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노래자랑' 환갑이 넘은 1988년 맡아 34년간 지켜 지난달 기네스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 등재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국민 MC' 송해(95·송복희)가 8일 서울 도곡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현역 최고령 MC로 통하던 고인은 1927년 4월27일 연백 평야가 있는 황해도 재령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은 숙박업체 운영 등 상업에 종사했고, 이사를 자주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해주예술학교에서 성악을 배웠다.
광복과 함께 남북으로 분단된 이후 그는 1951년 한국전쟁 1·4후퇴 때 홀로 피란 내려왔다.
송해의 본명은 송복희(宋福熙). 피란 도중 바닷물로 밥을 지어 먹은 뒤 '바다 해(海)'를 사용해 이름을 다시 지었다.
이후 3년8개월 동안 군 생활을 한 뒤 1955년 '창공악극단'에서 데뷔했다.
그곳에서 사회를 보고 노래를 부르며 경험을 쌓다 동아방송, MBC 등에서 본격적으로 방송활동을 했다. 1960년대 동아방송에서 '스무고개'와 '나는 모범운전사'에 출연했다.
특히 '스무고개'에선 코미디언 박시명(1924~1986)과 콤비로 유명했다.
고인의 상징과도 같은 KBS 1TV '전국노래자랑'은 환갑이 넘은 1988년 5월 경북 성주 편부터 자리를 지켰다. 34년간 공개 녹화를 통해 무려 1000만 명 넘는 사람을 만났다.
'일요일의 남자'라는 수식어를 얻고 국민 MC로 인정 받았다.
2003년 8월엔 '전국노래자랑' 광복절 특집으로 평양 모란봉 공원 야외무대에서 북한 진행자 전성희와 공동 사회를 보기도 했다.
2003년 8월엔 '전국노래자랑' 광복절 특집으로 평양 모란봉 공원 야외무대에서 북한 진행자 전성희와 공동 사회를 보기도 했다.
지난달 영국 기네스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Oldest TV music talent show host)로 등재됐다. 하지만 올해 들어 건강이 좋지 않았다.
1월에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했고, 지난 3월엔 코로나19에 확진됐다.
최근에도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다.
코로나19 기간 스튜디오 녹화를 이어오던 '전국노래자랑'이 2년 만인 지난 4일 야외 녹화를 진행했으나 참석하지 못했다. 송해는 최근 건강상의 이유로 '전국노래자랑'에 하차 의사를 밝혔다.
[서울=뉴시스] 현역 최고령 MC인 송해가 8일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95세. 사진은
KBS명예사원증 수여식에 참석한 송해 모습. (사진=KBS 제공) 2022.06.08.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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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 관계자는 "송해 선생님이 몇년 전과 비교해 살이 좀 많이 빠지시기는 했지만, 건강에 심각한 문제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
갑자기 부고 소식을 접해 황망하다"고 말했다.
실제 송해는 전날까지도 사무실에 출근했다 퇴근한 것으로 전해졌다. 송해는 이밖에 드라마 '싱글네 벙글네'(1981) KBS 2TV '나를 돌아봐' MBC TV '세모방 : 세상의 모든 방송' TV조선 '부캐전성시대' 등 예능물에 출연했다.
또 송해는 가수이기도 하다.
2003년과 2006년 두 차례에 걸쳐 앨범 '애창가요 모음집 송해쏭'을 발매했다.
지난해 고인의 일대기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송해 1927'가 개봉하기도 했다.
이 영화엔 1986년 오토바이를 타다 뺑소니 사고를 당한 그의 아들 고(故) 송창진 관련 사연도 담겼다. 대한민국연예예술상 특별공로상, KBS 연예대상 공로상, 백상예술대상 공로상, 한국방송대상 공로상, 대중문화예술상, 보관문화훈장, 은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와 고인의 장례를 '희극인장'으로 치르는 것에 대해 논의하는 등 빈소와 장례 절차 등을 최종 조율 중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원조 국민 MC, 현역 최고령 MC, 영원한 현역, 만인의 오빠, 일요일의 남자. 숱한 애칭
으로 불리며 매주 일요일 “전국∼”이라는 외침과 함께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은
KBS1 ‘전국노래자랑’ 사회자 송해가 8일 영면에 들었다. 향년 95세.
