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마리우폴 내 병원 의료진이 러시아 군 포격
으로 다친 소녀를 옮기고 있다. AP=뉴시스
총탄 맞은 차창 너머 달려가는 구급차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민간인 거주지까지 공격하면서
희생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수도 키예프에서 총탄을 맞아 깨진 차량의
차창 너머로 구급차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키예프=로이터연합뉴스
25일(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전쟁 반대 시위대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2월24일 우크라이나 침공 개시를 밝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 연합뉴스
주택가 쏟아진 ‘집속탄’… 조급해진 푸틴의 폭주
국제사회 비난에도 무차별 공세
64㎞ 달하는 러군 호송행렬 포착
벨라루스 주둔 중이던 병력 추정
수도 키예프 25㎞까지 진격한 듯
“민간 폭격, 제네바 협약 위반” 지적
푸틴, 우크라 방어력·서방제재 오판
CNN “더 많은 것 던질 가능성” 우려
‘초전박살’을 노리던 러시아군이 예상보다 고전하면서 진격 속도를 높이기 위해 공세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포위를 위해 대규모 병력을 추가하고 민간인을 대상으로 무차별 폭격까지 벌였다. 전장 상황이 예상과 달리 전개되자 당황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8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은 미 국방부 당국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침공에 속도를 높이기 위해 추가 병력을 투입하는 등 공격 강도를 높일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방부 한 고위 관리는 브리핑에서 “러시아는 전체 전투력의 3분의 2만 사용했다”며 “상당한 병력이 공세를 압박할 수 있도록 남겨둔 상태”라고 전했다.
한 소식통은 CNN에 “우크라이나군이 아무리 저항한다 해도 순수하게 군사적·전술적 관점에서 보면 러시아가 키예프를 장악할 수 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전망했다.
러시아는 키예프를 향한 공세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미국 민간 위성업체 막사 테크놀로지가 이날 공개한 위성사진에는 약 40마일(약 64㎞)에 달하는 러시아군 호송차량 행렬의 모습이 담겨 있다.
러시아군의 탱크와 자주포, 장갑차 등이 포함됐다.
호송대 길이는 이날 오전만 하더라도 17마일(약 27㎞) 정도였으나, 오후 들어 규모가 늘었다고 막사 테크놀로지는 설명했다.
키예프 외곽으로 집결한 러시아군 규모가 이전보다 훨씬 증강됐다는 뜻이다.
CNN은 이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북부와 국경을 맞닿은 벨라루스에 주둔 중이던 병력일 것으로 추정했다.
방송은 “벨라루스 허가와 도움 없이는 (러시아군이) 이 정도의 병력을 축적할 수 없다”며 “러시아가 키예프를 점령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길이의 호송대를 모았다”고 전했다.
지난 2월 2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하리코프 중심가에 전투로 파괴된 학교가 보인다.
AFP연합뉴스
민간인을 향해서도 무차별 포격을 벌여, 러시아가 제네바 협약을 어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AI) 등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인 하르키우 주택가를 향해 집속탄 공격을 했다고 주장했다.
집속탄은 작은 탄환 수백개를 흩뿌리는 폭탄으로, 러시아군이 이를 사용했다면 처음부터 민간인을 포함한 불특정 다수를 노렸다는 의미다.
대량살상무기로 통하는 ‘진공 폭탄’까지 이용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러시아가 자국 병사에게 민간인 대상 범죄를 저지르도록 몰아넣었음을 보여주는 휴대전화 문자가 세르지 키슬리츠야 우크라이나 유엔 대사를 통해 공개됐다.
공격에 투입됐다가 사망한 러시아 병사는 자신의 모친에게 “나는 훈련에 참여 중인 게 아니고, 우크라이나에 있다”며 “여기는 진짜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심지어 민간인을 목표로 삼고 있다. 정말 힘들다”고 두려움을 전했다.
푸틴 대통령이 국제사회의 비난을 감수하고서 이 같은 전쟁을 지휘하는 것은 조급증이 배경에 깔려 있어 보인다.
미 국방부는 이날 러시아군이 키예프에서 약 25㎞까지 진격한 것으로 추정했다.
