 알파벳 U자 형태로 그은 이른바 '9단선(nine-dash line)'을 따라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2013년에 대만을 추가해 10단선이 되었고 이를 두고 베트남·인도네시아·필리핀 등 동남아국과 분쟁을 이어가고 있다.
남중국해는 세계 해상 물동량의 3분의 1이 거쳐 가고 매년 4만여척의 선박이 통과하는 중요한 해상루트다.
막대한 부존자원과 함께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구상의 해상 거점이다.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입장에서도 남중국해는 전략 요충지다.
국제상설재판소(PCA)는 2016년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지만, 중국은 이 일대 작은 섬과 암초를 점령해 군사시설을 건설하는 등 여전히 관할권을 주장하고 있다.
각국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미국은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로 구성된 안보협의체) 국가들과 4월 인도 벵골만 일대서 해상 훈련을 했다.
영국은 5월에 인도 태평양으로 퀸 엘리자베스 항공모함 전단을 보냈고, 독일도 이달 2일 남중국해로 군함을 보냈다.
중국은 러시아와 군사적으로 밀착하고 있다.
양국은 지난 10~13일 중국에서 '자파트-인터랙션(서부연합) 2021' 합동군사훈련을 했다. 남중국해에선 지금 '신냉전 구도'가 점점 구체화하고 있다.
센카쿠열도(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와 대만해협도 충돌의 우려가 높은 지역이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문제가 발생할 경우 모든 갈등을 한꺼번에 폭발시키는 화약고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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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아프가니스탄 잘랄라바드에서 탈레반 조직원들이 순찰하고 있다.
잘랄라바드=EPA 연합뉴스
6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탈레반 조직원(오른쪽)이 시민들의 가방을 검사하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부르카를 입은 여성들이 택시를 기다리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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