소탈하고 격의 없었던 ‘만인의 오빠’ 송해… 천상의 무대로 떠나다
송해, 95년 인생
6·25때 혈혈단신으로 남하한 실향민 통신병 복무 당시 한국전 휴전 타전 전후 가수로 데뷔, 코미디언·MC 활약 1988년부터 전국노래자랑 ‘터줏대감’
소탈하고 격의없는 진행으로 사랑받아 세계 최고령 진행자로 기네스 등재도
각계각층 추모 물결 정치권 여야 한목소리로 애도 유재석·강호동 장례위원 맡아
1927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그야말로 한국 현대사를 헤쳐오며 서민과 함께한 코미디언이자 가수, 그리고 방송인이었다.
해주예술학교에서 성악을 배웠고, 23세 때 6·25전쟁이 발발하자 남한에 혈혈단신으로 내려왔다.
“6·25전쟁이 터졌을 때는 스물셋이었다.
해주음악전문학교에 다니다가 피란길에 올랐다.
제 본명이 송복희인데, 상륙함에 실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망망대해를 헤맬 때 제 이름을 다시 지었습니다. 바다 해 자를 따와서 송해(宋海)라고요. 이 이름이 주민등록상 본명이 되었죠.”( ‘송해 1927’ 중)
부산 현지에서 군 통신학교에 입대한 후 통신병으로 복무하며 1953년 7월 27일 모스 부호로 전군에 휴전협정 타결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고인은 생전 당시 모스 부호 타전을 여러 차례 방송 등에서 입으로 재연해보이곤 했다.
연예계에는 1955년 ‘창공악극단’에서 가수로 데뷔했다. 당시 악단에서 가수를 했지만 악단 공연 특성상 진행을 하면서 입담을 살려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도 하다 보니 이때부터 자연스럽게 MC 경험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1960년대 대중문화가 극장에서 방송으로 옮겨 가면서 고인도 TV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MBC ‘웃으면 복이와요’에서 여성 코미디언 1인자 이순주와 콤비로 활약했다.
코미디언 배삼룡, 구봉서 등과도 한무대에 섰다.
특유의 구수한 입담으로 TBC(동양방송) 라디오 방송 ‘가로수를 누비며’를 1974년부터 17년간 진행했다.
1988년부터는 KBS1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을 맡았다. 오프닝 멘트에서 고인이
“전국∼” 하고 외치면 관중들이 “노래자랑∼”이라고 화답하는 장면은 해당
프로그램의 트레이드마크. 고인은 이때부터 34년간 전국 팔도 안 다녀 본 곳이 없다.
생전 고인은 “‘전국노래자랑’은 내 평생의 교과서”라며 “세 살 먹은 아이한테도 배울 게 있다는 걸 경험했다.
관객이 단 한 명이 있어도 1만명이 있다는 자세로 대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밝혔다.
1998년 금강산 관광단으로 북녘 땅을 밟았을 때는 아이처럼 좋아했고, 2003년 ‘전국노래자랑-평양’편에서는 ‘한 많은 대동강’을 부르며 “다시 만납시다”라고 안타까운 작별인사를 전했다.
가수 태진아는 “송해 선생님과 함께 전국 팔도를 다 다녔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우리 가수들이 재기하고 히트곡을 내놓은 것은 다 선생님과 ‘전국노래자랑’ 덕분”이라고 애도했다.
고인은 전국을 누비며 무려 1000만명 넘는 사람을 만났다.
송해 특유의 친화력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긴장하는 출연자 마음을 훈훈하게 녹였다.