전날보다 5㎞ 더 나아간 셈이다. ‘개전 48시간 이내 키예프를 점령한다’는 러시아군 작전이 실패하고 재빠른 서양의 제재 조치가 취해지자 무차별 공격을 감행한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와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의중도 담겨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CNN은 “푸틴이 우크라이나의 방어력뿐 아니라, 국제사회가 러시아를 향해 얼마나 강경한 태도를 보일지도 잘못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하거나 시리아 내전에 개입해도 서방 제재가 거의 없었던 탓”일 거라고 지적했다.
특히 CNN은 “푸틴이 여기(이런 상황)까지 왔기 때문에, 앞으로 우크라이나에 더 많은 것을 던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병훈 기자 bhoo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푸틴 대통령을 포함한 러시아 측의 스위스 내 자산을 동결하겠다고 스위스 정부가 밝혔다.
사진은 지난달 1일 크렘린 궁에서의 푸틴 대통령. AP=연합뉴스
푸틴 돈줄 묶었다, 김정은도 떤다..두 남자 울린 스위스 결단
스위스가 당초 중립 유지 입장을 뒤집고 유럽연합(EU)의 대(對)러시아 금융제재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지난달 28일(현지시간) 공식화했다.
스위스 연방의회 회의를 주재한 이냐치오 카시스 대통령이 직접 밝힌 내용이라고 뉴욕타임스(NYT)가 이날 보도했다.
이에 따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물론, 미하일 미슈스틴 총리와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 및 EU 제재 대상 명단에 오른 367명의 러시아의 재벌 격인 올리가르히들의 스위스 내 자산이 동결될 것으로 보인다.
EU 및 미국의 금융제재가 칼을 칼집에서 빼든 정도라면, 이번 스위스의 결정은 그 칼을 직접 겨눈 셈이다. 제재의 실효를 담보할 수 있는 핵심적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스위스 내 러시아 기업 및 개인이 보유한 자산 규모는 2020년 기준 약 110억 달러(13조 2495억원)에 달한다고 NYT는 전했다.
라브로프 장관이 이를 막기 위해 급히 제네바행 국적기 아에로플로트에 탑승하려 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EU가 라브로프에 유럽 내 여행 금지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제재의 실효다.
이냐치오 카시스 스위스 대통령. 의사 출신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AFP=연합뉴스
이는 스위스에도 위험한 도박이다. 중립국으로서 쌓아온 국가 정체성을 흐리고 경제적 이득에 타격을 줄 수 있어서다. 당초 스위스는 이를 고려해 미온적인 입장을 취했었다.
카시스 대통령 본인이 지난주 “(제재 이후) 러시아로부터 새로이 유입되는 자금은 막겠지만 예금주들의 계좌 접근은 막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카시스 대통령은 “스위스의 중립국으로서의 위상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공격을 지시하고 민간인 사망자 숫자가 나오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우선 스위스 내 대러 여론이 악화했고, 카시스 대통령의 마음도 바뀌었다.
카시스 대통령은 28일 회의에서 “EU회원국(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전례 없는 공격”을 이유로 들면서 러시아 자산의 즉각 동결 방침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다만 스위스는 앞으로의 사태를 중재할 의향이 있다”며 여지는 남겨뒀다.
카시스 대통령은 이탈리아계 스위스인으로, 원래 의사였다.
취리히대 및 로잔대에서 의학박사를 취득한 뒤 의사로 일하다 정치에 입문했다.
1996년부터 2008년까지 스위스의사협회에서 일하며 부회장직까지 오른 것이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정계 입문 후엔 의외로 외교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그러다 지난해 부통령으로 일했으며 그해 12월 대통령으로 선출돼 올해 1월1일 임기를 시작했다.
그는 중립국인 스위스의 정체성에 따라 푸틴 대통령이나 미국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등과도 수 차례 회담한 바 있다.
이때만해도 웃을 수 있었다. 왼쪽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 카시스
스위스 대통령과 지난 1월회담할 때다. EPA=연합뉴스
미국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지난 1월 회담 중인 스위스 카시스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카시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사태 초기만 해도 중립국 지위 유지에 방점을 찍었다.
EU와 미국이 잇따라 제재를 발표했으나 그는 적극적 참여엔 선을 그었던 것도 카시스였다.
그러다 지난달 24일 기자회견부터 어조가 달라졌다.
자산 동결이라는 스위스로서는 가장 핵심적 제재뿐 아니라 스위스 영공을 러시아 국적기가 지나지 못하도록 하는 등의 일련의 제재에도 동참했다.
NYT는 “스위스에게 중립국 지위라는 것은 전통이자 의미가 큰 전략”이라며 “이를 잠시 내려놓았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전했다.
이번 조치는 스위스 은행에 비자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등에게도 안 좋은 뉴스다.
카시스 대통령은 이번 자산 동결 조치를 공식화하며 “이번 전쟁은 ‘푸틴의 전쟁’”이라며 “당장 끝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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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서방은 28일 러시아 중앙은행과 국부펀드, 러시아 재무부와의 거래를 동결
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해외 은행에 보유한 달러 등 외환에 손을 못 대게
하겠다는 것이다. 사진은 러시아 루블화. 모스크바/타스 연합뉴스
4천억 달러 전쟁금고 묶이고 루블 폭락....푸틴 진군길 지뢰밭
미국과 유럽 등이 지난 28일 꺼내든 ‘러시아 중앙은행과의 거래 중단’이라는 카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핵 위협에 맞먹는 ‘경제 핵폭탄’이라고 할 수 있다.
루블화 폭락과 인플레이션을 심화시켜 러시아 경제를 초토화하고 푸틴 대통령의 전쟁 금고를 타격하는 효과가 예상된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28일 러시아의 중앙은행, 국부펀드, 재무부와의 거래를 전면 차단한다고 밝혔다. 이에 영국·일본도 동참하겠다고 밝혔고,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연합(EU) 국가들도 가세할 예정이라고 미국 당국자들이 말했다.
미국은 이란·베네수엘라·시리아 등에 중앙은행 규제를 가한 적 있으나, 러시아라는 대국을 상대로 그것도 서구 국가들이 똘똘 뭉쳐 이 조처에 나선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이번 조처의 핵심 목표는 러시아가 원유·가스 등을 팔아서 쌓아둔 외환보유고에 손을 못 대도록 묶는 것이다. 마이클 번스탬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연구원은 러시아의 전체 외환보유고는 약 6400억달러(약 770조원)이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인 4000억달러는 뉴욕·런던·베를린·파리·도쿄 등 외국의 중앙은행이나 상업 은행에 예치돼 있다고 분석한다.
러시아 안에 보유한 규모는 120억달러에 그치며, 나머지 약 1390억달러는 금, 840억달러는 중국 채권이라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러시아가 자기 돈인 4000억달러의 외환보유고에 손을 못 대면, 우크라이나 침공 개시 이후 30% 폭락한 자국 통화 루블화의 추가 하락을 막기 어려워진다.
달러로 시장의 루블화를 매입해서 루블화 가치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게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전쟁 이전인 2월 중순 1루블은 미화 1.3센트 수준이었으나, 지난달 24일 개전 직후 떨어지기 시작해 27일 서방의 러시아 은행들에 대한 국제은행간결제망(SWIFT) 퇴출 결정을 거치면서 추락을 거듭했다. 구글 파이낸스 자료를 보면, 미국의 러시아 중앙은행과의 거래 중단 발표 이후 1일 한때 1루블은 0.96센트로, 1센트 밑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러시아는 국제은행간결제망 퇴출 제재 이후 루블화 폭락을 막기 위해 금리를 20%로 올렸고, 외환 확보를 위해 수출기업들에 보유 외환의 80%를 매각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이번 중앙은행 제재로 러시아는 거시경제 관리를 위한 주요 수단을 잃게 됐다.
루블화의 구매력이 약화되면, 수입품 가격이 올라 물가는 더 폭등하게 돼 있다. 루블화 추가 폭락, 인플레이션, 경기 침체 등 악순환이 예상된다. 그 직접적인 여파를 감내해야 하는 러시아 시민들은 이미 믿을 수 있는 ‘달러’ 확보를 위해 현금인출기에 줄을 서고 있다.
셸·비피(BP) 등 글로벌 기업들은 러시아에서 철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처가 그동안 언론이 주목해온 국제은행간결제망 퇴출 조처보다 훨씬 파장이 크다고 말한다.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조시 립스키 국장은 4000억달러 외환보유고를 묶는 것은 “하룻밤 사이 오스트리아 국내총생산(GDP) 전체를 날리는 것”이라며 이번 조처는 “러시아라는 요새”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폴리티코>에 말했다.
이 조처로 푸틴 대통령은 전쟁 수행에 필요한 자금력이 약해지게 됐다.