고인 스스로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
낙지, 장어 등 각종 지역특산물을 들고 올라오는 참가자의 짓궂은 장난도 단 한 번 거부하지 않고 그들이 건네주는 특산물들을 모두 맛봤다.
참가자와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가수 배일호는 “선생님은 출연진과 스태프에게 싫은 소리 한번 안 하실 정도로 불평, 불만, 투정을 안 하셨다”며 “조금 마음에 안 드는 부분도 편안하게 받아주시고, 높은 사람 낮은 사람 따지지 않고 격의 없이 사람을 대하며 배려해주셨다”고 추모했다.
고인의 이러한 삶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아 지난달 23일 기네스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Oldest TV music talent show host)’ 세계기록에 이름을 남기기도 했다.
또 대한민국연예예술상 특별공로상, 백상예술대상 공로상, 은관문화훈장 등 무수히 많은 상을 받았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고 내 운명이고 내 팔자이니 내가 나를 위로해야 해요.
누가 직업에 대해 불평을 하면 꼭 그런 얘기를 합니다.
세상만사에는 우선 장단이 있는 것이고, 가볍고 무거운 경중이 있는 거고, 높고 낮은 높낮이가 있는 건데 왜 나라고 높은 데가 없습니까! 다 있습니다!
올 때가 아직 오지 않은 것이죠.”
◆30여년 동행 신재동 악단장 “가슴 뻥 뚫린 듯”
30여년 동안 전 국민과 희로애락을 함께한 방송인 송해가 8일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사회 각계 추모가 이어졌다.
고인과 같은 황해도 출신 실향민으로 평소 친분이 두터웠다는 방송인 이상벽은 언론 인터뷰에서 “평생을 바지런히 뛰었으니 이제 정말 하늘나라에서 편하게 쉬는 시간을 가지라고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1992년부터 송해와 ‘전국노래자랑’을 함께 해온 신재동 악단장은 “가슴 한켠이 뻥 뚫린 것처럼 허망하다”고 애도를 표했다.
‘전국노래자랑’으로 가수로 첫발을 내디딘 송가인, 김수찬을 비롯해 방송인 이용식·홍석천, 가수 딘딘 등도 고인과 인연을 회상하고 슬퍼했다.
송해의 삶을 담은 평전 ‘나는 딴따라다’(2015)를 집필한 오민석 단국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그리고 최근 한류에 이르기까지 대중문화의 한복판에 계셨던, 한국 근현대 대중문화사의 박물관”이라고 고인을 기억했다.
사진=뉴스1
정치권에서도 여야가 한목소리로 고인을 애도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을 지낸 국민의힘 이채익 의원은 “송해 선생님은 참으로 소탈하고 망향의 아픔도 많고 애국심도 깊었던 걸로 기억한다”고 고인을 추억했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죽는 날까지 무대에 서겠다’던 진정한 희극인 송해 선생님, 하늘에서 영원한 평안을 누리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잘하는 출연자에게는 꼬마에게도 큰절하고 흥에 겨워 덩실덩실 춤을 추며 격려했다. 자기를 낮추고 버리는 희생, 섬기는 ‘서번트 리더십’이었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방송사들도 고인을 추모하는 방송을 긴급 편성했다.
KBS1은 트로트 뮤지컬 ‘국민 MC 송해 추모특집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를 이날 오후 10시 재방송했다.
이어 같은 날 밤 12시10분 다큐멘터리 ‘송해, 군함도에서 백두산까지 아리랑’도 편성했다.
12일 낮 12시10분에 방송되는 ‘전국노래자랑’은 송해 추모 특집으로 꾸려질 예정이다.
TV조선도 이날 오후 10시에 송해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송해 1927’을, MBN은 이날 오후 10시20분부터 다큐멘터리 ‘송해야 고향가자’ 1·2회를 연속으로 재방송했다.
이날 오후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 2∼3호실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에는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가수 조영남과 김흥국, 쟈니 리, 개그맨 유재석, 조세호, 황교안 전 총리 등이 빈소를 찾아 고인을 기렸다. 코미디언협회장(희극인장)인 고인 장례식은 엄영수 코디미언협회장을 장례위원장으로 이용식, 김학래, 최양락, 강호동, 유재석, 김구라, 이수근 등이 장례위원을 맡았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서울=연합뉴스) 현역 최고령 MC인 방송인 송해가 8일 별세했다. '전국노래자랑' 울릉도편 관련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 2022.6.8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나는 딴따라"·"인생은 딩동댕"…'삶의 철학자' 송해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김우진 인턴기자 = '영원한 현역 MC' 송해가 8일 세상을 떠난 가운데 그가 생전에 구수한 입담으로 대중을 울리고 웃겼던 말들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천상 방송인이었던 송해는 평생 자신의 직업을 자랑스러워하며 '딴따라'를 자처하곤 했다.
그는 1990년 MBC TV '휴먼다큐-사람이 좋다'에 출연해 "즐겁게 해주는 사람들이 '딴따라'다.
소위 말하는 우리가 하는 일"이라며 "이건 정말 나에게 내려주신 천직"이라고 말했다.
이후에도 "나는 딴따라다. 영원히 딴따라의 길을 가겠다", "나는 딴따라가 맞다.
이젠 우리들(연예인)이 없으면 사회가 재미없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굴곡진 한국 근현대사를 겪고, 아들과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아픔을 가슴 한쪽에 지니고 살아온 송해는 이 시대의 어른으로서 인생에 대한 지혜도 전했다.
2004년 KBS 1TV '아침마당'에 출연해 한국전쟁 때 어머니를 고향 북한에 두고 홀로 부산으로 넘어오고, 장성한 아들을 교통사고로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일을 전하며 "인생은 나도 모르게 흘러가는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올해 1월 KBS 2TV '연중라이브'에서는 "요새 우리가 복잡한 세상, 어려운 세상을 살고 있지만, 이게 다 살고 나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인내 때문에 이기는 겁니다.
이겨 나가셔라"고 따뜻한 격려를 전했다.
송해는 죽기 전까지 35년간 MC를 맡았던 '전국노래자랑'에서 참가자들을 심사하는 실로폰의 '땡'과 '딩동댕' 소리를 인생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올해 설 연휴 대기획으로 방송된 KBS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에서는 "'땡'과 '딩동댕' 뭐가 더 소중하냐고 하는데, '땡'을 받아보지 못하면 '딩동댕'의 정의를 모른다"며 "저 역시 늘 '전국노래자랑'에서 내 인생을 딩동댕으로 남기고 싶었던 사람"이라고 했다.
최고령 MC 송해 생전 모습[연합뉴스 자료사진]
송해는 최근까지도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자신을 알아보는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는 소탈한 삶을 살았다.
돌발 질문을 받거나 다소 짜증스러울 수 있는 상황에서도 항상 웃어 보였다.
그는 시민들의 관심이 귀찮지 않으냐는 질문에 "일부러 알리려고 애를 쓰는데 저쪽에서 먼저 아는 척해주면 황금 덩어리지"라고 되받아쳤다.
이렇게 사람들을 좋아했던 송해는 자신을 '부자'라고 여기며 행복해했다.
그는 2014년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초대 회장에게 '사람을 많이 아는 부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하며 웃었다.
"이 세상에 제일 부자는 사람 많이 아는 사람이야.
그 사람이 누구냐 '송해다'그 말이야."
aeran@yna.co.kr
8일 별세한 방송인 송해가 올 초 KBS ‘2022 설 대기획’으로 편성된 트로트 뮤지컬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 무대에서 관중석을 향해 웃으며 손을 들고 있다. KBS 제공
우리들의 아버지’ 송해… 마지막까지 무대 지킨 오뚝이
건강 악화에도 꿋꿋이 무대 지켜 생전 “노래자랑, 내 인생 교과서” 95년 인생 담은 영화 제작되기도 무명 가수들 위한 가요제도 열어
송해는 늘 국민 곁을 지킨 MC였다. 모든 국민에게 사랑받는다는 의미에서, 34년간 KBS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며 국민의 이야기를 들어왔다는 점에서 ‘국민 MC’는 그에게 가장 잘 맞는 수식어다. 그는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실향민으로서 방송연예계에 굵은 족적을 남겼고, 한 세기에 가까운 인생은 영화로 제작됐다.