루블화 폭락에 따른 국민들의 불만이 치솟아 푸틴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극단적 압박 속에 엄청난 비극을 불러올 극단적 총공세에 나설지, 우크라이나 정부와 적정선에서 타협할지는 푸틴 대통령의 선택에 달렸다.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우크라이나 동부 르비브에서 자원봉사에 나선 시민들이 28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공격에 대비한 위장 그물을 만들기 위해 천을 찢고 있다. 르비브|AP연합뉴스
미국, '핵전쟁' 가능성 없다면서도 푸틴 의도 분석에 촉각
서방서 ‘군사 대치 없다’ 선 그었지만
러 ‘공격적 언사’ 이유로 핵무기 언급
“장기전 양상·금융제재로 초조” 분석도
미국과 서방은 핵무기 운용부대 경계 태세 강화를 지시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의도와 러시아의 실제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예상보다 강력한 우크라이나의 저항과 서방의 제재에 직면한 푸틴 대통령이 서방을 위협하고 전 세계의 시선을 딴 데로 돌리려는 의도로 핵무기를 언급한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어떤 식으로든 핵무기 사용을 위한 준비 태세를 끌어올린다면 실수나 오판으로 인한 핵무기 발사 위험이 그만큼 높아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미국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의 핵무기 운용 부대 경계 태세 강화 지시를 규탄하면서도 핵무기 대결 구도로 흐르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는 데 주력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취재진으로부터 ‘미국인이 핵전쟁을 걱정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방송 인터뷰에서 “우리는 지금 당장 수사(레토릭)를 줄이고 긴장을 완화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우리는 푸틴 대통령의 발표를 검토·분석하고 있지만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은 미국의 전략적 억지 태세와 미국 본토, 그리고 동맹국 및 우방국들을 지킬 역량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TV연설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최고 당국자들의 러시아에 대한 공격적인 언사를 거론하며 국방장관과 총참모장에게 러시아군 억지력 부대에 전투 경계를 내릴 것을 지시했다. 서방 언론들은 일제히 푸틴 대통령이 핵무기 운용부대에 전투 경계 태세를 강화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해석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다음날 푸틴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전략로켓군, 북해·태평양함대, 장거리항공사령부 등 3개 부대가 준비태세 강화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다만 전투 경계 태세 강화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핵무기 운용부대 경계 태세 강화를 지시하고 나온 맥락이 선뜻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과 나토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력히 규탄하고 강력한 경제 제재를 단행하면서도 러시아군과 군사적으로 직접 대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일관되게 선을 그어 왔다.
이처럼 서방이 러시아에 대한 군사적 반격 가능성을 명확하고 일관되게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은 ‘나토 최고 당국자들의 공격적인 언사’를 이유로 핵무기 카드를 꺼내 들었다.
러시아가 2020년 기존의 핵 선제 불사용 원칙에서 벗어나 러시아의 존재를 위협하는 비핵 공격에 대해서도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새 억지 전략을 채택하긴 했지만 공격적인 언사에 핵무기로 대응한다는 것은 위협의 강도에 있어서 균형이 맞지 않는다.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은 적이 핵 공격을 가할 경우 적의 핵무기가 도달하기 전 또는 도달한 후 남은 보복력을 이용해 상대방도 전멸시키는 상호확증파괴(MAD)를 전략으로 채택했다.
한쪽이 핵무기를 사용하면 상대방이 핵무기로 보복함으로써 양쪽 모두 전멸이 확실시 된다는 것이다.
1950년대 한국전쟁과 베를린 봉쇄,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1969년 중·소 국경 분쟁,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욤 키푸르 전쟁), 1999년 인도·파키스탄 전쟁 등 역사적으로 핵무기 보유국들이 여러 차례 핵무기 사용을 위협하면서도 실제 핵전쟁까지 가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사키 대변인은 “모두가 그것(핵전쟁)이 이길 수 없는 전쟁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푸틴 대통령이 핵무기 카드를 위협한 것은 우크라이나 침공이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데 대한 초조함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우크라이나는 군과 시민이 힘을 합쳐 주요 도시에서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고, 서방은 러시아에 신속하고도 강력한 제재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벤 월러스 영국 국방장관은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의 지시는 자신이 핵무기를 갖고 있음을 상기시킴으로써 서방을 위협하고, 우크라이나와 서방이 그간 러시아 억지에서 거둔 성공으로부터 관심을 딴 데로 돌리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푸틴 대통령의 상황 파악과 판단 능력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제임스 클래퍼 전 미 국가정보국장(DNI)은 CNN방송에서 “개인적으로는 그가 불안정한 상태라고 생각한다”면서 “그의 판단력과 균형감각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래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 역시 뉴욕타임스에 공격적 언사를 이유로 세계 최대 핵강국이 핵무기를 들먹이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면서 “푸틴의 현실 파악력이 느슨해지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를 더한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유럽·러시아 선임 국장을 지낸 피오나 힐은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푸틴은 수단이 있으면 언제나 그것을 사용하려고 했다”면서 그간 서방이 “설마 그렇게 할까”라고 반신반의할 때마다 푸틴 대통령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워싱턴 김재중 특파원
북한이 지난달 30일 발사한 중거리 탄도미사일 '화성-12형'과 이 미사일이 찍은
지구의 사진.사진=평양 노동신문 캡처
푸틴의 핵위협 카드와 북한 핵...한국의 대응은 어떻게
푸틴 '핵 폭탄' 에 MAD 기제로 핵보유국 지도자들 합리적 행동 필요...
北 바짝 다가선 핵 완성 대응에 韓 확장억지 틀에서 '핵 공유' 추진 필요
미국과 EU가 “금융핵폭탄”이라고 불리는 '국제 금융 결제망(SWIFT)' 배제를 꺼내 들자 러시아 푸틴이 국제사회에서 금기시되는 실제 '핵폭탄'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 같은 핵위협 발언은 ‘공포의 균형’을 깰 수 있는 심각한 사안으로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SWIFT는 200여 개국 1만1000여 금융기관이 이용하는 국제 송금·결제 시스템이다. SWIFT에서 축출되면 러시아는 달러 결제가 안 돼 최악의 경우 원유, 천연가스 수출이 중단되고, 중앙은행의 보유 외환도 마음대로 꺼내 쓸 수 없게 된다.
2월 27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TV 연설을 통해 러시아 전략로켓군 등 핵무기를 운용하는 핵 억지력 부대에 경계 태세 강화를 지시했다.
■'핵전쟁 위협'으로 핵보유국 5개국 금기 깬 러시아,
우크라이나 서방개입 강력 압박...
북한도 핵 완성 바짝 다가서
이 같은 러시아의 핵 위협은 침공 나흘째 접어든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저항에 부닥쳐 당황한 가운데 우크라이나 지도부에 대한 강력한 압박뿐 아니라 미국과 EU 그리고 다른 국가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절대 개입하지 말라는 경고성 메시지다.
러시아의 핵 공격 위험을 감수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군사적으로 연루되고 싶은 나라는 없을 것이다.
러시아의 노림수는 미국과 다른 나토 동맹국은 이미 우크라이나에 파병하지 않기로 했지만, 앞으로 전황이 악화하더라도 군사적으로 직접 개입하려는 여지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압박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합법적인 핵보유국은 핵무기에 대한 규범을 지킬 의무가 있다. 선제적으로 핵 위협을 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현재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있는 국가는 미, 중, 러, 영, 불 5개국으로 NPT는 이들 국가의 핵 보유를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물론 이들 5개국이 이러한 선제 불사용 원칙을 국내법적으로 문서화할 의무는 없었다.
실제로 냉전 시기에 핵보유 국가들이 내부적으로는 재래식 공격에도 핵으로 대응하겠다는 교리를 갖고 있기도 했었다. 하지만 냉전 시기에도 미국과 구소련은 핵 선제 사용 불가침 원칙에 실질적으로 합의했고 이행해 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푸틴이 이러한 금기를 깨뜨리고 있는 것이다.
북한도 27일 쏜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정찰위성 개발을 위한 공정계획에 따른 중요시험"을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북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8일 "국가우주개발국과 국방과학원은 27일 정찰위성개발을 위한 공정계획에 따라 중요시험을 진행하였다"고 전했다.
미사일이 아니라 정찰위성 개발 시험을 위한 '발사체'를 쐈다는 주장이다.
신문은 "중요시험을 통하여 국가우주개발국과 국방과학원은 정찰위성에 장착할 촬영기들로 지상 특정지역에 대한 수직 및 경사촬영을 진행하여 고분해능촬영체계와 자료전송체계, 자세조종장치들의 특성 및 동작 정확성을 확증하였다"라며 "이번 시험은 정찰위성개발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시험으로 된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올해 1월에만 극초음속미사일을 포함해 탄도미사일 6차례, 순항미사일 1차례 등 지난달 30일까지 모두 7번의 미사일 무력 도발을 감행한 데 이어 베이징동계올림픽 기간 주춤하는 듯 보였으나 28일 만인 2월 27일에 올 8번째 도발에 나선 것이다.