송해는 지난 5월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최고령 진행자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됐다.
그는 소감에서 “긴 세월 전국노래자랑을 아껴 주신 대한민국 시청자들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그는 직업정신이 투철했다.
건강 악화에도 전국노래자랑 무대를 꿋꿋이 지켰다.
2010년 이후엔 고령으로 방송 녹화에 몇 차례 불참했고, 올해도 두 차례 입·퇴원을 반복해 시청자들의 걱정을 샀다.
지난해 말 하차설이 나오자 “(내가) 아직 이렇게 또렷또렷한데 누굴 줘”라며 일축했다.
올해 들어서야 체력적 한계로 야외 녹화는 어렵다는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노래자랑에 대한 애정은 대단했다.
수십년간 전국을 돌며 국민의 노랫가락을 들은 그는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가수입니다”라며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지역 갈등, 고부 갈등, 직업 간 갈등,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갈등, 성별과 세대 간 갈등이 전국노래자랑에선 해소된다. 이 프로그램은 ‘내 인생의 교과서’”라고 했다.
그는 2003년 평양에서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할 때도 특유의 넉살과 유머로 관객의 호응을 얻어냈다.
황해도가 고향인 그는 전국노래자랑이 한 번 더 북한에서 열리길 바랐다.
그는 2010년 한 인터뷰에서 “개성공단 같은 곳에서 노래자랑을 하며 남과 북이 어울리면 그게 바로 통일이 아닐까 싶다”고 언급했다.
2011년 종로2가 파출소 일일 명예소장으로 위촉돼 거수경례하는 모습. 연합뉴스
한 세기에 달하는 송해의 일생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지난해 11월 그의 95년 인생을 담은 영화 ‘송해 1927’이 개봉했다.
긴 시간 그가 느낀 희로애락을 그린 이 영화에선 가족에 대한 애정과 인간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이용철 평론가는 “연예인이 아닌 어떤 아버지와 만남”이라고 평가했다.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는 “82분으로 담아내기엔 너무나 큰 거목”이라고 했다.
오랫동안 송해와 함께해온 KBS는 지난 1월 그를 주제로 한 트로트 뮤지컬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를 선보였다.
KBS ‘2022 설 대기획’으로 편성된 이 프로그램은 송해를 위해 후배 가수들이 꾸미는 헌정 공연이었다. 무대는 파란만장했던 그의 95년 인생사를 바탕으로 구성했다.
MC뿐만 아니라 가수로서, 원로 코미디언으로서 송해를 기억하는 이들도 많다.
송해는 생전 가요 모음집을 비롯해 10장이 넘는 음반을 냈다.
1967년 가수 김상희 배호 등과 함께 첫 가요 음반을 발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90세를 훌쩍 넘어서도 노래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2018년 ‘딴따라’ 음반을 발매하고 1년 뒤에는 싱글 앨범 ‘내 고향 갈 때까지’를 통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했다.
가요계 대선배로서 후배에 대한 애정도 각별했다. 2017년 그는 가수를 꿈꾸지만 환경이 어렵거나 기회가 없어 데뷔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딴 ‘송해 가요제’를 열었다.
당시 그는 “가요 백년사의 기쁨과 슬픔을 전하고, 여러 가수가 더 알려지고 새롭게 조화를 이루기 바라는 마음”이라며 가요제 개최 이유를 밝혔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송해는 오랜 시간 국민에게 즐거움을 주는 연예인이었고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항상 국민 곁에 있었다.
누구보다 국민과 친밀성이 높은 MC였다”며 “인간미와 순발력, 모든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능력으로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줬다”고 말했다.