김정은은 지난 2018년부터 핵실험·ICBM 시험발사 유예, 모라토리엄을 유지해 왔으나 지난달 19일 이러한 조치의 철회를 시사한 바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뉴스1
■러의 핵카드엔 MAD 기제로 핵보유국 지도자들의 합리적 행동 필요,
북핵엔 한국 확장억지 틀에서 '핵 공유' 추진...
김재천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우크라이나의 항전과 미국, EU를 위시한 국제사회의 제재 대응은 러시아 푸틴 자신이 초래한 것"이라며 "러시아가 재래식 무기로 공격을 당한 것도 아니고, 자신이 먼저 전쟁을 일으킨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미국과 EU 등 서방국들은 직접 전쟁에 참전하지 않고 경제 제재와 무기 지원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핵 카드를 꺼내 들며 '핵전쟁을 위협'하는 것은 국제법적으로 핵 보유국인 러시아가 해서는 안 되는 너무 과도한 대응"이라고 짚었다.
북한도 결국 인공위성발사 기술과 ICBM 발사 기술은 동일하기 때문에 '모라토리엄'을 철회하고 레드라인 넘었다는 비난을 회피하면서 남한을 복속시키기 위한 '핵무기 실전배치 및 핵보유국 공식화'"라는 명확한 목표를 달성 과정으로 핵 완성에 바짝 다가서는 핵 투발 수단의 다종화·다변화를 가속화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이어 "러시아의 핵 위협 상황을 기회삼아 북한과 같은 국가는 '핵 굳히기'에 나설 것이고 한국과 같은 국가들은 '자체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을 수 있다"며 "핵에는 결국 핵으로 맞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라고 우려했다.
현실적으로 많은 제약이 따르지만 핵에 맞서 핵 위협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2차 핵 보복 공격력을 포함한 핵무기 능력을 보유하는 것인 가장 확실한 공포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김 교수는 또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과 같은 국가는 미국으로부터 제공받는 '핵 억지'를 보다 확실히 해야 한다"며 "미국의 핵억지력의 신뢰도를 최고로 끌어올리기 위해 ‘확장 억지’의 틀 안에서 미국과 '핵 공유' 프로그램을 추진해 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김 교수는 "최근 푸틴은 이성적으로 보이지 않고 고의적으로 ‘매드맨 전략’ 즉 미치광이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푸틴의 핵 협박은 협박으로 그칠 가능성이 크지만 혹시라도 진짜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의구심을 갖게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상호 핵 억지가 작동하려면 '상호확실공멸(MAD: Mutually Assured Destruction)'의 기제로 핵보유국의 지도자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핵실험 장면. 지금까지 세상에 나온 무기들을 특성적으로 구분하면 크게 2종류로
나뉠 수 있다.
'potential-kill'이다. 자료=네셔널 인터레스트(national interest)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런던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보리스 존슨 영국 신임 총리가 25일(현지시간)
런던 하원에출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C) AFP=뉴스1
존슨 英총리 "동맹국들과 압력 가하겠다...푸틴, 결국 실패할 것"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엿새째인 1일(현지시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향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결국 실패할 것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로이터·AFP통신에 따르면 존슨 총리는 이날 폴란드를 방문해 "서방의 제재는 시간이 걸리는 한 계속 유지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존슨 총리는 또 "러시아 은행에 대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에서 배제하고 자산 동결을 위한 더 많은 조치를 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우리의 모든 동맹국들과 함께 영국은 푸틴 정권이 우크라에서 한 행동의 결과를 확실히 느끼도록 최대한의 압력을 가할 것"이라며 "우리가 한 목소리를 낼 때 푸틴은 실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존슨 총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자 러시아, 우크라와 인접한 이들 국가를 방문하고 현지에 주둔 중인 영국 군을 격려할 예정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중립국인 스위스의 이냐치오 카시스 대통령은 28일 기자회견에서 “유럽연합이
러시아에 부과한 제재에 스위스도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AP 연합뉴스
스위스·스웨덴' 중립국도 '러시아 압박' 국제연대 동참
우크라이나 침공]스위스, 푸틴 등 자산동결 제재
스웨덴, 80년 금기 깨고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러시아를 옥죄는 국제 연대에 스위스·스웨덴 등 전통적인 중립국들도 오랜 전통을 깨고 함께 나서기로 했다.
이냐치오 카시스 스위스 대통령은 28일 기자회견에서 “유럽연합(EU)이 러시아에 대해 부과한 제재에 스위스도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스위스의 입장을 바꾸는 결정적 원인이 됐다.
국제법 존중은 스위스가 지지하는 중요한 가치”라고 강조했다.
스위스는 유럽연합이 결정한 대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포함한 러시아 인사들의 자산을 동결하고 입국도 금지한다.
스위스 중앙은행 자료를 보면, 2020년 기준 스위스에서 러시아인이 보유한 자산은 약 104억스위스프랑(약 13조5000억원)에 이른다.
또, 러시아 항공기의 영내 진입을 금지하기로 했으며 우크라이나 난민이 증가하고 있는 폴란드에 약 25t의 구호물자를 보낼 방침이다.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닌 스위스는 푸틴 대통령이 지난 2월21일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독립을 승인했을 때는 제재에 동참하지 않겠다며 미온적 입장을 유지했다.
2014년 3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때도 스위스는 제재에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2월24일 침공이 시작된 뒤, 수도 베른에서 2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전쟁 반대’ 시위에 참여하는 등 ‘반러 여론’이 고조됐다.
그와 함께 제재에 나서지 않는 스위스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스웨덴 총리는 지난 27일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와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이 스웨덴 안보에 기여하는 것”이라며 그동안의 원칙을 깨고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다른 대표 중립국인 스웨덴도 국제분쟁에 무기를 공급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스웨덴 총리는 지난 27일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와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이 스웨덴 안보에 기여하는 것이다.
기존의 원칙을 뛰어넘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스웨덴은 ‘AT-4’라고 불리는 휴대가 가능한 대전차 로켓 5000개와 함께 전투식량(13만5000끼), 헬멧 5000개, 방호복 5000벌을 우크라이나에 보내기로 했다.
스웨덴은 1939년 당시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했을 때를 제외하고 80년 넘게 국제분쟁 지역에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왔다.
푸틴의 폭주가 독일에 이어 스웨덴의 금기도 깨뜨린 셈이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 한겨레신문사,
폴란드 코르초바 국경 인근 임시 난민수용소 ‘베에드롱카’ 내부 모습. 우크라이나
에서 빠져나온 다양한 민족의 피난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김현기 특파원
봐도 80%는 남자" 징집령 우크라 난민보호소 이상한 비밀
해가 어둑어둑해진 27일 오후 5시(한국시간 28일 새벽 1시) 기지 내 활주로에는 보잉 C-17 글로브마스터III 전략수송기가 착륙했다.
그리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하기 위한 물자가 속속 대기하던 트럭으로 옮겨 실어졌다.
C-17에서 800m 떨어진 곳에는 증파된 미군들을 수용하기 위한 임시 막사가 만들어졌다.
취재진이 활주로 옆길을 따라 막사 쪽으로 접근하자 자동소총을 든 미군 2명이 큰 소리를 지르며 다가왔다.
밑으로 내렸던 총구를 앞으로 향한 채였다.
미군 한 명은 취재진에게 신분증을 요구하고 촬영한 사진을 자신들이 보는 앞에서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나머지 한 명은 기자의 얼굴을 찍으며 "당장 기지에서 멀어져라"고 소리쳤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협상을 개시함과 동시에 핵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양동작전을 펼치면서 미군 기지 내도 긴장감이 팽팽했다.
수송기가 폴란드 제슈프-야시온카 공항 내 임시 미군기지에 도착한 모습. 김현기 특파원
폴란드 제슈프 지역 인근 미엘레츠 미군기지 모습. 김현기 특파원
폴란드 제슈프 인근 미엘레츠 미군기지 내 모습. 김현기 특파원
제슈프 인근 폴란드 동남부 미엘레츠 미군 기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병력과 물자를 수송하기 위한 치누크와 블랙호크 헬기 등이 배치돼 기지 철조망 밖에선 완전 무장한 병력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임시 숙소로 보이는 텐트에선 폴란드에 증원 급파된 4700명 중 일부가 비상 출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막사 300m 가량 앞쪽으로는 의무부대 헬기로 보이는 수송기가 부지런히 뜨고 내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5일째가 되고 예상과 달리 우크라이나가 선전을 거듭하면서 폴란드 국경선 근처도 처음과는 조금씩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날 오전 우크라이나 서부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코르초바 국경을 들렀을 때 그랬다.
러시아 침공을 피해 피난 온 한 우크라이나 가족이 코르초바 국경 인근 임시 난민수용소
‘비에드롱카’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김현기 특파원
검문소에서 차로 5분 거리의 도매센터 '비에드롱카'는 국경을 넘어 온 난민들로 북새통이었다. 어림잡아 2000명 이상은 돼 보였다. 26일부터 임시 피난민 보호소로 운영되기 시작한 이곳에는 간이 침대와 음식물, 의약품들이 대거 마련돼 있었고, 코르초바 검문소를 통과한 난민들이 약 30분 간격으로 버스를 이용해 이곳에 속속 합류하고 있었다.
전장을 벗어난 기쁨 때문일까 일부 난민은 중앙에 마련된 마이크를 붙잡고 일장 연설을 하기도 했다. 이들이 말미에 폴란드어로 "젠쿠예(고맙다는 뜻)"를 외치자 피난민들은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딸 야나(8)와 안드레이(6)을 데리고 우크라이나 테르노플을 빠져나왔다는 알리나(43)는 아이들 손을 꼭 잡고 "남편을 두고 왔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왜냐면 우크라이나는 승리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야나와 안드레이 눈에는 눈물이 글썽였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 산다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아크만(38)은 "'조국을 위해 싸우러 간다'며 군에 입대한 우크라이나인 친구들의 부탁으로 그들의 가족을 대신 데리고 여기로 빠져나왔다"며 "그런데 한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중 어느 쪽 편이냐"고 물었다.
기이한 풍경도 보였다. 우크라이나의 18~60세 남성에겐 총동원령이 내려졌기 때문에 피난민 보호소엔 대부분 여성이나 어린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딱 봐도 80%이상이 남성이었다. 인종도 흑인, 아랍계가 대부분이었다.
폴란드 코르초바 국경 인근 임시 난민수용소 ‘비에드롱카’ 내부 모습. 우크라이나에서
빠져나온 피난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김현기 특파원
한 폴란드 자원봉사 요원은 이유를 묻는 기자를 살짝 구석으로 불러내더니 귓속말로 "사실 불법 난민으로 입국이 금지되던 이들이 이번 사태로 대거 우크라이나를 경유해 폴란드로 교묘히 오고 있다.
아마 그들은 조금 있다 꿈에 그리던 독일이나 프랑스로 갈 것이다.
여기 보호소에 우크라이나 사람은 극소수"라고 귀띔했다. 조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놓인 우크라이나인들의 슬픔, 유럽 입국이란 절호의 기회를 잡은 기타 난민들의 기쁨이 피난민 보호소에 혼재돼 있었다.
병원에 근무하다 이곳 봉사요원에 자원했다는 루카스(36)는 "여러 곳에서 구호물품이 쇄도하고 있어 너무나 고마울 지경"이라며 "이곳에서 쓰다 남은 것들은 모두 우크라이나로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폴란드 한인연합회(회장 남종석)도 마스크·코로나 자가진단 키트 등을 이곳 보호소에 기증했다.
열차편으로 우크라이나를 빠져 나오려는 이들은 이날도 쇄도했다. 우크라이나 서부 거점도시 리비우역에서 폴란드 국경도시 프셰미실 중앙역까지는 통상 2시간 정도 걸리던 것이 이날 20시간 가량 소요됐다.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꽉 들어찬 상태였다. 유엔과 유럽연합(EU)은 27일까지 우크라이나를 빠져나온 이들은 36만8000명으로, 앞으로 최대 7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편 이날 우크라이나행 열차가 오가는 폴란드 국경 도시 프레미시우 중앙역과 메디카·크라코베츠 검문소 등에서는 우크라이나 군에 입대하기 위해 귀국하려는 우크라이나 청년들이 몰렸다.
폴란드 국경수비대는 지난 24일부터 이날까지 약 2만2000여 명이 국경초소를 통해 우크라이나로 들어갔다고 밝혔다.
제슈프·코르초바·프셰미실(폴란드)=김현기순회특파원kim.hyunki@joongang.co.kr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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